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케넌의 미국 외교 50년 - 세계대전에서 냉전까지, 20세기 미국 외교 전략의 불편한 진실
조지 F. 케넌 지음, 유강은 옮김 / 가람기획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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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압의 도구가 갖는 의미와 가능성을 국가적으로 제대로 이해하지 않은 채 국제적인 장에서 이 도구를 계속 사용한다면 국익에 도움이 되는 것만큼이나 피해를 입게 될 거라고 봅니다. 인간을 죽이고 불구로 만드는 것, 인간의 주거지를 비롯한 여러 시설을 파괴하는 것은 아무리 다른 이유 때문에 필요하다 할지라도 그 자체로 어떤 민주적 목표에도 긍정적인 기여를 할 수 없다는 점을 인식하는 게 중요합니다.

민주주의의 융성은 인간의 마음속에서 계몽이 확대되고 다른 사람들과의 실제적인 관계에 대한 의식이 커질 때만 가능합니다. 타인의 존엄이 손상되면, 여러 인간 중 하나인 자신의 존엄도 줄어든다는 각성이 생겨야 하는 겁니다. 

전쟁의 파괴 과정 자체를 세계의 진보라는 희망과 열망과 꿈을 위한 적절한 수단으로 여겨서는 안 됩니다. 무력은 평화와 마찬가지로 추상물이 아닙니다. 무력을 목적과 방법이라는 주어진 틀의 외부에 자리한 개념으로 이해하거나 다뤄서는 안 됩니다. 


이런 문장만 보면, 어느 점잖은 반전운동가의 글이라 해도 될 것 같다. '냉전의 설계자' '봉쇄정책의 주창자'라 불리는 미국 외교관 겸 국제정치학자 조지 케넌의 강연문이다. <조지 케넌의 미국 외교 50년>(가람기획)은 수십년 전 케넌의 강연문, 정확히 말하면 1951년과 1984년의 강연에다 '포린어페어스' 기고 등을 묶은 것인데 국내에서 케넌의 책이 나온 것은 처음이라고 한다. 


국제문제 전문 번역가로 '믿고 보는' 유강은 번역이다. 역자는 후기에서 '이토록 중요하고 특히 한반도와도 관련 있는 케넌의 책이 왜 이제껏 국내에 번역되지 않았을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첫째는 케넌이 미국 국무부 장관급의 고위층이 아니었고 1950년 고등연구소로 옮겨간 뒤에는 조용히 학자의 삶을 살았다는 것. 둘째는 국무부를 떠난 뒤 케넌 스스로 제안한 '봉쇄정책'이 점점 '군사화'되는 걸 보면서 미국 외교정책에 몹시 비판적인 입장을 돌아서 현실에서의 영향력이 없어졌다는 점이다.


어찌 되었든 이 때문에 케넌은 '봉쇄정책의 주창자'라는 타이틀로만 남았을 뿐, 그가 주장한 내용을 세세히 접할 기회는 없었다는 것. 나 역시 케넌의 이름만 이 책 저 책에서 접했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케넌의 이 강연록은 정말 재미있었다. 


책의 전반부는 주로 19세기 말부터 2차 대전 때까지 미국 외교정책을 좌우한 '시각'과 개념틀을 비판적으로 분석한 내용이다. 맨 앞에 책의 내용 전반에 대한 미어샤이머의 비평이 실려 있다. 케넌의 '논리적 모순'에 대해서는 미어샤이머가 이것저것 짚었지만 딱히 중요한 지점들을 지적했다는 생각은 안 들고.


케넌은 미국 정치지도자들의 이상주의와 미국의 능력에 대한 지나친 확신(오만함), 국수적이고 맹목적인 애국주의로 흘러가기 쉬운 민주주의 자체의 맹점 등을 들며 20세기의 전쟁들이 '전면전'으로 갈 수 밖에 없었던 이유라고 주장한다. 케넌은 현실주의를 대표하는 사람이고, 책에는 '현실주의'가 뚝뚝 묻어난다. 

전투에서는 '승리'라는 게 있을 수 있는 반면, 전쟁에서는 추구하는 목표를 달성하거나 달성하지 못하는 결과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윤리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목표를 추구하고, 상대 국민 전체의 태도와 전통이나 정권의 성격을 바꾸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경우라면, 군사적인 수단만으로, 또는 단시간 안에 승리를 달성하는 게 불가능해집니다. 아마 이런 점이 우리가 느끼는 혼란의 근원일 겁니다. 

