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여애반다라 문학과지성 시인선 421
이성복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210131 시라는별 7 

나무에 대하여 
- 이성복 

때로 나무들은 아래로 내려가고 싶을 때가 있을 것이다. 나무의 몸통뿐만 아니라 가지도 잎새도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고 싶을 것이다 무슨 부끄러운 일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남의 눈에 띄지 않고 싶을 때가 있을 것이다 왼종일 마냥 서 있는 것이 부담스러울 때가 있을 것이다.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 제 뿌리가 엉켜 있는 곳이 얼마나 어두운지 알고 싶을 때가 있을 것이다 몸통과 가지와 잎새를 고스란히 제 뿌리 밑에 묻어 두고, 언젠가 두고 온 하늘 아래 다시 서 보고 싶을 때가 있을 것이다


<래여애반다라>는 이성복 시인의 일곱 번째 시집으로 <아, 입이 없는 것들> 이후 십 년만인 2013년에 출간되었다. 시인의 나이는 61세. 내가 이 시집을 정확히 언제 구매했는지 기억에 없다. 알라딘 구매력을 훑으면 찾을 수 있겠으나 귀찮아서 하지 않는다. 사기만 하고 펼치지 않은 책이 여러 권이다.

<남해금산> <호랑가시나무의 기억>을 구매해서 읽었다 생각했으나 책이 보이지 않는다. 또한 읽은 줄 여기나 내용이 기억에 없다. 이것이 시 읽기의 맹점이다. 기억 상실에 따른 기억 부재.

발음도 힘든 시집의 제목 ‘래여애반다라‘는 신라 향가인 ‘풍요‘(혹은 공덕가)의 한 구절이라고 한다. 풀이하면 ‘오라, 서럽더라.‘ 라는 뜻이라고. 이승에 와서 울고 웃고 넘어지고 깨지고 엎어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하다 갈 수밖에 없는 것이 생이라고, 그런 생의 서러움을 노래한
것이라고 시인은 말한다. 이 시집도 그러하다. 이순에 이른 시인의 시어들은 어렵지 않고 어조는 무겁지 않다. 그저 담담할 뿐이다. 생아, 이제 나는 너가 그런 줄 알겠다 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런데 읽고 있음 눈에 자꾸 물이 고인다. 안구 건조증 탓인지, 시어에 젖은 물기 탓인지, 아마도 둘 다일 것이다. 어쨌든, 이 시집 좋다.

‘나무에 대하여‘는 푸른 잎새들 모두 벗고 앙상한 가지들 고스란히 드러낸 채 제 몸뚱이 하나로 시린 겨울을 버티는 나무들 이야기다. 이것은 겉보기 해석이다. 나무라는 시어에 ‘사람‘을 넣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시다. 우리도 때로 그렇지 않나.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고 싶을 때가˝ 있지 않나. 가만히 서 있는 것조차 버거울 때가 있지 않나. 사람들 시선이 느껴지는 것이 싫을 때가 있지 않나. 내 속이 얼마나 엉켜 있길래 이리도 안 풀리나 싶을 때가 있지 않나. 그럴 때는 영양분을 저기 위, 가지 끝까지 밀어올리는 일을 삼가는 겨울나무처럼 사는 것이 더 낫다. 자기 안으로 침잠해 내 속의 엉킨 뿌리를 하나하나 들여다 보고 천천히 풀고 있는 편이 더 낫다. 그런 시간이 있어야 ˝언젠가 두고 온 하늘 아래 다시 서 보고 싶을 때가˝ 온다. 나는 그 시기를 통과했다 여겼는데, 그런 시기는 다람쥐 쳇바퀴처럼 돌고돌아 또 오는 모양이다.

풍요

오다 오다 오다
오다 서럽다여
서럽다 우리들이여
공덕 닦으러 오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yo 2021-02-01 0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성복을 몰아서 읽고 나면 다음 시집 고르기가 만만치 않으실 거 같아요.
초콜릿 한 바가지 먹은 직후 먹는 수박맛...

