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봄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12
최은미 지음 / 현대문학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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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지 않은 이 소설을 읽는 동안 많은 책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글을 쓰고 있는, 글을 쓰고자 하는 많은 여성 작가들이 떠올랐다. 오랜 역사 동안 남성에 비해 억압과 차별을 더 많이 받아온 여성은 분명 하고 싶은 말이, 바라는 욕망이, 변화시키고자 하는 의지가 남성보다 더 클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남성 위주의 시스템에 맞춰 살아야 하는 여성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걸 이 소설을 읽으며 새삼 깨닫게 되었다.

 

#글을 쓰는 여자

 

, 정수진은 직장을 다니면서 틈틈이 습작을 하고 철마다 응모를 하여서 10년 전에 등단을 하였다. 등단할 당시 예정에도 없던 임신으로 수진은 이미 만삭이었고 수순에 따라 결혼을 하고 터전을 잡고 아이를 낳아 기르며 살림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10년 동안 꾸준히 글을 쓰고 있지만 어떤 결과물도 내놓지 못한 상태다. 스물세 살에 정한 글쓰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한번도 버린 적 없지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살림을 하면서 그 정체성은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하고 스스로를 자책하게 만들고 그래서 자주 흔들린다.

 

나는 10년째 병에 걸려 있었다. 청탁을 받지 못하는 등단 작가라는 저주에, 아무도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는 울분에, 장편소설만 당선되면 이 모든 게 한 방에 해결될 수 있으리라는 희망 고문에, 그리고 양주에. _ p.18~19

 

앞 동에는 공부방이 있고, 나는 일주일에 두 번 거기서 중학생 아이들의 논술을 봐준다. 나머지 시간엔 노트북을 메고 소설을 쓰러 간다. 아무도 읽지 않는 소설을 쓰러 간다. 봄에는 나머지 시간'을 확보하는 게 특별히 어렵기 때문에 틈만 나면 무서운 집중력으로 쓴다. 아무도 읽지 않지만 언젠간 읽힐 수도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못하고 쓴다. 고문당하며 쓴다. _ p.27.~28.

 

하지만 나는 안다. 나를 가위눌리게 하는 진짜가 따로 있다는 걸, 나는 일하는 다른 엄마들처럼 경제활동을 하면서 이러고 사는 게 아니다. 다른 작가들처럼 원고료를 받고 책을 내고 사는 것도 아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_p.34

 

쉬면 죄책감이 들어 쉬지 않았다. 쉬지 않고 소설을 썼다. 나는 직장맘도 아닌데 돌 갓 지난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겼으니까. 아이의 평생 인성이 결정된다는 생후 3년이 지나기도 전에 아이를 떨어뜨려놓았으니까. 아이와 둘이 있는 게 힘들어서가 아니라, 그런 게 절대 아니라, 소설을 쓰려고 그런 거니까, 소설을 썼다. 기껏해야 소설을. 청탁받지 않은 소설을. 아무도 원하지 않는 소설을._p.63

 

글을 쓰면서 살겠다고 생각한 스물세 살 이후로 내 정체성은 언제나 글 쓰는 사람이었다. 그것 말고 다른 사람이고 싶었던 적이 없었다. 다른 사람이었던 적이 없었다. _p.136

 

수진은 경제적인 활동을 하지 않으면서도 아이와 살림에 전적으로 올인하지 못하는 자신 스스로에게 인색하다. 차라리 돈이라도 버는 직업을 가졌다면 아이와 살림에 소홀해도 가족에게도 사람들에게도 좀 더 떳떳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돈은 벌리지 않고 결과물은 내놓지 못한 채 생산적이지 않은 것 같은 글쓰기를 10년째 해오면서 주위 사람은 둘째 치고 수진 스스로가 자신감을 잃고 때로는 스스로를 자책하고 자신에게 분노한다. 이런 수진을 보고 있자니 자연스레 떠오르는 작가들이 있다.

 

즉 여성이 픽션을 쓰고자 한다면 돈과 자신만의 방을 가져야 한다는 말을 전하는 것뿐입니다. _ 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펭귄클래식) 중에서..

 

그보다 내게 더 큰 고통으로 남아 있는 것은 그 시절이 내게 심어놓은 공포와 쓰라림이라는 독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원하지 않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 꼭 필요한 것은 아닐 수도 있지만 필요한 것으로 보였던, 걸려 있는 돈이 워낙 중하기에 위험을 무릅쓸 수는 없는 그런 일을 마음에 없는 말을 해가가 비위를 맞추면서 노예처럼 일한다는 것, 그리고 별것 아니지만 소유자에게는 중요하고 세상에 드러내지 않으면 죽는 거나 마찬가지인 재능이 소멸하고 있다는 것, 나 자신, 나의 영혼과 더불어 소멸하고 있다는 생각, 이 모든 것들이 꽃피는 봄날을 갉아먹고 나무속을 파먹는 녹이 되어 갔습니다. _ 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펭귄클래식) 중에서..

