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드팀전 > 성조기가 바람에 펄럭입니다
우방과 제국, 한미관계의 두 신화 - 8.15에서 5.18까지
박태균 지음 / 창비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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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내게 다가왔다.

흑백 TV 앞에 앉아 있던 나는 실내 안테나를 이리 저리 돌렸다. 규칙적으로 오르내리던 주사선을 줄여야 했다.토요일 오전,10시. TV에서 애국가가 끝나면 나는 미국으로 초대되었다.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 미국 만화들.한국 TV가 주말의 웃음을 제조하기 위해 숨고르기에 들어가는 시간,AFKN은 심심해할 미 8군 아이들과 한국 아이들을 위해 만화를 융단폭격했다.영어를 알아 듣지 못한 것은 답답했지만 그다지 큰 장애는 아니었다.미국 만화가 끝나고 <성조기여 영원하라>가 나올 때 까지 TV를 붙들고 있었다.나는 <성조기여 영원하라>가 듣기 좋았다.축축 처지는 애국가보다 행진곡 풍의 멜로디가 흥겨웠고 노래 아래 깔린 그림들은 더욱 멋졌다.미국 독립전쟁 그림,탱크와 비행기의 행진 장면,자유의 여신상,러시모아 국립공원의 큰 바위 대통령얼굴,달에 착륙한 암스트롱....  나중에는 피아노 건반으로 그 멜로디를 누를 수도 있었다. "솔미도미 솔 도.. "

<우방과 제국,한미관계의 두 신화>를 읽다가 처음 떠올랐던 것이 내가 미국과 처음 만난 기억이었다.<한국전쟁>에서 대중적이며 균형감 있는 역사서를 선보였던 박태균 교수의 책이다.이 책의 제목은 저자가 한미 관계사를 바라보는 지향점을 명백히 보여준다.우리 사회는 미국을 둘러싼 두 가지 '신화'가 있다.하나는 미국을 동맹을 넘어 '혈맹'으로 바라보는 시각이며 다른 하나는 미국을 '제국주의 식민 모국'으로 보는 신화이다.전자는 수구보수 세력들에게 여전히 유효한 가치이다.후자는 80년대 사회구성체논쟁에서도 시각차가 존재했을 정도로 주요주제였으나 지금은 그런 식의 도그마화된 규정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물론 아직도 실제로 그렇게 믿지도 그렇게 분석하지도 않으면서 '미제'라는 말을 쓰는 사람들이 있다.그저 레토닉이나 배설의 언표 정도로 받아 들이는 편이다.

저자는 한미 관계를 '동태적' 관계로 파악해야 한다고 본다.미국의 세계 전략이라는 작용과 한국의 대응이라는 반작용의 틀 속에서 한미관계를 보고 있다.박태균 교수는 한미 관계가 정상적인 두 국가 사이의 외교 관계를 넘는 '특수성'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이러한 '비정상성'의 외부적 요인은 미국의 제국주의적 세계전략을 한반도에 강요한 것이 첫번째 원인이다.내부적으로는 역대 정권의 '비정통성'을 들고 있다.정권의 창출의 정통성 부재와 정권 내부의 불안정성을 외부의 힘에 의존해서 풀어나가는 방식들이 한미관계의 특수성을 만들어 내게 된 조건이 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 책의 결론 부분에서는 한미관계를 몇 가지 모델로 설명한다.먼저 미군정시기의 한미 관계는 제국과 식민지 관계로 규정한다.미 군정기는 한국 현대사를 공부하면 처음으로 만나는 시기이다.내가 대학들어가서 현대사를 공부하며 가장 큰 충격을 받았던 부분이 미군정기부터 한국전쟁 까지의 시기였다.특히 모스크바 3상회의와 신탁통치안에 대한 이야기는 고등학교 때 배웠던 것과 너무 달라서 충격적이었다.고등학교때는 '민족주의자들은 반탁,소련의 사주를 받은 공산주의자들은 찬탁' 으로 배웠다.물론 이말이 아예 틀린 말은 아니지만 모스크바 3상회의의 전체적 견해와 신탁통치안의 현실성에 대해 일방적으로 앞뒤 꼬리떼어낸 것이었다.당시 동아일보는 모스크바 3상회의 결과를 특종했다.그리고 한국 언론사에 길이 빛날 왜곡보도를 한다.

1945년 12월 27일 동아일보는 '소련은 신탁통치 주장,미국은 즉시 독립주장,소련의 구실ㄹ은 38선 분할점령'이라고 기사를 작성한다.이어서 12월 28일 조선일보는 박스기사를 통해 '독립전쟁을 시작하자'라고 선동한다.

<우방과 제국>도 모스크바 3상회담과 신탁통치에 대한 이야기를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남한 내에서 좌익과 중도세력이 우의를 점한 상태에서 미국은 신탁통치에 긍정적이었다.우선 한국인의 자치 능력에 대해 부정적이었다.또한 중국 국민당이 우세한 45년 상황에서 미소영중이 신탁통치를 하면 자유주의 세력이 숫자적 우위를 구성하고 한반도 내에 자본주의 체제를 구축할 수 있다고 믿었다.미국은 남한 사회내에서 우익 세력을 양성하고 좌익 세력에 탄압을 가하기 시작한다.문제는 김구를 필두로 한 우익세력이 미국의 신탁 통치에 적극 반대를 하고 나선 것이다.한국 내 보수세력 강화를 위해 뒤늦게 귀국시킨 임정이 중심에 있었다.미국 입장에서는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었다.힘을 실어야 하는 우익에서 미국의 전략에 반대하고 나섰기때문이다.결과적으로 미소공동위원회는 성과를 얻기 힘들었으며 남북이 각각 정부를 구성하게 된다.박태균 교수는 이 사건을 미군정이 한반도내의 내부적 정치 역동성에 전략을 바꾸게 된 첫번째 사안으로 꼽고 있다.

모스크바 3상회의를 필두로 한미 관계는 끊임없이 갈등한다.미국의 대외전략이 케넌의 '봉쇄정책'과 이후 니츠의 '전방위적 봉쇄정책' 등에 따라 수시로 발생한다.미국의 기본적 전략은 일본을 지키기 위한 한반도 개입이었다.미국은 소련의 핵실험 성공과 중국 공산화를 견제하는 교두보로 한국을 주목하고 있다.미국은 50년대 이승만의 일방적인 반공포로 석방과 북진정책에 이승만 제거 계획까지 고려한다.아이젠 하워의 정전 협정 조기추진론에 지속적으로 반대되는 정책을 펴고 있었기 때문이다.4.19 당시 미국의 관망은 미국의 한반도 내에서의 기본 입장을 보여준다.즉 미국은 제 3세계 정책을 펼때 민주주의와 반공독재 사이에서 고민한다.미국은 이 두마리 토끼를 쫓지만 국민들의 반대로 더이상 독재정부가 버틸 수 없다는 판단이 들때 미국은 민주주의의 손을 들어주게 되지만 그 전까지 한국의 독재체제는 미국의 지원을 받으며 유지된다.

60년대 미국의 대외정책은 로스토우에 빚지고 있다.근대화론으로 대표되는 로스토우의 논리는 경제성장을 통해 체제 우위를 점한다는 것이다.이를 위해서는 민주주의도 양보될 수 있다고 본다.특히 로스토우의 논리중 관심이 가는 부분은 저개발국가에서 과도기적 단계를 효율적으로 거치기 위해 군대를 필수불가결한 존재로 보았다는 것이다.마치 5.16 군사 쿠데타를 예견하는 듯 보이는 이론이다.

이 책에 나오는 5.16 군사 쿠데타 부분은 마치 정치 드라마를 보는 듯 흥미 진지하다.쿠데타를 제압하겠다는 유엔군 사령관과 미국 대사,'올것이 왔다'이를 계기로 정계 개편을 꿈꾸는 윤보선 대통령,쿠데타 상황에 대처해야함에도 숨어버린 장면 총리, 윤보선을 권좌에 계속 두면서 쿠데타정권의 도덕적 정당성문제를 넘어가려한 미 국무부.박태균 교수는 3,500명으로 성공한 쿠데타의 뒤에 미국의 역할보다 한국 정치인들의 무능이 있다고 지적한다.

