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1. 2시 공연으로 <뮤지컬 니진스키>를 봤다. 몇 년 전 니진스키 영혼의 절규를 어렵게 진빠지게 읽었던 터라 그 이름만은 잊지 않고 있었다. 친구 역시 나에게서 선물받은 이 책 때문이었을까 이 공연 광고를 보자마자 예매를 해두고는 함께 가자고 하여 주말 첫 공연을 보게된 거다. 대학로에 있는 아트원시어터 공연장은 다른 소극장들에 비해 규모가 좀 있어 보였다. 지하 공연장으로 가서 앉았는데 만석은 아니고 드문드문 빈자리들이 눈에 띄었다. 역시 뮤지컬은 여자들의 취미인가 싶게 이날 공연을 보러온 남자는 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적었다. 무대는 뮤지컬 무대치고는 다소 소박해 보였다. 시작 되고 105분을 쉬는 시간 없이 공연이 이어졌다.

 

뮤지컬에는 총 5명의 인물이 나온다. 니진스키, 디아길레프, 스트라빈스키, 로몰라. 그리고 니진스키의 또다른 분신 역할과 기자 역할을 동시에 했던 한스까지. 단출한 출연진 때문인지 니진스키의 일대기가 매우 압축되어 있다. 러시아 발레단에서 춤추던 니진스키를 눈여겨본 공연기획자 디아길레프는 니진스키를 더 큰 무대인 프랑스로 데려온다. 디아길레프가 만든 발레뤼스에서 니진스키는 스트라빈스키라는 음악가와 협업한 작품인 <페트루슈카>에 출연하여 대성공을 거둔다. 그리고 그곳에서 로몰라라는 헝가리 귀족 아가씨를 만났다. 상업적인 성공에 관심이 많은 디아길레프와 새로움을 추구하던 니진스키는 마찰을 빚게 된다. 무용가로서는 영원히 자신의 이름을 남길 수 없다고 생각한 니진스키는 자신이 직접 안무를 한 작품을 만들기를 원하고 디아길레프도 안무가로서의 니진스키를 지지해주었건만 니진스키가 안무한 작품인 <봄의 제전>은 사람들에게 외면 받는다. 이 일로 두 사람은 멀어지고 니진스키는 자신을 이해해주는 로몰라와 결혼을 한다. 하지만 자신의 이름으로 무용단을 창단하려던 것이 무산되고 자신이 안무한 작품들이 외면 받는 등의 이유로 니진스키는 정신질환으로 병원에서 요양을 하게 된다. <뮤지컬 니진스키>의 내용은 니진스키의 삶을 이 정도로만 압축하여 보여준다. 파란만장했던 니진스키의 일대기가 너무 평면적이어서 니진스키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그냥 한 편의 드라마로 볼 수도 있겠으나 좀 더 자세하게 니진스키의 삶을 아는 사람이 보면 공연이 니진스키의 삶을 너무 단적으로 보여주고, 어쨌든 공연을 위해 디테일한 부분을 쳐내다보니 사실과도 어긋나는 내용이 있어 몰입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을 것 같다.

 

무대는, 조형물을 움직이는 변형 없이 조명을 달리하고 배경에 영상을 띄워서 그때그때 화면 전환을 하여 화려한 맛은 없다. 그리고 음악이 좀 많이 아쉽다. 그래도 끝나고 나면 기억에 남는 음악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하는데 이번 경우에는 모든 음악들이 내용 전달을 위해 만들어져서일까 인상적으로 남는 음악이 전무하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만 배우들의 노래실력이 좋아서 음악의 아쉬움을 좀 달래주는 정도. 그렇다고 춤의 신 니진스키의 일대기를 그린 뮤지컬이라 하여 제법 그럴듯한 발레를 볼 수 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한마디로 무대, 음악, 춤 모두가 뭔가 조금씩 부족하여 전체적으로는 인상에 잘 남지 않는 공연이랄까. 아무튼 나는 그렇게 봤다.  오히려 뮤지컬을 보고나서 나중에 정식으로 발레공연을 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뮤지컬 니진스키> 공연을 기념하기 위해 가져갔던 <니진스키 영혼의 절규>를 집에 와서 잠시 펼쳐보았다. 공연에 나왔던 인물들의 사진들을 다시 보고 띄엄띄엄 니진스키의 일기를 읽었다. 여기에는 니진스키가 디아길레프에게 쓴 편지를 옮겨본다. 편지의 내용만 보도라도 니진스키에게 디아길레프가 어떤 존재인지를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고....