 

책을 쓰는 사람은 언제나 주변 사람들과 분리되어야 한다. 그러니까, 고독해야 한다. 저자의 고독, 글의 고독. 자신을 둘러싼 침묵이 무엇인지 자문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집 안에서 한 걸음 옮길 때마다, 하루가 흘러가는 매시간, 밖에서 들어오는 빛이든 켜 놓은 전등 불빛이든 어느 빛에서나, 정말로 그래야 한다. 몸이 처한 그러한 실제의 고독, 그것은 침범할 수 없는 글의 고독이 된다. _ 마르그리트 뒤라스,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글 중에서..

 

절망을 버티며 쓰기. 아니, 절망을 품고 쓰기. 그 절망의 이름은 모르겠다. _ 마르그리트 뒤라스,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글 중에서..

 

수진이 등단을 했을 때, 뜻하지 않은 임신 대신 예정에 없던 결혼 대신 좀 더 글쓰기에 매진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면 10년 후의 수진은 스스로 작가라 자부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수진은 남편과 엄마에게서 벗어날 수만 있으면 무슨 짓이라도 할 거라고 말한다. 그만큼 가족이란 존재가 수진의 글쓰기에는 든든한 지원군이 아닌 방해꾼이다. 아이 역시 사랑스럽고 귀한 존재지만 때때로 글을 쓰는 수진을 힘들게 하는 존재이기는 마찬가지다. 아이가 자람에 따라 수진의 역할은 점점 늘어가고 그럴수록 글쓰는 데 써야할 시간과 열정과 집중이 줄어든다. 수진은 그런 상태로 10년째 글쓰기에 매달려 온 거다. 수진의 소설이 10년째 마무리 되지 못하는 건 어쩌면 이런 환경에서는 당연한 것일 수도... 그래서 지금이 중요하다. 자신의 정체성인 글쓰는 사람을 바꿔야 할지도 모르는 결정의 시간. 소설에서도 인생에서도 어떤 결론을 내려야 하는 시간. 더는 이렇게 수동적으로 살아갈 수 없는 최후의 시간. 수진은 자신의 삶에 터닝포인트가 될 그런 봄을 맞고 있다.

 

#무엇을 쓰려고 하는지

 

 

나는 양주 이야기를 10년째 쓰고 있었다. 한 이야기를 10년 동안 붙들고 있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지겹고 힘든 일이었다. 스스로의 능력이 의심스러워지는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선우 경사의 답변 속에서 어떤 단어들을 볼 때, 나는 그 단어 하나만 갖고도 양주 이야기를 바로 끝장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다른 소설도 얼마든지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_p.17~18

 

아빠는 그 길을 택했구나. 그 길로 간 것이구나. 그러면서 예감했다. 이제부터의 내 인생은 아빠가 한 선택과 아빠가 하지 않았을 수도 있는 선택, 그 둘 사이의 줄타기가 될 거라는 걸. 하루의 대부분을 자살하지 않기 위해 애써야 살 수 있을 거라는 것을. _p.91~92

 

수진은 등단을 한 이후로 10년째 한 가지 주제인 양주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있다. 양주는 수진이 태어나 자란 곳, 수진이 빨리 벗어나고 싶어 안달하게 만들던 곳. 지금 사는 곳에서 그리 멀지 않고 친정 엄마가 여전히 사는 곳, 수진이 다니던 여고 뒷산에서 아버지가 자살을 한 곳. 엄마의 친한 지인이 사라진 곳. 스물세 살 때 일어났던 일을, 그 당시의 수진을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 곳. 수진은 그런 양주에 대한 이야기를 10년째 쓰고 있다.

 

글쓰기는 누구에게도 할 수 없는 말을 아무에게도 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모두에게 하는 행위이다. 혹은 지금은 아무에게도 할 수 없는 이야기를, 훗날 독자가 될 수도 있는 누군가에게 하는 행위이다. 너무 민감하고 개인적이고 흐릿해서 평소에는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말하는 것조차 상상할 수 없는 이야기를. 가끔은 큰소리로 말해 보려 노력해 보기도 하지만, 입안에서만 우물거리던 그것을, 다른 이의 귀에 닿지 못했던 그 말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적어서 보여 줄 수 있음을 알게 된다. _ 리베카 솔닛, 멀고도 가까운 중에서

 

존재에 대한 결핍감이야말로 욕망의 원천이다. 결핍이 클수록 욕망도 커진다. 결핍에 대한 감각이 예민한 사람일수록 욕망에 대해서도 예민해진다. 내가 그런 사람이었던 것 같다. 객관적인 정황과 상관없이 나는 늘 무언가 결여되어 있다는 인식에 붙들려서 지냈다. _ 이승우, 소설을 살다 중에서..

