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얼마나 많은 영혼을 가졌는지 - 페르난두 페소아 시가집 대산세계문학총서 150
페르난두 페소아 지음, 김한민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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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의 제목이 강렬해서일까 한편 한편 시를 읽어가면서 나도 모르게 영혼(포르투갈어로 alma라고 쓰고 아우마라고 읽음)이란 단어에 동그라미를 쳤다. 다시 한번 읽을 때는 동그라미를 친 영혼에 번호를 매겼다. 그래서 페루난두 페소아가 페소아란 자신의 이름으로 쓴 시들을 묶은 이 시가집에 영혼이란 단어가 몇 개인지를 알게 되었다. 70개를 웃도는 이명을 가진 페소아였지만 이 시가집은 페소아가 창조해낸 이명보다 조금 더 적은 수의 영혼을 품고 있다. 영혼이란 하나의 단어로 쓰였지만 각 시들에 쓰인 영혼은 그 수만큼이나 저마다 다른 무게와 모양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 누구도 아닌 바로 페소아가 쓴 시들이니...

 

수많은 이명을 사용한 것으로 유명한 페소아의 이력을 아는 독자라면 내가 얼마나 많은 영혼을 가졌는지란 제목을 내가 얼마나 많은 이명을 가졌는지라고 오독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하지만 옮긴이의 해설에 따르면, “‘이명의 상대 개념이라 할 수 있는 본명이라는 용어를, 페소아는 본인의 이름으로 서명한 시들을 썼고 그런 시들을 모아놓은 것이 이 시가집이니, ‘영혼 = 이명이란 오독은 잘못 읽어도 한참 잘못 읽은 것이 되어버렸다. 그렇지만 수많은 이명으로 썼든 페소아란 이름으로 시를 썼든(옮긴이의 해설에 따르면 페소아는 몇몇 글에서는 페소아란 자신의 본명조차도 마치 또 한 명의 이명처럼 취급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 모든 시를 쓴 장본인은 다름 아닌 페소아이니 수많은 이명들을 페소아의 수많은 영혼과 연결 지을 수도 있지 않을까. 무식한 독자는 이렇게 또 궁시렁 궁시렁거릴 뿐...

 

페소아의 시는, 20세기의 인간에 대한 매우 복잡하고 고통스럽고 비극적이지만 동시에 명쾌하고 냉정한 분석이다. 그는 조롱하고 또 조롱당하며 고뇌하는 사람으로서 자신의 진리와 심술 속에서, 역설의 남용 속에서, 이미 아이러니하게 활용된 격언과 정반대되는 것을 아이러니하게 주장할 수 있는 능력 속에서, 20세기의 가장 혁명적인 시를 구현했다. _ 안토니오 타부키, 사람들이 가득한 트렁크중에서

 

시가집이라는 헐거운 형식으로 묶인 여러 시들에서 엿보이는 본명 페소아의 관심사는 실로 다양하다. 존재와 부재, 고정된 정체성에 대한 회의 등 그가 줄기차게 천착해온 주제들 이외에도, 시인이 자신의 민족과 역사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풍부한 문학적 상상력을 동원해 조국의 미래에 대한 비전을 창조적으로 구상해온 결실을 접할 수 있다. , 제도 권력이 되어버린 기존 종교들에 대한 회의가 깊어지면서, 오컬트와 비전(秘傳) 종교 그리고 점성술에서 의미를 구하려고 진지하게 찾아 헤맨 흔적들도 풍부하다. 그러나 그 어떤 관심 분야도, 페소아가 그 하나에만 완전히 닻을 내리게 만들지는 못했다. 페소아답게, 그는 끊임없이 이동하고 정처 없이 부유했다. 1935120일 아돌푸 카사이스 몬테이루에게 보낸 편지의 한 구절이 이 같은 생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나는 진화하지 않는다. 나는 여행한다." _ 옮긴이의 해설 중에서

 