 

편지 8

세르게이 디아길레프에게

 

사람에게

 

나는 당신을 이름으로 부를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당신의 이름으로 불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나는 성급하게 쓰고 있지 않습니다. 당신이 나를 신경과민이라 생각하는 걸 원치 않으니까요. 나는 과민한 사람이 아닙니다. 나는 침착하게 쓸 수 있습니다. 나는 쓰는 걸 좋아합니다. 나는 세련된 문장을 쓰는 걸 좋아하지 않습니다. 세련된 문장을 쓰는 걸 결코 배우지 않았답니다. 나는 사상을 기술하고 싶은 겁니다. 내겐 사상이 필요합니다. 나는 당신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나를 미워한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나는 당신을 한 인간으로서 사랑합니다. 나는 당신과 함께 일하고 싶지 않습니다. 한 가지 사실을 당신에게 말하고 싶군요. 나는 많은 일을 한다는 것을. 나는 죽지 않았습니다. 나는 살아 있습니다. 내 속에는 신이 살고 있습니다. 나는 신 안에 살고요. 신은 나의 속에서 삽니다. 나는 춤에 관한 작업으로 매우 바쁩니다. 나의 춤은 진보하고 있습니다. 나는 잘 쓰긴 하지만 어떻게 세련된 문장을 써야 할지는 모릅니다. 당신은 세련된 문장을 좋아하지요. 당신은 공연단을 조직합니다. 나는 공연단을 조직하지 않습니다. 나는 시체가 아닙니다. 나는 살아있는 사람입니다. 당신은 죽은 사람입니다. 당신의 목표가 죽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당신을 친구라 부르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나의 적임을 알기 때문이지요. 나는 당신의 적이 아닙니다. 적은 신이 아니니까요. 신은 적이 아니고요. 적들은 죽음을 추구합니다. 나는 삶을 추구합니다. 나는 사랑을 지니고 있습니다. 당신은 악의를 지녔구요. 나는 포식동물이 아닙니다. 당신은 포식동물입니다. 포식동물은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나는 사람들을 좋아합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사람들을 좋아했지요. 나는 백치가 아닙니다. 나는 인간입니다. 나는 백치입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백치입니다. 당신은 나를 어리석다고 생각했지요. 나는 당신을 어리석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어리석다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나는 타락하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타락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당신에게 굴종하는 사람들을 좋아하지요. 나는 나에게 굴종하는 사람들을 좋아합니다. 당신은 굴종하는 사람들에게 욕설을 퍼붓지요. 나는 굴종하는 사람들을 좋아합니다. 나는 타락을 불러냅니다. 당신은 타락을 두려워합니다. 나의 타락은 한갓 타락입니다. 나는 당신의 미소를 원치 않습니다. 그건 죽음의 냄새를 풍기니까요. 나는 죽음이 아닙니다. 나는 미소하지 않습니다. 나는 웃기 위해 쓰지 않습니다. 나는 울기 위해서 씁니다. 나는 감정과 이성을 지닌 사람입니다. 당신은 지성은 지녔으나 감정이 없는 인간입니다. 당신의 감정은 사악합니다. 나의 감정은 선합니다. 당신은 나를 파멸시키고 싶지요. 나는 당신을 구제하고 싶습니다. 나는 당신을 좋아합니다. 당신은 나를 싫어하지요. 나는 당신의 안녕을 바랍니다. 당신은 내가 불행하기를 바랍니다. 나는 신경과민을 가장했더랬습니다. 나는 어리석은 척했었지요. 나는 어린애가 아니었습니다. 나는 신이었습니다. 나는 당신 안에 있는 신입니다. 당신은 짐승이지만 나는 사람입니다. 당신은 이제 사람들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나는 이제 사람들을 누구나 다 사랑합니다. 내가 듣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나는 당신의 것이 아닙니다. 당신은 나의 것이 아닙니다. 지금도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항상 당신을 사랑합니다. 나는 당신의 것입니다. 나는 나 자신의 것입니다. 당신은 나의 것입니다. 나는 타락하는 당신을 좋아합니다. 나는 타락하는 나 자신을 좋아합니다. 나는 당신의 것입니다. 나는 나 자신의 것입니다.

