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주석의 한국의 美 특강
- 오주석 지음 / 솔 출판사 / ★★★★★ 

한국 사회가 "민족"이라는 단어에 반응하는 방식은 상당히 모순적이다. 외형적으로 우리에게 "민족"은 불가침의 성역이다. 특히 역사 문제에 있어 민족의식은 가히 맹목적이라 할 만한데, 뿌리 깊은 반일 감정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한단고기] 류의 허황된 이야기에 열광하는 사람들조차 많은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실제" 우리의 민족 문화에 대한 관심은 말 그대로 거의 無관심에 가깝다. 그나마 우리가 우리 역사에서 자랑스러워하는 것들은 대개 "세계 최초", "세계 최고"라는 수식어가 붙은 것들이다. 그 외의 것들은? 모른다. 다른 문화에 비해 비교우위를 가지지 않으면 아예 관심을 가질 가치조차 없다는 듯이.

한민족에 관한 신화가 주장하는 것처럼 단군으로부터 시작해 내려오는 단일 핏줄이라는 혈통주의적 관점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나는 "민족"을 한반도라는 공간적 틀을 중심으로 수천년에 걸쳐 이어진 문화적 공동체라고 이해하고 있다. 수백 세대에 걸쳐 삶이 이어지면서 거기서 사회가 형성되고 정치체(政治體)가 만들어지고 예술이 꽃피니, 그것이 우리의 민족 문화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우리의 문화는 (다른 어느 문화화 마찬가지로) 오랜 세월 이 땅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축적해 온 세계관의 산물이다. 각 문화가 저마다의 역사와 세계관을 갖기 마련이거늘, 이런 문화를 서로 비교하여 우열을 가린다는건 얼마나 우매한 짓인가.

예컨데, 우리가 흔히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으로 자랑하는 [직지]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직지]는 분명 서구의 구텐베르크 활자본보다 "오래되었지만", 사실 우리 문화에 별 영향을 끼치지 못한 일회적 산물일 뿐이다. [직지] 이후에도 우리 문화에서는 대부분 목판인쇄가 사용된 반면, 오히려 구텐베르크 활자본은 서적(특히 성서)을 대량 생산하는 길을 열어 근대 서구 문화의 기초가 되엇다. 이렇듯 문화사적 의의가 전혀 다른 이 두 유물을 비교하며 단지 시기적으로 더 앞섰다는 이유만으로 [직지]를 우리의 대표적인 문화 유산으로 자랑한다는건, 그만큼 우리가 우리 문화를 스스로의 시각에서 바라보지 못하고 외부와의 비교 우위라는 시각에서만 바라본다는 증거가 된다.

사실 이러한 민족 문화 인식은 민족과 국가를 등치시켜 국민 동원의 기제로 활용했던 개발/군사 독재 시대의 잔재이다. 모든 학생들에게 암송하게 했던 국민교육헌장의 첫 구절이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으로 시작했듯이, 당시 독재 정권이 근대화를 지상 과제로 설정하며 국민들을 호명하는 방식은 "민족"이라는 이름을 통해서였다. 전국의 사찰과 옛 건물들이 복원이라는 미명 하에 획일적인 양식으로 틀지워지고, '한민족의 우수성'을 알릴 수 잇는 문화 유산들을 선별하여 "세계 최초/최고" 등의 수식어를 붙이기 시작한게 바로 이 시기에 이루어진 일이다. 하지만 우리 문화를 우리 문화 자체의 맥락에서 그 생명력을 찾기보단, 밖에 내보여도 부끄러울 것이 없다는 식의 외형적 자긍심을 강조한 문화 정책은 오히려 많은 우리 예술품들의 참 가치를 사장시키는 결과를 가져왔을 뿐이다. 그렇게 껍데기만 남은 문화에 누가 진심으로 애정을 가질 수 있을까.