60년대 중반이후  한미관계의 중심은 '베트남전 파병'이었다.60년대초 권력 기반이 아직 불안했던 박정희는 쿠데타 주체세력과 미국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면서 절대권력의 위치에 오른다.박정희는 전세계 여론과 무관하게 베트남에 전투병 파병을 시작하면서 미국과 특별한 관계임을 부각시키고자 한다.박정희가 전투병 파병을 강행하게 된 이유를 몇 가지 정리하면 첫째 한일협정 체결로 인한 국내여론 악화의 돌파구였다는 점,둘째 64년 주한미군과 한국군 감축계획에 대한 반대,셋째 베트남 특수를 통한 경제활성화 등이다.한일협정을 계기로 동북아시아에서 일본역할론이 어느정도 현실화되고 있다고 본 미국은 주한미군과 한국군 감축을 주도한다.이승만이 동남아시아 파병론을 내세웠듯이 박정희도 베트남 전투병파병론으로 이 상황을 돌파하려한다.미국은 베트남전이 장기화되어가면서 국내여론과 재정압박에 고민하게 된다.결국 한국군을 이용하는 것이 비용면에서도 또 아시아국가의 참여라는 홍보용으로도 적당했다고 본 것이다.미국은 기본적 한국군 파병에 대한 비용을 감당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그런데 박정희는 이것을 주도권 확보로 보고 미국의 마지노선을 넘는 무리한 요구를 시작한다.요즘말로 하면 오바하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에 68년 1.21 무장공비 청와대 습격사건과 푸에블로호 사건은 한미관계를 급격히 냉각시켰다.영화 <실미도>가 그 당시 박정권 내부의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다.박정희는 대북 보복공격에 대해 고려한다.또한 푸에블로호 납치 사건 해결을 위한 미북간 비밀협상에 배제된 것에 분노를 표한다.멀리는 베트남의 늪에 빠져있고 가까이는 선원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미국으로서는 곤란한 상황에 놓인 것이다.한국이 베트남을 빌미로 '벼랑끝 전술'을 쓰고 있다고 파악한 미국은 '너희들이 베트남에서 군대를 철수시키겠다면 우리도 남한에서 미군을 빼내겠다.'라는 상황까지 이르게된다.당시 미국은 북한을 통제하는 것보다 남한을 통제하는데 훨씬 많은 공을 들인 형태가 되었다.박태균 교수는 파병문제에 있어서도 우리정부의 전략이 오판이었음을 지적한다.

70년대 닉슨독트린과 지미 카터의 데탕트 시대에도 미군 철수론이 등장한다.박정희는 또 한번 벼랑끝 전설울 쓴다.핵을 보유하겠다고 선언하고 작업에 들어간 것이다.맛이 간 민족주의자들은 이 시점을 한국의 위상을 당당히 보인 것이라고 아직도 그리워한다.한때 신문광고 해대던 <무궁화꽃>인지 뭔지도 그런 내용아닌가 싶다.최근에 북핵이 문제되니까 김정일을 감금하고 밥‚–기는 소설도 하나›㎢?광고한다.소련과 군축도 논의대고 개입전략보다는 현상유지전략을 택한 미국이 이걸 받아들일 수는 없었을 것이다.그러고 보니 30년정도의 시차를 두고 미국은 남한핵문제와 북한핵문제를 다루고 있다.핵을 둘러싼 아이러니다.

<우방과 제국>에서 저자가 강조하는 점은 한미관계사를 신화의 틀에서 보지말고 '동태적'으로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또한 수구언론이 즐겨쓰는 '한미동맹강화'라는 것이 지난 역사에서 그렇게 순탄치 않았음을 그리고 또 보편적인 상황이 아니었음을 말하고 있다.한미관계는 출렁이는 바다처럼 단 한번도 평온했던 적이없다.그럼에도 마치 한미관계를 평화롭게 만드는 것이 우리의 과제인양 이야기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저자는 한미관계의 갈등원인이 미국측에 있음을 우선 밝힌다.무리한 세계전략을 추진하는 제국이 가진 한계이다.또한 한국정부의 부적절한 대응도 지적된다.일부에서 이 부적절한 대응을 '민족주의'로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에 반대한다.결코 민족 전체의 이익에 도움이 된 적은 없다는 것이다.그 때 그 때 정권차원의 안보가 중심이었던 것일뿐이다.마지막으로 한국민들 사이에 미국에 대한 신화가 지적된다.한국 사회의구성원들은 한국과 미국 사이의 비정상적인 관계를 당연히 받아들인다.거기에는 '사회진화론'이 자리잡고 있다.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실리를 추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우리가 이라크에 젊은 이들을 보낼때도 파병론자들의 논리 근저에 깔려 있는 것이 그것이었다.파병에서 어떤 특수를 얻을 수 있을까? 못해도 미국과의 관계가 좋아질 테니 떡고물은 있겠지? 그걸 현실론으로 받아들이고 그 토대 위에 논리의 탑을 쌓는 사람들을 수없이 많이 봐왔다.그리고 그 논리의 현실적 이득과 그 논리의 기계적인 정합성에 높은 가치를 두는 경우도 많이 봐왔다.어떤 이득이고 어떤 평화이고 어떤 국가인지가 중요한 것 아닌가? 논리의 토대가 인류애와 평화에 있지 않다면 그 많은 삼단논법과 통계수치,미래 예측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스스로 억압하는 또는 억압받는 민중임을 알고 그 땅 위에서 생각해야 한다. 그걸 잊고 멋진 이론과 논리와 통계로 무장한 자신을 엘리트라고 착각하지 말아야한다.

<우방과 제국,한미 관계의 두 신화>는 정치외교 영역에서 한국에 늘 존재하는 미국을 보여준다.이것과 함께 우리의 일상성 속에 우리의 문화 속에 ..유행하는 말로 우리의 '아비투스'속에 존재하는 미국은 또 어떤 것인지 고민해보게된다.

P.S) 이 책은 대중적 역사서를 지향한다.약간의 관심만 있다면 아주 빠른 속도로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마치 <제3공화국><제5공화국>하는 정치 드라마를 보는 듯 흥미진진하다.책에는 8.15부터 5.18까지 한미관계사라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80년대 부분은 거의 다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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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나귀님 > 주마"관"산으로 뒤적이기 (70) : 유영모와 태권브이

어쩌면 내가 다석에 대해 실망하게 된 것은 그만큼 큰 기대를 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기대한 만큼은 물론이고 실망할 만큼도 숙독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었는데, 어쩌면 다석의 "진미"를 알기도 전에 내 관심사가 아예 그쪽에서 멀어진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긴 이제 와서 다석이면 어떻고 일석이면 어떻겠는가. 내게는 별로 상관 없는 이야기다.

그러다가 며칠 전에 문득 책장에 있는 <다석 유영모 어록>을 꺼내 뒤적뒤적하다가 다음과 같은 대목을 발견했다.

  • 나는 예수, 석가를 좋아하고 톨스토이, 간디를 좋아한다. 그런데 예수를 좋아하다 보니 예수의 이름에서 이러한 생각을 얻었다. 예수의 '예'는 여이가 합하여 예가 되었다. 예는 곧 여기다. '수'는 재주의 능력이다. 할 수 있느냐의 수가 바로 능력이나 재주를 말한다. 여기의 이 재주와 능력이 예수다. 나의 매 손가락에 위로부터 내려오는 재주와 능력이 있다. 위로부터 한량없이 내리는 수는 숨이 끊어질 때까지 이어진다. 하느님께서 손수 내리는 그 힘이 지금도 자꾸자꾸 내린다. 한없는 능력이 이 손끝에 내리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사람의 손은 하느님이 잡고 쓰시는 붓이다. 이어이어 내려진 그 능력이 예수와 나를 이어지게 한지도 모른다. 예수 그리스도 역시 절대자에게 이어져서 나타나게 되었는데, 그 모양은 같다고 생각된다. (143쪽)

근데 솔직히 "예수"라는 이름을 "여기의 이 재주와 능력"이라고 해석한 것은 나름대로 흥미로운 언어유희일지는 몰라도, 원래 "예수"라는 이름이 바로 그런 맥락에서 해석 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여겨진다. 그러니 결국 이는 다석 개인의 자의적인 해석이요, 달리 말하자면 억측일 수밖에 없다. 나로선 이 대목을 접하는 순간, 이전부터 일종의 "다석 르네상스" 현상을 지켜보면서 품었던 의구심이 한층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즉 지금이야 너도나도 "독창적인 우리말 사상가"니 "시대를 앞선 인물"로 추앙하는 다석의 사상에 대한 평가는 지나친 면이 없지 않다는 의구심이었다. 물론 다석이 특이한 인물인 것은 분명하다. 그의 시대에나 지금 시대에나 그와 같이 살다 간 사람을 찾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그의 삶이 독특하고 그의 인격이 고매했다고 해서, 그의 사상조차 대단한 것으로 한꺼번에 추켜세워지는 것에는 선뜻 동의하기 힘들다. 이른바 "다석 르네상스"에는 다석이란 인물의 "삶"과 "사상"을 정확히 구분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되는 신비화와, 또한 이른바 "(남들 앞에 내세울 만한) 우리 것"을 찾고자 하는 앞뒤가 전도된 열성이 없지 않음을 지적하고픈 것이다.

