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발이 너무해 2 (1disc) - 아웃케이스 없음
로버트 루케틱 감독, 루크 윌슨 외 출연 / 20세기폭스 / 2008년 2월
평점 :
품절


이 영화에 별을 네 개나 쳐주면,
아마도 나를 이상한 사람이라고 색안경 끼고 볼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어쩌겠누...  줄거리는 순 엉터리이지만 화면과 색감이 딱 내 취향인 걸.

'금발이 너무해 1'은 안 봤다.
주인공이 리즈 위더스푼이라는 이쁜이라는 것만 들어서 알고 있었다.
분홍색으로 도배질한 영화라고 해서 극장에 가서 돈 내고 봤다.
나는 분홍색이나 꽃 같은 이쁜 거 나오면 무조건 좋아라 한다.

소감은.

웃기더군. 핑크색 이쁘더군. 위더스푼인지 위더숟가락인지 정말 바비인형이더군.
치와와는 싫었다.

어쨌든 명랑한 것은 다 좋은 것이라고 치고 넘어가는 나로서는.
그럭저럭 취향에 맞는 영화였다고나 할까.

누구는 그러더라, 한시간 반짜리 CF라고. 정말 딱 맞는 표현이다.
난 처음 5분 정도는 이게 '영화'인줄 알고 쫌 진지하게 임했다
최소한 '로맨틱 코메디'는 되는 줄 알고서...
근데 정신차리고, 아냐 저건 영화가 아니야, 라고 생각하면서 보니깐 과연 볼만했다.
핑크빛 소품 등등은 아주 귀여웠고, 숟가락바비도 되게 이뻤다.

하지만 핑크마니아가 아니라면, 이런 영화를 극장에서 돈 주고 볼 일은 없겠다 싶다.
더불어, DVD 씩이나 사놓고 볼 일은 정말 아니겠다 싶다.

그래서 그런가? 이 DVD 품절이다.
잘 팔려서 매진이 아니라 안 팔려서 품절인 것 같은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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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에게 (무삭제판) - 할인행사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 자비에르 카마라 외 출연 / 에스엠픽쳐스(비트윈) / 2004년 5월
평점 :
품절


나는 알모도바로가 뭔지 몰랐다.
극장에 갔는데, 이 영화 포스터에 '알모도바르'라는 말이 있었다. 어쩐지 멋지게 들렸다.
"저 영화 보자. 일모도바르래."
"그게 무슨 뜻인데."
"나도 모르겠는데, 하여간 일모도바르래."
무덤덤한 관객과 무식한 관객, 감독 이름은 물론이고 한글조차 제대로 못 읽는
내 친구 h와 나는 영화를 보러 갔다.

그녀에게.

하필 그녀는 춤추는 여자다.

불쌍하다, 알리샤. 그 좋은 나이에.
발레리나의 꿈(좀 상투적이군)을 안고 살던 너, 식물인간이 돼서 식물처럼 늘어져있다니.

그리고, 그 놈, 베니그노.식물인간을 강간한 놈.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그 표정을 보라. 딱 관음증 환자처럼 보이지 않는가. 순수함을 가장한 변태의 눈...

제법 강렬하고 아름다울 수 있었던 커플, 마르코와 리디아.
내가 본 정말 몇 안 되는 스페인 영화 중의 하나인 '안나이야기'에는 서커스단이 나왔는데,
이번엔 투우사로군. 일종의 '과거와 현대 뒤섞기' 코드인 것인가.
리디아의 남성성과 알리샤의 여성성이 두드러지게 대비되누만.
감독은 무엇 때문에 그것을 대비시킨 것일까. 베니그노의 여성성은 좀 느끼하단 말이다...

이들 네 명이 함께 있는 장면이 한번 나왔는데 "두 둥물과 두 식물이 서서 혹은 늘어져 있습니다"
그런 분위기. 아름답다면, 아름다울 수도 있지.

쿠쿠루쿠쿠 팔로마는 아주 아름다웠고 피나바우쉬의 무용극도 근사했고
무성영화는 정말정말 인상적이었다. 이미지와 소리, 장치들을 속닥속닥 섞어 만든 예!술!영!화!

그러나 지겹고, 두드러기 날 것 같아. 사랑의 여러가지 단면들--이라고 하기엔
그러니까 당신, 결국 변태 정신병자 아니냐구.
10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고 덤벼드는건 여자가 진짜 '나무'인 줄 아는 미친놈이다.
'바라보는 사랑' 어쩌구 하면서 들러붙는 건 관음증 아니면 찐드기 껌같은 놈이다.

