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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뮈엘 베케트 지음, 김두리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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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지만 오래 걸렸고 강렬했다. ˝좇 같은 광야˝의 ˝염병할 땅에 젖까지 처박혀서˝ ˝허튼소리˝를 지껄이는 2인극. 기대 없는 기도, 보람 없는 행위, 대답 없는 대화. 사이 많은 대사. 행복하다는 말로 행복하지 않은 조건을 버텨내기. 상황은 처참한데 소리는 명랑해 더 서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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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1-05-29 21:0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욕때문에 더 궁금해요!ㅋㅋㅋㅋ
‘부조리극의 정점에 선 압도적인 걸작‘🤔

행복한책읽기 2021-05-30 09:53   좋아요 2 | URL
미미님 분명 좋아하실 것임.^^ 짧아 금방 읽을 줄 알았는데 대화가 파편적이라 엄청 집중을 해야 하더라구요. 자꾸 맥락을 놓쳐 돌아가고 돌아가고, 그렇게 읽었어요. 대출해 읽었는데 소장하고파서 구매를 고민 중. 이럼 안되는데 진짜 ㅋㅋ

희선 2021-05-30 01:1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사뮈엘 베케트 하면 《고도를 기다리며》가 가장 먼저 생각나는데 다른 희곡도 있군요 당연히 그렇겠습니다 희곡 하나만 쓰지는 않았겠네요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 하는 말이 생각납니다


희선

행복한책읽기 2021-05-30 09:54   좋아요 3 | URL
저도 <고도를 기다리며>밖에 몰랐어요. 저는 이 책이 더 좋았답니다. ‘웃는 게 웃는 게 아나야‘ ㅋ 희선님 기억력 짱!!!^^
 

20210527 #시라는별 40 

도움받는 기분 
- 백은선 

나는 네게 시를 읽어준다. 제목은 학교야. 이렇게 시작해. 학교에 가면 책상이 없었다. 책상을 찾아 다녔다. 어떤 날은 화장실에서, 어떤 날은 화단에서 책상을 찾았다. 책상에 이렇게 씌어져 있었다. 씨발년 죽어. 이런 시야. 너는 음, 소설 같은데 하고 말한다. 나는 빨간불이 켜진 교차로에 서서, 그건 정말 있던 일이야. 그래? 그래서 서사적인가 봐. 네가 말한다.

다시 학교를 읽어본다. 네게 읽어주지 못한 뒷부분도 읽는다. 매일 혼자 벤치에 앉아 있던 얘기, 기억상실증에 걸리게 해주세요. 종말이 오게 해주세요. 빌고 빈 얘기. 아침이 오는 게 싫어 밤새 깨어 있던 얘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로 끝나는 마지막 문장까지.

너희가 보낸 발신자 없는 문자를 받을 때마다 미칠 것처럼 무서웠다. #죽어. 죽어. 죽어.# 문자들. 책상을 찾아 교실 맨 뒤에 놓고 엎드려 있으면, 너희는 키득거리면서 웃었지. 미친년 밤마다 한강에 가서 서 있는데, 그러면 폭주족들이 태우고 다니다가 돌아가면서 한대, 손가락질하면서 까르르 웃었지.

내가 스무 살이 되어 처음 데이트를 했을 때, 너희는 뒤 테이블에 앉아 있었지. 너희는 크게 다 들리게 욕을 했지. 애인은 나를 창피해했다. 나는 슬프고 무섭고 화가 났어. 마음이 와르르 무너졌어. 왜.

나에게만 다른 중력이 작용했어. 세계가 이렇게 파랗고 무겁고 사람이라는 것이 이렇게 악의로 가득 찰 수 있다는 게, 이상했어. 그치. 봉인된 검은 상자들이 내 안에 쌓여. 그 안에 기억들이 켜켜이 썩고 부서지고 지독한 냄새를 풍겨. 어떨 때 나는 단지 상자들로 이루어진 부패 덩어리지.

참 이상하다 그치. 이 시는 발표하지 못할 거야. 나는 자꾸만 중학교 때로 돌아가 그때를 생각한다. 빈집에 돌아오면 도시락을 꺼내 먹었다. 그리고 소파에 앉아 브라운 신부 시리즈를 읽고 또 읽었다. 영스트리트 스위트뮤직박스 고스트스테이션 고릴라디오 끝날 때까지 라디오를 들었다.

