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 없는 의사회 - 인도주의의 꽃
엘리어트 레이턴 지음, 박은영 옮김, 그렉 로크 사진 / 우물이있는집 / 2003년 6월
평점 :
절판


국경없는 의사회(MSF)에 대한 책을 읽은 김에 한권 더 펼쳤는데, 중간중간 유럽식 통찰력(사실 이 책의 두 저자는 <지구의 절망을 치료하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캐나다 출신들이다)을 보여주는 인상 깊은 구절들이 있긴 하지만 재미는 떨어졌다.

르완다 인종학살이 일어나고 1년 반 정도 지난 1996년에 아프리카를 찾아가 MSF의 활동을 직접 보고 쓴 책이라는데 내용은 거의 르완다에 국한돼 있다. 르완다의 당시 상황을 열심히 전달하려 한 것은 좋았고, 감동적인 혹은 눈시울 시큰하게 만드는 부분들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MSF의 안팎을 생생히 들여다보고 썼다 하기에는 너무 피상적이다. MSF의 누구누구는 이러저러하게 말했다, 이러저러하게 행동했다는 이야기를 반복해 밀도가 너무 떨어진다. 후반부에서 MSF의 고민을 많이 조명하려 애쓰긴 했지만 지지부진하다.

어설픈 르포 기자들 기사 쓰듯, ‘자기 얘기’가 얼토당토않게 들어가 있어 황당하기까지 하다. 르완다의 어느 마을에서 만난 MSF 의사가 불친절했다, MSF의 어떤 사람은 회의를 하면서 시끄럽고 냉소적으로 말했다, 뭐 그런 것들. 특히나 맨 마지막 부분. 저자가 집으로 돌아와 ‘마음의 상처’를 상담하려고 캐나다 MSF 상담의사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퉁명스럽게 끊어버려 고립감을 다시 한번 느꼈다며 책을 맺는데, 좀 어이가 없었다.

번역도 그렇다. 다른 건 말고, 존 버거를 존 베르거라고 썼다든가 미군이 2차 대전 뒤 깃발 꽂았던 일본 이오지마를 ‘이워 지마’라 해놓고 버젓이 괄호 열고 나이지리아 지명이라고 해설해놓은 것은 어이가 없다. 책 편집도 마찬가지. 책은 분명 캐나다의 글쟁이와 사진쟁이가 짝을 이뤄 만든 것인데 하얀 모조지 같은 지면에 흐릿한 흑백사진들로 구색 갖추려는 흔적만 냈다. 그래도 이런 책은 많이 나올수록 좋으니 참아주자.

   

전쟁은 원시사회의 발명품이 아니며, 대량학살이 아프리카 탈선의 산물은 더더욱 아니다. 대량학살은 유사 이래 늘 있어왔지만, 현대에 국한한다면 대량학살은 정치적인 동기로 유발되며, 특정 종족을 몰살시키는 형태는 다분히 유럽이 만들어낸 발명품이라 할 수 있다. 더구나 이 발명은 현대성의 핵심이다. 정치적인 전략으로서의 대량학살은 집단의 복종을 공고히 하고 지배계급 엘리트들의 편협한 야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대중을 흥분시켜 관심을 지배층의 결함으로부터 다른 곳으로 돌리고, 희생자의 부와 지위를 훔치며, 살아남은 이들을 억압하여 복종하게 만드는데 무방비의 소수를 상대로 한 대량 약탈과 학살보다 더 쉬운 방법이 현대 국가에게 있을까?

 

... 지그문트 바우먼은 대량학살이 전형적인 현대적 형태의 ‘사회공학’임을 갈파했다. 즉 ‘이성적으로, 행정적으로 조직된 권력’이 개입한 ‘계획’이라는 것이다. 바우먼에 따르면 현대의 대량학살은 특정 목적을 지닌 집단살상이다. “상대를 제거하는 것은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고” 단지 “더 나은, 근본적으로 다른 사회를 향한 큰 비전”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는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이 큰 비전 속에서 ‘완전한 사회’가 가능하며, 이는 투치족이나 집시, 자본주의자, 공산주의자, 동성애자, 유대인 등 치유 불가능한 방해 요소들을 제거하는 일이 전제되어야 한다. (29~30쪽)

 

왜 르완다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에메랄드그린의 색조로 감싼, 끝없이 늘어선 원뿔형의 구릉과 고요하고 푸른 호수들이 기막히게 아름다운 곳에서! 르완다는 ‘원래’ 가난한 곳도 아니었다. 세계에서 가장 면적이 작고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나라지만 비옥한 토양과 풍부한 강수량 덕분에 인재(人災)만 일어나지 않는다면 기근을 걱정할 일은 없는 곳이다. (36쪽)

 

르완다 사람인 관리인이 방명록을 적어달라고 했다. 망연자실해 있던 나는 “첫째가 응분의 조치, 그 다음이 화해”라는 말만을 떠올릴 뿐이었다. 나중에 차안에서 운전기사인 하산에게 내가 물었다. “화해가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대부분의 투치족 사람들이 그렇듯이 사려 깊은 하산은 한참 생각한 후에 입을 열었다. “힘들겠지요. 그러나 화해할 수 있습니다. 복수를 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짐승이 아니고 사람이니까요.” 나는 그의 관대한 영혼 앞에서 비틀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그 근처에서 있었던 학살에서 형제 둘을 잃은 사람이었다. (59쪽)

 

아마도 MSF 내에서 성인(聖人)의 후보자를 찾는다면 다른 곳과 하등 다를 바 없이 수도 적고, 거리가 먼 이야기가 될 것이 분명하다. 실제로 그들이 MSF에 동참하게 된 동기를 들어보면 천차만별일 뿐 아니라 지극히 세속적이기까지 하다. 취직이 안 돼서, 혹은 취업 대기중이었거나, 틀에 박힌 생활에 대한 저항으로, 모험과 좀더 의미 있는 일에 대한 갈망으로 뛰어든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러다 보니 몇몇은, 산업화되고 안보가 철저한 나라에서 권태로움을 느낀 부유한 사람들이, 자신들이 입힌 새디즘적인 상처에 환자용 변기와 붕대를 제공하고 약을 조제하고 처방하는 삶을 그리워하는 듯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이 고단한 임무를 수행하면서 느끼는, 개인적이고 내밀한, 드물게는 매우 명료한 만족감이 이들을 이 일에 묶어두는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70쪽)

 

“처음 이 곳에 왔을 때 꼬마들이 계속 내 주위를 뱅뱅 돌며 틈만 나면 내 손을 잡는 겁니다. 의지할 사람이 필요한 거죠. 아마 그게 이 일을 계속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79쪽)