오해의 여지가 없지 않겠지만, 나로선 다석이 과연 "보편적인 사상가"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해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단적으로 말해 "칸트나 헤겔" 급의 사상가가 될 수 있느냐는 거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미리 말해두자면, 나는 다석을 잘 모르는 것만큼이나 칸트나 헤겔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 그리고 굳이 칸트와 헤겔을 들먹인 것은 이들이야말로 오늘날 "보편적인 사상가"의 대표격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감히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들먹일 수 없었던 고충을 이해하시라.) 물론 한국인인 우리가 보기에 칸트와 헤겔의 사상이 "보편성"을 띠게 된 데에는 이른바 정치적, 사회적, 역사적 맥락도 없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 두 사람의 사상이 어떤 "외적 요소"에 의해 그토록 각광받았던 것이라면, 과연 지금과 같은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었던가? 철학사를 뒤져 보면 칸트와 헤겔 사이에도 당대에 큰 인기를 끌었던, 그리고 중요하게 평가되었던 사상가는 얼마든지 있었다. 어쩌면 칸트와 헤겔 역시 그런 숱한 사상가들 가운데 한둘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수백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두 사람은 "보편적 사상가"가 되었고, 나머지는 한때의 유행으로 잊혀져버리고 말았다. 이것이 단순히 어떤 철학 "외적 요소", 그러니까 요즘 하는 말로 서구중심주의적 사고방식이라든지, 제국주의적 이데올로기라든지, 또는 (헤겔의 경우) 마르크스주의적 이데올로기의 소산이라고 일축할 수 있을 것인가? 꼭 그렇다고 단언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만약 두 사람의 사상에 있어 어떤 "보편적 관심"을 일깨워주는 요소가 없었더라면, 이들의 사상 역시 일회적이고 당대적인 것으로 끝나버렸을 것이다. 물론 두 사람의 사상이 처음부터 끝까지 "옳은 소리"만 들어차 있는 것은 아니었고, 분명히 시대적이거나 개인적인 한계도 지닌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두 사람의 사상이 다른 시대, 또는 사상에 비해 뭔가 탁월한 면을 지녔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인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다석은 어떨까? 다석은 흔히 종교사상가,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유교와 불교의 배경 안에서 외래사상인 기독교를 "끌어안은" 인물로 묘사된다. 좋게 말하자면 "한국식 통합"이고, 노골적을 말하자면 결국 "짬뽕"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하긴 모든 사상이 "짬뽕"이고 "잡탕"인 것은 사실이지만, 다석의 경우에는 특별히 어떤 체계나 주저를 남기지 않았다는 점이 문제다. 물론 칸트와 헤겔의 시대 이후에 어떤 "거대 체계"를 구축하려는 것은 바람직하기는커녕 도리어 무의미하고 "헛점만 만들어내는" 시도로 여겨진 감도 없지 않고, 또 한편으로는 비트겐슈타인처럼 생전에 짧은 논문 하나만 발표했음에도 불구하고 이후의 수많은 해석자들이 자처하고 나서면서까지 "무체계의 체계"를 수립해 주는 호사를 누리게 된 것도 사실이다.(즉 "꿈보다 해몽이 더 좋다"는 말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꿈은 꿈이고 해몽은 해몽, 결코 "해몽"이 "꿈"을 대체할 수는 없는 법이다. 모든 해석은 오독과 오해의 여지를 남기며, 그렇기 때문에 다석의 경우처럼 주저나 주장이 선뜻 손에 잡히지 않는 사상가의 경우에는 "원문"을 대하기보다는 "해석"에 더욱 의존하게 되는데, 그런 까닭에 해석자에 따라, 그리고 해석자의 의도에 따라 그 해석도 천차만별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까닭이다. 그리고 다석의 생애에 대해, 그리고 다석의 사상에 대해 나온 책들(특히 다석의 수제자인 박영호의 저서)을 살펴보면 하나같이 다석의 "탁월성"이 일종의 "비교우위"에 근거한 것임을 알게 된다. 즉 다석의 위대함은 매번 "예수, 석가, 톨스토이와 간디"의 사상과 비교되어서만 드러날 수 있는 듯 보이는 것이다. 이는 내 오해일 수도 있지만, 솔직히 박영호의 논법이 "다석은 이런 말을 했는데, 이는 예수의 저런 말을 연상시킨다"거나 "다석은 이런 주장을 펼쳤는데, 이는 톨스토이의 저런 주장과 상통한다"는 식으로 반복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따지자면 결국 다석이 "예수나 톨스토이"를 숙독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면 모를까, 다석이 그 두 사람에 필적할 만한 사상을 실제로 지녔는지 여부는 여전히 물음표로 남아있고 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다석이 지금처럼 "대중화" 되어버린 풍조가 한편으로는 두렵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딱하기도 하다. 생전에 김교신이 다석을 가리켜 "놀라운 생각을 지니고 있으면서, 어째서 그것을 사람들에게 펼치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안타까워하던 것이며, 다석 스스로가 김교신에게 "내 생각은 워낙 비정통적인 것이어서, 보통 사람은 받아들이기가 힘들 것"이라고 운을 띄웠던 것 역시, 다석에 관한 "신화"를 한층 두텁게 만들어주기는 할지 몰라도 오늘날 다석에 대한 갖가지 오해나 오독을 "정당화"하는 구실로 여겨져선 안 될 것이다. 또한 다석은 근본적으로 "기독교" 사상가였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가 유교와 불교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기독교를 "우리것으로 만들었다"는 호의적인 평가를 받을런지는 몰라도, 그의 "신학"(물론 이런 명칭을 부여할 수 있다면)은 어디까지나 지극히 개인적인 차원에서의 것이었고, 차라리 일종의 신비주의자나 영성가로라면 몰라도, 앞서 말한 것과 같은 칸트나 헤겔의 "보편적 사상"과는 거리가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물론 칸트나 헤겔 역시 기독교에 관한 논저를 남기기도 했지만, 오늘날 이들의 사상이 "보편적 관심사"를 다루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까닭은 그와는 좀 더 다른 데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하필이면 "다석"인가? 나는 혹시나 그것이 뭔가 "있어 보이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한다. 즉 다석은 <다석일지>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네 권(거의 한 권이 무슨 국어대사전 만한)짜리 개인기록을 남겼는데, 이 대부분은 다석 특유의 언어나 사고방식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로선 도무지 읽어내기조차 힘들 정도로 "난해"하다. 어쩌면 다석이 일종의 "숨은 광맥"으로 여겨지는 까닭은 그 난해함, 또는 접근의 어려움에도 일말의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다. 즉 모르니까 신기한 것이고, 모르니까 뭔가 있어 보이는 것이고, 몰라서 아직 연구가 안 되었으니까 지금부터 연구하면 뭐라도 나올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다석이 오늘날 각광받는 한국 사상가로 떠오른 것은 신학 전공자이고 하이데거 전공자인 철학교수 이기상이 토로한 것처럼 "이 땅에서 우리 문제로 고민한 한국의 사상가는 없는가?" 하는 의문 때문인 것이다. 우리나라의 지식인들은 대부분 (감히 지식인이라 말하기 뻘줌한 나 역시 비슷한 경로를 걸었으니) 서양사상으로 시작해 동양사상, 그리고 결국 한국사상으로 선회하는 과정을 겪게 마련인데, 이는 오늘날의 서구화된 교육제도나 문화, 또는 사회풍조 속에서는 당연한 일로 여겨지는 반면, 다른 한편으로는 그 선회의 동기에 대해서도 일종의 의구심을 품지 않을 수 없게 하는 현상이다. 쉽게 말해 "서양사상을 파고들어가다 보니 한계가 느껴지더라"는 것인데, 그것은 바로 "우리나라" 또는 "한국인"이라는 정체성과 모종의 관계를 맺고 있다. 물론 우리 사상을 탐구하기로 마음먹은 사람을 모조리 "전향자"나 "지적 속물"로 몰아버리고 싶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서양 사람들 앞에서 '우리 것'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난처해 하다가 결국 '우리 것'을 추구하게 되었다"는 고백은 철학자 이기상의 것이건 가수 김수철의 것이건, 어딘가 구차한 느낌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남들의 눈이 없었다면, 또는 "남들 앞에 우리 것을 들고 나가야 한다"는 부담감이 없었다면 이들의 지적, 또는 음악적 경로는 지금과 또 크게 달라졌을 것이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물론 이기상이 다석을 들고, 또는 김수철이 국악을 들고 국제 무대에 진출하는 것은 바람직까지는 몰라도 나름대로 좋은 일일런지 모른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굳이 다석이나 국악 말고 이기상이 뛰어난 하이데거 해석자로, 그리고 김수철이 뛰어난 록 기타리스트로 국제 무대에 진출하는 것 역시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 두 사람의 의도를 오해하고픈 생각은 없다. 다만 우리가 종종 그처럼 "남에게 뭔가 보여주기 위해서"라는 계기로 인해 "우리 것"에 새삼 눈을 뜨는 일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정말 내세울 만한 것이 아니라, 일종의 급조된 전통이나 급조된 "자랑거리"를 내세울 때도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며, 때로는 "초라한" 것을 초라한 그대로 내밀어보기보다는 오히려 "뭔가 있어 보이게" 과대포장까지도 서슴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물론 아예 안 하는 것보다는 조금이라도 하는 것이 더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기왕 "하려면" 좀 더 "제대로" 하는 편이 낫지 않겠는가.

