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권리 옹호 고전의 세계 리커버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지음, 문수현 옮김 / 책세상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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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08

<<여성의 권리 옹호A Vindication of the Rights of Woman>>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 문수현 옮김 / 책세상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의 <<여성의 권리 옹호>>는 언젠가 한 번은 읽어 보아야지 하는 책이었다. 여성 문제에 아주 민감한 편은 아닌 사람인지라 미루고 미루고 또 미루다 지금 하고 있는 작업과 관련이 있어 드디어 구매해 띄엄띄엄 읽었다. 책장을 넘길수록 마크 트웨인이 고전에 대해 정의한 명언이 떠올랐다.

˝고전이란, 사람들이 칭송은 하지만 절대 읽지 않는 책(Classicㅡa book which people praise and don‘t
read)˝

이 책의 출간연도는 1792년이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228년 전. 책세상 번역본은 총 13장으로 구성된 원본 중 7장만 선별 번역했다. 완역본으로는 2008년 한길사에서 출간한 것을 2014년 연암사에서 출간한 개정판(손영미 옮김)이 있다.

재미로 읽을 만한 책은 아니지만 이제라도 뒤적거려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책이었다. 재미를 넘어 당대 여성 지식인의 여권, 나아가 인권 의식에 대한 혁명성과 한계성을 들여다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여성의 권리 옹호>>는 독일 사회주의의 대표적인 정치가이자 사상가인 아우구스트 베벨의 <<여성론>>(1879), 시몬 드 보부아르의
<<제 2의 성>>(1949)과 더불어 서구 페미니즘의 역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문헌 중 하나로 꼽힌다. 남성에게는 이성, 자유, 평등을, 여성에게는 순결, 아름다움, 순종 등을 권고하던 당대의 계몽사상가들, 특히 루소를 비판하기 위해 쓰인 것이 바로 <<여성의 권리 옹호>>이다. 최초의 페미니즘 저서로 꼽히는 이 책은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권리를 논하는 선을 넘어 인류 전체의 발전으로 논의를 확장함으로써 계몽사상의 남성 편향성을 극복하고 공적인 영역을 보완하는 균형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9 옮긴이의 ‘들어가는 말‘ 중)

순결, 아름다움, 순종은 21세기인 현재도 여성에게는 여전히 권고되는 덕목들로 보인다. 남자들에게 순결하라, 순종하라, 이렇게 말하는 것을 나는 들어본 적이 거의 없다. 최근 정의당의 한 의원이 원피스 차림으로 국회에 등원한 일을 놓고 일어난 논란. 내 눈에는 신선하고 아름답게만 보이던데, 어떤 이들(특히 남성 의원들)에겐 국회 권위(그것이 있기는 했던 걸까?)에 대한 불복종으로 비친 듯하다. 그녀는 순종하지 않았다. 그래서 욕을 바가지로 먹었다. 나아진 것은 그만큼의 응원과 격려도 곁들여졌다는 것이 울스턴크래프트가 살았던 시대와 달라진 점이리라.

울스턴크래프트는 신체 조건의 차이를 제외하고 남녀의 정신에 우위가 있을 수 없고, 여성도 남성과 마찬가지로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권리를 똑같이 향유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지당한 말씀이건만 이런 발언조차 당시에는 혁명적이었다. 아담의 갈비뼈에서 탄생한 존재 주제에 어디 감히 남성과 동등하다고 주장하느냐고, 생각과 행동이 시대에 앞선 자들은 시대에 순응해 사는 이들보다 삶이 더 녹록치 않다. 울스턴크래프트의 삶도 그랬던 것 같다. 유부남 화가와의 스캔들, 사생아를 낳은 미혼모. 두 번의 자살 시도. 산욕열로 인한 갑작스런 죽음 (<<프랑켄슈타인>>의 저자 메리 셸리를 낳고 열흘 후 죽었다) .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는 고작 서른여덟 해를 살았다. 그녀는 스스로를 ˝닦인 길을 밟아가기 위해 태어나지 않은 사람˝이라고 규정했다. 이 책을 통해 그녀가 이루고자 했던 선진 세상을 조금 엿보았다. 그녀의 꿈은 현재진행중이다.

