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자
아니 에르노 지음, 정혜용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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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반납일이 임박하여 지난 일요일에 아니 에르노의 <한 여자>를 다 읽었다. 일주일 전 30페이지 가량을 읽었지만 두어 가지 에피소드 외에 기억이 나지 않아(요즘은 읽자마자, 아니 읽는 그 순간부터 까먹는다 ㅠㅠ) 처음부터 다시 읽었다. 첫 단락에서 나는 감지했다. 내가 좋아하는 글쓰기 기법. 거리 두기 작법. 

"어머니가 4월 7일 월요일에 돌아가셨다. 퐁투아즈 병원에서 운영하는 노인 요양원에 들어간 지 두 해째였다. 간호사가 전화로 알려왔다. <모친께서 오늘 아침, 식사를 마치고 운명하셨습니다.> 10시쯤이었다.(7) 

작가는 분명 자신의 감정을 최대한 배제하고 사실 위주로 글을 썼는데, 나는 이 첫 문장을 시작으로 읽는 내내 눈물을 흘리고, 훌쩍이고, 코를 풀어야 했다. 책 한 권을 내내 울며 읽기는 처음이다. <한 여자>는 맘 잡고 읽으면 앉은 자리에서 두어 시간이면 뚝딱 읽을 수 있는 얇은 책이다. 총 110쪽. 그러나 책의 무게가 꼭 쪽수에 비례하지는 않는다. 이 책의 무게는 제목 그대로 '한 여자'의 인생 무게다. 

"나는 어머니에 관한 글을 계속 써나가겠다. 어머니는 내게 진정 중요한 유일한 여자이고, 2년 전부터는 치매 환자였다."(18) 

"내가 쓰려고 하는 것은 가족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의 접점에, 신화와 역사의 접점에 위치하리라. 나의 계획은 문학적인 성격을 띤다. 말들을 통해서만 가닿을 수 있는 내 어머니에 대한 진실을 찾아 나서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사진들도, 나의 기억도, 가족들의 증언도 내게 진실을 가져다주지 못한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문학보다 아래 층위에 머무르길 바란다.(19) 

나는 아니 에르노의 글을 처음 접했다. 특이한 글쓰기였다. 한 사람의 인생을, 그것도 가장 가까웠던 존재의 인생을 이만큼 떨어져 서술할 수 있다니. 작가 스스로 "문학보다 아래 층위에" 있는 글이라 칭하는 작법. 감정은 밀어 놓고 있었던 사실들을 충실히 따라가는 자기분석적 글쓰기. 

나는 내 인생에 딱 한 권의 책을 쓰고 싶었던 사람이다. '싶었던'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아무래도 못 쓰겠구나 하는 생각이 점점 들고 있기 때문이다. 내 나이 열여섯에 내 어미가 들려준 엄마 인생의 한 귀퉁이. 고작 귀퉁이만 들었을 뿐인데 내게는 소설이나 드라마 같은 이야기였다. 아마도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언제고 엄마 이야기를 써야지.

이 책을 읽다 저자의 어머니의 삶과 성격이 내 어미의 삶과 성격과 너무나 닮아 있어 깜짝깜짝 놀랄 때가 많았다. 물론 내 어미는 책, 음악, 영화 따윈 모르는 분이었고 대신 저자의 어머니처럼 한때 가게를 운영해 많은 돈을 벌었다. 그렇게 번 돈 다 버려두고 어미는 혈혈단신으로 첫 남편의 집을 도망치듯 나왔다. 

"나는 어머니의 폭력, 애정 과잉, 꾸지람을 성격의 개인적 특색으로 보지 않고 어머니의 개인사, 사회적 신분과 연결해 보려고 한다. 그러한 글쓰기 방식은 내 보기에 진실을 향해 다가서는 것이며, 보다 일반적인 의미의 발전을 통해 개인적 기억의 고독과 어둠으로부터 빠져나오게 돕는 것이다."(51) ​

 