사랑의 여러가지 이름, 진절머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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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 현상 2005-03-19 2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영화가 좀 별로였는데...왜 별로였더라? 근데 베니그노는 끝까지 범죄사실을 인정하지 않았지요...

딸기 2005-03-19 2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보기엔 미친놈 변태였습니다, 그놈은.
'잘 만든 영화다'라는 말엔 동의해줄 수 있는데요
'공감'은 못하겠더군요.

mannerist 2005-03-19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0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고 덤벼드는건 여자가 진짜 '나무'인 줄 아는 미친놈이다."에 동의 한 표요. ㅎㅎㅎ 너무 멋지세요~

하루(春) 2005-03-20 1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거 DVD 사려고 벼르고 있는데... 아직 못 봤거든요.

비로그인 2005-03-21 0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모도바르의 다른 영화들도 찾아보세요. 계속 변태야, 변태...란 말과 정말 공감은 안간다는 말이 계속 나오겠지요...ㅋㅋㅋ 저는 그의 광팬이에요.
 
살인의 추억 [dts] - 일반판 - [할인행사], (2disc)
봉준호 감독, 송강호 외 출연 / CJ 엔터테인먼트 / 2003년 10월
평점 :
품절


왠일이냐, 내가, 대박 터진 영화를 '제 때에' 보다니.
너무 무서울 것 같아서 머뭇거리다가 결국 보고야 말았다. 우선 재미있었고, 영화가 참 깔끔했다.
우리나라 감독들이 이렇게 영화를 테크니컬하게 잘 만들어버리면
대체 남의 나라 감독들은 어쩌라는 거야...

송강호 연기, 진짜 리얼하더라. 경찰서에서 봤던 형사들 모습이랑 거의 똑같애.
그런데 영화평 쓰는 기자들이 "범인은 1980년대였다!" 쿵짝쿵짝 한 건
솔직히 오버 내지는 영화사의 판촉작전에 놀아난 것이라는 생각이 짙게 들던걸.
여기저기 언론에 나온 걸 보니까 아마 감독이랑 제작사에서
그 쪽에 포인트를 맞춰서 홍보를 했던 것 같은데.
요새는 '386'이 광고 키워드니깐, 특히 영화에 있어서는
상당히 구매력 강한 그들의 '도덕적 자부심'을 또 자극하고 싶었는지 알 수 없지.

그런데 내 눈에는 80년대가 아니라, 형사 두 놈만 보이는 거야.
80년대라는 시대적인 특성은 그냥 '존재의 조건'으로만 보였고,
이 영화에서 '보편성'에 해당되는 부분이 더 크게 와닿았거든.
(참고로 말하자면 학교에서 죽은 여학생-- 우리 중학교 때에, 그렇게 긴 머리 날리면서 다니면
선생이 즉시 달려들어 귀밑 3센티로 자르라고 발광했었는데)
영화에서 중요한 건 시대가 아니라 "미친 놈 잡으려다 미쳐간 사나이들"인 것 같은데.
이 영화의 주인공은 박두만 서태윤 두 형사이고, 처음부터 끝까지 송강호 김상경이 영화를 끌어간다.
'미친 놈 쫓다보니 몽땅 미쳐가는'. 그런데 사실은 사회 전체가 좀 미쳐있는.
깜이냐, 논리냐 그것이 문제로다-- 그런데 알고보니 문제는 그것이 아니었도다.



김상경이 몇 살이지? 이 '배우'를 처음 본 건 MBC 미니시리즈 '마지막 전쟁'에서였다.
강남길이랑 심혜진이 죽도록 부부싸움하는 드라마. 심혜진의 후배이자, 김현주의 애인으로 나왔는데 
번듯하게 생긴 얼굴이, '잘 나가는 법대 졸업생'으로는 딱이었다.
물론 그때만 해도--이 탤런트에게서 '연기'를 기대하는 건 무리였으니.
그리고 또 뭐였더라--나는 잘 안 봐서 모르겠는데
표민수-노희경 듀오의 시청률 바닥 드라마에 출연한 걸 보고 의외네, 싶었는데. 이제보니
저렇게 '배우'가 되려고 그랬나보지.
'살인의 추억'의 히어로는 단연 김상경이다.
송강호의 연기력은 이미 다 아는 것이고 (이 영화에서 보니 정말 물이 오를대로 오른--).
나는 김상경이 미친듯이 띠발띠발 거릴 때, 송재호가 옆에서 "니가 미친 놈 같다"고 할 때.
그 장면이 아주 우스웠다. 마지막에 김상경이 울 때는
약간의 감동--무엇이든 '열심히' 하는 사람에게서 풍겨나오는
그 땀내 나는 감동같은 것이 전해오더라 이 말이지.