사물함 뒤에서 머리카락이 몽땅 잘렸을 때 

가윗날이 귀 끝을 스칠 때 차가움과 공포 

계속 걷다가 걷다가 끝없이 걸을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들던 순간. 그렇게 무언가를 건너고 다른 사람이 된다면 어떨까, 상상하던 오후의 빛, 칼처럼 꽂혀 있다. 마음.

왜. 너희에게 주고 싶던 한마디. 나는 죽지 않고 살아서 쓴다. 읽어봐. 기억 나? 책상을 찾아 헤매던 찢긴 그림자. 물에 젖은 여자애. 비명처럼 가벼운 날들.

나는 어쩌면 너를 만나 이것을 다시 읽어줄 거야. 응, 골목을 헤매는 생쥐 같은 심정으로 전부 다시 쓸 거야. 

하얀 얼굴과 초록. 정적 속에서 일어나던 살인 사건. 그걸 해결하는 늙은 신부. 펄럭이는 커튼, 가느다란 기도 소리, 피가 빠져나간 몸의 형상. 종이를 펼쳐 적었지. 먼 미래는 없고 기적만 있는 과거들과 표현할 수 없는 길들. 보도블럭의 금들 회색 붉은색 건너뛰며 걷고, 비행기가
날아가는 하늘을 멍하니 보면서 선 캡을 고쳐 쓰며 나는 많은 친구야. 지하철에 앉아 버스 정류장에 앉아 꾸벅꾸벅 졸면 매번 새로운 꿈. 매번 똑같은 꿈. 무지와 기억을 탓하며. 조금씩 더 어려졌지.

우물에 대해 
들판 한가운데 놓인 
우물에 대해 
자정에 우물을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달이 들어 있고 
가늠할 수 없는 찬란과 어둠이 함께 흔들린다 

이계의 창처럼 숨 막히게 아름답지 

서로 마주 보는 기쁜 마음 

모두 죽게 될 거야 


백은선 시인과 처음 만났다. <<도움받는 기분>>은 시인의 세 번째 시집이라고 한다. 시인의 출생년도를 보고 받은 신선한 느낌 하나. 독자인 나와 거의 20년의 나이 차이가 나는데도 저자가 결코 어린 나이가 아니라는 것. 그렇다는 것은 내가 그만큼 나이를 많이 먹었다는 것. 어머나. 그런 새삼스런 깨달음에 <도움받는 기분>의 마지막 행 ˝모두 죽게 될 거야˝가 내게는 ˝계속 늙게 될 거야˝로 읽혔다. 오마나.

백은선 시인은 1987년생이다. 이 시집은 저자의 첫 시집 <<가능세계>>가 출간된 2016년부터 2020년까지 씌어졌다. 시인의 나이 서른부터 서른 중반까지다. 수록작이 총 53편에 불과한데, 페이지 수는 해설을 제외하고 무려 255페이지. 이 시집은 단 네 줄인 <퍼펙트 블루> 를 제외하고 모든 시가 길다. 긴 이유는 ˝소설˝ 같고 ˝서사적˝이기 때문이다.

이 시집의 전체적인 느낌은 시로 쓴 고발서 같다. 시인은 따질 것이 많고 할 말이 많다. 이제까지는 꾹꾹 누르고 꼭꼭 숨겨 놓고 살았지만 더는 그리 살고 싶지도, 살지도 않겠노라 의지를 표명하듯 ˝씨발년˝ 같은 기억들을 소환한다. 그 기억들은 ˝가윗날이 귀 끝을 스칠 때˝처럼
차갑고 공포스럽다. 그 기억들은 스무 살 성인이 된 내 뒤를 졸졸졸 쫓아다니며 내 마음을 무너뜨린다. 그렇게 ˝슬프고 무섭고 화가˝ 나는 기억을 시인은 왜 불러들일까. 아니. 이런 기억들은 대개가 제 발로 기어들어 온다. 아무리 떼어내려 해도 거머리처럼 찰싹 달라붙어 당사자를 약 올리듯 괴롭힌다. 이놈의 거머리들 때문에 미쳐버릴 것 같고, 미쳐버리고 싶은 순간들이 찾아든다. 그런 방문이 잦아질 때 우리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너도 죽고 나도 죽을 것인지, 너도 살고 나도 살 것인지. 시인은 그 기억들과 함께 살 길을 모색했다. ˝죽지 않고 살아서˝ 쓰는 길을. 그 길이 가시밭길이고 방향을 모르겠는 길이어도 어떻게든 쓰고 말 거라고 시인은 다부지게 외친다.