 

현대사회의 불신은 너무 뿌리 깊어서, 알베르트 슈바이처가 다시 살아나 자신의 대의를 아프리카의 오지 병원으로 확산시키거나 테레사 수녀가 생애를 바쳐 캘커타의 빈민들에게 봉사한다 할지라도 그들의 명성에 해를 입힐 산업이 일어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들은 곧장 문화 아이콘이 될 것이며, 동시에 이들에 대한 역습도 준비될 것이다. 그들의 수과 목적이 권위주의적이며 심지어 민족중심주의적이며 괴벽스럽다는, 그래서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말이 어디선가 나올 것이다. 누군가 자신의 삶을 가난한 아이들을 돌보는데 바친다면, 아니 그럴 기미만 비쳐도 그는 아이들을 학대하는 소아 성애자가 되어버릴 것이다. 이것이 우리 시대의 정신이다. 노출되는 순간 변질되고 무력화된다. (231쪽)

 

MSF인이 된다는 것은 비인간화의 반대편으로 걸어가는 반(反) 소외의 경험이다. 멤버십은 그들을 자유롭게 하고, 행동할 기회를 잡았을 때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게 해준다. 이러한 해방감은 자신들이 하는 일의 순수성에 대한 강한 확신, 이 단체와 그들 자신의 도덕적 우월감과 더불어 나온다. 굳건한 신념과 강한 만족감이야말로 그들의 임무를 완수할 수 있게 지탱해주는 원천이다. 잔혹과 공포를 목격하는 것, 지독한 질병을 다루는 일, 심한 상처를 치료하는 일, 간이화장실을 설치하고 깨끗한 물을 공급하는 일은 모두가 그들이 진실과 직면하고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이러한 목적성과 도덕적 순결성을 가지고 행동하다보면 다른 딜레마들은 모두 자연스럽게 풀린다. (101쪽)

 

MSF인들은 일단 행동하고 나중에 질문하기 때문에 국제원조운동의 무모한 카우보이처럼 비쳐질 대가 있다. 그들이 보여주는 지나친 격렬함과 독신자나 가질 법한 외골수적인 태도는 많은 적을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자신들의 행동이 부적절했다거나 잘못된 길을 들어섰다고 판단하면 순식간에 결정을 바꾼다. 그건 유엔을 그처럼 총체적 경멸의 대상으로 전락시킨 관료들의 무감각증에 사로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2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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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절망을 치료하는 사람들 - 국경없는 의사회 이야기
댄 보르토로티 지음, 고은영 그림 / 한스컨텐츠(Hantz)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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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국경 없는 의사회(MSF)에 대한 보고서. 저자는 캐나다의 저널리스트 겸 논픽션 작가이고, 번역자는 MSF에 소속돼 니제르에서 일을 했었던 소아과 전문의라고 한다. MSF라는 존재가 워낙 명성과 논란거리를 동시에 안고 있는 단체인 탓에 책이 이 단체 혹은 이 ‘운동’ 그리고 ‘윤리’를 어떻게 다룰지 자못 궁금했다.
책은 아주 좋았다. 탄생에서부터 최근(2005년)까지 MSF의 안팎을 충실히, 격렬하고 논쟁적으로 다룬다. 비아프라에서 시작된 MSF의 역사와 르완다, 보스니아를 거치면서 쌓아올린 MSF의 활동과 핫이슈들이 망라돼 있다. 앙골라, 비아프라, 아프가니스탄, 체첸 등으로 이어지는 MSF의 ‘전선’들이 지구촌 곳곳을 가로지른다. 철망처럼 들쭉날쭉한 분쟁과 인도적 위기의 최전선에서 뛰어다니는 MSF 사람들의 숨 가쁜 호흡과 그 뒤의 고민들이 느껴지는 것 같다. 피 튀기는 분쟁의 현장에서 일했던 MSF 사람들이 겪게 되는 고통과 후유증까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요는, 방랑자처럼 떠돌아다니며 열정적으로 사람들의 목숨을 구하려 뛰는 MSF를 논쟁의 소용돌이로 몰아넣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이 사람들의 ‘좋은 일’을 말하는 데에도 시간이 벅찰 텐데 왜 그들의 활동에 대해 논란을 제기할 수밖에 없는가, 어째서 MSF를 본격 소개한 이 책은 눈물 뚝 콧물 뚝뚝 떨어지는 ‘미담’이 아닌 글로벌 사회의 윤리 논쟁 백화점으로 ‘변질’될 수밖에 없는가.
비아프라 기아가 자연재해가 아닌 대량학살임을 고발(그들의 용어로는 ‘증언’)하면서 탄생한 MSF는 출발부터 논쟁을 안고 있었다. 아마도 이들을 둘러싼 논란의 핵심은 인도주의적 개입의 문제가 될 것이다.
국제뉴스를 읽으면서 사실 가장 어렵다 싶은 것이 바로 이 문제다. 개입은 옳은가. 무기 팔아 돈 챙긴 서방 선진국들이 제3세계의 고난에 인도적으로 개입한다며 전쟁을 일으키는 것은 옳은가. 보스니아 무슬림들을 살리기 위해 사라예보를 폭격하는 것은 옳은가, 아니면 세르비아계가 무슬림들 다 잡아죽여 갈아먹도록 놓아두는 편이 옳은가. 수단 다르푸르에 아프리카연합과 유엔이 군대를 들여보내는 것은 옳은가. 미국이 쿠르드족을 구하기 위해(지랄염병;;) 이라크를 공격한 것은 옳은가.
개입의 문제가 첨예한 논란을 불러오는 것은, 이것이 근대 이후 세계의 버팀목인 ‘주권국가’의 국경과 정면충돌하기 때문이다. 글로벌리즘과 내셔널리즘이 부딪치는 선상에서 인도주의를 위한/내세운 개입이 이뤄진다. 그리하여 인도주의는 글로벌 시대 지구촌 주민들의 사명과 책무이면서 동시에 부시 같은 놈들이 이용해대는 허울 좋은 간판이 되는 것이고, 아프리카 어린이 돕기에 단돈 만원 안 보태는 사람들까지 “구호활동 문제 많아”라는 발뺌을 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할일은 많은데 세계는 복잡하다.

