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패권 이전 - 13세기 세계체제
재닛 아부 지음, 박흥식.이은정 옮김 / 까치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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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야겠다고 생각한지는 오래 됐다. 알라딘 보관함에 넣었다 뺐다 하면서 망설였던 것은, 아주 흥미를 끄는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내겐 너무 학술적이고 전문적이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서였다. 그렇게 마음의 짐으로 간직(?)하고 있다가 석 달 전 이 책을 주웠다. 거짓말이 아니라, 말 그대로 ‘주웠다.’ 사무실에 누군가가 버려둔 것을 발견한 것이다. 냉큼 챙겨놓았지만 역시 책을 펴들기까지는 두 달이 더 걸렸다.

정말 좋아하는 포맷에 정말 흥미진진한 내용. 사실 올 해 나의 ‘독서성적’은 형편없다. 이런저런 일들과 신변의 변화로 바빠 하반기 내내 마음 편히 책 한 줄 읽지 못했다. 먹다 얹힌 떡 조각처럼 목구멍에 걸려있던 일을 끝내자마자 이 책을 잡았다. 예상했던 대로 나 같은 직장인이 읽기엔 좀 학술적이었지만 너무 재미있어서 순식간에 읽어 내려갈 수 있었다. 책의 체계와 논지가 워낙 분명했던 이유도 있다. 도대체가 내 마음에 들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 거짓말 조금 보태어 내가 죽고 못 사는 책인 이탈로 칼비노의 <보이지 않는 도시들>이 책 첫머리에 인용돼 있다.

저자는 흥미가 끌리는 대로 여러 학문분과들을 두루 섭렵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여러 학문 분과들의 범주를 넘어서는, 경제학·정치학·사회학·역사학을 결합시키는 작업을 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세계체제론에다가 제3세계 즉 ‘서발턴’의 관점을 결합해서 ‘지식의 변화를 재촉하는 제3의 길’을 찾고 싶었단다. 속 좁고 시야 좁은 역사학자들 틈바구니에서 세상을 넓게 보고, 유럽중심주의를 벗어나 세계를 보려 했다는 얘기다. 성찰적인 서구 학자라고 해야 하려나.

“지식의 변화를 재촉하는 제3의 길은 아마도 ‘사실들’이 관찰되는 거리에 변하를 주고, 그것에 의해 시야에 들어오는 대상의 규모를 변화시키는 데에 있을 것이다. 역사가들은 좀처럼 전지구적으로 조망하려는 모험을 감행하지 않는다. 아놀드 토인비와 윌리엄 맥닐은 시간과 공간의 협소한 한계 내에 특화돼 있는 학자들의 공격으로부터 살아남아 명성을 유지하고 있는 극소수에 속한다.” (9쪽)

제목에서 충분히 예상되듯이, 저자는 세계체제론을 바탕으로 아날 학파의 분석기법을 이용해 논지를 설파한다. 이 책과(혹은 이 책의 저자와) 관련 있는 학자들은 이매뉴얼 월러스틴, 페르낭 브로델, 페리 앤더슨, 에릭 홉스봄 같은 이들이다. 여기에 윌리엄 맥닐(맥닐의 <전염병의 세계사>는 아무리 생각해도 명저다!)과 안드레 군더 프랑크의 이름도 빼놓을 수 없다.

책의 주제는 제목 그대로다. 소제목들을 훑어봐도 그렇지만, 저술 스타일이 참으로 정직하다! 책은 13세기에도 ‘세계체제’라고 부를 만한 것이 있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16세기를 대략 유럽 패권에서 출발한 오늘날 세계 체제의 시발점으로 보는 시각이 많은데, 13세기에도 분명 이전과 확연히 구분되는 세계체제가 있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에 따르면 13세기 후반은 구세계의 많은 부분이 (비록 모든 부분은 아니었을지라도) 하나의 교환체제 속으로 통합되기 시작한 시기다. 특히 당시의 두 세계, 즉 유럽과 중국이라는 유라시아의 두 부분 사이에 직접적인 접촉이 정착한 시기다. 13세기에는 이전보다 확연히 생산·교역 규모가 커졌다. 그러므로 13세기(정확히 말하면 1250~1350년)는 분명 세계사에서 하나의 전환점이었다.

문화적으로도 동시다발로 세계에서 원숙한 문화·예술이 꽃을 피웠다. 경제적 통합과 문화적 결실은 서로 연관돼 있는 13세기의 특성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를 가능하게 한 ‘13세기의 세계경제’를 탐구하고 그 동력을 살핀 뒤 “왜 14세기부터는 그 체계가 비틀거리게 됐는지”를 살핀다.