이런 흐름이 그나마 바뀌기 시작한건 민주화 이후, 아마도 90년대 유홍준 선생님의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 이후가 아니었을까 싶다.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 서문에 나왔던 "인간은 아는 만큼 느낄 뿐이며, 느낀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우리 문화를 외형적 결과물로만 보는게 아니라 그 근본을 알고 이해하려 노력할 때 비로서 그 참 가치가 드러난다는 인식이 형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 후 여러 저자들이 우리 문화에 대한 쉬우면서도 깊이 있는 책들을 내놓으면서, 우리 문화에 대한 일반의 이해를 높이려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최근 관심 있게 보고 있는 웹툰 [도자기] 같은 만화도 그 중 하나.

고 오주석 선생님도 우리 민족 문화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다방면으로 힘써오신 분이다. 이 책은 오주석 선생님의 강연을 책으로 옮겨놓은 것인데, 읽고 있자면 청중의 관심을 이끌어내면서 이야기를 감칠 맛나게 끌어나가는 능력이 일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간혹 언뜻 내비치는 과도한 민족 의식이 약간 불편하긴 하지만, 그런 민족 의식이 맹목적인 칭송이 아닌 깊이 잇는 이해에 뒷받침되고 있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무엇보다도, 우리 옛 그림을 이렇게 즐거운 마음으로 살펴본건 처음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든 생각인데, 아무래도 우리 전통 문화(특히 조선 시대)의 근저에 깔린 성리학적 세계관은 본질적으로 형이상학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때문에 그 세계관을 반영한 작품들 역시 그 지향점에 얼마만큼의 깊이로 다가서냐의 차이가 있을 뿐, 하나의 커다란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서구의 예술이 시대에 따라 끊임없이 새로운 철학과 사조들이 충돌해가며 변증법적으로 발전해 온 것과는 대조적이다.

여기에서 오늘날의 문화가 과거의 문화와 섞이는 방식의 차이가 발생한다. 형이상학적 세계관은 외부의 충격으로 인해 세계관이 급격히 변화할 때 단절이 발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일제시대를 거쳐 미국의 절대적 영향 하에서 비주체적 근대화를 이룬 우리 역사에서 이 단절은 치명적이다. 끊임없이 변화하며 발전한 서구의 예술이 그 연속성을 유지하며 현대 예술 속에 녹아 있는 반면, 우리의 문화는 그 본래의 뜻을 이해한다 하더라도 단절의 간극이 너무 커서 서구화된 오늘날의 문화와 쉽게 조화시키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간극을 뛰어넘는 것, 그것이 앞으로 우리가 고민해야 할 부분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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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의 모든 기록
-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 조구호 옮김 / 간디서원 / ★★★★ 

1973년 9월 11일, 칠레의 대통령궁인 모네다 궁 위로 칠레 공군의 폭격기가 날아들었다. 대통령궁 주변은 이미 탱크로 포위되어 있었다. 폭격기는 자국의 대통령궁을 향해 폭탄을 투하했고, 불길과 연기가 솟아오르는 건물 안으로 탱크의 엄호 사격을 받은 보병들이 진입했다. 산발적인 저항이 있었지만, 막강한 화력을 지닌 군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대통령궁을 장악했다. 그날 오후, 군사평의회는 짤막한 성명을 통해 칠레의 대통령 살바도르 아옌데가 교전 중 자살했다고 발표한다. 하지만 대통령의 처참한 주검을 목격했다는 증언들은 그가 교전 중 살해되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쿠데타 이후 칠레는 독재자 피노체트의 치하에서 17년간의 길고 긴 함흑의 시대를 거치게 된다.