MSF 사람들의 스토리가 전해주는 감동은 역설적이지만 바로 그 첨예한 논란의 현장에서 나온다. 일각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왜 그들은 긴급구호의 와중에 ‘증언’을 하고 나설 수밖에 없는가, 어째서 그들은 ‘말 없는 자원봉사자들’이 되기를 거부하고 세상을 향해 “대량학살을 중단하라”고 외칠 수밖에 없는 것인가.
번역자는 본문 못잖게 재미있는 옮긴이 서문에서 인도주의의 정의와 한계 그리고 MSF의 존재 의미와 역동성을 정리해 놓았다. MSF는 ‘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는’ 사람들이 아니라 당장 굶어 죽어가는 환자의 입에 물고기를 넣어주는 사람들이다. MSF는 에이즈를 예방하거나 전쟁을 막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지금 당장, 누가 됐건 다치고 아픈 사람에게 약을 주고 상처를 꿰매 주는(실제로 MSF의 업무 중 상당수는 지뢰나 총격 따위로 너덜너덜해진 팔다리를 절단하는 일인 듯 보이지만) 것이 MSF의 사명이다. 그래서 그들의 일은 험하고 역동적이다. 더불어 낭만적이고 매력적으로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관료주의를 뒤로한 채 기민하게 빨리 움직일 수 있는 역량을 갖고 있는 것이다. 다시 한번 ‘그렇기 때문에’ 긴급구호를 넘어선 개입을 요구하는 그들의 목소리는 마음을 흔들고, 더불어 격한 반응을 불러오는 것 아닐까.

문제는 MSF에 있는 것이 아니다. 나쁜 것은 인도주의자들이 아니라, 인도주의를 내걸고 남의 나라 이권 뺏으려 전쟁 벌이고 악용하는 자들이다. 인도주의적 개입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악용해 다르푸르 사태를 가리려는 수단 정권, 감히 인도주의를 입에 올리며 이라크에 인도적 위기를 가져온 부시 같은 놈들이 나쁜 것이지 MSF가 나쁜 것은 아니다. 개입을 요구하는 인도주의자들의 목소리가 왜 나쁜가. 제 나라 사람들 다 죽이는, 그런 나라/정권의 주권 따위가 뭐가 중요한가.
또한 개입에는 분명한 선이 있다. 합리적이고 타당한 기준은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다. 지구적인 분쟁의 시기에 이런 기준을 만드는 것은 아마도 국제사회의 최우선 과제일 것이다. 유엔을 존중하고 유엔평화유지군을 통해 분쟁지역의 치안 활동을 벌이는 것도 가능한 해법 중의 하나가 될 수 있다.
누가 뭐래도 인도주의는 60억명 이상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지구의 지상과제다. MSF가 ‘지구의 절망을 치료할 수 있느냐’를 묻는 것은 우문이다. “국경없는 의사회가 세계를 구할 수는 없는 일이며 오래 전에 그럴 수 있는 척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이것은 대서양에 떨어지는 물 한 방울 이상의 것이다. 이것은 구조선이다. 배가 가라앉는 것을 막을 수는 없지만 생명을 구하며, 더 중요한 것은 희망을 약속하는 일인 것이다.” (293쪽)

 

인도주의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로니 브로만은 “인도주의 철학은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인간은 고통 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는 아니라고 대답한다’”고 얘기한다. 즉 인간의 고통을 어떤 역사적 혹은 정치적 잣대로 생각하는 것을 거부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인도주의는 어떤 정치적 야심과도 거리가 멀며 오히려 이들을 경계하고 구호 활동을 하는데 있어 정치적 중립성과 적군과 아군을 가리지 않는 비편파성을 근본 원칙으로 삼고 있다. 또한 로니에 의하면 인도주의는 보편적 도덕이나 모든 인간들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과 같은 거창한 과제를 짊어지지 않으며 이것은 인도주의가 유토피아에 대한 꿈이 아니라 특수하고 일시적인 현실의 한계 상황에서 희생자들의 가장 절박한 요구를 채워주는 행위이기 대무닝라고 말한다. 인도주의는 이런 면에서 최소주의를 지향한다고 할 수 있다. (8쪽, 역자서문)

 

MSF는 인도주의 구호 단체로서 중립성과 비편파성을 현장에 명시하고 있으나 필요한 경우에는, 즉 구호활동의 이상이 현실에서의 결과와 심하게 어긋날 경우에는 과감하게 철수를 결정하고 불의를 국제사회에 고발하겠다는 증언의 정신 또한 명시하고 있다. (10쪽, 역자서문)

 

청은 시에라리온에서 몇 년간 일한 한 독일인 외과 의사를 만났는데, 거기서는 수천 명이 도기를 휘두르는 반군들에게 손을 잃었다. 이 의사는 제1차 세계대전 때 개발된 크루켄버그 Krukenburg 수술을 잘 알고 있었는데 이 수술은 척골과 요골을 분리해서 가재 모양의 손을 만드는 것이다. 이 수술은 보기가 흉하기 때문에 의수를 곧바로 달 수 있는 서구에서는 시술하지 않는다. 그러나 시에라리온에서 이 수술은 불구가 된 사람들이 생산적인 삶을 일굴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109쪽)

 

국경이라는 말은 다른 것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동부 콩고의 도시인 부냐에서 우리는 오랫동안 헤마 족과 렌두 족과 같이 일해왔지만 그들은 서로 다른 쪽하고는 일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부족 간의 국경이지요. 지금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것은 기독교-이슬람 경계선을 가로지르는 것입니다.
... 자선과는 달리 인도주의는 진공상태가 아니라 더러운 현실에서 일하는 것이기에 원칙을 가지고 일할 수밖에 없죠. 이것은 단지 순수한 실행이 아닙니다. ‘국경 없는’이라는 의미는 하나의 정신이며 언제나 추한 현실에 참여해서 뭔가를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 ‘국경 없는’은 단지 카우보이식의 정신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반항아적인 요소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인도주의의 본질적인 요소입니다. 고통을 돌보기 위해서는 국경을 넘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153쪽)

 

우리는 내년에도 치료가 가능하게끔 노력하겠지만 보장할 수는 없습니다. 이것을 보장하는게 MSF의 일은 아닙니다. 이것은 그 나라의 몫이죠. 종종 우리는 과거 개발 현장에서 일했던 사람들이 향후 10년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에서는 아무것도 하기 싫어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10년이 흐르면 백신이 개발될지도 모르죠. 단지 올해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리자는 겁니다. (190쪽)

 

