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칸의 전설 대산세계문학총서 49
요르단 욥코프 지음, 신윤곤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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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이 벨라루스에 공부하러 갔을 때에 보내주려고 사놓았던 책이다. 동유럽 문학작품은 별로 접해본 일이 없던 차에 ‘불가리아 국민작가’의 소설이라고 해서 내가 꿍쳐두고 야금야금 읽었다.
단편모음인데다, 편당 분량도 적다. 책 두께도 얇다. 하지만 읽는 동안, 읽고 나서, 내내 마음이 묵직하다. 남의 이야기 같지가 않아서다. 이리 쓸리고 저리 얻어맞는 민초들의 이야기는 어쩌면 이렇게 닮았는지. 일제 강점기에서 해방정국과 빨치산 투쟁에 이르는 시기 우리의 근현대사를 담은 문학작품들이 내내 머리 속에 교차됐다.

오스만 투르크 제국에 수백 년 간 점령된 발칸의 민중들. 그들을 괴롭힌 것이 어디 제국의 졸개들뿐이랴. 험한 자연과 겨울과 전염병과 산적들, 때로는 사랑도 험난한 시대 힘없는 이들에게는 독이 된다. 작가가 그려내 보이는 인물들은 하나 같이 일그러져 있다. 주제는 ‘사랑’인데, 이야기들은 비극적이다. 사랑, 함정, 비극, 슬픈 전설.
백성의 저항은 언제나 멋지고 용감하고 낭만적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의 저항은 은근하고, 처연하고, 슬프고, 얼핏 보아서는 드러나지도 않는다. 휩쓸려 다니면서도 자기 것들을 지키고, 때로는 자기들끼리 죽고 죽이고 얻어맞으면서도 자기네 땅의 노래를 잃지 않는, 그런 것이다.
그것은 ‘저항’이라기보다는 그냥 ‘삶’ 그 자체다. 슬프면서도 저 깊숙한 곳에 삶의 힘이 느껴지는 짧은 노래들. 욥코프가 들려주는 ‘발칸의 전설’은 그런 느낌으로 다가온다. 책은 그냥 산문이지만, 꼭 노래처럼 들린다. 묘하고 신비스러운, 불가리아식 ‘마술적 사실주의’에 매료됐다.


  “총이 불을 뿜었다. 창문이 드르륵거리고, 집들이 흔들리고, 검은 그림자가 땅을 덮쳤다. 시빌이 멈춰섰다. 염주를 끊었지만, 카네이션은 버리지 않았다. 팔짱을 끼고 잠시 기다렸다. 일 초 이 초. 병졸들이 다시 총알을 장전하는 순간, 날카로운 비명이 마을 아래 광장에서 들려왔다. 시빌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벨리코 케하야의 대문에서 들려오는 또다른 비명. 시빌이 돌아보았다. 라다였다. 그녀는 마치 그를 보호하려는 듯, 양팔을 벌린 채 달려오고 있었고, 그는 마치 그녀를 껴안으려는 듯, 양팔을 벌리고 있었다. 다시 총이 불을 뿜었다. 시빌이 쓰러졌다. 처음에는 얼굴이 땅을 향해 고꾸라지더니, 잠시 후에 하늘을 향하며 바닥에 누웠다. 그 옆으로 라다도 쓰러졌다. 그것으로 사방은 잠잠해졌다. 태양이 포석을 내리쬐고 있었다. 핏자국인 양 카네이션이 두 주검 사이에 떨어져 있었다.