 

자살한 아버지를 완벽하게 빼닮은 유일한 사람인 수진은 아버지의 선택을 이해하려 10년째 양주 이야기를 붙들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버지를 닮았으니 자신도 언제 어떤 상황에서 그런 선택을 하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 그래서 자신이 겪은 결핍과 공포를 자신의 딸이 겪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그 불안감을 떨쳐내기 위해서라도 수진은 이번에야말로 꼭 이야기를 마무리짓고 싶은 건지도...

 

하지만 그 이야기는 누구에게나 털어놓을 수 있는 그런 달달한 이야기가 아니다. 범죄에 대한 이야기이자 삐뚤어진 가족의 초상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픽션의 형태를 갖추고 있지만 수진 자신에게는 결코 완벽한 픽션일 수 없는 경험의 이야기이다. 그렇기에 더욱 수진은 10년 전 양주의 사건을 완벽한 픽션으로 둔갑시켜 모든 이들에게 털어놓고 새출발을 하고 싶은 욕망에 시달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사건을 모를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소설로 읽힘으로써 수진은 그제야 자신을 붙들고 놓아주지 않던 과거에서 놓이게 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테니까. 그럴 여지라고 생길 테니까.

 

#새로운 만남

 

나도 모르게 웃었다. 그러면 까맣고 예쁜 내 딸 윤소은이 다가와 엄마 웃어?’라고 물었다. 내가 웃었기 때문에 아이는 안도하는 표정으로 저녁 내내 잘 놀았다. 우리의 저녁은 즐거웠다. 남편이 회식이나 야근을 하면 나는 저녁 시간이 힘들었지만 이젠 덜 힘들었다. 이선우도 모르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남편도 모르고 친정 엄마도 모르고 하늘도 땅도 모르는 사이에, 이선우는 그렇게 18층 우리 집으로 들어와 내 아이를 웃게 하고 있었다. _p.80

 

수진은 양주 이야기를 마무리 짓기 위해 집근처 경찰서의 경찰을 만나게 된다. 이름은 이선우. 10년째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고여 있던 수진의 삶에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자신에게 꼬박꼬박 작가라고 말해주는 사람. 자신이 물어보면 성심껏 대답해 주는 사람. 그렇게 선우는 수진의 마음을 봄비처럼 촉촉하게 적시고 수진은 어느새 선우로 흠뻑 젖어버린 마음을 알아챈다.

 

이제껏 함께한 적이 없었던 두 사람을 함께하게 해보라. 때로는 세상이 변할 때도 있지만, 그러지 않을 때도 있다. 그들은 추락해 불에 타오를지도 모른다. 혹은 타올라서 추락하거나. 그러나 때로, 새로운 일이 벌어지면서 세상이 변하기도 한다. 나란히 함께 그 최초의 환희에 잠겨 몸이 떠오르는 그 최초의 가공할 감각을 만끽할 때, 그들은 각각의 개체였을 때보다 더 위대하다. 함께할 때 그들은 더 멀리, 그리고 더 선명하게 본다. _ 줄리언 반스,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중에서..

 

서른아홉 수진의 봄에 한 남자가 걸어 들어왔다. ‘그래도 아직은자신을 여자로 생각할 수 있을 때, 자존감이 완전히 무너져 내리지는 않은 그때 선우를 만났다. 선우를 통해 글쓰는 사람이라는 정체성도 여자라는 정체성도 더욱 또렷하게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선우를 향한 마음이 커갈수록, 선우의 마음을 알아갈수록 또 다른 고민 역시 생겨났다. 수진은 선우와의 만남을 어떻게 마무리 지을까. 소설에서는 명확히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건, 새로운 사람과 함께한 그 봄날의 만남이 마흔살을 맞은 수진을 다른 사람으로 바꿔놓았다는 사실이다.

 

#최은미작가의 결

 

흙이 사람이 되기 위해 신의 숨결이 필요했던 것처럼 일상이나 현실이 소설이 되기 위해서도 작가의 숨결이 필요하다. 일상이나 현실에 당신의 숨결을 불어넣어야 한다. 말하자면 당신만의 시각, 당신만의 욕망이나 해석. 그런 것들에 의해 너무나 익숙하고 낯익어서 구질구질하기까지 한 우리들의 일상은 돌연 낯설게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낯익은 일상을 낯설게 만들어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당신은 소설이라는 걸 썼다고 할 수 있다. _ 이승우, 당신은 이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중에서..

