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29 #시라는별 64 

고사목 
- 이산하 

바로 저기가 정상인데 
그만 주저앉고 싶을 때 
저기 고사목 지대가 있다. 
무성했던 가지들과 
푸른 잎들 떠나보내고 
제 몸마저 빠져나가버린
오직 혼으로만 서 있는 
한라산의 고사목들 . . . . . . 
천둥 같은 그리움인 듯 
폭설 같은 슬픔인 듯 
죽어서도 썩지 않는다. 

이산하 시인의  『존재의 놀이』 를 느리게, 정말로 느리게 읽고 있다. 시인의 최신작인 『악의 평범성』 이 너무 좋아 내쳐  『한라산』 을 읽었고, 이어서 시인의 첫 시집인 이 책까지 구매해 버렸다. 아무래도 이산하의 책들은 모조리 찾아 읽지 싶다. 다음은 1999년도판 <시인의 말>의 일부다.

‘첫 시집‘인 듯하다. 
1부는 내가 잔잔했던 최근(1998년 봄~1999년 봄)의 작품들이고 
2부는 내가 출렁거렸던 약 20년 전(1977년봄~1985년 봄)에 쓴 것들이다. 
그 ‘잔잔함‘과 그 ‘출렁거림‘ 사이가 멀리서 들려오는 천둥소리처럼 
너무 아득하다. 
벌써 가슴이 뜨거워져온다. 

문학동네가 1996년 절판되어 명성으로만 남아 있는 옛 시집 복간 기획으로 시작한 ‘포에지 2000‘ 시리즈를 재개했다.  『존재의 놀이』 도 이 기획으로 되살아났다. 개정판 <시인의 말>에서 이산하 시인이 기뻐하는 목소리를 냈다.

편집자와의 착오로 
바뀐 시집 제목을
22년 만에 
바로 잡아 다행이다.

1999년도판 시집 제목은  『천둥 같은 그리움으로』 였다. 이 제목은 아마 초판본 <시인의 말>과 제주도 한라산의 고사목들을 노래한 <고사목>에서 따온 듯하다.

나는 한라산 대신 17년만에 지리산 천왕봉을 밟았다. 설악산 만경대가 오랜 시간 내 속에 불씨로 남아 있던 등반 열정에 불을 지펴 기어이 설악 대청봉을 찍고 끝내 지리산 천왕봉까지 오르게 만들었다.

지리산 고사목은 17년 전 등린이였던 나를 사로잡았던 나무였다. 고사목은 해발 1600고지쯤 이르러야 만날 수 있다. 다리는 후들거리고 심장은 쿵쾅거리고 숨은 턱까지 차 올라, 시인의 말대로 그만 딱 주저앉고만 싶을 때 두 눈 번쩍 뜨이게 하는 존재가 바로 고사목들이다. ‘살아 천 년 죽어 천 년‘을 산다는 주목나무를 처음 맞닥뜨렸을 때의 감동. 너희들은 대체 무슨 힘이 남아, 아니 무슨 한이 남아 죽어서도 산다니, 그것도 천 년씩이나,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무성했던˝ ˝푸른 잎들 떠나보내고˝ 가느다랗고 허연 몸뚱이로 그 바람 부는 높은 곳에 버티고 선 자태가 무척이나 경이로웠다.

지리산 제석봉(1800고지) 고사목 군락지에는 슬픈 내력이 있다. 한때 울창한 숲을 이루었던 이곳은 도벌꾼들이 도벌의 흔적을 없애기 위해 불을 지르는 바람에 지금과 같은 나무들의 공동묘지가 되었다. 묘지는 언제나 삶과 죽음을 성찰하게 만든다. ˝제 몸마저˝ 빼놓고 ˝오직 혼으로만 서 있는˝ 나무들. ˝죽어서도 썩지 않는 나무들˝. 그 까닭은 살았을 적 푸른 가지들의 길이만큼 뿌리가 땅 속 깊이 깊이 박히기 때문이라고, 같이 산행을 한 숲 해설가가 설명해 주었다. 그런 거였구나, 그래서 산 시간만큼 죽어서도 사는 거였구나.

