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01 코스모스호 타고 히치하이킹 100일 0일 

​나는 과학 문외한이다. 30대 초반 과학책을 읽어 보려 노력했으나, 3분의 1 정도 읽다 힘에 부쳐 포기했다. 이해는 둘째치고 도저히 재미를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는 몰랐다. 이해와 재미는 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올해 읽은 마리아 포포바의 <<진리의 발견>>을 읽고 과학을 바라보는 눈이 살짝 달라졌다. 내가 생각하는 과학은 어렵고 딱딱하고 고리타분한 것이었다. 그러나 포포바가 ˝과학계의 휘트먼˝이라 칭송하며 일대기를 풀어놓은 레이철 카슨의 이야기를 읽은 후로 생각이 바뀌었다. 아, 과학도 재밌을 수 있구나. 과학도 문학이 될 수 있구나, 생각하게 된 것이다. 

얼마 전부터 듣기 시작한 팟빵 방송이 있다. <과학으로 장난치는 게 창피해? 과장창!> 출연진은 몇 년 전 선풍적 인기를 누렸던 <지대넓얕>의 한 패널 이독실, 기상캐스터 김가영, 과학커뮤티케이터 이선호 엑소이다(현재는 엑소 빠짐).완전재미있다. 나 같은 사람을 위해 과학의 문턱을 낮춰 준 느낌이라고나 할까. 이독실은 지대넓얕부터 좋아했지만, 과장창을 통해 목소리, 박식함, 이해력, 공감력, 연기력, 게다가 유머 감각까지, 아주 반할 지경이다. 어쨌든 이 방송 때문에 과학이 부쩍 가깝게 느껴지고 있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는 그 명성 때문에 죽기 전 언젠가는 읽으리라는 야무진 생각으로 2004년 초판에 이어 2006년 특별판이 나오자마자 구매했다. 무려 14년이 지났다. 팔아 먹지 않고 묵혀 두길 잘했다. 이 책을 읽겠다고 하자 책 좋아하는 지인들이 따라붙었다. 하여 ‘코스모스호 타고 히치하이킹 100일‘ 여행을 떠난다. 오늘은 0일이다. 

˝앤 드루얀을 위하여 / 공간의 광막함과 시간의 영겁에서 행성 하나와 찰나의 순간을 앤과 공유할 수 있었음은 나에게는 하나의 기쁨이었다.˝

​시적인 감사의 글이다. 칼 세이건은 1934년 한 점 먼지에서 숨쉬는 인간으로 태어나 1996년 자신이 사랑한 우주로 떠나 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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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31 매일 시읽기 33일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 박준 

이상한 뜻이 없는 나의 생계는 간결할 수 있다 오늘 저녁부터 바람이 차가워진다거나 내일은 비가 올 거라 말해주는 사람들을 새로 사귀어야 했다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이의 자서전을 쓰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지만 익숙한 문장들이 손목을 잡고 내 일기로 데려가는 것은 어쩌지 못했다. 

‘찬비는 자란 물이끼를 더 자라게 하고 얻어 입은 외투의 색을 흰 속옷에 묻히기도 했다‘라고 그 사람의 자서전에 쓰고 나서 ‘아픈 내가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는 문장을 내 일기장에 이어 적었다

우리는 그러지 못했지만 모든 글의 만남은 언제나 아름다워야 한다는 마음이었다 


박준. 1983년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문학을 잘 배우면 다른 이에게 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대학과 대학원에서 알았다. 2008년 <<실천문학>>으로 등단했다.(겉표지 글)

매일 시읽기를 까짓 함 해봐, 일단 100일만 채워봐, 라는 마음으로 시작했을 때 내가 생각한 것은 내 집 책꽂이에 꽂혀 주인의 손길만 기다리는 가여운 시집들부터 읽겠다는 것이었다. 허나 우후죽순. 비가 온 뒤 솟는 죽순처럼 시를 한 편씩, 또는 몇 편씩 매일 읽기 시작하자 읽고 싶은 시들, 시인들이 떠오르거나 찾게 되고, 북플이 인공지능으로 소개도 척척 해준다.