전면적 승리라는 개념이야말로 과거에 우리에게 가장 큰 손해를 끼치고 미래에도 가장 큰 손해를 야기할 위험한 망상입니다. 전면적 승리라는 개념을 포기하면, 오늘날 우리의 국경 밖에서 벌어지는 성가시고 불쾌한 많은 일들에 대해 새로운 태도가 나타날 겁니다. 유쾌하지도, 다행스럽지도 않은 인체의 물리적 현상을 대하는 의사의 태도가 이런 것이겠지요. 초연하고 냉정하며 기꺼이 판단을 유보하는 태도 말입니다. 


이상주의 대 현실주의라는 국제정치 이론간의 대립 차원이 아니고, 그냥 우리가 일반적으로 쓰는 '현실적' 혹은 '현실주의적'이라는 맥락에서도 케넌은 참 현실주의자다. 소련에 대한 전방위 봉쇄를 주장하지만 핵무기 경쟁에는 반대하고, 베트남전에 반대하고, 훗날 이라크전에 반대한 것(케넌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 뒤인 2005년에 사망했다)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핵무기 경쟁과 미국의 베트남, 이라크 침공은 현실을 완전히 무시한 것이었으니까. 
심지어 바로 이런 이유에서, 오히려 케넌은 이상주의자로 보이기까지 한다. 케넌 스스로 자신의 제언들이 (워싱턴의 정치 속에선) 받아들여지기 힘들다는 현실을 고백하고 있기도 하다. 


미국에는 언제나 외부에서 단일한 악의 중심을 찾아서 우리가 직면한 모든 문제의 책임을 돌리려는 흥미로운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니카라과나 시리아 같은 나라의 통치자들이 소박한 마르크스주의적 언사에도 불구하고 대체로 독립적인 정치 행위자일 수 있다는 사실을 좀처럼 믿지 않으려는 경향이 보입니다. 그들이 주로 스스로 판단하는 자기 이익에 따라 움직이지 않으며, 모스크바의 지령이나 이데올로기적 압력에 맹목적으로 따른다고 보는 겁니다. 다시 말해, 많은 미국인들의 눈에 악은 언제나 단수형으로 보여야 합니다. 


핵무기의 파괴성 자체, 그리고 다른 나라들도 핵무기를 개발할 것이라는 실질적인 확실성 때문만이 아니라 환경에 미치는 영향 때문에도 핵무기는 자멸적인 무기입니다. 이처럼 자멸적인 동시에 합리적인 군사적 목적에 적합하지도 않은 무기에 집착함으로써... 우리의 사고뿐만 아니라 삶까지도 극단적으로 군사화하는 결과가 생겨났으며, 이런 점이야말로 전후 시대의 두드러진 특징이 됐습니다. 
이런 군사화는 대외 정책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자체에도 심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군사화는 우리 국가경제의 심각한 왜곡으로 이어졌습니다. 우리는 매년 국민소득의 막대한 부분을 무기 생산과 수출에 지출하고 거대한 규모의 군대 시설을 유지하는 데 익숙해져야만 했습니다. 
이제 이런 습관에서 벗어나려면 극심한 금단 증상을 겪어야 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수백만 명이 군복을 입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수백만 명이 군산복합체에 생게를 의존하는 데 익숙해져 있습니다. 


책의 어느 부분은 지난 10여년을 휩쓴 '테러와의 전쟁'에서 드러난 미국의 오만과 실패를 염두에 두고 읽었다. 그런가 하면 뒤쪽의 어느 부분을 읽으면서는 자연스레 남북한 관계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전쟁(케넌은 이 또한 미국의 잘못된 전략이 만들어낸 실패의 사례로 본다)에 대해 상당량을 할애하고 있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소련을 완전히 복속시키거나 뜯어고치려 하는 미국인들의 태도에 대한 지적을 보면서 우리 안의 냉전 잔재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독일의 경험을 통해 우리가 한 나라로서 현대 전제 정치의 굴레 속에 사는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는 데 크게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는 사실을 보았다. 전체주의는 일국적인 현상이 아니다. 이것은 모든 인류가 어느 정도 걸릴 가능성이 있는 질병이다. 이런 체제 아래서 사는 것은 어떤 민족 전체가 저지른 특정한 죄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역사적인 이유 때문에 그 민족에게 닥칠 수 있는 불행이다. 

전체주의 아래서 시민과 정치 당국의 관계는 복잡할 수밖에 없다. 절대로 순조롭고 단순하지 않다. 이런 점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전체주의 국가의 국민들과 우리의 관계에서 무엇이 문제가 되는지를 이해할 수 없다. 이런 현실을 보면, 전체주의 국가의 국민들은 부역자와 순교자로 깔끔하게 나눌 수 있고 그 사이에는 아무도 없다는, 우리 마음에 드는 확신이 자리할 여지는 없다. 