미겔 리틴. 살바도르 아옌데에 의해 국영 '칠레 영화'의 대표로 선임된 그는 쿠데타 직후 멕시코로 망명한다. 시간이 흘러, 피노체트 정권은 일부 망명자들에게는 칠레로 돌아올 것을 허용했으나 미겔 리틴의 이름은 영원히 입국을 허용치 않을 망명자 목록에 올라있었다. 칠레를 떠난지 12년만인 1985년, 미겔 리틴은 우루과이 출신의 사업가로 변장하고 칠레로 잠입한다. 12년 만에 돌아온 고국에서 그는 6주에 걸쳐 여러 촬영 팀과 국내 비밀조직들의 힘을 빌어, 칠레의 현실을 카메라에 담는데 성공한다. 이 필름은 4시간짜리 TV 용 영화와 2시간짜리 극장용 영화로 만들어지는데, [칠레의 모든 기록]은 후자, 즉 2시간짜리 극장용 영화의 제목이기도 하다.

이 책 [칠레의 모든 기록]은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미겔 리틴과의 인터뷰를 통해, 미겔 리틴이 칠레에 잠입하여 영화를 찍고 탈출하기까지의 과정을 기록한 것이다. 때문에, 이 책의 저자를 가르시아 마르케스라고 하는 것은 다소 어폐가 있어 보인다. 마르케스는 그의 수려한 문장으로 미겔 리틴의 여정을 글로 잘 담아냈지만, 궁극적으로 이 책은 마르케스의 이야기가 아닌 미겔 리틴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아니, 미겔 리틴의 "모험담"이라기 보다는, 그가 잃어버린, 칠레인들이 잃어버린 새로운 사회의 꿈과 열정, 그리고 그들의 영원한 대통령 살바도르 아옌데에 대한 기록이라고 보아야 한다.

목숨을 걸고 영화를 찍어야했던 미겔 리틴에게는 조금 미안하지만, 책은 마치 한 권의 첩보소설을 읽는 듯 스릴이 넘친다. 독재 정권의 코 밑에서 그들을 조롱하듯 영화를 찍는 과정은 묘한 카타르시스마저 느끼게 한다. 하지만 이건 맘 편하게 관조하는 배부른 독자의 감상일 뿐, 미겔 리틴의 독백을 지배하는건 슬픔과 분노의 정서다. 겉보기에는 번지르해진 산티아고의 이면에서 극심한 빈부격차에 허덕이는 민중들과 사방에서 감시의 눈초리를 번득이는 비밀경찰들을 발견하기는 어렵지 않았기 때문이다. 12년전 군부 쿠데타가 산산조각낸 조국의 현실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었다.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피노체트는 저항 세력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을 자행했다. 피노체트 집권 17년 동안 약 3200여명이 정권에 의해 피살되고 수만명이 고문을 당했다. 이 공포 정치를 통해 칠레인들의 정치적 자유가 철저히 유린당했음은 말할 것도 없다. 또한 피노체트는 사회주의 정권을 쿠데타로 전복했음을 강조라도 하듯 극단적인 자유주의적 경제 정책들을 강행했다. 국영 기업, 광산 등을 민영화하고, 외국 자본의 무제한적인 투자를 허용하며, 예산 절감이란 명목 하게 사회보장제도들을 해체했다. 그 결과 칠레 사회의 빈부격차는 심화되었고 노동 인구의 상당수를 차지하던 농민들과 광산 노동자들의 삶은 극도로 피폐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견제받지 않는 권력이 항상 그러하듯, 피노체트 자신을 비롯한 지배층은 부패할대로 부패하여 각종 부정한 방법들로 어마어마한 재산을 그러모았음은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슬프게도, 피노체트 치하의 칠레는 우리에게 그리 낯설지 않다. 80년 광주에서의 학살, 삼청교육대, 고문과 의문사 등은 우리 역사에 씻을 수 없는 오점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두 나라 모두에서 학살의 주범은 처벌받지 않았다. 피노체트는 스스로를 면책 특권을 지닌 종신 상원의원으로 만듦으로써 역사의 심판을 피해갔고, 우리는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궤변으로 학살자에 대한 심판을 포기했다. 양쪽 모두 학살자에 대한 면죄가 "법"의 이름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정권이 바뀌고 세상이 변한 듯 해고, 권력은 여전히 그들 기득권 세력이 틀어쥐고 있다는걸 보여주고 있으니까.

