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왕은 더 이상 기마 근위병들의 호위를 받지 않는다. 여왕의 안위를 책임지는건, 매끈한 방탄 리무진과 총을 가슴에 품은 경호원들. 그렇다면, 번쩍이는 투구와 붉은 망토를 걸친 당신들은 이 자리에 왜 서있는 것일까.
광화문 일대를 돌아다니다보면 수문장 교체식의 근엄한 얼굴의 장수가 어느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투구를 벗은 채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맞닥뜨린다. 가짜 수염을 달고 있지만, 실제로는 나보다 한참 어려보이는, 아직 여드름 자국도 남은 어린 청년이다. 왕이 사라진 시대, 지킬 왕이 없는 수문장 따위가 실재할 리는 없다. 그렇게 한 번 벗겨진 가면은 다시 복원되지 않는다. 그 후로 수문장 교체식을 볼 때면, 나는 근엄한 수문장 대신 또 다른 어느 어린 청년의 얼굴만이 눈에 들어올 뿐이다. 그 무뚝뚝하게 굳은 얼굴로, 친구들과 술 한 잔 할 생각을 하는지, 혹은 애인에게 사 줄 선물 생각을 하는지.
사진의 근위병들도 마찬가지일게다. 이제는 형식만 남은 보여주기 행사. 근위병이라는 본래의 의미에서 미끄러져, 그저 관광객들의 사진 속 피사체로만 남아버린 존재를 '연기하는' 당신들. 당신도 머리 속에 여왕은 간데 없고, 데이케어에 맡긴 아이 생각을 하고 있겠지. 관광객들도 당신들이 진짜 근위병이라 믿지는 않을거다. 그렇다면, 이 짜고치는 고스톱 같은 풍경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이것도, 키치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