손쉽고 유치한 반응에서 벗어나 소련의 비극을 어느 정도 우리 자신의 비극으로 보는 데 뜻을 모으자. 그리고 소련 국민들을 인간이 자기 자신과 공존하고 고통받는 이 행성의 자연과 공존하는 더 행복한 체제를 만들기 위한 고되고 오랜 싸움을 함께 하는 동지로 바라보자. 


나는 이것은 주로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무엇을 촉구하는가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미국의 국민 생활 자체의 정신과 목적의 문제이다. 우리가 다른 이들에게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효과를 발휘하려면, 그 메시지가 우리 자신의 모습과 일치해야 하며, 세계의 존경과 신뢰를 자아낼 만큼 충분히 인상적인 메시지여야 한다. 우리가 무엇보다도 주로 관심을 기울여야 할 일은 여전히 이런 국가적 성격의 상태를 달성하는 것이다. 


케넌은 이상주의적 현실주의자같기도 하고, 현실주의적 이상주의자같기도 하다. 그나저나, 이런 책을 지마켓에서도 판다는 건 참 재미있다. 지마켓에서 이런 책을 사 읽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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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레이디 리더십 - 실수하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라! 알파레이디 리더십 1
경향신문사 인터랙티브 팀 지음 / 들녘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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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팀 책 나왔네요. 지난 1년의 강의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갑니다. http://ttalgi21.khan.kr/3673 후기 올려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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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물고기 - 물고기에서 인간까지, 35억 년 진화의 비밀
닐 슈빈 지음, 김명남 옮김 / 김영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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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바다에서 태어난 생물은 언제 처음 뭍으로 올라왔을까. 그들은 어떻게 뭍에서 살 수 있는 다리를 갖게 되었을까.
박테리아에서 사람에 이르는 38억년간의 기나긴 진화과정은 아직 규명되지 않았다. 고생물학자들은 화석을 통해 생물의 지나온 역사를 복원한다. 복원되지 않은 채 빠뜨려진 부분을 ‘잃어버린 고리’라고 흔히 부른다. ‘물에서 뭍으로’ 동물의 이동을 보여주는 화석도 그런 ‘잃어버린 고리’들 중의 하나였다. (이 책의 저자는 '잃어버린 고리'가 아닌 '찾아낸 고리'라 불러야 한다고 말한다)
2006년 4월, 북극에서 가까운 캐나다 북부에서 발견된 3억8000만~3억7500만년 전 화석의 연구결과가 발표돼 세계가 떠들썩했다. 학계와 언론들은 "잃어버린 고리를 찾았다"며 환호했다. 나도 그 때 외신을 보고 기사를 썼던 기억이 생생하다.
거대한 물고기 모양에 지느러미가 달려 있지만 사지(四肢)와 비슷한 관절이 달려있고, 악어(파충류)나 도롱뇽(양서류)처럼 머리가 넙적한 희한한 생물이었다. 물에서 뭍으로 올라오기 시작한 시절의 동물. 물 밖으로 나가기 직전의 동물 화석과, 물 밖으로 나온 직후의 화석은 이미 발견돼 있었기 때문에 과학자들은 물과 뭍에 걸쳐져 있는 중간단계의 화석을 발견하려 애쓰고 있었다. 이 화석을 발견해 ‘틱타알릭(학명 Tiktaalik roseae)’이라는 이름을 붙여준 것은 이 책의 저자인 시카고 대학의 닐 슈빈 교수였다.
‘틱타알릭’은 이누이트 언어로 ‘얕은 물에 사는 큰 물고기’라는 뜻이라고 한다. 슈빈은 이 책에서 틱타알릭을 발견하기까지의 과정을 생생하게 그리면서 그것이 상징하는 진화의 메커니즘을 설명한다.

“인간은 스스로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다른 생물들과 가깝다. 우리 몸속에는 우리에 앞서 이 땅에 살았던 선조 동물들, 고양이나 물고기, 파리의 자취가 그대로 남아 있다. 말하자면 우리 몸속에는 물고기의 일부가 있고, 물고기 속에는 인간의 일부가 있다.”

