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최전선 - 지상의 미군들
로버트 카플란 지음, 이순호 옮김 / 갈라파고스 / 2007년 8월
절판


미 육군 특수부대는 제 2차 세계대전 때 활약한 전략정보국(OSS), 그 가운데서도 특히 나치 점령 하의 프랑스 적군지대에 남겨진 제드버러 팀과 버마에서 작전을 펼친 101파견대에 그 유래를 두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전략사무국이 해체되자 그 후신으로 1947년에는 미 중앙정보국, 1952년에는 포트 브래그에 본부를 둔 제10특전단이 신설됐다. 케네디 대통령은 동남아 특수부대 역할을 강화하면서 그들에게 그린베레를 수여했는데, 정작 특수부대원들은 그린베레라는 말을 거의 쓰지 않았다. 그들은 그린베레보다 ‘SF'라는 명칭을 더 좋아했다. 특수부대의 진정한 특징은 복장이 아니라 12명 팀이라는 조직에 있었다. -67쪽

남부사령부는 대서양과 태평양을 잇는 철도를 보호하기 위해 최초의 미군 해병대가 파나마에 도착한 1903년에 설립되었다. 남부사령부의 지휘 범위는 중남미와 카리브해에까지 미치고 있다. 남부사령부는 미군 사령부들 가운데 가장 이질적이고 보수적인 식민지풍 부대다.
... 남부 사령부의 정체성은 열등감으로도 정의됐다. 유럽이 냉전의 주 전쟁터가 되고 공산주의 중국과 북한의 위협을 받는 아시아가 부 전쟁터가 되자 남미의 미군은 광활한 지역을 방어하고 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수십년 동안 홀대를 받아왔다. 남부사령부는 강압적 외교가 수반된 적극적 첩보작전과 특수부대의 현지군 훈련으로 그에 대응했다. (71쪽)
... 실제로 남부사령부에는 유대인이 거의 없고, 북동부에서 온 병사들은 모두 아프리카계거나 아니면 푸에르토리코계, 그렇지 않으면 도미니카계 뿐이다. -87쪽

특수전사령부의 발족은 그린베레 이래 특수전 부대에서 일어난 가장 드라마틱한 사건이었다. 그러나 실상은 특수전사령부는 중부사령부나 태평양사령부, 그 밖의 다른 지역사령부들과 같은 수준으로는 작전통제 임무를 맡지 못했다. 특수전사령부가 전투사령부로서 이름값을 하게 된 것은 미국이 전 세계에서 테러와의 전쟁을 치르면서부터였다. 그 결과 특수전사령부도 이제 다른 사령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고 책임 범위도 전 세계에 미치게 되었다. 그것은 알카에다가 관료제의 방해를 받지 않는 전세계적 조직으로 남아있는 한 특수전사령부도 독립 조직으로 존재해야 한다는 논리에서 나온 것이었다.
... 특수전사령부는 국방부가 아닌 의회에서 예산을 지원받는 유일한 사령부다. 특수전사령부의 활동은 다른 사령부들과는 달리 극비 사항이 무척 많다. 아프간과 파키스탄 국경지역에서 수행하는 ‘특수전 부대 비밀 임무’는 특히 테러와의 전쟁의 요체였다.
... 특수전사령부는 또 육해공군으로 이뤄진 대단위 정규전에 많이 의존하고 있는 지역사령부들과 달리 비정규전을 치르는 국방부의 관료기계라고도 할 수 있다.-287쪽

제국주의는 정복보다는 지역군의 훈련과 더 관계가 깊었다. 미국의 기술과 무기시스템에 대한 의존, 미군 장교들과 제3세계의 피보호국들 간에 맺어진 관계로 미국은 전 세계의 필요한 곳에 용이하게 접근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특수부대가 제3세계 군대를 훈련시킬 때는 훈련에 쓰이는 무기와 장비도 함께 공급했다.-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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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최전선 - 지상의 미군들
로버트 카플란 지음, 이순호 옮김 / 갈라파고스 / 2007년 8월
절판