행복한책읽기 2021-02-01 14:32   좋아요 0 | URL
대략 그럴 듯한 느낌이 ㅋ
 

20210131 나도 해본다 이런 거 


궁금했다. 북플에서는 책 배열이 하단에만 되는데, 책 고수들이 쓴 글 위, 아래, 옆에 책을 배열한다. 사진도 배열한다. 도대체 어떻게 하는거임? 라로님은 내 질문을 이해못했고 나는 라로님 답을 이해못했다. 꺼이~~~ 등산 후기 잘 올리는 알라알라북사랑님께 물었더니 정작 답은 다른 분이(누구였더라?? 기억 못해 죄송함다) 해주었다. "북플에선 안 돼요. 알라딘 서재에서만 돼요." 뭣이라. 고작 그런 이유. 그 답을 듣고 난 날로부터 몇십 일이 흘렀다. 오늘 시도한다. 잘 되려나?? 두-근근근근. 뭐 이 정도는 아님.^^


오늘의 현황. 

옆지기와 딸이 집을 비웠다. 아들은 . . . ㅠㅠㅠ 나의 불찰이다. 같이 딸려보냈어야 했다. 왜 그 생각을 못했단 말인가. 나는 엄마바라기 아들이 예뻐 죽겠는 때가 더 많지만 혼자만의 시간을 간절히 바란다. 코로나19가 이 시간을 앗아갔다. 


읽은 (syo님 흉내 중^^) 

 나만의 셰익스피어 읽기 첫 번째 권. 셰익스피어는 총 37편의 희곡 작품을 남겼다. 죽기 전에 셰익스피어 작품을 다 읽을래요 라는 나의 말에 대학 때 영국인 교수님(귀화하심)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고 검지를 메트로놈처럼 까딱까딱 가로저으며 "그럴 필요 없어"라고 말씀하셨다. 허나 나는 죽기 전 아니고 더 늙기 전에, 눈이 더 침침해지기 전에 교수님 권고를 무시하고(무릇 어른들 말씀은 어겨야 제맛이니) 읽겠다. 

4대 비극 중 하나인 #오셀로는 햄릿에 이은 두 번째 비극으로 셰익스피어 나이 40세에 쓰였다. 이 책을 읽으면서 다 읽고 든 소감, 

네 이놈 이야고 ~~~~

어리석은 오셀로 ~~~~~

순진한 데스데모나 ~~~~~ 















1월 4일 매일 인증 시작해 1월 31일 오늘 대항해 아닌 소항해 완료. 세이건에 이어 이 책을 읽고 있을 때 중딩 딸이 물었다. "엄마, 이 책이 저번 코스모스보다 얇은데, 그럼 두 책 중 한 권을 본다면 이걸 읽을까?" 나의 대답. "아니아니. 이건 안 읽어도 돼! 세이건을 읽어!" 물론, 딸은 아직 읽지 않고 있다. 이 아이는 언젠가 읽을 것이다. 나의 집요한 강압에 무릎 꿇을 것이다. 나, 좀, 징글징글한 엄마다. 딸의 말이 그러하다. 아무튼, 앤 드루얀의 <코스모스>는 세이건에 훨 못 미치지만 읽지 않았다면 궁금해서 계속 미련이 남았을 것이다. 완독하고 나니 속이 시원하다. 약간 중구난방 중언부언으로 이어지는 이 책을 관통하는 한 가지 맥은 과학자들이다. 가히 과학자들의 향연이 펼쳐지는데, 이들의 이야기는 재미있다. 러시아 화학자 드리트리 멘델레예프, 노르웨이 과학자 빅토르 골드슈미트, 네덜란드 철학자이자 과학자 바뤼흐 스피노자, 오스트리아 성직자이자 박물학자 그레고어 멘델, 러시아 물리학자 세르게이 바빌로프(이 분 정말 감동적), 영국 물리학자 존 스튜어트 벨, 유대계 폴란드 물리학자 마리 퀴리, 유대계 미국 물리학자 레오 실라르드 등이 인상적이었다. 이름은 읽음과 동시에 빛의 속도로 지워진다. ㅠㅠ 소항해 피날레를 마지막 페이지에 생명수를 쏟는 것으로 장식했다. 저기 보라. 구깃구깃해진 종이를! 앗. 서재에선 사진을 못 올리겠음 ㅡㅡ