사람은, 아니 어떤 생물도, 혼자서 지구상에 뚝 떨어지지 않았다. 모든 생물은 DNA와 골격 안에 지구의 역사를 담고 있다. 헤켈의 ‘개체발생은 계통발생을 되풀이한다(사람이 생겨나는 과정에는 어류-양서류-파충류-포유류로의 발달과정이 모두 들어가 있다)’는 말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말에는 일면의 진실이 담겨 있다. 사람도, 상어도 모두 같은 생명의 법칙에 지배되며, 몸 안에는 진화의 역사가 새겨져 있다는 것이다. 슈빈은 그 신비에 이끌려 생물학자가 되었고, 화석을 찾는 작업에 나서게 되었고, 틱타알릭을 만났다.

“칼 세이건은 별을 들여다보는 것은 과거를 들여다보는 것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별빛은 영겁의 세월 이전에 이미 우리 눈으로 오는 여행을 시작했다. 지구가 만들어지기도 전에 말이다. 나는 사람을 들여다보는 것은 별을 들여다보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제대로 볼 줄 아는 사람에게 인체는 타임캡슐이나 마찬가지이다. 캡슐을 열면, 지구 역사의 결정적 순간들에 관한 이야기, 고대 바다와 개울과 숲에서 벌어졌던 먼 옛날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온다.

“사람은 개조된 물고기이다. 물고기의 체제를 가져다가 포유류의 옷을 입힌 뒤, 미세한 조정을 가해 두 다리로 걷고, 말하고, 생각하고, 손가락을 정교하게 움직이도록 만들면 갖가지 문제점들이 잠복한 조리법이 완성된다. 물고기를 포유류로 변장시키면서 대가를 치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완벽하게 설계된 세상이라면, 즉 진화의 역사가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라면 우리가 치질에서 암까지 온갖 질병들 때문에 고통 받는 일은 없을 것이다.”

“우주 탐사 계획이 달을 보는 우리 시선을 바꾸어놓았듯, 고생물학과 유전학은 우리 자신을 보는 시선을 바꾸고 있다. 많은 것을 알아갈수록, 한때 까마득하게 멀어서 이해할 수 없는 듯 보였던 것이 어느새 우리 손아귀에 들어와 있다. 우리는 발견의 시대를 살고 있다. 과학을 통해 해파리, 벌레, 쥐 같은 여러 생물의 내적 작동방식을 밝히는 시대 말이다.
우리는 이제야 비로소 인류 역사의 진실들을 정확하게 짜 맞추어 나가고 있는 셈이다. 수십억 년에 걸친 변화의 과정을 돌아볼 때, 생명의 역사에서 혁신적이거나 독특했던 것들은 하나같이 오래된 재료를 재활용하고, 재조합하고, 재배치하는 등 새 용도에 맞게 변형시켜 이루어낸 성취들이었다. 바로 우리 몸 구석구석, 감각기관에서 머리까지, 나아가 몸의 체제 전체에 담긴 이야기다.”


저자는 화석을 찾아 ‘필드’에서 뛰는 고생물학의 즐거움과, 실험실에서 유전자 연구를 통해 신체 기관 발달의 메커니즘을 엿보는 실험 생물학, 즉 ‘이보디보(진화발생생물학)’ 양측에 발을 걸치고 있다. 고고학도, 고생물학도, 분류학도 모두 현대 DNA 분석기술의 발달로 엄청난 변화를 겪고 있다. 하지만 ‘필드와 실험실’ 모두를 아우르지 않고서는 절름발이가 될 수밖에 없다. 저자의 설명을 듣다 보면 현대의 진화생물학자들이 생명의 역사를 밝혀내기 위해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를 엿볼 수 있다.
책의 후반부는 틱타알릭 이야기라기보다는 ‘슈빈이 들려주는 생물 이야기, 진화 이야기’다. 도킨스의 <눈 먼 시계공>을 읽은 사람이라면 쉽게 넘길 수 있을 내용들이다. 설명 자체가 아주 쉽고 간결해서 생물학 맛보기 책으로도 좋을 것 같다. 쉬엄쉬엄 기분전환으로 읽다 보니 끝부분에 가선 어느새 숙연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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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브르는 프랑스 박물관인가 - 문화재 약탈과 반환의 역사
이보아 지음 / 민연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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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탈 문화재 논란에 대해 쉬우면서도 개념 있게 설명한다. 엘긴 마블스, 로제타스톤으로 시작되는 고대 유적·유물, 나치의 치밀한 문화재 약탈·파괴공작, 약탈 문화재를 둘러싼 ‘문화 민족주의’와 ‘국제주의’의 대립, 그리고 외규장곽 도서를 비롯한 한국의 빼앗긴 문화재 실태와 반환운동에 대해서까지 폭넓게 다뤘다. 약탈 문화재 그림들과 유명 박물관에 대한 설명들이 곁들여져 있어 읽을거리 겸 볼거리가 된다. 단점이 있다면, 저자가 자기 박사논문을 풀어서 좀 손쉽게 책으로 만들었다는 느낌. 어떤 때는 ‘보론’ 해가면서 학술서적 쓰듯이 했고, 어떤 때는 ‘미술 읽어주는 여자’ 식으로 편안히 썼다. 그래도 내용은 꽤 알차고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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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프리카 - 중국은 아프리카에서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가
세르주 미셸.미셸 뵈레 지음, 파올로 우즈 사진, 이희정 옮김 / 에코리브르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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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들의 이주 역사는 2000년을 거슬러 올라갈 만큼 오래 되었지만 19세기 말 유럽인들의 흑인 노예 대신 중국인과 인도인 쿨리들을 데려다 부리면서 이주민이 현저하게 늘어났다. 노예제가 폐지되면서 호주의 광산, 파나마 운하, 벨기에령 콩고와 모잠비크의 철도 공사, 시베리아 횡단 철도와 미국 센트럴퍼시픽 철도공사 등 당대의 대규모 토목공사에 200~800만 명의 중국인 노동자가 필요했다.

