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흑의 핵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
조셉 콘라드 지음, 이상옥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 말뚝 위에 놓인 얼굴들이 집 쪽을 향하고 있지 않았던들 더 충격적인 인상을 주었을 거야. 그 중의 하나만이 내 쪽을 향하고 있었는데 그건 내가 처음 분간해 낸 것이었어. 나는 자네들이 지금 생각하는 것만큼 충격을 받지는 않았어. 내가 머리를 뒤로 젖힌 것도 실은 놀람의 동작에 불과했던 거야. 나는 애당초 거기서 나무로 다듬은 덩어리를 보게 될 것이라 기대하고 있었던 거야. 나는 처음 보았던 그 얼굴 쪽으로 일부러 망원경을 되돌려보았어. 그 말뚝 위의 검은 얼굴은 눈을 감은 채 말라서 오그라들었고 마치 그 기둥 꼭대기에서 잠이 든 머리처럼 보였지. 그리고 입술은 말라서 줄어든 채 하얀 이빨을 좁게 드러내며 미소까지 짓고 있었는데 그건 마치 영원한 잠 속에서 한없이 계속되는 즐거운 꿈이라도 꾸고 있는 듯한 미소였어.” 

“그 상앗빛 얼굴에서 나는 음침한 오만, 무자비한 권세, 겁먹은 공포, 그리고 치열하고 기약 없는 절망의 표정이 감도는 것을 보았거든. 완벽한 앎이 이루어지는 그 지고(至高)한 순간에 그는 욕망, 유혹 및 굴종으로 점철된 그의 일생을 세세하게 되살아보고 있는 것이었을까? 그는 어떤 이미지, 어떤 비전을 향해 속삭이듯 외치고 있었어. 겨우 숨결에 불과했을 정도의 낮은 목소리로 두 번 외치고 있었어. <무서워라! 무서워라!>” 

재작년부터 책을 읽다 보니 <암흑의 핵심>에 계속 발이 걸려 넘어졌다. 꽤 여러 책에서 이 소설이 언급됐던 것 같다. 그 중 로버트 카플란의 <Coming Anarchy>와 스벤 린드크비스트 <야만의 역사>는 이 소설을 주요 모티브로 삼아 아프리카를 살펴보는데, 두 책의 내용과 저자들의 성향이 정반대임에도 불구하고 한 지점에서 만난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카플란은 여러 책에서 <암흑의 핵심>과 함께 <노스트로모>, <로드 짐> 등 콘라드의 소설들을 거론했던 것으로 보아 어쩌면 콘라드의 팬인지도 모르겠다. <

<암흑의 핵심>, <어둠의 심장>, <어둠의 속> 등등 이 책의 제목을 우리말로 옮길 때 여러 가지가 통용되는 것 같다. 그 중에 <암흑의 핵심>이 제일 그럴싸하게 들리는데, 내가 읽은 민음사 버전은 영문학자 이상옥 서울대 교수가 번역을 했다. 옛날 분이 번역을 해서 그런지 문장도 좀 예스럽고 좀 억지로 만들어 붙인 듯한 한자어들도 눈에 보인다. 책의 분위기하고는 잘 어울린다.

어찌어찌 책장을 다 넘기기는 했다.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느껴야하는지를 정리는 잘 되지 않지만 어쨌든 인상적이다.
책은 ‘말로’라는 이름의 한 선원이 아프리카의 내륙에 강을 타고 들어가 상아를 실어 나르는 배의 선장으로 일하던 때의 이야기를 주변 동료들에게 들려주는 형식으로 돼 있다. 기나긴 독백 형식의 소설들이 그렇듯 지겨운 포맷인데다가 내용도 암울하기 그지없다. 말로는 식민주의를 자랑스러워하지도, 창피해하지도 않는다. 그냥 담담하게 ‘묘사’할 뿐이다. 그 ‘뻔뻔함’ 혹은 ‘담담함’이 오히려 잔혹함을 더욱 효과적으로 드러내 준다.
말로는 영국 출신의 선원이다. 그는 식민지에서 흑인들의 손목을 잘라가며 상아를 채취하는 한 벨기에 무역회사에 고용돼, 위험을 무릅쓰고 콩고강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는 항로에 오른다. 항행의 목적은 현지 관리인이 내륙에 모아놓은 상아더미를 싣고, 관리인을 데리고 내려오는 것이다. “어릴 적부터 지도의 빈 부분을 보면서 ‘가고 싶다’는 꿈을 키웠던” 말로는 ‘비어있는’ 아프리카 땅에서 인간 같지도 않은, 그러나 인간이 아닌 것도 아닌 검은 존재들을 본다. 그들 사이사이에 들어가 악행을 벌이는 비겁하고 안일하면서 이기적인 백인들을 본다. 그는 아프리카의 속살(암흑의 핵심!)을 향해 점점 다가간다.
내륙에 몇 년 째 체류했다는 관리인은 현지 직원들에게는 영웅 대접을 받는데, 실제로는 흑인들 머리를 잘라 울타리 기둥 장식을 하는 종류의 인간이다. 말로는 애써 “나는 자네들이 지금 생각하는 것만큼 충격을 받지는 않았어”라고 말하지만, 말라붙어 오그라든 천연 ‘기둥장식’은 켜켜이 쌓인 상아더미 뒤에 가려진 식민지의 진실을 너무나도 냉담하게 전달한다.