˝골목을 헤매는 생쥐 같은 심정으로 전부 다시 쓸 거야.˝

모든 고여 있는 것은 썩기 마련이다. 기억도 마찬가지다. 백은선 시인은 ˝봉인된 검은 상자˝에 들어 있는 기억들, ˝썩고 부서지고 지독한 냄새를˝ 풍기는 기억들. 그 부패 덩어리들을 시로 쓴 이야기로 풀어 헤치고 있다. 기억 상실에 절대 걸리지 않는 기억의 응어리를 쪼개고 부수고 흐트려 놓는다. 그런 다음 우물 속 달을 내려다보듯 그것들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어느 순간 ˝가늠할 수 없는 찬란과 어둠이 함께˝ 흔들리며
˝숨 막히˝는 아름다움과 ˝서로 마주 보는 기쁜 마음˝이 찾아든다. 그러면 ˝무언가를 건너고 다른 사람이 된다˝는 느낌에 젖을 수 있다. 기억을 바꾸지는 못하지만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힘을 얻는 것. 그 느낌이 ‘도움받는 기분‘이 아니고 무엇일까. 

사진은 보름 전날밤과 보름날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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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1-05-27 12:1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학폭의 중력이 상당했던것 같네요. 당사자에겐 상자에서 꺼내는 것 부터가 고통이었을텐데 써 내면서 시인에게 치유의 글 쓰기가 되었겠어요. 여기에 마지막 사진의 조합이 놀랍습니다! 보름달. 역시 직접 찍으신거죠?물에 비친 달까지 으아...작품입니다^^*♡

행복한책읽기 2021-05-27 17:21   좋아요 3 | URL
그랬나봐요. 저자 자신과 타인의 경험들을 다 버무린 듯해요. 시집 제목을 <나는 고발한다>라고 하고 싶은^^;; 물에 비친 달처럼 보이는 것은, 가로등이에요. 저도 달처럼 보여 깜놀했다는. 시랑 상관없이 찍었건만, 이런 조합이 나올 줄이야. 산책과 시의 중력인가 봅니다. ^^

scott 2021-05-27 16:4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서로 마주 보는 기쁜 마음

모두 죽게 될 거야]
학폭에 멍든 청춘들 ㅜ.ㅜ
얼굴과 표정없는 SNS의 폭력은 넘쳐 나고
코로나로 비대면 수업 시대에 ,,,,
서로 마주 보는 기쁨 조차 모를것 같습니다.
오늘 사진은 미루야마 겐지 작품 속 달빛을 닮았네요

행복한책읽기 2021-05-27 17:26   좋아요 4 | URL
코로나 어서 끝났음 좋겠어요. 그래도 올해는 작년보다 학교 가는 날이 많아 마주 보긴 하는데. 친구들끼리 접촉을 못해서. ㅠㅠ
마주 보고 마주 잡아야 기쁨이 더해지건만. 그죠.
학폭 없는 교실을 꿈꿉니다. 그런 교실 만들어 가는 분들이 더 많다고 저는 믿어요^^

새파랑 2021-05-27 17:3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시를 읽는데 상당히 서늘한 기분이 드네요. 상처와 분노가 느껴집니다. 왠지 달 사진도 무섭고..이렇게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한다는 게 놀랍고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행복한책읽기 2021-05-28 10:09   좋아요 1 | URL
어머나. 달사진도 무서워 보여요? 시의 내용이 사진 분위기까지 이어졌나 봐요. 네. 백은선 시인은 화법이 꽤 직설적이네요. 시원한 맛이 있다는^^;;

붕붕툐툐 2021-05-27 18:0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서사적인데 짧아서 학생들도 잘 읽을 수 있을 거 같아요! 좋은 시 소개 감사합니다~~

행복한책읽기 2021-05-28 10:11   좋아요 3 | URL
네네. 이 시집은 십이삼십대에게 추천하고프더라구요. 학생들 반응이 어떨지 궁금합니다~~~^^

희선 2021-05-28 01:1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시를 보면서 이건 시인 이야기일까 하는 생각을 했네요 아주 다른 사람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니겠습니다 이 시집 나온 거 보고 사서 볼까 생각하다 사야지 하고 아직 못 샀습니다 이달이 가기 전에 살지도...