만화영화 <로봇 태권 브이>가 복원되어 극장에 걸린다는 기사를 본 것 같은데, 실제로 관객이 많이 들었는지는 모르겠다. 나로선 솔직히 이 뜬금없는 "복원" 소식을 듣고 좀 당황스러웠다. 어째서 지금 갑자기 <태권 브이>일까? 나 역시 어린 시절 그 만화영화를 본 기억이 어렴풋이나마 나는데, 그때에는 어땠을지 몰라도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다지 "걸작"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한편으로는 <태권 브이>를 일종의 "우리나라의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많이 들어간 걸작"으로 치켜세우는 주장도 없지 않은 모양인데, 솔직히 그건 좀 아니라고 본다. 물론 "태권"이란 이름이 들어간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만화가 일본 만화, 특히 <마징가 제트> 류의 거대 로봇물과 완전 독립적으로 평가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어불성설일 것이다. 물론 나름대로의 개성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일본 만화의 직접적 영향하에서의 부분적인 개성일 뿐이지, 거기에 대해서 그렇게까지 큰 의미를 부여해야 할 것인지는 모르겠다. 나로선 차라리 <태권 브이>를 전후해서 나온 또 하나의 "걸작" 애니메이션(물론 이에 대한 평가는 또 사람마다 다르겠지만)인 <호피와 차돌바위>와, 현재는 필름이 전해지지 않는다는 그 전편 <홍길동>이 "한국 애니메이션"의 역사에서는 더욱 큰 의의를 지니지 않았나 생각한다.(이 두 편은, 역시 어려서 이를 보고 큰 감명을 받았다는 윤석화에 의해 <돌아온 영웅 홍길동>인가로 리메이크 되었는데, 이 역시 원작들과는 달리 당시 국내에서 기세를 떨치던 일본만화의 영향을 떨치지 못하고 "홍길동이 아니라 드래곤볼이더라"는 비아냥을 얻으며 비평과 흥행 양면에서 그리 좋은 반응을 얻지 못한 것으로 안다.) 뭐, 까놓고 말하자면 지금 와서 <로봇 태권 브이>에 열광하는 (열광하긴 하는지 모르겠지만) 풍조에는 이른바 애니메이션 산업이나 만화 산업이 일종의 미래형 고부가가치 콘텐츠 산업으로 여겨지는 상황에서 일종의 "법통 만들기"나 "역사 만들기"의 의도가 은근히 엿보인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지금 와서 굳이 한국 애니메이션, 또는 "한국 로봇 애니메이션"의 계보를 작성하는 것은 모든 계보 만들기가 그렇듯이 현재를 정당화하고, 현재의 행위에 의미를 부여하려는 의도가 없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태권 브이>를 만들어 "이 땅의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준" 영웅으로 추앙되는 김청기 감독의 이후 작품 가운데, 일본 애니메이션의 노골적인 "베껴먹기"(대표적인 것이 <마크로스>에 나온 로봇-전투기가 <스페이스 간담 브이>란 제목으로 애니메이션 화 된 것을 들 수 있겠다)가 존재한다는 것 역시 우리의 "자랑스러운" 계보 가운데 포함시켜야 할 것인가? 이왕 <태권 브이>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으니, 어쩌면 이 부분에 대해서도 어디 "과거사 청산"이 이루어질 수 있는지 지켜볼 만 하겠다.

결국 다석이건 태권브이건, 굳이 "우리 것"으로 의미부여를 하려면 못 할 것은 없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것이 아주 설득력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는 게 문제인 거다. 이른바 "블록버스터"에 대해 "한국형 블록버스터"를 이야기해야 하는 것은 사실 초라하고 구차한 이야기일 수 있다.(이는 "느와르"와 "홍콩 느와르", 또는 "웨스턴"과 "마카로니 웨스턴"하고는 또 다른 이야기일 것이다. 뭔가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다기보다는 할리우드의 "물량공세"를 겉핥기 식으로 흉내내는 "한국형 물량공세"인 셈이니까.) 남들 앞에 뭔가 내세우기 위해 굳이 우리 것을 찾아야 할 때, 그리고 원래의 문맥과는 무관하게 어떤 의미를 부여해야 할 때, 나는 문득 예전에 24시간 편의점이 건물마다 들어서며 크게 유행할 때에 있었던 한 가지 사건을 떠올리게 된다. 여기저기서 24시간 내내 불을 밝혀 놓은 LG25시니, 패밀리마트니, 바이더웨이니 하는 편의점들이 문을 열자, 우리 동네의 어느 구멍가게도 이른바 "한국형 편의점 사이클론"으로 간판을 바꿔달았다. 그런데 여기서의 핵심은 바로 그 "한국형"이라는 데에 있었다. 즉 그 "한국형 편의점"은 밤 12시가 되면 셔터를 내렸던 것이다. 내가 지금 다석과 태권브이를 바라보며 그 일을 떠올리게 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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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나귀님 > 진실과 거짓에 관한 우화 (1)
여자의 일생.단편선 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 32
G.D.모파상 지음, 이정림 옮김 / 범우사 / 1998년 9월
평점 :
품절


1.

모파상의 단편 "노끈"은 고데르빌이라는 마을의 장터 풍경에 대한 묘사로 시작된다. 장날이 되면 그 마을로 오가는 길 위에는 인근 마을에서 온 농부와 아낙들이 분주하게 걸음을 옮긴다. 그 중에는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오슈꼬르느 영감도 있었다.

  • 브레오떼의 오슈꼬르느 영감은 방금 고데르빌에 도착하였다. 그는 땅에서 작은 노끈 한 조각을 보자 광장 쪽으로 갔다. 진짜 노르망디 사람으로 검소한 오슈꼬르느 영감은 소용이 될 만한 것은 뭐든지 주워 모으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고통스럽게 몸을 굽혔다. 류머티스로 고생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땅에서 가느다란 끈 조각을 집어들었다. 그러고는 그것을 막 정성스럽게 감으려고 할 때, 문지방에서 자기를 쳐다보고 있는 마구 제조인 말랑댕 영감을 알아보았다. 그들은 전에 말고삐에 대한 문제로 곤란한 일이 있었다. 그래서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있었고, 두 사람은 모두 원한을 품고 있었다. 오슈꼬르느 영감은 진창 속에서 노끈 토막을 주우려고 하는 것을 자기의 원수에게 들킨 것이 수치스러웠다. 그는 얼른 그 찾아낸 물건을 작업복 밑에 숨겼다가 바지 주머니 속에 넣었다. 그러고는 찾아내지 못한 그 무엇을 땅에서 아직도 찾는 듯한 시늉을 하다가, 머리를 앞으로 내밀고, 고통으로 잔뜩 몸을 구부리고 시장 쪽으로 갔다. (351쪽)

땅에 떨어진 그까짓 노끈 한 조각, 정말 아무 것도 아닌 그 물건 때문에 이후에 자신이 어떤 곤란하고도 울화통 터지는 일을 겪게 될지 미처 알기만 했더라도, 오슈꼬르느 영감은 결코 그 노끈 조각을 주울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점심 때가 되어 식사를 하던 영감은, 울브레끄 씨라는 사람이 현금 500프랑과 각종 서류가 든 지갑을 그날 아침에 분실해서 애타게 찾고 있다는 공고를 접하게 된다. 점심 식사가 끝났을 무렵, 지서 주임이 나타나 그를 데리고 면장 앞으로 간다. 면장은 마구상인 말랑댕이 "오슈꼬르느가 지갑을 줍는 것을 보았다. 그걸 줍고 나더니, 또 뭔가가 떨어져 있지 않나 싶어서 더 두리번거리더라"고 한 증언을 토대로, 오슈꼬르느 영감에게 지갑을 어떻게 했느냐고 신문한다. 오슈꼬르느 영감은 기가 막히고 화가 나서 얼굴이 빨개진 채 "내가 주운 것은 노끈"이라고 항변하며, 자기 주머니에서 노끈을 꺼내 면장 앞에 흔들어 댄다. 그러나 면장은 "말랑댕 씨도 신용할 만한 사람인데, 그까짓 노끈을 지갑으로 착각할 리가 없다"며 영감을 몰아세운다.