여성 교육 개선의 하나로 소년소녀가 같은 과목을 배우도록 할 것, 국가 재원으로 교육을 시킬 것(와우. 무상교육), 재산의 소유와 관리에서 여성들에게도 평등한 권리를 줄 것(평등주의적 결혼법 주창), 중산계급 뿐 아니라 노동자계급까지 아우르는 보통선거를 실시할 것, 부부간의 관계는 평등하고 독립적일 것 등등.

이 책에서 내가 실소를 터뜨리며 가장 재미있게 읽은 구절들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남편들 역시 그들의 내조자와 마찬가지로 대부분 너무 크게 자란 아이들일뿐이다.˝(41 ‘너무 크게 자란 아이들‘ 무릎을 쳤다)

˝그녀의 남편이 연인이기를 멈출 때ㅡ그 시간은 필연적으로 오게 된다ㅡ남편을 기쁘게 하려는 그녀의 욕망은 활기를 잃거나 비참함의 근원이 된다. 그리고 아마도 모든 열정들 중 가장 덧없는 것인 사랑은 질투 혹은 허영에 자리를 내주게 된다.˝(52 푸하. 결혼도 해보지 않은 처자가 이렇게 된다는 걸 어찌 알았을까)

˝여성의 지성을 확대함으로써 여성의 정신을 강화하라. 그러면 맹목적인 복종은 종식될 것이다. 그러나 권력은 언제나 맹목적인 복종을 얻고자 하기 때문에 독재자들과 관능주의자들이 여성들을 어둠 속에 묶어두고자 노력하는 것이 당연하다.˝(45 울스턴은 줄곧 ‘맹목‘을 경계한다. ‘깨어나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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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적인 것의 사회학
기시 마사히코 지음, 김경원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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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19 

‘무의미한 인생의 의미‘

이 책을 구매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줄 여겼더니, 알라딘 이력을 뒤져보니 올 초였다. 완독을 하기까지 6개월이 넘게 걸린 셈. 지인의 추천으로 도서관에서 빌려 읽다 소장용이라는 느낌에 중고로 구매했는데, 어제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고 책을 덮으며 든 생각은, 역시 사길 잘했어였다. 추천한 지인은 뒤로 갈수록 별로라고 했지만 나는 끝까지 좋았다. 기시 마사히코의 다른 책들을 더 들여다보고 싶을 만큼.

이 책을 읽고 다시 확인한 점은, 내가 이런 류의 담담한 문체를 정말 좋아한다는 사실이다. 나란 사람은 정작 호들갑을 떠는 부류에 가까운데, 왠일인지 글은 너무 유려하거나 화려하기보다 담백하거나 심지어 건조한 문체 쪽이 더 끌린다. 바꾸어 말하면, 시시콜콜 구구절절 휘황찬란 미사여구, 이런 글들을 칭송하기는 하나 아주 선호하지는 않는 듯.

아무튼, 기시 마사히코의 글은 수려함과는 거리가 멀지만 사색에 사색을 거듭하게 만드는 동력을 지니고 있다. 그에게는 학자들이 곧잘 빠져드는 ‘학자연‘하는 잘난 척이 없어 보인다. 그의 글에는 어려운 용어들과 이해할 수 없는 문장으로 지적 우위를 자랑질하는 허세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참 마음에 든다. 글이 어렵지는 않으나 그렇다고 술술 읽히지만도 않는다. 그의 문구들은 읽고 나서 쉬어 가는 템포를 던져 준다. 너도 이런 생각 해봤니? 못 해 봤으면 한 번 해볼래? 라고 묻고 있는 듯하다. 그의 글은 생각하고 그 생각을 글로 옮겨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하는 것들이 많았다. 오늘은 그 중 하나를 써보려 한다.