여기서 하나의 포인트는, ‘유럽 패권 이전’의 이 체제에는 단일 패권은 없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근대 세계체제’와의 중요한 차이다(저자는 13세기 체제가 ‘근대 자본주의’의 시초였는지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하며 학계의 말싸움과는 선을 그었다). 그리고 13세기 체제에는 이후의 세계체제를 ‘유럽 패권’으로 가게 만든 역사적 필연성 따위도 없었다. 당시만 해도 미래는 열려 있었다. 중국이 패권을 잡았을 수도 있었다.
“그 체제가 동양보다 서양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흘러야만 할, 동양의 문화가 근대 세계체제의 원조가 되는 것을 가로막았던 그 어떤 고유한 역사적 필연성도 없었다.” (32쪽)

그런데 결과는 ‘유럽 패권’이었다. (유럽) 사람들은 대개 유럽이 잘나서 그랬다고들 말하는데, 오늘날 세계체제의 이전단계인 13세기 세계체제를 들여다보면 유럽이 잘 났다는 증거는 없었다, 는 것이 이 책의 요지다. 말하자면 ‘서양 잘난척’에 쐐기를 박기 위한 연구인 셈이다.

저자가 설명하는 책의 출발점은 재미있다. 앞서 언급한 저런 자세 위에, 저자의 마음에 들어선(저자의 눈에 포착된) 어떤 지점들이 이 책의 출발점이 됐다. 저자 나름의 ‘지리상의 발견’이라 할 세 지점은 카이로(유럽 중심주의에서 벗어나게 해준 도시), 항저우(13세기 세계에서 가장 크고 발전했던 도시), 브뤼주와 트루아(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게 복원된 중세 도시들)이었다. “이렇게 발전했다가 훗날 몰락하고 만 세 지점은 유럽 패권 이전의 세계체제에 대해 무엇을 말해주는가”가 저자의 문제의식의 출발점이다.


책은 지도를 바탕으로 13세기 세계체제를 조망한다. 저자는 당시의 세계를 교역로에 따라 크게 3덩어리, 작게 8덩어리로 나눈다. 큰 세 덩어리는 서유럽, 중동, 극동이다(여기서 극동은 한국만 쏙 빠진 동양, 간단히 말해 중국과 동남아를 지칭한다. 우리가 아무리 변명을 해봤자 세계 교역체제에 당시의 한국은 그리 많이 통합돼 있지 않았으니까). 세 덩어리가 교차하는 지점들이 교역의 중심지들, 세계체제의 중요한 마디들이다.

저자는 유럽의 하위체제(제1부), 중동의 심장부(제2부), 아시아(제3부)의 세 덩어리를 나눠 각각의 내부 동력을 살펴본다. 유럽에서는 상파뉴 정기시의 도시들과 플랑드르의 상공업 도시들, 제노바와 베네치아의 해양상인들을 중심으로 13세기의 교역 확대를 점검한다. 정치적인 이유, 교역상대의 변화, 입지조건 등 이런저런 이유에서(지점마다 각기 사정은 달랐다) 13세기의 교역중심지들은 14세기 들어 쇠퇴하기 시작한다.

중동에서는 몽골의 영향력이 결정적이었다. 중동을 제패한 몽골은 산업이 발달한 지역들을 계속 정복해감으로써 잉여를 늘렸으나 이는 ‘붉은 여왕의 한계’에 부딪쳤다. 결국 잉여를 더 이상 빼앗아 올 수 없는 지점이 되자 몽골은 몰락했다. 세계를 한데 엮은 몽골의 성공은 전염병의 대유행이라는 예기치 못한 결과를 낳았고, 이는 ‘실크로드’로 대표되는 유라시아 육로의 쇠퇴를 가져왔다. 동시에 한때 세계의 중심이던 바그다드와 페르시아만 교역도 힘이 빠졌다. 맘루크(노예 술탄국) 치하의 카이로가 제네바와 결탁해 지중해-홍해-인도양으로 이어지는 교역로를 독점하다시피 하며 한때 잘 나가기도 했지만 유럽이 대서양 노선을 개척하면서 이 독점적인 교역로도 효력을 다했다. 이는 결국 인도양 노선의 쇠퇴, 더 나아가 ‘동양의 쇠퇴’로까지 이어졌다.

세 번째 덩어리 ‘인도양 체제’는 아라비아 순회로(아프리카 동부~인도 서부), 벵골만 순회로(인도와 동남아), 남중국해 순회로(인도양 동부~중국)의 세 바닷길로 구성돼 있었다. 인도 아대륙은 한때 지중해(유럽)와 남중국해 사이 ‘모든 곳으로 통하는 길’이었지만 서인도양에서 아랍-인도 패권이 종말을 고하면서 몰락한다.