영감은 두 번 세 번 아니라고 맹세하지만 면장은 끝내 의구심을 지우지 못하는 눈치였다. 결국 말랑댕과 대질하게 되었지만, 계속해서 진술이 엇갈리는 바람에 결국 한 시간이나 서로 욕설을 퍼붓고 나서 아무런 결론도 내려지지 않는다. 면장 역시 명확한 증거가 없으니 난처해서 영감을 풀어주고 만다. 그러나 이 소문은 이미 장터에 모인 사람들 사이에 파다하게 퍼진 다음이었고, 영감이 면사무소에서 나오자마자 사람들은 그를 둘러싸고 이런저런 질문을 던진다. 영감은 사람들에게 자기의 결백을 호소한다. 사람들은 영감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만, 그저 빙긋이 웃을 뿐 아무도 그의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노인은 사람들의 미지근한 반응에 더욱 울화통이 치밀어 자기 주머니를 뒤집어 보여주며 결백을 주장하지만, 그가 흥분하면 할수록 사람들은 더더욱 미심쩍은 표정을 짓는다. 영감은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자신의 억울함을 하소연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의 편을 들어주진 않는다.

다음 날 아침, 다른 마을에 사는 어느 농부가 울브레끄 영감을 찾아와 그의 지갑과 현금을 어제 길에서 주웠다며 돌려주었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이 소문 역시 금세 사람들 사이에 퍼진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오슈꼬르느 영감은 의기양양한 태도로 또다시 사람들을 붙잡고 "그것 봐라, 왜 멀쩡한 사람을 거짓말장이로 모느냐?"며 자신의 결백을 주장한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이번에도 사람들의 반응은 뜨듯미지근하기만 했다. 사건의 진상이 백일하에 드러났고, 이젠 더 이상 자신이 의심받을 이유가 없을 텐데, 어째서일까? 다음 번 장날에 고데르빌로 간 영감은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 도중에 문득 자신에게 또 다른 "혐의"가 덧씌워졌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즉 사람들은 오슈꼬르느 영감이 지갑을 주운 것은 사실이며, 그저 자신이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자 당황한 나머지 "한패거리"인 다른 농부를 시켜 그 지갑을 갖다 바침으로써 그 혐의를 벗어나려 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었다. 영감은 말문이 막힌다.

  • 그러자 그는 그 뜻밖의 사건을 다시 이야기하기 시작했는데, 매일 자기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으면서, 매번 새 이유와 보다 강력한 항의, 그리고 그가 상상한 것보다, 그가 혼자 있는 시간에 준비했던 것보다 더 엄숙한 맹세를 덧붙이는 것이었다. 그의 정신은 오로지 노끈의 이야기에만 몰두해 있었다. 그의 변명이 보다 복잡해질수록, 그의 논증이 보다 치밀해질수록, 사람들은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저것이 바로 거짓말장이의 해명이지" 하고 그의 등 뒤에서 사람들이 쑤군거렸다. (356쪽)

노인은 홧병으로 자리에 눕는다. 그리고 불과 몇 주 되지 않아 숨을 거둔다. 마지막까지도 자신의 무죄를 증명하려는 듯, "짧은 노끈이요...... 짧은 노끈...... 자, 여기 있어요, 면장님." 하고 중얼거리면서 말이다.

 

2.

나 역시 이와 비슷하게 종종 "내가 이런 행동을 하면, 남들이 보기에 뭔가 이상해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품기 때문에, 처음 모파상의 단편을 읽으면서 무척이나 공감하는 동시에, 또 무척이나 불안을 품게 되었다. 정말 이렇게 될까? 오얏나무 밑을 지나면서 갓끈을 매거나, 외밭을 지나면서 신발끈을 매다 보면 정말 이렇게 빼도박도 못할 궁지에 몰릴 수 있는 것일까? 아닌 게 아니라, 나 역시 이제껏 살면서 그런 억울하고도 한심한 궁지에 몰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억울하다는 것은 내가 하지도 않은 일, 또는 내가 의도하지도 않은 결과 때문에 내 행동이나 의도를 의심받곤 했기 때문이고, 한심하다는 것은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터무니없는 계기로 인해 그런 궁지에 몰렸기 때문이다. 내가 그런 의도를 품지 않았다는 것, 내가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나 자신이야 분명히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상대방에게 이를 어떻게 전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백 번 천 번 아니라고 말해도 상대방은 곧이 듣지 않는다. 아니, 아니라고 하면 할 수록 더욱 "수상쩍게" 보이기 일쑤다. 그저 입 꾹 다물고 가만히 있는 게 상책일지 모르지만, 그렇게 하다 보면 나처럼 성질 급한 사람은 울화통이 터져 살 수가 없다. 차라리 대판 난리법석을 치고 삿대질 하며 언성을 높이는 게 정신건강에는 더 낫다. 그로 인해 더 큰 오해를 사고, 심지어 아직까지는 내 진실성을 약간이나마 믿어줄 의향이 있었던 소수의 사람들까지도 진저리를 치며 떨어져나감으로 인해 상황이 더욱 악화될 수는 있다. 하지만 그렇게 혼자서 광분이라도 하지 않으면, 도대체 그 억울함을 어떻게 호소할 수 있다는 말인가? 나중에 사건이 백일하에 밝혀지더라도, 어느 누구 하나 찾아와서 미안하다고 사과하거나, 오해한 것이라고 시인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문제는 이미 "진실"의 문제에서 "감정"의 문제로 전이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내가 겪은 "사건"을 문제시하던 사람들이, 언제부턴가 내가 드러낸 "인격"을 문제시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다. 그냥 가만히 누워서 죽어가야 할까? 당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 한다"는 말은 바로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말일 수도 있다.

집사람과 문득 그 "석궁 교수"(미안한 이야기지만, 그 이름보다도 먼저 생각나는 게 "석궁"이란 단어다. 본인은 질색할지도 모르겠지만, 이미 그 "레저용 기구" 또는 "살상까지도 가능한 흉기"의 이름이야말로 그의 평생에서 지워지지 않을 상징이자 꼬리표가 된 것은 아닐까.)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이 단편을 떠올렸다. 사건의 발단은 "수학문제 오류 여부"로서 그 교수의 주장이 "맞다"고 해야 하는데, 나중에 재판 과정에서는 문제의 핵심은 젖혀놓은 채 "교육자로서의 자질"을 법으로 심판하는 격이 되어 "잘못이다"라고 했으니 이는 뭔가 잘못이 아니냐는 것이었다. 이른바 "교육자로서의 자질 여부도 법으로 판단하는 격"이 되었던 그 재판 절차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니, 문득 파이드로스가 이야기한 양과 질의 문제가 떠올랐다. 어떤 도덕성, 자질, 인격에 대한 시비를 법의 잣대로 판가름한다는 것 역시, 질적인 것을 양적인 것으로 환산하는 오류를 범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물론 정식 절차를 밟는 재판에서는 이겼다 하더라도, 이른바 "여론 재판"이라는 것이 있으니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이긴 했겠지만 말이다. 문제는 법적으로까지 들어갈 정도면 정말 빼도박도 못할 난처한 상황일 수밖에 없다는 거다. 법은 평범한 한 사람이 호소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이며, 바꿔 말하자면 거기서도 억울한 일을 당하게 되면 그냥 앉아서 죽는 수밖에는 없다는 거다. 게다가 법은 결코 공정하지가 않다. 남들은 그래도 특권층이네 뭐네 하는 교수 정도가 되어서도 결국 석궁을 들고 나서야 했을 정도니, 솔직히 이건 뭐, 수입이나 사회적 지위 등등에서 그보다 못한 일반인이야 굳이 갖다댈 것이나 있겠나. 석궁 쏜 게 잘 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가령 무슨 영화 같았으면 이런 식으로 "폭력"에 호소해서 클라이막스를 이끌어내는 게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제공했을지 몰라도, 엔드 크레딧과 함께 끝나 버리는 영화와는 달리 현실은 클라이막스 이후에도 계속 이어지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석궁을 쏜 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그 사건으로 인해 또 새로운 고초와 오해와 억울함과 비난과 기타 등등이 다시 한 번 시작된다는 거다. 다만 역지사지 해보니 또 한 사람의 약자인 나 같았더라도 어쩌면 고스란히 앉아서 죽기엔 너무 억울하지 않았을까, 뭐 그런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 내가 읽은 모파상의 단편 "노끈"은 <여자의 일생 / 단편선>(이정림 옮김, 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 21, 범우사, 1990 4쇄)에 수록되어 있었다. 지금은 크기가 좀 뻥튀기되어 나오는 책이지만 특별히 크게 달라지진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 흠, 요즘은 이것저것 떠오르는 소설도 많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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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나귀님 > 두 가지 논쟁에 관하여...