보름달 보셨군요 저는 보름이 되기 전에 봤어요


희선

행복한책읽기 2021-05-28 10:13   좋아요 3 | URL
희선님 좋아하실 것 같아요. 희선님 문체랑 좀 닮은 면도 있답니다. 읽으시거든 느낀점 공유해주시와요.^^

얄라알라북사랑 2021-05-28 16: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시로 쓴 고발서˝ 라는 말씀에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행복한책읽기 2021-05-29 10:13   좋아요 0 | URL
고발이 많습니다. 오늘의시로 올리기 힘들게 길고도 긴 시들이 많네요.^^

2021-05-28 16: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5-31 17: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5-31 23: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524 #시라는별 39 

설탕길 
- 허수경 

늙은 아내를 치매 요양원으로 보내고 
발자국을 깊이 묻으며 노인은 노상에서 울고 있다 
발자국에 오목하게 고인 것은 
여름을 먹어치우고 
잠이 든 초록 

가지 못하는 길은 
사레가 들려 
노인의 목덜미를 잡고 있다 

내가 너를 밀어내었느냐 , 
아니면 네가 나를 집어삼켰느냐 
아무도 모르게 스윽 나가서 
저렇게 설설 끓고 있는 설탕길을 걷느냐 

노인은 알 수 없는 나나들 속에서는 
늙은 아내가 널려 있는 빨랫줄 위로 눈이 내린다고 했다 

당신의 해골 위에 걸어둔 순금의 눈들이
휘날리는 나라에서 
이렇게 사라지는 것이 이상하지만은 않아서 
오래된 신발을 벗으며 
여름에 깃든 어둠은 오한에 떨며 운다 


허수경 시인의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를 거의 다 읽었다. 시집의 전체적인 느낌은 쓸쓸함, 서러움, 서글픔, 허무함 그럼에도 살아냄이다.

<설탕길>은 첫 연과 둘째 연에 ˝목덜미˝가 잡혀 읽어 내려갔는데, ˝설설 끓고 있는 설탕길˝이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 알 길이 없어 그만 ˝사레가˝ 들렸다. 허수경 시인은 이 시집에서 줄곧 소통의 불가능을 이야기한다. 나란 사람은 ˝다만 나여서˝(<섬이 되어 보내는 편지>)
고독하고, 그렇기에 나와 너 사이엔 어떻게 해도 좁혀지지 않는 간격이 존재한다.

˝늙은 아내를 치매 요양원˝에 놓고 오는 노인의 발걸음은 무겁다. 미우나 고우나 몇십 년을 동고동락한 사이였으니, 늙어도 아파도 끝까지 곁에 두고 살고픈 맘이 왜 없었을까. 다만 그러기 힘들었을 테지. 너무도 힘에 부쳤을 테지. 아내를 거기 그렇게 두고 돌아서는 발걸음이 얼마나 무거웠으면 ˝여름을 먹어치우고 / 잠이 든 초록˝이 발자국에 고일까.

늙은 아내가 가고 있는 길은 노인이 ˝가지 못하는 길˝이고 ˝알 수 없는 나날˝이다. 늙은 아내의 눈에 보이는 ˝빨랫줄 위로˝ 내리는 눈은 노인의 눈엔 보이지 않는다. 결코 메워질 수 없는 그 간격, 결코 다다를 수 없는 그 세계 앞에서 노인은 자꾸만 목이 메여 눈물을 삼키다
˝사레가˝ 들린다. 아내는 기억을 잃어가다 끝내는 사라질 것이고, 노인 역시 언제고 그렇게 사라질 것이다. 하등 이상한 일이 아니지만, 그럼에도 눈처럼 휘날리다 녹아 없어질 생은 ˝오한에 떨며˝ 울게 만든다.