17년만에 찾은 제석봉에는 고사목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죽음 속 삶이 버거웠던지, ˝혼으로만 서˝ 있기 힘겨웠던지, 많이들 자취를 감췄다. 그래, 그네들에게도 온전한 쉼이 허락되어야 한다.

나는 다시 찾은 설악과 지리에서 내 생의 숨구멍을 찾았다. 

20211023 지리 산행 
산행구간:  백무동 ~ 장터목 ~ 천왕봉(1915m) ~ 장터목 ~ 세석 ~ 한신계곡 ~ 백무동
산행거리: 약 25km(후덜덜)
산행시간: 14시간 30분(04시 출발 18시 30분 종료. 뜨아아~~~)
산행걸음: 약 4만 7천보(신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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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1-10-29 09:0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 고적한 곳에서 고사목들은 자기들만의 예술세계를 펼치고 있군요! 읽고 또 읽고픈 글입니다요~♡

행복한책읽기 2021-10-29 16:33   좋아요 3 | URL
고사목들이 펼치는 예술세계. 와. 멋진 표현이에요. 저도 읽고 또 읽게 돼요^^

새파랑 2021-10-29 12:0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산정상은 벌써 가을이지나서 겨울 느낌이 나네요~! 등산의 선생님 책읽기님이군요~!! 시도 산에 관한 시라니 ^^

행복한책읽기 2021-10-29 16:36   좋아요 4 | URL
맞습니다. 정상 부근은 이미 겨울. 근데 등산의 선생님이라니. 과찬이십니다. 간만의 높은 산이라 제가 꼴찌를 고수했답니다. ㅋ

mini74 2021-10-29 17: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산 시간만큼 죽어서도 사는 고사목이라니ㅠㅠ 숙연해지는데요. 사진들 속 쨍한 파랑이 참 좋아요 *^^*

행복한책읽기 2021-10-30 00:24   좋아요 1 | URL
그죠. 저 파랑은 지리산 파랑이에요. 하늘색도 노을빛도 달빛깔도 산마다 조금씩 다른데. 설악의 달빛은 괴기한 분홍빛이었구요. 지리의 달빛은 은은한 보라빛이었어요. 고사목들은 말씀대로 존재 자체가 숙연함을 느끼게 하네요.

붕붕툐툐 2021-10-29 23: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히야~ 24km라닛!! 등산어르신의 등력에 다시 한 번 감탄합니다!! 저도 이산하 시인 너무 좋아요!!
모든 시집 다 읽고 싶습니다!! 저 아마도 한라산 등반할 기회가 곧 올 거 같아요!! 너무 너무 기대가 됩니다!! 설악산 대청봉, 지리산 천왕봉도 절 기다려 주겠죠??
행책님의 독서와 등산을 응원합니다!!🙆

행복한책읽기 2021-10-30 00:28   좋아요 2 | URL
ㅎㅎㅎ 지두 이번에 나 아직 솰아있네!! 저 자신에게 좀 감탄했어요. 툐툐님 한라산 곧 가실 것 같다고요?? 으메. 따라붙고 싶어라.^^ 설악. 지리. 당근 그들은 늘 그 자리서 산꾼들을 기다려준다죠.^^ 지두 툐툐님 응원합니다. 이산하 시인 애독자여서 더욱 신 납니다~~~~^^

희선 2021-10-30 00:5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죽어서도 사는 나무라니... 산에 있어서 그렇게 있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죽은지 알았던 나무가 다시 움을 틔우기도 했어요 아주 죽은 게 아니고 오랫동안 잠을 잔 건지... 나무는 대단해요 잘 모르지만...

오랜 시간 산에 오르셨군요 그렇게 올라서 기분 좋으셨겠습니다 파란 하늘도 보고 나무도 보고...


희선

행복한책읽기 2021-11-01 11:17   좋아요 0 | URL
그죠. 고사목 뿐 아니라 모든 나무가 참 대단하것 같아요. 저는 산에 가면 힘든데 참 기분이 좋아요. 희선님도 다녀보심이^^;;
 

20211011 #시라는별 63 

살구나무 발전소 
- 안도현 

살구꽃 . . . . . . 
살구꽃 . . . . . . 

