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카멜라의 생일날. 카멜라는 민들레를 찾아 천진난만하게 기뻐하고, 소박한 바램들도 되뇌어본다. 오빠를 따라다니는 것, 달콤한 사탕, 푹신하고 예쁜 침대. 그렇지만 행간에 드러나는 삶은 고달프다. 오빠는 어린 나이에도 일을 하고, 카멜라 엄마는 호텔에서 고된 노동을 하는데다 아빠는 아직 영주권을 얻지 못해서 이 땅에 오지 못했다.






어두운 현실뿐이지만 오히려 이 책은 카멜라 뿐 아니라 독자인 우리도 따뜻하게 위로한다. 퉁명스럽고 사춘기에 가까운 오빠는 카멜라가 도움이 필요할 때 손을 내민다(오빠의 현실을 생각해보면 오빠가 카멜라처럼 밝게 살기는 불가능할 것도 같다). 그리고 카멜라가 소원을 빌 수 있도록 도와준다.






소원은 아마 바다 건너의 누군가와 함께하고싶은 내용이겠지. 그리고 그 소원이 이뤄져서 ‘행복한’카멜라가 되기를 독자 모두가 응원하게 된다.



갑갑한 현실과 힘든 처지지만 카멜라를 ‘불행포르노’로 만들지 않은 작가의 재량이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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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력 쑥쑥 공룡 무지개 손도장 놀이 - 일곱 색깔 스탬프 포함 창의력 쑥쑥 무지개 손도장 놀이 5
피오나 와트 지음, 캔디스 왓모어 외 그림 / 어스본코리아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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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스본의 책을 좋아했다. 플랩이 많을수록 알차 보이고, 평면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여타의 그림책들보다 보는 재미가 더했기 때문이다. 플랩뿐만 아니라 피아노를 치거나, 기차놀이를 할 수 있는 책도 있다. 어스본은 책의 한계를 벗어나면서도 책에 대한 흥미를 이끌어내는 쉽지 않은 일을 해내는 기특한 출판사이기도 하다

아이들이나 어른들이 자기를 가두지 않고, 신나게 할 수 있는 놀이 중에 미술놀이만 한 것이 없다. 노래를 부르거나 악기를 연주할 때는 소리에 민감한 이들에게 눈총을 받고, 몸을 날리고 구르는 활동은 아랫집의 눈치를 보게 되지만 쉬운 미술 활동은 엄마가 대인배의 마음을 먹으면 제약이 덜 한 활동이다.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손도장 놀이에 취학전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대상인 공룡을 접목시킨 것은

관록 있는 감독과 재미가득한 소재와 흥행배우의 만남같은 것 아닐까.

그래서 우리 집에서도 이 책은 그야말로 한동안 원픽이었다. 반드시 규칙을 지키는 인생을 살아야 한다고 믿어온 일곱 살은 조금씩의 변형을 만들어내면서 즐거워했고, 자신의 손끝에서 무언가가 만들어지는 것에 환희를 느끼는 네 살은 실패 없는 예술행위에 마음 놓고 기뻐했다.

이 책을 추천하면서 꼭 알려야 하는 팁,

넉넉하게 남아있는 물티슈가 필요하다. 손가락에 묻은 색을 몇 번 문질러 닦지 않으면 다음에 사용할 색 스펀지에 묻어나서 섞여버린다. 또, 책 밑에 넓은 전단지나 신문지를 깔아줄 것. 아이들은 바닥에 손을 문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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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는 선동열 - 자신만의 공으로 승부하라
선동열 지음 / 민음인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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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는 선동열이라니. 이 얼마나 도발적인가. 피겨는 김연아, 배구는 김연경이라는데는 다들 동의할 것이다. 하지만 야구는 다르다. 누군가에게는 야구는 김시진이고, 누군가에게는 야구는 장명부나 이승엽, 혹은 박정태나 양준혁일 수도 있으니까. 물론 선동열은 훌륭한 야구선수이고 저 말이 틀리지 않지만 수긍하면서도 부루퉁한 반응이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왜냐하면 나에게는 야구가 최동원이기 때문이다. 한국시리즈의 7차전 중에서 4경기에 등판해서 모조리 승리를 안겨준 영웅. 그와 같은 도시에 산다는 것은 또 얼마나 자부심이었던가. 하지만 따지고 보면 선동열을 대하는 호남 지역 사람들에게도 그는 손기정이나 서윤복에 버금가는 영웅이었으리라. 어린 시절에는 그가 속한 팀이 그다지도 악착같이 열심히 경기해서 승수를 쌓아가는 모습이 부러우면서도 얄미웠는데, 자라고 난 뒤 80년대의 광주를 알고 나서는 그전처럼 악다구니를 써가며 야유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서럽고 분하고 억울한 누군가에게는 그가 기도이자 의지였을 것이다.

