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102 매일 시읽기 96일 

Ghost 
- 강성은 

나는 식판을 들고 앉을 자리를 찾는 아이였다 
식은 밥과 국을 들고 서 있다가 
점심시간이 끝났다 
문득 오리너리구는 어쩌다 오리너구리다 된 걸까 
오리도 너구리도 아닌데
이런 생각을 하며 
긴 복도를 걸었다
교실 문을 열자 
아무도 없고 햇볕만 가득한 삼월 


2021년 첫 시집으로 선택한 것은 강성은 시인의《Lo-fi》다. 나는 단편이랑 시가 좋아 라며 책 좋아하는 친구가 추천해준 것은 강성은의 다른 시집이었지만, 대출 중이어서 이 시집부터 읽는다. 젊은 시인인가 했더니 73년생이다. 2005년 <문학동네>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시집 제목인 ‘Lo-fi‘는 low fidelity(저음질)을 뜻하는 음향용어이면서 고음질을 뜻하는 hi-fi와 달리 저가의 녹음 장비와 악기를 사용하여 거칠고 정제되지 않은 사운드를 구현하는 음악 장르로 쓰인다고 한다. 시의 제목을 왜 이렇게 정했을까. 처음부터 끝까지 수박
겉핥기로 읽은 내 느낌으론 거칠기보다 정제된 음질에 더 가까워 보인다.

죽은 자들에게 목소리를 빌려준 시인.

시들을 후루루 들이키는 동안 내게 떠올랐던 문장이다. 시인이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에 서서 삶과 죽음을 넘나들며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떠난 이들의 입 노릇을 대신 해주고 있다는 느낌. 그래서 좀 아프고 꽤 먹먹하다.

이 시집에는 ‘Ghost‘라는 제목의 시가 여섯 편 수록돼 있다. 다섯 번째 ‘Ghost‘인 저 시를 읽다 시가 묘사하고 있는 광경이 영화의 장면처럼 떠올라 나도 얼음 땡을 당한 사람처럼 식판을 들고 멍하니 서 있었다. 교실 문을 여는 순간, 더 멍해졌다. 삼월 ˝햇볕만 가득한˝ 아무도 없˝는 교실. 무엇이 연상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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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09 매일 시읽기 72일 

나는 아침마다 이 세계의 산(山)1628개의 이름들을 불러서 왼다. 
- 서정주 

나는 
날이날마다 아침이면 
이 세계의 산(山) 1628개의 이름을 
소리내어 불러서 왼다. 
이것은 늙어가는 내 기억력의 침체를 막기 위해서지만, 
다 불러서 외고 나면
<킬리만자로> 산(山) 밑의 사자떼들, 
미국 서부산맥의 깜정 호랑이떼들, 
<히말라야> 산맥의 흰 표범의 무리들도
내게 웃으며 달려와서 아양을 떨고, 
또 저 <트리니다드>의 하늘의 홍학(紅鶴)의 무리들도
수만마리씩
그들의 수풀에 자욱히 날아앉어
꽃밭이 되며 꽃밭이 되며
나를 찬양한다.
해와 달도 반갑게는 더 밝어지고
이래서 나는 다시 살아나는 것이다.


서정주 시인의 <<80소년 떠돌이의 시>>(1997)를 구매했다. 이 시집은 안도현 시인의 <<그 작고 하찮은 것들에 대한 애착>>에서 알게 되었다. 시인이 <<늙은 떠돌이의 시>>(1993)이후 1993년부터 1997년까지 쓴 시들을 간추려 펴낸 시집이다. 이 늙은 나이에도 시집을
내는 것이 민망했던지, 시인은 시를 쓰는 자신을 ˝늙은 숫소 한 마리가 . . . 먹은 풀들을 거듭거듭 되뱉어내 되새김질 하고 있는 꼬락서니˝라 묘사한다.

˝이 책의 제목을 <80소년 떠돌이의 시>라고 한 까닭은 내 나이가 올해 83세인데다가, 아직도 철이 덜든 소년 그대로고, 또 도(道)도 모자라는 떠돌이 상태임을 두루 요량해서 그렇게 했다.˝(시인의 말 중)

나이 들면 철이 든다는 것, 지금은 이 말을 전부 신뢰하진 않는다. 그런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다. 그러나 반백 년을 살고 보니 철이 좀 든 사람 같다가도 여전히 철들지 않는, 혹은 철들지 못하는, 그것도 영영 철들지 못하는 ‘나‘란 사람이 존재한다는 느낌이 든다. 서정주 시인도 바로 그 점을 느낀 것이 아니었을까.