그 많고 환한 꽃이 
그냥 피는 게 아닐 거야 

너를 만나러 가는 밤에도 가지마다 
알전구를 수천, 수만 개 매어다는 걸 봐 

생각나지, 하루종일 벌떼들이 윙윙거리던 거, 
마을에 전기가 처음 들어오던 날도 
저깃줄은 그렇게 울었지 

그래, 
살구나무 어디인가에는 틀림없이 
살구꽃에다 불을 밝히는 발전소가 있을 거야 

낯에도 살구꽃 . . . . . . 
밤에도 살구꽃 . . . . . . 


안도현 시인의 일곱 번째 시집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하여』 를 거의 다 읽었다. 이 시집은 1961년생인 시인이 만으로 마흔이 되었을 때 출간되었다.

때때로 울컥, 가슴을 치미는 것 때문에
흐르는 강물 위에 돌을 던지던 시절은 갔다

시절은 갔다, 라고 쓸 때
그때가 바야흐로 마흔 살이다 (<마흔 살> 중) 

˝시절은 갔다˝ 라는 의미를 나는 저 나이에는 느끼지 못했고, 그로부터 십 년이 넘는 세월이 더 흐른 요즘에야 매일, 조금 섬뜩하게 느끼며 산다. 그리고 내 어미는 그 시절을 어찌 견디며 살았을까 하는 생각도 무시로 든다. 기억을 잃어가는 어미 대신 시어머니가 대신 해주신 답변은 이러했다. ˝그런 거 느낄 새가 어딨었갔니. 애 새끼들 밥 굶기지 않으려고 일하기 바빠 죽갔는디 . . .˝ 내 어미의 삶은 시엄니의 삶과는 달랐지만, 어느 순간부터 돈벌리는 재미에 살구나무에 꽃들을 ˝알전구˝처럼 피어 올렸다. 그 시절 내 어미의 몸속에는 ˝살구꽃에다 불을 밝히는 발전소˝ 같은 것이 있어 날마다 벌떼같은 사람들이 들끓었다.

그 시절은 갔다. 영영 갔다. 내 어미 나무는 자가발전할 수 있는 동력을 잃어 더 이상 ˝알전구˝를 ˝수천, 수만 개˝씩 켜지 못하고 몇 개만 간신히 매단 채 희미한 빛을 발하고 있다. 나는 그것을 슬퍼하지 않는다. 내 어미는 충분히 열심히 꽃을 피어 올렸으니, 이제는 ˝야금야금
자신을 갉아먹는 벌레들˝(<살구나무가 주는 것들>)에게 자신의 이파리와 몸통을 내주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아주 많이 늙어가는 이들에게까지 끝끝내 곧게, 곱게 살라는 건 너무 가혹한 요구가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엄마에게 다녀왔다. 코로나로 오랜 시간 엄마와 딸이 같이 누워 보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한 요양원 측에서 독방을 내주며 하는 말, ˝엄마 품에 안겨 한 시간 정도 같이 자요.˝ 물론 어미는 몸이 아파 쉬이 잠들지 못했고, 나는 어미의 아픈 몸을 주무느니라 잠들 수 없었다. 정신이 깜박깜박 하는 와중에 어미가 내 어떤 물음에 명쾌하게 답을 해주었다.
ㅡ 엄마, 나 키우면서 뭐가 젤 힘들었어?  
ㅡ 요기 3분, 조기 3분, 저짝에 3분. 정신을 쏘옥 빼놓는 게 젤 힘들었재. 
ㅡ 근데, 왜 야단 치지 않았어. 딱 부러지게 혼을 내지 그랬어. 
ㅡ 하이고, 엄마만 보면 좋다고 헤헤거리며 다가오는데 우째 혼을 내노. 
ㅡ 내가 그랬어? 내가 엄마 좋다고 헤헤거렸어? 
ㅡ 하모, 그랬재. 

이것은 처음 듣는 이야기였고, 내가 모르는 나였다. 내가 기억하는 나는 엄마 품을 찾는 아이가 아니었고, 내가 기억하는 엄마는 다가가기에 매정한 엄마였다. 그랬던 시절도 갔다. 지금은 내가 모르는 어린 나를 우쭈쭈하며 안아주고 업어주고 달래주었을 어미를 상상할 줄 아는 나이 든 내가 있다. 나는 이런 내가 썩 괜찮고, 발전소 문을 닫으려 하는 늙은 어미의 마르고 퍼석한 몸뚱이를 만지며 내 늙어가는 모습을 상상한다.