중국이 아프리카에 진출한지는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오래됐다. 2005년 중국 언론들은 명나라 시절 정화의 원정대 600년을 기념하는 기사들을 내보냈다.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 이야기를 오늘에 되살려 아프리카와의 관계를 강조하려는 속셈이 그대로 보이긴 하지만, 사실(史實)은 사실(事實)인 것이다. 실제로 동아프리카 해안에는 ‘정화 원정대의 후손들’로 알려진 이들이 아프리카인들과 피와 문화와 언어가 섞인 채로 살아오고 있다. 겉보기엔 그냥 ‘흑인들’이지만, 그들에게는 정화 원정대의 흔적(유물들과 이야기들)이 남아있다. 중국은 그들 중 유학생을 받아 공부를 시켜주며 우애를 과시했다.
물론 중국이 ‘최근에’ 아프리카 자원을 넘보며 협력관계를 부쩍 키우고 잇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늘 그렇듯,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것은 없다’. 근시안적으로 남의 떡 빼내올 궁리만 하는 우리 행태를 돌아보게 만드는 대목이다.

프랑스 저널리스트들이 쓴 이 책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중국과 하나가 되고 있는 아프리카’를 다룬다. 저자들은 알제리·이집트·수단(북아프리카), 니제르·나이지리아·카메룬·콩고공화국·앙골라(서아프리카), 에티오피아(동아프리카)를 돌며 중국과 아프리카국가들이 얼마나 밀접히 결합해가고 있는지를 전한다.
마음에 안 드는 점이 있다면 ‘옛 식민 종주국’의 후손들답게 중국을 흘겨보면서 “그들이 (한때 아프리카의 주인이었던) 우리 프랑스를 웃돌려 한다”는 뉘앙스로 얘기를 한다는 것.
그 외에는 여러 가지 주워들을 것이 많은 책이었다. 첫째, 곳곳을 돌며 생생하게 전하는 르포다. 중국과 아프리카를 엮은 보도들은 몇 해 전부터 쏟아져 나오고 있다. 나 또한 아프리카를 여행하면서 중국의 영향력을 실감한 적이 있다. 하지만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과연 어디서 얼마나’ 하는 세부적인 것들이다. 그런 fact 들을 모른 채 ‘들은 풍월’로 ‘중국의 아프리카 점령’을 얘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기니는 매년 보크사이트 2000만 톤을 생산한다. 맥주 캔 3000억 개를 만들고 자동차 차체 3500만대를 만들기에 추분한 양이다. 하지만 제련 과정 없이 곧바로 수출되는 보크사이트는 일자리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부가가치도 없으며 세금 수익도 내지 못한다. 기니 국민들은 자동차는커녕 캔 맥주를 사먹을 돈조차 없다. 자동차가 다닐 만한 도로도 거의 없다. 기니에서 생산되는 보크사이트로 컴퓨터 하드디스크 2000억 개를 만들 수 있지만 국민들은 컴퓨터는 물론 컴퓨터를 돌릴 전기도 없다. 코나크리의 대학생들은 시험이 다가오면 공항 주차장에서 밤샘 공부를 한다. 전깃불을 밝힌 곳이 공항밖에 없기 때문이다.
희망은 어디에 있을까? “중국인들이죠! 중국인들만이 유일하게 우리에게 광산, 댐, 수력발전소, 철도, 제련소를 묶어서 패키지로 지어주겠다고 제안했어요. 중국수출입은행에서 모든 자금을 대고 산화알루미늄으로 상환하기로 했지요. 우리 정부에 자금 부담은 전혀 없고 오히려 세금을 거둬들이고 일자리와 인프라, 에너지를 창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똑같은 조건으로 거대 알루미늄 회사 알코아에 제의했더니 자기들이 취급하는 건 댐이 아니라 알루미늄이라고 하더군요.”