내 어미는 내게 조금도 살갑지 않은 엄마였다. 완벽주의자적인 기질이 있어 나의 엉성함과 미숙함과 가벼움을 탐탁해하지 않았다. 내 뒤통수에다 대고까지 지겹도록 잔소리를 해대는 어미였다. 나는 내 엄마가 티비 속 다정한 엄마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어 교회도 안 다니면서 하느님을 원망하기도 했다. 도무지 싫기만 한 내 어미를 나는 이십대 중반 무렵부터 저자처럼 개인사와 사회사를 엮어 한 인간으로 이해해 보려 애썼다. 그때 내가 했던 질문은 이것이었다. 너가 엄마같이 살았다면 지금의 엄마만큼 끈덕지게, 의연하게, 살았겠냐고. 답은 '아니오'였다. 그래서 나는 언젠가부터 엄마의 삶을 존중하게 되었고 어미를 존경도 했다. 그러나 이런 부분만큼은 결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누군가 너를 열두 살에 공장에 처넣어 버렸다면 너도 그렇게는 못할 거다. 넌 네가 누리는 행복을 몰라.> 그리고 또, 종종 나에 대한 분노 섞인 생각. <저런 물건이 사립 기숙 학교엘 다니다니. 다른 것들보다 더 나을 것도 없건만.> / 어떤 순간들에는 자기 앞에 있는 딸 속에 계급의 적이 있었다.(65) 

내 어미의 말은 이랬다. "내가 니년만큼 공부했으면 판검사를 하고 있거나 청와대 들어가 있었을기다!" 그랬을 것도 같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억척스럽기가 타의추종을 불허할 만했던 어미가 팔순 생일을 기점으로 생을 부여잡은 손에서 힘을 빼기 시작했다.  

"그녀는 변했다. . .  소소한 불편 거리들에 대해서 끊임없이 <정말이지 신물이 나>라고 말했다."(89)​

"일이 보배다"라는 말을 성경 말씀처럼 가슴에 품고 일을 보물단지마냥 끼고 살던 어미가 "사는 게 무재미다"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그런 어미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밥을 같이 먹는 것, 아이들 재롱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런 것조차 해주기 힘들어지는 날이 오리라는 건 예측하지 못했다.  왜. 내 어미는 언제나 강건한 사람이었으니까.  

"자신이 돈에 호기심을 보인다며 그들 전부를 싸잡아 비난하고 . . . <이 거지 같은 곳에서 더러운 꼴 보기도 지겹다 지겨워.> 어머니는 형언할 수 없는 위협에 맞서느라 뻣뻣하게 굳어 버린 듯했다."(90) 

쌈짓돈이 없어졌다, 통장이 안 보인다, 도장이 사라졌다, 주민등록증이 보이지 않는다 . . . 도둑이 들었다 . . . 나와 옆지기는 졸지에 "칼로 배때지를 찔러 죽일 년놈"이 되었다. 나는 내 아이들의 머릿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에만 관심을 가졌지 팔순을 한참 넘긴 내 어미의 머릿속이 어떻게 되어 가고 있는지 살피지 않았고, 살필 생각도 하지 못했다. MRI 촬영 사진 속 내 어미의 뇌는 해마가 많이 망가져 있었고, 전두엽도 쪼그라든 상태였다. 치매 판정과 함께 어미는 심장 부정맥 판정을 받고 스탠드 시술을 받았다. 어미는 점점 여위어 갔다.

"나는 그녀가 죽기를 바라지 않았다. / 나는 그녀를 먹이고, 만지고,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 여러 번, 요양원에서 데리고 나가 그녀만을 돌보고 싶다는 급작스러운 욕망, 그리고 곧 그럴 능력이 내게 없다는 깨달음. (사람들이 말하듯 <나로서는 달리 어쩔 수가 없었다>)라고는 해도, 어머니를 그곳에 놔뒀다는 죄책감."(105) 

나는 어미를 겨우 6개월 돌보고 요양원에 모셨다. 요양원에 모신 첫 한 달은 많이 울었다. 죄책감에 날마다 한숨을 쉬고 가슴을 쳤다. 이런 전철을 밟아본 많은 사람들과 요양원 관계자들은 어미가 요양원에 정착할 때까지 보러 가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그 말을 따랐다. 전화통에 불이 났다. 이런 경우 모든 치매 환자의 말은 거의 동일하다. "왜 나를 여기 놓고 갔어. . . . . ."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눈물이 더욱 복받쳤다. 하여 나는 그네들의 말을 모두 무 자르듯 잘라버리고 날마다 엄마를 보러 갔다. 엄마랑 밥을 먹고 간식을 먹고 엄마가 부르는 노래와 옛날 이야기를 들었다. 엄마는 안정을 찾아갔다. 다행히 어미는 기억만 시나브르 읽어갈 뿐 요양원에서 건강을 회복하고 잘 지내고 계신다. 어미는 여전히 나와 사위와 손녀손자를 기억하고 우리가 오면 반가워 하고 우리가 가져온 음식을 맛나게 드신다. 나는 아직은 "내가 태어난 세계와의 마지막 연결 고리를"(110)를 잃지 않고 있다. 

