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과 정의 - 대법원의 논쟁으로 한국사회를 보다
김영란 지음 / 창비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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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사무실에서 일하면서 요 몇 년 동안 대법원을 적어도 한 달에 서너 번은 방문했었다. 대법원 내에 있는 우체국 출장소나 은행을 방문하는 일도 잦았고 국선으로 맡게 된 형사사건의 기록을 복사하거나 서류를 제출하러도 자주 갔었다. 몇 년 동안 자주 대법원을 다니면서도 건물 내부 깊숙이까지 가본 건 딱 한번이었다. 민원실의 반대편에 있는 매점에 가기 위해서였는데 그때 긴 복도를 따라 벽에 걸린 역대 대법원장들의 초상화를 본 적이 있다. 잠시 초상화들 앞에 서서 했던 생각은 어쩌면 이들이 우리나라를 망쳐놓은 장본인일 수도 있지 않을까 였다. 대법원에 걸린 초상화의 주인공들이 법이라는 무기를 가지고 자신들과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만을 챙겨온 자들이란 의심을 쉬이 거둘 수 없다. 대법원을 신뢰할 수 없게 만드는 사건들이 여럿 떠오르지만 특히나 4대강 사업에 대한 집행정지 신청을 기각한 대법원 판결은 두고두고 대법원을 원망하는 계기가 되었다.

 

정치적 판결이 다루는 문제는 대법원의 전원합의체가 판단하기에는 너무나 정치적이고 정책적이어서 민주적 공론의 장에서 깊이 있게 토론되도록 하는 길을 찾아야 하는 문제들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는 4대강 사업에 대한 집행정지신청에 대하여 결국 기각결정을 내렸고 그렇게 시행된 4대강 사업의 결과는 처참했다. 보를 설치한 강들에서는 녹조현상과 악취가 풍겼고 올라간 수위로 인해 주위 나무들이 죽어나갔으며 큰빗이끼벌레가 강들에서 심심치 않게 발견됐다. 이렇게 환경이 파괴되기 시작하면 그 이전으로 되돌리기가 쉽지 않다는 건 상식의 문제임에도 대법원에서는 4대강 사업을 추진하는데 법적인 힘을 실어주었다. 물론 다음과 같은 반대의견도 있었다.

 

반면 박시환·김지형·이홍훈·전수안 대법관은 "이 사건 하천공사시행계획 등 각 처분은 상위 계획인 수자원 장기종합계획이나 유역 종합 치수계획의 범위를 벗어났다고 볼 여지가 많은 점, 국가재정법령의 예비타당성 조사를 실시하지 않은 점 등 4대강 사업의 효율성에 대한 검토를 결여했다고 볼 여지가 많은 점, 환경영향평가서 중 수질부분은 부실하다고 볼 여지가 많은 점 등을 종합할 때 행정계획결정으로서 공익과 사익, 공익 상호 간 등의 이익형량에 흠이 있다고 볼 여지가 많다"라고 지적했다.

 

이들 대법관은 그러면서 "이에 더해 정부의 예측이 빗나가 4대강 사업으로 수질오염 등이 발생할 경우, 신청인들의 생명이나 건강이 침해될 것이고 이러한 피해는 금전으로 보상할 수 없는 점, 일단 수질이 오염되는 등 자연환경이 훼손되면 이를 회복하기가 극히 어려울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종합하면 4대강 사업의 효력을 정지시키는 것이 타당하다"라고 반대의견을 냈다.

 

정치적인 쟁점들은 반대로 생각하는 사람을 심의를 통해 설득하기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정치적인 쟁점에 대해서는 대법원에서의 논의구조 또한 심의모델이 아닌 표결모델이다.