극단적인 경우에는 공적으로 정부를 비난한 후 MSF는 그 나라에서 철수해야 한다. 1985년 에티오피아와 1998년 북한에서 그랬듯이 말이다. MSF가 불완전하게나마 돌봐왔던 사람들은 철수 이후에는 전혀 의료의 혜택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비난은 최후의 수단이며 모든 다른 방법들이 실패했음을 알리는 분노에 찬 시인이다. 세계가 인권침해에 주목하게 하는 것은 MSF의 영역이 아니다. 그렇지만 고통 받는 사람들이 의교 이상의 것이 필요한데 주변에 아무도 얘기할 사람이 없을 때 혹은 의료 구호가 이용당하고 있을 때, MSF는 영역을 확장할 것이다. (2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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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7-12-12 0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한 번 구해서 읽어봐야겠네요. 사실 인권의 정치의 첨예한 쟁점 중 하나는 인도주의적인 개입의 문제 또는 말씀하신 대로 인권을 구실로 한 제국주의적인 개입의 문제죠. 마침 좋은 기사에 덤으로 좋은 책까지 소개받네요.
암만 해도 딸기님이 저를 사랑하긴 사랑하시는 거 같어 ... 3=3=3=3=3

딸기야놀러가자 2007-12-12 11:15   좋아요 0 | URL
^^
인도주의와 개입의 문제에 대해서라면, 피터 싱어의 <세계화의 윤리>를 강력 추천합니다.
덤으로, 타리크 알리 등등의 '전쟁이 끝난후'도....
코소보/보스니아 사태에 나토군 폭격이 옳았나... 옳다, 그르다 말하기 참 어려운 문제이지요.

물만두 2007-12-24 1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딸기야놀러가자 2007-12-25 10:42   좋아요 0 | URL
어머낫, 이번에도 언니 덕에 알게되었어요. 울랄랄라~ 캄사~~~

마노아 2007-12-26 16: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 참 언니 축하해요~ 금년에 두 번 된 거죠? 크리스마스 선물 되었어요. 히힛^^

딸기야놀러가자 2007-12-26 17:04   좋아요 0 | URL
그러게. 고마워. ^^

서연사랑 2007-12-28 15: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반가운 이름이 이주의 마이 리뷰에 떳네요^^
축하드려요~

딸기야놀러가자 2007-12-28 16:51   좋아요 0 | URL
서연사랑, 언제 봐도 오랜만이네... ^^
잘 지내지? 새해 복 많이 받아. :)
 
군사주의에 갇힌 근대 - 국민 만들기, 시민 되기, 그리고 성의 정치
문승숙 지음, 이현정 옮김 / 또하나의문화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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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으으... 이런 책은 별점을 마구마구 더줘야 하는데...

 

아주 속이 시원했다. 대한민국 사람들이 모두 이 책을 한번씩 읽어봤음 좋겠다. 올 하반기 읽은 책들 중에 정말이지! 맘에 드는 책이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만들어지고 군사독재, 다른 말로 ‘개발독재’가 시작된 이래 남성성과 여성성을 어떻게 차별해서 ‘나라만들기/국민만들기’에 동원했는지를 파헤친다.

저자는 1960년대부터 1987년 이전까지를 ‘군사화된 근대성과 성별적 대중동원’의 시기로 규정하고, 그 이후 2002년까지를 ‘군사화된 근대성의 쇠퇴와 성별화된 시민성의 대두’로 정리한다. 말하자면 이 책의 핵심 개념은 ‘군사화된 근대성’이다.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더니, 근대성도 우리나라에선 군사화돼 우리 사회에 뿌리를 내렸다.
그 군사주의의 빛(이라고 생각하는 놈들이 분명 있다, 그것도 많이)과 그늘(알게모르게 군사주의를 강요하는 시스템이 어디 한둘인가)이 지긋지긋하다고는 생각했지만 이렇게 꼼꼼하게 조목조목 짚어주니 구절구절마다 무릎을 치지 않을수 없었다. 좀 복잡하게 느껴질 수 있는 용어들이 없지 않았지만 정말 명쾌하고, 추리소설보다 더 재미있었다.
 
 

군사화된 근대성의 핵심 요소는 공산주의자 타자와 싸우는 반공주의의 자아로서 한국을 구성하는 것, 훈육과 물리력으로 반공 국가의 구성원을 만드는 것, 산업화 경제를 군 복무와 결합시키는 것이다....
한국은 ‘주적’ 북조선에 맞서는 반공국가로서 세워졌다. 나라를 이와 같이 이데올로기적으로 구성함으로써, 근대화를 추진하는 국가는 감시와 정상화라는 훈육 기술들을 사용할 수 있었다. 거기에다 제도화된 폭력까지 사용함으로써 개인과 사회 집단을 개조했다. 또 국가 정체성을 그와 같이 구성함으로써 다른 어떤 사회정치적 문제보다 군사적인 국가 안보가 중요한 것으로 자리잡게 되었고, 강한 근대적 국가를 구축하는 것, 남성의 군 복무를 경제 조직에 통합하는 것을 정당화할 수 있게 되었다. (46~47쪽)

 

사실 1960년대 한국인들에게는 대중 군사동원이 사회 정치적 세력화로 이어지는 역사적 경험이 전혀 없었다. 혁명 투쟁이나 독립 전쟁의 역사기록을 보면 그 시기 동안 평범한 남자들이 군인이 됨으로써 시민으로 바뀌는 것을 볼 수 있다. 그와 같이 병역의 긍정적인 유산이 있으면 군 복무가 단지 피지배자에게 강요되는 부담이 아니라 시민의 의무라고 보는 시민 공화주의에 기초한 관점이 생길 수 있다.
...한국의 제대 군인들과 그 가족들은 6·25 전쟁 동안의 대중 군사동원에 대한 대가로서 전후에 후한 경제적 혜택을 받은 것이 전혀 없었다. 대중 군사동원이 사회 경제적 권리를 얻는 길이 되는 역사적 경험이 없다는 것은 군 복무를 단지 위험하고 강제적인 부담, 가능하면 피해야 하는 부정적인 것으로 보는 대중적인 인식을 만드는데 일조했다. (77쪽)

근대화 국가가 여성의 국민 의무를 구성하는 데 생물학적 재생산자라는 여성의 정체성에 초점을 맞추었다는 점도 중요하다. 국가는 산업화를 추진하면서는 여성을 임금 노동자로 통합한 것과 대조를 이룬다.
... 몇 십 년간의 인구 억제정책에서 볼 수 있는 것은, 근대 국가의 여성 통합은 자식을 낳는 여성의 역할에 근거해서 이루어졌고 여성의 국민 의무는 자기 생식력의 애국적 통제로 요약되었다는 점이다. (1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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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05 15: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딸기야놀러가자 2007-11-05 15:25   좋아요 0 | URL
마구마구 지르십시오. 전 정말 재밌게 읽었습니다. ^^

비로그인 2007-11-05 15: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와 비슷한 생각을 해왔어요. 다만 군대라는 것이 정점에 있다고 해야 맞겠죠. 학교에서부터 시작해서. 군대는 정말 '대학'이 맞습니다. ㅋㅋ

딸기야놀러가자 2007-11-05 16:37   좋아요 0 | URL
근데 대학에서 배운 건 안 지키면서 왜들 군대에서 배운건 세상에 나와 떠들어대는지 모르겠어요.