나는 내 어미가 내게 허락한 시간, 내가 어미를 돌볼 수 있게 해준 시간에 감사한다. 켜켜이 묻어 두었던 말들을 기억을 잃어가는 중에 토해내 준  것에 감사한다. 그 말들은 내게 울음을 넘어 통곡을 끌어냈지만, 어미라는 한 여자를, 어미의 삶을 더욱 깊이 이해하는 길로도 이끌었다. 그러니 함부로 말하지 말라. 함부로 가여워하지 말라. 

"사람들은 내게 말했다. <그런 상태로 여러 해를 사신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모두에게,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이 더 나았다. 그건 나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하나의 문장, 하나의 확신이었다."(15) 

나도 저자와 같은 생각이다. 기억을 잃어간다고, 수족을 못 쓴다고, 누워만 지낸다고, 살 권리를 박탈 당할 이유는 없다. 그것을 결정할 권한은 누구에게도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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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3-05 15: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행복한 책읽기님 !
이달의 당선 추카추카~
오늘 태어난 개굴군 🐸여기 놓고 감 ^0^

행복한책읽기 2021-03-05 16:17   좋아요 1 | URL
나보다 먼저 알고 축하글 남겨주는 scott님이 바지런함을 어쪄. 고마워요. 애들 개학하니 좀 정신없음요. 특히 둘째 땜에 ㅋㅋ 경칩이었다니. 아. 그래서 햇살이 이리도 좋았군요. 넘 따땃한 날이어요.^^ 난중에 스캇님 페이퍼 놀러갈게유~~~^^

희선 2021-03-06 00: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행복한책읽기 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사실 저는 그런 말 들으면 좀 창피합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썼네요 이 글 봤을 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제 생각이 맞았네요 행복한책읽기 님 어머님이 기억은 잊는다 해도 건강하게 사시면 좋겠습니다


희선

행복한책읽기 2021-03-06 14:05   좋아요 0 | URL
희선님 쑥스러움 누르고 축하글 남겨줘 고마워요. 희선님은 매번 당선되던대요. 책도 열심히 읽고 리뷰도 열심히 쓰고, 본 적은 없지만 뭔가 야리야리하실 듯한데 그 에너지가 어디서 나올까 궁금한 분이에요. ㅋㅋ 저희 엄마는 기억은 시나브르 잃어가지만 순간순간 즐겁게, 건강하게 살고 계세요. 다행히도요. 희선님이 기원을 해주니 넘 뭉클한 거 있죠. 고마워요~~~~^^

2021-03-18 21: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행복한책읽기 2021-03-19 19:05   좋아요 1 | URL
북사랑님 고마워요. 댓글 읽다 울컥했음요. 엄마 책 쓰고팠는데 점점 자신이 없어져요. ^^;;
 

20210118 시라는별 3

구두를 신고 잠이 들었다
- 강성은 

잠든 사이 붉은 가로등이 켜졌다
붉은 가로등이 켜지는 사이 달에 눈이 내렸다
달에 눈이 내리는 사이 까마귀가 울었다
까마귀가 우는 사이 내 몸의 가지들은 몸속으로만 뻗어갔다
몸속에 가지들이 자라는 사이 말들은 썩어 버려졌다
말들이 썩어 버려지는 사이 나는 구두 위에 구두를 또 신었다
구두를 신는 사이 겨울이 지나고 여름이 왔다
여름이 오는 사이 도시의 모든 지붕들이 날아갔다
도시의 지붕들이 날아가는 사이 길들도 사라졌다
길들이 사라지는 사이 지붕을 찾으러 떠났던 사람들은 집을 잃었다
그사이 빛나던 여름이 죽었다
여름이 죽는 사이 내 몸속에선 검은 꽃들이 피어났다
검은 꽃이 피는 사이 나는 흰 구름을 읽었다
흰 구름을 읽는 사이 투명한 얼음의 냄새가 번져갔다
얼음 냄새가 번지는 사이 나는 구두 위에 구두를 또 신었다
열두 켤레의 구두를 더 시는 사이 계절은 바뀌지 않았다
구두의 계절이 계속되는 사이
나는 구두의 수를 세지 않았다
구두 속에서 나오지도 않았다​

강성은의 《구두를 신고 잠이 들었다》​를 도서관에서 대출해 몇 편을 읽었다. 2005년에 문학동네신인상으로 등단한 시인의 첫 번째 시집이다. 지난번에 읽은《Lo-fi》보다 훨씬, 훨~~~~씬 난해하고 모호한 시집이다.  