또다시 광주의 그날이 돌아왔다. 27년째 같은 날이 돌아오지만, 여전히 억울한 이들의 눈물은 멈추지 않고 있다. 학살자들을 단죄하는 것은 결코 과거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오늘을 고통 속에서 사는 피해자들에 대한 사죄이며, 다시는 그 누구도 총칼로 정의를 유린할 수 없도록하는 미래의 약속이다. 피노체트는 결국 역사의 단죄를 받지 않고 죽었지만, 우리는 또 다시 칠레의 전례를 따르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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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기행
- 김승옥 지음 / 문학동네 / ★★★★★

한국 문학에 대체적으로 무관심했던(다시 말해, 무지했던) 나에게 김승옥이라는 이름은 낯설었다. 우연히 [환상수첩]이라는 책을 알게 되었고, 그가 "김승옥 전집"이 나올 정도로 왕성한 활동을 했던 작가였고 한국 근현대 문학사에 중요한 분기점을 만든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건 그 이후의 일이다. 마치 어느 차에 관심을 갖게 되면 길을 가다 "이 차가 이렇게 많았던가" 하며 놀라게 되는 것처럼, 김승옥을 알게 된 후로는 여기저기 글에서 그의 이름을 접하게 되어 새삼 놀라곤 했다. 그래서 결국, "김승옥 전집"의 첫 권인 [무진기행]을 집어들었다.

[무진기행]은 김승옥의 단편 모음이다. 그의 등단 작품인 '생명연습(1962)'을 시작으로 '우리들의 낮은 울타리(1979)'에 이르는, 1981년 급작스레 종교에 귀의하여 절필을 선언하기까지 그의 짧지 않은 이력의 주요 작품들이 고스란히 이 한 권에 담겨 있다. 때문에, 아마 전집의 다른 권에 실린 중편, 장편들도 중요하겠지만, 이 한권으로도 김승옥의 세계를 느끼기엔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초기의 몇몇 작품을 제외하면, <무진기행>에 실린 단편들은 놀라울 정도로 현대적이다. "현대적"이라 함은 두 가지 의미에서인데, 첫째는 김승옥이 구사하는 언어의 측면에서이고, 둘째는 그가 짚어내는 인간 군상의 모습이 오늘날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이다. 그가 등단한 1962년은 일제로부터 독립한지 채 20년도 되지 않은 시점인데(지금으로부터는 40년도 더 전인데), 내가 읽었던 일제 시대 문학들에 비해 김승옥의 언어는 훨씬 오늘날의 한글 문체에 근접해있다. 이는 해방과 전쟁을 겪으면서도 한국 문학이 빠른 시일 내에 일본어 잔재를 털어내고 현대적 국어 문법을 정립했다는걸 뜻하는데, 아마 이 시기 문인들과 국문학자들의 피나는 노력 덕분이 아닐까 싶다. 책을 읽고 있자면, 이어령씨가 김승옥을 무척 아꼈다는 것도 이해가 된다.

하지만 내용적인 측면에서 김승옥의 현대성(?)은 그닥 긍정적으로만 받아들여지지는 않는다. 그의 소설에서 묻어나는 냉소와 회한의 정서, 그리고 성애(性愛)에의 집착 등은 오늘날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도 충분히 공감을 불러일으킬만 하다. 이는 김승옥이 그의 시대에 이미 사회 속에서 파편화된 개인의 실존의 문제를 간파했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김승옥이 시대를 앞서갔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지만, 동시에 그가 자신의 시대와 정면으로 대면하길 거부했다는 뜻으로 읽힐 수도 있다. 그의 소설에서는 시대를 읽어내기가 어렵다. 그가 그려내는 삶은 대개 회색 공간 속을 살아가는 회색 인간들 뿐이다. 왜일까.