읽는 


이성복 시인의 시론을 책꽂이에 얌전히 꽂고 대신 꺼내든 시집. 휘리릭 훑고 대번에 느낌 왔다. 좋다 좋다 좋다 좋다. 이걸 왜 이제서 꺼내든겨, 이 바보야. 살아 있음의 속절없음, 하고 있음의 부질없음을 대변해주는 책. 나의 책. 오늘은 시 한 편 올려야쥐~~~ 


2006년 여름 경주에서 신라 시대 진흙으로 빚은 불상들의 전시가 있었다. 이 전시회의 표제인 '來如哀反多羅'는 신라 향가인 풍요(공덕가)의 한 구절로서, '오다, 서럽더라'의 뜻으로 새겨진다. 당치도 않은 일이지만, 이 이두문자를 의역하면 '이곳에 와서, 같아지려 하다가, 슬픔을 맛보고, 맞서 대들다가, 많은 일을 겪고, 비단처럼 펼쳐지다'로 이해되는데, 그 또한 본래의 뜻과 그리 멀지 않은 듯하다. 오래전부터,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시들을 같은 제목으로 엮어보고 싶은 은밀한 바람이 있었다. ㅡ 시인의 말 


 2021년 독서모임 2월의 책. 오늘로 4일차. 총 570쪽 중 25쪽까지 읽고 가슴 따뜻한 저자와 아름다운 문체에 반했고 57쪽까지 읽고 가슴이 뜨거워졌고 65쪽까지 읽고 나의 제의는 무엇인가 질문하며 '책읽기'라는 답을 얻었다. 처음 접하는 북아메리카의 창조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 눈에서도 키머러 교수의 학생들처럼 "불꽃이 일기 시작했다."(24) 땅의 너그러운 품에 안긴 하늘여인이 에덴의 품에서 쫓겨난 이브에게 묻는다. "자매여, 어쩌다 그런 일을 겪게 되었나요 . . . "(22) 이 책은 "인디언 여자 치고는 공부를 꽤 잘했습니다"라고 말하는 무례한 백인 남자들의 세계에 조용하되 단호한 어조로 '그런 세계를 거절합니다'라고 말하는 책이다. 강추한다. 

"온 세상이 상품이라면 우리는 얼마나 가난해지겠는가. 온 세상이 끊임없이 움직이는 선물이라면 우리는 얼마나 부유해지겠는가."(57) 


 평단에서 밀려나 있던 캐서린 맨스필드를 이렇게 수면 위로 올려준 출판사와 번역자에게 고마움. 하루 한 편씩 읽겠다 했으나 총 아홉 편 중 겨우 두 편 읽음. 책의 제목인 <가든 파티> 재밌다. 나는 행복하나 너는 불행할 때, 내 행복을 감히 드러내기 부끄러운데 밀려오는 기쁨을 주체할 수 없다. 그런 내가 한심한데 그 마음을 어찌할 수 없다. 인간은 경이롭고 인생은 요지경이다. 







 지난주 도서관에서 대출해 총 110쪽 중 34쪽까지 읽고 멀리하고 있다. 엄마 이야기는 언제나 내게 뭉클함이어서 첫줄 읽자마자 눈물이 뚝뚝 떨어져 시야가 흐려졌다. 