엽기적인 기둥 장식을 해놓았던, 흑인들의 숭배를 받았다던 ‘위대한 정신의 소유자’는 말로가 목적지에 도착하자마자 허망하게 쓰러져 죽는다. 그가 남긴 말은 두 마디, “무서워라! 무서워라!”였다. 무시무시하고 야만적인 식인종들, 저 어둠의 자식들을 백인 식민주의자의 마지막 말. 그를 두려움에 떨게 만든 ‘암흑의 핵심’은 무엇이었을까. 아프리카의 끔찍한 야만인들? 말로가 보았던(죽어가는 상아회사 관리 스스로가 만들어낸) 식민지의 잔인한 진실들? 그 모든 것을 가능케 한 인간의 내면 그 자체가 사실은 ‘암흑의 핵심’인지도 모르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장의 진실 - 왜 일부 국가만 부유하고 나머지 국가는 가난한가
존 케이 지음, 홍기훈 옮김 / 에코리브르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처음에는 중구난방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와서 좀 지루했다. 그러다가 중반부 지나가면서 논지가 비교적 명확해지고 재미도 더해갔다. 요는, 경제학은 완벽하지 않지만 시장을 읽는데 도움이 된다, 그런데 ‘완전경쟁시장’을 중심에 놓고 무조건 시장만 옳고 정부 개입은 나쁘다 했던 (밀턴 프리드먼식) 경제학계 주류의 생각이 잘못됐었다는 것이다.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로 ‘미국식 경제학’ ‘금융자본주의’ ‘통화주의와 시카고학파’가 지탄받는 세상이 된 지금은, 영국 경제학자인 저자의 주장이 그리 낯설지 않게 들린다. 하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아니 지금도 한국 정부여당 등이 주장하는 것을 보면 저따위 논리가 반성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책은 금융위기 전에 쓰인 것인데, 왜 완전경쟁-시장제일주의가 현실을 해석하고 개선하는데 착오를 일으킬 수밖에 없는지를 보여준다.

“시장은 작동하지만 향상 그리고 완벽하게 운영되지는 않는다. 다원주의적 시장구조는 혁신을 중진하고, 경쟁적인 시장은 소비지들의 수요를 충족시켜주지만, 시장의 결과가 효율적일 것이라고 믿을 만한 포괄적인 근거는 없다. 사회적·경제적 제도들은 시장경제에서 정보의 교통을 관리한다. 이 제도들은 문화와 가치, 법과 역사에 의존한다.” (422쪽)

책의 원제는 ‘문화와 번영’이다. 저자는 경제적 번영은 총체적인 사회 제도에 달려있다고 지적하면서, 사회적 문화적 맥락 속에서 시장을 봐야 한다고 말한다. 이렇게 제도의 일부분으로서만 의미를 지닌다는 측면에서 저자는 시장을 ‘임베디드 시장(embedded market)’이라 부른다. 시장이 제도 안에 ‘임베디드’ 되어있다는 것을 무시하고 기술적인 이식(移植)을 해주는 것만으로는 낙후된 경제권을 번영으로 이끌 수 없다. 이것이 ‘빈국을 부국으로 바꾸기 위한 선진국들의 이식작업’이 실패한 이유다.

