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편안한 죽음 을유세계문학전집 111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강초롱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모두가 겪어야 하지만 혼자서 경험해야 하는 죽음을, 보부아르는 모두가 느끼도록 썼다. 죽음은 각자에게 하나의 사고이자 부당한 폭력이다. 이 발언은 나를 박수 치게 했고 크게 위로했다. 엄마를 떠나보내고, 살 만큼 사셨어란 말이 목구멍의 가시 같았는데, 그건 아니지라고 말해준 작가. 고마웠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cott 2022-03-15 17:1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맞습니다 삶의 끝자락 앞에 살 만큼 살다 갔다는 말 함부로 내뱉지 말아야 함 ㅠ.ㅠ

행복한책읽기 2022-03-22 13:47   좋아요 2 | URL
아. scott님. 제맘을 찰떡같이 알아주시다니. 네. 그래서 저는 100세 넘어 돌아가셨다 해도, 남은 자들에겐 그런 말이 불편한 말일 수 있다는 걸 확실하게 깨달았어요. 이 책의 가장 큰 수확^^

새파랑 2022-03-15 17: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느 정도를 살아야 살만큼 산건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죽음은 언제나 안타까운거 같아요 ㅜㅜ

행복한책읽기 2022-03-22 13:48   좋아요 2 | URL
그런 나이는 없겠죠. 그저 많이 안 아프고 가는 게 젤 좋은 듯해요. 새파랑님은 계속 건강하시기~~~^^

얄라알라 2022-03-22 00: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행복한책읽기님
많이 바쁘신 건 알고 있었는데
그 와중에도 항상 책을 놓지 않으신다는 것. [아주 편안한 죽음] 읽고 계시다는 것은 몰랐사옵니다.
잘 지내시는지요?^^안녕히 잘 지내시지요?

행복한책읽기 2022-03-22 13:49   좋아요 1 | URL
흐흐. 잠시 아팠사옵니다.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전염병을 피하지 못하고. 알라님이야말로 어디 아프지 마시고 딱!!! 기다리고 계세요.^^
 

20220314 #시라는별 80

진짜 이야기 True Stories 
- 마거릿 애트우트 Margaret Atwood 

1
진짜 이야기를 청하지 마라. 
왜 그게 필요한가?

그것은 내가 펼치는 것이거나 
내가 지니고 다니는 것이 아니다. 

내가 항해하며 지니는 것, 
칼, 푸른 불, 

행운, 여전히 통하는 
몇 마디의 선한 말, 그리고 물결. 

2. 
진짜 이야기는 해변으로
내려가는 도중에 잃어버렸다, 그것은 내가 결코 

가진 적 없는 어떤 것, 이동하는 빛 
속에서 검은 나뭇가지들이 엉킨 것, 

소금물로 
채워진 흐릿한 
내 발자국, 한 움큼의 
조그마한 뼈들, 이 부엉이의 죽음. 

달, 구겨진 종이, 동전, 
옛 소풍의 반짝임, 

연인들이 모래 속에 
백 년 

전 만든 구멍들, 단서는 없다. 

3
진짜 이야기는 다른 
이야기들 속에 있다. 

어지러한 색깔들, 폐기되거나 버려진 
옷더미 같은, 

대리석 위의 마음 같은, 음절 같은, 
도살업자가 버린 것과 같은. 

진짜 이야기는 악랄하고 
다층적이며 결국 

진실하지 않다. 왜 너는 
그것이 필요한가? 진짜 이야기를 

한 번이라도 청하지 마라. 