"어머니가 4월 7일 월요일에 돌아가셨다. 퐁투아즈 병원에서 운영하는 노인 요양원에 들어간 지 두 해째였다. 간호사가 전화로 알려 왔다. <모친께서 오늘 아침, 식사를 마치고 운명하셨습니다." 10시쯤이었다."(7) 


아니 에르노의 글은 사실에 충실하다. 감정이나 회한을 최대한 배제한, 그저 있는 사실만을 쓴 저 글이 그 어떤 수사보다 울림이 컸다. 




 이 책을 미미님 서재에서 건졌던가? 아무튼 집에 <빨래하는 페미니즘>이 있는데, 그 책이랑 교차해 읽어야쥐 했다가 열다섯 꼭지 중 한 꼭지밖에 못 읽었다. 법륜 스님의 <엄마 수업> 편. 주부이자 엄마로서 저자가 나와 같은 생각을 했다는 사실에서 짙은 동지애를 느꼈다. 나는 <엄마 수업>을 읽다 말그대로 책을 냅다 던져버렸다. 스님, 이러시면 안 돼요. 엄마들 대부분은 자신 안에서 최선을 다한다구요!! 이런 죄책감 주지 말라구요!! 


코로나19의 끝을 알 수 없겠다 싶어졌을 때 옆지기와 아이들에게 선언했다. "내 퇴근 시간은 10시야. 10시 이후 내 이름도 부르지 마!!" 물론 잘 지켜지지 않는다. 나는 퇴근과 주말이 있는 삶, 월급 받는 삶을 원한다. 주부는 절대, 결단코, 집에서 놀지 않는다. 내가 집에서 무슨 일을 얼마나 하는지 낱낱이 알려주고 싶으나 이제 더는 글을 못 쓰겠다. 지친다. 첨이라 적응도 안 된다. 책 배열을 다르게 하고 싶으나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요걸 올리고 아들이랑 산에나 가야쥐~~~~^^


읽을 혹은 읽고 싶은 



댓글(7)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막시무스 2021-01-31 15: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SYO체로 쓰신 페이퍼 잘 봤어요!ㅎ<향모를 땋으며>가 관심이 많이 가는데 생각보다 두껍군요!ㅎ 건달산 잘 다녀오시고 담주도 즐건 한주되십시요!ㅎ

행복한책읽기 2021-01-31 18:37   좋아요 1 | URL
잘 다녀왔습니다. 막시무스님 기억력 짱이요. 건달산은 차를 타고 가야 해 주로 뒷산을 가구요. 홍법산이라 해요. <향모>는 막시무스님 좋아할 것 같아요. 저는 이런 다양한 시선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메리카원주민이 식물을 대하는 태도는 동양과 닮아 있더라고요. 댓글도 산행 응원도 고마워요~~~~^^

라로 2021-01-31 16: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하하하하 제가 진짜 책님의 질문을 이해 못했나봐요. ㅎㅎㅎ저는 당연히 저는 컴을 사용하시는 줄 알았어요. 그건 그렇고 제가 북플에서 안 된다고 안 했나요??😅 암튼 이제라도 성공하신 거 축하드려요!!👍

행복한책읽기 2021-01-31 18:39   좋아요 1 | URL
지가 라로님 말을 잘 못알아들었을 거예요. pc 북플 버전 따로 있을줄 정말 상상을 못한^^;;; 축하 고마워요. 성공해서 뿌듯뿌듯 ㅋ

scott 2021-01-31 21: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라로님에 댓글 바로 아래 제가 달았어요
북플은 처음 글이나 댓글 쓸때 가로로만 쓰이다가 수정 버튼을 누르면 세로폭으로 늘어나서 쓸수 있는데 책(검색어 입력시)이나 이미지 업로드는 세로 배열밖에 안되게 설계되었어요.(아마도 용량 제한때문인것 같음)
원래는 인스타그램과 핀터래스트 같이 검색과 이미지 업로드로 설계한것 같은데 저렴한 소프트 시스템업자 한테 맡겼는지 우유팩처럼 글과 이미지 검색 업로드가 자유자재로 편집 할수 없어요 ㅋㅋ
최근에 응24 스냅쳅 같이 움직이는 한줄 공감 이미지(사진 검색)로 바뀌었는데 알라딘은 기냥 이런 북플시스템으로 쭈욱 갈것 같아요 ㅋㅋㅋ
*pc북플에서 쓰면 블로그 기능이 되살아남 ㅋㅋ
갑자기 불쑥 긴댓글 달아서 죄송 ㅜ.ㅜ