연예인들이 자신을 공인이라고 지칭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고개가 갸우뚱했었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공인이 가지는 무게감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꿈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정치적인 압력에 설자리가 정해지는 아픔도 적지 않았나 보다. 담담한 어조로 풀어놓았지만, 꿈과 나의 거리가 손닿을 듯 가까이 느껴는 스무 살 언저리에 꿈을 접어야 했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영광의 날도 있었지만 오욕의 날도 적지 않았던 듯하다. 또 출신 구단의 프랜차이즈 스타가 감독을 맡았다는 기대감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고향 사람들의 응원이 비난으로 바뀌어 폭주하는 것을 받아들여야 했던 일(이때 나는 그가 계속 그 팀을 맡아주었으면 했다. 우리도 누군가의 위에 서는 경험을 많이 하고 싶어서), 관행에 따라 일처리를 했을 텐데 국회에 가서 전문가도 아닌 사람들에게 들어야 했던 모욕적인 표현(나는 전문가도, 국민의 대표나 심부름꾼도 아닌데 같이 그를 비난했다. 우리 팀에도 병역을 면제받아 마땅한 훌륭한 인재가 있다고 믿었거든. 그 멍청한 모모 선수 대신!). 그리고 가족을 향한 도 넘은 비난(야구팬들이 국회의원 팬들이었다면 우리나라는 어떤 쪽으로 건 간에 보다 급진적인 나라가 되었을 것이다)까지 영광과 오욕이 함께한 날을 돌아보는 선동열의 곁에 서서 우리도 그의 야구 인생과 삶을 함께 들여다본다, 이 책으로.

그 모든 날들을 지나 이제 한걸음 뒤에 물러서 자신을 담담히 돌아보는 글이 한 권어치나 된다는 것이 부럽다. 그리고 그 글들이 심지어 재미있고 알차다는 것이 샘난다. 느물느물하고 요령까지 갖춘 천재가 다른 편인 것만큼 분통터지는  일이 또 있을까. 건강히 자신의 야구 인생을 돌아보고, 감사할 사람에게는 감사하고, 사과할 사람에게는 사과할 수 있는  마인드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자신의 말대로 유인구나 변화구가 아닌, 우직한 직구로 인생을 승부해 살아온 것이 잘 드러나는 글을 읽고 나니 아주 오래된 질투와 샘이 조금은 옅어진다.

야구는 열 번 공을 만나도 세 번만 치면 수위타자다. 그리고 희생이 공식 용어로 인정되는 경기이기도 하다. 아무리 상대방이 이기고 있어도 9회 말까지 나의 기회는 주어지고, 스포츠 경기 중 유일하게 감독이 정장 대신 유니폼을 입는 경기이기도 하다. 비정해 보이기도 하지만 재미있고, 인간적이고, 간단하지만 복잡한 경기. 자신만의 공이나 폼을 견지하지 못하면 살아남기 힘든 게임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혹사당해서 은퇴했고 누군가는 지속적으로 관리하지 못해서 내리막을 걸었지만 선동열은 달랐다. 그래서 남아있는 투수 가운데 국보급이 되었고, 명성은 전설이 된  것일까. 인간 선동열이 자기 입으로 하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오래 건강해서 영향력을 발휘해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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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 카네기 인간관계론 (무삭제 완역본) 데일 카네기 초판 완역본 시리즈
데일 카네기 지음, 임상훈 옮김 / 현대지성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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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카네기를 알고 있었다. '강철왕 카네기'. 그래서 이 책도 그 유명한 백만장자가 사람을 어떻게 적재적소에 사람들을 갈아 넣어 사용하는지에 대한 내용이라고 짐작했다. 마키아벨리의 20세기 버전 정도가 아닐까, 처세술에 대한 내용도 조금  넣어서.