 

 

 

 

 

"논쟁"이란 것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떠올리다보니, 문득 생각나는 것이 두 가지 있었다. 그중 하나는 윌버포스 주교 대 토머스 헉슬리의 "진화론 논쟁" (1860년) 이고, 또 하나는 F. C. 코플스턴 신부 대 버트런드 러셀의 "하느님의 존재 논쟁" (1948년) 이다. 나름대로 이런저런 생각도 정리할 겸, 두 가지 논쟁에 대해 서술한 책을 꺼내 보았다. 첫 번째 논쟁은 여러 가지 버전이 있겠지만, 내가 특히 재미있게 읽은 것은 칼 세이건과 앤 드루얀이 공저한 <잃어버린 조상의 그림자>(김동광, 과학세대 옮김, 고려원)에 나오는 대목으로, 사실은 원본 그대로가 아니라 1930년대에 나온 어느 할리우드 영화의 한 대목을 시나리오 형식으로 옮긴 것이다. 이 논쟁에서 유명한 클라이막스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설(실제로는 그런 내용이 없었다는 둥, 헉슬리의 말이 다르다는 둥)이 있지만, 일단은 여기 서술된 것처럼 그런 게 "있다"고 치겠다. 두 번째 논쟁은 버트런드 러셀의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송은경 옮김, 사회평론)에 나온 것이다.

 

1. 첫 번째 논쟁 : 윌버포스 대 헉슬리의 "진화론 논쟁" 중에서

  • 이튿날, 커다란 홀의 문이 활짝 열린다. 사람들로 가득 차 북적대고 있는 회장에 한 사람의 목소리만 울려 퍼진다. 옥스퍼드 주교 새뮤얼 윌버포스(조지 앨리스)의 얼굴이 커다랗게 클로즈업된다. 손가락을 옷깃에 넣은 채 그는 노골적으로 헉슬리(잠시 후면 그와 한바탕 싸움을 벌이도록 정해져 있는 그는 물론 그 자리에 있다)에게 얼굴을 향하고는, 일부러 꾸며낸 정중함을 가장하며 질문을 던진다. "그런데 당신이 주장하는 바대로 원숭이의 자손이라면, 그것이 당신의 할아버지 쪽을 통해서 이어져 온 것이오, 아니면 할머니 쪽 가계에서 온 것이오?"
  • 특히 "할아버지"라는 대목에서는 간살을 떠는 듯 이상한 비음을 섞어 발음했다. 그러자 청중들은 낮게 "오!" 하는 탄성을 질렀고, 이내 모든 이들의 시선은 헉슬리에게 모아졌다. 헉슬리는 자리에 앉은 채, 주위 사람들을 향해 거의 들릴락말락한 목소리로 이렇게 중얼거린다. "다행스럽게도 신이 윌버포스를 내게 인도해 주셨군요."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두 눈으로 윌버포스를 응시하면서 입을 열었다.
  • "현실을 직시할 수 없는 사람보다는, 차라리 두 마리 원숭이 쪽이 더 낫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 아무도 주교가 뭇 대중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면전에서 그런 모욕을 당하는 일을 본 적이 없었다. 모든 사람들이 대경실색했다. 여성들은 실신하고, 남자들도 주먹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러나 챔버스는 그런 청중들 속에서 매우 유쾌한 표정이다. 그때 누군가 한 사람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뉴질랜드 총독의 임기를 마치고 막 영국으로 돌아왔던 전 해군 중장 로버트 피츠로이(로널드 레이건)이다. "다윈의 미친 생각에 대해서는 벌써 30년 전에 비글 호 선상에서 그 본인과 논쟁을 벌인 적이 있습니다." 그런 다음, 피츠로이는 성서를 꺼내 무기처럼 휘두르며 이렇게 말한다. "이것이, 그리고 이것만이 진리의 근원이오." 회장은 다시 숙연해졌다. (85-86쪽 : 인용문 가운데 일부는 문맥에 더 어울리게 약간 수정했다.)

 

2. 코플스턴 신부와 러셀의 "하느님의 존재 논쟁" 중에서

  • 코플스턴 : (...) 그 다음엔 이렇게 말하겠죠. 그 본질과 실재는 동일함에 틀림없다. 만일 하느님의 본질과 하느님의 실재가 동일하지 않다면, 이 실재에 대한 충분한 이유는 하느님 너머에서 찾아져야 하니까요.
  • 러셀 : 그러니까 모든 게 이 충분한 이유라는 문제로 돌려지는군요. 그렇다면 나는, 신부님이 "충분한 이유"란 것을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정의해주지 못했다고 말할 수밖에 없군요. 충분한 이유를 어떤 의미로 쓰시죠? 원인이란 의미 아닌가요?
  • 코플스턴 : 반드시 그런 의미만은 아닙니다. 원인도 충분한 이유의 일종이니까요. 오직 우연적인 존재만이 원인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곧 그 자신의 충분한 이유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그 자신의 원인은 아닙니다. 내가 "완전한 의미에서의 충분한 이유"라고 할 때는, 어떤 특정 존재의 실재에 적절한 설명이란 뜻입니다.
  • 러셀 : 하지만 설명이 적절할 때가 언제지요? 예를 들어 내가 성냥으로 불을 붙인다고 해봅시다. 이것을 "내가 성냥곽에 성냥을 긋는다"고 하면 신부님은 적절한 설명이라고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 코플스턴 : 글쎄요, 실제적 목적에서는 그렇지요. 하지만 이론적으로는, 부분적 설명에 불과합니다. 적절한 설명이란 궁극적으로 총체적인 설명이어야 하며, 따라서 더 이상 덧붙일 게 없어야 합니다.
  • 러셀 : 그렇다면 나로선 신부님이, 가질 수도 없고, 따라서 가지길 바라서도 안 되는 어떤 것을 찾고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군요.
  • 코플스턴 : 그것을 찾지 못했다고 말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고, 그것을 찾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다소 독단적이지 않나 싶습니다.
  • 러셀 : 글쎄, 모르겠네요, 내 말은, 한 가지를 설명하는 일은 다른 것으로 하여금 또 다른 것에 의존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일이기 때문에, 결국 신부님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이 딱한 사물 체계를 통째로 파악하지 않을 수 없다는 얘긴데, 그건 우리로선 하기 힘든 일이란 거죠.
  • 코플스턴 : 그러니까 경께서는, 우리가 그런 일을 할 수 없다는 얘깁니까, 아니면 이 딱한 사물 체계 전체, 다시 말해 우주 전체의 실재 문제를 아예 제기하지도 말라는 겁니까?
  • 러셀 : 그렇습니다. 나는 그것이 전혀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우주'란 말은 문맥에 따라선 편리한 말이지만, 나는 그것이 의미를 가진 어떤 것을 대표한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214-215쪽)

 

3.

난 솔직히 "논쟁"이란 것이 시간낭비라고 생각하는데, 왜냐하면 결과적으로는 서로의 "입장 차이"만을 다시한 번 확인하게 될 뿐 아무 것도 변화되지 않기 때문이다. 논쟁에서 이기는 쪽이건, 지는 쪽이건 사정은 마찬가지다. 어떤 한 가지 입장을 고수하는 사람이라면 굳이 논쟁을 벌여서 지는 한이 있더라도 쉽게 승복하지 못할 것이고, 혹시나 궤변으로라도 이긴 사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사람은 어느 정도까지는 논리적이지만 철저히 논리적이진 못하다. 논리적으로 자신이 궁지에 몰렸다는 사실을 깨닫더라도 승복하기보다는 그 궁지를 빠져나갈 또 다른 논리를 개발하기에 여념이 없다.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은 언젠가 유대교의 젊은 랍비들을 만난 자리에서 시험삼아 그들을 논리적 모순의 궁지로 몰아넣었지만, 그들이 이리저리 치고 빠지고 비틀어서 달아나는 솜씨에 대해 진심에서 우러나온 "감탄"을 표시한 적이 있다. 하긴 수천 년 동안이나 그렇게 치고 빠지고 비틀어서 달아나는 방법을 연구한 사람들이니, 그 정도의 감탄을 표시하는 것은 예의에 속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사람은 순수히 논리적이지 못하고 감정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논쟁에는 백발백중 감정이 끼어들게 마련이다. 따라서 감정을 겨냥하는 것은 비록 논리적이지는 않을 망정, 매우 효과적인 무기가 될 수 있다. 굳이 감정을 겨냥하지 않더라도 누군가에게 논파된다는 것은 상당히 굴욕적인 일이다. 논리의 헛점이란 일종의 과실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물론 매사에 논리적으로 완벽한 인간이란 존재할 수 없을 텐데도 말이다. 그러니 무엇이든지 주장하고픈 것이 있으면 논리가 정연해야 한다. 거꾸로 말하자면 논리가 정연하지 못하면 뭔가를 주장하거나 옹호하거나 함으로써 논쟁에 가담할 엄두를 내지 않는 편이 낫다. 차라리 외면하고 사는 게 낫다. 아무도 내 의견을 묻지 않고, 나 역시 아무에게도 내 의견을 표시하지 않으면 그보다 속 편한 일이 또 없다. 청맹과니처럼 살아가는 것인데, 진정으로 매사에 청맹과니가 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야말로 대단한 경지에 이른 것이 아닐까?