"그래, 삽질을 저렇게 열심히 하면 금덩이가 반드시 나올겨!"

어쨌든 김상경이라는 '배우'를 발견하니깐 좋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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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oninara 2005-03-19 1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죠? 마지막에 김상경이 미국의 자료를 부정하면서 총을 겨눌때..정말 맘이 찡하더군요. 미치도록 잡고 싶었을텐데...그리고 재때 보신것은 아닌듯 한데요?
이게 개봉한지 이년은 되가는듯^^

딸기 2005-03-19 2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때 봤어요. 이 리뷰??가 옛날 겁니다. ㅎㅎ
 
첨밀밀 - [초특가판]
진가신 감독, 여명 외 출연 / 리스비젼 엔터테인먼트 / 2004년 1월
평점 :
품절


사랑의 기억은 모두 달콤할까.
인연이라는 것은 어떤 종류의 것이든 간에, 모두 소중하다...고 하면 될까요. 어떤 인연인들 소중하지 않겠냐마는, 그 중에는 특히 인생을 좌지우지하는 대단한 인연도 있는가 하면 말 그대로 '옷깃만 스치고 지나는' 그런 인연도 있겠죠.
'첨밀밀'은 중국과 홍콩에 대한 이야기이고,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에 대한 이야기이고, 따라서 돈에 대한 이야기이고, 돈과 사람에 대한 이야기, 체제의 틀 속에서 어떻게 해서든 더 나은 삶을 살아보려는 사람들의 이야기, 사랑에 대한 이야기, 인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첨밀밀의 핵심은 첨밀밀이다'... 말장난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정말로 이 영화의 키워드는 타이틀인 '첨밀밀'이라는 말에 있습니다.
첨밀밀은, 아주 달콤하다는 뜻이죠. 달콤한, 그대의 미소는 마치 봄바람처럼 달콤해요, 어디에선가, 그대를 만난 적 있는 것 같아요, 그대의 미소짓는 모습은 이렇게 익숙한데...소군(여명)과 이교(장만옥)의 '기찻간 인연'은 결코 달콤하지 않았는데, 등려군의 '너무나 달콤한' 노래가 흐릅니다.

이 영화의 감독은 결코 달착지근하지 않은, 오히려 시큼하고 씁쓸한 맛까지 느껴지는 이들의 인연에 감미로운 가락을 붙여놨습니다. 이들의 '첨밀밀'은 일종의 역설인 셈이죠. 돈을 좇아 고향을 떠나온, 자본주의의 최첨단 홍콩으로 건너온 두 중국 남녀의 스쳐 지나가는 인연에 저런 달콤한 향내를 뿌려놓다니. (몇달전부터 등려군의 노래에 심취해 있는데, 등려군이 부르는 '첨밀밀'은 사실 알려진 것처럼 뽕짝풍의 단내 나는 노래는 아닙니다. 특유의 낭창낭창한 목소리가 귓가를 살살 간지럽히는 맛이 있기는 하지만. 우리나라의 '두리안'인가 하는 애들이 드라마에서 부른 것처럼 경박한 노래는 더더욱 아니구요.)

제법 그럴듯하게 생긴 젊은 남녀의 사랑을 쌉싸름하게 만드는 것은 결국 돈인데...이 악물고 악착같이 살아가면서 나름대로 돈도 모으고 희망이란 것을 이야기하던 장만옥의 배신을 때린 것은, 바로 증시였군요. 뉴욕발 '블랙 먼데이'의 충격이 그녀의 인생을 휘어잡은 겁니다. 자본주의에 배신당한 젊은 여인은 '너무나도 자본주의적인' 방법으로 새 삶을 찾습니다. 좋건 싫건간에 그녀는 자신의 '선택'을 통해서 조폭과의 동거를 시작합니다.