그러나, 이 책은 진심으로 받아들인다면 자기 자신을 바꿀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좋은 책이다.

그리고, 데일 카네기는 앤드루 카네기가 아니고 나는 부끄러웠다.

성경 다음으로 많이 번역된 책이라는 부제가 부끄럽지 않게, 책의 내용은 알차고 작가의 자부심과 성의를 드러낸다. 출판사도 군더더기를 쫙 뺀 책을 만들고 싶었는지 책의 표지부터 뒤 날개까지 조금의 여백도 없이 책을 구성했는데, 이것은 원작을 반영한 것인지 아주 궁금했다. 요즘  출간되는 책들이 기본적으로 18000원대인데 반해 책값도 만 원을 살짝 넘는 아름다운 가격인데 종이도 꽤 얇은 편이다. 실용서적은 이래야 한다. 책이 가볍고 들고 다니면서 보더라도 부담이 덜하다. 하지만 내용은 근 5년 사이에 읽어 본 자기 계발서나 에세이 중에 가장 좋다. 얼마나 좋은 책이냐면, 같은 지하철의 칸에 타기 싫어서 퇴근길에도 오 분 정도 느리게 걸어서 말을 안 섞고 싶은 직장동료의 생일 선물로 사주더라도 돈이 아깝지 않을 정도다.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린 책이라더니 내 마음에 인류애를 불 지피는 역할도 해주는 기특한 책이었다!

이 책의 기본적인 주제는 '칭찬'을 기반으로 하여 '상대의 체면을 세워주고' 대화를 통해 '그가 스스로 그 일을 원해서 하는 경지에 이르도록' 이끄는 것이다. 이 내용이 정말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나는 최근에, 아니 바로 사흘전에 불쾌한 전화를 한 경험이 있다. 일처리를 제대로 하지 않는 기업을 대상으로 혼자 고군분투하며 민원을 넣었는데(누군가는 내게 '정여사'라는 블랙컨슈머의 닉네임을 환기시키며 어지간하다고 했지만 나는 좀 더 집요하고 적극적일 뿐 진상은 아니다!) 상대방의 태도가 대단히 별로였기 때문이다. 공손하게 시작하는 이쪽과 달리 퉁명스러움과 성의 없음에 짜증을 삼단 콤보로 내주는 바람에 나는 "그런데요, 사과하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라고 언성을 높였는데, 사회생활을 갓 시작한 듯한 상대방은 사과는커녕 자기 책임이 아니며 알아보고 처리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했기 때문에 전화를 끊으면서도 너무너무 분했다! 자기가 그 회사의 얼굴인데, 마케팅을 그따위로 하다니! 어이가 없었다. 그때, 나는 아직 상대방의 체면을 세워주라는 파트를 읽기 전이었다. 그리고 이 내용을 읽고 난 뒤 나는 나의 행동을 후회했다. 백 년 전에, 컴퓨터가 발명되기도 전에 살았던 사람이 쓴 이 글이 얼마나 나를 부끄럽게 하는지. 내가 전화를 끊고도 분하지 않으려면 나는 그 어린 여직원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지 말았어야 했다. 자신의 업무는 발송일 뿐이라는 그녀에게 누락된 자료를 추궁하지 말았어야 했다. 날을 곤두세워서 지금 전화받는 담당자 이름을 취조하듯 물었을 때, 내선번호만을 가르쳐주는 그녀에게 다정하게 너의 탓은 아니라는 것을 안다고 말했어야 했다. 그렇다면 그녀는 내가 사과를 요구하기 전에 내 마음이 얼마나 상했는지 살필 여유가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그러고 보니 나는 그동안 수많은 논쟁과 말싸움에서 지지 않으려고 얼마나 신랄했는지. 비록 말싸움에서는 이겼을지라도 상대방들에게 박았을 수많은 비수들은 얼마나 혹독했을까. 그리고 내 아이를 훈계할 때도, 나는 아이의 체면은 얼마나 생각했는지 아이가 저지른 잘못이 얼마나 고치기 쉬운 것인지 알려주며 칭찬도 함께 했는지 반문하자 대단히 부끄러웠다. 늘 기억은 못하더라도, 새겨두어야 할 마음가짐이다.