마거릿 애트우드의 『진짜 이야기』를 두 달 전 구매한 뒤 고이 모셔 놓았다가 2주 전부터 뒤적거리기 시작하다 며칠 전 다 보았다. ‘읽었다‘가 아닌 ‘보았다‘고 말하는 것은 내가 이 시집에 수록된 시들을 거의 읽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난 해 하 다. 꺼이~~~

2020년 12월에『도덕적 혼란』을 읽고 나는 애투우드의 문체에 반해 버렸었다. 당시 100자평에도 썼지만, 글을 읽는 내내 물 위를 거니는 느낌이었다. 찰랑찰랑. 남실남실. 거문고 줄을 타는 느낌, 튕튕튕튕.(그래본 적은 없지만 ^^;;;). 물결 치는 리듬감. 음악 같은 시적 문체. 거리 두기 화법. 무심한 섬세함. 묘한 긴장감. 일상 속 익살까지. 뭐 하나 나무랄 데가 없는 연작 소설이었다. 어떻게 이런 글쓰기가 가능할까 신기해서 애트우드의 삶을 엿보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애트우드의 창작 활동의 시작은 ‘시‘였다.​

1939년 캐나다에서 태어난 애트우드는 곤충학자인 아버지를 둔 덕에 학교라는 공간의 짜여진 수업보다 캐나다 북부의 산림 지대를 돌아다니며 자연과 책을 벗하며 지냈다. 관찰과 읽기를 바탕으로 여섯 살때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 애트우드가 고등학생이었을 때 영어 선생님이 이런 말로 제자의 시작 활동을 격려해 주었다고 한다. ˝너의 시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정말 훌륭한 작품이야. 앞으로도 계속
글을 쓰렴.˝ (『쓰고 싸우고 살아남다』 126쪽) ​

애트우드의 시를 처음 읽어본 외국 독자로서 말하자면, 나는 제대로 이해한 시가 거의 없다. ˝정말 훌륭한 작품˝ 이라고는 아예 못 느꼈다. 내가 느낀 것은 역부족이었다. 번역의 문제는 아닌 것 같고,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의 배경 지식이 모자란 탓인 듯하다.

시집의 제목이기도 한 <진짜 이야기>는 61편의 시들 중 가장 읽기 편했다. 시인은 이런 질문을 던진다. 진짜 이야기란 무엇인가. 진짜라고 믿었던 이야기는 과연 진짜일까. 진짜 이야기가 있기는 한 것일까. 화자가 달라지면 이야기도 달라진다. 이것은 리베카 솔닛도 주목한 지점이다.

˝누가 이야기의 주인공 자리를 차지하는지는 대단히 정치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페미니즘은 유명한 고전의 서사를 전복하고 주인공이 아닌 주변 인물에 초점을 맞추어 새로 쓴 여러권의 문학 작품을 선물하기도 했다.˝ (『이것은 누구의 이야기인가』 35쪽) 

애트우드는 이 시집에서 그런 전복적 이야기를 시화했다. ˝폐기되거나 버려진 옷더미˝ 나 ˝도살업자가 버린 것과 같은˝ 이야기를 찾아내 그들에게 목소리를 부여한다. 그들은 돼지, 쥐, 올빼미, 까마귀 같은 짐승들이거나 사이렌, 키르케, 에우리디케, 뱀 여자, 오르페우스,
페르세포네, 트로이의 헬렌 같은 신화 속 인물들이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고 말한 사람들은 
모든 것을 원한다.
나를 화나게 했던 것은 이런 탐욕이 
아니라, 거짓말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당신에게 
당신이 계획한 여행을 위해 
요구한 음식을 주었다. 그러나 당신은 여행을 계획하지 않았고 
우리 둘 다 알고 있었다.] 
(<키르케 / 진흙 시> 중) 

키르케를 마녀로 규정한 것은 누구인가. 그녀가 목소리를 낸다면 뭐라고 항변할까. 이런 의문과 이런 시도는 정말 멋지지 않은가. 애트우드의 시들을 태반 이해하지 못했지만, 시인의 의도만큼은 대충 헤아릴 수 있었다. 그래서 나희덕의 『가능주의자』와 함께 재독, 삼독을 할 예정이다. 물론, 지켜질지는 미지수지만. ㅋ

˝역사상 인간이 어딘가에서 이미 한 일만을 이야기 속에 넣는다.˝

이것은 애트우드의 창작 원칙이다. 내가 『도덕적 혼란』을 비롯한 여러 외서에서 느끼는 인간 삶의 어떤 보편성, 그 느낌이 저 원칙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그러니까 사람 사는 거, 다 거기서 거기, 도찐개찐이라는 의미.^^​