정확히 반백 살이 넘은 후로, 전에 없이 인생의 허무함을 자주 느낀다. 더 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더 살아봤자 무슨 기쁨이 있을까, 더 산다고 뭐 그리 대단한 일을 해낼까. 자살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고 실현해 보려 한 때가 딱 한 번 있었다. 어떤 계기로 딱 접었다.
지금은 ‘자살‘을 생각하진 않는다. 다만 삶을 더영위하는 것에 대한 의문이 자꾸 고개를 쳐들 뿐. 이 책의 저자 기시 마사히코는 나보다 두 살이 많은 67년생이다. 그가 이 책에 수록된 글들을 쓴 것은 2013년과 2014년으로 반백 년을 얼마 남겨 두지 않은 때였다. 무수한 인생들, 특히 거리의 인생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쓰는 일을 업으로 삼아온 저자가 50년이 채 되지 않은 자신의 인생과 50년보다 짧거나 긴 여러 인생의 면면을 들여다보고 걸러낸 생각을 말한다.

˝되풀이하지만, 여기에서 나는 누구나 자기실현의 가능성이 있다든가 누구나 꿈을 이룰 수 있다는 말을 적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 오히려 우리 인생은 몇 번이나 기술한 것처럼, 아무것도 되지 못하고 단지 시간만 흘러가는 듯한, 그런 인생이다. 우리 대다수는 배신당한 인생을 살고 있다. 우리 자신이라는 것은 태반이 ‘이럴 리 없었던‘ 자신이다.˝(191)

‘이럴 리 없었던‘ 자신. 스무 살이 되기 전까지, 혹은 스무 살이 넘어서도 우리는 ‘어떤‘ 자신을 꿈꾼다. 그 꿈대로 살고 있는 사람은 정말로 거의 없는 듯하다. 또한 하나의 꿈이 이루어졌다고 그 꿈대로 삶이 나아가지도 않는다. 일류 대학만 가면, 대기업에 취직만 하면, 고시에
합격만 하면, 결혼만 하면, 아이만 낳으면, 내 집만 생기면 등등등. 그런 것들이 다 이루어지든 이루어지지 않든, 문제는 삶이 거기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계속 살고 또 살아야 한다. ‘이럴 리 없었던‘ 자신과 더불어.

그럼 왜 살아야 하지. 삶의 의미를 찾으려 들면 더욱 수렁이고 더욱 미로다. 그것을 알기에 나는 되도록 ‘의미‘ 따위 묻지 않는다. 그냥 산다. 강물처럼 시간은 흐르니까.

˝우리 인생에는 결여되어 있는 것이 적지 않다. 우리는 대단한 천재도 아니고, 부자도 아니며, 완전한 육체도 아니다. 보잘것없는 자신과 죽을 때까지 함께 지내야 한다. / 우리는 우리가 놓인 이 처지를 어떤 벌을 받았다거나 누구의 탓이라고 생각해 버리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말할 필요도 없이 자신이 자신으로 태어났다는 것은 어떤 벌을 받는 것도 아니고 누구의 탓도 아니다. 그것은 단지 무의미한 우연이다. 그리고 우리는 무의미한 우연으로 인해 선천적으로 타고난 자신으로 존재하다가 죽어 가는 수밖에 없다. 다른 인생을 선택하기는 불가능하다. / 여기에는 어떤
의미도 없다.(214)

˝무의미한 우연˝이지만 그럼에도 이 인생에 실낱 같은 의미가 있을 수도 있음을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지만 언제나 내 머리 한구석을 차지하는 생각이 있다. 우리의 무의미한 인생이 자기는 전혀 알 수 없는 어딘가 멀고 높은 곳에서, 누군가에게 의미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195)

엄마가 계신 요양원에 날마다 아내를 보러 오시는 어르신이 있다. 그 아내분은 우리 엄마보다 훨씬 젊은데 치매가 일찍 오셨고 치매 속도도 빨라 언어와 운동 감각을 거의 잃고 온종일 누워 계신다. 요양원은 경기도 양주 장흥. 어르신이 사는 곳은 경기도 남양주다. 자차를 쓰지 않고 지하철과 버스를 이용해 두 시간이 걸려 요양원에 오신다. 어르신 손에는 항상 책이 들려 있다. 어르신은 점심 시간에 맞춰 요양원에 당도해 아내와 점심을 함께 먹고(도시락을 싸 오신다) 한 시간 넘게 말 없는 아내 곁에 앉아 계시다 집으로 돌아가신다. 어느 날엔가, 날마다 오는 것이 힘들지 않으시냐고 어르신께 물었다. 어르신의 대답은 이랬다.