윌헴은 미국대사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아 ‘세 개의 기둥’ 전략안을 마련했다.
-몽골 국경의 방어문제는 중국의 재래식 군사위협보다는 중국인 이주와 다국적 테러리즘을 포함한 불법 국경유입에 더 신경을 쓴다. 중국 서부의 위구르족이 그 예가 될 수 있다. 중국의 억압을 받는 무슬림 위구르족은 체첸 마피아와 알카에다의 도움을 받아 중앙아시아 테러의 핵심을 이루는 것으로 생각된다.
-몽골군을 세계 평화유지군으로 적극 활용할 수 있도록 준비시킨다. 그것은 몽골군을 국제무대에 진출시켜 탐욕스런 주변 강국들(러시아와 중국)에 맞설 수 있는 외교적 보호막을 제공해주기 위해서다.
-국제 재난에 대처할 수 있도록 몽골 자체의 역량을 함양시킨다.-151쪽

스탄 자 붙은 나라들은 기능장애를 일으키고 있는 일인독재국가들의 집합체였다. 그와는 달리 인종 간 갈등이 별로 없는 몽골에서는 징기즈 칸이 나랄르 하나로 결집시키는 국민적 영웅으로 부상했다. 징기즈 칸은 인종주의자라든가 유토피아적 이데올로기의 부담이 없었다. 그는 그저 정복자일 뿐이었다.
... 소련은 몽골이 위성국이었을 때 대중들의 징기즈 칸 경배를 금지시켰다. 그 반작용으로 소련이 붕괴되자마자 징기즈 칸은 몽골의 위대한 지도자로 급부상했다. 징기즈 칸의 얼굴은 카펫, 제단, 지폐, 맥주, 보드카 병 등 안 찍혀있는 곳이 없었다. 그의 위상은 이제 막 첫발을 내디딘 민주주의 정치인들의 존재를 압도하여 거물이나 독재자가 되려는 사람들의 기를 꺾어놓는 역할을 했다. 그것이 몽골의 민주주의를 든든하게 했다.-156쪽

몽골인들은 70년 동안 소련의 지배를 받았음에도 러시아보다는 중국을 더 두려워했다. 중국은 티베트와 신장웨이우얼 지역으로 자국민들을 대거 이주시킨 것처럼 내몽골 지역에도 한족을 유입시켰다. 몽골은 다음 차례가 자신들이 되지 않을까 전전긍긍했다. 그들 머릿속에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같은 불교를 믿는 티베트의 운명이었다. 몽골의 국가안보 원칙에는 ‘인종의 순수함’을 강조하는 문구가 들어 있었다. 그것은 그들이 만주족과 같은 침투를 얼마나 두려워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몽골인들은 중국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이는 사스에 대해 편집증적 공포감을 드러냈다. 그들은 전염병 하나면 몽골같이 인구 희박한 나라는 순식간에 쑥대밭이 될 것이고 그것이 결국 중국의 인구 정복을 도와주는 또 하나의 길이 될 것이라는 점을 우려하고 있었다.
“러시아는 70년 동안 우리 정치를 지배하면서도 몽골을 소련에 편입시키지는 않았어요. 그러나 중국은 우리를 흡수하려 들 겁니다.” 몽골은 내적으로 약한 중국에 대해서도 두려워하고 있었다. 남서부 무슬림 위구르 투르크족이 중앙아시아 테러리즘과 마약 밀매를 확산시킬 것이라는 두려움이다.-167쪽

칸다하르는 아프가니스탄에 남아있는 유일한 그리스 지명으로, 알렉산드로스의 현지 이름인 이스칸데르에서 유래했다.
... 1747년 나디르 샤가 암살되자 아브달리족 부대 지휘간 아마드 칸은 4000명의 기병을 이끌고 페르시아를 빠져나와 남동쪽의 칸다하르로 향했다. 그는 스물 네 살에 아프간의 왕 아마드 샤가 되었다. 칸다하르에 정착한 아마드 샤는 카불과 헤라트를 정복하고 진주를 뜻하는 말에서 나온 두라니 왕조를 세웠다. 그가 이끄는 아브달리 부족은 이후 두라니족이 되었다. 현대의 아프간은 두라니 왕조에서 생겨난 것이다. 두라니족은 모하메드 다우드 총리가 소련의 지원을 받아 최후의 왕 자히르 샤를 타도한 1973년까지 아프간을 지배했다.
하미드 카르자이도 두라니족의 하위 부족인 포폴자이족 족장이므로 아프간 왕족이라 할수 있다. 그런 까닭에 그도 아마드 샤와 급진적인 탈레반 만큼이나 칸다하르 주민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칸다하르는 예나 지금이나 북서쪽 헤라트의 페르시아 세력 혹은 북동쪽 카불의 인도 아대륙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아프간인들의 순수한 고향으로 인식돼 왔다.-29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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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최전선 - 지상의 미군들
로버트 카플란 지음, 이순호 옮김 / 갈라파고스 / 2007년 8월
절판