순전히 추론일 뿐이지만, 나는 그것이 긴 정치적 암흑기가 한국 문학에 드리운 질곡의 흔적이라고 생각한다. 문학은 시대정신의 산물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모든 예술은 시대정신의 산물이다. 진정한 예술가는 온 몸으로 시대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자신의 작품으로 배설한다. 하지만 외부의 권력이 그 시대정신의 형상화를 가로막을 때, 예술가들에게 주어진 선택의 폭은 넓지 않다. 고난의 길을 걷던가, 도피하던가. 김지하가 전자의 길을 택했다면, 김승옥은 후자의 길을 택했을 것이다. 숲을 잊기 위해 나무에 몰입하는 것처럼, 개인의 삶에 천착하는 것 말이다. 성(性)의 문제로 도피하는 것 말이다. 하지만 그 도피는 영원할 수 없었다. 80년 광주의 충격 앞에 그는 결국 펜을 꺾었고, 어느날 문득 하나님의 품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어쨌거나, 이 책 [무진기행]에서는 저릿저릿한 글들을 여럿 만날 수 있다. 오늘날의 쿨하고 트렌디한 소설들에서는 감히 발견하기 힘든 무게감이 실린다. [누이를 이해하기 위해여], [무진기행], [들놀이](나는 이 소설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염소는 힘이 세다]. [서울의 달빛 0章] 등은 특히 기억에 남는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가장 마음에 안 드는 글은 권두에 실린 "작가의 말"이다. 안타깝지만, 그의 절필과 함께 [무진기행]을 쓴 작가 김승옥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ps. 예전 리뷰입니다. 마이 리뷰로 있던 내용을 페이퍼로 옮기는 과정이니, 예전에 본 글이 계속 올라와도 양해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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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한 해 카메라를 좀 멀리 했다가, 올해 들어 다시 시작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막상 다시 시작하려니 환경이 많이 변했다는거. 집 근처의 현상 전문점이 문을 닫았다. 이제 슬라이드를 맡기려면 차로 20분을 달려 나가 있는 또 다른 전문점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 안그래도 비싼 필름값과 스캔하는데 드는 시간+노력 때문에 필름 카메라를 계속 쓰기가 힘들었는데, 이건 나름 결정타였다(고 스스로를 설득시켰다 ㅋ). 그래서 나도, DSLR 을 샀다. 

어느 회사의 어느 제품을 살까는 별다른 고민 없이 정해졌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미놀타 렌즈군을 쓰려면 소니의 알파 제품군 외에는 대안이 없었다. 그 중에서도 렌즈 성능을 100% 발휘할 수 있는 풀 프레임 카메라는 단 2 종. 그나마 조금 덜 비싼 a-850 으로 낙점되었다. 기왕 결정한거 1초라도 빨리 쓰자며 바로 주문을 넣었고, 지난주 화요일, 드디어 새 카메라는 내 손에 들어왔다. 카메라는 요렇게 생겨 주셨다.

사진 입문 초기의 3~4 개월을 제외하면 디카는 처음 써보는지라, 일주일간 이것 저것 가지고 놀면서 기능 확인하기도 바빴다. 다행히 기존에 가지고 있던 플래시나 리모트 셔터는 다 호환이 되는걸 확인했고, "오~ 이런 기능도!" 하며 놀라게 되는 점도 많았다. 아직까지는 모든 면에서 만족스럽다. 단점이라면 아령 대용으로 쓸만한 무게와 휑해진 통장 잔고, 그리고 새롭게 내리는 지름신들.(1년 사이인데, 새롭고 좋은 렌즈들이 많이 나왔더라. 하나같이 비싸긴 하지만 ㅠ_ㅠ) 

그 중에서 가장 놀라게 되는건 화소수다. 무려 24.6M 픽셀. 우리말로 이천 오백만 화소다. 원본 사진 크기만 6048 x 4032. 사실 사기 전에 스펙으로만 봤을 때는 실감이 잘 안 갔는데, 직접 찍어보니 상상했던 것 이상이다. 필름으로 찍어 고급 스캐너에 돌려도 이 정도 나오기 힘들텐데, 그 모든 과정을 그저 손까락 하나 까닥의 과정으로 간소화시킨 것. 세상 참 빨리 변한다. 내가 아무리 이렇게 말해도 감이 잘 안 올테니 일단 비교 사진을 함 보시길. 