가장 재미난 것은 세 번째 덩어리 중에서도 중국에 대한 것으로, 이 책의 핵심에 해당된다. 중국은 14~15세기 갑자기 대양에서 철수해버렸다. 그래서 말라카/동남아 해상은 무주공산, 아니 무주공해가 됐다. 이 공백을 인도나 중동이 메웠다면 역사가 바뀌었겠지만, 공백을 메우고 나선 것은 유럽(포르투갈과 네덜란드)이었다. 왜 그런 일이 생겼을까.

“적어도 지난 100년 동안 학자들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던 질문은, 그 당시 중국이 지고의 지위에 있었는데도 왜 세계체제에서 진정한 패자가 되는 최종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았는가라는 것이다. 14세기 말과 15세기 초에 중국은 자국의 해안으로부터 페르시아만에 이르는 인도양 일대에 대한 지배를 확립하는 데에 필요한 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왜 중국은 물러섰고 함대를 후퇴시켰으며, 그로 인해서 거대한 권력의 공백을 남겨 두었을까? 국가의 해군력에 의한 지원을 받고 있지 않던 이슬람 상인들은 그 공백을 메울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지만, 유럽은 약 70년의 휴지기 후에 좀더 의욕과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 (351쪽)

한때 서구 학자들 사이에서는 ‘명나라가 바다(교역)를 포기한 이유’를 놓고 창의성이 적었다거나(그래서 과학기술 발달이 유럽보다 뒤졌다) 제도가 나빴다는(개인의 창의성과 모험심을 부추기는 문화가 아닌 전제군주 문화였다) 식의 해석을 많이 내놓곤 했다(재러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와 맥닐의 <전염병의 세계사>는 이런 해석에다가 아부-루고드 식의 유물론적 해석을 적당히 걸치고 있는 듯하다).

2차 사료들을 검토한 저자의 해석은, “당시 중국은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중국은 왜 철수했나”가 아니라 “중국은 그 때 왜 경제적으로 붕괴했나”가 문제의 중심이 돼야 한다는 것.

저자는 송-원-명 교체기 중국이 내부적인 문제들로 인해 15세기에 어쩔 수 없이 해군을 포기해야 할 정도로 경제적 붕괴를 겪었다고 말한다. 송대 이래 중국 경제의 중심은 남부였는데 (몽골식 세계화의 여파로 인해) 남부가 전염병에 황폐화됐다. 게다가 명나라의 정치적 중심은 북부였다. 남쪽의 해상노선이 조금은 기능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정화의 원정대’를 중심으로 해상노선을 살리려는 마지막 노력을 기울였으나 실패했다. 그래서 중국은 바다에서 철수했다. 이와 함께 세계의 패권을 장악할 기회도 사라졌다.

이렇게 13세기 세계체제는 종말을 고했고, ‘다른 체제’가 이후의 세계를 지배했다. 체제의 변화를 살펴볼 때 유의해야 할 점들이 있다.

“첫째, 제 각각의 변수들이 아무리 확고하다 할지라도 체제들의 형성/이전/재구성을 하나의 변수로만 설명해서는 안 된다. 둘째, 연이은 체제들은 누적적인 방식으로 재편된다. 셋째, 어떤 체제도 완전히 통합돼 있지는 않고 가장 강력한 참가자에 의해 완벽히 통제되지도 않는다. 넷째 변화의 원인은 맥락 속에서만 의미를 가진다. 같은 행동이 다른 시기, 다른 체제에서는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마지막으로 체제변화 이론은 체제의 성장 뿐 아니라 체제의 쇠퇴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402쪽)

그리하여 결론은? 결론은 ‘미래의 세계체제들’이다. 13세기 체제를 뒤로한 채 출범한 ‘근대 세계체제’는 얼마나 존속할 것인가. 근대 세계체제의 두드러진 특징은 지금 상황에서는 ‘미국 패권’이다. 이 시기 패권은 대서양에서 태평양으로 이동했다. 중국의 성장(그리고 거기 연결된 아시아 용들의 발전)은 새로운 세계체제를 열 것인가.

그 대답을 누가 알리오. 중요한 것은 근대 체제와 다른 13세기 체제가 주는 시사점이다. 13세기 체제는 ‘다핵적’이었다. 지금의 체제는 단핵적이다. 20세기 후반 이후 서구는 탈식민지화로 잃어버린 특권을 경제적 수단을 이용해 유지하려 애쓰고 있다. 하지만 그런 시도는 점점 더 성공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그래서 처음에는 영국, 지금은 미국에 ‘체제 재구성’의 압력이 거세지고 있다.