콩고공화국 시코포르의 벌목꾼들이 22미터 높이의 모아비 moabi 나무를 베는 모습이 보였다. 나무는 트럭에 실려 푸앵트누아르로 운반되고, 배에 선적되어 몇 주 후에 상하이 근처 장자항(張家港)에 도착했다. 장자항은 전세계에서 열대 목재가 가장 많이 거래되는 항구도시다. 단단한 고급 목재인 모아비나무는 상판용으로 영국에 대량 수출되고 이케아 가구에도 사용된다. 중국은 이케아의 가장 큰 공급처이다.

하지만 현상을 나열하는 것에서 그친다면 ‘기사 모음’에 불과할 것이다. 세상 어떤 관계든, 일방적이고 일면적이지는 않다. 중국은 아프리카에서 ‘자원만 빼내가는’ 것이 아니며 아프리카 국가들 또한 푼돈에 그저 자원을 내주는 것만은 아니다. 중국 ‘사람들’과 아프리카 ‘사람들’이 대거 교류하면서 아프리카 내에서는 ‘새로운 만남’이 이뤄지고 있다. 중국은 아프리카를 깨우고, 아프리카는 중국을 깨운다.

그리하여 쥐도 새도 모르게 세계화의 마지막 단추가 꿰어졌고 지구상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두 문화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중국인들은 새로운 개척지인 아프리카에서 몸으로 부딪히며 넓은 공간, 이국의 정치, 거부(拒否), 인종주의를 발견하고 개인적이고 내면적인 모험을 해나가고 있다. 세상은 인민일보에서 보도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다는 사실도 깨닫고 있다.

중국 이주민들은 때로 약탈자, 중국 역사의 영웅, 또 때로는 정복자나 자선가의 모습을 보인다. 수천 년 동안 만리장성 뒤에 틀어박혀 있었기 때문인지 중국인들은 다른 문화를 받아들이거나 함께 공존하려는 마음을 잃어버린 듯하다. 그렇다고 그들이 아프리카에서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는 건 아니다. 중국인들이 아프리카에서 보고 느낀 것들은 무기력에 빠진 중국을 뒤흔들어놓았다. 그 위력은 1980년대 중국이 자본주의로 전환했던 때와 비슷하다. 아프리카로 이주한 중국인들은 중국에 새로운 사상과 야망을 불어넣고 있다.

중국인이 세네갈에 진출하면서 의도치 않게 세네갈에 시민사회가 조직됐다. 세네갈소비자협회가 여러 인권단체, 노조 등과 결합해 중국인 상인들의 편에 서서 세네갈국가상공인연합의 무관용과 인종주의, 외국인 혐오증을 규탄하는 항의시위를 벌였다.
세네갈 정부는 이웃 아프리카국가들보다 훨씬 영리하게 처신했다. 상인들의 분란 초기에 세네갈은 아직 대만과 수교하고 있었다. 하지만 2005년 10월 중국과 수교하면서부터 협상을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어갔다. 베이징 주재 자국 대사관에서는 비자 발급을 까다롭게 하고, 다카르 주재 중국 대사관에서는 비자 발급을 쉽게 해주도록 조치했다. 그러자 세네갈 상인들이 중국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중국에서 세네갈 상인들이 정착한 곳은 저장성에 위치한 인구 65만 명의 이우(義烏)라는 도시였다. 이우라는 이름은 생소하지만 전 세계가 그곳과 관계를 맺고 있다. 세계의 모든 상품과 짝퉁들이 이우에서 유통되기 때문이다.