“생산성은 단순히 자본과 기술 기용성의 결과가 아니며, 또한 개개 노동자들의 숙련도의 차이에 의한 것이 아니다. 현시대에서 기술은 어디서나 개발될 수 있고, 지본과 기술은 국가 간에 자유롭게 흘러 다닌다. (국가간) 경제적 차이는 생산성과 생활수준이 사회적·정치적·문화적 제도와 서로 교차하는 경제적 환경의 복잡한 산물이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존재한다. 개인의 경제생활은 그들이 속한 시스템의 산물이다. 이 책은 우리의 경제생활을 규정하는 제도들에 관한 것이다. 경제제도는 사회적·정치적·문화적 정황의 일부로서만 기능한다. 이것이 내가 임베디드 시장(embedded market)이라고 기술하는 것이다.” (43쪽)

“부국들과 빈국들 간의 차이는 각각의 경제적 제도의 질 차이 때문에 발생한다. 40년의 실망 후에 개발기관들은 이것을 인식했고, 채무국 정부에 개혁을 요구하게 되었다. 그러나 처방은 대개 너무 미약하다. 러시아에 제공된 것은 미국식 제도가 아니라 미국 비즈니스 모델의 비책이었다. 시장제도-소유권의 보장, 최소한의 정부의 경제적 개입, 규제완화-는 단순하고 보편적일 것으로 믿어졌다. 이러한 처방들이 이행된다면 성장은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시장에 관한 진실은 이보다는 더 복잡하다. 부국들은-글자 그대로-시민사회와 정치적·경제적 제도들이 수세기를 거쳐 이룬 공진화의 산물이다. 우리가 부분적으로만 이해하는 공진화는 빈국에 이식할 수 없다." (440쪽)


책의 전반부는 경제현상 전반을 간략하게(그러나 쉽지는 않다) 설명하면서 경제학의 맛을 보여준다. 중반부터는 프리드먼식 경제학이 어떤 점에서 틀렸는지를 조목조목 짚으면서, 사회 제도의 ‘공진화’를 통해 시장이 번영할 수 있음을 지적한다. 여기서 비판 대상은 통화주의/시장제일주의,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미국식 비즈니스 모델(ABM)’이 된다.

“ABM의 등장은 탐욕은 좋은 것이라는 주장을 허용했다. 주식시장의 계속되는 상승은 금융서비스분야에서 매우 큰 이익을 창출했고, 금융기관에 종사하는 경영자들은 자연적으로 자신의 급여와 월스트리트의 성과급을 비교하게 되었다.
ABM의 순 도구적 동기들은 궁극적으로 스스로 패배하게 된다. 이윤이 시장경제의 목적이고, 재화와 서비스의 생산은 그것에 대한 수단이라고 하는 것은 진실이 아니다. 즉, 목적은 재화와 서비스의 생산이고 그 수단들을 이익이 나게 하는 것이다. 가장 행복한 사람은 행복만을 외곬으로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다. 가장 이윤이 많은 회사는 이윤 위주 회사가 아니다. 적응의 결과는 최대화의 결과와 비슷하나 최대화의 산물은 아니다.“ (425쪽)


요즘 유행(?)하는 ‘생물학적 경제학’이라고 봐야 하려나, 진화론-적응(옮긴이가 앞에서는 ‘적응’이라 해놓고 뒤에서는 ‘순응’‘순응적’이라고 번역해 헷갈리게 만드는데 ‘적응’이 맞을 듯) 개념을 중심으로 미국식 경제학을 비판한다. 인간이 이기적인 동물이라는 생물학의 고전적인 전제가 절반의 진실일 뿐인 것처럼, ‘인간은 이기적이다, 경제활동의 목적은 이윤추구다, 탐욕은 곧 선(善)이다’라는 개념들의 집합체인 미국식 경제학 역시 온전한 진실은 아니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 부분에서 도킨스식 이기주의-이타주의 개념과 경제학이 접목된다.