˝시인은 동화적 상상력과 상징들을 시 속으로 가져와 낯설고 어두운 이야기를 아름답게 들려주는 것이다.˝ 라고 출판사 서평에 나와 있는데, 아름다운 건 모르겠고 낯설긴 분명 낯설다.

추천평을 쓴 남진우 시인 겸 문학평론가는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종잡을 수 없을 만큼 초현실적이고 부조리하기도 하고 인과율이 파괴된 즉흥성과 기발함으로 가득 차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강성은 시인의 이야기에 ˝매혹적인 중독성˝이 있다고 평하는데, 아, 나는 이 이야기에 중독되지 못할 것 같고, 않을 것 같다. 시가 내 이해 범위를 너무 벗어나면 접근성이 떨어진다. 그러니까 시집에 손길이 안 가게 된다는 것.

‘구두를 신고 잠이 들었다‘는 끝말 잇기 같은 시다. 도무지 잘 모르겠는 연속적인 끝말 잇기에서 가장 인상적인 구절은 마지막행 ˝구두 속에서 나오지 않았다˝이다. 화자는 ˝구두 위에 구두를 또 신고˝ 그 ˝구두 속에서 나오지˝ 않은 것이다. 자신을 꽁꽁 가두었다. 가련하다.

《Lo-fi》에서는 막연하나마 물 밖으로 종종 얼굴을 내밀던 죽음의 이미지가 이 시집에서는 물속을 유영하는 것 같다. 그래서 더 어둡고 더 몽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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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1-01-19 0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가 어렵네요 이 시집은 못 봤지만, 《Lo-fi》는 봤어요 그건 괜찮게 보기는 했어요 시집을 볼 때 저는 시가 아주 어렵지 않기를, 조금이라도 알아들을 수 있다면 좋겠다 생각합니다


희선
 
경계에 선 아이들
페터 회 지음, 박현주 옮김 / 뿔(웅진)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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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리 모두는 "하찮지만 중요한 존재"

안타깝다. 이런 책이 절판이라니. 어른들, 특히 부모와 교사가 꼭 읽었으면 하는 책이다. 2020년 11월에 읽기 시작해 해를 넘겨 2021년 1월 10일에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다.

페티 회의 <<경계에 선 아이들>>은 전작인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에는 못 미치지만 <스밀라>에 들어 있던 작가의 문제 의식과 철학의 궤를 같이 한다. "어른이 어린애들을 세게 쳤을 때 일어나는 감정"(13), 어른이 어린애들에게 가하는 폭력과 공포, 한 아이를 구하는 문제, 더 나아가 나를 구하는 길, 시간의 일회성과 영원성, 공존과 연대와 따뜻함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그것도 아주 모호하게, 그것도 아주 철학적으로.

이 소설은 시종일관 긴장이 팽팽히 흐른다. 첫 조회 장면부터. 빌 학교의 교장은 학생들에게 "유창한 침묵"을 강조하며 몸을 바짝 긴장시키는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학생들에게 재갈을 물려 반벙어리 행세를 강요하는 억압적이고 폭압적인 학교. 빌 사립학교는 그런 학교다. 이 학교는 왜 학생들의 모가지를 가차 없이, 사정없이 조일까.

"그들은 원대한 계획을 세웠다. 모든 아이들을 덴마크 공립교육 체계에 한데 모으려는 계획. 정신적 결함이 있거나 비행을 저지른 아이들은 물론 학습 진도가 늦은 아이들까지도, 심한 지적 장애와 정상의 경계에 선 아이들을 모두 끌어안아 학교에 보내려는 계획이었다. 빌 학교는 이 통합을 위한 전범이 될 예정이었다. 이 학교는 어떻게 통합이 이루어질 수 있는지 연구하기 위한 실험실이고 작업장이었다.(284) / 1964년부터 1974년 사이에 불우 아동들을 덴마크 공립학교에 통합하려는 실험이 총 54건이었다. 자그마치 54건." (285) ​