 

당신은 나의 것, 나는 신.

당신은 신의 존재를 잊었습니다.

나는 신의 존재를 잊었습니다.

당신은 나의 속에 있고 나는 당신 안에 있습니다.

당신은 나의 것, 나는 당신의 것입니다.

당신은 죽음을 원하는 사람

당신은 죽음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나는 사랑, 사랑, 사랑해요.

나는 사랑이지만 당신은 죽음입니다.

당신은 죽음을,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나는 사랑해요, 나는 사랑해요, 나는 사랑해요.

당신은 죽음이지만 나는 생명이오.

당신의 생명은 사랑이 아닙니다.

나는 당신을, 당신을 사랑해요.

나는 피가 아니요, 나는 정신입니다.

나는 당신 속의 피요, 정신입니다.

나는 사랑, 나는 사랑입니다.

당신은 나와 함께 살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나는 당신의 안녕을 바랍니다.

당신은 나의 것, 당신은 나의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4페이지 이상 더 계속되지만 거의 번역이 불가능한 언어 유희의 반복이라 여기서 생략한다. : 역자)

 

나는 당신에게 많은 것을 쓰고 싶지만, 당신과 함께 일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의 목표는 다른 것이니까요. 나는 당신이 어떻게 가장하는가를 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나는 가장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나는 다른 사람의 복리를 원할 때의 가장은 좋아합니다. 당신은 악의적인 사람입니다. 당신은 제왕이 아닙니다. 하지만 나는 왕입니다. 당신이 나의 왕이 아니라 내가 당신의 왕입니다. 당신은 내게 위해를 바라고, 나는 그렇지 않습니다. 당시는 악의에 찬 사람입니다. 하지만 나는 자장가를 불러주는 사람입니다. 로카바이, 바이, 바이, 바이. 평화롭게 자거라. 로카바이, 바이, 바이, 바이, 바이.

사람이 사람에게

 

바슬라프 니진스키.

 

 

 

 

 

 

 

 

 

 

 

=> 위 사진들은 책 <니진스키, 영혼의 절규>에 실린 사진들이며 책날개에 소개된 니진스키의 일대기이다. 

 

 

 

=> 요건 공연날 찍은 사진으로 공연 보는 재미도 있었지만 뭐니뭐니해도 친구와의 술 뒷풀이가 좋았더랬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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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9-06-05 17: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평범한 이들이 천재를 극화하는 것은 참 어려운 작업인 듯합니다. 그래서 천재이겠지만요. 니체, 베토벤 등과 같이 나진스키도 정신분열증으로 고생한 것을 보면 천재가 아닌 것이 다행입니다^^:)

설해목 2019-06-05 17:40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천재는 정말 남다른 점이 있어 천재인 것 같긴 해요. 머릿속으로는 온갖 것이 떠오르는데 현실은 그걸 표현할 수 없을 때, 혹은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그럴 때 천재는 무너지고 마는 것 같기도 하고....
저 역시 천재가 아니라 정말 다행입니다! ㅎㅎ

카알벨루치 2019-06-06 00: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아요!!! 뮤지컬도 보시고 고독사는 절대 안되겠는데요~멋집니다

설해목 2019-06-07 09:16   좋아요 1 | URL
ㅎㅎㅎ 고독사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좋은 관계를 잘 만들어가겠습니다!
비오는 금요일 아침~~ 굿모닝입니다. ^^

2019-06-23 17: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6-23 17: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6-23 17: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6-23 17: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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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23 17:5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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