행복한책읽기 2021-01-31 18:43   좋아요 1 | URL
아니에요아니에요. 알려주셨던것도 또 이렇게 알려주시는 것도 정말 고마워요. 덕에 도전했고 부실한 성공을 했습죠. 근데 응24스냅쳅 이런 거, 저 하나도 모릅니다. 기계치거든요. 우유팩처럼 이란 말도 못알아듣겠는...아. 진짜 ㅠㅠ

syo 2021-02-01 02: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syo로서 드리는 말씀인데, syo보다 훨씬 알찬데요?
앞으로 syo 따라했다 하지 마시고 syo야 나 좀 따라해봐 하셔도 되겠어요 ㅎㅎㅎㅎㅎ
 
불화하는 말들 - 2006-2007 이성복 시론집
이성복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210127 불화하며 다 읽었음 ^^;;

시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 따위 하지 않아 얼마나 다행이던지. 이성복 시인 시론 강의 들었던 수강생들 좌절감을 꽤나 맛보았을 듯. 읽으면서도 다 읽고도 든 생각은 시론 읽는 시간에 나는 시 한 편을 더 읽겠다. ㅋ

잘 써서 잘 산다기보다
잘 살면 잘 쓰는 게 아닐까.
글이 아닌 몸으로 말이다.

한 편의 시는 한 편의 인생 쓰기예요.
잘 쓰는 게 잘 사는 거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비둘기 목 색깔처럼 순간순간 달라지는
언어의 빛깔에 민감해야 해요. - P78

언제나 사소한 것을 통해
말할 수 없는 곳에 닿으려 해야 해요.
좋은 것은 언제나 말할 수 없는 것이에요. - P128

우리의 지식은 편집된 것이고
잘러나간 것들은 망각돼요.

예술가가 하는 일이란
잊혀진 것들을 다시 불러오는 거예요. - P6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10126 시라는별 6 

희망은 한 마리 새 
Hope Is the Thing with Feathers 
- 에밀리 디킨슨 

희망은 한 마리 새 ㅡ
영혼 위에 걸터앉아 
가사 없는 곡조를 노래하며 ㅡ
그칠 줄을 모른다 ㅡ 절대 ㅡ 

모진 바람 속에서 ㅡ 더욱 달콤한 ㅡ 소리 
아무리 심한 폭풍도 ㅡ 
많은 이의 가슴 따뜻이 보듬는
그 작은 새의 노래 멈추지 못하리 ㅡ 

나는 그 소리를 아주 추운 땅에서도 ㅡ
아주 낯선 바다에서도 들었다 ㅡ
허나 ㅡ 아무리 ㅡ 절박해도 그건 내게 
빵 한 조각 ㅡ 청하지 않았다 


파시클 출판사에서 에밀리 디킨슨 시선집이 그림 시집과 함께 시리즈로 출간되었길래 첫 권을 구매했다. 그림시집 4권. 시선집 4권이다. 번역가가 디킨슨 아카이브에서 1800편의 시들을 직접 고르고 엄선해 번역했다. 옮긴이 소개글을 보니 에밀리 디킨슨의 시를 읽다 페미니즘으로 전공을 바꿔 틈틈이 시인의 시를 읽고 번역해 시집으로 만들고 있다고 한다. 마치 에밀리 디킨슨이 날마다 시를 쓰고 모아진 시들을 바느질로 엮어 책자를 만든 것처럼.