댓글(8)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넬로페 2022-03-14 13:0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진짜 이야기‘가 61편의 시 중 가장 편하다~~ 와우^^
시는 정말 어려워요
그런데도 시를 계속 읽어 나가시는 책읽기님, 넘 대단하고요.
마거릿 애트우트의 ‘도덕적 혼란‘을 읽다가 쉬고 있는데 책읽기님의 표현에 넘 공감합니다.
이야기의 주인공에 따라 문체가 달라지고 리듬이 다르다는 걸 저도 느꼈거든요.
시를 많이 읽으면 글도 닮아가나봐요.
책읽기님의 글에 리듬이 있어요^^

행복한책읽기 2022-03-15 15:36   좋아요 3 | URL
저는요, 뭘 꾸준히 해온 게 없더라구요. 책도 중구난방으로 읽어서리, 시집을 다시 펼쳐든 순간, 아 이건 죽을 때까지 꾸준히 읽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제 글에 리듬이 있다고 해주시니, 어깨가 으쓱해졌어요. 그런 글을 원하거든요.^^ 페넬로페님 감사감사^^

mini74 2022-03-14 19:1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애트우드가 시도 쓰는군요 전 그냥 소설가인줄로만 알았어요 ~ 시가 강렬한 느낌 !! 신화가 담긴 시라 흥미가 막 생깁니다 ~~

행복한책읽기 2022-03-15 15:40   좋아요 3 | URL
그죠. 저도 소설가인줄만 ㅋ 시를 보면요, 애트우드 언니 여전사 같습니다. 똑똑하고 당차고 야물어 보인다는 ㅋ 신화!!! 맞아요, 미니님이라면 저보다 애트우드의 시를 더 잼나게 읽으실 것 같아요. 기대되는걸요^^

희선 2022-03-17 01:1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애트우드는 여섯살 때부터 관찰과 읽기를 바탕으로 글을 썼군요 그런 사람이 한둘이 아닐지도 모르겠네요 저는 여섯살 때 일 하나도 생각나지 않습니다 선생님한테 칭찬받은 것도 글을 죽 쓰게 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키르케를 안 좋게 쓴 건 남자 작가... 키르케 잘 몰랐는데, 몇달 전에 소설 보고 아주 조금 알았습니다


희선

행복한책읽기 2022-03-22 13:41   좋아요 2 | URL
희선님 저도 여섯살 때 제가 전혀 기억에 없답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니, 애트우드를 움직이게 한 또하나의 동력이었을 거예요. 그죠. 저는 이 시집이 신화 속 인물을 재해석해낸 점이 가장 맘에 들어요. 근데 잘 모르겠어요. 이야기를 몰라^^;;

얄라알라 2022-03-22 00: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 물결 치는 리듬감. 음악 같은 시적 문체. 거리 두기 화법. 무심한 섬세함. 묘한 긴장감. 일상 속 익살˝

와, 행복한 책읽기님이 주르르 나열하신 이 표현들, 넘 좋습니다

만약 여기 알라디너 분들 다수가 애트우드처럼 정규 학교교육보다는 캐나다 산림 지대에서 자연과 벗삼으며 성장했다면 어떤 어른기를 맞고 있을까요? 우리 한국 어린이들, 학교와 스크린에 매여 두는 교육 방식은 얼마나 많은 미래의 작가를 지우게 하는 걸까요?^^;; 혼자 넋두리를 하다 갑니다. 항상 행복한 책읽기님과의 오프라인 회동을 꿈꾸고 있습니다 ㅎ

행복한책읽기 2022-03-22 13:44   좋아요 2 | URL
북사랑님 안뇽~~~ 넘 반가워요.^^ 소설은 시 같았는데, 정작 시는 소설 같다는 ㅋㅋ 리듬감이 더 안 느껴졌어요. 원문으로 읽으면 다를까요?? ㅋ 저희는 꽃이 흐드러지게 필 때 보아요~~~^^
 