시집 네 권만 사 보기는 처음인 듯. 두 권은 전부터 읽고 싶었고, 한 권은 검색했고, 한 권은 북플 친구 덕에 알게 되었다.

일단 박준부터. 시 제목. 독특하고 상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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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30 매일 시읽기 32일 

길고양이 밥 주기 
- 황인숙 

언제까지 . . . . . . 
언제까지! 
내가 쓰러질 때까지? 
그 뒤에는? 
고양이들은 계속 슬픈 새끼를 치고 
내 뒤에는 
아무도 없다 
(옆에도 없다, 앞에도 없다) 

아무도 없어도 되는 그 날까지 
고양이들아, 너희 핏줄 속 명랑함을 잃지 말렴! 

사실 나는 낙천주의자 
폭삭 지친 내게 
고양이밥을 놓지 말라고 목청 높이던 젊은 엄마가 
조르르 고양이 밥그릇을 찾아 들고 와 
길바닥에 패대기치는 어린 아들을 
나 보기 부끄러워하며 살짝 야단칠 때 
그 ‘살짝‘에 한낱 희망을 실어보누나
아, 그 탐스런 작은 손으로 
고양이한테 밥을 줘봤으면!

길고양이를 집에 들이는 게 
죽음의 문턱에서 데려오는 일이 
더 이상 아니게 될 그날까지


시인 황인숙은 고양이를 너무 좋아해 길고양이들을 거둬 먹이는 엄마 노릇을 40년 넘게 하고 산다고 한다. 시인의 데뷔 시도 ‘나는 고양이로 태어나리라‘(1984)였고, 그간 낸 시집이며 산문집과 장편소설에서도 고양이 이야기를 했다.

황인숙 시인에겐 시를 쓰는 일과 고양이를 돌보는 일이 우위를 다툴 수 없는 일이란다.  ˝내 삶은 길고양이들 밥을 주기 전과 후로 갈렸다˝라고 말할 정도다. 고양이들 밥 주는 시간을 줄여 시 쓰기에 힘을 모으라고 지인들이 때로 타박도 한다는데, 시인은 자신이 정한 규칙을 깨지 않고 묵묵히, 꾸준히, 고양이들을 돌본다고 한다. 동물을 싫어하지는 않으나 동물을 돌보는 것은 싫어하는 나로서는 시인의 고양이 사랑이 놀랍다.

‘돌본다‘는 것은 사랑과 책임이 동반되는 일이다. 나는 모든 동물이 자연적으로 사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여기는 1인이지만, 사회는 변했고, 변한 세상에서 같이 사는 동물의 존재도 ‘애완‘에서 ‘반려‘로 바뀌었다. 동물권은 중요하다. 고양이 밥그릇을 ˝길바닥에 패대기치는˝ 사람들이 없는 세상은 인간들의 밥그릇을 저울질하는 일도 없는 세상일 가능성이 높다. 나는 그런 세상을 꿈꾸는 사람이다.

황인숙 시인이 따끈따끈한 산문집 《좋은 일이 아주 없는 건 아니잖아》(달)를 출간했다. 시인들의 글은 ‘시‘로 읽는 게 제일 좋지만 산문은 또 어떨지 궁금하긴 하다. 허나, 지금으로선 읽고 싶은 다른 책들이 너~~~~무 많아 한동안 펼쳐 보기 힘들겠다.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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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29 매일 시읽기 31일 

낭만에 대하여 
- 최백호 

궂은 비 내리는 날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에 앉아
도라지 위스키 한 잔에다
짙은 색소폰 소릴 들어 보렴

새빨간 립스틱에
나름대로 멋을 부린 마담에게
실없이 던지는 농담사이로
짙은 색소폰 소릴 들어 보렴

이제와 새삼 이 나이에
실연의 달콤함이야 있겠냐만은
왠지 한 곳이 비어있는
내 가슴이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밤늦은 항구에서
그야말로 연락선 선창가에서
돌아올 사람은 없을지라도
슬픈 뱃고동 소릴 들어보렴

첫사랑 그 소녀는
어디에서 나처럼 늙어갈까
가버린 세월이 서글퍼지는
슬픈 뱃고동 소릴 들어보렴

이제와 새삼 이 나이에
청춘의 미련이야 있겠냐만은
왠지 한 곳이 비어 있는
내 가슴에 다시 못 올 것에 대하여
낭만에 대하여 


며칠 전 옆지기 핸폰에서 들려온 음악. 가을이면 어김없이, 자주, 등장하는 그 노래. 그런데 목소리가 내가 아는 그 가수가 아니네. 원곡 가수보다 발음이 또렷하고 목소리가 우렁차네. 아하. 이적.