엄마가 계신 요양원에 날마다 치매 아내를 보러 오는 70대 어르신이 있었다. 요양원은 경기도 양주 장흥. 어르신이 사는 곳은 경기도 남양주. 승용차가 아닌 대중교통(지하철과 버스)을 이용해 왕복 네 시간 거리였다. 어르신은 점심 시간에 맞춰 요양원에 도착해 아내와 함께 점심을 먹고 한 시간 넘게 말없는 아내 곁을 지키다 집으로 돌아가셨다. 엄마를 보러 가는 날이면 거의 어김없이 어르신이 보게 돼 어느 날 내가 물었다.
이렇게 날마다 그 먼 길을 오시는 게 힘들지 않으시냐고. 어르신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집에서 돌보던 때에 비하면 전혀 안 힘들어요. (어르신은 늘 존대어를 썼다) 내가 다리 성해서 날마다 다닐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아내는 날 못 알아보고 내가 다녀갈 줄도 모르지만, 그게 어떤 때는 마음이 아프지만, 괜찮아, 내가 알아보고, 내가 기억하면 되지, 내가 오래도록 기억해야지 하고 생각한답니다. 그러면 다리에 힘이 생겨요.˝

어르신의 답변 중 나를 가장 뭉클하게 했던 말은 ˝그러면 다리에 힘이 생겨요˝였다. 아! 눈과 가슴이 동시에 뜨끈해졌다. 코로나 19가 터진 이후 어르신은 날마다 의식처럼 행하던 아내 만나러 가기를 못하시지만, 그 날을 위해 열심히 다리 운동을 하고 계실 것이다.

인간이란 언제나 기별의 기척일 뿐이라서 
누구에게든 
누구를 위해서든
(<빙하기의 역> 중) 

오랜 시간을 함께 한 사이도 나눌 수 있는 건 고작 ˝기별의 기척˝뿐이다. 그러나 잠깐에 불과한 ˝기별˝이어도 그 잠깐이 불가능의 가능을 꿈꾸게 하는 소통의 시간이 아니겠는가. 그런 꿈이 실어주는 것이 다리의 힘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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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5-24 07:4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책읽기님 시 보니까 좋네요^^ 근데 오늘 시는 왠지 슬프네요. 할아버지의 이야기와 사연은 멋지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고 ㅜㅜ

행복한책읽기 2021-05-24 07:52   좋아요 3 | URL
좀 바쁜일이 생겨서 북플에 들어오지 못했어요. 저도 시를 읽기만 하고 글을 간만에 썼네요. ㅋ 허수경 시인 시들은 대체로 슬퍼요. 제 느낌은 그렇답니다. 어르신 이야긴, 뭉클하죠. 조용한 씩씩함이 무엇인지 보여주신 분이셨어요. 배우고 싶은^^

쎄인트saint 2021-05-24 22: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사진...걸어보고 싶은 길입니다.

scott 2021-05-25 00: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대중교통(지하철과 버스)을 이용해 왕복 네 시간 거리였다. 어르신은 점심 시간에 맞춰 요양원에 도착해 아내와 함께 점심을 먹고 한 시간 넘게 말없는 아내 곁을 지키다 집으로 돌아가셨다]
우와 이렇게 아내를 극진히 보살핀 70대 어르신이 계셨다니 믿기 힘들정도로 가슴이 아픕니다
제가 자주 가는 병원에서 항상 목격하는건 아내에게 온갖 짜증과 신경질을 부리는 폐악한 어르신들을 봐요, 종합 병원-안과-내과-이빈후과 등등 곳곳마다 못됨 성질을 부리는 어르신들이 !!!

시만큼 행복한 책읽기님의 산문을 좋아하는 1人
새벽 포스팅 올라오자 마자 댓글 단거
짠돌이 알라딘이 저장 안함
사라짐 . !!( ๑>ω•́ )۶

희선 2021-05-25 02: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설탕길은 어떤 길일지... 설설 끓는 설탕길을 걸으면 발이 데겠습니다 시도 슬프지만 행복한책읽기 님이 만나신 분 이야기도 슬프네요 그걸 슬프다고 하면 안 되겠지만... 코로나19 때문에 요양원에 자주 다니시지 못해서 마음이 안 좋으실 듯합니다 그분 다리 힘 기르고 있으시겠지요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희선
 