20220308 #시라는별 79 

곰의 내장 속에서만 
- 나희덕 

괴혈병에 걸리면 더이상 고기를 씹을 수 없게 되고 
북극에서 그것은 죽음을 의미하는 것 

북극에서는 죽어도 썩을 수가 없어서 
유빙들 사이로 떠다니며 영원히 잠들 수 없다지 

죽으러 갈 수 있는 곳은 
북극곰의 내장, 
따뜻한 내장 속에서만 천천히 사라질 수 있을 뿐 

아들은 병든 어머니를 업고 가서 얼음 벌판에 내려놓고 
어머니를 곰에게 먹이로 바치고 
어머니는 어서 가라, 아들에게 손을 흔들고 
아들은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고 
언젠가 자신이 묻힐 곰의 캄캄한 내장 속을 생각하고 

이글루 속에서 
이글루 속에서 

아이들은 자라고 
아이들의 이도 자라고 
물개나 바다표범을 사냥하는 법을 배우고 
곰을 잡아 곰고기도 먹지만 
이누이트족이 곰의 내장을 먹지 않는 건 그래서일까 

더운 그것이 어머니의 무덤인 것만 같아서 
아직 그 속에 남아 있는 것만 같아서 


* 실제로는 곰의 내장에 치사량의 고농도 비타민A가 들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문학동네시인선 167번째 시집이자 나희덕 시인의 아홉 번째 시집 『가능주의자』에서 나희덕이 전하는 ‘시인의 말‘은 묵직하고 뜨끈하다.

어떤 핏기와 허기와 한기가 삶을 둘러싸고 있다.
그것은 일종의 벌거벗음에서 왔다.

피. 땀. 눈물.
이 세 가지 체액은 늘 인간을 드나든다.

마음이 기우는 대로
피와 땀과 눈물이 흐르는 대로 가보면
통증과 배고픔과 추위를 느끼는 영혼들 곁이었다.

시는 영원히 그런 존재들의 편이다.

피. 땀. 눈물. 인간을 드나드는 세 가지 체액. 이 시집에 실린 대부분의 시가 이 세 가지 체액의 넘나듦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곰의 내장 속에서>라는 시가 내게는 가장 큰 일렁임으로 다가왔다.

자식은 부모의 피로 태어나고 땀으로 길러지고 눈물로 삼켜진다. 시신이 썩을 수 없는 차디찬 북극. 아들은 괴혈병에 걸린 어미를 업고 곰이 드나드는 얼음 길목에 어미를 내려놓는다. 그래야 어미의 육신이 ˝유빙들 사이로 떠다니˝지 않고 곰의 ˝따뜻한 내장 속에서˝ 서서히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어미의 피와 땀과 눈물을 먹고 자란 아들은 어서 가라 손짓하는 어미를, 제 젖줄의 존재를, 돌아보고 돌아보고 또 돌아본다. 아들은 눈물과 한숨과 회한을 삼키며 발길을 돌렸으리라. 그에게는 기다리는 처자식들이 있고, 살아남은 이들은 이들대로 무시로 찾아드는 ˝통증과 배고픔과 추위˝를 견디며 살아가야 하므로.

곰의 내장에 들어 있는 치사량의 고농도 비타민A. 이누이트족이 곰의 내장을 먹지 않는 건 그것 때문이지만 시인은 그곳이 ˝어머니의 무덤인 것만 같아서, 어미가 ˝아직 그 속에 남아 있는 것만 같아서˝일지 모른다고 해석한다. 슬프고도 아름다운 시적 풀이.

˝피와 땀과 눈물이 흐르는 대로˝ 가서 ˝통증과 배고픔과 추위를 느끼는 영혼들˝의 편에 서려는 자가 비단 시인만은 아닐 것이다. 나는 정치인도 그런 이들의 편에 서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국민의 피와 땀과 눈물을 닦아 줄 수 있는 자여야 한다고. 그러니 투표는 ˝불가능의 가능성을˝ 실험하는 일종의 진단 키트가 되어줄 것이다.

저는 가능주의자가 되려 합니다 
불가능성의 가능성을 믿어보려 합니다 
.
.
(중략)
나의 시대, 나의 짐승이여, 
이 이빨과 발톱을 어찌하면 좋을까요
찢긴 살과 혈관 속에 남아 있는 
이 핏기를 언제까지 견뎌야 하는 것일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무언가 가능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되는 것은 
어떤 어둠에 기대어 가능한 일일까요 
어떤 어둠의 빛에 눈멀어야 가능한 일일까요 

세상에, 가능주의자라니, 대체 얼마나 가당찮은 꿈인가요 (<가능주의자> 중)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몽셀통통 2022-03-08 15: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시집은 기존에 내가 읽었던 시집과 다르다.