주목나무는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을 사는 나무라고 한다. 사람도 죽어 천년을 살지 모른다. 우리의 몸속엔 어미의 어미의 어미의 어미의 어미의 . . . 피가 흐르고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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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10-11 10:17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살구나무 시와 시절은 갔다 라는 말이 왠지 슬프게 다가오네요 ㅜㅜ 책읽기님 그래도 의미있는 시간을 보내신거 같아 다행이네요

행복한책읽기 2021-10-12 01:01   좋아요 2 | URL
네에. 요양원 복지사분들이 얼마나 살뜰하신지, 차암 고맙답니다. 글구요, 한 시절이 가고 또 한 시절이 오니, 괜찮습니다. 그게 삶이잖아요.^^

붕붕툐툐 2021-10-11 15:56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아이코~ 엄마와 함께 하는 시간을 주셔서 감사하네요~ 끝까지 곱게 살라는 건 너무 가혹한 요구라는 말이 너무 와닿습니다..

행복한책읽기 2021-10-12 01:03   좋아요 3 | URL
아니. 툐툐님 어리신 듯한데 샘이셔서 그런가요. 제 맘이 툐툐님께 가 닿았다니. 그 다가옴에 맘이 따스해졌어요^^

붕붕툐툐 2021-10-12 23:40   좋아요 0 | URL
전혀 어리지 않습니다.행책님 또래일 거예요~😍 그래도 따스해지셨다니 너무 행복하네용~💜

초딩 2021-10-12 01:0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사진 참 좋네요. 정말.
천년을 살고 또 천년을 살아도
다 지나가버라는 것을 생각하면 얼마나 사느냐가 중하진 않은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제가 살아가는 시간을 어머니 아버지의 그 시간과 맞춰보게 되는 때가 늘어가는 것 같아요. 그리고 아이들이 또 그렇게 맞춰가겠지요.
좋은 글과 사진 감사합니다.

행복한책읽기 2021-10-12 01:06   좋아요 4 | URL
흐잉. 초딩님 말씀 넘 고맙습니다. 플친님들은 서로의 속을 넘 잘 헤아려주시네요. 거미줄 사진, 저 크고 촘촘하고 예쁜 집 지은 거미에게 감동한 밤이었어요^^

scott 2021-10-12 01:11   좋아요 4 | URL
초딩님 말씀에 가슴이 먹먹 ㅠ.ㅠ

scott 2021-10-12 01:1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행복한 책읽기님 마지막 거미 사진을 보니
어미 거미 처럼 세상의 모든 부모님들 자식을 위해 촘촘한 거미줄을 ㅠ.ㅠ
인간의 생명 주목 나무의 가지 만큼도 못사네요

어머니 행복한 책읽기님 온기에 한결 맘 속이 따스해졌기를 바랍니다 ^ㅅ^

행복한책읽기 2021-10-12 01:18   좋아요 3 | URL
네에. 정말 간만에 엄마 온기 담뿍 지 몸에 장착하고 돌아왔어요. scott님 댓글에 쇠주 들이키고 싶어졌다는 ㅋ^^;;

희선 2021-10-12 01:5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행복한책읽기 님 어머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오셨군요 잘 몰랐던 걸 알게 돼서 기뻤겠습니다 자신은 기억하지 못하는 자신을 누군가 기억하다니, 이제는 행복한책읽기 님이 어머님을 기억하시겠네요 다들 그렇게 살겠습니다 마지막 사진 거미줄이었군요 유리창에 금이 간 건가 했습니다 거미줄도 멋지네요 실제로 보면 빗자루로 없애겠지만... 거미가 나쁜 건 아니다 하지만... 자기 몸을 새끼한테 주는 거미가 생각나기도 하네요


희선

얄라알라 2021-10-23 17: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행복한 책읽기님
어머니 품에서, 혹은 어머니를 안아드리며
이런 대화를 나누셨네요. 가슴이 훈훈해집니다.