콜롬비아에서 마약 밀거래는 정부, 전통적 가족, 콜롬비아의 진정한 부(富)인 코카, 유황분 적은 석탄, 에메랄드 사업을 독점하는 과두들에 대한 중상류층이 경제적 무기였다.
“젊어서 고통스럽게 죽으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들은 빈곤의 고리를 끊어 가족에게 좋은 일이라도 하려고 하죠. 마약 밀거래자들도 그 사실을 알고 있어요. 콜롬비아는 미성년자를 성인 재판정에 세우지 않습니다. 범죄조직들은 그것을 악용하여 아이들에게 흉악한 행위를 대신 하도록 시키는 거예요. 그러면서 아이들에게 만일 그러다가 잡히거나 죽으면 가족에게 돈으로 보상을 해주겠다고 약속하고, 또 실제로 약속을 지킵니다. 그래서 아이가 죽으면 아이 부모를 새 집으로 이사시킨다, 형제들을 사립학교에 보낸다 하며 수선을 떨어요. 그것은 국가라면 도저히 해 줄 수 없는 일이죠. 콜롬비아에서는 사춘기 소년 누구나가 사람을 죽일 수 있어요. 예멘에서는 그렇게 못하죠. 범죄에 한계가 있어요. 이슬람법이 강력한 도덕적 기준이 돼 주기 때문이죠.”-48쪽

콜롬비아는 울창한 숲과 밀림, 김이 모락모락 솟아오르는 원시적이고 야생적인 모습이 꼭 천지 창조의 사흘째를 맞는 지구의 모습같았다. 브라질을 제외하면 콜롬비아는 남반구 최대의 조류와 곤충 서식지다. 미국 남동부 전체 면적의 4분의1 크기만한 콜롬비아는 강력한 중앙정부를 세우기는 불가능하고 무정부 상태와 게릴라가 활개치기에는 그만인, 그야말로 신의 걸작품이라 할만한 지형을 가진 나라다. 조지프 콘래드는 콜롬비아를 ‘뱀들의 천국’이라 불렀다.
콜롬비아는 항상 크기가 지나치게 크거나 아니면 지나치게 작았다. 도시들은 서늘하고 방어하기 쉬운 고지대에 밀집돼 있어 서로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산지에 위치한 도시의 주민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아마존 강과 오리노코 강의 원주민 지역들로 분리돼 있고 침투하기도 어려워 보이는 정글 저지대를 개발할 가능성도 없었고, 굳이 개발할 필요성도 느끼지 않았다. -103쪽

콜롬비아는 에스파냐 식민주의자들에게 착취당한 노예와 인디오들의 세계였고, 에스파냐 사제들은 현대 이란의 아야툴라들 만큼이나 광신적이고 잔인했다.
... 콜롬비아는 20세기 초의 커피공화국에서 20세기 말의 코카인 공화국으로 돌연변이를 일으켰다. 결과적으로 콜롬비아 저지대의 삼림은 제거되었고 귀중한 목재는 강탈당했다. 아마존 강 유역의 천연고무도 자동차 확산이 가져온 수요 때문에 남아날 길이 없었다. 그로 인해 폭력적인 프론티어 사회가 형성되어 범죄와 이주율이 높아지면서 고지대 도시문명을 위협하게 되었다. 1945년에서 1964년 사이 농민들은 자유파와 보수파로 갈라져 내전이 일어나 20만 명이 숨졌다. 그 악몽 같은 내전은 너무도 무의미하여 라 비올렌시아 La violencia 라고만 간단히 알려지게 되었다.-10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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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최전선 - 지상의 미군들
로버트 카플란 지음, 이순호 옮김 / 갈라파고스 / 2007년 8월
절판