그렇다. 이 시들은 페소아다운 시들이다. 페소아의 시들에는 명확한 착지점이 없다. 내려앉았는가 싶으면 살짝 부는 바람에도 흔들리기 일쑤다. 마치 그네를 탄 채 시를 읽는 기분이랄까. 땅에서 한 뼘 정도 떨어진 발, 허공을 오르락내리락하며 끊임없이 움직이는 육체, 그리고 눈을 감으면 마치 새가 된 것 같은 영혼. 그래서 내가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시가 별로 아니 아예 없었는지도... 아니 어쩌면 시 자체를 온전히 이해한다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걸지도 모른다. 함축적인 언어에 담아낸 한 사람의 영혼의 떨림을 과연 누가 완벽하게 독해낼 수 있을까. 하물며 하나의 영혼도 아니고 수많은 영혼을 가진 페소아의 시를 이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니... 그래서 이번 시가집 읽기는 실패이면서 동시에 실패가 아니라고 우겨본다. 완벽한 이해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어렴풋한 느낌은 있었으니까. 그 어렴풋함이야말로 시란 창작물을 읽어내는 핵심이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또 하나. 읽는 이의 현재 상태에 따라 밀도가 달라지는 것이 바로 시가 아닐까 싶다. 사랑은 타이밍이란 말처럼 시 역시 타이밍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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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어두운 시절에

내 안에 아무도 없을 때

삶이 얼마나 주든 갖든

모든 것이 안갯속이고 벽일 때,

 

만약 내가 내 안의 파묻힌 곳에서

한순간 이마를 들어

지고 있거나 떠 있는 태양

가득한 먼 수평선을 바라본다면,

 

나는 다시 살고, 존재하고, 알게 된다.

그리고, 나를 잊게 되는 그 바깥

그것이 비록 환상이라 할지라도,

나는 아무것도 더 원하거나 요구하지 않는다,

나는 너에게 마음을 내준다.

 

<크리스마스 2>

 

크리스마스. 시골에는 눈이 내린다.

단란한 집들 안에서는

하나의 감정이 과거의

감정들을 간직한다.

 

세상으로부터 돌아선 마음,

가족이란 어찌나 진짜인지!

나의 사색은 깊다,

그래서 내겐 향수가 있지.

 

은총으로 얼마나 하얀가,

영원히 못 가질 가정의

유리창 뒤에서 바라본

내가 모르는 풍경은!

 

혼자라는 불안에 떨면서 검사 결과를 기다리고 아파서 병원을 들락거리면서 무언가를 간절히 잡고 싶었고, 집 떠나온 후 거의 매년 혼자 크리스마스를 보냈으며, 가정을 만들지 않기로 결심한 비혼주의자로서 나는 이 두 시를 읽자마자 페소아, 당신 마음이 꼭 내 마음이오라며 시들을 마음으로 와락 안아버렸다. 진짜 가정의 모습이 어떤지 페소아는 알고 있는 것만 같고, 어두운 시절 역시 누구보다 오래 겪었을 것만 같은 페소아의 시에서 전해지는 어렴풋한 동질감이란! 이처럼 지금의 나가 감응할 수밖에 없는 시들을 만나 모서리 귀퉁이를 접어 가며 시를 읽는 시간이란 한 영혼과 마주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물론 페소아의 경우는 하나의 영혼이 아니라 여러 영혼일 수 있지만...

 

여행한다는 것

 

여행한다는 것! 이 나라 저 나라 버리고 다니는 것!

끊임없이 다른 사람이 된다는 것,

영혼에 뿌리가 없기에

오로지 보기 위해서 사는 것!

 

나 자신에게조차 속하지 않는 것!

곧장 나아가는 것, 목적 그리고

그걸 이루겠다는 열망의

부재를 좇는 것!

 

그렇게 여행하는 게 여행이지

단 여정에 대한 꿈 이상은

아무 가진 것 없이 간다.