2021-10-23 17: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0-27 14: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전출처 : 행복한책읽기 > 내게는 느티나무가 있다

20211007

작년부터 사는 게 참 씁쓸해져서, 허망해져서,
손에 집어든 것이 시집이었다. 잘한 일이었다.
북플이 요즘 날마다 그때의 나를 소환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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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10-07 11:32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위로가 되는 시였군요 ^^ 젊은 느티나무가 생각이 나네요ㅎㅎ
올해는 즐겁게 사셨으면 좋겠어요~!

행복한책읽기 2021-10-07 22:47   좋아요 3 | URL
ㅎㅎ 즐거움을 찾아가고 있어요. 북플도 그 중 하나라죠. 근데, 이미 찾아온 느낌이 없어지진 않는 듯해요. 깊~~이 들여다보려구요. 머가 보이나 하고^^

미미 2021-10-07 12:4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어제 읽은 책에 나오더라구요. 치유하려면 시가 필요하다구요~♡^^♡

행복한책읽기 2021-10-07 22:48   좋아요 2 | URL
레알?? 그 책을 알려주십시오^^

미미 2021-10-07 22:52   좋아요 1 | URL
<마이너 필링스> 52페이지에 나옴요.ㅎㅎ✌

페넬로페 2021-10-07 17:2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가끔씩 올라오는 전에 쓴 글들을 읽어보면 알게 모르게 위로를 받아요. 그때의 느낌도 다시한번 느끼고요.
느티나무, 시 좋아요.
저도 지금 친정엄마가 와 계셔서 책읽기님 기분을 알것 같아요^^

행복한책읽기 2021-10-07 22:50   좋아요 4 | URL
페넬로페님도 자신이 쓴 글에서 위로받으시는군요. 맞아요. 내가 그랬지, 자알 지나왔네 하는 느낌이 들어 어깨가 좀 으쓱해지기도 하더라구요. 친정엄마 오셨다니, 부럽습니다^^

scott 2021-10-07 17:5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는 사는게 씁씁하고 허망해 졌을때 행복한 책읽기님의 시와 사진이 담긴 포스팅을 읽으면서 위로를 받습니다 요즘 시 구독 배달에 매일 매일 날라오는 시들이 전부 행복한 책읽기님이 직접 셀렉트 하신 시들이라서 깜놀!! 진정한[ 시] 소물리에 !이쉼 ^ㅅ^

행복한책읽기 2021-10-07 22:52   좋아요 3 | URL
레알? 시 구독을 받으신다고라라~~~지는 모르는데유. ㅋ scott님께 제가 일말의 위로를 주고 있다니. 존재감 상승!!!^^
 

20211004 #시라는별 62 

편히 잠들려면 몸을 바꿔야만 해 
구름에게 배운 것 
- 김선우 

구름이면서 구름들이지 
지금의 몸을 고집하지 않지 
이 몸에서 저 몸으로 스미는 일에 
머뭇거림이 없지 

두려움 없이 흩어지며 
무너지고 사라지는 게 즐거운 놀이라는 듯 
다시 나타날 땐 갓 태어난 듯 기뻐하지 
그게 다지 
곧 변할 테니까 

편히 잠들기 위해 몸을 이동시키는 법을 
나는 구름에게서 배웠네 
모든 것이 지나간다는 것도 

그러니 즐거이 변해가는 것 
내가 가진 의지는
그게 다지 


한 권의 시집을 한 달 넘도록 들여다보는 일은 잘 없는데, 김선우 시인의  『내 따스한 유령들』 은 다 읽고도 자꾸 들춰보게 된다. 그만큼이나 좋다. 지천명에 이른 김선우 시인은 이 시집에서 날선 비판과 둥근 포용이 어떻게 어우러질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비판의 칼날은 무뎌지지 않은 반면 포용의 품은 넓고 깊어졌다. 시인은 자본의 무한 욕망을 한탄하고, 인간의 끝간 만용을 책망하고, 기후와 생태 위기를 경고하고, 인권과 동물권 수호를 외친다. 그러나 인간이 만든 이런 참혹한 세상이 굴러갈 수 있는 것은 ˝작고 여리고 홀연한˝ 존재들의 ˝고통에 연대하는 간곡한 마음들˝ 때문이라고 시인은 노래한다.