비로그인 2007-11-05 17:45   좋아요 0 | URL
못나서 그렇죠 뭐 ㅋㅋ

딸기야놀러가자 2007-11-06 07:03   좋아요 0 | URL
우하하 우문현답이네요 ^^

라주미힌 2007-11-05 15: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딸기님을 신뢰하나이다...
지름신 출동... :-)

딸기야놀러가자 2007-11-05 16:37   좋아요 0 | URL
에헤라디야 ~(^^)~

딸기야놀러가자 2007-11-05 1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가만가만... 넘 질렀나 싶은 생각도 살짜쿵...
명랑쾌활한 책은 당.연.히. 아닙니다... 어쩌면 페미니즘 쪽에 관심 가지셨던 분들은
저처럼 신선하고 재미있게 느끼진 않으실 지도 몰라요 ^^;;

마노아 2007-11-05 1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름다은 폼푸질이에요^^

딸기야놀러가자 2007-11-06 07:01   좋아요 0 | URL
ㅋㅋ 마노아도 넘어가라... 넘어가라...

로쟈 2007-11-06 0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뒤늦게 독자(임자)를 맞났군요.^^

딸기야놀러가자 2007-11-06 07:01   좋아요 0 | URL
저도 이 책이 제법 따끈따끈할 때 사놓기는 했었어요 ^^;;

멜기세덱 2007-11-05 2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읽다가 잠깐 접어놓았더랬는데.....딸기님 땜에 다시 꺼내 읽어야겠어요...근데 전 잘 진도가 안 나가더라구요...ㅋㅋㅋ

딸기야놀러가자 2007-11-06 07:02   좋아요 0 | URL
쉽게 술술 넘어가지는 않아요, 사실.
그런데 뭐랄까, 뿌연 안개를 시야에서 싹 걷어주는 느낌이 있어요.

다락방 2007-11-06 0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전 이런쪽으로는 완전 문외환에다 무관심인데 보관함에 넣어버리고 말았어요. 하하 ^^;;

딸기야놀러가자 2007-11-06 07:02   좋아요 0 | URL
사셔요! 사셔요!
 
자본주의와 자유
밀턴 프리드먼 지음, 심준보 외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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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이름만 듣고 정작 한번도 접해보지 못했던 밀턴 프리드먼의 책을 올여름 읽었다. 유명한 책이라고 한다. “<자본주의와 자유>를 읽지 않고서는 현대 경제학을 논할수 없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영향력 있는 100권의 책 중 하나”. 분량이 생각보다 많지 않고(320쪽 정도) 에세이풍이길래 한번 읽어봐야지 하고 도전해봤다.

책이 처음 나온 것은 1962년. 1982년에 한번 다시 냈고, 그 다음에 2002년 다시 펴냈다고 한다. 내가 본 책에는 이 세 버전의 저자 서문이 모두 붙어 있다. 저자가 2002년판 서문에서 밝혔듯, 1962년과 이후 20년, 또 그 뒤의 20년 동안 미국 뿐 아니라 세계 경제는 커다란 변화를 겪었다. 프리드먼이 이 책을 썼던 시기 미국은 ‘공산주의와의 싸움’에 골몰하고 있었고, 2차 대전 이후의 정부 주도형 경제가 유지되고 있었다. 1980년대 미국은 여전히 람보식 공산주의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긴 했지만 세계화가 시작되고 ‘민간경제’가 커지면서 경제의 분위기는 사뭇 달라졌다. 그리고 2002년은 신자유주의와 글로벌화가 한창 진행된 시점이었다.

책 내용은 제목 그대로다. 자본주의는 인류에게 자유를 선사해준다. 자유는 자본주의 속에서만 가능하다. 모든 규제는 자본주의의 적이다. 따라서 자유의 적이다. 공산주의와 싸움에서조차 매커시즘 식의 규제, 헐리웃 블랙리스트 같은 멍청한 규제는 필요없다. 왜냐? 모든 것을 해결해줄 수 있는 것은 시장이지 규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시장을 믿으라. 자본주의와 자유를 믿으라. 정치적 자유도 시장이 가져다 준다. 인간 본성에 대해 너무 많이 말하지 말라. 경제에서 가격을 결정하는 것은 통화량이지, 기업인이나 노동자의 탐욕이 아니다. 프리드먼의 별명처럼 돼버린 ‘통화주의’의 사상적 배경은, ‘돈의 양만 빼고는 아무것도 손대지 마라’라는 것에 있다. 정부도, 공산주의자도, 자유주의자도, 우익도, 모두모두 시장에서 손을 떼시오!
노벨경제학상까지 받았다는 경제학자가 쓴 글을 놓고, 경제 문외한인 내가 이렇게 비아냥거리려니 좀 그렇긴 하다. 하기사, 이 책이 재미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나는 저렇게 비아냥거리긴 했지만 속으로 뜨끔뜨끔한 구석이 많았다. 내가 뭘 잘못해서 뜨끔하고 찔렸다는 얘기가 아니라, 긴가민가 싶은데 프리드먼이 딱 잘라 말하니 어쩐지 솔깃해진 부분들이 있었다는 얘기다.

프리드먼은 2002년판 서문에서, 인류는 수십년간 초유의 ‘실험’(공산주의와 계획경제)을 해보았으며 이젠 그 결과를 눈으로 확인했다고 말한다. “경제를 조직하는 두 가지의 택일적 방식, 즉 하향식 대 상향식, 중앙집중적 계획·통제 대 사적 시장, 더욱 쉽게 말하면 사회주의 대 자본주의를 놓고 70여년에 걸쳐 벌인 실험에 극적인 종지부를 찍었다. 이 실험의 결과는 홍콩과 타이완 대 중국 본토, 서독 대 동독, 남한 대 북한이라는, 더욱 소규모로 이루어진 그와 유사한 여러 실험에 의하여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경제학은 그 특성상 과학자들의 실험과 같은 제한된 시공간 내에서의 인위적 실험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과학적으로 입증하기 힘든 학문이라고들 한다. 그런데 본의 아니게, 애당초 ‘실험’이 목적이었던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인류는 20세기 근 100년 동안 실험을 한 꼴이 됐고, 결론이 내려졌다는 것이다.