“세계체제가 진정으로 전지구화 될 21세기에는 민족/국가들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게 한결 더 중요해질 것이다. 13세기에는 ‘핵’과 무관했던 수많은 생활권들이 있었고, 세계체제로부터 철수를 할 수도 있었지만 앞으로는 그러기가 힘들다. 아마도 우리들은 현재의 체제와는 달랐던 13세기 체제를 연구함으로써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405쪽)

다극적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자는 법, 신자유주의가 한계에 부딪쳤다는 지금 이 시기에 새롭게 와닿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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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 2008-11-30 2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만 읽어도 책의 좋은 내용들이 확 들어옵니다. 흥미로운 주제로 보입니다.
중국의 몰락 관련해서 내연기관을 만드는데 실패함으로 평하는 작가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몽골의 세계제국이 전염병의 세계화를 통한 내부 몰락을 겪었다는 분석은 재미있습니다.
신자유주의 또한 내부에 탐욕이라는 전염병을 세계화시키는 유사한 결과를 가져온 것 같군요. ^^

딸기 2008-12-01 10:17   좋아요 0 | URL
네, 책 재미있었어요. 전염병의 세계화에 대해서라면, 너무너무 탁월한 저작인 맥닐의 책을 꼭! 읽어보세요.
신자유주의에 대한 말씀, 동감합니다. 그 탐욕이라는 전염병에서 나온 지금의 위기가 '재채기' 수준으로 끝날지, 흑사병 수준으로 세계를 초토화시킬수는 알 수 없지만요...

로쟈 2008-12-01 0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관심을 갖고 있는 주제군요. 근데 13세기까지 또 거슬러올라가야 한다니까 다리에 힘이 좀 빠지네요.^^;

딸기 2008-12-01 10:16   좋아요 0 | URL
실은 저도 그것 때문에 미적미적 거리고 있었어요. contemporary 한 것이라면 또 몰라도, 역사 공부를 할 생각을 하니 아무래도 선뜻 내키지가 않았던지라. 하지만 생각보다 쉽게, 금방금방 읽을 수 있었어요.
 
털없는 원숭이 - 동물학적 인간론
데즈먼드 모리스 지음, 김석희 옮김 / 문예춘추(네모북)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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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 모리스하고는 크게 인연이 없었는데, 이 책은 정말 <우연하게> 읽었다. 며칠 전 교보문고에 가서 꼼꼼이 책 읽는 동안 나도 뭐 하나 뒤적여봐야겠다, 하다가 어린이도서 근처에 있는 것이 하필 생물학 책이어서 이걸 손에 쥐게 됐다. 워낙 책 읽을 때 밑줄 쫙쫙 쳐가며 지저분하게 읽는지라 역시나 이 책에도 볼펜 줄을 그었다. 그러니 돈을 내는 수밖에. 여러 가지 번역으로 나와 있는데 모두 번역자가 쟁쟁하다(김석희, 김동광, 이충호). 나는 그 중에서 김석희 선생 번역으로 읽었다. 물론 번역은 깔끔했다. 문예춘추사에서 나온 것이어서 편집은 좀 구닥다리 같았지만.

저자는 현생 인류가 원숭이 종류에서 그저 조금 밖에 달라진 게 없다면서, 아마도 외계인이 우리를 본다면 우리가 동물들에 이름 붙이듯 우리의 외모를 보고 ‘털 없는 원숭이’라는 학명을 붙일 것이라고 말한다. 책은 ‘동물학적 관점에서 본 인간론’이다. 섹스/육아(교육)/창의성/싸움/먹기/치장/인간관계 등을 놓고 털 있는 원숭이와 털 없는 원숭이의 차이점, 같은 점을 분석한다. 모리스가 동물 전문가라서 ‘동물학적 관점’이라고 스스로 설명을 하긴 했는데 요즘 식으로 쓴다면 ‘진화심리학으로 본 인간’이라 할 수도 있겠다.