궁금한 것 한 가지. 여명은 장만옥을 부두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조폭 '오빠'한테 작별인사만 하고 오면, 그녀는 부둣가에서 기다리는 연인과 새 출발을 할 수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어째서, 끈 떨어져 도망가는 조폭 곁을 떠나지 못한 채 그 배를 타고 떠난 것일까요. 조폭 기둥서방조차 "새 애인 찾아 떠나라"고 했는데.
그것도 인연이라는 것일까요? 무릇 모든 인연은 다 소중한 것이어서, 억척또순이처럼 '캐피탈리스트'가 되고자했던 장만옥조차 그 인연의 고리에서 벗어나지 못해 정든 남자를 따라갔던 것일까요?

다시 등려군 이야기. 당대의 스타였다는 이 여자가수 또한 장만옥같은 인물이더군요. 원래 중국 본토에서 태어났는데 대만과 홍콩을 오가며 활동을 했고, 일본에서도 10여년간 가수 일을 했었답니다. 그래서 등려군의 노래에는 엔카가 섞여있기도 한데, 우리나라에서 들을 수 있는 것은 그녀의 '중국노래'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녀는 일본에서 심각한 슬럼프를 겪으면서 중국인들의 애를 태웠다가(!) 기사회생해 '아시아의 스타'로 떠올랐다는군요.
중국인들은 정말로 그녀를 사랑했던 모양입니다. 작년에 홍콩 구경을 갔을 때 등려군의 소지품 경매광고를 봤는데, 죽은지 5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중국인들은 그녀를 잊지 않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등려군은 장만옥처럼 자본주의를 따라다녔지만 그녀의 노래들은 아주 오래된 정서를 담은 것들입니다. '첨밀밀'도 그렇고, 또 이 영화에 나오는 다른 노래들이나 베스트앨범에 담겨 있는 노래들도 그렇구요. 아주 전통적인 정서를 담고 있습니다. 다른 여자에게 눈길 주지 마세요, 사랑은 어디서 오는 걸까요, 달빛이 내 마음을 대신 전해줘요...그래서 중국인들은, 자본주의를 피해갈 수 없게된 지금도 그녀를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건지도 모르겠네요.

몹시 서글픈 사랑이었지만, 어쨌든 두 사람은 서로를 끊임없이 그리워하고-엇갈리기만 하던 두 사람은 뉴욕의 길모퉁이에서 만나게 됩니다. 혹시 헨리 워즈워드 롱펠로우의 '에반젤린'을 아시는지. 운명의 장난도 이들을 영원히 갈라놓지는 못했다-라는.
'에반젤린'에서는 두 연인이 만나는데 평생이 걸렸지만 다행히 현대의 두 남녀는 지구를 반바퀴 돌아서 몇년 만에 만나는군요. 홍콩은 중국에 귀속됐지만 중국은 자본주의의 길로 달려가고 있다는 역설처럼, 두 사람의 만남을 이어준 것은 등려군의 사망 소식이었습니다. 쇼윈도를 들여다보다 불현듯 눈길이 마주친 두 사람의 미소는 참 감미롭더군요(첨밀밀!).
(참, 원래 '첨밀밀'은 인도네시아 민요인데 중국말로 가사를 붙인 거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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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부탁해 SE (2Disc)
정재은 감독, 배두나 외 출연 / 엔터원 / 2002년 6월
평점 :
품절


이 영화에 대해 사전지식이라고는, 스무살 여자애들(난 얘들보다 나이가 10살 씩이나 많으니까 이렇게 말해도 되겠지^^)의 이야기를 담은 것이라는 정도였다. 그러니까 구체적으로 어떤 이야기인지는 알 수 없지만, 신문에 실리는 영화평이 꽤나 감동적이었던 것으로 봐서 (영화를 안 보는 나이지만, 정말 칭찬인지 아니면 '홍보용 문구'인지 정도는 구분할 줄 안다) 제법 기대를 해도 될만한 영화같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간만에 보는 수작이었다 (내가 보는 눈은 별로 없지만 워낙 영화 안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이렇게 칭찬하는 걸 보면 대단히 감동받았음에 틀림없다고...).