소설 속에도 등장하는 이 실험은 덴마크에서 실제로 진행되었던 교육 실험이었다. 가족과 세상에서 내쳐진 아이들, 일반 학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은 아이들, 그런 수준 이하의 아이들을 그러모아 '통합'이라는 그럴싸한 미명 아래 재능 있는 학생들로 변모시키겠다는 야심 찬 실험이었다. 작가가 말하듯 이 계획은 "미친 짓"이었다. 예상 가능하게도 이 실험은 무수한 아이들에게 씻을 수 없거나 씻기 힘든 상처만을 남긴 채 실패로 끝났다. 어째, 기시감이 들지 않나. 이것이 1960년대의 덴마크에서만 있었던 일이기만 하면 좋겠는데, 나는 자꾸 내가 사는 대한민국 학교 현장과 고아원과 소년원에서도 일어났었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일인 듯해 등골이 오싹오싹해지곤 했다.

이 문제 많은 학교에, 문제 많다고 느끼지 못하는 무수한 학생들 중에 뭔가 문제가 있다고 느끼는 세 아이가 있다. 나, 카타리나, 아우구스트이다. 아우구스트는 사물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경계성 인격 장애의 증상을 보이는 친구이다. 나와 카타리나는 이런 아우구스트를 돕기 위해, 또한 그들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감시의 경계망을 피해 탈출을 꿈꾼다.

"아우구스트처럼 약하고 무력한 존재가 있다면 대가를 받지 않고도 그를 위해 뭔가를 해줘야만 한다. 그게 무엇이 되었든 해준다. / 하지만 나는 대가를 받았다. 그 애를 돕고 보호하기 위해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왔다. 이제는 마치 그 애가 나를 도와주는 기분이었다. 다른 사람을 도움으로써 자신이 자유로워지는 기분이었다." (176) ​

빌 학교의 교사들과 교육부 관계자들도 자신들이 아이들을 돕고 있다고 생각했다. 어둠에 갇혀 있는 아이들을 빛 속으로 끌어올리는 일을, 참으로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 확신이 있었기에 이들은 그 어떤 폭력적 행위도, 폭력인 줄 모른 채 행할 수 있었다. 무섭고 섬뜩한 사실이다. 이 소설은 페터 회의 사립학교 시절의 경험담이 어느 정도 반영된 자전적 성격의 소설이라고 한다. 소설 후반부에 이르러 주인공 나의 이름이 작가와 똑같은 '페터'라는 사실에서 그런 자전적 성격이 발견되며, 어른이 된 '나'가 이 시절을 회상하며 하는 말에서 작가가 이 소설을 쓴 이유가 밝혀진다.

"성장한다는 것은 무엇보다 모든 일을 잊는다는 것을 뜻하며, 그 후에는 어린아이였을 때 중요했던 것을 버린다는 의미가 된다. 나는 이것에 저항해 왔다." (286) ​

그러니까, 이 소설은 잊지 않기 위해, 기억하기 위해 쓰여진 것이다. 무엇을? 편견에 사로잡힌 이른바 '정상군'에 속하는 세계에서 이유도 모른 채 속수무책으로 얻어맞고(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산 '비정상군', 또는 경계선의 아이들을 위해서 말이다.

그 아이들, 카타리나와 아우구스트와 나는 빅브러더들의 눈을 피해 어떻게든 함께하려 애썼다. 이들의 만남은 언제나 아슬아슬했고 이들의 관계는 언제나 위태위태했다. 이들은 문제를 인식했고, 원인을 파헤치려 했으며, 해결책을 모색하고자 했다. 이 아이들은 어른들의 도움 없이 스스로 깨치고 스스로를 구원하고자 힘을 썼다. 그 노력들이 너무 가상하고 너무 기특해서 나는 무시로 눈시울이 뜨거워지곤 했다. 세 사람의 연대는 어른들에 의해 무참히 깨지고 말지만 그것은 물리적인 파괴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ㅡ카타리나와 아우구스트, 나ㅡ는 만났고 그 이후로 다시는 완전히 포기할 수가 없어졌다. 나는 왜 이렇게 되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 나는 그게 사랑이었다고 믿는다. 한번 사랑을 만나게 되면, 다시는 가라앉지 않게 된다. 항상 빛을 찾아 표면 위로 떠오르기를 갈망한다."(329) ​