카네기의 이론은 백 년 전에는 대단한 혁신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오늘날에는 차고 넘치는 자기 계발서들에 비해 구닥다리처럼 보일 수도 있다. 물론 읽어보면 그 어떤 책도 범접할 수 없는 알찬 책이다. 아마 그 오랜 시간을 지내오면서도 사랑받는 이유는 이 책이 가지는 진실성에 있다고 생각한다. 군더더기는 없지만, 작가의 인생이 녹아있는 책이고 작가의 간절함이 드러나기 때문이 아닐까. 인생을 살아오면서 여러 번의 시행착오 끝에 발견한 진리를 나누고 싶은 마음. 한 예로 상대방에게 칭찬을 할 때는 아첨이나 겉치레가 아닌 진심으로 상대를 대하라는 당부가 있다. 요즈음에 내용증명을 보내면서 귀사의 발전을 기원한다는 서두는 이 책을 잘못 사용한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인간에 대한 존중, 인간에 대한 믿음이 근간이 되는 내용이라서 이 책이 더욱 사랑받는 것은 아닐까.

자기계발서를 보고 감동을 받은 적은 없었는데, 이 책은 감동을 받고 나를 바꾸고 싶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길에 이르는 방법들을 일목요연하게 가르쳐 주고 있다. 저자의 말대로 이 책은 형광펜과 밑줄을 사용해서 너덜너덜하게 읽어도 참 좋을 것 같다. 요리책에 김칫국물이 묻고, 구겨지고 닳을수록 자신있게 만드는 요리가 느는 것 처럼 이 책을 험하게 자주 읽을 수록 나라는 인간도 조금 더 나아질 기미가 보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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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스누피 2 - 우리는 널 믿어, 찰리 브라운 내 친구 스누피 2
찰스 M. 슐츠 지음, 신수진 옮김 / 비룡소 플래닛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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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유명하고, 그 독보적 매력의 지위는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개, 스누피. 어린 시절 삼촌의 낡은 페이퍼북 시리즈에서 본 누런 종이의 4컷 만화에서 TV 시리즈 피너츠, 그리고 한 권씩 사 모으던 만화책과 비디오, VOD, 심지어 글쓰기 완전 정복에 관한 책까지. 그 낡은 타자기가 얼마나 부러웠는지. 그리고 온 세상의 자잘한 불운을 다 끌어모아 만든 아이 찰리 브라운이 가진 최고의 행운은 그 '밉살맞은 개(루시의 의견!)'와 함께 산다는 게 아닐까 싶었던 만화. 예술가 슈로더의 장난감 피아노도 갖고 싶었고, 라이너스처럼 위안을 주는 담요도 필요했고, 루시의 심리상담소에 고민을 진지하게 상담하고 싶었던 날이 있었지. 사차원적인 매력을 가진 패티도, 심술쟁이 순정녀 루시도, 새침하고 야무진 샐리도, 똘똘하고 바른 마씨마저도 저돌적인 사랑꾼들이어서 더 신났던 만화.

네 컷 만화의 한계를 극복하는 동시에 루즈해지는 부분은 어쩔 수 없는 게 애니메이션인 듯하다. 피너츠 마을을 벗어나 여름캠프에서 일어난 일들이기 때문에 가장 인기 있는 캐릭터들만 모아서 만들었나 본데, 프랭클린과 타피오카 푸딩은 이 책에 안 나온다ㅜㅜ 비 오는 날 투구하는 찰리 브라운도 못 보고, 피아노 치는 모습만큼 매력적인 포수 복장의 슈로더도 없다. 루시의 5센트 상담소도 물론,

그러나,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4컷으로 끊어지는 스누피와 친구들의 이야기가 긴 호흡의 책 한 권으로 펼쳐진다는 것과 '브라우니 찰리'와 라이너스가 여름 캠프에서 만나 오랜 시리즈에서 애를 태우게 만들었던 바로 그 빨간 머리 소녀의 이름과 대사가 나온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사실 그 소녀의 얼굴과 이름이 내가 본 만화책에서는 안 나왔고, 찰리 브라운이 그 소녀만 보면 멍청이 짓을 하는 바람에 속이 터졌었다. 나이 먹어가며 기다린 보람이 있다.

이 책을 보고 흥분하고 좋아서 한동안 마음에 드는 장면과 표지를 프로필 사진으로 했다. 또 시리즈가 나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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