그러니까, 요건 플래시 테스트 하는 겸 찍어본 사진이다. 요게 원본의 대략 8% 크기로 줄인 사진이다 -_-; 원본을 그대로 올리기는 힘들고, 원본 중 곰돌이의 목 칼라 부분만 잘라낸 사진이 아래 부분이다. 

그러니까.. 위의 두 사진이 서로 다른 사진이 아니라 같은 사진이라는 것;; 영화 [블레이드 러너]를 보면 데커드가 사진을 반복해서 확대한 후 그 안에서 증거를 찾아내는 장면이 나오는데, 비슷한게 가능할 것도 같다. 아무 생각 없이 찍은 사진 구석에 조그맣게 범인 얼굴이 찍히고, 그걸 확대해서 범인을 잡아내게 되는 -_-;; 

그래서 제목처럼,  화소가 깡패다. 누가 어느 카메라가 좋냐고 물어보면 이렇게 답해도 좋겠다. "화소수 큰게 좋은거에요".

아, 물론 이 페이퍼를 쓴 목적의 98.164% 정도는 자랑질이다. :p 남은 1.836%는 올해 사진 좀 찍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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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11-01-25 1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오, 껌 좀 씹어도 될 화소수인 걸요! 올해 찍을 사진들 기대하겠습니다.^^

다락방 2011-01-25 12:13   좋아요 0 | URL
껌 좀 씹어도 될 화소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turnleft 2011-01-25 13:53   좋아요 0 | URL
껌만 씹은게 아닐 것 같은데요. 깡패라니까요!! ㅋㅋ

다락방 2011-01-25 1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아침에 안그래도 턴님 서재에 가서 인사 좀 해야지 싶었는데 맞춤하게 글 올려주셨네요. 히히 :)

turnleft 2011-01-25 13:53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안녕? ^^

Kitty 2011-01-25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걸루 런던 브리지 찍으면 다리 지나가는 사람 얼굴도 보일까요?!!! >_<

turnleft 2011-01-25 13:53   좋아요 0 | URL
비행기표 보내주시면 제가 런던 가서 확인해보구 올께요! +_+

치니 2011-01-25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 한번 근사하지 말입니다. :)

turnleft 2011-01-25 13:54   좋아요 0 | URL
보통 블로그들이 제목이 깡패지 말입니다.. ㅋ

레와 2011-01-25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대하겠습니다~ ^^



turnleft 2011-01-25 13:54   좋아요 0 | URL
네~ (부럽죠? ㅋㅋ)

무스탕 2011-01-25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턴님의 1.836%가 왜 이렇게 러블리한 것인지~~~~ ^^

turnleft 2011-01-25 13:55   좋아요 0 | URL
음.. 저한테는 98%가 더 러블리합니다 ㅋㅋ

hnine 2011-01-25 15: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곰돌이 티셔츠의 옷판과 칼라 부분이 다른 직조로 짜였다는 것까지 다 보이는군요.
사진 몇장 찍으면 메모리를 엄청 차지하겠는걸요?

turnleft 2011-01-26 03:37   좋아요 0 | URL
jpg 로 저장해도 한 장에 15M 정도 나오더라구요. 예전에 256M 메모리 가지고는 열몇장 찍으면 끝나는;;

조선인 2011-01-26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뜨뜨뜨아.... 똑딱이를 쓰는 저로선... 놀라운 경지입니다.

turnleft 2011-01-26 10:07   좋아요 0 | URL
요즘엔 똑딱이도 많이 좋아졌던데요? 이 참에 화소수 높은 놈으로 새로 하나 장만을 하심이.. -_-^