“밀턴 프리드먼은 합리성이 동기에 대한 가정이 아니라 행동에 대한 예측이라고 주장했다. 비록 개인들이 이기적이 아니어도 이기적 행동이 이타심을 만들어낸다. 기업은 이윤의 극대화를 추구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결국 경쟁적인 시장에서 살아남는 기업은 이윤을 극대화한 기업이다. 이러한 주장은 프리드먼과 반자본주의 활동가들을 결속시켜주지만, 둘 다 틀렸다. 이러한 주장은 행동이 이성적이라는 것을 보여주지 못한다. 적응적이라는 것을 보여줄 뿐이다. 이성적 행동과 적응적 행동은 반드시 같지 않을 수도 있다.” (264쪽)

꽤 재미있는 경제학 개론서인데, 개론으로 보기엔 좀 문장이 꼬여 있다는 점이 흠이라면 흠. 저자의 말투도 그리 문어체는 아닌 것 같고(이른바 비비꼰 ‘영국식 유머’들이 섞여 있다) 번역은 정말 꽝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역사로서의 현재 - 전 세계 권력 지형에 대한 비판적 조망
네르멘 샤이크 지음, 김병철 옮김 / 모티브북 / 2008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유명한 학자들 인터뷰 모음. 이름 들으면 흥미가 절로 생길 만한 저명한 인사들. 아마티아 센, 헬레나 노르베르-호지, 조지프 스티글리츠, 시린 에바디, 가야트리 스피박...
그런데 번역은 엉망. 제대로 알아먹기 힘든 완전 직역 문장에 인터뷰 대상자들 소개 부실, 옮긴이 주 부실. 특히 뒷부분으로 갈수록 이해하기 힘들다. 가야트리 스피박 부분은 읽다 지쳐 넘어갔다. 아무리 스피박이 말을 해괴하게 꼬아서 하기로서니... “내가 영어를 잘하는 것은 영국에 소유되었었기 때문”이라는 문장이 버젓이 나오는 걸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중동·이슬람권에 대한 얘기가 상당 부분 차지하는데 그 쪽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전반적으로 국제문제에 대한 번역자 이해가 부족하고, 인터뷰 대상자들에 대한 사전 지식도 별로 없었던 듯. 이런 ‘다국적 인터뷰 모음’이라면 최소한 인터뷰이들 어느 나라 사람인지 정도는 설명해주는 게 예의 아닐까. 굉장히 좋은 책이면서 번역 때문에 망친 책 리스트에 올려야겠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로쟈 2008-12-22 2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서를 못 구해서 책상맡에 두고만 있는 책인데, 역시나 그렇군요...

딸기 2008-12-23 11:10   좋아요 0 | URL
네, 웬만하면 원서로 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열매 2008-12-24 0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인터뷰글이 예상외로 이해하기도, 번역하기도 힘들더군요. 분명히 한국말로 이해하고 나면 쉬운데 구어가 문어체로 정리되는 과정에서 문장이 문법에 잘 들어맞지도 않고 상당히 압축되어 있기도 해서, 역으로 인터뷰들이 얼마나 난해했었을지 추리가 될 정도가 되곤 하지요. 또 한국의 학계나 언론계가 해외 소식의 전달에 게을러서인지,--조중동같이 자기들 입맛에 맞게 요리해 괴물같은 정보가 유통되기도-- 사상사적 맥락을 무시한 사상의 돌출적 유입때문인지, 인터뷰의 내용을 읽는 이가 따라오게 하려면 본문의 1/3정도의 번역자주석을 달아야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적이 있습니다.
여하튼 좋은 인터뷰집이 불성실한 번역으로 읽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니 안타깝네요.
하지만 예상컨데 영어원서도 만만치 않을 것 같습니다. 인터뷰집일수록 더더욱 그럴것입니다^^
 
소비 - 나는 소비한다, 고로 존재한다
로버트 보콕 지음, 양건열 옮김 / 시공사 / 2003년 6월
평점 :
절판


경제에 대한 책인 줄 알고 펴들었는데 프랑스 독일 철학자들 이름이랑 무슨 주의, 무슨 주의가 줄줄이 나오는 책이었다. 처음엔 지레 겁먹고 닫아버릴까 했는데 두께가 얇아서 그냥 읽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읽다보니 의외로 꽤 재미가 있었다. 결론은 허무했지만.

마르크스는 노동이 인간의 정체성을 결정지으며 노동에서의 소외가 자본주의의 주된 문제라고 지적을 했는데 ‘포스트모던’ 사회에서는 소비가 인간의 정체성을 결정하고 소비에서의 소외가 주요한 문제가 된다는 것이 책의 요지다.

이렇게만 말하면 너무 당연한 얘기 같기도 한데, 사실 이 책은 특별한 이론을 전개한다기보다는 그동안 소비를 연구한 여러 학자들의 주장을 분석하면서 정리해주고 있다. 욕망, 정체성, 소외, 상징 이런 것들이 줄줄이 나오는데 읽어서 이해 못 할 내용은 없고, 뭐 딱히 새롭게 들리지도 않았다.