20210518 #시라는별 38 


아아 광주여, 우리 나라의 십자가여

- 김준태

아아, 광주여 무등산이여

죽음과 죽음 사이에

피눈물을 흘리는

우리들의 영원한 청춘의 도시여

우리들의 아버지는 어디로 갔나

우리들의 어머니는 어디서 쓰러졌나

우리들의 아들은

어디에서 죽어 어디에 파묻혔나

우리들의 귀여운 딸은

또 어디에서 입을 벌린 채 누워 있나

우리들의 혼백은 또 어디에서

찢어져 산산이 조각나버렸나

하느님도 새떼들도

떠나가버린 광주여

그러나 사람다운 사람들만이

아침저녁으로 살아남아

쓰러지고, 엎어지고, 다시 일어서는

우리들의 피투성이 도시여

죽음으로써 죽음을 물리치고

죽음으로써 삶을 찾으려 했던

아아 통곡뿐인 남도의

불사조여 불사조여 불사조여

해와 달이 곤두박질치고

이 시대의 모든 산맥들이

엉터리로 우뚝 솟아 있을 때

그러나 그 누구도 찢을 수 없고

빼앗을 수 없는

아아, 자유의 깃발이여

살과 뼈로 응어리진 깃발이여

아아, 우리들의 도시

우리들의 노래와 꿈과 사랑이

때로는 파도처럼 밀리고

때로는 무덤을 뒤집어쓸지언정

아아, 광주여 광주여

이 나라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무등산을 넘어

골고다 언덕을 넘어가는

아아, 온몸에 상처뿐인

죽음뿐인 하느님의 아들이여

정말 우리는 죽어버렸나

더 이상 이 나라를 사랑할 수 없이

더 이상 우리들의 아이들을

사랑할 수 없이 죽어버렸나

정말 우리들은 아주 죽어버렸나

충장로에서 금남로에서

화정동에서 산수동에서 용봉동에서

지원동에서 양동에서 계림동에서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

아아, 우리들의 피와 살덩이를

삼키고 불어오는 바람이여

속절없는 세월의 흐름이여

아아, 살아남은 사람들은

모두가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구나

살아남은 사람들은 모두가

넋을 잃고 밥그릇조차 대하기

어렵구나 무섭구나

무서워 어쩌지도 못하는구나

아아, 광주여 무등산이여

죽음과 죽음을 뚫고 나가

백의의 옷자락을 펄럭이는

우리들의 영원한 청춘의 도시여

불사조여 불사조여 불사조여

이 나라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고다 언덕을 다시 넘어오는

이나라의 하느님 아들이여

예수는 한 번 죽고

한 번 부활하여

오늘까지 아니 언제까지 산다던가

그러나 우리들은 몇백 번을 죽고도

몇백 번을 부활할 우리들의 참사랑이여

우리들의 빛이여, 영광이여, 아픔이여

지금 우리들은 더욱 살아나는구나

지금 우리들은 더욱 튼튼하구나

지금 우리들은 더욱

아아, 지금 우리들은

어깨와 어깨뼈와 뼈를 맞대고

이 나라의 무등산을 오르는구나

아아, 미치도록 푸르른 하늘을 올라

해와 달을 입맞추는구나

광주여 무등산이여

아아, 우리들의 영원한 깃발이여

꿈이여 십자가여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욱 젊어져 갈 청춘의 도시여

지금 우리들은 확실히

굳게 뭉쳐 있다 확실히 굳게 손잡고 일어선다.

김준태 시인의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는 1980년 5월의 참상을 처음으로 써서 5.18 민주화운동을 전세계에 알린 시이다. 작년 11월에 올린 이 시를 다시 올린다. 

1980년 6월 1일. 광주 전남고 독일어 교사였던 김준태 시인은 전남매일신문 편집국장 대리로 있던 문순태 소설가로부터 광주의 통곡을 시로 써 달라는 청을 받는다. 시인은 아내와 두 아이를 내보내고 단칸 셋방에서 109행의 시를 일필휘지로 썼다고 한다. 집필 시간이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고.

시는 1980년 6월 2일 전남매일신문 제1면에 실렸다. 이 시가 발표된 후 시인이 겪었을 고초를 우리는 짐작할 수 있다. 25일간의 도피 생활 끝에 체포되어 취조를 받았고 교사직을 버려야 했으며 이후 학원 강사와 신문사 기자로 가족을 부양했다. 또한 '5월광주동지회'를 비롯 5.18광주와 관련된 모임과 활동을 이어갔다. ​

“나는 손만 빌려줬다고 생각해요. 그러면 누가 썼느냐, 내 몸 속에 5월에 죽은 사람들이 들어와 썼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는 해원(解寃)을 해줘야지. 39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같은 생각입니다.” (경향신문 20190525 )

https://news.v.daum.net/v/20190525180019424​

대학 신입생 초입에 내가 알던 대한민국이 아닌 대한민국을 알게 만든 세 사건이 있었다. 제주 4.3 사건, 5.18 광주항쟁 그리고 전태일 분신. 몰라서 부끄러웠고, 모르게 해서 분노했다. 