충격이다.



어둡고, 슬프고

우울하고, 고통스럽다.

핏물이 진하고 흥건하게

‘가능주의자’라는 책을 덮는다.

그래서 표지도 시뻘건 피의 색인가???
시인은 현실의 무게를 끝까지 응시하고 기록하는 것을 자신의 역할로 인식하는 것 같다.



점점 나빠지는 세상을 향해 문을 닫는 것
여섯째 날의 어둠을 받아들이는 것


어둠을 끝까지 응시하는 것

토리노의 말 중 일부


큰 빛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반딧불이처럼 깜박이며

우리가 닿지 못한 빛과 어둠에 대해

그 어긋남에 대해

말라가는 잉크로나마 써나가려 합니다

가능주의자 중 일부


어둠속에 선명하고

차가움속에 날카롭다.

‘백운에서 다산 생각’ 다만 서정적이다.



머뭇거리는 발등에 동백꽃이

말을 걸듯 투욱, 투욱, 떨어져내리고

그 꽃을 누군가의 마음처럼 받아들고 내려갔다.


벌써 흙이 스며드는 꽃도 있다

흩어진 동백꽃은 밟지 않고 지나기가 쉽지 않았다


행복한책읽기 2022-03-10 23:59   좋아요 2 | URL
몽셀통통님. 이 시집이 님에게 충격을 주었군요. 붉은 표지는 통통님 해석이 맞을 거예요. 피. 땀. 눈물이 섞여도 결국 붉은 색이잖아요. 저는 나희덕 시인을 좋아하는데, 이 시집 읽고 더더 좋아졌어요. 시사성 짙은 내용에 어떻게 이토록 슬프면서 아름다운 서정성을 입힐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매일 한편씩 또 읽고픈 시집이에요.^^ 몽셀통통님이 느낀 충격은 값진 충격일 것 같아요. 왜냐하면 머리를 둔중히, 혹은 강렬히 얻어맞는 경험은 아무때나 할 수 있지 않잖아요. 그 충격은 아마도 책이 선사한 희열! 의 다른 버전일 것 같아요. 책으로 종종 뵈어요~~~^^

mini74 2022-03-08 17: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곰의 내장이 내 어머니의 무덤이라니 ㅠㅠ 자연에 따라 장례풍습은 다르지만 애끓는 마음은 다 같죠. 시인은 역시 시인이군요. 넘 슬퍼요 ㅠㅠ

행복한책읽기 2022-03-11 00:02   좋아요 2 | URL
그죠. 시인은 정말 다르죠. 이 시집에는 애끓는 이야기들이 제법 많아요. 근데 흘려보거나 들으면 안될 이야기들이에요. 정말 강추하고픈 시집이랍니다.^^

희선 2022-03-09 01:4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북극에서는 그렇게 하는군요 마음이 아프겠습니다 괴혈병은 비타민 C가 모자라서 생기는 병이었군요 오래전에 바다에 나간 사람이 걸린 병... 북극 사람은 사냥한 동물 콩팥과 그 위에 붙은 부신까지 먹어서 괜찮다는 말이 있네요 국민이 흘리는 피와 땀과 눈물을 닦아주는 정치인이 많기를 바랍니다


희선

행복한책읽기 2022-03-11 00:05   좋아요 2 | URL
세상 어디에나 슬픈 이야기들이 있네요. 북극 이누이트족의 고려장 같은 이야기는 참 충격이었어요. 당선된 새 대통령이 국민의 피땀눈물을 닦아주길 간절히 바라나, 물음표가 자꾸 생겨 좀 암담하답니다. ㅠㅠ
 
듄 신장판 1
프랭크 허버트 지음, 김승욱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매일인증 아니었음 완독하지 못했을 책. SF 고전이자 여러 명작의 기반이 되었다는 이 작품을 즐독하지 못했다. 지극히 남성적, 계급적, 원시적으로 느껴졌다. 일만 년 후에도 열다섯 살짜리가 구원자라니. 넘 가혹하고 구시대적이지 않은가. 사막 묘사와 모래벌레와의 공존은 인상적이었다.