기억력 침체를 막기 위해 아침마다 1638개의 산 이름을 외운다는 시인의 처지가 아주 먼 일 같지 않아서, 마흔일곱 편의 시들 중 이 시가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내가 이 시집을 구매한 것은 이분의 친일 이력을 떠나 이만큼 산 사람은 무엇에 기대 삶을 영위하는지 궁금해서이다. 늙은 시인의 눈엔 사람과 자연이 자리해 있다. 1638개의 산 이름을 외고 났더니, 온갖 짐승들이 웃으면서 달려오고 홍학이 날아들고 해도 달도 반가이 인사를 하더랜다. 그들과 더불어 시인 자신도 다시 살아났다고. 아. 나는 저 나이가 아직 한참남았는데 (과연 그럴까), 늙었음을 호쾌하게(?) 인정하는 시인의 기분을 왜 알 것만 같을까.

반백 년을 살았는데, 손에 쥐는 게 없는 삶을 산 듯한 헛헛함이 어느 날 덜커덩 찾아들었다. 한 번 찾아든 이 느낌은 무시로 찾아온다. 무시로 와서 때론 무섭다. 그러다 알게 되었다. 아, 이 헛헛함은 절대 사라지지 않겠구나. 나 죽는 날까지 같이 가겠구나. 나도 80세
되면(그때까지 살려나?) 시인처럼 1638개의 산 이름을 외우리(살았으나 그런 기력이 있으려나?). 그러면 허파로 드나드는 바람 한 점 잡을 수 있겠지.

서정주 시인은 1915년 일제강점기 전북 고창에서 태어나 2000년 12월 24일에 이승의 무게를 내려놓았다. <<80소년 떠돌이의 시>> 를 출간하고 3년 후인 86세의 나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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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아침
메리 올리버 지음, 민승남 옮김 / 마음산책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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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05 매일 시읽기 68일

오늘 Today 
- 메리 올리버 

오늘 나는 낮게 날고 있어, 
말 한마디 하지 않고
모든 야망의 주술을 잠재우고 있지. 

세상은 갈 길을 가고 있어, 
정원의 별들은 조금 붕붕대고, 
물고기는 뛰어오르고, 각다귀는 잡아먹히지. 
기타 등등. 

하지만 나는 오늘 하루 쉬고 있어, 
깃털처럼 조용히. 
나는 거의 움직이지 않지만 사실은 굉장히 멀리 
여행하고 있지. 

고요. 사원으로 들어가는 
문들 가운데 하나. 
Stillness. One of the doors​into the temple. 


메리 올리버가 일흔일곱의 나이에 낸 시집 <<천 개의 아침 A Thousand Morning>>을 열흘 만에 다 읽었다. 모두 서른여섯 편. 한 권의 시집에 실린 시들이 모두 좋기는 거의 처음인 듯하다. 하루 몇 편씩 시들을 읽는 동안 내가 느낀 점은 이렇다.

차분한 즐거움, 조용한 쾌활함, 빛나는 통찰력, 스미는 행복감. 

메리 올리버는 예술가들의 고향이라는 프로빈스타에서 반평생을 살았다지. 한 번도 가본 적 없고 가보지 못할 그곳은 풀과 나무와 새와 바다와 물고기 등등 온갖 생명체로 넘쳐나는 곳이라지. 시인의 눈은 세상에 대한 환희로 반짝거리고 시인의 뇌는 환희에서 탄생한 통찰로 번뜩인다. 번역도 빛난다.

˝정말이지 개미는 활기가 넘친다니까! 
발에 밟히면서 얼마나 법석을 떠는지 봐.˝(<그럴 필요가 있었을까?> 전문) 

이 시에 등장하는 개미는 시인 자신 같다. 사는 동안 누구 ˝발에 밟히˝지 않고 산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밟히고 찢겨도 ˝활기˝를 잃지 않는 것, ˝쾌활하게˝ 살아가는 것, 그런 힘은 어디에서 얻을 수 있나? 메리 언니의 경우에는 자연이다. 자연은 또한 신이다. 신은 도처에 있다. ˝먼지 속˝ ˝꽃밭˝ ˝바다˝ ˝섬˝ ˝얼음의 대륙들˝ ˝모래의 나라들˝에 (<아름다운 장소들로의 여행에 대하여>). 나는 무신론자지만 자연의 경이를 접할 때면 조화가 넘치는 세상을 창조한 그 누군가가 꼭 있을 것만 같다. 그리고 인간 뿐 아니라 모든 생명체는 하나의 소우주라는 생각이 든다. 메리 올리버는 그런 소우주들의 세계를 시로 그려냈다. 경쾌하나 경박하지 않게. 유쾌하나 유치하지 않게. 심오하나 심각하지 않게.