나는 최백호의 음악성은 인정하나 그의 노래를 즐겨 듣는 사람은 아니다. 내가 나도 모르게 많이 들었던 그의 노래는 ‘낭만에 대하여‘보다 ‘영일만 친구‘였다.

이적의 목소리로 듣는 ‘낭만에 대하여‘는 훨씬 호소력 있고, 가사가 귀에 쏙쏙 다가와 박혔다. 나는 최백호보다 이적이 더 좋네 했다가, 내쳐 유튜브로 검색을 해보니 어머나, 내가 좋아하는 아이유도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나와 불렀더라는.

나훈아, 린, 송가인, 임영웅/영탁, 김호중, 탤런트 김응수 등등등. 아주 많은 연예인들이 이 노래를 불렀더라. 내가 아는 한 대한민국 할아버지할아버지, 아줌마아저씨들은 한 번쯤은 이 노래를 흥얼거리기라도 했을 것이다.

노래를 듣다 든 생각. 왜 가을을 남자의 계절이라 했을까. 그건 아마도 남자는 울면 안 돼, 남자는 씩씩해야 해, 남자는 강인해야 해, 남자는 늘어지면 안 돼, 남자는 능력이 있어야 해, 남자는 가족을 건사해야 해 등등등, 남자라는 호칭에 따라붙는 무수한 의무들 때문에 목이 조이고 숨이 막혔을 남자들에게 숨통 한 번 트이게 해주려 누군가 만들어낸 것이 아닐까. 이 계절만은 센치해져도, 울적해져도, 울먹거려도 된다는.

‘낭만에 대하여‘가 실려 있는 최백호의 앨범은 1995년에 발매되었다. 발매 후 2년 동안은 거의 팔리지 않았던 이 앨범은 유명 드라마 작가 김수현씨의 <<목욕탕집 남자들>>에 등장하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하루 2천 장 이상이 팔렸다고 한다. 이 드라마를 재미나게 보았건만, ‘낭만에 대하여‘가 흐르고 불렸다는 도통 기억이 나지 않는다.

최백호씨는 1950년생이다. ‘낭만에 대하여‘는 그의 나이 46세 때 처음 불렀다. 아직 젊다. 가사에 등장하는 첫사랑 그 소녀는 최백호씨가 통학열차에서 만난 실제 소녀가 모티브가 되어 가사화 되었단다. 2020년 현재. 그는 71세, 일흔하나가 되었다. 최백호씨도 그 소녀도 노래 가사에 맞게 늙어가고 있다.

늙어가나, 아직은 늙어간다고 말하기 싫고, 말하기 꺼려지는 오늘의 나는, 이 노래 가사에서 가장 와닿는 구절은 ˝왠지 한 곳이 비어 있는 /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 다시 못 올 것에 대하여˝이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가슴에 구멍 하나 이상 뚫린 채 사는 일 같다. 그 구멍은 다시 오지 않을 잃어버린 것 때문에 생긴다. 구멍의 개수나 크기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사진은 ‘낭만에 대하여‘ 앨범 앞면 뒷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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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다 한 사랑이 너무 많아서 문학과지성 시인선 492
황인숙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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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28 매일 시읽기 30일