댓글(9)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ini74 2022-03-07 16:1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 중세시대를 미래로 옮겨 온 것 같지 않나요 ~ 전 젊은 시절을 잠시 함께한 소설이라 뭔가 애틋함을 갖고 있는 듯 합니다 ㅎㅎ

행복한책읽기 2022-03-07 16:3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딱 그랬습니다 ㅋ 젊은 시절에 읽으셨다니. 놀라워요. 전 세트 구매 안 한 걸 다행으로 여기고 있어요.^^;;

scott 2022-03-08 00:04   좋아요 2 | URL
영화 강추 해유😎

행복한책읽기 2022-03-08 13:48   좋아요 1 | URL
scott님~~~~봤어요. 영화 안 봤음 책이 더 이해되지 않았을 거예요. 영상미 짱!! 배우들 짱!! 스토린 ㅠ 제 취향 아니네요. ㅡㅡ

책읽는나무 2022-03-07 17:2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앗!!! 전 세트로 구매해서 신주단지 모시 듯 모셔 놨는데 그런 내용이 들어 있던가요???
아~~~
나중에 읽을 때 각오하고 읽어야 겠군요???ㅜㅜ

행복한책읽기 2022-03-08 13:50   좋아요 1 | URL
헐. 세트 지르셨군요. 책꽂이 각 나오는 세트. ㅋ 나무님은 저랑 다르게 잼나게 읽으실 수 있어요. 제가 SF에 워낙 문외한에다 그쪽 취향이 아니어서 말이죠.^^;;

라로 2022-03-07 23:4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런 책을 가장 좋아하는 책이라고 읽고 또 읽는 제 남편이의 뇌를 다시 검사해야 하는 건가요?? 일단 저도 읽어 보겠습니다요.^^;

행복한책읽기 2022-03-08 13:52   좋아요 0 | URL
ㅋㅋㅋ 남자님들 엄~~청 좋아, 아니 사랑하는 SF이던걸요. 한국SF 작가들도 열광하시고. 그래서 기대가 컸던가봐요. 기대랑 달라서 더 몰입을 못하기도 한 듯한^^;;

중독자들 2022-07-18 12: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설을 소설로 보지 않으시네요. 이 책은 사이언스 ‘픽션‘ 입니다.
 

20220302 #시라는별 78

꿰매다
- 나희덕 

바닥에는 
방금 실을 끊어낸 실패가 놓여 있고 
실패에는 실이 남아 있다 

무언가 열심히 꿰맨다 

바늘이 
천과 천 사이를 드나드는 동안 
실패에서 풀려난 실은 한 땀 한 땀 길을 낸다 
한 걸음 한 걸음 찢어진 길을 꿰매듯 

뜯어진 바짓단이든 구멍난 양말이든 떨어진 단추나 후크든 
조금 해지거나 터진 구멍쯤 아무것도 아니라고 
실패를 두려워할 것 없다고 
바늘구멍한한 진실은 어디에든 있다고 
꿰매다 실이 모자라면 
실패를 집어올려 새로 꿰면 된다고 

무언가 꿰고 꿰매는 동안에는 
다정한 이가 그렇게 말해주는 것 같다

실패를 갖고 놀던 아이는 보았을까 
실을 꿰는 엄마를 
무언가 열심히 꿰매는 엄마를 
엄마는 아이의 불안한 마음까지 꿰매주었을까 

들숨과 날숨 사이에서 
˝fort˝와 ˝da˝ 사이에서
엄마의 사라짐과 나타남 사이에서 
가까워지는 발소리와 멀어지는 발소리 사이에서 

실은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실패에는 실이 아직 남아 있고 
무언가 꿰매는 손등에는 고요가 내려와 반짝이는데 


*‘fort-da‘: 프로이트가 말한 없다!있다! 놀이. 이른바 까꿍 놀이.