나머지는 하늘이고 땅일 뿐

 

 

옮긴이의 해설에 따르면 페소아는 1935120일 아돌푸 카사이스 몬테이루에게 보낸 편지에서 나는 진화하지 않는다. 나는 여행한다.”라고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시를 만나면 페소아란 사람이 명확히는 아니어도 어렴풋하게 어떤 사람인지가 그려진다. 이 시가집에 실린 페소아의 연보를 보면 페소아는 어머니의 재혼으로 인해 남아공의 더반에서 산 몇 년을 빼면 거의 일생을 리스본에서 지냈다. 이사를 종종 한 것으로 보이지만 그것 역시 리스본 내에서의 이사였고 여행을 갔었다는 연보는 찾아볼 수 없다. 다만 인쇄기 구입을 위해 포르투갈 동부의 포르탈레그로로 여행을 다녀왔다고는 적혀 있지만, 한 사람의 일생에 있어서 이렇게 여행을 하지 않은 사람도 드물다 할 정도로 페소아는 물리적 이동이 적은 사람이었다. 그런 페소아가 쓴 여행에 관한 시는 그래서 더욱 특별하다랄까. 나 역시 해외여행 한번 한 적 없고 서울과 고향 외에는 국내도 많이 다녀본 적 없는 여행 무능력자로서 이런 시를 만나면 여행이란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이 시가집에서 또 하나 기억에 남는 시가 있는데 바로 리마의 저녁이다. 이 제목은 벨기에의 작곡가 펠릭스 고드프루아의 동명곡이기도 한데 페소아의 가족이 남아공 더반에서 지낼 때 페소아의 어머니가 종종 피아노로 이 곡을 연주했다고 한다. 8장에 이르는 이 장편의 시는 페소아가 죽기 두 달 전에 쓴 시다. 가족들과 함께 살던 유년의 시절을 회상하며 쓴 시인데 페소아도 결국은 죽음 앞에서 가족을 떠올렸던 것일까. 부모 형제와 함께 산 시간보다 혼자 산 시간이 더 길어지고 있는 나는 리마의 저녁을 읽으면서 절로 고향집이, 엄마가 떠올랐다. 제목도 그러하거니와 시 역시 저녁을 닮은 느낌이라 실제 곡은 어떨까 싶어 찾아서 들어봤는데 곡은 의외로 씩씩하고 힘차서 좀 의아했다.

 

이 시가집에는 영혼이란 단어도 참 많이 나오지만 꿈과 영원이라는 단어도 자주 마주치게 된다. 환상이라는 단어도 종종 보인다. 모두 만질 수도 볼 수도 없는 한마디로 실체가 없는 것들이다. 너무나 크고 깊으면서도 불확실하여 쉽사리 잡아채지지 않는다. 페소아의 시가 내겐 꼭 이 단어들 같다. 크고 깊고 무엇보다 불확실해서 감히 닿았다고 말하는 것이 조심스럽다. 그러면서도 어렴풋하게 느껴지는 그 무엇이 있다. 페소아의 시에는... 영혼, 영원, , 환상이 그러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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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8-11-01 16: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중고서점에서 지금 페소아 작가의 책을
노리고 있는데 안 풀리네요 :> 좀 더
기다려야 하는 걸까요.

<불안의 책>은 한 번 도전해 보고 싶네요.

아무래도 수중에 넣기 전에 도서관을 이용
해야지 싶네요.

설해목 2018-11-01 17:01   좋아요 0 | URL
시는 호불호가 있을 수도 있지만 <불안의 책>은 제 주위 친구들은 전부 좋다고 하더라구요.
그냥 고독한 한 남자의 중얼거림같은 책이라고나 할까....
페소아처럼 중고도서를 잘 안풀리는 작가들이 더러 있는 것 같아요.
취향은 저마다 다르니까 혹시 모르니 도서관 이용 후 구입을 추천드립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