책에서 언급한 학자들 중에는 얼마 전 100세 생일을 맞은 레비-스트로스처럼 생존해있는 인물들도 있지만 그의 주요 작업도 이미 오래전에 이뤄진 것이고, 마르쿠제니 부르디외니 라캉이니 하는 이들이 소비 문제를 다룬 것도 이미 시간이 좀 지나간 일이다. 특히 책의 전반부는 거의 2차대전 이후, 40~50년은 더 지나간 시대에 나온 분석들을 다루고 있다. 대량 소비가 ‘전지구적인 현상’이 된 1980년대 이후 글로벌 ‘소비자본주의’ 시대에 대한 특별한 분석이 좀 덧붙여져 있었더라면 좋았으련만. 그런 면에서, 맨 뒷부분에서 살짝 언급만 하고 지나간 ‘20세기 말의 몰 워커(mall walkers)’ 얘기에 대해서는 앞으로 좀더 재미난 연구들이 나와 줬으면 싶다.


저자가 언급한 소비에 대한 연구들은 환경/기후변화 담론이 지배적이 되기 전 시대의 것들이어서, 소비를 분석함에 있어서 환경/기후변화 문제가 거의 거론되지 않은 것 같다. 또한 식민 시대가 끝난 이후에도 자본주의의 글로벌 착취구조는 오히려 고착화돼 직접적인 전쟁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는데, 소비의 ‘도덕성’ 문제를 ‘가치중립적’으로 묘사한 것은 아쉽다. 간단히 환경 문제를 언급하기는 했지만, 프랑스 철학자들 이름 폭탄을 난사하기 앞서서 상식 있는 소비자라면 조금만 생각하면 알 수 있는 문제들이다.

우리가 너무 탐욕스럽게 소비만 하다 보니 지구를 해치고 남의 것 빼앗으려 하는 것 아닌가, 양차 대전 등 전쟁이 사회를 압도했던 시기 전쟁에 나가있던 남성들이 ‘평화의 시기’를 맞아 새로운 소비자로 부상, 기존에 ‘소비=여성’으로 젠더화됐던 것을 뒤집었다는 분석은 재미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오늘날의 소비(그 바탕에 있는 무한 탐욕, 물질주의)가 약탈과 착취와 전쟁을 이미 배태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소비자들의 에너지 낭비를 뒷받침해주기 위한 석유전쟁들은 대표적인 예다. 저자는 “허구헌날 싸움질하는 사회들에서는 적어도 총질보다는 소비가 평화적인 대안처럼 보일 수 있다”며 “이걸 더 분석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이 문제를 이론화할 필요가 있는 것은 소비가 세계 전체에서 계속 커지고 있고 소비가 정체성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기 때문”이라고 싱거운 소리를 한다.

소비를 열심히 분석하는 이유는, 그것이 저자의 말마따나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의 소외를 일으키는 주요한 기제이기 때문이다. 저자가 요약한대로 ‘소비=상징의 소비’이고 ‘상징=욕망을 생산하는 장치’다. 이 소비는 애당초 실재하는 물체 자체가 아닌 상징 자체에 대한 욕망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쓰고 또 써도 욕망은 완전히 채워지지 않는다. 무한 욕망과 무한 소비의 싸이클인 셈이다.

소비 대국은 잉여를 찾기 위해 점령의 길로 나가야 하는 제국주의 국가들처럼, 소비를 보장하기 위해 세계의 패권을 붙잡고 있어야 한다. 그리하여 소비는, 지구를 망치고 글로벌 착취/약탈구조를 만든다. 동시에 소비는 그 자체로 특정 국가/지역의 문화/이데올로기를 퍼뜨리는 메커니즘이 된다. 정작 소비는 착취 국가에서건 피착취국가에서건 모든 ‘소비자’들을 소외시켜버린다. 무한 소비의 싸움에서 승자는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 밖에는 없다.