2021년 12월에 출간된 나희덕의 『가능주의자』를 2022년 1월에 구매해 두었다가 2월 내내 드문드문 읽다 2월말 막판 스퍼트처럼 몰아 읽었다. 100자평에도 썼지만 이 시집은 정말 훌륭하다.

<이 자욱하고 흥건한 시대를 시는 어떻게 건널 수 있을까>

​『가능주의자』는 시인이 스스로에게 던진 저 물음에 대한 화답가 같다. 시로써 무엇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는지, 표현해야 하는지를, 시인은 한 마리 거미처럼 제 몸에서 언어라는 실을 자아내 한 땀 한 땀 엮고 또 엮어 시집이라는 거미집을 만들었다. 완성품이 천의무봉 같다.

이 시집은 총4부로 구성되어 있고 52편의 시가 실려 있다. 나의 부족으로 따라잡기 힘든 시들은 있었지만 이맛살이 찌푸려지는 시는 없었다. 대개가 고루 좋았다. 52편의 시들 중 내 눈과 맘을 가장 먼저 사로잡은 시가 <꿰매다>였다. 우리는 이 세상에 나서 저 세상으로 갈 때까지 ˝무언가 열심히 꿰매˝며 살아간다. 그렇다. 열 심 히. 그러나 아무리 열심히 꿰매도 실이 끊어지거나 풀리거나 모자라는 사태가 빚어지기도 한다. 그런 일을 대수롭지 않게, so cool하게 넘기는 법.

뜯어진 바짓단이든 구멍난 양말이든 떨어진 단추나 후크든 
조금 해지거나 터진 구멍쯤 아무것도 아니라고 
실패를 두려워할 것 없다고 
바늘구멍한한 진실은 어디에든 있다고 
꿰매다 실이 모자라면 
실패를 집어올려 새로 꿰면 된다고 

실패(失敗)와 실:패의 멋진 언어 유희. 실패하면 실:패를 집어 들어 다시 꿰매면 된다. 그러면 끝! 실패 그까이것! 이 다정한 위로라니. 

˝fort-da 포르트-다.˝(없다! 있다!) 

한편의 시에서 또 하나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실패를 가지고 노는 아이가 소리친다. fort!(없다) da!(있다). 이것은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가 말한 용어라고 한다. 프로이트는 자신의 손주가 혼자 실패를 멀리 던졌을 때는 ‘fort‘라고 외치고, 다시 잡아당겨 손에 쥐게 되었을 때는 ‘da‘라고 외치는 놀이를 계속하는 모습을 관찰하게 되었다. 이 놀이를 보고 프로이트가 내린 해석은 아이에게 실:패는 엄마라는 상징물이고, ‘fort‘는 엄마가 사라졌음을 의미한다고 보았다. 엄마가 눈에 보이지 않을 때 아이들은 불안하다. 유아기의 이 불안은 생존과 결부된 문제여서 마음이 조마조마한 수위를 넘어 숨 막히는 공포에까지 이를 수 있다. 이런 분리 불안을 여러 번(한 번일 수도 있다) 경험한 아이들은 엄마와 절대 떨어지려 하지 않는다. 아이의 마음은 ˝뜯어진 바짓단˝이나 ˝구멍난 양말˝처럼 해지고 터져 있다. 이런 불안한 마음을 엄마는 어디까지 꿰매줄 수 있을까.

프로이트는 아이의 ‘fort-da‘ 놀이를 이렇게 해석한다. 엄마가 사라지는 공포를 미리 연습하고 그 충격을 완화하고자 하는 아이만의 보호기제라고. ˝엄마의 사라짐과 나타남 사이에서 / 가까워지는 발소리와 멀어지는 발소리 사이에서˝ 아이는 사라진 것은 언젠가 돌아온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된다. 게다가 실패, 엄마라는 상징물이 제 손에 쥐어 있으니 엄마가 보이지 않으면 다시 끌어당기면 된다. 아이의 마음은 전보다 편안하다. 엄마는 반드시 돌아온다는 예측 가능한 믿음을 갖게 되었을 때, 아이는 엄마가 아무리 멀리, 아무리 오래 떠나 있어도 견뎌낼 수
있다. 실패를 가지고 노는 아이의 손등에는 ˝고요가 내려와 반짝˝거릴 수 있다.