˝고통에 연대하는 간곡한 마음들˝ 중 하나가 변화에 대한 열망이지 않을까. 지구라는 생명체와 지구에 의지해 사는 생명체를 죽이려 드는 삶의 존재 방식을 바꾸는 것. 그것이 어려운 일일 수는 있으나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바람결 따라 쉬이 몸을 이동하는 구름처럼, ˝이 몸에서 저 몸으로 스미는 일에 / 머뭇거림이˝ 없는 구름을 닮을 수 있다면, 우리네 또한 ˝즐거이 변해˝갈 수 있으리라.

3개월만에 가을맞이 가족 산행을 다녀왔다. ˝저 나이 되도록 엄마아빠랑 같이 다니는 아이들 두신 거 복이랍니다.˝라는 장사꾼의 말에 어깨 으쓱해진 산행이었다. 덕유산 정상과 도마령 정자와 귀갓길 고속도로에서 구름들을 바라보다 팔을 하늘까지 길게 뻗어 ˝구름 버튼˝을 눌러 보고 싶었다.
​ 
​​오늘은 없는 날 
행복하고 싶어서 
구름 버튼을 눌러 당신 목소리를 들어요
나야, 바람이 좋아 
나와 함께 당신이 살아 있어 이렇게나 좋아 
더 많이 아낄 수 있어 더 없이 좋은 날 
사랑하는 일 말곤 아무것도 안 할래 

어제도 내일도 없는 오늘 
많이 행복해서 
당신과 함께 산으로 가요 
없는 날의 자유 
푸른 바람 속을 무한무한 걷고 달려요 (<오늘은 없는 날>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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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1-10-04 02:24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벌써 단풍 든 나무가 있군요 산이어서 그런가 봅니다 단풍은 위쪽에서 아래로... 그런 거 생각하면 재미있기도 해요 김선우 시인 시집을 한달 동안이나 보시다니, 그렇게 봐서 더 깊이 보셨겠습니다 좋아서 여러 번 보셨겠지만... 식구들과 산에 가서 즐거웠겠습니다 식구가 다 같이 산에 가기 어렵기도 하잖아요

구름은 여러 가지로 바뀌고, 그렇다고 그게 안 좋은 건 아니네요 물도 자기 모습을 잘 바꾸죠 자연은 다 이어지고 어우러져 사는군요


희선

행복한책읽기 2021-10-05 01:11   좋아요 2 | URL
네. 이 시집 참 좋네요. 문제의식도 사유도 시구도^^ 산 정상은 가을이 성큼 와 있더군요. 희선님도 가을하늘 만끽하세요~~~^^

새파랑 2021-10-04 08:2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일단 편해지려면 나를 바꿔야 하는 걸까요? ㅎㅎ 가족과 함께 산으로 가는 책읽기님 행복해 보여요. 사진도 멋짐~!!😄

행복한책읽기 2021-10-05 01:12   좋아요 1 | URL
구름에 달 가듯이 유유히 변해가면 편하지지 않을까요. ㅋ 간만의 가족산행이 여유롭고 평화로워서 참 감사했어요^^

막시무스 2021-10-04 10:25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두번째 사진에서는 저 햇살사이로 최후의 심판같이 절대자가 마차타고 강림할 것 같은 분위기네요!ㅎ 단풍보니 가을을 실감합니다! 즐건 휴일되십시요!

행복한책읽기 2021-10-05 01:15   좋아요 1 | URL
찌찌뽕. 막시무스님 저도 딱 그렇게 느꼈어요. 아폴로 머리칼처럼 보이기도 하더라구요.^^ 막시무스님 새로운 한주도 잼나게 보내이와요.^^

초딩 2021-10-04 14:2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냇물 같은 하늘 서진에 마지막 사진은 또 알록 달럭 예빠요~

행복한책읽기 2021-10-05 01:16   좋아요 0 | URL
냇물 같다 하셔서 다시 봤어요. 아, 그렇게도 보이는구나. 가을하늘은 요술쟁이 같아요. 그죠.^^

mini74 2021-10-04 20:5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사진에서 시도 느껴지고 가을도 느껴져요 ~~

행복한책읽기 2021-10-05 01:17   좋아요 0 | URL
역쉬 미니님. 사진에서 시와 가을을 동시에 느낄 줄 아는 감성 갑!!^^

scott 2021-10-04 21:3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구름에게 배운것!!
한 순간도 같은 모양, 크기도 없이 쉼없이 움직이며 흘러 간다는 건!