사나는 채색유리 격자세공과 석고 프리즈 장식이 된 현무암과 흙벽돌 건물들이 늘어선 것이, 꼭 동화 속 아라비아 나라를 보는 듯했다.
사나 도심에는 값싼 서구풍 나일론 의복을 입은 사람이 거의 없었다. 값싼 폴리에스테르 의복을 입는다는 것은 부족적 정체성이 와해되고 도시화로 인한 심한 압박을 받고 있다는 의미였다. 사나 시민들은 서구풍 복장을 하지 않고 예전대로 바둑무늬 머릿수건이나 카슈미르 숄을 쓰고 있었다. 남자들은 허리띠 중앙에 장식용으로 구부러진 단검 잠비야를 꽂고 있었다. -31~32쪽

“테러리즘은 자수성가형 인물들이 주도하는 기업활동이예요. 예멘에는 적극적이고 잇속에 밝고 잘 무장된 2천여만명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웃한 사우디아라비아인들보다 몇 배는 더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죠. 그것이 예멘의 미래예요. 그것은 또 리야드 정부를 떨게 하는 요소이기도 합니다.”-45쪽

나는 무르세드 족장이 구해준 운전기사 압둘라와 함께 사나를 떠나 사암, 검은 용암 절벽, 사막에 우뚝 솟은 산, 바람에 깎여 가파른 계곡이 된 메사(꼭대기가 평탄한 탁상 지형)가 미로처럼 뒤얽힌 지역으로 들어갔다. 계곡들은 어느새 성서 속의 시바 왕국으로 여겨지고 있는 폐허가 곳곳에 산재한 회색 황무지로 변했다. 시장에 들어섰는가 했더니 어느새 나는 콘크리트 블록의 지저분한 상점들 한복판에 서있었다.
... 잠비야는 날이 무디고 칼집에서 빼기가 쉽지 않아 무기로는 잘 쓰이지 않고 부족적 관습의 힘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었다. 부족적 관습은 예멘의 묻지마 범죄율을 낮춰주는 사회적 접착제 구실을 하고 있었다. AK 자동소총은 그것과는 다른 문제였다. -50쪽

예멘은 약 8천만 기의 화기를 보유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예멘인 한 사람당 4기의 총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그 당시 미국 정보계는 예멘의 1인당 자동소총과 수류탄 보유율이 세계 최고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었다.
... 검문소에서 근무하는 병사들은 시에라리온에서 본 병사들처럼 술에 취해있거나 광포하지 않았고, 옛소련 그루지야의 도마뱀 눈을 한 마피아 같은 사람들과도 달랐다. 예멘은 실패한 국가가 아니었다. 예멘은 세계의 다른 나라들처럼 조금 허약한 나라일 뿐이었다. 그것이 내 눈앞에 계속 펼쳐지고 있는 경치를 그토록 압도적으로 보이게 하는 요소였다.-51쪽

벌집 모양의 벽이 아직까지도 남아 있는 마리브의 거대한 댐은 기원전 8세기를 시작으로 1천년 동안 지면의 정교한 관개시설과 더불어 이 사막을 푸르게 만들어 주었다. 시바 왕국은 이집트의 나일 강 유역이나 튀니지의 카르타고에 못지않게 매혹적인 고대문명의 일부를 이루고 있었다. 파라오가 다스린 이집트는 아라비아 반도의 이 구석진 땅을 푼트의 땅(신의 땅)이라 불렀고, 히브리인들은 오빌 Ophir 이라 불렀다. 그렇다면 예멘의 내적 혼란은 이같은 역사의 자연적 산물이 아닐까. 그리고 이 자연적 산물은 다시 지형의 결과물이 아닐까.
... 면적은 사우디의 4분의1 밖에 안 되지만 인구는 사우디와 비슷한 예멘은 고대부터 아라비아 반도의 인구 밀집지역이었다. 드넓게 퍼져 있는 현무암 고원이 화산암과 모래성 형태를 이루며 우뚝 솟아오른 이곳은 오아시스 연결고리가 형성돼 있어 고대부터 도시에는 늘 사람이 북적거렸다. -56쪽