무해한모리군 2011-01-31 0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귀여우세요 ㅎㅎㅎ
장난감 자랑하는 사내아이 같으세요 오호호호

turnleft 2011-01-31 15:33   좋아요 0 | URL
철이 없다고도 하죠.. ㅋㅋ

2011-02-01 04: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2-01 09: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새해에는 뭐 좀 거창한거 해보겠다고 맘 먹었다가, 정말로 일이 거창해지는 바람에 눈물 나게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한두가지만 놓아버리면 금방 여유를 찾겠지만, 작심 삼주도 아니고 벌써 그럴 수는 없는 노릇. 어쨌든 새 일에 정신을 쏟다 보니 오히려 그동안 해 오던 일들에 잠깐씩 정신을 놓는 경우들이 발생하곤 한다. 생각났을 때 이 달의 관심서적 정리를 얼른 해 본다.  

 

Bird Cloud
- 회고록 / Annie Proulx / Scribner 

[브록백 마운틴], [쉬핑 뉴스] 의 저자 애니 프루의 신간이 나왔다. 이번은 소설은 아니고 회고록인데, 그녀가 태어나고 자라난 동부를 떠나 와이오밍으로 이주해 정착하기 까지의 기록들이라고 한다. 와이오밍을 배경으로 감동적인 소설들을 써내고 있는 그녀에게 와이오밍이라는 곳이 어떤 첫 인상과 함께 다가왔는지가 그녀의 소설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꼭 필요한 정보가 아닐까 싶은데,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애니 프루란 작가를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는 단초가 될 것으로 보인다. 


My Reading Life
- 에세이 / Pat Conroy / Nan A. Talese 

이번엔 [South of Broad]의 작가 Pat Conroy 의 신간이다. 역시 소설은 아니고 일종의 에세이인데, (제목이 알려주고 있듯) 저자로서의 그의 인생에 영향을 미친 책들과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풀어 놓는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쓴다는 것과 읽는다는 것은 불가분의 관계다. 어떤 이들을 작가가 뭘 읽는지 왜 시시콜콜 들어야 하냐며 투덜대기도 하지만, 사실 한 작가가 읽는 책들이야말로 그의 작품들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빠진 고리(missing link) 역할을 해주지 않을까 싶다. 


The Year of the Hare
- 소설 / Arto Paasilinna / Penguin Paperbacks 

원래는 75년도에 나온 핀란드 작가의 작품인데, 아마도 토끼해에 맞춰 새로 번역되어서 나온 듯 싶다. 미국 애들도 은근히 띠 이야기 같은거 좋아한다. 주인공은 어느날 친구와 차를 타고 가다가 토끼 한 마리를 치게 된다. 다친 토끼를 치료해주면서 토끼와 가까워진 주인공은 점차 가족과 친구들로부터 멀어지면서 급기야는 문명의 삶으로부터도 멀어지기 시작하는데.. 문명과 자연에 대한 우화로 읽힌다.


Battle Hymn of the Tiger Mother
- 교육 / Amy Chua / Penguin Press 

저자 이름을 보고 좀 놀랐다. 에이미 추아. [불타는 세계] 등의 저서를 통해 외교 문제를 파고들던 그녀가 갑자기 자녀 교육에 관한 책을 내 놓았다. 미국에서 특히 초중고 교육 과정에서 동양계(한국, 중국, 인도) 아이들이 두각을 나타내는데, 저자는 그 이유를 부모(Tiger Mother 라고 한걸보니 특히 엄마 쪽에 방점을 찍는지도)의 엄청난 교육열에 있다는 논지의 주장을 자신의 경험에 얹어 풀어 나가는 듯 하다. 물론 그런 교육방식이 단기적인 성과를 넘어 장기적으로, 그리고 인격적으로 올바른 방식인가는 논쟁의 여지가 크다. 독자평이 극과 극으로 갈리는 것도 그 때문인 듯 하다. (개인적으로는 저자의 세계관을 그리 좋아하지 않아서, 책의 내용은 그리 마음에 들 것 같진 않다. 다만, 이 책에서 파생되는 논쟁은 주목할만 하다는 의미에서 챙겨 놓는다.)