작가가 작품 속에서 말하듯 이 소설은 "세상에 잘 적응해 나가는 사람," "다른 사람하고 시간을 공유하는 데 별 문제가 없는"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구미가 당기지 않는 이야기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한때 어린이였고 청소년이었으며 학생이었다. 그 시절들은 대체로 아주 많이 모호하다. 이해되지 않고 설명할 수 없는 일들로 가득하고 내 마음과 생각도 뚜렷하게 잡히지 않는다. 그래서 어른이 된 '나'가 펜을 잡고 그때는 그랬어, 너희들 잘못이 아니야, 어른들이 잘못한 거야, 그것도 아주 많이, 라고 대신 말을 해주는 것이다.

그 말을 작가는 총 3부로 구성된 이 소설의 마지막 3부에서 집중적으로 다룬다. 시간에 대한 철학적 사유와 더불어. 작가는 소설 초반부터 "쏜살같이 흘러가 영원처럼 되어버리는 순간들"(19), "​시간이란 저절로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붙들어야만 하는 것"(27)," 이라는 표현들로 시간이란 무엇인가를 화두처럼 던진다. 카타리나-아우구스트-나 세 친구는 한 시절을 함께 했다. 누구나 거쳐 가는 통과의례의 시간이었고 우주의 시계로 보면 찰나의 시간이었지만, 그들 세 사람에게는 꼭 붙들어 매야 하는, 사랑이 존재했던 영원의 순간이었다. 선형적인 시간과 순환적인 시간의 교차.

"모든 사람의 인생에는, 인식할 수 있는 모든 평면 위에는 순환적이고도 선형적인 특질들이 끊이지 않고 이어진 채로 존재한다. 동일한 행동이 몇 번이고 반복되지만, 이 사건은 특별하면서도 일회적이다." (297) ​
"실상 우리 자신에게는 삶이 돌이킬 수 없는 것임을 안다. 문제가 너무 커지면 점점 쌓이다가 끝내는 손가락에서 모래가 술술 빠져나가듯 삶이 그렇게 술술 빠져나간다는 걸 알게 된다. / 하지만 자기 자신에게서 물러서면, 예를 들어 딸아이가 나를 도와줬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처럼 멀찍이 떨어지게 되면, 반복이 보인다. 그 순간 자기 자신이 모든 강력한 회로 사슬에서 하나의 연결 고리에 지나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결국 나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내가 가치 없는 인간이어서가 아니다. 나는 가치 없는 인간이 아니며, 비록 하찮다고 해도 중요한 사람이다. 결국 위대한 반복이 훨씬 더 크고 더 중요한 것이다. / 정신이 오로지 가지 자신만을 감각한다면, 시간을 돌이킬 수 없는 것으로 인식하게 된다. 하지만 가족과 유전, 아이들과 탄생, 다른 이와의 공존을 보게 되면 반복이 보인다. 시간은 모래가 술술 흘러나가는 모래 시계가 아니다. 널리 뻗어 있는 평원이며, 횡단할 수 있는 대륙이다."(345) ​

우리 모두는 "하찮다고 해도 중요한 사람이다." 작가가 궁극적으로 하고 싶었던 말은 이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중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타인을 통해서다. 타인의 이타적인 행동을 통해서다. 이 소설에서 가장 감동적이고 뭉클한 장면을 소개하면서 이 글을 맺겠다. 신영복 선생님의 "함께 맞는 비"가 생각나는 일화이다.

주인공 '나'에게는 홈룸(homeroom)이라는 고아원 절친이 있다. 이름 그대로 고향 같은 친구다. 그들이 머문 고아원 샤워실에는 샤워기가 세 개 있었다. 하나만 따뜻한 물이 나왔다. 하루는 나와 홈룸이 샤워줄 꼴찌에 섰다. 내 앞에 서 있던 홈룸이 온수 샤워기를 지나쳐 냉수 샤워기 아래 섰다. 홈룸은 자신의 친구가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오랫동안 따뜻한 물로 온몸을 적실 수 있도록 배려를 해준 것이었다. "나는 눈을 감았다. 따뜻한 물이 벽처럼 나를 에워쌌다. 전에는 그렇게 한참 동안 온수 샤워를 해본 적이 없었다." (228) '나'는 그때 일을 회상하며 육신은 보이지 않지만 영혼이 늘 함께 있는 그 친구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네가 꼭 알아주었으면 하는 얘기가 있어." 내가 말했다. "우리가 만난 뒤로, 처음 같이 변기 위에서 라디에이터에 걸터앉았던 이후로, 난 한 번도 완전히 외로웠던 적이 없어. 네가 나를 떠난 후에도 말이야. 그전에는 내 삶에 아무것도 없었어. 하지만 누군가 내가 따뜻한 물에 샤워할 수 있도록 냉수 샤워가 아래서 오래 견뎌준 덕분에, 나는 다시는 진정으로 외롭지 않게 되었어."(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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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라서 좋아
김응 지음, 황정하 그림 / 창비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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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06 매일 시읽기 100일  