예멘 왕국들은 고유의 거대한 향료 하이웨이를 타고 부국이 되었다. 프레야 스타크는 이렇게 썼다. “그들은 제국주의자가 되었고, 귀족이 되었으며, 대도시 건설자가 되었고, 소말릴랜드와 에티오피아를 식민지로 만들었다.” 그러나 예멘의 부족왕국들(시바, 하드라마우트, 힘야르 왕국 등)은 제국주의자로 행동했음에도, 서로에 대한 견제가 심하여 어느 왕국도 현재의 예멘을 통째로 지배할만한 제국으로 성장하지는 못했다.
... 살육전은 결코 끝나지 않았다. 예멘 북부에서는 1962년부터 1968년까지 보수적인 이맘과 나세르 이집트 대통령의 지원을 받은 혁명군부 간에 내전(이것이 차츰 일상적인 부족 분쟁으로 발전해갔다)이 일어나 20만명이 목숨을 잃은 뒤에야 군부가 통치하는 예멘 아랍공화국이 들어섰다. 예멘 남부에는 영국 보호령 아덴에 소련 지원을 받은 예멘인민민주주의 공화국이 수립되었다. 그리고 1986년, 예멘 공산당의 지도부를 교체하려는 소련의 시도로 그곳에서는 한달간 부족 전쟁이 일어나 예멘인 만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57쪽

1990년 북예멘과 남예멘은 소련 붕괴에 뒤이어 공산정권 남예멘이 와해되면서 공식적으로 통합되었다. 그러나 동유럽과 달리 예멘의 민주주의 실험은 실패로 돌아가 1994년 예멘에서는 또다시 내전이 일어났다. 이 전투에서 북예멘은 7천 명의 사망자를 내고 승리를 거두었다.
... 예멘의 가족, 마을, 부족은 고대부터 이 나라를 분열시켜온 봉건적인 3대 악재였다. 그래도 한가지 긍정적 요소가 있다면 예멘에는 그로 인해 이라크와 시리아 같은 과도하게 중앙집권적인 전제권력이 들어서지 못했다는 것이다.-58쪽

편협한 부족 분쟁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길이가 160여 킬로미터에 이르는 사우디 부근 와디 하드라마우트 오아시스는 기원전 1천년부터 인간이 정주해 살며 서양에는 알려지지 않은 비옥한 코즈모폴리턴 세계의 일부를 이루었다. 현대에 생겨난 인도네시아의 급진적 이슬람만 해도 18세기 하드라마우트 상인들이 세운 이슬람 교육센터에 유래를 두고 있고, 하드라마우트 상인들의 21세기 사업망 역시 고대의 시바와 시미아르의 향료상인들이 시작한 교역망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사업망은 또 오사마 빈 라덴 일가가 근처의 와디 도안 출신이듯, 알카에다 같은 단체들이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편리한 통로가 되어주기도 했다. -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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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최전선 - 지상의 미군들
로버트 카플란 지음, 이순호 옮김 / 갈라파고스 / 2007년 8월
평점 :
절판


이사 간 동네가 미군기지 옆이다. 옆에도 앞에도 미군기지, 길 건너 조금만 돌아다니면 미군기지. 아파트 엘리베이터 타면 종종 미군과 미군의 가족들이고, 골목길 부동산에도 ‘미군 공식 계약 부동산’ 하는 선전이 붙어있다. 태어나 이렇게 미군들 많이 보는 것은 처음이다. 간만에 걸어보자 했는데 미군기지 기나긴 담벼락 지나가야 하고, 산보 해볼까나 하고 나서면 보이는 것은 미군 기지, 그리고 기지와 기지를 잇는 그들만의 다리들. 언덕 위 전철역은 미군기지에서 흘러나온 기름으로 오염됐다 해서 몇 해 전 언론이 시끄럽게 떠들었던 곳이다. 심지어 이 동네 지나갈 때 자동차 네비게이터를 켜면 화면이 온통 사막 같은 회색이다. 군사구역. 미군 곁에 붙어사는 것 좋아할 사람 누가 있겠느냐마는, 확실히 기분이 개운치는 않다.

