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하늘로 돌아 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 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 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귀천

천상병 詩
이동원 歌
Paola Meneghetti 畵


 

                                자료출처 mjkcos 님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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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내용...

90년대 초 대학생활의 단상들이 밀려오는구나..

그래. 세상은 변하는거지... 언젠가는 또 독서에 미치는 시대가 올지 누가 알겠는가...

출처: http://blogbbs1.media.daum.net/griffin/do/blognews/culart/read?bbsId=B0003&articleId=9688&pageIndex=1&searchKey=&searchValue=

 

“호흡이 긴 책은 읽기 싫어요”

 

 

 

대학가, 시대별 책의 흐름이 변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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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상시 그 큰 참치를 어떻게 뜨나 궁금했었는데... 사진으로 잘 설명해주셨네요.

올리신 분께 감사... ^^*

자료출처: http://blogbbs1.media.daum.net/griffin/do/blognews/life/read?bbsId=B0005&articleId=18249&pageIndex=1&searchKey=&searchValue=

참치해체작업 이렇게 합니다
18249 | 2006-09-10 추천 : 5 | 조회 : 159049

참치해체작업 구경하세요

 

 

지난달 19일, 남대문에 있는 한 참치 전문점에서 참치마니아들의 모임(http://cafe.daum.net/chamcimania)이 있었는데요. 그 자리에서 눈다랑어 해체작업이 선보였습니다. 해체대상의 무게는 반쪽에 40kg이나 되었습니다. 맛이야 참 다랑어를 제일로 쳐주지만 눈다랑어가 가장 보편적으로 소비된다고 합니다.

 

 

(눈다랑어)

 

 

(쇠가 머리를 관통한 구멍이 보인다)

 

참치 머리에 구멍이 났네요. 참치는 맛 보존을 위해서 잡자마자 일단 머리를 관통시켜서 즉사를 시킵니다.

 

우스갯소리하나 할까요? 같은 생선이지만 대구는 머리라 부르고 멸치는 대가리라 하지요. 또 소나 돼지는 머리라 하지만 닭이나 새는 대가리라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머리와 대가리의 차이 아세요? 빨리 답을 알려드리도록 할게요. 머리에 어느 정도 살이 붙어서 먹을 만 하고 맛도 좋은 생선이나 동물을 머리라 하구요. 맛과 먹을 것도 없는 것들은 대가리라 한답니다. 닭대가리 새대가리.... 어때요? 어느 정도 일리 있지 않나요? 웃자고 한 말이니 절대 믿지는 말구요. 다시 참치해체 구경해 볼까요?

 

 

(꼬리 절단면)

 

아가미가 분리된 상태군요. 부패하기 쉽기 때문에 미리 떼 낸다고 합니다. 꼬리는 절단 되었는데요. 참치 전문가들은 꼬리의 절단된 면을 보고서 상품인지 하품인지 구별한다고 하네요. 

 

 

(참치 껍질을 벗기고 있다)

 

자 그럼 본격적으로 참치해체를 시작해볼까요? 먼저 껍질을 벗깁니다. 벗겨낸 껍질로는 가죽제품도 만든다고 합니다.

 

 

 

(껍질을 벗겨내자 속살이 드러난다)

 

참치는 크게 머리와, 몸통으로 나누고, 다시 등 부위 배 부위로 나눈 다음 세로로 3등분을 합니다. 그럼 몸통은 모두 여섯 덩어리가 되겠지요? 머리에서 꼬리 쪽으로 등블록上, 등블록中, 등블록下 로 구분 되구요. 배쪽 부위 역시 배블록 상,중,하 로 나누어지게 됩니다.

 

 

(배 블록을 잘라내고 있다)

 

 

 

(잘라낸 배 부윗살)

 

 

(등 블록과 배 블록을 구분해서 자르고 있다)

 

 

 

(배 부위도  3등분한다)

 

 

 

 

(등 블록을 자르는데는 힘이 필요하다)

 

 

 

 

(망치를 이용하기도 한다)

 

 

 

(참치마니아들이 해체작업을 지켜보고 있다)

 

 

(진한 부분은 혈압육이다)

 

 

참치는 일반적으로 등쪽에서 뱃쪽으로 갈수록 맛있고 꼬리에서 머리쪽으로 갈수록 맛있어 집니다. 그렇다면 가장 맛있는 부위는 어디일까요? ‘오도로’라고 하는 배젓살로 알려져 있지만 미각적으로 가장 맛있는 부윗살은 혈압육 부근살이라고 하죠.  물론  선호도에 따라 뱃살이나 머릿살을 높이 쳐주는 분도 계시겠지만요.


