2017. 8. 12. 영화 <프란츠>를 봤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독일의 한 마을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프란츠. 이십대 초반의 독일청년. 의사 아버지와 어머니의 외동아들. 안나라는 약혼녀가 있다. 전장에서 프랑스군의 총에 맞아 전사했고, 더 이상 그가 없는 집에서 약혼녀 안나는 그의 부모와 함께 살고 있다. 어느날 그들에게 프란츠가 프랑스에 있을 때 사귄 친구라며 프랑스 청년 아드리앵이 찾아온다. 아들의 빈자리로 찾아든 아들의 친구에게 프란츠 부모는 물론 안나까지 얼었던 마음을 풀게 된다. 하지만 아드리앵은 죄책감에 시달리다 안나에게 자신이 전장에서 마주친 프란츠를 죽은 군인이었다고 고백하고 그의 가족들에게 용서를 빌러 왔다고 솔직하게 말하지만 안나는 부모님에게는 자신이 말해겠다며 아드리앵을 프랑스로 돌려보낸다. 안나는 프란츠의 부모님에게 아드리앵의 진실을 감추고 무거운 비밀을 간직한 채 회색빛 일상을 보내다가 자살까지 시도하게 된다. 자신이 아드리앵을 좋아한다는 걸 깨달은 안나는 아드리앵을 마음에 들어하는 프란츠 부모님의 응원 하에 아드리앵을 만나러 프랑스로 가게 되고 우여곡절 끝에 아드리앵의 고향집까지 가게 되어 아드리앵과 만난다. 하지만 그의 곁에는 어릴 때부터 같이 자라고 곧 결혼을 할 약혼자가 함께 살고 있다. 프란츠와 안나와 같은 연인이... 결국 안나는 아드리앵을 포기하고 돌아간다. 영화는 루브르 박물관에 걸린 마네의 <자살>이라는 그림 앞에 앉아 있는 안나의 모습으로 끝이 난다.

 

 

에두아르 마네, <자살> 혹은 <자살한 남자>

   

이 영화를 보면서 떠올랐던 영화가 있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도 같고 전장에 나간 약혼자로 인해 특별한 여정을 하는 여자가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떠올랐던 영화 <인게이지먼트>. 프랑스의 작은 마을에 사는 마띨드는 어릴적에 앓은 소아마비로 인해 한쪽 다리가 불편하다. 그런 그녀에게 먼저 말을 걸어준 소꿉친구이자 약혼자인 마네끄가 전장으로 끌려간 후 군형법을 어겼다는 이유로 군법재판소에 넘겨서 사형을 선고받고 비무장 지대에 버려지다시피 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게 된다. 하지만 마띨드는 자신의 예감을 믿으며 그가 아직 살아있다고 확신하고 그를 찾아 나선다. 탐정을 고용하고 그 당시 약혼자와 함께 했던 군인들을 찾아다니며 마네끄의 생사를 쫓던 그녀는 결국 그가 살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마띨드가 기억을 상실한 채 다른 사람의 신분으로 살아가고 있는 약혼자를 만나는 장면에서 영화는 끝난다.

 

 

두 영화는 전쟁의 끝에 희망을 찾는 여자들의 모습으로 끝이 난다. <프란츠>의 안나는 루브르 박물관에 걸린 마네의 <자살>이란 그림 앞에서 독백한다. 이 그림이 삶의 의지를 갖게 해준다고.. 사랑하는 약혼자를 잃고, 그 약혼자로 인해 알게 된 또 다른 남자 아드리앵과도 맺어지지 못한 안나가 다시 느끼게 된 삶의 의지란 무엇일까. 프란츠를 잃고 아드리앵 마저 떠나버리고 더 이상 슬픔을 견딜 수 없다면서 강물로 걸어 들어갔던 안나는 폐허가 된 곳에서도 삶은 이어져야 한다는 걸 두 번의 사랑으로 깨닫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약혼자를 잃고 그를 죽인 남자를 사랑하게 되었지만 그 남자와도 맺어질 수 없었음에도 또 다른 사랑은 찾아올 거라는 희망. 안나는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사랑해서는 안 되는 아드리앵을 사랑함으로써 사랑에 대한 가능성을 본 것인지도 모른다. 삶이 계속되는 한 사랑은 어디에나 있다는 가능성 말이다.