작년이었나, 그 해의 ‘첫 책’을 로버트 카플란으로 장식하는 것은 어쩐지 기분이 언짢아서 굳이 연말에 다 읽을 수 있었던 ‘무정부주의가 온다’를 내버려두고 ‘동방견문록’을 붙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해서 그 해의 첫 책은 카플란 대신 고전으로 ‘당당히’ 독서카드에 기록을 할 수 있었는데 사실 별 의미도 없는 나만의 쓸데없는 고집일 뿐이다. 지난 연말부터 올 초까지 정신없이 바빴던 탓인지, 시간은 있는데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탓인지 책을 통 읽지를 못했다. 그렇게 질질 끌기만 하다가 결국은 지난해 가을부터 오래오래 붙들고 있던 이 책으로 올해 테이프를 끊었다.

예상했던 대로, 책은 기분 나빴다. 카플란의 책은 다 기분 나쁘다. 그런데 왜 보냐고? 봐야 하니까. 카플란의 책은 결국은 출간 되는대로 골라 읽을 수밖에 없는 것이, 딱 이 작자만이 담아내는 그런 내용이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카플란은 ‘미군’을 집중 탐구한다. 그냥저냥 자료 찾고 인터뷰 곁들여 구색 잘 갖춘 저널리스틱한 책 따위로 그치진 않는다. 카플란은 직접 군복을 입고 지구상 첨예한 대립지점, 미군이 위치하는 곳곳을 찾아간다. 총 들고 순찰을 돌고, 미군이 느끼는 생명의 위협을 같이 느끼고, 사막의 먼지바람을 마신다. 그가 만나는 미군들, 그가 이 책에서 그토록 칭송해 마지않는 미군들은 펜타곤의 장성들 혹은 워싱턴의 군사 관료들이 아니라 말 그대로 ‘최전선의 보병들’이다.

책은 2002년부터 2004년 사이 예멘(중부사령부), 콜롬비아(남부사령부), 몽골과 필리핀(태평양사령부), 아프가니스탄(중부사령부와 특수전사령부), 아프리카의 뿔 지역과 이라크(중부사령부), 그리고 미국 캠프 레준의 해병대와 노스캐롤라이나의 육군 본부를 찾아다니면서 기록한 것들이다.
카플란은 미군이 세계를 움직이는 진정한 제국의 수레바퀴라고 생각하고 있고, 미군이야말로 가장 정직하고 순결하고 고고한 존재들이라고 보았다. 더불어 가장 종교적 즉 기독교적이며 가장 도덕적(!)이라고, 그러니 못된 미디어들이 이라크전과 대테러전쟁에 오물을 씌우고 있는 현실에 맞서 이 숭고하고 빛나는 존재들이 어떻게 지구를(그러니까 미국의 이익을) 지켜내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저널리스트인 자신의 임무라고. 그것이 카플란이 이 책을 쓴 목적이다.

 

내용은 순전히 이런 구도대로 이뤄져 있다. 포맷은 챕터 별로 거의 비슷하다. 형편무인지경으로 버려지다시피 한, 갈등과 혼란과 부패에 빠진 예멘(그리고 콜롬비아, 필리핀, 아프간, 아프리카, 이라크). 그곳을 지키는 미군 중부사령부(그리고 남부사령부, 태평양사령부). 그곳에서 뼈빠지게 국가의 이상을 지키며 숭고한 임무를 수행해가는 용감한 미군들(다만 몽골만은, 미군의 지도 하에 훌륭하게 체제를 변신시켜가는 모범사례로 소개됐다). 미국은 제국이며, 제국은 수호자들을 필요로 한다. 제국이 없으면 세상은 혼란 뿐이다(이 점에선 니얼 퍼거슨 류의 신종 제국예찬론자들과도 맥락을 같이 한다). 그러니 미국이여, 세계여, 미군을 예찬하라.

엊그제 버락 오바마 편인 시카고 교회 목사가 미국의 인종차별을 비판하며 ‘갓댐 어메리카’라는 말을 했다가 난리가 났다는데, 이 작자 눈에는 아부그라이브의 미군도, 팔루자에서 민간인 대량학살을 저지른 미군도 극히 도덕적이고 영웅적인 제국의 지킴이들일 뿐이다. 갓댐 어메리카.