 

 

 

 

촬영협조/ 사조회참치(남대문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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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저녁으로는 이제 제법 쌀쌀하다.

생활하기 딱 좋은 계절이 아닌가 싶다.

오늘 다음에서 본 좋은 사진을 알라딘 식구들과 공유하고 싶어 올립니다.

자료출처: http://feature.media.daum.net/photoessay/slide0482.shtm

 

구름이 그려낸 '가을동화'

사진가 박병옥 씨, 정겨운 고향 '구름 사진들'

미디어다음 / 윤경희 프리랜서

평범한 구름이 자연을 만나 작품이 된다. 구름과 강, 호수가 어울리고 넓은 들판, 꽃바다와 함께 탄성을 자아낸다.

푸른 초원 하늘 사이로 자유롭게 떠가는 뭉게구름, 맑은 호수에 투명하게 비추어 더욱 정다운 새털구름, 정다운 메밀밭 풍경과 어우러져 수채화처럼 아름다운 구름들...

사진가 박병옥씨 (bluemoon.pe.kr)는 여느 사진가와는 다른 새로운 시각으로 구름을 카메라에 뭉게뭉게 담아 왔다. 잠시도 똑같지 않은 구름, 수시로 변화무쌍하게 변하는 구름 사진을 하나하나 담는 사진가의 길처럼 자신의 인생 또한 '끝없는 도전'이라는 삶의 교훈을 터득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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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동화
문광저수지 은행나무 숲길에 빛이 너무 좋았던 순간. 저수지에 비친 은행나무의 반영과 떠있는 구름이 마음을 평안하게 해줬다. [촬영장소 : 충북 괴산군 문광면]
불구름
빛내림
가을동화
고창 메밀밭
오창들녘

그가 사진과 인연을 맺은 것은 직장 동료에게 사진이 주는 즐거움을 엿듣고 나서부터다. 얼마 뒤 그의 손에는 작은 중고 카메라가 쥐어졌고 사진 인생이 시작됐다. 그는 처음부터 풍경을 주로 찍었다. 사진을 위해 굳이 먼 길을 찾아다니지는 않았다. 그가 사는 청주 근교의 풍경들을 하나씩 찾아다니며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다. 그가 사진에 대한 소소한 재미와 매력을 새록새록 알게 된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그는 하늘에 펼쳐진 구름을 발견했다. 그에겐 참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때부터 그는 구름에 집착했다. 단지 구름뿐만이 아니었다. 주위 자연과 더불어 멋들어지게 늘어선 구름들이었다.

그는 "구름과 함께 담은 풍경은 내게 중요한 피사체였다"고 말한다. 그에게 구름은 마치 시시각각 변하는 여인의 마음과도 같다. 잠시 다른 곳에 한눈을 팔다 보면 방금까지 있었던 구름의 모습은 신기하게도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바로 그 자리에는 새로우면서도 다양한 모양새의 구름들이 또 다른 한 폭의 수채화를 그려 내고 있었다. 그는 구름의 다변화하는 모습에서 삶의 지혜도 얻었다.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과 그 가치이다.

구름 사진을 찍으며 그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구도'이다. 같은 장소, 같은 풍경이라도 카메라의 작은 높낮이의 차이에 따라 사뭇 그 느낌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렌즈를 들이대기 전에 구름이 주는 느낌을 다시 한번 속으로 곰곰이 갈무리 해본다. 이후 최대한 구름과 주위 풍경을 '친하게' 조화시켜 본다. 그의 사진에서 노출은 선택이다. 이 때 구름의 이동 속도도 그의 사진에서 하나의 변수가 되기도 한다.