 

<인게이지먼트>의 마띨드는 결국 기억을 잃고 신분마저 바뀌어버린 약혼자를 찾아낸다. 영화 내내 약혼자의 생존에 대해서 희망을 놓지 않던 마띨드의 모습은 사랑하는 사람을 보고싶다는 간절함이 담겨 있다. 그리고 그를 찾기 위해서 했던 적극적인 행동들은 혼란한 시대에는 여자가 오히려 더 강인할 수도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이런 모습은 자신의 애인을 죽게 만든 관련자들을 찾아다니며 죽음으로 복수를 하는 여자(마리옹 꼬디아르 분)에서도 잘 나타난다.]. 마네끄는 약혼자 마띨드를 살아서 다시 만나기 위해 적극적으로 살려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정신줄을 놓음으로써 그저 자신 안으로 대피했을 뿐. 그런 그를 찾아낸 건 결국 마띨드의 강한 의지였다. 전쟁 후의 폐허 속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고 강한 의지로 삶을 이어가는 건 결국 여자들의 몫이었는지도 모른다. 전쟁에서 살아남은 자들을 대신해서...

 

두 영화 모두 주인공인 두 여자의 연기가 강한 인상을 남긴다. 특히 <프란츠>의 안나는 마음이 조금씩 변해가는 것을 눈빛과 작은 행동만으로도 잘 표현했다. <인게이지먼트>의 마띨드는 특유의 발랄함으로 영화에 생동감을 더해주었다. 전쟁과 사랑이라는 같은 소재 심지어 같은 시대를 배경으로 이야기 하고 있으면서도 두 영화(혹은 두 여인)이 관객에게 주는 느낌은 사뭇 다르다. 그러면서도 전해지는 감동의 무게는 비슷하다 랄까. 이런 게 영화의 힘은 아닌지 새삼 그런 생각을 해본다.

 

두 영화가 인상 깊게 남는 또 다른 이유는 영화의 색감 때문이다. <프란츠>는 흑백톤으로 흐르다가 잠깐씩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자연스럽게 칼러 장면으로 바뀐다. 그런가하면 <인게이지먼트>는 전체적으로 따뜻한 느낌을 주는 세피아톤의 색감을 사용하여 참혹한 전쟁 장면이 많았음에도 큰 거부감 없이 볼 수 있었다. 흑백과 세파아. 둘 다 과거라는 시간에 어울리는 색감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둘 다 과거의 색이되 두 여주인공의 모습과 심경을 대변하는 것으로 각 영화가 선택한 색감은 적절한 선택이 아니었나 싶다

 

두 영화는 전장에 사랑하는 사람을 보낸 젊은 여자가 주인공인 사랑이야기지만 1차세계대전이 배경인 만큼 전쟁에 대한 민낯을 보여주기도 한다. 프란츠의 아버지는 자신 또래들이 모인 한 모임에서 말한다. 우리의 자식은 프랑스인이 죽인 게 아니라 우리 아버지들이 죽인 거라고. 그들의 손에 무기를 쥐어주고 전장으로 내보낸 건 우리 아버지들이라고. 우리 아들들이 죽으면 저쪽 아버지들이 축배를 들고 저쪽 아들들이 죽으면 우리가 축배들 들었다고. 결국 우리 모두는 아들들의 죽음에 축배를 드는 그런 아버지일 뿐이라고... 그런가 하면 <인게이지먼트>에서 징집당한 한 남자는 동료 군인들에게 이런 말로 설득을 하려고 하지만 실패한다. 자신 같은 하층민들이 서로를 죽일 대포를 만들면 부자들이 그걸 팔아 돈을 번다고... 두 영화는 말한다. 전쟁은 그 어떤 편도 이득일 수 없다고, 결국 부자 같은 몇몇 사람들의 배만 불리는 악 중의 악이라고. 전쟁의 잔혹함을 대놓고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관객들에게 제법 강한 인상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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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17-08-13 18: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프란츠가 그런 내용이었구나....

희선 2017-08-24 02: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영화 시대배경은 같아도 하나는 독일이고 하나는 프랑스네요 독일 사람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 하는 걱정이 앞서는... 그렇다 해도 살아가겠죠 전쟁이 일어나면 좋은 곳은 하나도 없겠습니다 그걸 알면서도 할 때도 있지 않나 싶어요 전쟁이 일어나면 가장 밑에 사람이 힘들겠습니다 하지 않으면 안 될 테니... 그럴 때라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어려울지도 모르겠네요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