요는, 인간은 겸손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을 동물학적으로 분석했다는 것 때문에 처음 출간됐던 당시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는데 지금은 시대가 바뀐 탓인지 별로 충격적이진 않았다. 얼마 전 재러드 다이아몬드 <제3의 침팬지>를 읽었기 때문에 내게는 참신성이 떨어졌다는 이유도 있고. 그러나 이 책이 무려 1960년대에 나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모든 게 용서가 된다.
시대가 시대였던지라 모리스는 맬서스적 인구론 차원에서 지구적 위기에 접근했는데, 만일 요즘에 쓴 책이라면 기후변화 얘기가 바탕에 깔린 담론이 되지 않았을까. 그럼 역으로, 앞으로 40년 지나면 기후변화 담론도 ‘옛날 얘기’가 되려나? 제발 그럴 수 있으면 좋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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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크루그먼, 미래를 말하다
폴 크루그먼 지음, 예상환 외 옮김 / 현대경제연구원BOOKS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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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은 된 것 같다. 뉴욕타임스에서 크루그먼의 컬럼들을 읽으면서 ‘깔끔하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지금도 잘은 모르지만) 경제 혹은 경제학에 대해 아는 바도 전혀 없고 별로 생각 같은 것을 해본 일이 없어서 그리 큰 관심은 없었다. 그저 유명한 학자, 유명한 컬럼니스트라고 하니 <경제학의 향연>이라는 책(뒤에 다른 출판사에서 재출간한 것으로 알고 있다)을 하나 사서 읽어봤는데 지금은 아무 내용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요즘 미국발 금융위기라는 것 때문에 경제 문제에 억지로라도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고, 이 책 저 책 뒤적이다가 큰 맘 먹고 <폴 크루그먼의 미래를 말하다>라는 제목의 이 책을 주문했다. 왜 ‘큰 맘’까지 먹어야 했냐면-- 당장 일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은 에세이류의 책이 아닐까 싶었기 때문이다. 폴 크루그먼의 이름이 책 제목에 당당히 붙을 만큼 이제 그는 한국에서도 유명한 학자가 되었는지 모르지만, 내겐 그리 큰 임팩트가 없는 저술가 중 하나였을 뿐이었다.

그런데, 책을 사놓고 책상 위에 굴리고만 있던 그 며칠 동안에, 이 사람이 노벨경제학상을 탔다!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 신문 기사들, 크루그먼을 소개한 글들을 읽어봤다. 이 사람 이름을 들은지는 꽤 오래됐지만 정작 잘 모르고 있었구나, 쉬이 볼 사람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랴부랴 책을 펼쳤다. 그리고 순식간에 읽어내려갔다. 책이 너무 잘 읽혔다. 노벨경제학상 때문에 잘 읽힌 것이 아니라, 책 자체가 주는 강력함이랄까, 그런 게 있었기 때문이다. 그 강력함, 그 설득력의 요체는 저자가 가진 ‘신념’이고 ‘가치관’이다. 옳은 생각을 힘 있게 말하는 사람에게서 나오는 힘.

몇해 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아마티아 센의 유명한 책 제목을 빌자면, 이 책은 크루그먼이 말하는 ‘불평등의 재검토’가 되겠다. 크루그먼은 20세기 전반기를 가리켜 돈이 세상을 지배하고 불평등을 양산하던 ‘길었던 도금시대’라 부른다. 이어 대공황이 닥쳤고, 프랭클린 루즈벨트 미국 대통령의 ‘뉴딜 정책’이 실시됐다.
뉴딜 이후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미국에서 중산층의 황금시대였다. 노동자들을 탄압해선 안 되고, 노동자들은 임금을 많이 받아 더 잘 살아야 하며, 너무 돈이 많아 금권정치를 펼치려는 사람들은 감히 그런 마음을 못 먹게 하고, 정해진 부(富)의 파이에서 혼자만 너무 큰 몫을 먹는 자들이 없게 하고, 빈부격차는 줄이고, 사회복지를 실현시켜서 어떻게든 많은 이들이 되도록 잘 살게 만드는 것이 정부의 당연한 목표이자 사회의 당연한 과제로 받아들여졌던 시대.
그러나 그 물밑에서 보수파(오늘날의 네오컨이나 기독교 우익 꼴통들)들은 조직적으로 시민사회가 얻어낸 결실들을 무위로 돌리고 ‘뉴딜 이전’, 아니 부자들이 모든 걸 장악했던 ‘20세기 이전’으로 돌아가게 만들려는 시도를 했다. 그들은 연구소를 만들고 부자들의 돈을 받아 ‘보수 연구자’들을 양성하고, 각 주에서 종교세력과 인종주의 세력들을 동원해 흑인과 이민자들의 투표를 가로막는 공작을 벌였다. 그들은 리처드 닉슨에게서 사람들의 공포심을 이용하고 흑색선전을 하는 법을 배웠고, 그 기술을 바탕으로 공화당을 장악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레이건이라는 ‘보수주의자(전통적 공화당원이 아닌 앞서 말한 의미)’를 내세워 권력을 잡게 된다. ‘부자들의 이데올로기’에 맞춰 가난한 사람들까지 공화당에 표를 던지게끔 만들었던 이들의 비결은, “공포를 부추기고 인종차별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었다.