둘이라서 좋아 
- 김응 

짜장면이랑 단무지랑 
젓가락이랑 숟가락이랑 
연필이랑 지우개랑 
꽃이랑 나비랑 
악어랑 악어새랑 
자물쇠랑 열쇠랑 
빨래랑 빨래집게랑 
실이랑 바늘이랑 
나랑 동생이랑 
둘이라서 좋아 


매일 시읽기 100일. 감개무량 대신 내게 온 감정은 나, 미친 거 아님? 진정 100일? 이라는 놀라움이다. 100일째 읽는 시로는 내가 ˝명랑하게 써내려간 가난한 날들의 기록˝이라고 썼던 김응 시인의 ˝둘이라서 좋아˝를 골랐다. 왜냐. 어린이의 세계는 늘 초심을 떠올리게 하니까.

2020년 9월 29일 심보선의 #슬픔이 없는 십오초를 시작으로, 작심삼일의 마음으로 매일 시읽기에 돌입했다. 시의 난해함과 답답함은 여전하지만, 내 사유의 깊이가 그다지 깊어지지도 않았지만, 시를 읽는 동안만큼은 고요와 사색과 행복에 젖는 시간이었다. 그래서 좋았다. 그리고 날마다 시읽기를 올린 덕분에 알라딘 친구들이 생겼다. 그들을 통해 나의 시세계가 조금 넓어졌다. 그래서 또 좋았다.

100일 동안 서른 일곱 권의 시집, 서른 네 명의 시인, 다섯 명의 가수를 만났다. 완독 시집보다 비완독 시집이 더 많고, 완독은 했으나 소화하지 못한 시들은 훨씬 많다. 괜찮다. 시에 머물던 그 시간과 감흥이 내 몸에 새겨졌으니.

심보선 / 슬픔이 없는 십오 초 
메리 올리버 / 완벽한 날들 / 천 개의 아침 
기형도 / 잎 속의 검은 잎 ​나희덕 /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 / 그곳이 멀지 않다 
나훈아 / 테스형 
알렉산더 포프 / 포프 시선 
박노해 / 참된 시작 
권혁웅 / 마징가 계보학 
보들레르 / 악의꽃(문예출판사)(민음사) 
에밀리 디킨슨 / 고독은 잴 수 없는 것 
김응 / 둘이라서 좋아 
루이스 글릭 / 야생 붓꽃 
라이너 마리아 릴케 / 두이노의 비가 
허연 / 당신은 언제 노래가 되지 
나태주 / 풀잎을 담기 위하여 
김선우 / 나의 무한한 혁명에게 
김영랑 / 오 메 단풍 들것네 
황인숙 / 새는 하늘을 자유롭게 풀어놓고 / 못다 한 사랑이 너무 많아서 
최백호 / 낭만에 대하여 
박준 /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을 먹었다 
박제영 / 식구
김건모 / 서울의 달 
이원하 /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 
이하이 / 홀로 
김기덕 / 김치 
앨프리드 테니슨 / 눈물이,부질없는 눈물이 
안도현 시인 / 그 작고 하찮은 것들에 대한 애착 / 능소화가 피면서 악기를 창가에 걸어둘 수 있게 되었다​​
김준태 / 참깨를 털면서 
최승자 / 이 시대의 사랑 
김지하 / 애린 1, 2
새얼백일장 중등부 시 차상 / 소란 
서정주 / 80소년 떠돌이의 시​
함민복 / 말랑말랑한 힘 
이규리 / 당신은 첫눈입니까 
김행숙 / 무슨 심부름을 가는 길이니​
강산에 / 툭툭탁 
황지우 /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
미자야와 겐지 / 비에도 지지 않고 
강성은 / Lo-fi​
박두진 /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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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1-01-07 02: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백일째라니 축하합니다 날마다 뭔가 하기로 하면 며칠은 재미있게 해도 시간이 지나면 조금 하기 싫기도 하죠 그래도 하면 기분 좋고 뿌듯하기도 합니다 앞으로도 시 즐겁게 보시기 바랍니다 보는 것뿐 아니라 생각도 하시겠네요