에밀리 디킨슨의 시를 사랑하는 독자로서 번역가의 이런 노고에 박수를 쳐주고 싶고 그의 시를 이렇게나 많이 번역해 준 것에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 번역이 대체로 무난하고 시인의 문체를 살리려 애썼고 디킨슨 시의 독자성인 줄표 기호도 그대로 실었다. 그런데 . . . 오역이 눈에 띈다. 어쩔겨 ㅠㅠ 위에 올린 저 시 ‘Hope I the Thing with Feathers‘를 박혜란 번역가는 ‘˝희망˝이란 놈은 깃털이 있어‘라고 번역을 했다. 이건 틀린 번역은 아니지만 디킨슨 시의 장점인 군더더기 없는 문구와 간결한 문체에서 벗어난다. 더 문제는, 2연과 3연의 아래 두 줄은 명백한 오역이다. ㅠㅠㅠ 시 번역이 얼마나 어려운 줄 알기에 번역가의 이 실수가 나로서는 안타깝다.

에밀리 디킨슨은 자신의 시를 두고 ˝이것은 세계에 보내는 편지야 / 세계는 결코 나에게 편지를 쓰지 않았지만ㅡ˝이라고 썼다. 번역가는 디킨슨의 편지를 부분적으로 잘못 해석했다.

내가 위에 올린 번역시는 장영희 영미시 산책 <생일 그리고 축복>에서 옮겨온 것이다. 이 번역이 잘
된 번역, 좋은 번역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줄표는 저 번역본에 없는 것을 내가 넣었다.

에밀리 디킨슨은 죽기 전까지 거의 25년 동안 바깥 세상과 등을 진 채 살았다. 그 기간 동안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았는지는 오로지 그녀가 쓴 시로서만 짐작할 수 있다. 나는 이 시를 읽으면서 내면으로만 침잠해 들어간 디킨슨도 ‘희망‘의 끈을 놓고 싶어 하지 않은 사람이었다는 데서 동질감과 안쓰러움을 동시에 느꼈다. ‘희망‘을 깃털 달린 것이라 한 것은 그녀 또한 훨훨 날고 싶은 속내를 이리 표현한 것이 아닐까. 언제 어디서나 ‘희망‘의 소리를 듣겠다 하고 ˝아무리 절박해도˝ 구걸 따윈 하지 않겠다는.

디킨슨에게는 시를 쓰는 것이 곧 희망‘이지 않았을까.





댓글(5)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han22598 2021-01-27 07: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번역도 어려운데, 시를 번역한다는 일. 저로서는 가히 상상히 되지 않은 어려움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행복한책읽기 2021-01-27 08:08   좋아요 0 | URL
그죠. 시 번역은 아무리 잘해도 원작 느낌을 고대로 살리기가 거의 불가능한 영역 같아요. 그럼에도 하시는 분들 넘 대단하고 고맙죠. 지는 걍 읽는 것에 만족함다^^

라로 2021-01-28 15: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영어 제목이 Hope Is the Thing with Feathers 아닌가요? ^^;; 저도 장영희 선생님 번역하신 시들이 다 좋아요. 그러네 새로운 번역이 나왔군요. 젊은이의 해석일까요?? 읽어보지 않아서 추측만. 저희집에 에밀리 디킨슨 시집 여러 권 있는데 제가 읽은 것들은 영문학 수업 들으면서 읽은 것들이 대부분. 또 반성모드로 전환중.

행복한책읽기 2021-01-28 16:21   좋아요 0 | URL
헐. 지가 s를 빼먹었군요^^;; 감사해요. 반성 모드 필요없음요. 라로님은 이미 책을 충분히 읽고 있음요^^ 라로님 집에 있는 디킨슨 시집들 내 집으로 옮겨오고 싶음요^^

희선 2021-01-29 0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른 나라 말로 쓰인 시를 한국말로 옮기는 건 아주 어려운 일일 듯합니다 그 나라 말뿐 아니라 한국말도 잘 알아야 하니... 어디선가 이 제목 시 본 것 같아요 희망은 한 마리 새가 더 어울리고 좋게 보입니다