그에게 구름이 특별하게 아름다운 장소나 계절은 무엇일까. 그는 "수시로 변하는 자연에게 특별한 때와 장소는 없다"며 "구름이 하늘 위에서 자유롭게 흐르듯 자연의 일부가 돼 순간순간 셔터를 누를 뿐이다"고 답한다. 마치 '도인' 같은 대답이다. 다만 한 여름, 호된 소나기가 훑고 지나간 직후나 가을, 때늦은 태풍이 스쳐 간 뒤가 좀더 구름의 멋진 자태가 잘 드러난다고 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얻은 한 장의 사진, 그 안에 순간순간 새하얀 얼굴로 멋지게 탈바꿈한 구름을 잡아냈을 때 그가 느끼는 감정은 '전율'이다. 아마도 그 걸 못 잊기 때문에 그는 오늘도 구름을 찾아 나서는 것일 게다.

그가 사진을 찍으며 바라는 것은 그다지 없다. 다만 자신의 사진에 담긴 구름들이 보는 이에게 조금이라도 평온을 주길 바랄 뿐이다. 그런 그에게 안타까움이 있다면 날로 심각해져만 가는 환경오염이다. 뿌옇게 변하는 하늘처럼 자신의 눈과 렌즈에도 뭔가 자꾸만 끼는 것 같다.

시간이 허락하는 데까지 그의 발걸음은 또다른 구름을 찾아 전국을 떠돌 예정이다. 그의 렌즈에 갇힐 멋진 구름과 자연이 은근히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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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자도 이 정도면 정말 예술이라고 할 수 있을 듯~

출처: http://blogbbs1.media.daum.net/griffin/do/blognews/book/read?bbsId=B0014&articleId=182&pageIndex=1&searchKey=&searchValue=

그림의 감동 2배로 만드는 액자들


미술관에서 액자를 보고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드물다. 그림에 비해 액자를 그저 부수적인 장식 요소로 여기기 때문이다. 사실 액자는 복잡한 미학 개념 이해와 그림 감상에 여러모로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매우 실용적인 이유에서 생겨났다. 그러나 지금까지 액자와 연관 지어 그림을 감상하는 즐거움은 등한시되었고, 액자에 대해 논의된 적도 거의 없었다.


액자의 많은 기능 중 가장 의미 있는 것은 관람자와 그림 사이의 중재자 역할이다. 너무 크거나 장식이 과한 액자는 그림을 압도해 초라해 보이게 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액자가 왜소하고 장식이 지나치게 단조로워도 그림에 좋은 영향을 주지 못한다. 그림을 향한 관람자의 시선이 전시실 공간으로 흩어지지 않게 액자가 도와주지 못한다면 관람객의 집중력이 저하될 것이며, 감동 역시 덜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재자로서 액자는 두 가지 임무를 동시에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즉, 액자는 그림 속으로 우리를 초대하면서, 일단 경계 안에 들면 쉽게 빠져나갈 수 없도록 시선을 그림 안에 묶어둘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카스퍼 다비드 프리드리히(1774~1840)

「산 위의 십자가(테첸)」, 1807~08

 

이토록 훌륭한 액자가 아니었다면, 이 그림은 석양을 낭만적으로 그린 여느 작품과 전혀 달라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프리드리히는 액자를 통해 전혀 다른 느낌을 창출해낸 것이다. 고딕 양식의 아치 모양을 한 이 액자는 중세 종교미술을 상징하는 문양으로 가득 차 있다.

 

액자 밑부분에 장식된 ‘신의 눈’은 광선에 둘러싸여 기단을 꽉 채우고, 양옆으로 성찬식을 의미하는 밀 다발과 포도넝쿨이 ‘눈’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있다. 이 문양들은 부조로 조각되고, 반짝이는 금박으로 덮여 있어서 따뜻한 흙빛 배경과 대조를 이룬다. 한편 양옆의 고딕식 기둥은 우아하게 뻗어 올라가 잘게 갈라진 야자나무 가지와 만나는데, 이는 종려주일(부활주일 바로 전 주일을 가리키는 말―옮긴이)과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 예수가 예루살렘에 입성한 영광스런 순간을 암시한다. 아치의 둥근 부분에 다섯 천사가 조각되었고, 이들은 그림 속을 들여다보려는 듯 몸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찬찬히 보지 않으면 가장 중요한 요소를 보지 못하고 지나칠 수 있다. 바로 산꼭대기 저 멀리, 전나무에 가려지다시피 한 십자가다. 십자가는 관람자 쪽에서 볼 때 비스듬한 각도로 서 있기 때문에, 전나무 사이에 선 앙상한 나무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림을 아래로 응시하는 다섯 천사의 시선으로 인해 우리는 그림의 중심을 잊지 않고, 기독교 최고 상징물인 십자가를 보지 않고선 자리를 떠나지 못하게 된다. 이 그림에서 액자는 그 형태와 상징 요소를 통해 낭만적인 풍경화를 강렬한 알레고리를 내포한 종교화로 탈바꿈함으로써 관람자가 작품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게 해주었다.