˝집에서 돌보던 때에 비하면 전혀 안힘들어요.(어르신은 늘 존대어를 썼다) 내가 다리 성해서 날마다 다닐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요. 아내가 날 못 알아보고 내가 다녀갈 줄도 모르지만, 그게 어떤 때는 마음 아프지만, 괜찮아, 내가 알아보고, 내가 기억하면 되지. 내가 오래도록 기억해야지 하고 생각한답니다. 그러면 다리에 힘이 생겨요.˝

나는 어르신의 말에 눈과 가슴이 동시에 뜨거워졌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그렇다. 내 어미는 아직 나를 알아보지만, 내가 다년간 사실은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아직 아프지 않은, 병이 들지 않은 이들은 말한다. 저렇게 되기 전에 죽었으면 좋겠다고. 나도 그렇다. 저리 사는 내 어미의 삶이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다. 날마다 아내에게 다녀가는 어르신이 한 말처럼 내게도 어느 날 그런 깨달음이 왔다. 엄마의 저런 삶조차 하나의 삶이라고. 삶에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엄마가 기억하지 못하면 내가 기억하면 된다고. 나 또한 기억을 잃으면 내 자식이, 자식 아닌 다른 누군가가 엄마를 돌본 나를 기억해 줄 거라고. 삶의 기억은 그렇게 순환되는 것이라고. 그래서 나는, 하루 스물네 시간 중 엄마가 환히 웃는 시간은 고작 15분이 될까 말까 하지만, 그것조차 금세 까먹지만, 엄마의 이 삶도 기꺼이 껴안게 되었다. 또한 아직 멀쩡하다는 인간들이 잘 저지르는 시건방진 동정과 안쓰러움에서 약간 놓여날 수 있었다.

기시 마사히코의 책은 내게 이런 이야기와 사색을 떠올릴 수 있게 해주었다. 그래서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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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폐허를 응시하라 - 대재난 속에서 피어나는 혁명적 공동체에 대한 정치사회적 탐사
레베카 솔닛 지음, 정해영 옮김 / 펜타그램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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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711

《이 폐허를 응시하라》 리베카 솔닛/정해영/펜타그램(2012)
대재난 속에서 피어나는 혁명적 공동체에 대한 정치사회적 탐사 ​

나는 리베카 솔닛의 애독자다. 내 책꽂이 한 칸의 한 귀퉁이는 솔닛의 책들로 채워져 있다. 애독자라지만 완독한 책은 한 권뿐이다. 솔닛의 책들은 그저 꽂혀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감을 준다. 그리고 태평양 건너 아주 멀리 사는 그녀를 가까운 존재로 느끼게 해준다. 그것이 작가가 가진 힘일 것이다.

솔닛 본인이 뽑는 듯한 제목들에는 일관된 맥락이 있다. 역설이다. 《멀고도 가까운》, 《어둠 속의 희망》, 《길 잃기 안내서》,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Mansplain》, 그리고 오늘 얘기하려는 《이 폐허를 응시하라 A Paradise Built in Hell: The
Extraordinary Communities》

이 책을 처음 읽은 것은 2016년 6월이다. <<멀고도 가까운>>에서 저자가 풀어내는 사유와 글쓰기 방식이 가랑비처럼 나를 적셨다. 그래서 내쳐 읽은 것이 이 책이었다. 4분의 1정도 읽다 도서관에 반납하며 언젠가 다시 읽을 날을 기약했다. 코로나19가 전세계를 강타한 후 그 기세가 꺾일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서 라디오프로며 팟캣이며 여기저기서 이 책이 자주 거론되었다. 기억의 소환. 이번에는 알라딘 중고로 책을
구매했다.