 

그런데도 꾸역꾸역 읽기는 읽어야 하니... 어떤 저널리스트가 미군을 이렇게 직접 찾아다니며 생생한 현장에서 ‘밑바닥 미군’의 정서와 가치관을 드러내주겠느냔 말이다. 그런 사람이 카플란 밖에 없기 때문에 미군에 대한 그의 책은 기분나빠하면서도 굳이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다.

사실 미군이 이런 식의 밀착 취재를 허락해준 것도 상대가 미군 사랑으로 넘쳐나는 카플란이었기 때문임을 고려한다면, 이런 식의 주제와 소재를 담은 책이 카플란에게서만 나오는 것은 당연한 듯도 싶다. 알이 먼저인지 닭이 먼저인지는 모르지만 암튼 미군에 대해 뭐 한 자락이라도 주워들을 필요가 있는 입장에서라면 그나마 카플란 같은 사람이 책을 써주는 게 고맙지 않느냐 하면서 읽을 수밖에. 일례로, 미군의 이라크·아프간 전쟁에서 핼리버튼 계열사 켈로그 브라운 앤드 루트 같은 ‘죽음의 기업’들의 역할을 놓고 미국 내에서도 말이 많은데, 이 책을 읽다보면 미군과 그런 기업들이 ‘남이 아닌’ 사이임을 깨닫게 된다. 말 그대로 ‘군산복합제국주의’인 셈이다.


또 하나는, 역시나 기분 더럽게 만드는 측면이 있긴 하지만, 남들이 잘 안 돌아다니는 지역에 가서 그 적나라한 실상을 까발겨 준다는 점이다. 예멘과 콜롬비아, 필리핀, 아프가니스탄, 동아프리카 소말리아와 이라크. 맛이 갈대로 간 이런 나라들에 대한 카플란의 묘사들에는 보통의 저널리스트라면 절대로 쓸 수 없는 막가파식 표현도 많이 섞여 있지만 또 그만한 통찰력이 숨어 있다. 예멘의 현재에 대해 아직 카플란이 이 책에서 써놓은 것 같은 구체적인 글을 읽어본 적이 없다. 어찌됐든 이 작자가 쓴 책은 골라골라 다 읽어보는 수밖에 없겠다. 이 책의 뒷부분에 카플란이 자기 얘기를 좀 털어놓고 있어서 재미있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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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8-03-22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불편해도 읽을 수밖에 없는 책이었군요. 그나저나 꼼꼼이 학교는 집에서 가까운가요?

딸기야놀러가자 2008-03-24 09:50   좋아요 0 | URL
응, 큰길 하나만 건너면 돼.
요새는 뭐니뭐니해도 안전이 최우선이니깐... 나는 큰길 말고 뒤로 돌아가라 했는데,
내 여동생은 꼼꼼이 뒷길 말고 큰길로 다니게 하라 하더라구.
교통사고와 범죄 중 더 무서운 쪽을 피해다녀야 하는 현실...

파란여우 2008-03-28 2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기하고 나하고 이주의 마이리뷰 동반 당선되었다우 :)
축하축하!

마노아 2008-03-28 22:50   좋아요 0 | URL
오옷, 두분 모두 축하예요! 딸기 언니 얼마 전에도 타지 않았나요? 연이어 축하예요!!

딸기야놀러가자 2008-03-29 20:42   좋아요 0 | URL
어머나 어머나 그런 일이 있었군요! 나도 축하, 언니도 축하!
마노아, 축하 고마워 ^^

멜기세덱 2008-03-31 13:09   좋아요 0 | URL
두 분 누님,,, 나 완전 꽃미남이 마구마구 축하...ㅋㅋㅋ(도망가자....ㅎㅎ)

순오기 2008-03-29 0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꼭 읽어야하는 책을 친절하게 알려주시면 안 읽어도 도움이 되는군요.^^ 감사하고~~~ 이주의 리뷰 당선 축하합니다!

딸기야놀러가자 2008-03-29 20:42   좋아요 0 | URL
도움이 되셨다니 다행이예요. ^^

전자인간 2008-03-31 2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늦게나마 축하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