202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아 가수 안치환은 김준태 시인이 쓴 '노래'라는 시를 빌어 다시 한 번 광주의 넋들을 기렸다.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이 분명 있다. 

“봄이 오면 먼 산의 바람/ 먼 산의 구름, 먼 산의 꽃/ 모두 우리 님이어라/ 모두 우리 가슴이어라/ 봄이 오면 먼 벌판의 불빛/ 먼 벌판의 뼈, 먼 벌판의 나무/ 모두 우리 아픔이어라/ 모두 우리 노래이어라.” (김준태 '노래') 

2014년에 한스미디어에서 김준태 시인의 영역 시집이, 2018년에는 일본어판 시집이 출간되었다. 2021년 5월 이정국 감독은 영화 <아들의 이름으로>에서 5.18을 다른 시선으로 이야기한다. 


미얀마에서는 우리의 5.18 같은 민주화 투쟁이 100일 넘게 이어지고 있다. 기도밖에 할 수 없는 것이 무력하지만, 나는 믿는다. 미얀마 시민들이 결국은 이겨낼 거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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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5-18 13: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늘이 5월18일이네요. 그날의 희생이 이렇게 잊혀지지 않고 기억할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scott 2021-05-18 17: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봄이 오면 먼 산의 바람/ 먼 산의 구름, 먼 산의 꽃/ 모두 우리 님이어라/ 모두 우리 가슴이어라/ 봄이 오면 먼 벌판의 불빛/ 먼 벌판의 뼈, 먼 벌판의 나무/ 모두 우리 아픔이어라/ 모두 우리 노래이어라
이 노래 들으면서
오늘 이땅에서 힘없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간 이들
잊지 말기, 영원히 ㅠ.ㅠ

희선 2021-05-19 02: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올해로 마흔한해라니... 시간이 그렇게 흘렀네요 그때 이 시를 써서 시인이 참 힘들었겠습니다 이제는 누구나 볼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미얀마 길어지는군요 좋아져야 할 텐데, 이런 생각밖에 못하겠습니다


희선
 

20210517 #시라는별 37 

가장 늙고 가장 젊은 날 
- 행복한책읽기 

오늘은 내가
살아온 나날 중 가장 늙은 날
살아갈 나날 중 가장 젊은 날 
내가 가장 늙고 가장 젊은 날
늙어 서럽고 젊어 설레는 날 ​

이 나이쯤 되면 
뭔가 되어 있을 줄 알았더니 
뭔가 쥐고 있을 줄 알았더니
별거 없는 나를 보게 될 줄이야 
이럴 리 없는 나와 마주할 줄이야  

그렇다 해도 
별거였던 일들을 별것 아닌 일들로
만든 별별스런 내가 있었고 
별것 아닌 나를 세상 별것인 양 
바라보는 이들이 있기에 

오 늘 도 산 다 


엄마 생일이라고 딸이 건넨 책들을 받아들고 속으로 피식 웃고 겉으로 푸하 웃었다. 

˝내 어머니는 괴물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한 번씩 그렇다. 그렇지만 나는 괴물을 사랑한다. 그 힘이 나마저 괴물이 되지 않게 했다.˝( 《푸른 침실로 가는 길》)

딸이 내게 하고 싶은 말을 책으로 대신 전하는 듯했다. ‘엄마, 괴물은 되지 말아 주세요.‘ 괴물까진 되고 싶지 않은데, 흠, 중딩 딸보다 내가 더 격한 사춘기를 겪는 듯하다. ㅠㅠ

딸은 3년 전부터 엄마 생일 선물로 책을 고른다. 재작년엔 초딩 딸의 안목에 깜놀했고, 작년엔 내가 원하는 책을 사주었으며, 올해는 엄마 취향을 크게 빗나갔다. 물론 내색하지 않았고, 어떻게든 읽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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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22598 2021-05-17 04:4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어느것 하나 멋지지 않은 선물이 없네요. 꽃, 책, 케잌..행복한님은 좋으시겠당 ^^ 생일 축하드려요!!!