 

같은 자리에 앉았어도 4대강 사업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그리고 그 여파가 어떨지에 대해 심사숙고한 대법관들이 있었음에도 단지 표결에 밀려 기각 결정이 났고 그 결과 지금 이런 심각한 환경파괴가 발생하게 되었는데, 대법원은 이 환경파괴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는 대법원에서 가장 큰 책임을 져야한다고 생각한다. 돈에 눈이 먼 대통령과 역시 돈에 환장한 한통속인 무리들을 저지할 수 있는, 그리하여 자연환경을 지켜낼 수 있는 최후의 보루가 바로 법원이었는데 법원은 결국 돌이킬 수 없는 결정을 내려버린 것이다. 그야말로 몇 명 대법관의 결정에 의해 강들은 오염이 되었고 그 주위 환경은 파괴가 되어 지역 주민들에게까지 피해를 주고 있다. 마음 같아서는 저런 어리석은(혹은 자신의 이익에 부합하는) 결정을 내린 대법관들을 4대강 근처로 유배시키는 벌을 주고 싶다. 매일 악취를 맡고 녹조만 쳐다보며 남은 생을 보내야 하는 벌이 내려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대법원의 판결이 이렇듯 환경을 파괴할 수 있는 힘까지 가졌다고 생각하면 정말이지 온 국민의 시선이 대법원을 늘 주시하고 있어야 하는 게 당연한 것 같지만 실상은 국민들과 가장 거리가 먼 곳이 바로 대법원이란 조직이다. 법률심만으로 판결을 하다 보니 사실심으로 판결하는 지방법원이나 고등법원과는 다르게 당사자들이 대법원을 직접 찾아갈 일은 없다. 심지어 변호사들조차 갈 일이 없다. 결국 대법원에 근무하는 판사(연구관)들은 기록으로 편철된 서류만을 가지고 자기들(혹은 자기편)의 입맛에 맞게 요리조리 결론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라도 더욱더 감시의 눈길이 필요한 조직이 바로 대법원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정말 그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조직이 또한 대법원이 아닌가 싶다.

 

대법원까지 오는 많은 사건이 견해가 엇갈리는 사건이기는 하지만 한 연구관이 양쪽의 견해를 뒷받침하는 논리를 다 개발한다거나, 한 연구관이 도저히 쓸 수 없다는 반대 견해가 다른 연구관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광경은 대법원 판례에 따라 재판하는 사실심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것이었다. 유난히 반대쪽 견해를 대법관의 지시에 따라 잘 만들어내는 연구관도 있었고, 자신의 견해가 대법관에 의해 채택되지 않은 점을 유독 납득하지 못하는 연구관도 있었다. 같은 연구조 내에서 악마의 대변인의 역할을 자처하며 반대의 논리를 제시해주는 연구관도 있었다. 법적 판단은 과학적 사고와 달라서 대법관의 추가보고 지시에 따라 정반대의 논리를 전개하는 보고서가 얼마든지 만들어지기도 한다는 것은 충격적이었다. 10년의 판사생활 동안 사건에는 정답이 있고 판결은 선택이 아니다라고 생각해왔는데 대법원에 와보니 판결은 선택이 되기도 했다. 너무 늦은 깨달음이었는지는 몰라도 그 충격과 그에 따른 두려움은 더 컸던 것 같다. 그로부터 10여 년 후 대법관으로 재직할 동안에도 그 두려움은 줄어들지 않았다.

 

저자처럼 자신이 내리는 판결의 무게로 인해 늘 두려움과 신중함으로 법관이라는 직업을 수행하는 법조인이 몇 명이나 될까. 분명 저자 같은 법관이 더 많을 것이다. 아니 더 많다고 믿고 싶다.

 

이 책에 실린 대법원의 판결들 대부분이 가슴을 답답하게 만들었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나 읽으면서 마음이 무거웠던 판결이 있었다. 하나는 철도노조의 파업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고 다른 하나는 삼성 엑스파일 사건과 관련하여 고 노회찬 의원에게 내려진 판결이다. 전자의 판결은 법으로 헌법에서 보장하는 노동자의 기본권을 옥죌 수도 그리하여 노동자들의 삶을 좌지우지 할 수 있다는 점에서 후자의 판결은 하나의 판결이 결국에는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어 놓을 수도 있다는 점에서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대법원은 피고(철도노조)의 불법 쟁의행위로 인하여 원고(한국철도공사)측에게 발생한 운수수입 결손금과 대체인력 투입비용을 합산한 후 같은 원인으로 절감된 인건비, 연료비, 기타 필요비용을 공제하는 방식으로 피고의 불법 쟁의행위와 상당인과관계 있는 손해를 인정한 원심의 판단이 옳다고 했다.