이것이 크루그먼이 말하는 20세기 ‘미국의 역사’다. 그는 뉴딜이라는 사회적 계약이 어떻게 형성되고 어떻게 해체되었는가를 중심으로 미국의 최근사를 재해석했다. 여기서 핵심은 ‘빈부 격차’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양극화’가 키워드라 할 수 있겠다.
교묘하게, 때로는 노골적으로 여론을 조작하고(레이건은 그런 거짓말의 대가였다) 사람들을 현혹시켜 부자들에게 유리한 정치를 펼쳐 끝내 사회적 분열과 양극화를 가져온 보수파 정치는 이제 끝장낼 때가 되었다. 부자들 중에서도 초(超)부자, 이른바 ‘수퍼 리치(Super-rich)’가 세상의 부를 거머쥐고 나머지 사람들은 의료보험도 가입 못 한 채로 살아야하는 그런 시대는 끝낼 때가 되었다고 크루그먼은 말한다. “이제는 때가 되었다”고. 이 책에서 크루그먼이 빌려온 표현은 부자와 빈자들 간 격차를 팍팍 줄인다는 뜻의 ‘대압착’이다.

물론 크루그먼은 경제학자이지 사회운동가는 아니다. 책은 “실천에 나서야 할 필요성”과 “실천에 안 나설 경우 저들이 하는 짓”을 얘기할 뿐 개개인의 실천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지는 않는다. 굳이 대압착을 위해 실천할 방법을 찾자면 가장 쉬운 것은 민주당이 가장 진보적이 되어있는 지금 상황에서 미국인들이 민주당 대선 후보를 찍는 것이 되겠다. 공화당 감세론자, 작은정부론자, 부자중심주의자들에게 철퇴를 날리고 ‘제2의 뉴딜 시대’를 여는 것.

이 책은 이번 금융위기가 이렇게 터져 나오기 전에 출간된 것이지만 지금 이 시점에 특히 각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금융위기 시대 소비자의 행동지침’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양극화의 시대 경제학자의 양심’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메가 정부는- 저따위 것들도 ‘정부’라고 부를 수 있다면- 아주 양극화를 내놓고 자랑하면서 그길로 나가겠다고 발광을 떨고 있다. 부자들은 더 부자로 만들어주겠다고 설치는데, 그 하는 짓거리가 거창한 것(금산분리 완화, 방송겸영 허용, 부자들 감세, 부동산세 줄이기, 의료보험 민영화 등)에서부터 유치찬란한 것(농민 직불금 가로채먹기)까지 다 들어있어 목불인견이다.
크루그먼이 ‘미국의 실패’로 지적한 내용을 이메가 정부는 그대로 베껴다 할 모양이다. 신자유주의, 시장맹신주의가 지구적 파국을 불러오려고 하는 이 시점에! 책장을 넘기면서 가슴을 치지 않을 수 없었다. ‘때가 되었다’는 크루그먼의 말처럼, 미국에서는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가 대통령에 당선될 것으로 보이고 새로운 뉴딜정책이 필요하다는 얘기들이 나오고 있다. 대압착이 될지 소압착에 그칠지는 알 수 없지만 최소한 세상이 이메가 일당이 생각하는 식으로 돌아가선 안 된다는 공감대가 커지고 있다. 그런데 한국의 이 천박한 부자들과 천박한 자본주의는 대체 어찌할 것인가!

“나는 상대적으로 평등한 사회가 존재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를 위해서는 극심한 빈부격차를 제한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민주주의와 시민의 자유, 그리고 법치를 믿는다. 그래서 나는 진보주의자이며 나는 그것이 자랑스럽다.” (336쪽)

책의 원제는 ‘자유주의자의 양심’이다. 그 양심의 소리는 현실에 굳건히 뿌리를 내리고 있어 감동적이었다.

 

 ★ 크루그먼이 권하는 책들

일전에 '빌 게이츠의 책장에는 무엇이 꽂혀있나' 얘기한 적이 있었다. 그럼 크루그먼의 책장에는 무엇이 꽂혀 있을까.