나는 앞에서 두 가지 논쟁에 대해 소개했다. 우리가 흔히 "논쟁"이라는 말을 들을 때 떠올리는 모습은 사실상 (1)에 가깝다. 즉 클라이막스가 있고, 멋진 "한 방"이 있으며, 두고 두고 읊어댈 만한 "명언"이 등장하는 논쟁이다. 승부는 깨끗하게 갈리고, 비록 상대방이 승복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둘 중에 어떤 쪽이 "이긴" 것인지를 분명히 알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의 생활에서 벌어지는 논쟁이 양상은 오히려 (2)에 가깝다. 클라이막스고 "한 방"이고 "명언"이고 승부고는 간 데 없고, 그냥 상대방의 말꼬리를 잡고, 또 이에 대한 해명으로 소꼬리를 제시하는 식으로 끝도 없이 한도 없이 언쟁이 지속되지만, 실상 두 사람의 입장은 영원한 평행선을 그릴 뿐이다. 내가 논쟁을 싫어하는 이유랄까 하는 점은 아마 코플스턴과 러셀의 논쟁 내용에 고스란히 나와 있지 않나 싶다. 유명한 <철학사>를 쓴 사람들이지만 어째서인지 가장 근본적인 철학 문제(하느님, 도덕 등)에 대해서조차 합의가 쉽지 않다. 우선 두 사람의 입장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며, 따라서 똑같은 용어조차도 다른 뉘앙스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러고보면 결국 "입장이 다른 두 사람"을 붙여놓고 논쟁을 시키는 것이야말로 무의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결국 이 논쟁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1)의 논쟁이 되진 못했다. 이야기는 맨 처음, 그러니까 한 사람이 인정하는 것에 대해 또 한 사람은 인정하지 않고, 한 사람이 의미 있다고 보는 것에 대해 또 한 사람은 의미 없다고 보는 입장 차이에서 전혀 진전되지 못했다. 그렇다면 이 무슨 시간 낭비인 것인가. 러셀이 이 토론의 내용을 굳이 자기 책에 수록한 이유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본인으로서도 코플스턴의 문제 제기에 대한 자신의 대응이 썩 만족스럽지는 않았을 것이다.(논쟁 내내 코플스턴은 무엇을 "인정"하자는 쪽인 반면, 러셀은 오히려 상대방이 쓴 단어의 "의미"를 걸고 넘어지는 쪽이다. 물론 그것은 논리를 강조하는 러셀의 철학적 입장이 반영된 것이겠지만, 사실 정말 그가 논리적 명확성을 원했다면 그는 애시당초 이런 토론에 나오지 말았어야 하지 않았을까?) 하여간 코플스턴과 러셀의 논쟁은 지루하고도 짜증스럽고, 다른 무엇보다도 우리 현실의 실제 논쟁과 매우 흡사하기 때문에 참으로 읽기가 곤혹스럽다. 대 철학사가와 논리학자도 결국 논쟁에 있어서는 한 이불 속에서 벌어지는 부부싸움의 수준("그건 니 생각이지, 아니 니 생각이야, 아님 말아라, 너 잘났다")을 벗어나지 못했다니, 그야말로 역설적인 일이 아닌가.

물론 (1)의 논쟁과 달리 (2)의 논쟁은 단순히 각자의  "신념", 또는 "믿음"에 근거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문제가 아닌 이른바 "사실"에 대한 문제에서도 이런 식의 어려움은 없지 않다. 왜냐하면 "사실"조차도 경우에 따라서는 "신념"의 문제와 연관되기 때문이다. 가령 어떤 것이 "사실"인지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경우가 그렇다. 한 사람은 어떤 것을 "사실"이라 여기고, 또 한 사람을 같은 것을 그렇게 여기지 않을 경우, 이는 단순히 정보의 유무보다도 "신념"과 연관되는 경우가 많다. 즉 사실을 직시하지 않거나 간과함으로써 일종의 취사선택을 하는 것이다. 물론 과연 100퍼센트짜리 "사실"이 존재하느냐 하는 쪽으로 회의적인 입장을 고수하기만 한다면, 어떤 논쟁에서도 "지지 않을" 것은 뻔한 이치다. 하지만 지지 않는다고 해서 "이기는" 것은 아니다. 회의적인 태도는 논쟁 자체를 불가능하고 무의미하게 만든다. 물론 그 당장에는 유용한 방법이지 모르지만, 솔직히 나로선 인간이 영원히 회의적이진 못하리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뭔가 단단한 것을 필요로 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래처럼 부슬부슬 흩어지는 기반 위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모든 것을 무의미나 불가지로 돌리는 것은 단순히 논쟁의 전략으로는 유용할지 몰라도, 인생의 지침으로는 그리 유용하지가 않다. 인간은 결국 뭔가 의미있는 것을 말해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결국 남은 것은 타협 밖에 없는데, 이는 논쟁이라기보다는 일정 부분에 대한 회피로 가능한 것이다. 논리적으로야 만족스러울 수 없겠지만, 그래도 마음은 편하다. 일단 뭔가를 매듭짓긴 했기 때문이다. 비록 언젠가는 다시 끌러질, 어설픈 매듭에 불과할지라도 말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가끔은 하기 싫어도 그래야 하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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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바람구두 > 싸나이들과 범생이들의 대결에선 모두가 패자다!
학교와 계급재생산 - 반학교문화, 일상, 저항
폴 윌리스 지음, 김찬호 외 옮김 / 이매진 / 2004년 11월
평점 :
절판


폴 윌리스는 교육학 전공자들에게는 꽤 잘 알려진 학자이고, 국내에도 몇 차례에 걸쳐 청소년 문제나 교육 문제를 다룬 국제 심포지엄에 다녀간 적이 있다. 예전에 모 신문에서 인터뷰도 진행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 책을 교재로 세미나를 진행해본 경험이 있는 분들도 꽤 될 거라고 생각한다. 본래 원저는 "Learning to Labour"로 우리 말로 번역해보자면 "노동자로 학습하기" 또는 "노동계급으로 교육하기" 정도가 될 듯 하다. 원저명도 그렇지만 그것을 좀더 쉽게 풀어쓴 국내판 번역명이 책의 내용을 좀더 정확하게 일러주고 있기는 한데 다소 미흡한 부분도 있다.

책의 내용은 소개에도 잘 드러나고 있는 것처럼 영국의 노동계급이 주로 다니는 해머타운의 공립학교 문제아 남자 아이 12명을 질적연구방법을 이용해 장기간에 걸쳐 인터뷰하고 관찰해본 결과를 논문으로 정리한 것이다. 국내에도 이런 연구방법과 주제를 응용해 진행된 연구가 상당수 있다. 예를 들어 김고연주의 "길을 묻는 아이들 - 원조교제와 청소녀(책세상문고 우리시대 092)" 같은 연구 역시 심층면접이란 방식을 이용해 진행된 것이다. 폴 윌리스의 "학교와 계급재생산"은 연구방식이란 점에 주목해서 볼 수도 있고, 말 그대로 '학교'라는 장소에서 어떻게 '계급재생산'이 일어나는지, 이른바 문제아들은 왜 문제아가 되는지를 미시적이면서 동시에 사회학적인 문제의식을 가지고 심층적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점에서 학교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이해하고자 하는 이에게는 매우 중요하고, 재미있는 책이다.

윌리스가 다루고 있는 연구 현장이 1970년대 중후반의 영국사회란 점에서 이것을 그대로 한국사회에 적용시키는 것에는 문제가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연구가 보여주는 통찰이 한국사회의 계급재생산 구조와 판이하게 다르다고 할 수는 없다. 더군다나 최근 한국사회에서 빚어지고 있는 갈등의 중요한 부분들이 계급고착화 현상, 다시 말해 교육을 통한 계급상승의 길이 닫히고 있다는 점에서 초래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해보면 말이다. "학교와 계급재생산"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지는데 '제1부 문화기술지'에서는 문화기술지(ethnography)라는 낯선 연구방식이 무엇인지, 자신이 어떻게 연구했는지를 실제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제2부에서는 이에 관한 분석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에게는 교육선진국처럼 받아들여지는 영국의 교육체계가 공립과 사립으로 이원화되어 있으며, 영국사회가 오랜 세월 굳어진 계급사회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평준화 교육의 폐해를 지적하면서 최근까지도 치열한 논쟁들이 전개되고 있는데, 그 핵심은 내 돈 가지고, 내 자식을 내가 원하는 대로 특수하고, 특별한, 좀더 수준높은 교육서비스를 받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만약 이런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그 아이를 한국이 아닌 교육선진국에 보내 교육받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당연히 영국에서는 그렇게 하고 있다. 피터 위어 감독의 영화 "죽은 시인들의 사회"에 등장하는 것과 같이 기숙사 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비슷한 수준의 사회적 지위와 부를 누리는 일부 계급의 자녀들이 입학하는 사립학교가 있고, 노동계급의 자녀들이 지역에서 통학하며 다니는 공립학교가 있다.