프리드먼의 말은 틀린가? 별로 틀리지 않은 것 같다. 제3세계에서 계획경제, 사회주의적 경제체제를 골랐던 나라들 줄줄이 실패했다. 프리드먼 말대로, 차라리 시장경제 택한 나라에서 전반적으로 소득이 늘어나면서 빈부격차도 줄어들었다. 정확히 빈부격차가 줄어들었는지 아니면 절대빈곤이 줄어들면서 전반적으로 생활수준이 향상된 것인지는 몰라도, 아무튼 아프리카 빈곤국들보다 자본주의 해본 나라들이 잘 사는 것은 사실이다. 이 책에선 언급되지 않았지만 세계화 문제만 해도 그렇다. 고립된 나라들보다 개방되고 세계화된 나라들, 외국과 무역 많이 하는 나라들이 더 잘 산다.
빈부격차 없는 나라 없고 세계화 시대에 빈부격차 더 커진다고 반박할 사람도 있겠지만, 좌파가 됐건 우파가 됐건 사실은 사실인 거다. 따지고 보면 빈부격차가 커지는게 뭐가 문제랴. 100원 가진 사람, 1000원 가진 사람 나뉘어있던 사회가 1000원 가진 사람과 1000만원 가진 사람 있는 사회로 바뀌면 빈부격자는 엄청 커진 꼴이지만, 제일 가난한 사람들 돈이 많아진 것 또한 사실이다. 프리드먼은 45년 전에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자본주의의 메신저 역할을 했던 것이고, 사회주의와의 싸움에 너나없이 달려들었던 시기에 ‘자본주의 진영’에서는 그에게 노벨경제학상을 안겼던 것이다.

딱히 프리드먼의 말에 반박도, 동조도 할 수 없다. 다만 나는 궁금할 뿐이다. 지구가 다 세계화/자본주의화 되면 지금 1달러 미만으로 하루를 살아야 하는 사람들,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이 다 사라지고 모두 하루 100달러씩 쓰면서 살수 있게 되려나(그렇게 하루 100달러씩 쓰면서 살수 있는 세상이 되면 이 지구의 에너지 과소비와 환경문제는 또 어떻게 되려나). 자본주의가 꽤 성공적이었는데 왜 지구상 어떤 곳에서는 실패가 계속되고 있나.
프리드먼은 아쉽게도, 구체적인 의문에는 대답해주지 않는다. 아니, 대답할 필요를 못 느낀다고 해야 하려나. 좋은 의도가 있건 없건 결과적으로 좋으면 좋은 거야, 자본주의 하니까 자유도 생기고 빈곤도 없어지고 복지도 찾아오는 거야. 하지만 아직까지 자유도 돈도 복지도 인권도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데? 20세기 최고 경제학자였다는 프리드먼의 글은 속을 시원하게 해준다기보다는 속을 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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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7-10-29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읽어야지 한 지는 오랜되 계속 밀려나고 있는 책이에요.꼭 프리드먼때문은 아니고 다른 재미있는 것들이 더 많아서.
자본주의 외에 다른 것이 있었나요?좌쪽에서는 사회주의의 실패가 아니라 스탈린주의의 실패라고도 하는데 맞는 말이긴해도 좀 밀어붙이는 느낌이 강하게 들긴합니다.오히려 세계체계론자들의 주장은 그런 면에서 일청할 필요도 있어보여요, 처음부터 사회주의란 것도 자본주의 품 안에서 벗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런 견해는 또한 논란의 여지가 많아 보이지요^^ 어쨋거나 자본주의는 맑스가 예견했듯이 야만성을 존재론적 속성으로 삼게 되니 어떤식으로든 고삐를 묶어야지요.근대의 자본주의의 역사는 따지고 보면 고삐를 묶냐 고삐를 풀어주냐 ..그리고 조인다면 어떤 형태로 고삐를 조이느냐의 논쟁이었던 듯 해요..서재에 밀려 있는 10권의 책이 또 프리드먼을 밀어낼 듯 해서..내년이나 볼려나.
월요일인데 휴..오늘도 멀리 갔다와야되네.

딸기야놀러가자 2007-10-29 10:24   좋아요 0 | URL
에... 사실 '긴 이야기'이기 때문에 간단 답글로 말하기가 뭣한데요. 프리드먼 책이라고는 달랑 이거 하나 읽어봤기 때문에 제가 맞게 이해를 한것인지도 사실 100% 자신할 수 없고요.
자본주의 외에 다른것이라... 글쎄요, 좌파 우파 기준으로 본다면 이 책은 딱 '우파'가 쓴 것이기 때문에(정확히 말하자면 프리드먼의 관점에서 오늘날 '경제적 우파'라는 것의 시각이 많이 정리돼나온 것이라고 봐야겠지요) 아마도 그냥 드팀전님이 상상하시는 내용 그대로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흔히 좌파 우파 나눌 때에 우파가 하는 바로 그 이야기, 그 정도라는 겁니다.
다만 세상 일은 좌우로 나눠 볼 일이 아니고, 특히 우파보다 좌파적 사고방식이 결과적으론 더 큰 문제를 야기하고 있는 측면이 있으니까요. 철딱서니 없는 좌파들의 눈으로 세상을 보다가 말 그대로 '발전을 망치는' 경우가 많다고 저는 생각해요. 문제는, 그런 눈으로 보더라도 프리드먼의 글은 너무 구식이라는 거지요 ㅎㅎ 좌우 양쪽 모두를 보고 장단점을 따져보니 우파 쪽이 맞더라, 하는 것이 아니라, 걍 공산주의 사회주의 나쁘다는 쪽에 가깝습니다. 이 책은 1960년대에 나온 것이니깐...
읽을 땐 그냥저냥 재밌었는데, 읽고 몇달 지나고 나니 홀라당 다 잊어버렸어요. 별로 영양가가 없었던 셈이죠. ^^

비로그인 2007-10-30 1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예전에 프리드먼의'샤워실의 바보'란 비유를 듣고 정말 재미있었는데요. ^^ 시장의 자율적인 기능을 믿는다는 건 마치 사람의 피부 등 조직이 스스로 치료해나가고 (마데카솔과 후시딘이란 피부연고도 작용하는 점이 다른 것처럼), 자연의 자정작용을 믿는것과 같다고 보는데요. 어떤 시스템이건 간에 결국 누군가 일부 집단이 권력을 가지게 되기 마련이고 (그게 인간의 본성이니까. 요즘 인간의 본성이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 마구 깨닫고있거든요), 자국의 시장이 좁다고 느끼는 국가는 다른 나라의 시장을 제국주의처럼 흡수하고자 하게 되겠지요. 학자이신 밀턴 프리드먼도 조금은 순진하신게 아닌가 싶어요.