 

이 소설을 포함해 올해 최은미의 소설들을 모두 읽었다. 단편집 2권과 장편소설 그리고 이 소설까지. 스릴마저 느껴지는 탄탄한 서사의 장편소설에 감탄해서 읽은 작가의 단편소설들은 내가 읽은 요즘 작가들과는 확실히 결이 달랐다. 단편임에도 서사가 풍부하고 그야말로 이야기다운 이야기였다. 그리고 이번에 읽은 중편 분량의 소설에서는 또 다른 작가의 결을 느낄 수 있었다. 너무나 익숙한 풍경이나 일상 너머를 집요하게 파고들어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끝내 밀어붙이는 힘. 예를 들면 이런 문장들이 최은미만의 결을 생각하게 했다.

 

젊은 할머니, 내 친정 엄마처럼 젊은 할머니로 보인다. 나는 저 여자가 업고 있는 아이의 엄마일 다른 여자에게 잠시 부러움을 느낀다. 손주를 봐줄 수 있다는 건 생계를 위해 직접 뛰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고 그건 아직 남편과 살고 있다는 얘기라고, 저 나이가 되도록 큰 탈 없이 가정을 유지했다는 얘기라고, 저 여자의 딸일 아이 엄마는 온전한 가정에서 자랐으며 때문에 아이도 잘 키울 거라고, 나는 혼이 나간 젊은 할머니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한다. _ p.37~38

 

나는 아이를 보며 내 엄마 아빠의 결혼 생활을 보았고 엄마가 나에게 했던 분풀이와 탄식을 다시 들었다. 아이는 때때로 내 지난 시간을 들추기 위해 보내진 심판관처럼 느껴졌다. 나는 내 안에서 들끓는 욕들을 아이가 알아챌까봐 겁이 났고 내가 묻어둔 기억들이 아이에게 이식될까봐 두려웠다. 나라는 인간을 형성해온 것들을 완전히 떼어두고 아이를 대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깨달을 때마다 벌을 받는 것 같았다. _p.56~57

 

이 소설은 열린 결말이다. 아직 한 권의 책도 내지 못한 아이를 둔 마흔의 기혼 여성이 어떻게 자신의 글쓰기를 이어갈지 그에 대한 결론은 독자의 몫이다. 그리고 이 소설이 또 재미난 건 추리적인 요소에 있다. 작가가 흘려주는 힌트들을 꿰맞추다 보면 양주에서 발생한 사건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할 수 있다. 이 소설은 최은미가 쓴 소설이자 나, 정수진이 쓴 소설이기도 하다. 그 이중적인 의미를 염두에 두고 읽는다면 더 많은 의미들이 독자를 생각에 잠기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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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9-05-12 23: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설해목님의 글 한 편으로 몇 권을 읽은 기분이 되었네요.

이 주제에 관해서 저도 몇 권을 읽었지만 제가 할 자격이 있는 말 같은 건 별로 없더라구요.

설해목님의 감상을 읽는 게 적지 않은 도움이 됩니다.

설해목 2019-05-13 09:32   좋아요 1 | URL
소설을 읽고 여러 책들이 떠오르더라구요.
이 주제에 대한 책들 좀더 읽어보고 싶기도 하구,
한편으로는 이 한편의 소설로도 글을 쓰는 여자에 대해서 알아야할 건 다 알게 된 것 같기도 하구요.
이 소설 덕분에 주말 이런 저런 책들 다시 뒤적거리며 보냈네요. ^^

hnine 2019-05-13 05: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최은미 작가 좋아하시는군요. 저도 이 작가에 대해 관심을 가져보는 이유가 될 것 같네요. ^^
청탁받지 못하는 등단작가보다 차라리 등단에 계속 실패하는 예비작가가 나을지. 막상막하일지.
등단 못하고 있던 시절에도 자기는 글 쓰는 걸 멈춘 적이 없었고, 등단 여부에 상관없이 글을 쓰는 사람은 모두 작가라고 생각한다던 구병모 작가 인터뷰도 생각나요.

설해목 2019-05-13 09:37   좋아요 0 | URL
네.. 최근에 읽은 우리나라 젊은작가 중 가장 저랑 잘 맞는 작가입니다. 최은미 작가는..^^
그런 말도 등단해서 책이 그래도 팔리는 작가의 여유에서 나올 수 있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글을 쓰는 이유도 결국 누군가에게 읽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이야기를 하고 싶은 마음만큼이나 클 텐데
오랫동안 결과물을 내지 못하는 건 정말 힘든 일일 것 같아요.
그래서 오랜 기다림 끝에 등단한 작가들 보면 정말 인간승리란 생각이..ㅎㅎㅎ

2019-05-15 11: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5-15 16:4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