크루그먼은 홈페이지에 "리버럴(진보인사)이라면 읽어야 할 필독서 7권"을 추천해 놓았다. 이 책들은 <미래를 말하다>에도 여러번 인용된 것들이다. 경제학자의 추천도서에 경제학 서적이 빠진 이유로 그는 “경제학자들이 대중을 위한 책을 쓰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릭 펄스타인 <폭풍 전에:배리 골드워터와 미국의 양심 파괴하기(Rick Perlstein, Before the Storm: Barry Goldwater and the Unmaking of the American Consensus)>
-아서 슐레진저 <구질서의 위기:1919~1933, 루즈벨트의 시대(Arthur M. Schlesinger, Jr. The Crisis of the Old Order: 1919-1933, The Age of Roosevelt)>
-토머스 에드샐 <불평등의 신정치학(Thomas Edsall, The New Politics of Inequality)·1984>
-토머스 프랭크 <캔사스가 뭐가 문제인가? 보수주의자들이 어떻게 미국의 마음을 얻었나 (Thomas Frank, What’s the Matter With Kansas? How Conservatives Won the Heart of America)>
-토머스 쉘러 <과거의 남부를 불러오기:민주당은 어떻게 남부 없이 승리할 수 있나(Thomas F. Schaller, Whistling Past Dixie: How Democrats Can Win Without the South)>
-놀랜 맥카티·케이트 풀·하워드 로젠탈 <극과극으로 갈라진 미국:이데올로기와 불평등한 부의 댄스(Nolan McCarty, Keith Poole, and Howard Rosenthal, Polarized America: The Dance of Ideology and Unequal Riches)>
-래리 바텔 <불평등한 민주주의:신황금시대의 정치경제학(Larry Bartels, Unequal Democracy: The Political Economy of the New Gilded Age)·온라인서적>
 

(국내에 번역된 책은 없는 것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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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8-10-22 2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크루그먼 이 책을 읽어보고 싶었는데, 마침 딸기님 리뷰가 올라왔네염. 역시 부지런하심.^^

딸기 2008-10-23 10:46   좋아요 0 | URL
이 책이 너무너무 뛰어나서라기보다도, 지금 한국 상황이 속터지니깐 저 학자의 글이 감동적으로 느껴지는 거겠지요. 발마스님, 그나저나 우리 언제 만나나요... 올해 가기 전에 시간 내주세욧!

로쟈 2008-10-22 2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국내에 번역된 책은 없는 것 같네" -> 국내엔 리버럴 인사가 없는 것 같네요...

딸기 2008-10-23 10:47   좋아요 0 | URL
어쩌면 그런지도 모르겠어요. 한국에서는 '리버럴'이라고 하면 여전히 양쪽에서 욕 먹는 신세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장하준 같은 사람은 어떨까요? 리버럴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young2miso 2009-01-18 1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폴 크루그만이 아시아 경제 위기 때 우리에게 어떤 처방을 권했는지, 한번 찾아 보시는 것도 재미있을 겁니다...
 
권력을 이긴 사람들 - 하워드 진 새로운 역사에세이
하워드 진 지음, 문강형준 옮김 / 난장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손에 잡자마자 순식간에 읽었다. 하워드 진의 책은 벌써 몇 권 째 읽지만 이번에도 역시 감동적이다.
역사에 대한 낙관, 정의와 평화에 대한 신념. 특히나 2MB 시대라는 황당무계한 시대를 살고 있는 한국인들 들으라고 하는 얘기 같기도 하다. 노학자이자 실천가의 굽힘 없는 태도와 강건한 메시지는 항상 마음을 울린다. 이 울림이 나의 움직임으로 이어져야 하는데.

 ▷ 우리나라에는 대통령도, 군대의 지휘관도, 월스트리트의 마법사도 아니지만, 불의와 전쟁에 저항하는 정신을 살리기 위해 무엇인가를 하고 있는 수많은 영웅적인 사람들이 있다.
나는 연방법에 저항해 경제 제재 아래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음식과 의약품을 전달하기 위해 수십 차례도 넘게 이라크로 향했던 케시 켈리를 비롯한 ‘황야의 목소리’ 회원들을 생각한다. 나는 미국의 이라크 점령을 반대하는 차원에서 텍사스 크로퍼드의 부시 대통령 휴양지 밖에 캠프를 열고 있는 신디 시핸과 ‘코드 핑크’의 여성들을 생각한다.
또한 나는 노동착취 공장에서 생산되는 옷들이 대학에서 팔리는 것에 항의하는 수천 명의 학생들을 생각한다. 얼라이언트테크시스템사의 지뢰 생산에 반대하다가 수차례 감옥에 갇혔던 미니애폴리스의 맥도날드 수녀 자매 네 명을 생각한다. 살인기술을 가르치는 전미대륙군사학교의 폐지를 요구하며 조지아주 포트베닝으로 향했던 수천 명의 사람들 역시 생각한다.
나는 흑인 운동가 무미아 아부-자말에게 내려진 사형선고에 저항해 8시간 파업운동에 참여했던 태평양연안의 항만노동자들을 생각한다. 그 외에도 너무나 많은 이들을 생각한다. 역사로부터 완전히 멀어지거나 침울해하지 않기 위해서는, 기념되지 않은 과거의 영웅들을 기억하고 알려지지 않은 주변의 영웅들을 찾는 일이 필요할 뿐이다. (74쪽)

▷ 치명적인 질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는 증상을 완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듯이 지구상에서 지뢰, 네이팜탄, 황린, 열화우라늄을 없애려는 운동은 그 자체로 중요하다. 그러나 그 모든 운동과 치료는 질병 자체의 제거가 필수적임을 이해하는 일과 반드시 함께 이뤄져야 한다.