희선

행복한책읽기 2021-01-08 09:36   좋아요 1 | URL
감사해요. 시읽기 덕에 희선님도 알게 됐네요. 이제 좀 천천히 읽으려구요^^
 
Lo-fi 문학과지성 시인선 511
강성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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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05 매일 시읽기 99일 

채광 
- 강성은  

창문에 돌을 던졌는데 
깨지지 않는다 

생각날 때마다 던져도 
깨지지 않는다 

밤이면 더 아름다워지는 창문 

환한 창문에 돌을 던져도 
깨지지 않는다 

어느 날엔 몸을 던졌는데 
나만 피투성이가 되고 
창문은 깨지지 않는다 

투명한 창문 
사람들이 모두 그 안에 있었다 


오늘은 다시 강성은 시집 《Lo-fi》. 2005년 데뷔한 시인의 세 번째 시집이자 2018년 제26회 대산문학상 시 부문 수상작이다.

새해 벽두에 이 시집을 눈으로는 다 읽었다. 그렇게 읽고 내가 느낀 점을 1월 2일 시읽기에서 이렇게 썼다. ˝죽은 자들에게 목소리를 빌려준 시인. 시인이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에 서서 삶과 죽음을 넘나들며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떠난 이들의 입 노릇을 대신 해주고 있다는 느낌.
그래서 좀 아프고 꽤 먹먹하다.˝

이 시집을 읽는 동안 내 머리 위로 둥둥 떠다닌 세 글자가 있었다. 세 월 호. 2014년 4월 16일. 그 참사가 일어났을 때 대한민국의 어른이라면 대개가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미안함. 죄책감. 무력감. 우울감. 이 참사는 6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여전히 진상
규명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 일이 왜 이토록 어려운지, 정말로 무슨 거대한 음모가 숨어 있어 그런 건지 나는 아주 많이 궁금하다. 제삼자인 나조차 이렇게 궁금한데, 당사자들과 그 당사자들의 부모들과 자식들과 친지들의 의문이야 오죽할까. 속이 타들어갈 것이다.

대산문학상 수상 기자간담회에서 강성은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두 번째 시집 이후 5년 사이 벌어진 사건들 중 세월호 참사와 문단 내 성폭력에서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 . . 시에 암울한 세계가 많이 담겼다 . . . 이 세계가 이미 사후 세계가 아닌가 싶다.”

세월호 사건을 겪고 나는 누구라도 좋으니 그 일을 글로 써 주길 바랐다. 강성은 시인은 자신이 잘 휘두르는 시라는 무기로 시커먼 바다 속과도 같은 그 끔찍하고 무서운 세계를 투명하게 그리고 있다. 그가 휘두르는 칼끝은 매섭고 시리고 아득하다.

아무리 돌을 던져도 나와 너를 가르는 창문이 꿈쩍도 하지 않는 세상은 시인의 말대로 ˝이미 사후 세계˝일지 모른다. 두드리면 열려야 하고 던지면 깨져야 하는데, 그렇게 되지 않는 세상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제 한 몸이라도 던질 밖에. 그러나 계란으로 바위를 쳤을 때 깨지는 것은 바위가 아니라 계란이다. ˝나만 피투성이가˝ 되고 만다. 이 시구에서 뜨끔하고 따끔했다가, 다음 연의 ˝투명한 창문 / 사람들이 모두 그 안에 있었다˝에서 서늘해지고 섬뜩해졌다. 내가 저 투명한 창문 안쪽의 사람들, 즉 방관자들 중 한 명이 아닌가 해서.

시인의 말따나 ˝암울한 세계가 많이 담겨˝ 있어 이 시집을 읽는 일은 유쾌함보다 불편함 쪽에 가깝다. 그럼에도 읽을 수밖에 없는 까닭은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지 말라는 내 속의 양심이 계속 말을 걸기 때문이다. 두 눈 멀쩡히 뜨고 이 세계를 사후 세계로 만드는 우는 되도록 삼가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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