영국 사회에서 계급격차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완고해서 옥스포드나 케임브리지 같은 대학에 노동계급 출신이 진학하는 것이 제도적으로 막혀있지는 않지만 해마다 상류계급의 대학문화에 적응하지 못한 노동계급 출신 학생이 자살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미국의 대학문화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진 않아서 미국 대학 중에서도 일년 학비가 3만 달러에 달하는 귀족학교로 명성이 높은 예일대는 높은 학비 못지 않게 학교내에 존재하는 비밀엘리트 집단인 "Skull and Bones"로 유명하다. 지난 미국 대선에서 맞붙은 부시나 케리 모두 이 클럽 출신이다.) 그런가 하면 영국의 노동계급의 자부심 또한 매우 강해서 그들만의 독특한 노동계급 문화를 형성하고 있다.

어쨌든 폴 윌리스는 노동계급의 자녀들이 다니는 학교 현장의 문제아들, 이른바 "싸나이들"이란 작은 그룹의 악동들을 집중적으로 인터뷰하고 관찰하여 계급재생산 구조를 분석한다. 어째서 이들 어린 "싸나이들"은 기존의 권위에 대해, 특히 교사에게 반항하고, 교사의 훈육을 따르는 순응적인 아이들을 못 살게 굴고, 거부하는 것일까? 왜 "싸나이들"은 여성을 비하하고, 어머니를 제외한 모든 여성을 성적인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일가? 왜 "싸나이들"은 인종차별주의를 드러내며 다른 인종의 아이들을 혐오하는 태도를 보일까? 이들이 주로 기존의 권위(교사)에 도전하는 방식은 한국의 아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 주로 개기고, 거짓말하고, 까불고, 익살을 떨며 그것을 즐긴다. 끼리 문화를 만들어 범생이들을 깔보고 괴롭히며, 그들을 폄하한다.
 
윌리스의 분석을 거칠게 인용해보자면 이것이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문화가 지배하는 노동현장의 분위기가 그대로 이들의 문화로 전유된 탓이라는 것이다. 가끔 미디어는 놀라운 모범생 신화를 만들어 내고, 널리 유포한다. 부모세대의 낮은 생활 수준에도 불구하고, 서울대에 입학한 입지전적인 청소년을 등장시켜서 그렇지 않은 많은 청소년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거봐! 공부하니까, 되잖아. 넌 왜 이렇게 못하는 거야. 가난해서 공부하기 어렵다는 건 핑계일 뿐이야."라고... 통계와 과학적 입증을 즐기는 기자들도 이때만큼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 지방보다는 서울, 서울에서도 강남 출신의 부유한 부모를 둔 자녀들의 서울 명문대 입학 비율이 높으며, 대한민국 사회의 계급재생산 구조가 완성단계에 이르러 이들을 통해 부의 세습과 계급 세습이 고착화되어 가는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는 사실은 은폐되는 대신 평준화 교육으로 인해 학생들이 지닌 다양한 자질이나 개성이 평준화되는 문제로 치부된다. 한국사회에서 이토록 맹렬한 과외열풍, 논술열풍이 부는 이유는 계급상승의 막차라도 올라타고 싶은 부모 세대의 욕구가 상승기류를 타고 활활 타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중산층 부모의 맹렬한 욕구를 바라보면서 더 높은 상위계급에 속한 부모들은 이들의 다급한 추적권에서 벗어나기 위해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할 충분한 용의가 있다. 그런데 교육정책이 발목을 잡고 있다.

그들만의 끼리문화를 만들어 낸 "싸나이들"은 학교와 교사의 훈육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미래가 궤도를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간파한다. "싸나이들"은 산타클로즈를 믿지 않으며 교육이 신분상승을 이루어줄 수 없다는 것을 깨우치고 있을 만큼 영악하다. 그들은 세상의 이면을 속속들이 모두 깨우쳤다고 거만하게 웃으며 학교에 있는 동안 자신들의 즐거움과 약한 사냥감을 찾아 즐긴다. 이들이 여성에 대해 비하하는 자세를 보이는 것은 이들이 앞으로 접하게 될 현장이 육체의 강인함을 요구하기 때문에, 이에 뒤처지는 상대적으로 약한 여성(실제 사회에서 여성 노동이 취급받는 현실을 보라)에 대해 우월감을 만끽한다. 이주노동자들의 값싼 노동력은 이들의 미래 일자리를 빼앗는 존재들이다. 만약 학교가 학생들에게 미래의 희망을 이루어 줄 수 없다는 사실이 간파되었을 때, 교사는 무엇으로 학생들을 통제할 수 있을까?

조주은의 "현대가족 이야기(퍼슨웹)"는 대기업 남성노동자 중심의 독특한 사회를 이루고 있는 현대공장의 가족 이야기를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분석하고 있다. 현대가족 사회의 독특한 문화는 영국 노동계급의 가족문화와 일견 흡사한 측면을 보여주는데, 남성의 사회노동을 여성의 가사노동보다 우월한 것으로 간주한다는 점이나, 여성의 사회활동을 가볍게 바라보는 시각 등이 그렇다. 이와 같은 남성중심 노동사회의 신입구성원으로 편성될 것을 일찌감치 간파한 "싸나이들"은 미리부터 그와 같은 과정들을 학습하고, 그들의 문화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폴 윌리스는 이와 같은 "싸나이들"의 간파과정이 사실은 국가와 사회구조로부터 받는 이중의 교란이라고 역설한다.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 노동자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습득하고, 타협하는 과정이 재생산된다는 것이다. 윌리스의 통찰을 한국의 "싸나이들"에 빗대어 보면 한국의 싸나이들은 부모문화(한국사회에서는 남성중심의 지배문화)와 갈등하고 순응하면서 냉소적인 현실주의를 내면화한다.

한편으로는 세상의 부조리함을 탓하면서도 다른 한 편으론 힘에 대한 갈망과 순응 속에서 '현실이 그러하니 어쩔 수 없지 않느냐'는 패배주의로 나타난다. 이것이 이라크 파병을 묵인하고, 비정규직 노동을 어쩔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이게 한다. 스스로도 사회적 약자이면서 자신이 그것을 받아들이고 적응했으므로 자신보다 더 약자에게 냉혹한 현실을 받아들이도록 강요하고, 때로 그 자신이 강자의 즐거움을 맛보고자 하는 것이다. 교육에 적응하는 것도, 교육에 저항하는 것도 결국 체제를 강화하는 길이라고 했을 때, 디오게네스처럼 아예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며 살아가지 않는 한 그 앞에 선 우리들의 입장은 난감해질 수밖에 없다. 폴 윌리스도 그런 우리들의 입장을 간파했는지 다음과 같이 의미심장한 말로 마지막을 맺고 있다.

"Whistle down the wind or whistle in the dark"

* 폴 윌리스는 이후 해머타운 학교의 "싸나이들"과 범생이들의 삶의 행로를 지속적으로 살핀 모양이다. "싸나이들"이 평생동안 반항으로 일관할 수는 없었을 텐데, 그 가운데 한 명은 자신에게 맞는 직장을 찾아 이후 그 사회에 순응하게 되었고, 범생이 가운데 한 명은 사회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반항아가 되었다고 전한다. 사실 이와 같은 계급재생산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아내는 일은 결코 쉽지 않지만 어쩌면 그 해답은 의외로 쉬운 곳에서 찾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제2차세계대전 이후 영국사회가 노동계급 젊은이들에게 베풀었던 대학교육의 혜택, 혹은 성인 교육이 어떤 성과를 가져왔는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시기적으로 이 시대를 집중적으로 연구했던 영국 문화연구는 그 자체로 좋은 본보기이다. 영국 문화연구의 주요 연구자들이 노동계급 출신으로 전후 영국에서 행해진 성인교육의 혜택을 받은 이들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아직 다 읽지 못했지만 얼 쇼리스의 "희망의 인문학(이매진)"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빈곤계층에게 가장 필요한 교육은 인문학이라는 주장을 담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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