영화 줄거리 소개할 생각은 없고, 실상 또 '줄거리'라 할만한 것이 없기도 하다.
스무살 여자애들 다섯명이 나오는데, 대한민국에서 스무살이란 어떤 나이냐. 스무살의 티티엘에 나오는 그 모델은 정말 뽀시시하게 이쁘더라만, 핸드폰 많이 쓴다고 스무살이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대학 1학년'에 해당되는 나이다. 모든 것이 대학 기준으로 측정되는 사회에서, '새내기'니 '신입생'이니 '몇몇 학번'이니 하는 말을 봄철부터 듣고 사는 나이. 그럼 대학을 가지 않은 아이들에게는?
'고등학교 졸업하고 1년 후'. 그것이 이 영화의 감독이 설정해놓은 스무살이라는 나이인데, 방황도 많고 욕망도 많고 피부는 뽀얗고 꺄악꺄악 소리도 잘 지르고 하루 온종일 핸드폰이 울리는 그런 나이다.

스무살에 대한 기억은 많지 않은데-우리 나이로 스무살 때에는 대학 1학년이었고 만 스무살일 때에는 대학 2학년이었으니까 대학생활이 한창 재미있고 또 어마어마하게 '바쁠' 때였다. 이 영화를 보면서 갑자기 궁금해졌다. 대체, 대학에 가지 않은 그 많은 아이들, 나와 같은 고등학교에서 공부했던 많은 아이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국민학교 때 늘 같이다녔던 삼총사 중의 2명(나를 제외한)은 대학에 가지 않고 여상에 갔는데, 얼마전에 만나보니 은행 취직한지 10년, 11년씩 된 고참 여행원들이 되어 있었다. 이 애들 말고, 인문계 고등학교를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성적이 나빠 대학에 가지 못했던 애들은 대체 어떻게 됐느냐는 얘기다. 얼마전, 여고시절 미모를 자랑하다가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갓 스무살에 결혼해서 이미 세 아이의 엄마가 된 한 동창생의 이메일을 받았던 것 외에는, '그 때 그 아이들'에 대한 소식도 기억도 없다.

세상 누구에게나 꿈이 있고 희망이 있다는 것을 잊고 산다. 모처럼만에 찾아간 고등학교, 선생님들과의 '추억담'에조차 등장하지 않는 아이들, '여고괴담'에 나오는 누군가처럼 잊혀져버리는 아이들. 뿐만이 아니라 텔레비전이나 신문지상에 나오는 먼 나라의 가난한 사람들도 그렇고, 또 내 주변의 '물건 같은 사람들'도 그렇다.
뼛속 깊이 박힌 차별의 선들이 그물처럼 촘촘히 쳐 있어서 나 아닌 다른 사람, 내 기준 아닌 다른 사람들의 꿈이나 희망이나 감정 따위가 보이지 않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주 좋아하고 또 무서워하는 작가인 박완서 할머니가 '흑과부'라는 단편에서 소시민근성을 단칼에 베어버리는 것을 보면서(한국일보의 장명수씨 별명이 '장칼'이라는데, 박완서선생의 칼에 대면 어린애들 장난감이다. 이분이야말로 '박칼'이다) 가슴이 섬뜩했는데 오늘도 그랬다. '고양이를 부탁해', 신선한 감각과 깔끔한 영상, 아주 훌륭한 시나리오를 자랑하는 이 영화를 보면서 또렷한 신세대 감각에 감탄했다기보다는  가볍잖은 여운을 남기는 약간의 '칼질'에 놀라고 감동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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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5-03-18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제가 알고 있던 선입견을 깨버리는 평이었습니다.
주말에 비디오점을 찾아가봐야겠군요...

딸기 2005-03-18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헤... 저건 사실 영화평이 아니라 저의 일기 같은 거였어요. :)

하루(春) 2005-03-18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처음에 나왔을 때 꽤나 신선했습니다. 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했죠. 화면분할도 그렇고, 여러 시도들이 성공적이었죠. 하지만, 흥행에 참패하면서 큰 아쉬움을 남겼던 영화입니다. 정재은 감독은 단편영화 만들 때부터 유명했어요.

로드무비 2005-03-18 2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란더스의 개'도 보셨나요?^^

딸기 2005-03-19 07: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영화 만든 사람이 정재은이라는 감독인가보지요. '플란더스의 개'도 그 사람이 만든 건가요?

하루(春) 2005-03-20 15: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란다스의 개'(주연배우 - 배두나, 이성재)는 '살인의 추억' 만든 봉준호 감독이 만든 거죠.

딸기 2005-03-20 2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옷 그렇군요. 봉준호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