  교회 앞 찻집, 창문 너머에서 누군가가 하얀 수건을 절망적으로 흔들어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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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해야 건강하다 - 불평등은 어떻게 사회를 병들게 하는가
리처드 윌킨슨 지음, 김홍수영 옮김 / 후마니타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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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질은 중요하다. 건강해야 행복하고, 행복해야 건강하다. 잘 살아야(돈도 좀 있어야) 건강도 행복도 얻을 수 있다. 그런데 먹고 살만해진 지금 우리는 왜 건강하지도, 행복하지도 않다고 느끼는 걸까. 아니, 느낌만이 아니라 실제로 우리는 점점 많은 질병과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저자는 우리가 “불평등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얼핏 당연한 얘기인 듯도 하고, 얼토당토 않은 얘기인 듯도 하다. 당연한 얘기로 들리는 것은 우리가 이미 경험적으로, 느낌으로 알고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가난할수록 보건 혜택도 못 받고 하루하루의 스트레스도 많은 것은 당연하다. 아프리카의 영유아 사망률만 보면 알 수 있다.
그런데도 얼토당토않은 주장처럼 들리는 것은, 앞서 말한 ‘당연한 이유’에는 함정이 있기 때문이다. 가난하면 건강하기 힘들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오늘날 부자 나라로 불리는 미국 같은 나라(우리도 마찬가지이겠지만)에서조차 건강과 행복이 마구 증진되지 않는 이유는 뭐란 말인가? 그것이 상대적 박탈감 같은 불평등과 관련 있다고 하면 너무 심리 지향적인 해석처럼 들리는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돈이 없다고 꼭 일찍 죽으란 법도 없다. “가난하지만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하는 그 많은 이야기들은 대체 뭐란 말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사회적 불평등이 ‘건강 불평등’을 낳고 있다고 말한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우선 저자는 사회적 불평등과 건강 불평등의 상관관계를 보여주는 다양한 통계조사들을 검토한다. 여기서 말하는 사회적 불평등은 대략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사회적 지위 격차, 즉 ‘권력의 격차’다. 사회적 지위가 낮은 사람들은 더 많은 질병에 시달린다. 말단 공무원이 고위공무원보다 심장병에 걸릴 확률이 4배 이상 높다는 영국의 연구결과도 있다. 두 번째는 소득 불평등이다. 비록 소득의 총량에서는 6% 정도의 차이 밖에 없을지라도, 이것이 ‘상대적 박탈감’으로 이어질 때에는 40~50%의 격차 효과를 낼 수 있음을 보여주는 통계가 실려 있다. 세 번째는 빈약한 사회적 관계다.
사회적 관계는 ‘사회적 자본’이라는 말로도 불린다. 경쟁적, 공격적인 사회 분위기에서는 소외감과 모욕감이 커지고 사회적 자본 즉 관계가 깨져나간다. 이 세 가지는 서로 연결돼 있다. 하나가 다른 하나의 원인 혹은 결과가 된다는 뜻이다.
이렇게 연결된 사회적 불평등이 총체적인 ‘스트레스’로 작용한다. 권위적이고 상하 간 권력 불평등이 크고 경쟁적인 분위기의 사회에서 권력-부(富)의 피라미드의 밑바닥에 있는 ‘낮은 지위의 사람들’은 병에 걸려 죽을 확률이 높아진다. “마음이 병을 만든다”는 통념을 넘어, 저자는 진화심리학적 연구들을 분석해 인간이 타인을 의식하고 서열을 의식하는 존재임을 강조한다.
수치심과 열등감을 느끼면서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나 마찬가지다. 남성들의 경우 폭력성이 증가하고 여성들은 우울증이 늘어난다는 현상적 차이는 있지만 인간은 누구나 지위/서열로 인한 스트레스를 경험하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책은 이를 보여주기 위해 영장류 사례 연구와 사회심리학 스터디들을 검토한다.

불평등이 스트레스를 가져온다는 점을 진화심리학으로 설명한 저자는, 스트레스가 질병으로 이어지는 메커니즘을 규명하기 위해 생리의학적 연구들을 동원한다. 이를 테면 인간(을 포함한 포유류)에게는 ‘투쟁-도주 메커니즘’이라는 생리학적 기제가 있다. 위기를 느끼면, 즉 스트레스를 받은 인간은 생체 자원의 배치와 생리적 우선순위를 바꾼다. 몸의 생리작용은 에너지를 근육활동에 집중시켜, 여차하면 싸우거나-혹은 도망치기 유리하게끔 대비를 한다는 것이다. 모든 자원이 싸움-도주에 집중되는 동안 생체 조직의 유지·치유와 면역, 성장, 소화와 재생산 능력은 저하된다.

“그런데 몸싸움이나 도주가 필요 했던 과거와는 달리 현대사회에서는 정신적인 각성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에는 지방조직으로부터 혈액으로 방출된 지방산이 사용되지 않아 혈관에 콜레스테롤이 쌓인다. 따라서 지속적인 무기력과 근심은 심장질환의 발병률을 높인다."

“문제는 스트레스에 짓눌려 있는 상태가 장기간 지속되는 경우다. 우리의 육체가 경계 상태나 생 리적 각성 상태에 계속 머물러 있어서 자원 분배의 우선순위가 바뀌어 버리면, 건강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다. 만성 스트레스 상태는 급속한 노화와 비슷해서 다양한 질병에 대한 면역력을 전체적으로 화시키며, 인간을 외부환경에 취약하게 만든다.”


뿐만 아니라 스트레스를 받으면 에너지의 축적, 소화, 성장과 관련된 부교감 신경계가 활성화되지 못하고 교감 신경계만 활성화된다. 이 또한 심장 박동을 빠르게 하고 피가 근육으로 흐르게 만드는 효과를 낸다.