그러니 아무리 잠깐이라도, 엄마가 아이의 눈앞에서 사라져야 할 순간에는 아이에게 반드시 일러주어야 한다. 엄마 잠깐 쓰레기 버리고 오겠다고. 그러니 무서워하지 말라고. 잠깐 없어지는 그 자체보다 말없이 없어지는 것이 아이에게 공포를 안겼다는 사실을 나도 뒤늦게 알았다. 그러니
˝da!˝는 있다!를 넘어 아이에겐 ‘살았다!‘는 의미일 수 있다. ˝엄마는 아이의 불안한 마음˝을 완전히 꿰매줄 수는 없다. 인생의 어느 시점부터는 아이 스스로 터지고 해진 제 마음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공들여 꿰매야 할 것이다. ​




댓글(8)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cott 2022-03-02 12:1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오! 예술의 주름 쓰신 나희덕 시인님!

[뜯어진 바짓단이든 구멍난 양말이든 떨어진 단추나 후크든
조금 해지거나 터진 구멍쯤 아무것도 아니라고
실패를 두려워할 것 없다고
바늘구멍한한 진실은 어디에든 있다고
꿰매다 실이 모자라면
실패를 집어올려 새로 꿰면 된다고 ]

3월! 뭐든지 꿰매보겠습니다!
꿰메다 실이 모잘라도!ㅎㅎ

책읽기님!3월 건강하게 ^ㅅ^

행복한책읽기 2022-03-05 15:03   좋아요 3 | URL
scott님~~~반가워요. 예술의 주름도 읽고픈데, 여의치 않아요. ㅋ 실이 모자라면 이어 붙여 꿰매자구요. 그래요. 3월도 건강하게!!^^

새파랑 2022-03-02 15:1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보는 책읽기님의 시네요~!! 책읽기님 덕분에 나희덕 시인님을 알게되어서 좋습니다 ^^

행복한책읽기 2022-03-05 15:06   좋아요 4 | URL
새파랑님~~~저도 넘 반가워요. 애들 방학이 끝났는데도 플친들 서재 방문할 여력이 없어요. 안타까워요. ㅠㅠ 시읽기는 어떻게든 올려보려 합니다. 새파랑님 나희덕 시인 정말 좋아요~~~강추!!!

mini74 2022-03-02 19:2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나희덕 시 좋아요 ~ 실패와 엄마 아이의 관계 이야기 결국 어느 시점부턴 아이가 스스로 꿰매야 한다는 책읽기님 이야기에 참 많은 것이 담겨있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행복한책읽기 2022-03-05 15:13   좋아요 3 | URL
미니님~~~너~~무 반가워요~~~플친들 모두 그리워요. 나희덕님은 제가 좋아하는 시인인데, 이 시집 읽고 더더더 좋아졌어요. 실패와 엄마와 아이 연결 멋지죠. 이걸 슬라보예 지젝은 또 다르게 해석하더라구요. 엄마라는 압도적인 존재로부터 탈출을 꿈꾸는 놀이라고요. 어떤 해석이든, 공통점은 아이의 독립 같아요. 어줍잖은 글 항상 정성껏 읽어주셔 감사합니다.^^

희선 2022-03-05 01:2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사람은 다 뭔가를 열심히 꿰매고 사는군요 실이 모자라면 다시 실을 바늘에 꿰면 되겠지요 엄마라고 해서 아이 마음을 다 꿰매주기는 어렵겠지요 그걸 알아야 할 텐데... 스스로 꿰매기, 그게 힘들어도 해야 하는 거겠습니다


희선

행복한책읽기 2022-03-05 15:17   좋아요 3 | URL
희선님~~~방가방가.^^ 우리 모두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엄마로부터 하나씩하나씩 독립해 스스로 자기 인생을 꿰매고 살아가는 듯해요. 쉽지 않은 그 일을 해내고 사니, 다들 대단하고 존중받을 만하죠. 희선님도 그런 사람입니다. 귀한 댓글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