표지 디자인을 보라. 지진이 일어났는지 땅이 쩍쩍 갈라져 있다. 처참하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그 땅 끝에 서 있는 높고낮은 건물들은 금 간 데 없이 멀쩡히 서 있다. 지옥 위에 세워진 천국. 리베카 솔닛이 말하려는 천국은 물질적 풍요가 넘쳐나고 정신적 고통이 사라진 천국이 아니다.

˝재난은 그 자체로는 끔찍하지만 때로는 천국(혹은 유토피아)으로 들어가는 뒷문이 될 수 있다. 적어도 우리가 되고 싶은 사람이 되고, 우리가 소망하는 일을 하고, 우리가 형제자매를 보살피는 사람이 되는 천국의 문 말이다.˝(13)​

사실 솔닛이 그리는 재난 유토피아는 지나치게 낙관적이라는 느낌도 없지 않다. 인간이 어디 그리 선하던가. 물론 솔닛도 그 점을 잘 알고 있다. 다만 그녀가 주목하는 것은 많은 것이 파괴돼 아무것도 피어나지 못할 것 같은 폐허 속에서도 새싹 하나가 단단한 바닥을 뚫고 올라와 세상을 초록으로 물들일 수 있다는 역사성이다. 그녀는 재난이 가지는 사회적 의미를 다섯 가지의 사례를 통해 현장감 넘치는 이야기와 깊이 있는 통찰로 풀어나간다.

내가 솔닛의 글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어느 독자가 얘기했듯이 ˝우리가 당연하다고 받아들이는 통념의 벽에 구멍을 내기˝ 때문이다. 이런 글은 머리와 가슴에 동시에 망치질을 한다. 정신이 번쩍 들고 지성이 반짝 켜진다.

코로나19가 종식되기 전에 완독할 수 있을 것 같다. 재앙의 형태는 다르지만 코로나 19와 같은 재난이 닥쳤을 때의 반응에 대해 솔닛은 이렇게 말한다.

˝재난에 대한 반응은 어느 정도는 우리가 누구냐에 달려 있다. 언론인은 장군과 다른 의무를 지는 법이다. 하지만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느냐는 우리 믿음의 결과이기도 하다. 윌리엄 제임스(실용주의 철학자. 헨리 제임스의 형)의 철학의 주된 관심은 진실이 무엇인가보다 어떤
믿음이 어떤 결과를 낳는가이다. 즉, 믿음이 어떻게 세계를 형성하는지에 초점을 맞추었다. 제임스는 많은 것을 믿고 많은 것을 생각했으며, 지진이 그의 생각에 연료를 공급했다. 더 정확히 말해서, 지진은 그가 생각해온 많은 것들에 영향을 끼쳤다.˝ (82)

우리 각자는 현재의 재난에 어떤 믿음으로 어떤 대응을 하며 어떤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는가. 묻고 답하는 책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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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 - 하워드 진의 자전적 역사 에세이, 개정판
하워드 진 지음, 유강은 옮김 / 이후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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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12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 You can‘t be Neutral On a Moving Train》하워드 진/ 유강은 옮김/
이후(2002)
- 하워드 진의 자전적 역사에세이

역사학자이자 사회운동가인 하워드 진은 노엄 촘스키와 더불어 미국을 대표하는 ‘실천적 지식인‘이다. 2008년 <<하워드 진, 교육을 말하다>>(궁리)를 읽고 나는 이분의 철학과 걸어온 길에 감탄하며 속으로, 내 멋대로 ‘내 인생의 스승‘ 같은 존재로 삼아버렸다. 1922년에
태어난 하워드 진은 2010년 1월 27일에 생을 마감했다. 향년 87세. 심장마비였다. 그의 부고 기사를 신문에서 접하고 나는 또 속으로 그분의 명복을 빌었다. 더 나은 세상, 더 평등한 세상, 더 정의로운 세상을 위해 많은 책을 쓰고 많은 일을 해준 것에 감사하면서. 나와는
일면식도 없는 누군가를 ‘인생의 스승‘으로 삼을 수 있게 된 것에 기뻐하면서.