 

 

 


프레데릭 에드윈 처치(1826~1900)

「안데스의 심장부」, 1859

 

「안데스의 심장부」는 처치가 두 번에 걸친 남미 여행 후 그 경험담을 녹여 만든 복잡하면서도 섬세한 작품으로, 약 2미터 높이에 폭은 약 3미터가 조금 안 되는 크기였다. 검은 호두나무로 만든 액자는 높이가 약 3미터, 폭은 4미터 정도였고, 단순한 액자라기보다는 제단장식물처럼 보였다. 관람자가 그림이 아닌 실제 풍경을 보고 있는 것처럼 느끼도록, 르네상스식 복고풍 창을 닮은 액자를 만드는 것이 화가의 의도였다.

 

그림은 선반처럼 생긴 받침대에 놓였고, 지평선은 성인 관람자의 평균 눈높이인 액자의 중간부분에 맞춰졌다. 액자의 윗부분과 양옆에 장식된 소란(小欄)의 구조와 위치는 그림이 관람자들에게서 실제보다 더 멀리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처치는 새로 지은 10번가 스튜디오 빌딩 내부, 천장이 유리로 된 중앙 홀에 그림을 걸 목적으로 런던의 ‘걸작 전시’(제약이 많고 경쟁도 심한 공식 살롱의 대안으로, 1850년대 런던과 파리에서 열린 전시를 지칭하는 말)구성에 익숙한 영국인 액자 제작자를 고용했다. 오프닝은 사교계의 큰 행사로 장대하게 치러졌고, 참석한 이들은 그 후 몇십 년 동안 이 날을 일생의 가장 중요한 문화 행사로 기억했다.

 

3주일간 하루 평균 방문자 수는 500명을 훌쩍 넘겼고, 사람들은 이 작품을 보는 특권을 누리기 위해 친히 25센트를 내고 전시장에 입장했다. 전시는 이 작품이 앞으로 몇 년간 겪게 될 비범한 여행의 시작에 불과했고, 처치에게는 생애 최고의 부와 명예를 안겨주었다. 당시 것과 똑같이 제작한 액자 속에 보관된 이 작품은 현재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상설 전시되고 있다. 이제 현대의 관람객도 장대한 그림과 그만큼 우아한 액자가 함께한 미술사의 한 단면을 음미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제임스 애벗 맥닐 휘슬러(1834~1903)

「분홍색과 회색의 변주」, 1871년경


휘슬러의 「분홍색과 회색의 변주」를 감싼 액자는 넓고 부드러운 나무판 위에 다다미 깔개 문양을 그린 것인데, 중앙에 다섯 획, 좌우의 가는 띠에는 세로선 세 개를 반복해 그어 간단히 표현했다. 액자 세로 틀의 왼쪽 부분에는 휘슬러의 유명한 나비 도안이 눈에 확 띄는 적갈색으로 그려 있는데, 마치 도금한 액자 표면 바로 위를 날아다니는 것 같다.

 

휘슬러는 거기서 약간 오른쪽 위, 액자의 가장자리 안쪽에 또 한 마리의 나비를 짙은 회색으로, 마치 고깃배 돛에 새긴 무늬처럼 그렸다. 나비 두 마리를 이렇게 가까이 배치하고 돛을 액자의 안쪽과 맞닿게 함으로써 휘슬러는 그림의 얕은 깊이감을 강조했고, 관람자가 액자의 끝부분을 주시하게 했다. 나중에 그는 그림 색조를 보완하는 중간색으로 미술관 벽을 칠해 이러한 효과를 극대화했다.

 

그림과 액자가 분리될 수 없는 관계에 놓여 있다는 사실은 휘슬러에게 매우 중요했다. 그는 단 한 점의 그림에도 서명하지 않는 대신 자신의 작품임을 상징하는 나비를 액자에 그렸다. 나비는 그의 작품임을 상징했고, 위조에 대한 대응책이기도 했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갈대묶음 문양을 모방한 액자는 각기 다른 품질과 형태로 제작돼 유통되었고, 휘슬러 스타일을 모방한 액자들은 심지어 오늘날까지도 고가에 팔리고 있다.