10월의 가족 산행!
단란한 가족의 산행 모습!
행복한 책읽기님이 담으신 덕유산 자락의 가을 정취!!

오늘은 시보다 행복한 책읽기님의 산행 흔적이 담긴 사진이 더! 좋습니다 ^ㅅ^




행복한책읽기 2021-10-05 01:19   좋아요 1 | URL
히히. 그런가요. 사진 더 방출하고 싶은거 자제했는데, 마구 뿌려요??^^;;

얄라알라 2021-10-08 00: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진 너무너무 좋습니다!!!!!!

자제분들이 같이 움직이는 가족 산행....산책도 안 따라가려는 요즘 꼬마님들^^ 행복한 책읽기님 복 많이 받으시는 거 맞네요^^

덕유산 이름도 좋고 느낌도 너무 좋아요

2021-10-08 00: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929 #시라는별 61 

천문의 즐거움 
- 김선우 

하늘을 오래 바라보다 알게 되었다 
별들이 죽으면서 남겨놓은 것들이 
어찌어찌 모여서 새로운 별들로 태어난다는 거 
숨결에 그림자가 있다는 거 
당신도 나도 그렇게 왔다는 거 
우리가 하나씩의 우주라는 거 

수백억광년의 과거로부터 오늘에 이른 
빛의 내음 
소리의 촉감 
온갖 원자들의 맛 

지구에서 살아가는 나는 가끔 
죽은 지 오래인 별들의 임종게를 발굴해 옮겨 쓴다 

그대들이 세상이라 믿는 세상이여, 나를 받아라. 내가 그쪽을 먼저 사양하기 전에. 

오늘 아침 닦아준 그림자에서 흘러나온 말
임종게가 늘 탄생게로 연결되는 건 아닐 테지만 
가끔 유난히 아름다운 탄생의 문양들이 있어 
우주가 지나치게 쓸쓸하진 않았다


16년만에 설악 산행에 나섰다. 이 여행길에 배낭에 끼워 간 책은 김선우의 『내 따스한 유령들』 느릿느릿 아껴가며 읽는 시집이다. 이 시를 읽고 모르는 낱말이 있어 찾아 보았다.

임종게(臨終偈)는 고승들이 입적할 때 수행을 통해 얻은 깨달음을 후인들에게 전하는 마지막 말이나 글이다. 
탄생게(誕生偈)는 석가모니 부처가 태어났을 때 외쳤다고 하는 게송을 일컫는다. 부처님의 탄생게는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다.

˝죽은 지 오래된 별들의 임종게를 발굴해 옮겨 쓰˝는 김선우 시인의 이 시는 내게 ‘천문의 즐거움‘ 뿐 아니라 ‘산행의 즐거움‘까지 물씬 느끼게 해주었다. 하늘이든 무엇이든 ˝오래 바라보다˝ 보면 전에 모르던 것들을, 알 수 있으리라 생각지도 못했던 것들을 알게 된다. 16년 전 겨울 설악에서 나는 바람의 무늬가 새겨진 눈밭을 ˝오래 바라보다˝ 우주를 발견한 적이 있다. 소금밭 같기도 설탕밭 같기도 한 하이얀 눈밭은 우주와 이어져 그 속으로 나를 빨아들이곤 했다.

만 가지 경치가 올려다보이고 내려다보인다는 만경대(922.2m)에 앉아 ˝수백억광년의 과거로부터 오늘에 이른 / 빛의 내음 / 소리의 촉감 / 온갖 원자들의 맛˝을 오감으로 느꼈다. 하여 알게 된 것들

소나무 잎은 두 가닥, 잣나무 잎은 다섯 가닥 
마가목 열매 바닥에는 별이 박혀 있다 
둥글둥글한 돌 속에는 수정이 숨어 있다 
진달래는 아래서부터 거북이처럼 올라가고 
단풍은 위에서부터 내달리듯 내려간다
설악에는 ˝유난히 아름다운 탄생의 문양들이 있어˝ 
쓸쓸함을 느낄 겨를이 없다. ^^ 

사진 방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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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9-29 07:05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와 설악산 사진보니 시원시원 하네요 ^^ 저 높은 절벽같은 곳에 올라가시다니 대단합니다. 무서움이 없는 책읽기님~!!