OVERConnected
- 사회 / William Davidow / Delphinium 

부제는 [The Promise and Threat of the Internet]. 굉장히 시의적절한 책이다. 페이스북과 트위터로 대표되는 소설 미디어들은 인터넷을 넘어 개인의 삶들을 서로 연결해버리고 있는데, 과연 이러한 과잉 연결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는 충분히 논의된 것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개인적인 차원의 프라이버시 문제부터 시작해 더 크게는 국가간 경제 시스템의 연계에 이르기까지 인터넷으로 상호 연결된 현대 사회를 조망해 보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Unless It Moves the Human Heart
- 글쓰기 / Roger Rosenblatt / Ecco 

부제는 [The Craft and Art of Writing]. 글쓰기 관련된 책은 많은데, 이 책은 저자가 글쓰기 교실에서 사람들을 가르치면서 실제 사람들이 쓴 글을 소재로 하고 있어 훨씬 더 구체적으로 다가올 것 같다. 전문적인 작가를 키우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사람들로 하여금 이전보다 더 나은 글을 쓸 수 있도록 돕는 것을 목적으로 가르친다고 하니, 우리 같은 평범한 독자들에게 더욱 어울리는 책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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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11-01-18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The Craft and Art of Writing 표지 너무 예쁘네요..

Amy Chua의 책은 한국에선 완전 뒤늦은 책이지요 --;;

turnleft 2011-01-19 03:03   좋아요 0 | URL
오호.. 휘모리님 표지 취향이 그러하군요. 약간 old-fashioned?

재밌는건 초중고 때 날고 기던 동양 애들 중에서도 그나마 중국이나 인도 아이들은 대학 이후에도 두각을 나타내는 경우가 꽤 있는데, 한국 아이들은 그 빈도가 적어요. 대학 들어가서 한국에서 온 유학생들이랑 어울리면서 급격하게 노는 분위기로 바뀌는 경우도 많고;; 뭐랄까, 왜 공부하는지에 대한 근본적 고민 같은게 부재해서 그런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무해한모리군 2011-01-19 10:39   좋아요 0 | URL
자기가 원하는 걸 잘 모르는 사람이 되는 거 같아요.
참 착한 아이였던(?) 저를 보면 ㅎㅎㅎ

turnleft 2011-01-20 03:03   좋아요 0 | URL
저도 고등학교 때까지 생각해보면 정말 아무 생각 없이 그냥 학교-집 만 반복했던 것 같아요. 공부 외에 뭔가를 하고 싶다는 욕망 자체를 자기 검열해 버리면서.. 저도 착한 아이였던 것 같죠? ㅋㅋ

치니 2011-01-18 1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Overconnected 완전 읽고 싶네요! 번역되어 나왔으면 좋겠당.

turnleft 2011-01-19 03:04   좋아요 0 | URL
그쵸! 제가 서점에서 저 책 보자마자 '오호~~' 했다니까요.

다락방 2011-01-18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팻 콘로이의 작품은 번역되어 나오면 읽고 싶어요! 사우스 브로드를 재미있게 봤었거든요.

turnleft 2011-01-19 03:04   좋아요 0 | URL
흐흐 안그래도 저 책 보면서 다락방님이 반가워 하겠군, 이라고 생각했어요. 팻 콘로이 팬이 좀 있으면 번역되어 나오지 않을까요?

양철나무꾼 2011-01-19 0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애니프루 왕 사랑하는데...회고록이란 말이죠.
팻 콘로이에, OVERConnected도 궁금해요.^^

turnleft 2011-01-19 07:30   좋아요 0 | URL
저도 애니 프루 왕 사랑합니다. 저랑 같은 곳을 보고 계시..쿨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