그러나 내가 읽은 이 저자의 책은 단 두 권이다.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는 <<교육을 말하다>>로부터 4년 뒤인 2012년에 읽었다. 나는 내 책꽂이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에 이 두 책을 나란히 세워놓고 내 인생의 나침반으로 삼아야지 생각했다.

표지를 보면 노학자의 앞모습과 뒷모습의 사진이 찍혀 있다. 다르게 보기. 사물도 사람도 세상도 어떤 방향에서,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보이고 해석될 수 있다. 표지 디자인이 저자의 의도를 반영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이 책에서 저자는 ˝인류의 잔인한 행위들에 대한 관례적인 나열과는 다른 역사 읽기˝(10)를 시도한다.

˝나는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은 객관성을 가장하지 않았다. 학생들에게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고 말하곤 했다. 몇몇은 이 은유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는데, 어떤 학생들은 이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 그 의미를 자세히 분석해 보기까지 했다. 다른 학생들은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바로 알아챘다. 이미 사태가 치명적인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고, 여기서 중립적이라 함은 그 방향을 받아들이는 것을 의마한다는 사실을.˝(16)

이 대목을 읽었을 때 나는 무릎을 쳤다. 객관성이라는 것은 빛 좋은 개살구 같은 말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언론이 객관성이라는 허울 아래 내놓는 팩트 체크들. 그러나 팩트는 선별되는 그 순간부터 이미 객관성에서 멀어진다. 선별에는 고른 자의 주관이 담겨 있을 수밖에 없다. 그것을 알기에 저자는 자신이 경험하고 인지한 세상을 객관성으로 치장하지 않고 소외된 이들의 입장에서 편파적으로 이야기한다. 그가 말하고 있는 역사들도 다 사실들이다. 다만 물 속 깊이 감춰져 있던 그 사실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려 만 천하에 알렸을 뿐이다.

˝좋지 않은 시대에 희망을 갖는다는 것은 단지 어리석은 낭만주의만은 아니다. 그것은 인류의 역사가 잔혹함의 역사가 아니라, 공감, 희생, 용기, 우애의 역사이기도 하다는 사실에 근거한 것이다. 이 복잡한 역사에서 우리가 강조하는 쪽이 우리의 삶을 결정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만약 최악의 것들만 본다면, 그것은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을 파괴할 것이다. . . / 아무리 작은 것일지라도 우리가 행동을 한다면, 어떤 거대한 유토피아가 미래를 기다릴 필요가 없다. 미래는 현재들의 무한한 연속이며, 인간이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바대로, 우리를 둘러싼 모든 나쁜 것들에 도전하며 현재를 산다면, 그것 자체로 훌륭한 승리가 될 수 있다.˝(289)

그는 자신의 저 말대로 한평생을 살다갔다. 내가 이분을 더욱 존경하게 된 일화가 있다. 부산에 있는 청소년 인문학 서점 ‘인디고 서원‘의 청년들이 2009년 미국행 비행기를 타고 보스턴 대학 연구실로 날아가 하워드 진과 긴 인터뷰를 했다. 평생을 사회정의와 평등세상을 꿈꾸며 저항하고 투쟁해온 이 분에게 젊은이들이 꼭 지켜나가야 할 소중한 가치가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이 분이 한 대답은 자유니, 정의니, 평등이니 하는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그 가치는 ˝Kindness(친절함)˝였다고.

하나의 죽음을 놓고 얼마나 많은 설왕설래가 이어지는지. 죽음도 이후의 분분함도 그저 참담하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상냥하자고, 관대하자고
한 이 분의 말씀이 더욱 생각났다. 따스함이 결여된 비판은 보편성과 지속성을 획득하기 어렵다.