심지어 대법원은 원고와 피고의 합의가 있어도 손해배상을 명할 수 있다고 했다. …… 통상임금 판결에서는 합의가 강행규정을 위반한 경우에도 효력이 있다고 하면서 파업으로 인한 손해배상 사건에서는 책임의 최소화를 위하여 노력하기로한 합의가 손해배상책임의 유무를 인정하는 데에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하여 통상임금의 경우와는 노사 간 합의를 다르게 적용하고 있다.

 

이 판결은 같은 내용을 가지고도 법관들이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판결을 내릴 수도 있다는 걸 보여준다 하겠다. 같은 합의를 가지고도 저렇듯 정반대로 자기의 입맛에 맞게 가져다 쓸 수 있는 곳이 바로 법원이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정문에는 자신의 키보다 큰 플래카드를 손에 들고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사람들을 자주 본다. 그들의 플래카드에 쓰여 있는 상대방측은 대부분 기업이다. 그중 요근래 자주 보게 되는 분이 있는데 하나뿐인 아파트를 건설사에서 빼앗아 갔다며 호소하는 연세 지긋한 어르신이다. 예전에는 저런 분들 보면 저리 억울해하셔도 법원에서 알아서 잘 판단했겠지 하며 별 생각 없이 그냥 지나쳤는데 지금은 좀 다르다. 특히나 개인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상대방이 대기업이나 회사일 경우에는 어쩌면 정말 억울한 사정일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을 좀처럼 지울 수 없다. 언제부터인가 법은 약자의 편이라는 말을 거의 들을 수 없게 된 건 결국 법을 다루는 법관들의 책임은 아닐런지...

 

사회상규, 사회윤리, 사회통념, 신의성실, 공익, 중대한, 현저한, 비상한, 상당한, 막대한, 심대한, 선량한, 전격적, 특별한, 일반화.... 단어만 놓고 보면 추상적이고 어딘가 막연하고 뜬구름 잡는 것 같은 이 단어들이 판결문에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실제로 이 단어들은 판결을 이야기하는 이 책에서 뽑아낸 단어들이다. 결국 저런 단어들을 앞세워 법관들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인, 한마디로 자기 입맛대로 혹은 자기 이익대로 판결을 내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기준이 모호한 저 단어들이 얼마나 무섭고 살벌한 무기가 될 수 있는지 이 책을 읽으며 새삼 느꼈다.

 

조금 전에 본 드라마에서 판사 출신의 기업가가 재판 거래를 하기 위해 만난 현직 판사에게 이런 말을 했다. 사법부의 권위는 사법부가 만든다. 재심을 받아주는 순간 법원은 누추한 과거에 발목을 잡힌다.’ 저 대사가 우리나라 사법부의 현주소를 제대로 말해주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 비단 나뿐일까. 마지막으로 대법원의 과거사 청산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옮겨본다.

 

이렇듯 과거사 청산을 위해 국회가 내린 입법적 결단과 무관하게 내려진 대법원의 판결들은 과거사 정리의 특수성을 제대로 고려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대법원의 이러한 판결은 모두 이용훈 대법원장이 처음부터 제시했던 테두리, 사법권의 독립법적안정성이라는 가치를 지키는 선에서 내려졌기 때문일까. 기존의 가치, 즉 과거로부터 고착되어온 가치만을 우선적으로 고려함으로써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고 또한 그러한 과거의 잘못을 답습하지 않겠다는 과거사 청산의 본질이 잊힌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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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18 00: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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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18 10: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19-10-18 19: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welcome back !

설해목 2019-10-19 12:39   좋아요 1 | URL
ㅎㅎ;;; 새직장 적응이 쉽지 않네요. 이직도 젊어서나 해야하는 것인가 뭐 요즘 그런 생각만 그득합니다. ㅋㅋ

2019-10-19 14: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0-20 14: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0-21 11:2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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