희선
 
생일 그리고 축복 - 장영희 영미시 산책 장영희의 영미시산책
장영희 지음, 김점선 그림 / 비채 / 2017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210124 시라는별 5

가지 못한 길 The Road Not Taken 
- 로버트 프로스트 Robert Frost 

노랗게 물든 숲속의 두 갈래 길, 
몸 하나로 두 길 갈 수 없어
아쉬운 마음으로 그곳에 서서 
덤불 속으로 굽어든 한쪽 길을 
끝까지 한참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다른 쪽 길을 택하였다. 똑같이 
아름답지만 그 길이 더 나을 법하기에. 
아, 먼저 길은 나중에 가리라 생각했는데!
하지만 길은 또 다른 길로 이어지는 법. 
다시 돌아오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먼먼 훗날 어디에선가 
나는 한숨 쉬며 이렇게 말할 것이다. 
어느 숲속에서 두 갈래 길을 만나 나는ㅡ
나는 사람이 적게 다닌 길을 택했노라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게 달라졌다고. 


주말에는 가능한 아이들과 함께 산행 혹은 산책을 하려고 노력한다. 이사온 동네(벌써 1년이 다 되어 간다)에는 마침 뒷산이 있어 큰마음 먹지 않고 물과 간식거리만 챙겨 가볍게 나설 수 있다. 이 가벼움은 물론 내게만 해당된다. 아이들은 . . . 흠흠 . . . 몸이 정말 무겁다. ㅠㅠ

아파트를 기준으로 등산로가 좌우로 나뉜다. 좌측길은 들어갈수록 사람 사는 동네를 벗어나고 우측길은 사람 많은 동네 중심가로 이어진다. 나는 코로나 19로 아이들과 24시간 붙어 산 지 어언 1년이라 인적 드문 좌측 등산로를 선호하지만 아이들은 노선도 짧고 놀이터도 자주 등장하는 우측 등산로를 선호한다. 어제는 왼쪽길로 긴 시간, 오늘은 오른쪽길로 짧은 시간 산행을 했다.

하여 떠오른 시가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못한 길‘이었다. ‘The Road Not Taken‘은 ‘가지 않은 길‘로도 해석된다. 이 시와 시인은 워낙 유명해서 시를 즐겨 읽지 않는 사람들조차 많이들 알고 있는 듯하다. 나는 대학 때 수업에서 이 시를 처음 접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군더더기 없는 좋은 시다. 가지 않은 길, 가지 못한 길은 언제나 아쉬움과 후회를 부른다. 나는 아쉬워는 하나 후회는 잘 하지 않는 사람이라 내가 택했거나 택하지 않은 길들에 대한 미련이 크게 없다. 다만 반백년 인생에 이르고 보니 그때 좀 더 열심히 할 걸, 그때 좀더 치열하게 파고들 걸 하는 아쉬움은 정말로 크게 남는다. 허나 또하나 알겠는건, 사람이란 저마다 가진 역량이라는 것이 있어 저 열심히나 치열하게가
그것밖에 안 되기도 하다는 것이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혹은 나란히 걷는 내 아이들은 어떤 길들을 택해서 어떤 삶을 살아갈까. 지금은 사람 많은 길을 좋아하는 저 아이들이 나중에는 다수가 잘 찾지 않는, 혹은 다수가 절대 가려고 하지 않는 길을 택할까. 어떤 길이 되었건 그 길에서 나를 찾고 너를 찾고 ‘낙‘을
찾았으면 좋겠다.

번역은 고 장영희 선생님의 영미시 산책 <<생일 그리고 축복>>에 수록된 것이다. 장영희 선생님은 내 은사님이었다. ‘이다‘가 아닌 ‘었다‘라고 쓰게 되다니 마음이 참 . . . 장영희 선생님의 번역은 아주 훌륭하다. 시 해석은 물론이거니와 운율을 아주 잘 살려놓았다. 이
시집은 고 김점선 화백의 그림까지 곁들여 있어 소장용으로 그만이다. 나는 이 시집을 여기저기 선물도 꽤 했다.