송년회
- 황인숙

칠순 여인네가 환갑내기 여인네한테 말했다지
˝환갑이면 뭘 입어도 예쁠 때야!˝
그 얘기를 들려주며 들으며
오십대 우리들 깔깔 웃었다

나는 왜 항상
늙은 기분으로 살았을까
마흔에도 그랬고 서른에도 그랬다
그게 내가 살아본 가장 많은 나이라서

지금은, 내가 살아갈
가장 적은 나이
이런 생각, 노년의 몰약 아님
간명한 이치

내 척추는 아주 곧고
생각 또한 그렇다 (아마도)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못다 한 사랑이 너무 많아서>>(2016)는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된 황인숙의 일곱 번째 시집이다. 2007년 이후 거의 십 년만이다. 어제 올린 황인숙의 대표시 ‘나는 고양이로 태어나리라‘에도 드러나듯 이 시인의 시들은 기본적으로 애잔하면서 쾌활하다. 해설을 쓴 조재룡 평론가는 황인숙의 시들이 ˝우수와 명랑˝을 띄고 있다고 말한다. 동감한다. 나는 해설을 꼼꼼히 읽지는 않는 편인데(많이 어렵고, 말장난 한다는 느낌이 들어서), 이 평론가의 글은 잘 읽혔다. 그래서 다 읽었다.

우리네 인생이란 언제나 좀, 때론 많이, 쓸쓸하다. 쓸쓸함의 저변에는 애잔함이 깔려 있다. 내가 쓸쓸하면, 쓸쓸해 봤으면, 타인도 그러하리라, 우리는 짐작할 수 있다. 밝고 환한 웃음들 이면에는 너나없이 쉬이 내뱉지 못하는 울음들이 숨겨져 있음을, 이 나이쯤 이르면, 아니 이 나이까지 이르지 않아도 다 안다. 고파도, 슬퍼도, 아파도, 표정이 어두우면 인생까지 어두워질까 염려스러워 사람들은 허허실실 웃는다. 그렇게 명랑함을 가장한다.

황인숙의 명랑함은 가장되지 않다. 이 시인의 명랑함은 ‘길고양이 밥 주기‘라는 시에서 드러나듯 고양이들의 ˝핏줄 속 명랑함˝을 닮은 듯하다. 인생은 고달프나 우리 안에는 ‘명랑함‘이 내재해 있으니 어느 때든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황인숙의 시들은 술술 읽힌다. 우리 동네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다. 재미 있다. 삶에 지쳤을 때 읽으면 위로가 된다. ‘풉‘하고 웃게도 된다.

오십대가 되기 전까지 시인은 ˝항상 늙은 기분˝으로 살았단다. 나는 아니었고, 우리 엄마는 그랬다. 우리 엄마가 55세 무렵부터 달고 산 말 중 하나는, ˝내가 5년만 젊었으면˝ 하는 소리였다. 5년이 흘러 보니, 엄마는 5년 전 할 수 있던 일을 하지 않은 사람이 되어 있었다. 또 5년 후, 또 5년 후에도 그랬다. 그랬기에 엄마는 언제나 나의 반면교사였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도 있지만, 사실 나이는 숫자보다 더 많은 함의를 지닌다. 나는 어떤 나이에 이르면 내가 생각한 모습만큼 커 있지 않아서(몸이 아닌 정신이) 늘 당황스러웠다. 초딩 때 본 중학생, 중딩 때 본 고등학생, 고딩 때 본 대학생, 대딩 때 본 직장인 선배, 20대 때 본 30대, 30대 때 본 40대, 40대 때 본 50대, 그들은 내게 언제나 뿌리 단단히 박힌 큰 나무들 같았다. 내가 막상 그 나이에 이르고 보면 나는 늘 뿌리가 언제 뽑힐지 모를 위태위태한 묘목이었다.

그 이유를 어느 날 내가 깨달은 간명한 이치는 그 나이가 내가 처음 사는 나이이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많은 십대, 이십대, 삼심대, 사십대, 오십대가 있어도 나의 ~대는 언제나 처음이다. 그래서 낯설다. 낯선 것들은 당혹감을 준다. 당혹스러운데 그렇지 않은 척하며 산다. 왜 누가 봐도 나는 어른이거든.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내가 그랬듯, 내가 큰 나무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오늘의 나는, 앞으로 살아갈 날들 중 가장 젊은 날을 살고 있다. 그러니 허리 곧게 펴고 앞으로!

그리고 매일 시읽기 30일을 자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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