중국의 아프리카 진출을 ‘또 다른 제국주의’로 볼 것이냐, 아니냐에 대해서는 한 마디로 대답할 수 없을 것이다. 모든 관계에는 조금 더 많이 갖는 쪽, 조금 덜 갖는 쪽이 있다. 한쪽이 일방적으로 몽땅 가져갈 뿐만 아니라 또 다른 쪽을 상처 입히고 짓밟기까지 한다면 그것은 제국주의다. 최소한 지금 중국과 아프리카의 관계는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더군다나 중국을 비아냥거리는 것이 옛 제국주의 국가들인 것을 보면, 우습다는 생각마저 든다.
물론 비판하는 자에게 결함이 있다 해서 비판의 내용까지 흘려버릴 수는 없다. 유럽의 비판은 타당한가? 아직 답하기 힘들다. 오히려 아프리카에서 중국이 하는 행동을 제대로 비교하려면 식민 시대의 유럽보다는, 팍스 아메리카나의 미국과 비교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 미국인들은 ‘미국이라는 제국’이 다른 나라를 영토적으로 점령하는 데에는 관심 없다고 말한다. ‘그러니 제국이 아니다’라거나, ‘제국은 제국이지만 과거의 제국과는 다르다’는 얘기다. 중국 또한 아프리카를 영토적으로 점령하는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 보인다. 자기네 나라 사람들을 대거 아프리카로 내보낸다는 면에서 문자 그대로의 식민(植民)인지는 몰라도 분명 중국은 ‘윈-윈’을 노리고 있는 것 같다.

다른 이들은 불편하다며 낭비할 생각밖에 하지 않는 아프리카에서 중국인들은 기회를 보았다. 서구인들은 더 확실한 이익을 챙기려 손을 놓고 있지만 중국인들은 끈질기게 노력했다. 중국은 더 멀리 내다보고 있다. 목표는 옛 식민 지배 국가들의 영향력을 뛰어넘어 장기적으로 대륙적인 이상을 펼치는 것이다.
사실 중국은 아프리카의 자원만 독점하는 게 아니다. 저렴한 단순노동 제품을 팔고 도로와 철도, 공공건물을 보수한다. 에너지가 부족하다면? 콩고공화국과 수단, 에티오피아에 댐을 건설하고 이집트가 민간 핵 프로그램을 재개할 수 있도록 도울 준비가 되어 있다. 전화가 없다면? 중국은 아프리카 전체에 무선통신과 광통신망을 구축한다. 현지 주민들이 망설인다면? 병원과 급식소, 고아원을 연다. 백인들은 무례하고 잘난 척했지만 중국인들은 겸손하고 과묵하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중국인들에게 감명을 받았다.

책은 중국과 아프리카가 서로에게서 배우고 깨우치는 있음을 보여준다. 누가 뭐라 하건 “중국은 한 가지 중요한 역할을 해냈다. 아프리카인들과 외국인들에게 아프리카의 진정한 가치를 알려준 것이다. 중국이 적극 진출하기 전에는 어떤 서구 국가도 아프리카에 그토록 관심을 갖지 않았다.” 유럽 저널리스트들의 정직한 고백.

그리하여 관심은 다시 미래로 간다. 중국은 아프리카에 과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인가. ‘긍정적인 영향’에는 아프리카의 부(富)를 키우고 개발을 진전시키는 것 이상의 것들이 포함된다.

중국의 기세가 꺾이지 않는다면 추진하는 모든 프로젝트가 무사히 끝나 아프리카를 하나로 묶을 것이다. 기차가 강을 건너고 전기망과 송유관, 자본이 국경을 넘나들며 사람들이 자유로이 오갈 것이다. 중국의 이익을 위해서 아프리카에 평화가 정착돼야 한다. ‘팍스 시니카’가 아프리카에서는 이미 시작됐다. 중국은 이집트, 수단과 관계를 강화함을써 나일강과 관련된 두 나라 간 긴장 완화에 일조했다. 콩고민주공화국 동부에 투자, 무장반군들을 조금씩 무력화하고 르완다의 간섭 의지를 잠재우고 있다. 우간다에서 인프라를 건설하고 석유를 탐사하면서 신의 저항군(LRA)과 인민해방군(PRA) 반군이 끼치는 해악을 줄이고 있다.

이것이 얼마나 고무적일지는 모르지만, 과연 ‘팍스 시니카’가 진정 아프리카인들의 ‘팍스’를 강화시켜줄 지는 모르지만, 관심 끄는 미래의 테마가 하나 생겨난 것은 확실하다. 아프리카 ‘자원 외교’를 외치면서 근시안적인 행태와 섣부른 자랑부터 해대는 한국 정부 관리들이야말로 아프리카에서 ‘상호 감정의 교류’를 좀 배우고 왔으면 좋겠는데 말이다. 