봄날처럼 따스한 겨울날. 아이들과 산행을 하다 이 시를 떠올리고 장선생님의 책을 다시 펼쳐 볼 수 있어 기뻤다. 선생님의 글은 종종 선생님의 육성이 지원되는데, 그 높은 어조와 속도만큼은 지원 불가의 영역 같다.^^


댓글(9)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막시무스 2021-01-24 21: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첫번째 나무숲은 참 멋지네요! 멜랑꼴리한 서양 풍경화에 나왔을 법 한 분위기이네요!ㅎ 담주도 즐건 한주 되시구요!

행복한책읽기 2021-01-24 21:35   좋아요 2 | URL
그죠. 저기 뒷산의 오지인데 아이들 덕에 질퍽한 땅 밟고 내려가 찍었답니다^^ 막시무스님도 즐건 한주 만들어가세요~~~^^

청아 2021-01-24 22: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갈라진 두 길이 있었지
그리고 나는 사람들이 덜 다닌 길을 택했고 그것이 모든것을 바꾸어놓았네

요정도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홍정욱 7막7장에서 어릴때 읽구요. 여태 앙드레지드라고 알고 있다가 최근에서야 프로스트의 말이란걸 확인했어요. 어쨌거나 마음 한켠에 자리했던 좋은 말
또 제대로 보니 반갑습니다 사진도 멋짐^^♡

행복한책읽기 2021-01-24 22:17   좋아요 1 | URL
어머. 그랬군요. 7막7장. 장안의 화제였던 책. 넘 샘이 나 멀리한 책. 어찌나 잘났던지. ㅋ 미미님께 추억을 떠올리게 해 기뻐요^^

2021-01-27 12: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행복한책읽기 2021-01-27 15:58   좋아요 1 | URL
아 장샘 애독자를 이리 만나니 넘 반가워요. 장샘이 하늘에서 미소 짓고 계실듯요. 장애와 무관하게 에너지 넘치는 분이셨답니다^^

라로 2021-01-28 15: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장영희 선생님을 은사로 두시다니!!! 책님 넘 부러워요!!! 제가 알라딘 공식 장영희 샘 마니아 1위!!!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그분 책은 단 한 권 빼고 다 갖고 있는데 그 한 권 찾기가,,,이제는 거의 포기.ㅠㅠ 저는 로버트 프로스트의 저 시에 대한 페이퍼를 쓴 적이 있어요. 그때 교수님이 가장 애정하는 시인이 프로스트 였는데, 자기가 어렸을 적에 어느 가정집에서 프로스트가 읽어주는 시를 들었었데요. 같은 동네 출신;;; 세상은 참 요지경 같은데도 질서가 있어요. 동향사랑, 뭐 이런.ㅎㅎㅎㅎ

행복한책읽기 2021-01-28 1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그럼 라로님이 저보다 장샘 책을 더 많이 소장하고 더 많이 보셨네요. 장샘이 살아계셔 제가 라로님 얘길 전해드렸다면 이렇게 말씀하셨을 거예요. ˝얘, 그런 애독자들 수두룩해. 너희들만 내 유명세를 몰라!!˝ ㅋㅋㅋ 정말로 제자들은 몰랐어요.^^;;; 프로스트가 직접 읊어주는 시를 듣는 행운을 누리셨다니, 그 교수님 와~~~ 근데요, 그 한 권이 뭘까요????

라로 2021-01-28 21:06   좋아요 0 | URL
그럴지도 몰라요. ^^;; 한때 어마어마한 팬이었어요. 그 한 권은 <여자에게>라는 책이에요. 그분 뿐 아니라 다른 분도 함께 글을 쓰셨는데 이거 재발간 안 해주나 싶네요. ^^;

그런데 책님이 쓰신 그분의 말투는 제 생각처럼 넘 귀여우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