 

마르쿠제 들뢰즈 가타리 라캉 헤겔 부르디외 등등을 연구하는 게 “이 메커니즘을 알고 깨뜨리자”는 목적에서인지 그냥 심심해서 꼼꼼히 분석해본 것인지 나는 잘 모르겠지만, 내 생각에는 “알고 깨뜨리자”는 쪽으로 우리 모두 생각해야 할 것 같다. 알고 깨뜨리기 위한 대안으로는 여러 가지 반물질주의 생태주의적 아이디어들을 얘기할 수 있을텐데, 저자는 ‘왜 소비가 문제인가’에 대해서는 별로 깊이 생각을 안 해본 모양이다.

비의 사회심리학이니 정신분석학이니 하는 것을 우아하고 복잡하게 분석하다가(이 과정이 의미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갑자기 “금욕주의적 가치관과 연결된 종교가 우리를 구원해줄 수 있다”고 결론을 내려서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더군다나 주요 종교가 대부분 친환경적이라고 누가 그래? 기독교 세계관의 반환경적 관점에 대한 얘기는 들어보질 못했나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봐라 달이 뒤를 쫓는다
마루야마 겐지 지음, 김춘미 옮김 / 하늘연못 / 2001년 4월
평점 :
절판


나는 기만에 찬 불신 행위를 잊게 하고, 양심의 발언을 압살하는, 기계. 나는 나에게 걸터앉은 자가 바라는 것보다 더 먼 곳으로 가고 싶어하는, 과격한 오토바이. 나는 어쩔 수 없는 심정에서 방랑길을 떠나는 자에게 어울리는, 파란 오토바이.

논리에만 매달려 미래를 통찰하려고 하는 자. 시냇물 소리에 마음을 빼앗기며 꽃이 피기를 기다리는 자. 읽다 만 책에 침을 흘리며 잠자는 자. 이부자리에서 빗소리를 듣는 데서 무한한 희열을 느끼는 자. 무슨 일이 있어도 단정한 태도를 흩뜨리지 않고, 예의를 잃지 않는 자. 분을 잔뜩 칠한 음란한 여자한테 혼나고 싶어 하는 자. 명석한 두뇌와 진드기 같은 어머니 때문에 꼼짝 못하는 자. 그들 쪽도 그렇겠지만, 그러나 내 쪽도 그런 인간들은 사절하겠다. (19쪽)

앞으로밖에는 달릴 줄 모르는 자동차는, 그 어느 것도 내 호적수가 될 수 없다. 녀석들은 수많은 노동자와 함께 자본가와 그 앞잡이의 노예가 되어 있다. 녀석들과 함께 이동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인간들은 무산 계급의 우리에 틀어박혀서, 보기에도 시원해 보이는 숲 속을 힐끗 쳐다보고, 위에서 토혈할 날이랑, 뇌일혈이라든가 심부전 때문에 꽈당 쓰러질 날을 향해서, 씁쓰름한 얼굴로 달리고 있다. (101쪽)

밤은 어디까지나 밤이다.

여름은 어디까지나 여름이다.

우리는 달리고 있다.

우리는 흐르고 있다.

우리는 움직이고 있다.

봐라, 달이 뒤를 쫓는다. (31쪽)

너무나도 마루야마 겐지답다. “뒈져라, 형법 불소급의 원칙/뒈져라, 불교사상의 근기(根基)/뒈져라, 외국의 침략을 한번도 받은 적이 없는 국가.”(224쪽) 늙고 병들고 타락한 나라 일본을 향한, 이단아의 처절한 외침. 하지만 어찌 일본뿐일까.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겉으로는 냉소, 속으로는 절규를 내뿜는 오토바이의 방백을 들으면서 가슴 찔리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그저 흔해빠진 문명비판, 도시비판이라면 빌딩숲을 욕한 뒤 자연예찬 따위를 적당히 섞어서 도 닦는 사람인척 했으련만. 마루야마 겐지는 오토바이라는 강력하면서도 뿌리 뽑힌 것 같은 ‘문명의 이기’를 통해 문명을 비판한다. 두서없이 책장을 넘기던 나는 어느 틈엔가 긴장하고 있다. 마루야마 겐지의 소설은 지긋지긋하면서도 무섭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무해한모리군 2008-12-01 15: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딸기님이 이 책 품절시켰나보네요.
지긋지긋하면서 무섭다에 동의 한표 보냅니다.

딸기 2008-12-01 15:50   좋아요 0 | URL
ㅋㅋ 안그래도 리뷰(도 아니지만) 올리려고 보니 품절이네요.
사실 제가 갖고있는 책은 표지도 저것과는 좀 달라요. 옛날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