딸기야놀러가자 2007-10-31 06:55   좋아요 0 | URL
그런지도 모르지요 ^^
 
기로에 선 미국
프랜시스 후쿠야마 지음, 유강은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11월
평점 :
절판


이번 여름에 몇 권의 굵직한 책들을 읽었다. 두께나 분량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고, 내용의 무거움 측면에서 읽은 보람이 있다 싶어 뿌듯한 그런 책들이다. 그 중 가장 탁월했던 것은 파리드 자카리아의 ‘자유의 미래’였고 나머지는 밀턴 프리드먼의 ‘자본주의와 자유’, 브레진스키 ‘제국의 미래’, 문승숙 ‘군사주의에 갇힌 근대’, 그리고 이 책, 후쿠야마의 ‘기로에 선 미국’이었다. 모두 무게가 적잖은 것들인데, 읽고 나서 정리를 제때 제때 하지 않은 탓에 머리 속에서 뒤죽박죽이 되어 두통을 안겨줬던 책들이다.

후쿠야마는 설명할 필요 없이 ‘역사의 종언’의 그 사람이다. 세상엔 그 책을 욕하는 이들이 많지만 그 말을 인용하고 비판하는 이들이 그렇게 많다는 것은 그 말이 얼마나 위력적인지를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나는 ‘역사의 종언’을 (후쿠야마가 이미 역사가 끝났다고 말한지 15년이나 지나서) 몇 달 전에야 읽었는데, 왜들 그렇게 후쿠야마 욕을 하는지 솔직히 잘 이해가 안 됐었다. 15년전에 그 책을 읽었더라면 나도 그렇게 욕을 했으려나? ‘역사의 종언’은 헤겔 칸트 어쩌구 하는 철학적이고 학술적인 책이지, 곧이곧대로, 그러니까 ‘문자 그대로’ 역사의 종언이라는 말을 끌어다가 비판하면서 “역사가 뭐 끝났다 그래” 이렇게 단순하게 이야기할 성질의 텍스트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더랬다.


어쩌면 후쿠야마를 욕했던 사람들은, 사회주의의 몰락으로 역사의 한 패러다임이 진짜로 끝나는 줄 믿었던, “안 끝나!” 하면서 고집만 부렸던 그런 사람들이 아니었을까. 후쿠야마의 책이 나오고 15년이 지나 읽은 내 눈에, 그 책의 표현들은 좀 예스럽지만 개념들은 오히려 현재진행형으로 보였으니 말이다. 그래서 솔직히 나는 그 책이 대단히 마음에 들었고, 다 알아먹지는 못했지만 ‘똑똑한 학자의 똑똑하고 어려운 책’으로 기억에 남았다.


후쿠야마가 새 책을 내놨다고 해서 두말 않고 주문하려고 보니 번역자는 국제문제와 관련해 주로 ‘진보적인’ 책들을 솜씨 있게 번역해왔던 유강은씨다. 이 저자에 이 출판사에 이 번역자는 참 조화로우면서도 안 어울린다 싶었는데, 역시나 기대했던 대로 책은 훌륭했다. 책은 후쿠야마가 본 미국의 현실, 네오컨에 휘둘리다 ‘막 나가버린’ 미국을 담고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 책의 주인공은 네오컨이다. 네오컨은 부시 행정부 들어서고 나서 세간의 입에 오르내렸지만 그 뿌리는 오래됐다. 책은 네오컨이라는 집단이 어떻게 형성됐고 어떻게 해서 세력을 잡았는지, 그러다가 어떻게 막나가서 요모양 요꼴이 됐는지를 집중 조명한다. “나도 한때는 네오컨이 괜찮을 줄 알고 솔깃했는데 지금 보니 너희들 대체 왜그러니. 그렇게 하면 미국 망하고 세계도 망한다니까.” 요지는 이렇다.


후쿠야마는 책에서 네오컨의 뿌리에 해당되는 사람들을 거명해가며 누구는 진짜 네오컨이지만 누구는 사상으로 봐서 어정쩡하다, 누구는 첨엔 아니었지만 나중엔 주위 사람들 말에 솔깃해져서 네오컨이 됐다 등등으로 좀 거칠게 설명한다. 문체는 다소 공격적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네오컨들은 선악을 판단기준으로 삼던 가치 중심의 옛 좌파들(이 점에서 네오컨은 브레진스키나 키신저같은 정통 보수파와는 태생부터 다르다)이다. 그런 면에서 레이건은 네오컨이었고, 부시는 나중에 네오컨이 된 부류에 속한다. 람보 식의 대결주의, 부시 식의 ‘악의 축’ 운운하는 복음주의 비슷한 공격 성향은 이렇게 해서 이해가 가능해진다. 그들의 관심사는 원래부터 ‘유리하냐 불리하냐’ 하는 전략전술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선이냐 악이냐’ 하는 가치 판단의 문제였던 것이다. 


부시와 그 떨거지들이 너무나, 너무나 ‘확신범’처럼 보였던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이라크전쟁 전에 네오컨이 아닌 아버지 부시 전대통령 쪽에서 레이건주의자들로 구성된 현 부시 행정부에 딴지를 걸었다는 분석과도 맥락이 맞아 떨어진다.


익히 짐작할 수 있듯, 선악의 판단이 끝났다며 역사의 종말까지 선언했던 후쿠야마가 네오컨들에게서 돌아선 데에서는 이라크 전쟁과 그 뒤의 상황이 큰 영향을 미친 것 같다(널리 알려진 대로, 새뮤얼 헌팅턴이나 크리스토퍼 히첸스가 이라크전에 쌍수 들어 환영한 것과 달리 후쿠야마는 처음부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었다)


네오컨들은 이라크에 자신들이 생각하는 선한 정권, 미국적이고 민주적인 정권을 세워 세상을 안전하고 아름답게 만들고자 했다. 그러나 요즘 막나가버린 짜가 네오컨들은 길을 잘못 들어섰다. 