행복한책읽기 2021-09-30 12:52   좋아요 4 | URL
벌벌 떨면서 올라갔어요. 사진 남길라구요^^;; 설악은 기기묘묘 암벽들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답니다^^

미미 2021-09-29 09:50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온갖 원자들의 맛~♡ 암벽도 잘 타시나봐요! 사진 모두 훌륭한데 돌 사이에 핀 꽃 예술입니다ㅎㅎ😍

행복한책읽기 2021-09-30 12:54   좋아요 3 | URL
암벽 못 타요. 겨우 올라갔어요. 무서워서 서 있지 못하고 앉아있었다는^^;; 돌 사이에 핀 구절초. 정말 기특하죠. 놀라운 생명력이에요^^

막시무스 2021-09-29 09:59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16년 전 겨울 설악에서 나는 바람의 무늬가 새겨진 눈밭을 ˝오래 바라보다˝ 우주를 발견한 적이 있다. 소금밭 같기도 설탕밭 같기도 한 하이얀 눈밭은 우주와 이어져 그 속으로 나를 빨아들이곤 했다.> 크~~~눈발 날리는 설악을 너무나 멋지게 그려낸 이 표현은 완전 시인 같으심요!ㅎ 등단하셔도 될 듯 합니다. 덕분에 설악산 구경 잘했네요! 즐건 하루되십시요!ㅎ

행복한책읽기 2021-09-30 12:55   좋아요 2 | URL
등단할까요?? 막시무스님이 물주 되어주심 생각해 보겠어라ㅋ 9월 마지막날도 즐겁게 보내시와요~~~^^

붕붕툐툐 2021-09-29 10:04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히야~ 저같은 등린이에게 꿈의 산인 설악산! 바위 위의 자태가 넘나 멋지심다~~
시도 참 좋네용~ 당신도 나도 그렇게 왔다~ 우리가 하나씩의 우주다!

행복한책읽기 2021-09-30 12:58   좋아요 2 | URL
툐툐님 곧 설악을 밟을실 것으로 예상됩니다. 등린이라는 표현 넘 좋네요. 툐툐 등린이 화이링~~~^^

scott 2021-09-29 12:06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수백억광년의 과거로부터 오늘에 이른
빛의 내음
소리의 촉감
온갖 원자들의 맛 ]

행복한 책읽기님은 플친님들에게 설악상의 풍경을 선물로 주셨네요
가을은 분명 인간이 하늘과 가장 가깝게 맞닿을 수 있는 순간인 것 같습니다.
^ㅅ^

행복한책읽기 2021-09-30 13:00   좋아요 2 | URL
네네. 정말 가을 하늘은 자연을 더욱 찬양하게 만들어요. 우주도 성큼 다가오는 느낌이구요.^^

얄라알라 2021-09-30 23: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야, 행복한 책읽기님 덕분에 제대로 호강 하네요. 구절초 사진에 아찔한 고도의 청량감에


16년만의 산행, 제대로 하셨는걸요^^ 기분 끝내주셨겠어요

행복한책읽기 2021-10-01 09:59   좋아요 1 | URL
네에 정말 좋았어요. 설악 입구부터 든 생각이 16년간 뭘하느라 이제야 왔지?? 물음표를 던졌는데. 아아들을 키웠더군요. 이제, 저도 독립을 할까 생각 중^^;;

2021-10-01 13: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0-01 15: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얄라알라 2021-09-30 23: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늘 지인과 점심대화하다가 천문학자들이 겸손할 수 밖에 없는 이유, 이런 이야기했는데, 시를 읽어보니 다시 낮의 대화가 생각납니다



이 단어를 몰라서, ˝계˝의 오기인가 할뻔했네요^^

좋은 밤 되세요. 행복한 책읽기님!

행복한책읽기 2021-10-01 10:02   좋아요 1 | URL
저도 저런 단어가 있는 줄 몰랐어요. ^^ 저 백신 2차 맞고 해롱대다 이제 좀 정신을 차리는 중이요. 몸살기가 제법 오래가네요.ㅡㅡ 북사랑님 10월의 가을을 같이 만끽해 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