행복한책읽기 2021-05-17 10:03   좋아요 3 | URL
하하. 가족은 힘이자 짐입니다. 양가적 감정을 젤 크게 느끼게 하는 존재들이죠. 한님도 아시지요. 축하 달게 받겠슴다. 제가 요즘 응원이 필요한 때라.^^;;;; 고마워요~~~~~

붕붕툐툐 2021-05-17 06:4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야~ 중학생 딸이 엄마 생일 선물로 책 고르는 거 실환가요? 진짜 기특하네요~👍
행복한 책읽기님 선물이 풍성합니다!! 꽃도 다 너무 예뻐요!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행복한책읽기 2021-05-17 10:06   좋아요 3 | URL
히히히. 딸은 클수록 엄마 속을 좀 볼 줄 아네요. 물론 책보다 자신들을 더 사랑해 달라고 말하지요. 툐툐님의 진심 축하가 진심 전해져 이 아침에 기분 업업 됐어요. 감사합니다~~~~^^

새파랑 2021-05-17 08:0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와 완전 멋지내요. 시도 좋고 사진은 더 뿌듯하네요 ^^ 행복한 책읽기님의 생일을 축하드려요~!

행복한책읽기 2021-05-17 10:09   좋아요 4 | URL
새파랑님 감사해요. 사실 저 사진 속처럼 뿌듯한 때는 진짜 순간이랍니다. 저런 순간에 기대 긴긴 시간을 버틴답니다.^^

syo 2021-05-17 09:0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읽기님 축하합니다 ㅎㅎㅎㅎ 꽃과 케잌과 책이라니,
뭐 아름다움이 뭔지 제대로 보여주겠노라 하는 조합인가요ㅎ

행복한책읽기 2021-05-17 10:14   좋아요 4 | URL
ㅎㅎㅎ syo님 따라해봤으유. 사실 생일 돌아오는 거 싫답니다. 세월 가는 건 막을 수 없으니, 굴러가는 세월 마차에 꽃과 케익과 책이라도 싣고 올해도 덜컹덜컹 가볼라구요^^

잠자냥 2021-05-17 10:0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꽃, 케익, 책 참 예쁩니다. ㅎㅎ

행복한책읽기 2021-05-17 10:16   좋아요 4 | URL
그죠. 인생 뭐, 이 나이에 저 세 가지를 챙겨주는 사람들 옆에 둔 것도 대단한 복이다 싶다가도, 아이고 여태 뭐하고 살았나 하는 자괴감도 든다는.^^;;;

미미 2021-05-17 10:1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별별스런 나를 특별하게 만드는
별빛같은 아이들이네요!😊😘
예쁘고 근사합니당~ㅎㅎ♡

행복한책읽기 2021-05-17 10:18   좋아요 4 | URL
빙고!! 별빛같다는 걸 바로 알아봐 주시는 미미님. 역쉬. 아이들은 애물단지이자 별사탕들이랍니다.^^

scott 2021-05-17 16:4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새벽 시에 눈뜨자 마자 댓글 썼는데 ㅠ.ㅠ
짠돌이 알라딘 사이트 넘 불안정,,,

예쁜 따님의 꽃다발과 케익 책 선물 옆에
전 이런거 놓고 갑니다~~

(`“ •. (`“•.¸🌹¸.•“´) ¸. •“´)
🌸«•🍃 LOVING MOM🍃•“»🌸
(¸. • “´(¸.•“´🌹 `“•)` “° •.¸)

사랑스러운 따님 맛나는거 많이 해주기~

전 저나이때 부모님 생신날 선물 조공하고
제 생일 날 더 큰거 바랬었음 (=‘▼‘=)

행복한책읽기 2021-05-17 23:59   좋아요 1 | URL
scott 님~~~~ 넘넘넘넘 예쁘다요. 아. 이모티콘 꽃다발 같아요. 감사감사. 울애들도 scott님처럼 되로 주고 말로 받으려 해요. 특히 딸이 그렇습니다. ㅋㅋㅋ
알라딘은 제가 이노~~옴 할게요.^^

희선 2021-05-17 23: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행복한책읽기 님 태어난 날 축하합니다 좋은 날이었을 것 같네요 그날이 지나도 늘 잘 지내시기 바랍니다


희선

행복한책읽기 2021-05-18 00:00   좋아요 1 | URL
희선님 고마워요. 비 내리는 좋은 날이었어요. 힘 내 살아볼 작정입니다. 얼마나 힘을 내려나 몰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