덧붙이는 말. 이 책은 2016년에 개정판이 나왔다. 표지 디자인이 노학자의 주름진 얼굴 캐리커처로 바뀌었다. 짙은 눈썹에 날카로운 눈매. 하지만 나는 기억한다. 사람과 세상을 향한 이분의 선한 미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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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적인 것의 사회학
기시 마사히코 지음, 김경원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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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709
​<<단편적인 것의 사회학>> 사회학자, 사람의 이야기를 듣다/ 쓰다  / 기시 마사히코/ 김경원 옮김/ 이마(2016)

올해 <<진리의 발견>> 다음으로 애장하게 될 것 같은 책이다. 표지 사진은 어느 건물의 일부이다. 제목을 따라가자면 저 표지에서 어떤 사회를 그릴 수 있을까. 대도시의 풍경과는 거리가 멀고 2,3층 건물들이 줄지어 있고 사람들이 아주 많이 살지는 않는 소도시일까.
 
이 책의 저자 기시 마사히코는 사회학자이다. 좀 남다른 사회학자이다. 그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한다. ˝사회학을 연구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내 경우에는 한 사람씩 찾아가 어떤 역사적 사건을 체험한 당사자 개인의 생활사를 듣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 . / 통계 데이터를 활용하거나 역사적 자료를 뒤적이거나 사회학적 이론 틀로 분석하는 것이 내가 하는 작업이다. 하지만 정말 좋아하는 일은 분석할 수 없는 것, 그냥 그곳에 있는 것, 색이 바래서 잊혀 사라지는것이다.˝ (머리말)

​평론가와 해석이 난무하는 시대에 저자는 제삼자인 인터뷰어가 남의 인생을 멋대로 해석해도 되는 것이냐고 자문한다. 한 사람의 이야기를 사회학
이론이나 자신의 협소한 판단으로 재단하지 말고 삶 그 자체, 사람 그 자체를 들여다보아야 제대로 된 이야기를 대면할 수 있다고 말한다. 나는 저자의 이런 견해에 적극 공감한다. 내가 내 어미를 존중하게 된 계기도, 그녀가 삶을 근사하게 살아서가 아니라 내가 알지 못하는 숱한 역경과 절망과 허무함의 늪에서도 그 늪을 어떻게든 빠져나와 살아냈다는 것을, 어느 순간, 알아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때 내게 찾아든 감정은 ‘연민‘이었다. 그리고 ‘사랑‘이었다.

정보가 난무하지도 난해한 문구가 가득하지도 않은 대신, 이 책은 사람 이야기와 저자의 ‘사색‘으로 넘실거린다. 시를 읊듯 조근조근 풀어나가는
저자의 사색은 마음의 눈과 귀를 활짝활짝 열어준다. 이따금 입가로 배시시 웃음이 흘러나오기도 하고, 아, 그래, 나도 이런 생각했는데, 난 왜 이렇게 근사하게 말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과 질투감이 동시에 든다. 가령 이런 생각,

˝우리가 갖고 있는 행복의 이미지는, 때로, 다양한 형태로, 그것을 얻을 수 없는 사람들에게 폭력이 된다. 이를테면 행복을 믿은 탓에 행복에서 길을 벗어나 버렸을 때는 이미 대처할 수 없을 만큼 손을 쓸 수 없는 상태일 경우가 있다.˝(108)
˝우리는 고독하다. 뇌 속에서는, 우리는 특히 고독하다. 아무리 서로 사랑하는 연인이라도,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뇌 속에까지 놀러와 주지는 않는다.˝(132)

애장하고 싶은 만큼 강추하고 싶은 책이다. 우리는 해석, 혹은 평론이란 미명 하에 누군가를 깎아내린다. 아니면 비방, 억측, 침소봉대로 누군가를 죽여버린다. 말이 칼이 되고 있는 세상. 이 책은 그대들, 제발, 쫌, 그러지 말라고 조용히 질책하고 있다. 물론 저자는 나의 이런
해석(^^)에 뜨아해할지도 모르지만.

˝누구에게도 숨겨 놓지 않았지만, 누구의 눈에도 보이지 않는 서사는 아름답다. 철저하게 세속적이고, 철저하게 고독하며, 철저하게 방대한 훌륭한 서사는 하나하나의 서사가 무의미함으로써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이다.˝(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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