시들을 읽는 동안 19세기 영국 낭만주의 시인들, 워즈워스, 코울리지, 키츠, 셸리가 떠올랐다. 대학원 시절 그들의 시들을 읽는 동안 느꼈던 감흥이 되살아나 공기 중에 둥둥 떠다니는 듯했다. 키 큰 나무들 사이로 비스듬히 떨어지는 햇빛 조각들이 얼마나 눈부신지, 비 온 뒤 물기 머금은 초록빛은 또 얼마나 찬란한지를 그들은 노래했었다. 그들의 노래 덕에 나는 산과 숲에 들어섰을 때 눈을 크게 뜨고 귀를 활짝 열고 코를
크게 벌리고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자연과 호흡을 맞추기 위해. 그들의 숨결을 느끼기 위해.

메리 올리버는 낭만주의 시인들의 정서를 따르되 감정의 과잉에 빠지지 않는다. 환희에 젖어들되 차분함을 잃지 않는다. 어떻게 가능하지 하는 의문이 들만큼. 시인의 젊은 시절 시들이 궁금해질 만큼.​

1935년생인(우리 엄마보다 한 살 적다) 메리 올리버는 2019년 1월 19일 여든세 살의 나이로 타계했다. <나는 나의 개 퍼시를 생각하게 될 테니까>라는 시는 시인이 꼭 퍼시처럼 살다 갔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는 병이 날 때마다 이겨내고 또 이겨냈으니까, 
이겨낼 수 있을 때까지 이겨내다가 떠났으니까. 

그는 엄숙함과 익살스러움의 혼합체니까.˝  

나는 풍진 세상을 견디게 만드는 최고의 무기는 ‘유머‘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메리 언니는 고개 숙이지 말아야 할 것에 고개 숙이지 않는 ˝엄숙함˝과 나를 좌절시키는 것에 좌절하지 않으려는 ˝익살˝을 동시에 지닌 시인이 아니었을까. <나의 개 퍼시 . . >에서 시인은 말한다. ˝나는 구름 속에서 그의 형상을 자주 보고 그건 나에게 끊임없는 축복이니까.˝ 바다 건너 한 독자가 이 시구를 빌어 하늘의 별이 된 시인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나는 당신의 시집에서 당신의 형상을 자주 볼게요. 그건 나에게 끊임없는 축복continual blessing입니다.˝

오늘, 나는 이 축복을 누렸다. 아들과 함께 뒷산을 산책하며 알록달록 치장을 벗어 던진 가난한 나무들과 흰구름들 사이로 떨어지는 붉은 해를 바라보며. 열한 산 아들은 늘 내게 말한다. ˝엄마 늙지 마요, 할머니가 되지 마요.˝ 나는 이제부터 메리 언니가 쓴 시를 비틀어 답해주리. ˝너는 자랄 거고 / 그렇게 되려면 / 나는 늙어야만 하고 / 그다음엔 죽을 거야, 그리고 그건 / 네 탓이 아니야.(원문은 ‘네 탓이 될 거야˝ <붕, 붕>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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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06 00: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행복한책읽기 2020-12-06 14:35   좋아요 0 | URL
떠남은 늘 새롬을 선사하는 듯해요. 일어나 떠나시라, 권합니다요~~

라로 2020-12-06 0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래부터 메리 올리버 팬이지만 행복한책읽기 님의 글을 읽으니 제가 놓쳤던 게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너무 읽고 싶어졌어요!! 메리 올리버는 돌아가신 제 친정 엄마보다 5살 더 많으신데 더 오래 사셨네요...... 조용한 쾌활함이라니 넘 매력적인 사람이에요 메리 올리버!!😍

행복한책읽기 2020-12-06 14:41   좋아요 0 | URL
저는 올해야 메리 언니를 알게 됐어요. 엄마뻘이나 언니라고 할라고요.ㅋ 산문집보다 시집이 더 좋네요. 라로님 어머님은 멀리 떠나셨군요. 제 엄니는 기억의 끈을 줄이면서 이승의 끈을 붙잡고 계세요. 코로나로 자주 못봐 마음이 ㅠㅠ 해요
 
