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누이
싱고 지음 / 창비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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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 기분이 널을 타고 있다. 아닌 감정의 널뛰기는 꽤 오래전부터였다. 하루는커녕 몇 시간 만에 하늘과 가깝던 기분이 땅바닥에 붙어버리곤 한다. 기분이 나빠지는 데는 이유가 없다. 아니 이유가 너무 많다. 그런 기분을 끌어올리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기분의 추락에는 날개 따위 없이 급하강이다. 사십대 싱글의 마음이란 이런 걸까. 하루에도 몇 번씩 오르내리는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는 나날들. 변화와 안정 사이에서 의미 없는 줄타기를 하며 눈을 뜨고 눈을 감는 일상에서 위로를 받는 건 점점 적어져만 간다. 위로를 얻고자 데려온 책들 사이에서 오히려 길을 헤매고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들어온 밤이면 기분은 한없이 더 가라앉는다. 나만... 왜 나만... 뒷말을 채 잇지 못하고 울다 잠드는 날이 늘어간다.

 

이마

 

장판에 손톱으로

꾹 눌러놓은 자국 같은 게

마음이라면

거기 들어가 눕고 싶었다

 

요를 덮고

한 사흘만

조용히 앓다가

 

밥물이 알맞나

손등으로 물금을 재러

일어나서 부엌으로

 

- 신미나 시, 시집 싱고, 라고 불렀다』     

 

혼자서 조용히 앓다가 아무렇지 않게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는 시간이 한 사흘쯤이면 되는 그때로 가고 싶다. 그 때가 과거에 있든 미래에 있든 그 곳으로 훌쩍 건너가고 싶다. 그 곳에서 내 손톱으로 눌러 패인 마음의 자리에 들어앉아 온전하게 나를 위로하고 싶다. 위로받고 싶다. 시 한편으로도 좋고, 내 처지 비슷한 누군가의 솔직한 글이라도 좋다. 가끔은 그렇게 글로 위로받고 싶다. 글로밖에 위로받을 수 없는 그런 마음이 있다.

 

싱고

 

십년 넘게 기르던 개가

돌아오지 않았을 때

나는 저무는 태양 속에 있었고

목이 마른 채로 한없는 길을 걸었다

그때부터 그 기분을 싱고,라 불렀다

 

싱고는 맛도 냄새도 없지만

물이나 그림자는 아니다

싱고가 뿔 달린 고양이나

수염난 뱀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적 있지만

아무래도 그건 싱고답지 않은 일

 

싱고는 너무 작아서

잘 알아보지 못할 때가 많다.

풍선껌처럼 심드렁하게 부풀다가

픽 터져서 벽을 타고 흐물흐물 흘러내린다

싱고는 몇 번이고 죽었다 살아난다

 

아버지가 화를 내면

싱고와 나는 아궁이 앞에 앉아

막대기로 재를 파헤쳐 은박지 조각을 골라냈다

그것은 은단껌을 싸고 있던 것이다

 

불에 타지 않는 것들을 생각한다

이상하게도

 

- 신미나 시, 시집 싱고, 라고 불렀다』     

 

신미나 시인의 <싱고>라는 시를 읽고서는 나 역시 나만의 싱고는 어떤 걸까를 생각한 적이 있다. 이미 나와 늘 함께해 왔지만 싱고와 같은 이름을 붙여주지 못한 어떤 기분. 그 기분을 요근래 자주 들여다봤다. 싱고(신미나 시인)가 쓰고 그린 누이를 읽다보니 어느새 마음에서 일어나는 기분을 꼼꼼하게 살펴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싱고는 이런 기분을 이렇게 표현했구나, 싱고도 나랑 똑같은 기분을 느끼며 살고 있구나, 싱고가 지금쯤은 다이어트에 성공 했으려나, ‘쌀가루 같은 눈이 오는 어느 겨울밤에 천천히 취할 수 있는 그런 가게에 싱고랑 나란히 앉아 술 한 잔 하고 싶다, 그건 그렇고 싱고에게 시마(詩魔)가 자주 찾아오면 좋겠다. 뭐 이런 말꼬리풍선들을 달면서 은근한 마음으로 읽었다.

 

내 기분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시, 내 일기장을 들여다보는 듯한 글, 내 생활을 그려놓은 듯한 그림들이 때로는 얼굴 마주보며 이야기하는 친구들과의 수다보다, 가족들의 말 한마디 보다 더 위로가 될 때가 있다. 생판 모르는 타인의 일상이 위로가 되는 그런 기분이 있다. 롤러코스터를 타는 요즘 내 기분을 달래주는 건 싱고의 누이2B의 웹툰 <퀴퀴한 일기>. 비슷한 또래 동성의 이야기에서 받는 성급하지 않은 위로. 그저 그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가벼워진다. 안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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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17-06-21 03: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싱고, 맨 앞에 조금 보고 개 이름인가 했습니다 확실하게 말하기 어려운 기분인가 싶네요 저도 그런 걸 느낄 때 있군요 어떻게 하면 나아질까 생각하기도 하는데, 나아지는 방법은 없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럴 때도 있지, 할 때가 많습니다 이런 생각을 한 건 아니고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마음을 억지로 바꾸려 하기보다 그냥 내버려둘 때도 있어야겠죠


희선

설해목 2017-06-21 08:48   좋아요 2 | URL
이름을 붙이면 낯설고 부정적인 기분도 친해질 수 있는 것같아요.
싱고 같은 이쁜 이름을 붙여주기위해서라도 제 기분을 잘 들여다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