 

 

 

플로린 스테트하이머(1871~1944)

「뒤샹의 초상」, 1923


뒤샹은 스테트하이머의 주변 인물 중 특히 중요한 사람이었다. 평소 플로린에 대한 뒤샹의 존경심 역시 남달랐다. 덕분에 그녀의 그림은 현대미술의 흐름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했을 뿐 아니라, 평론가와 수집가들에게서도 큰 호응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뒤샹의 초상」은 뒤샹의 이니셜로 만든 결합문자, 뒤샹이 여장을 하여 자신을 분신으로 삼은 로즈 셀라비, 「초콜릿 분쇄기」의 L자형 손잡이, 체스 말, 빛나는 후광이 있는 시계 등 다양한 상징 이미지를 창의적으로 배열한 작품이다.

 

스테트하이머가 액자 재료로 사용한 것은 뒤샹이 기계 작품에 사용한 회색 금속과 매우 유사하다. 안쪽으로 약간 기울어진 쇠틀은 알파벳 ‘M’과 ‘D’들을 지탱하고, 이 글자들은 한 줄로 죽 늘어서 액자를 사방으로 둘러싼다. 스테트하이머는 그림이 어떤 더 큰 어떤 것의 일부이며, 영화의 한 프레임처럼 잠시 멈춘 상태로 일시 분리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소박한 느낌의 액자는 화가의 이러한 생각을 잘 뒷받침해준다.

 

톡톡 끊는 스타카토 리듬이 만드는 선 덕분에, 액자는 그림 바깥 테두리에 기계의 역동성을 더하고, 그림 속 시계의 퍼져나가는 원형을 다시 한번 반복해 보여줄 수 있게 되었다. 스테트하이머는 역동적이고 무중력 상태에 놓인 뒤샹의 우주를 이 액자 속에 가둬놓은 것이다.

 

 


 신디 셔먼(1954~)

「무제 211번」, 1990


셔먼은 액자를 선택할 때 그 어떤 미술사의 특성도 드러나지 않게 했다. 액자를 통해 관람자를 혼란에 빠뜨리고, 기억을 흐릿하게 하거나(내가 이 그림을 어디서 봤더라?), 혹은 완전히 좌절하도록(대체 누가 그린 거지?)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진지한(역사의 전통은 갖고 있되 난해한) 예술품을 현대에 맞게 패러디한 작품을 마주하고 있다.

 

이것은 예술 작품을 과거의 특정 시점에 되돌려놓으려는 우리의 노력을 묵살하고, 나아가 과거와 현재의 개념에 의문을 갖게 한다. 셔먼의 사진 자체처럼 액자 역시 현존하는 역사의 산물을 복제하는 척하지 않았다. 이렇게 이들은 그동안 축적해온 미술사에 대한 우리의 기억을 희롱하고 있는 것이다.

 

한스 홀바인의 그림 속 여인의 옆모습을 닮은 「무제 211번」의 액자는 르네상스기 북유럽 초상화 액자의 일반적인 특징을 갖고 있다. 그것은 견고한 사각형 틀에 타원형 구멍을 낸 단순한 구조의 액자다. 액자의 나무 패널과 테두리에 반짝이는 검정 칠을 했는데, 여기엔 마치 오래된 액자인 것처럼 위장하려는 시도도 없다. 상처가 난 것처럼 보이기 위해 표면을 긁거나, 현대식 기계로 만든 티를 감추려고 표면을 깎지도, 혹은 먼지가 끼고 오래된 것처럼 보이려고 부순 돌가루를 끼얹지도 않았다. 현대 사진을 넣기 위한 새 액자임이 확실하다.

 

주목할 것은 액자와 이 그림 같은 사진이 매끄럽게 융화한다는 것이다. 서로의 존재를 부각하면서, 이들은 우리의 과거와 현재의 초상화들에 의문을 제기하도록 면밀히 고안된 것이다.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무엇을 생각하는가? 초상화란 무엇이며, 이 초상화는 무엇인가? 그 가치와 의미는 무엇인가?

