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 살의 여름
이윤희 지음 / 창비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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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998년 해원이는 국민학교 6학년에 재학중이다. 아버지가 일하고 계신 지방의 한 바닷가로 여름휴가를 갔다가 우연히 그곳에서 같은반 친구 유산호를 만난다. 바람에 날려간 해원의 모자를 산호가 주워주며 두 사람은 여름 방학의 한때를 같은 장소에서 보낸 추억을 갖게 된다. 한편 해원에게는 교환일기를 쓰고 바꿔 읽는 단짝친구 권진아가 있다. 휴가지에서 산호를 만났다는 말에 진아는 4학년때 같은 반이었던 산호를 안다며 그때 산호가 자기를 좋아했다고 말한다. 그 말이 해원의 가슴에 어떤 파문을 일으킨다. 개학날 짝을 정하라는 담임의 말에 따라 남학생들이 먼저 앉고 싶은 짝을 정하게 되고 백우진은 해원이를 짝으로 선택한다. 해원이는 산호가 신경이 쓰이고 우진이를 짝사랑하던 친구와 그 패거리들은 해원이에게 안좋은 감정을 드러낸다. 귀신이 나온다는 폐가를 찾았다가 우연히 해원은 산호를 만나고 산호의 과거를 알게 된다. 우진은 해원이 산호를 좋아한다는 걸 눈치 챈다. 해원에게 전하는 러브레터를 해원의 책상 서랍에 넣어두지만 끝내 해원에게 닿지 못한다. 대신에 해원은 같이 폐가에 있는 길고양이를 보러가자는 산호의 쪽지를 보게 된다. 학교에서 이런 일들은 겪는 중에 해원의 집에도 변화가 찾아온다. 아버지가 실직을 하고 어머니가 일을 나가게 되었다. 좋아서 다니던 피아노 학원도 연말 연주회를 마치고 그만 두기로 한다. 국민학교와 영원히 작별해야 하는 해원과 산호는 열세 살을 어떻게 마무리 짓게 될까.

 

왜 열세 살의 여름일까를 생각해봤다. 국민학교 6년의 생활을 마무리 하고 중학교라는 전혀 다른 세계로 넘어가게 되는 그 나이가 인생에서 좀 특별한 변화의 시기이기 때문에 저자는 열세 살이란 나이를 선택한 건 아닐까. 그나마 공부에 대한 압박감을 좀 덜 느끼며 친구들과 마음껏 놀 수 있던 시기의 마지막이자 경쟁보다는 어울림이 자연스럽고 사랑과 우정이라는 감정에 눈을 뜨게 되는 나이 열세 살. 그런 나이에 해원은 여름날의 소중한 추억을 갖게 되었다. 산호와의 만남이 계속해서 이어질 거라는 순진한 희망을 하지는 않겠다. 그보다는 영화 <초속 5센티미터>처럼 현실적인 결과를 맞을 확률이 크다. 그럼에도 첫사랑에 대한 추억을 간직한 채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게 된다면 마음의 흔들림이 좀 덜하지 않을까 싶다.

 

이 만화를 보면서 문득문득 삼십 년 전의 나를 떠올려보곤 했다. 시골에서 국민학교 6학년에 다니던 나는 활달하고 장난기도 많았던 것 같다. 해원과는 다르게 싫어하는 친구들과는 싸우기도 하고 남자아이들의 괴롭힘에도 끝까지 맞섰다. 그때 좋아하던 남자아이가 있었던가? 지금은 전혀 떠오르는 이름이 없다. 시내가 아닌 변두리에 살며 가난했던 나는 남자아이들에게 인기가 없었고 나 역시 그 사실을 알기에 굳이 누구를 좋아해서 상처받는 걸 두려워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런 비겁한 마음이 삼십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하다. 사람의 기질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되었다고나 할까.

 

국민학교를 배경으로 한 글이라서 일까 읽다가 추억에 빠져들기도 했다. 예를 들면 왁스를 발라 나무마루 바닥을 마른 걸레로 열심히 박박 닦던 추억같은. 토요일만 되면 집에서 헌 수건으로 만들어온 걸레를 들고 일렬로 무릎 꿇고 엎드려 왁스가 발라진 복도 마루바닥을 닦던 기억이 아주 선명하게 떠올랐다. 왁스 대신 양초를 사용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 당시 청소당번 때문에 아이들 사이에서 문제가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선생의 편애를 알 수 있는 계기이기도 했던 것 같다. 그런가하면 집이 좀 넉넉해서 피아노학원을 다니던 친구들이 있었는데 나는 그 애들을 정말 많이 부러워했었다. 속으로는 부러워했으나 겉으로는 그 친구들과 어울리는 걸 일부러 멀리했었다. 국민학교 때는 피아노 학원을 다니는 아이들과 그러지 못하는 아이들로 자연스레 패거리나 나뉘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것은 정말 아무 것도 아닌데... 그 당시에는 왜 그런 것들이 나를 주눅 들고 날 서게 했던지... 지금에 와 되돌아보니 아마도 그 당시 나는 그런 식으로 사춘기를 지나가고 있었던 것 같다.