이 시대의 사랑 문학과지성 시인선 16
최승자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8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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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28 매일 시읽기 61일

내 청춘의 영원한
- 최승자

이것이 아닌 다른 것을 갖고 싶다.
여기가 아닌 다른 곳으로 가고 싶다.
괴로움
외로움
그리움
내 청춘의 영원한 트라이앵글


최승자 시인의 <<이 시대의 사랑>>을 거의 일주일 만에 다 읽었다. 한 권의 시집에 실린 시를 몽땅 읽는 경우가 잘 없는데(얇은데도 쉽지 않다) 이 시집은 다 읽고야 말리라는 투지를, 까지는 아니고, 읽고 싶다는 마음을 불러일으켰다. 시집을 관통하고 있는 시인의 내적 정서가 마음을 울렸고 기억해두고 싶은(물론 기억 못할) 시구들이 정말로 많았기 때문이다.

<<이 시대의 사랑>>을 요약해주는 시가 위의 저 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외로움. 괴로움. 그리움. 이 세 가지 감정은 ˝내 청춘의 영원한 트라이앵글˝이자 우리 인생의 동반자이기도 하다. 1981년 출간된 이 시집은 시인의 나이 스물두 살 때부터 서른까지 쓴 시들을 역순으로 배치해 놓았다. 1부는 1981년에, 2부는 1977년부터 1980년까지, 3부는 대학 3학년때부터 대학 중퇴까지 쓴 시들이다. 그러니까 지금 내 나이에서 보자면 그야말로 파릇파릇한 이십대 청춘의 시기를 기록한 것인데, 이 시집은 청춘의 풋풋함이나 낭만보다 청춘의 괴로움과 절망에 완전히 치우쳐 있다. 기형도의 <<잎 속의 검은 잎>> 여자 버전을 보는 느낌이었는데, 기형도보다 절망의 나락이 더 깊어 보인다.

나무위키에는 최승자 시인에 대해 이렇게 쓰여 있다. ˝가족이 없었고, 서울의 세 평짜리 고시원에서, 여관방에서, 밥 대신 소주로, 불면의 시간으로 죽음 직전의 단계까지 가기도 하였다.˝ ​

시들을 보면 시인이 유복함이나 행복함과는 거리가 먼, 그것도 아주 먼 어린 시절을 보냈을 거라는 사실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일찌기 나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 . . . 아무 부모도 나를 키워주지 않았다.˝(‘일찍기 나는) ˝애비는 역시 전화도 주지 않았다.˝(‘슬픈 기쁜 생일)

시인의 삶은 외롭고 슬프고 괴롭고 아프다. 많이도 가련하다. ˝외롭지 않기 위하여˝ 밥을 많이 먹고, ˝괴롭지 않기 위하여˝ 술을 조금 마셔 보지만(‘외롭지 않기 위하여), 외로움과 괴로움은 시인의 몸에 ˝장전되어˝ 시인의 ˝뇌리를 겨누고 있다˝(‘외로움의 폭력‘). 외로워서 슬프고, 슬퍼서 외로운데, 슬픔은 도돌이표처럼 부메랑처럼 ˝튕겨져 나갔다 다시/ 튕겨져˝ 들어온다(‘청계천 엘러지‘). 시인의 어깨에는 계절과 상관없이 언제나 ˝슬픔의 외투˝가 걸쳐져 있다.

시들을 읽다 가슴이 얼마나 저릿저릿해지던지, 서른의 시인이 내 눈앞에 있다면 꼭 부둥켜안고서 등을 토닥이며 ˝힘들었구나, 애썼구나, 장하구나˝ 라고 말해주고 싶을 정도였다. 시인처럼 나 또한 그 시절을 그렇게 힘겹게, 그렇게 꾸역꾸역 관통해왔기 때문이다.

시인의 이십 대는 ˝뼈아픈 사랑˝이 ˝한의 못˝을 이루고(‘버림받은 자들의 노래‘), 외로움이 ˝불침번˝처럼(‘과거를 가진 사람들‘) 서 있고, ˝고독의 핏물˝이 ˝골수 사이에서 출렁이고˝(‘외로움의 폭력‘), ˝절망의 골수분자˝가 ˝구더기처럼 꿈틀거리˝고(‘어느 여인이 종말‘), ˝저승의 물결 같은 선잠˝이 ˝머릿골을 하얗게˝ 씻긴다(‘선잠‘).