 

(책 속에서) 


▶ 중국이 아프리카에 구애를 하게 된 중요한 두 가지 계기가 있다. 첫 번째는 프랑스의 롤랑 마르샬 연구원이 주장한 것으로 1989년 6월 4일 톈안먼 사태다. 국제사회의 비난에 직면한 중국 정부는 고립에서 벗어나기 위해 모든 외교력을 총동원했다. 유엔총회에서 4분의1 이상의 투표권을 가진 아프리카에서부터 시작하는 게 유리했다.
두 번째는 1995년 권력을 장악한 장쩌민 국가주석이 경제성장을 강조하며 중국 대기업들에게 “해외로 진출하라[쩌우추취(走出去)]” 즉 세계의 주역이 되라고 선언한 것이다.

▶ CITIC는 1979년 덩샤오핑이 만든 반국영 투자대행사다. 44개국에 지사가 있고 자산보유액이 9220억 위안에 달하며 5개 대륙에서 다리, 댐, 지하철, 항구, 터널, 경기장 등 100여건의 대형 건설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진행했다. 직원이 22만명으로 중국에서 두 번째로 큰 회사다.

▶ ‘우라늄 러시’로 니제르의 투아레그 반군이 이득을 얻고 있다. 반군은 이미 다각도로 외국 열강들의 지원을 받고 있으며 그 때문에 니제르 정부는 최악의 방법도 서슴지 않고 반군을 진압하려는 의지를 다지고 있다. 휴먼라이츠워치에 따르면 정부군의 북부 반군 진압작전은 벌써 전쟁범죄의 양상을 띠고 있다.

▶ 중국에게 카메룬은 최상의 목표다. 서아프리카·중앙아프리카·사하라 이남(사헬)·아프리카 열대우림의 경계지역이라 아프리카 대륙의 축소판이고, 프랑스와 영어 이중언어권의 중심이며, 석유·천연가스·보크사이트·주석·금·우라늄·목재가 풍부하다. 국토 면적은 프랑스와 비슷한데 인구는 4분의1 수준에 불과하다.
카메룬과 중국이 맺은 협정에 따라 이제 카메룬에서는 중국인이 외국인으로서는 유일하게 고용계약 없이 1년6개월 동안 체류할 수 있게 되었다. 2007년 2월말 현재 베이징 주재 카메룬 대사관에는 비자 신청이 벌써 70만건에 달했다.

▶ 청나일과 백나일이 만나는 수단 다르푸르에 수단 정부는 미래형 도시인 무그란 mugran 시티를 건설하려 한다. 공항 가는 도로 옆에 있는 아르카우이트 지구는 벌써 작은 두바이같았다.
수단은 아프리카에서 유일하게 중국이 자체 생산시절에서 석유를 생산할 수 있는 나라다. 중국 정부는 이를 대단한 쾌거로 여기고 CNPC 임원 전체의 공산당원 계급을 한 등급씩 올려주었다. CNPC는 중국의 거대 석유회사이지만 해외에서는 거의 활약을 못하던 상태였다.

▶ 중국은 아프리카의 ‘검은 금’을 향한 돌진 행렬에 끼어들었지만 몇 가지 약점이 있다. 기니 만에서 심해유전 굴착을 할 기술이 부족하다는 것도 그중 하나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기니만은 ‘페르는 시아만을 대체할’ 지구상에서 ‘가장 관심이 뜨거운’ 지역으로 평가받는다. 미국도 수입량의 4분의1을 기니 만에서 충당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 국제정책센터(CIP)는 향후 12년간 석유가격이 배럴당 50달러 이상을 유지한다면 기니 만 연안 국가들이 1조 달러 이상의 수익을 올릴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지난 50년간 서구가 아프리카 전체에 제공한 원조의 두 배가 넘는 액수다.
미국은 전체 석유 수입량의 15%를 아프리카에서 조달하지만 중국은 30%를 수입한다. 기니 만은 서구 메이저들이 틀어쥐고 있으므로, ‘놀랄 일’은 아프리카 동쪽 해안에서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CNOOC는 케냐에서 석유개발 허가권 여섯 건을 싹쓸이했고 단독으로 전체 석유 탐사지역의 28%를 관리하고 있다. CNOOC보다 규모가 작은 선펙(중연석유화공국제유한공사)은 마다가스카르에서 석유개발 허가권 세 건을 얻었다. 중국은 우간다에서 두 곳의 나일강 수력발전 댐 건설에 자금을 댈 예정인데, 그 계약에는 CNOOC가 두 곳의 석유탐사 사업권을 받는다는 조건이 포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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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란 2010-02-01 0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딸기 2010-02-01 18:33   좋아요 0 | UR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