 

이 만화가 나와 같은 시대의 추억을 공유하고 있어서도 재밌었지만 정겨운 그림체 때문에 더 빨려들어가 읽었다. 화려하기 보다는 단순한 그림체가 뭐랄까 꼭 해원과 산호 같다고나 할까. 수줍고 호기심 많고 쉽게 감정에 흔들리면서도 그런 감정을 잘 드러내지 못하는 순진한 열세 살을 마음을 나타나기에 안성맞춤인 그런 그림체이다. 보고 있으면 복잡하게 엉켰던 머릿속이 선 몇 가닥으로 풀어지는 그런 느낌이랄까. 요즘이 아닌 90년대를 표현하기에 참 알맞은 그림체란 생각이 든다.

 

곧 여름휴가를 맞아 바다가 있는 고향으로 내려간다. 지금까지 휴가지는 한 번도 변한 적이 없다. 내가 어렸을 때는 한 번은 친가쪽 친척들과 모여 바다에서 놀았고 한 번은 외가쪽 친척들과 모여 물놀이를 했다. 어른이 되어서는 우리 가족끼리 휴가를 보냈고 여동생이 결혼을 하고 조카들이 생기면서는 동생네 가족과 함께 여름휴가를 보냈다. 이제 11살이 된 조카 은 역시 평생 아니 은이는 엄마 뱃속에 있을 때조차 여름휴가지는 늘 외갓집이었다. 사춘기가 시작된 조카 은에게 이번 여름방학은 물론 앞으로의 여름방학에 좋은 추억을 만들어주고 싶은데 내가 무얼 해줄 수 있을까. 엄마 다음으로 가까운 사이가 이모라는데 서먹해져만 가는 나와 은의 사이를 좁혀보고 싶은데 답을 모르겠다.

 

조카에게도 해원과 같은 첫사랑이 찾아올 테고 그런 비밀스런 감정들을 나눌 진아 같은 친구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아무것도 모른 채 내가 겪어야 했던 미묘한 감정의 소용돌이들을 조카도 겪어야 할 테지만 그래도 좀 더 수월하게 힘들지 않게 상처받는 일 없이 그 시기를 지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엄마가 없으니 분명 어쩔 수 없는 결핍감을 느끼며 사춘기를 보내게 될 조카가 그저 무탈하게 덜 아프게 그 시기를 지나가길 바랄 뿐이다.

 

P.S. 이 리뷰를 한글문서에서 작성하였는데 국민학교라고 치면 자꾸만 초등학교로 자동 전환이 된다. 어느새 국민학교는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린 느낌을 한글문서가 깨우쳐주는 느낌적 느낌이랄까. 뭔가 내가 아주 오래 된 사람 같기도 하고...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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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07-29 13: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초등학교...
저도 한글로 작성하니 바로 국.민.학.교.
에서 바뀌네요 그것 참. 달라진 세상 풍경
의 하나인가 봅니다.

어른이는 나이가 들어도 어린 시절에 쌓인
경험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게 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설해목 2019-07-29 15:13   좋아요 0 | URL
자꾸만 자동변환되는 국민학교를 보면서 정말 세상 참 많이 바뀌었구나 싶었네요. ㅋㅋ
그래서 어린 시절의 경험이 중요하다 싶기도 하네요.
몸만 자랐지 마음도 정신도 잘 자라지 못한 어린이네요. --;;

hnine 2019-07-29 16: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설해목님은 어디서 이렇게 숨은 보물같은 책들을 찾아다 보여주시는지.
창비에서 만화책도 나오는군요.
저 국민학교 6학년 기억속에는 키가 큰 애들과 작은 애들로 나뉘었던 것 같아요. 큰 애들은 주로 큰 애들끼리 다니고, 작은 애들은 작은 애들끼리. 저는 물론 작은 애 그룹이라서 큰 애들을 보면 괜히 주눅들고 그랬지요.

저 이 책도 봐야겠어요.

설해목 2019-07-29 17:54   좋아요 0 | URL
사춘기 시작한 조카한테 줄 책 고르다가 이 책을 찜했고 마침 출판사에서 서평단을 하기에 신청했더니 운좋게도 당첨이 되어서 읽게 되었네요. ^^
정말 국민학교때는 참 여러 이유로 끼리끼리 몰려다녔던 것 같아요.
창비에서 의외로 좋은 만화책들이 나오더라구요. 저는 최규석씨 만화를 통해 창비 만화책을 알게 되었네요.

카알벨루치 2019-11-07 18: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난 이거 빌려서 쓰윽 읽었네요 우리 딸이 잼나게 읽더군요 ㅎㅎ

설해목 2019-11-07 20:15   좋아요 1 | URL
따님의 취향이 저의 취향과 비슷한가 보네요. ^^
요런 은근한 감동 좋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