이 모든 감정들의 귀결은 그리움이다. 거머쥐지 못한 것들에 대한 그리움. 그것들을 쥐고 싶은 간절함. 그 ˝그리움의 그림자들은/ 짓밟히며 짓밟히며/ 다시 일어˝선다(‘부질없는 물음‘). 그리하여 이렇게 노래한다.

그러므로/ 썩지 않으려면 / 다르게 기도하는 법을 / 배워야 했다. / 다르게 사랑하는 법 / 감추는 법 건너 뛰는 법 부정하는 법, / 그러면서 모든 사물의 배후를 / 손가락으로 후벼 팔 것 / 절대로 달관하지 말 것 / 절대로 도통하지 말 것 / 언제나 아이처럼 울 것 / 아이처럼 배고파 울 것 / 그리고 가능한 한 아이처럼 웃을 것 / 한 아이와 재미있게 노는 다른 한 아이처럼 웃을 것.(‘올 여름의 인생 공부‘ 중)

내 이십 중반부터 삼십까지는 아주 어둡고 긴 터널이었다. 그 어둠 속 빛이 되어 준 것 중 하나가 책이었다. 시인에겐 시를 쓰는 것이 저 시절의 어둠을 통과하게 만든 빛이 아니었을까. 52년생인 시인이, 2020년에 예순아홉의 할머니가 된 시인이 ˝아이처럼˝ 웃고 살고 있으면 참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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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21 매일 시읽기 54일 

포구의 잠 
- 김선우 

생리통의 밤이면 
지글지글 방바닥에 살 붙이고 싶더라 
침대에서 내려와 가까이 더, 
소라냄새 나는 베개에 코박고 있노라면 

푸른 연어처럼 . . . 

나는 어린 생것이 되어 
무릎 모으고 어깨 곱송그려 
앞가슴으론 말랑말랑한 거북알 하나쯤 
더 안을 만하게 둥글어져 
파도의 젖을 빨다가 내 젖을 물리다가 
포구에 떠오르는 해를 보았으면 
이제 막 생겨난 흰 엉덩이를 까불며 
물장구를 쳤으면 모래성을 쌓았으면 싶더라 

미열이야 시시로 즐길 만하게 되었다고 
큰소리 쳐놓고도 마음이 도질 때면 
비릿해진 살이 먼저 포구로 간다 
석가도 레닌도 고흐의 감자먹는 아낙들도 
아픈 날은 이렇게 혁명도 잠시 
낫도 붓도 잠시 놓고 온종일 방바닥과 놀다 가려니 
처녀 하나 뜨거워져 파도와 머물게 살 좀 섞어도 
흉 되지 않으려니 싶어지더라


안도현 시인의 <<그 작고 하찮은 것들에 대한 애착>>
(나무생각) 중 내가 사랑한 젊은 시인 김선우의 시다. 이 시는 <<내일을 여는 작가>> 1997년 봄호에 실렸었다고 한다.

김선우 시인은 1970년생이다. 이 시를 발표할 당시는 스물여덟이었다. 안도현 시인은 1961년생이다. 이 시집을 출간할 당시 마흔하나였다. 지금의 나보다도 젊은 마흔하나의 선배 시인이 파릇파릇 돋아나는 새싹 시인을 이렇게 평한다.

˝1996년 <<창작과 비평>> 겨울호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는데 아직 시집 한 권 묶지 않은 젊은 시인이다. 나는 이 시인의 시가 발표될 때마다 눈여겨 본다. 치열한 자기 탐색,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말의 절제력이 놀랍다. 머지 않아 우리 시의 보자기 한 끝을 팽팽하게 잡고 있는 시인이 되리라 믿는다.˝

선배의 눈은 정확했고 2020년 김선우 시인은 여전히 시대를 읽는 시인이자 소설가로 살고 있다. 

2020년 11월 19일. 열넷 생일이 사흘이 지난 날. 딸이 생리를 시작했다. ˝엄마, 몸에 물이 찬 것 같아.˝ 그래, 달에 한 번 이맘때면 네 몸에선 비릿한 냄새가 날 거야. 네 몸속에선 파도가 칠 거야. 너는 네 포구에서 파도와 놀려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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