 

 

 

소방수들의 트로피 액자

1856년경


유럽에서 트로피 액자는 긴 역사와 함께 다양하고 풍부하게, 놀랄 만큼 많은 수량으로 제작되었다. 전쟁의 노획물을 전시하는 풍습에서 발전한 트로피는 르네상스시대와 이후 대중적인 장식 문양으로 쓰였다. 또한 트로피는 농업, 음악, 건축과 관련한 도구와 기구들을 재치 있게 배열하는 등 다양한 주제를 다뤘다.

 

한편 미국에서는 트로피 액자를 지역사회에서의 공로를 치하하는 상장을 넣는 데 사용했다. 19세기 시 정부는 재난 대책에 특별한 공을 세운 경찰이나 소방서에 종종 감사패를 증정했다. 소방관을 위해 화려하게 꾸민 상장은 매우 독특한 방식으로 복잡하게 장식한 액자에 넣었고, 이 액자는 양식면에서 미국 액자 장식의 절정을 보여주었다.

 

트로피 액자를 만든 디자이너는 건축 요소들을 활용해 고전풍의 감실형 액자를 만들었다. 액자는 전통 교회의 구조를 빌려왔지만, 맹렬한 불꽃과 맞서는 소방수들이 있는 도시 건물 모양을 하고 있다. 액자 밑부분의 안테펜디움은 가문의 전통 문장이 아니라, 아칸서스 잎이 소화전을 둘러싼 기이한 결합을 보여준다. 그 위 프레델라의 넓은 선반은 기념문서 바로 앞의 말이 끄는 물 펌프 조각을 받치고 있다.

 

액자 양쪽에는 코린트식 기둥을 세우고, 주두 위에는 작은 톱니 모양의 코니스를 올려 현관 지붕이 경사져 있음을 암시했다. 이러한 디자인은 이 시기 미국에서 성행한 그리스 건축 부흥의 전형을 따른 것이다. 팔라디오식 창문과 벽돌로 된 건물 외벽은 지붕 아래의 삼각형 벽에 실물 같은 느낌을 더해주고, 분주한 소방수들의 모습과 창문에서 새나오는 검은 연기에 실재감을 더한다.

 

 

 

살바도르 달리(1904~80)

「머리가 구름으로 가득 찬 한 쌍」, 1936

 

다양한 심리 요소와 은유로 가득 찬 풍경화로 잘 알려진 초현실주의의 화가 달리는 이 한 쌍의 초상화에 사람 모양의 액자를 끼워 작품을 완성했다. 화가는 도금한 카세타 액자로 광대한 해변 풍경을 감쌌는데, 이 액자는 대화 중이거나 무엇인가를 모의하고 있는 듯한 남녀의 실루엣 모양을 하고 있다. 액자 역시 작품의 일부로, 관람자가 해변 풍경을 보는 동시에, 남녀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렇게 두 가지 세계가 공존하는 화면은 직사각형 액자 속에서처럼 이상의 세계가 아니라, 화가가 만든 불가사의한 이미지들로 가득 차 있다.

 

환상적인 그림과 액자를 융합하는 이러한 방식은 모더니스트들이 창문 형태의 전통 액자를 거부한 것과 맥을 같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리의 액자는 관람자와 그림의 영역을 확실히 구분하여 전통 방식을 고수했다. 달리는 결국 액자의 형태를 변형함으로써 액자의 영역에 대한 개념에 변화를 가져온 것이다.

 

우리는 해변 풍경을 보며 액자 너머로 끝없이 펼쳐진 상상의 파노라마를 떠올리고, 분리된 두 그림을 잇고 싶은 욕구에 사로잡히게 된다. 수평선과 탁자의 윗면은 두 사람 사이의 공백을 메우고, 비록 상상 속에서일 뿐이지만 둘을 연결하며 공존을 확인케 한다.

 

액자와 그림의 융합이 얼마나 설득력이 강한지, 언뜻 봐서는 고개를 기울인 사람의 머릿속에 그려진 구름도 함께 기울어져 있음을 알아채기 어렵다. 시간이 약간 흐른 후에야 우리는 사람의 모습을 한 액자가 그림 속 하늘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는 힘을 지녔음을 깨닫게 된다.

 

<그림보다 액자가 좋다> W.H.베일리 지음, 아트북스 펴냄

http://book.daum.net/bookdetail/book.do?bookid=KOR978898980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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