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여자들
록산 게이 지음, 김선형 옮김 / 사이행성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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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페미니스트의 저자 록산 게이의 소설집이다. 소설을 쓰는 줄은 몰랐다. 그래서 출판사에서 제공한 저자의 소개를 다시 읽어보니 록산 게이는 다양한 글쓰기를 하고 있는 대단한 정열의 소유자인 듯하다. 이 리뷰는 이번에 출간된 소설집 어려운 여자들중에서 출판사에서 선별만 8편만 따로 선집하여 만들어 제공한 소책자본을 읽고 쓰는 것이다.

 

<언니가 가면 나도 갈래>는 한 살 차이인 자매가 어릴 때 겪은 끔직한 성적 학대로 인해 그 이후로는 한시도 떨어지지 않은 채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 그 엄청난 무게>는 태어날 때부터 물을 몰고 다니는 여자에 관한 이야기며 <어려운 여자들>은 헤픈 여자, 불감증의 여자, 미친 여자 그리고 어머니, 죽은 처녀라는 소재에 대해 저자만의 생각을 짧게 적은 글이다. <어떻게>는 한나라는 젊은 여자가 어떻게 그런 견디기 힘든 일상에 내몰리게 되었고 또 어떻게 그곳에서 탈출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며 <유리 심장을 위하 레퀴엠>은 피와 살로 된 남자가 유리로 되어 모든 걸 훤히 보여주고 또 조심스럽게 대해야 하는 유리 아내와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나쁜 신부>는 철저히 종교적인 집안에서 자란 미키가 신부라는 신분으로 한 여자와 섹스를 즐기는 이야기라면 <나는 칼이다>는 출산이 임박하였으나 오지에 살았기에 제때 병원에 도착하지 못해 아이를 잃고 자궁까지 망가져 더 이상 아이를 갖지 못하는 부부에 관한 이야기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실린 <이방의 신들>은 백인 아버지와 흑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여자가 어릴 적 또래 남자들에게 윤간을 당한 뒤 자신을 창녀처럼 취급하다가 좋은 남자를 만나 서서히 회복되어 가는 이야기다.

 

록산 게이가 쓴 글이 어떤 소설인지는 내용을 짤막하게 정리만 해봐도 단번에 알 수 있다. 이 소설들은 여성의 상처와 아픔에 관한 이야기라는 걸... 그리고 그 상처들은 몸의 상처로 인해서 마음의 상처로까지 이어졌으며 대부분의 상처는 가까운 사람들에 의해 입게 되었다는 걸...

 

태어날 때부터 물을 몰고 다니는 여자에 대한 이야기인 <, 그 엄청난 무게>는 어쩌면 여자로 태어날 때부터 숙명적으로 안고 살아갈 그 어떤 무게를 말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몸 안에 엄청만 물인 양수를 갖도록 운명지워진 여자들. 하지만 그러지 못하게 되었을 때 입게 되는 상처... 여자들에게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치명적일 수 있는 자궁의 상처에 대한 이야기들이 이 소설에서 내가 주목한 부분이다. 어릴 때 납치되어 6주간 성폭행을 당한 남매, 역시 어릴 때 학교 친구들에 의해 윤간을 당한 소녀, 그리고 출산할 때 의사의 잘못된 수술로 인해 아이는 물론 자궁의 대부분을 잃은 여자. 내가 여자로 태어났음을 증명하는 상징적인 신체부위를 강압과 폭력 혹은 무지에 의해 훼손당한 그녀들은 스스로를 불안한 세계로 내몰고 있는 듯하다. 아니 그럴 수밖에 없는 정신적인 상처도 함께 입었음이 분명하다. 자궁의 상처는 여자라는 정체성에도 상처를 입혔다. 그런가하면 자신의 몸을 아무에게나 허락하는 <어떻게>의 한나나 <나쁜 신부>의 리베카 역시 어디를 상처내면 가장 아플 수 있는지를 알면서 스스로에게 상처 입히고 있는 여자들이다. 때로는 그 상처로 평생 마음의 병까지 앓고 있는 여자들의 이야기는 그저 소설 속에서나 있을 법한 상상의 이야기만으로는 읽히지 않는다.

 

지금 일하는 사무실에서 성범죄 관련 사건들을 꾸준하게 봐오고 있다. 중학생 오빠가 초등학교 고학년 여동생을 성폭행한 사건, 친구의 술 취한 남자친구에게 강간을 당하려다가 미수에 그친 사건, 이혼 소송 중에 남편이 아내를 강제로 범하려던 사건, 직장 여직원을 바래다주는 택시 안에서 몸을 주물러 대던 직장상사의 성희롱 사건 등등. 그런데 이런 사건들을 접하면서 이상하게 생각된 건 성범죄를 당한 피해자의 주위 여자들의 반응이다. 친남매의 어머니는 피해자인 딸보다는 가해자인 아들만 싸고돌았다. 친구 역시 피해를 당한 여자친구보다는 자신의 남자친구 편을 들었고 부부의 시어머니 역시 당신 아들의 입장만을 이해하려 했으며, 직장의 여성들조차 말단 여직원보다는 상사였던 팀장을 위해 탄원서를 제출했다. 여자들은 피해를 입은 같은 여자의 상처를 보기 꺼려했다. 부정하고 피하려고만 했다. 그리고 피해자들은 그런 여자들로 인해 이중의 고통을 겪었다. 마치 자기의 잘못인양 부모의 눈치를 보고 친구에게 미안해하고 아이들을 볼 면목이 없다고 했으며 결국 직장을 그만두어야 했다. 세상은 여전히 자신의 몸을 지키지 못한 여자들에게 가혹하다. 남성은 물론 여성까지 곱지 않은 시선으로 피해 여성들을 바라보며 마음에 상처를 준다.

 

여자를 어렵게 만드는 건 뭘까? 근본적으로는 동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남자들이 주된 원인일 것이다. 최근 몇 권의 페미니즘 책을 읽으면서 느낀 건 남자들뿐만 아니라 여자들 또한 여자들을 어렵게 하고 있다는 거다. 어쩌면 같은 여자들끼리 주고받는 상처가 더 크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오래전부터 남성 중심으로 돌아가는 사회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건 분명 쉽지 않은 일이다. 여자들 없이는 이리 오랫동안 세대를 이어오지 못했을 거였으면서도 남자들은 여자들과 함께 제대로 살아갈 방법을 여전히 모르고 있는 듯하다. 함께 사는 법을 모르는 이기적인 남자들을 위해 어렵고 힘들더라도 여자들이 조금씩 바꿔나가야 한다. 소설을 읽고 이런 당위적인 결론을 내게 되다니.. 역시 록산 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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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07 12: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7-07 12: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17-07-10 1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른 건 모르겠고,,,

하필이면 작가의 이름이 록샌 ‘게이‘라니요.

엉뚱하게도 역사가 피터 게이 샘이 떠올랐습니다.

설해목 2017-07-10 16:08   좋아요 0 | URL
필명은 아닌 것 같고.... 이 작가 삶이 평탄치만은 않으셨던 것 같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