“1990년대에 이루어진 미국 군사기술의 성공은 군사 개입이 언제나 걸프 전쟁이나 코소보 전쟁처럼 깔끔하고 값싸게 진행될 수 있다는 환상을 낳았다. 이라크 전쟁은 이런 형태의 가볍고 기동력이 있는 전쟁의 한계를 명확하게 보여주었다. 현존하는 거의 모든 재래식 군사력을 파괴할 수는 있지만 장기적인 반란에 맞서 싸우는 데에는 특별한 이점이 전혀 없는 것이다. 통합정밀직격탄과 TV 유도형 대전차 미사일은 반란자와 비전투원을 구별하지 못하며 병사들에게 아랍어를 가르치지도 못한다.”(58쪽)


그래서 럼즈펠드 류가 이끄는 이라크 전쟁은 실패했다. 더불어 네오컨의 ‘체제 변경’(레짐 체인지) 전략도 실패했다. 백악관을 자기네편으로 끌어들인 네오컨이 너무 오만해져서 상황을 잘못 판단했기 때문이다.


“(네오컨의 대부인) 스트라우스식으로 이해된 정치 체제는 공식적인 제도나 권력 구조만을 의지하지 않는다. 정치 체제는 그것의 토대가 되는 사회를 형성할 뿐만 아니라 사회에 의해 형성된다.”(50쪽). “스트라우스도 고대의 정치철학자들도, 민주주의가 기본적인 정치 체제여서 일단 독재를 제거하면 사회가 자연스럽게 민주주의로 되돌아간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51쪽).


그런데 네오컨들은 무식하게도, 후세인을 없애면 이라크가 ‘민주화’ 될 줄 알았다. 왜 그랬을까? 세상 사람들 다 ‘불가능하다’ ‘쉽지 않을 것이다’ 했는데 왜 백악관의 그 자들은 착각의 늪에 빠졌던 것일까? 후쿠야마의 시각에 따르면, 네오컨들은 과거부터 ‘소수파’였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권과 정말 비슷하다.


“냉전 기간 신보수주의자들은 멸시받는 소수 집단의 지위에 익숙해졌다. 그들은 인습적인 지식에 도전하면서 베를린 장벽의 붕괴 등 사람들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해결책을 추구하는 데에도 익숙해졌다. 공산주의의 갑작스런 붕괴는 이런 생각들의 정당성을 많은 부분 입증했으며, 1989년 이후에 이런 생각은 분명한 주류처럼 보이게 되었다. 그들은 자신감 속에 ‘우리 대 그들’이라는 유대감을 강화했다. 2001년 권력의 자리에 돌아온 국방부와 부통령실의 전쟁 주창자들은 자신들과 견해를 같이하지 않는 사람들을 지나치게 불신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끼리끼리 소수파로 뭉쳐 세상에 맞섰던 선(善)의 수호자(누구 맘대로;;)들은 자신들만이 옳다며 배타주의를 더욱 고수하게 되었다! 문제는 그들이 세계 최강 미국의 권력을 손에 쥐고 남의 나라에 폭탄을 퍼부을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는 점이다. “손에 망치만 든 사람에게는 모든 문제가 못처럼 보인다는 말처럼” 그들은 단단한 힘만을 생각하다가 부드러운 힘은 아예 잊어버렸다. 


“어느 누구도 원칙적으로 부드러운 힘의 사용에 반대하지 않았다. 단지 그것에 대해 크게 생각하지 않았을 뿐이다.”(88쪽)


남의 나라 아수라장 만들어 수만명 죽음으로 내몬 자들에 대한 평가 치고는, 후쿠야마의 평은 참으로 우스꽝스럽다. 분석은 잘하는데 나쁜 놈이 나쁜 이유는 나쁜 짓을 해서가 아니고 좋은 일을 제대로 잘 못해서라고 하는 꼴이다.


뒷부분 ‘그래서 미국은 어떻게 해야 되나’ 하는 쪽은 대략 민주당 주장이나 별반 다를 바 없다. 어찌 됐든 책은 재미있었고, 미국 네오컨들에 대해 알려주는 점이 많았고, 구구절절 설득력 있는 이야기들(각론 측면에서)과 못돼먹은 생각(전체적으로)이 잘도 섞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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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7-10-05 1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니는 어려운 책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리뷰를 써주세요. 그리고 적절한 비유로 읽는 사람을 즐겁게 해주지요. 리뷰가 맛있었어요^^

딸기야놀러가자 2007-10-05 17:21   좋아요 0 | URL
마노아 혹시 내일(토요일)도 일하니?
나 우리 딸 데리고 시내에서 놀 것 같은데, 마노아랑 만나볼까 해서.
너무 늦게 말했나... ^^;;

마노아 2007-10-05 19:07   좋아요 0 | URL
아앗, 이럴 수가! 내일 일이 있어요. 흑흑...
멀리 진주에서 지인이 올라와서 같이 뮤지컬 보기로 했거든요. 우웅.. 아쉬워요(>_<)
아가도 볼 수 있는 기회인데..ㅠ.ㅠ

icaru 2007-10-05 1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잘 읽었습니다. ^^

딸기야놀러가자 2007-10-05 17:22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이카루님. ^^

딸기야놀러가자 2007-10-06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 역시나 내가 너무 늦게 즉흥적으로 얘기를 했구나. :)
시간은 많으니깐, 10월 가기 전에 꼭 만나자.

마립간 2007-10-19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부를 저의 서재 페이퍼에 올립니다.

딸기야놀러가자 2007-10-19 17:41   좋아요 0 | URL
넵. :)

maynard 2014-02-14 0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오콘이 노무현정권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다니 이런 어처구니없는 소린 첨 들어본다.
노무현정권이 남의 나라 침략해서 그 나라를 반식민지 비슷하게 만들려했나?
아니면 누구처럼 국민을 기만해서 나라돈을 도적질을 했나?
네오콘들은 오히려 우리나라의 뉴라이트와 유사하다고 할 수있지 않나?
그 이름과 근원도 유사하다.네오콘은 신보수,뉴라이트는 신우익인데 그들의근본이 얼치기 좌파라는 점까지 유사하다. 그러나 그들의 이념은 사실 좌파 우파를 떠나 오로지인간의 이기심과 물질숭배,힘(군사력,경제력)만이 유일한 가치판단의 척도가되는 천박한 역사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고 더우기 미국의 네오콘과는 달리 한국의 이익보다는 외세의 이익(엄밀히 말한다면 외세에 기생하는 자신들의 이익)을 더 우선시하는 매국적 집단이니 더더욱 한심하다.
위 서평이 오른 시점이 2007년. 아직 뉴라이트가 발톱을 드러낸 시기가 아니라 서평자가 잘 인식을 못했겠지만 지금 다시 서평을 쓴다면 그 내용이 달라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