전쟁의 철폐는 이상주의로 치부될 문제가 아니다. 미국에서 노예제 폐지 문제 역시 그렇게 비쳐졌으나 소수의 노예폐지론자들은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자신들의 이상주의적 꿈을 현실화시킬 만큼 강력한 전국적 운동을 조직해냈다. 우리 역시 전쟁 없는 세상의 꿈을 현실로 만들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오직 꿋꿋이 버팀으로써만, 오직 그 꿈을 포기하기를 거부함으로써만 가능하다. (177쪽)

▷ 테러와의 전쟁을 비판하고 그 수많은 위선을 드러내야 하지만, 오직 그 일에만 집중한다면 우리 역시 그 전쟁의 희생자가 된다는 사실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안 그러면 (적들이 여기저기 모든 곳에 있다는 대통령의 무시무시한 의견을듣고 있는 수많은 미국인들처럼) 미국인들을 묶어줄 하나의 생각에 눈길을 돌리지 못하게 될 테니. 우리에게 가장 치명적인 적들은 해외의 동굴이 아니라 수백만 명을 죽음과 비참함에 내주는 결정들이 나오는 기업 회의실과 정부 사무실에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그것이다.

이 적들을 물리치려면 우리에게는 시애틀 전투와 포르투알레그레의 정신이 필요하다. 지구의 열매를 함께 나눈다는 오래 미뤄졌던 목표를 바라보며 새로 활기를 되찾은 노동운동, 인종을 뛰어넘은 인민들의 행동, 그리고 전 지구적 연대의 시작을 알려주는 그 정신 말이다. (228쪽)

▷ ‘캠던의 28인’이 무죄방면된 것은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연방대법관 윌리엄 브레넌은 훗날 이 재판을 가리켜 ‘20세기의 위대한 재판들 중 하나’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이 재판은 징병위원회에 침입했던 반전운동가들에 대한 많은 재판들 중 배심원들의 투표로 무죄가 선고된 최초의 사례이기도 했다.
왜? 이 재판에서는 잔혹한 전쟁의 희생자가 된 미국인들과 베트남인들을 보면서 자신들이 얼마나 분노했는지를 들려준 동료 시민들의 이야기를 배심원들이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배심원들은 피고들이 어떻게 저항을 극대화하기 위해 법을 위반하기로 결정했는지를 이해하게 됐다.
국가가 전쟁을 하고 있는 오늘날, 상황은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은 중요하다. 조금씩, 조금씩 사람들은 배워간다. 거짓말도 밝혀진다. 한때 인기 있던 전쟁은 점점 의심받게 된다. 진실의 힘으로 미국인이라는 배심원에게 호소하면서 양심에 맞춰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충분히 많아질수록 상황은 그렇게 되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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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냐 2008-09-18 1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선량한 의도에서...옆 동료에게 선물해줬는데...빌려 읽으려고..ㅋㅋ. 아무래도 사야겠구만.

딸기 2008-09-19 17:06   좋아요 0 | URL
아냐, 선배는 사서 볼 필요까진 없어. 다 아는 이야기일 가능성이 높아.
뭔가 마음의 필요하다면... 감동적이긴 해.
 
조지 소로스, 금융시장의 새로운 패러다임
조지 소로스 지음, 황숙혜 옮김, 이상건 감수 / 위즈덤하우스 / 2008년 8월
평점 :
품절


<오류의 시대>가 워낙 재미있어서 이 책도 사서 봤는데, 경제지식을 늘려준다는 점에서는(나같은 금융분야 문외한에게 소로스 같은 거물 투자가는 그리 ‘친절한 선생님’은 아니지만) 도움이 됐다.
특히 책을 읽자마자 공교롭게도 미국에서 발생한 리먼브라더스 파산과 메릴린치 매각, AIG 위기, 그로 인한 세계 증시의 패닉을 보게 되니 아찔하다. 소로스가 예측한 ‘사상누각의 붕괴’가 눈앞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기 때문이다. 잘 알지도 못하는 ‘금융공학’ 용어들을 보면서 “이렇게 파생금융상품들로 엮어뒀으니 안 무너지고 배기겠나” “이거야말로 허공의 자산, 사상누각이 아니면 무엇일까” 싶었더랬다.
더욱이 오늘은 “신용디폴트스와프(CDS) 위기가 닥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는 기사까지 떴다. 소로스가 달인은 달인인 모양이다.

다만, ‘재귀성의 법칙’과 소로스의 철학에 대한 설명은 전작에서 읽은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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