“스트레스에 대한 또 다른 생리적 반응은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생물학적 우선순위를 총체적으로 변화시키며, 인슐린만이 아니라 성장 호르몬과 에스트로겐, 프로게스테론, 테스토스테론 같은 재생산 호르몬의 분비도 억제된다. 특히 중요한 것은 스트레스가 면역 체계를 파괴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주로 시상하부-뇌하수체-부신 축을 통해, 그리고 교감 신경계의 지나친 활성화를 통해 이뤄진다.”

“불안이나 생리적 각성 상태가 몇 주, 몇 달, 몇 해에 걸쳐 너무 자주 발생했을 때 건강에 미치는 위험은 단순히 생리적 우선순위가 바뀌는 수준에서 끝나지 않는다. 각성 상태가 일정 기간에 걸쳐 계속되면 정상치로 회복되는 피드백 메커니즘이 파괴되어 버린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 생겨나는 코르티솔 수치를 제어하는 피드백 센서가 무뎌진다는 뜻이다. 피드백 센서가 둔해지면 긴급한 상황이 생겼을 때 코르티솔의 반응도 둔화된다.”


코르티솔수치가 높아지면 인슐린의 신호가 억제된다.

“보통 만성 스트레스의 부작용이 누적되었을 때 신체가 지불해야하는 생리적 비용을 ‘알로스타 부하’ allostatic load라고 부른다. 이는 코르티솔의 기본수치와 혈압이 높으며, 인슐린 저항을 유발시키고, 혈액이 쉽게 응고되며, 복부 비만과 면역 기능이 감퇴하는 현상을 포함하고 있다. 알로스타 부하가 클수록 심혈관 질환, 암, 감염성 질환에 걸릴 위험이 높고, 나이가 들었을 때 정신적 기능이 빨리 저하된다.”

길게 인용했는데, 사회적 스트레스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의 건강과 행복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다. 이를 보여주는 사례는 많다. 저자는 ‘평등해서 건강하고 불평등해서 건강하지 못한’ 사례들을 펼쳐보인다.
대표적인 예는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의 이탈리아인 집단 거주지였던 로세토 마을이다. 상대적으로 전통 문화와 주민들 간 유대관계를 유지하며 살았던 이 지역 이탈리아인들은 주변 다른 주민들이나 다른 지역의 이탈리아인들에 비해 건강했다. 그러나 미국식 문화에 점차 젖어들고(이탈리아 문화가 미국 문화보다 우월하다는 뜻이 아니라 미국 문화에 동화되어야 한다는 스트레스가 작용했다는 뜻이다) 유대관계가 깨지고 소수민족이라는 스트레스가 커지면서 건강도도 낮아졌다.
더 분명한 사례는 동유럽일 것이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아마티아 센은 1980년대 동유럽 연구를 통해 상대적으로 평등했던 동유럽 사회가 비슷한 경제수준의 다른 사회보다 건강 면에서도 훌륭했음을 보여줬다. 그러나 사회주의 붕괴 뒤 ‘건강의 구조’는 모두 무너져 내렸다.
카스트제도 등으로 인한 차별이 어느 나라보다 심하다는 인도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인도의 케랄라 주는 다른 지역에 비해 카스트와의 싸움이 많이 진전됐고, 토지개혁과 교육확대, 빈민 보조, 여성권익 향상 등에서 다른 지역보다 앞서 있었다. 케랄라 주의 평균수명은 1인당 GNP가 1000달러 안팎이던 1990년대 후반에도 미국보다 3, 4년 정도 짧은 수준으로까지 높아졌다고 한다.
한국의 사례도 등장한다.

“사실 정부와 통치자들은 항상 소득 분배와 사회 통합이 서로 인과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는 건전한 직관을 가지고 있다. 사회를 통합하고 대중의 지지를 얻기 위해 정부가 전략적으로 평등주의적 정책을 도입했던 사례들도 많다. 한때 ‘아시아의 호랑이’로 불리면서 빠르게 성장했던 아시아 국가들은 모두 1960-80년대에 소득 격차를 줄이려고 노력했다.
이들8개국(일본, 한국, 대만, 싱가포르, 홍콩,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은 세계은행이 ‘동반성장’이라 부르기도 했던 정책 하에서 급격히 성장했다. 세계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이 8개국 정부들은 정당성의 위기에 직면하게 되면서 대중의 승인과 지지를 확보할 필요가 있었다. 예를 들어 한국은 북한이라는 경쟁자가 있었고, 대만과 홍콩은 중국 본토와 관련해서 자신의 정당성을 확보해야 했다는 것이다. 일본도 제2차 세계대전의 패배로 기득권을 가진 세력들의 위세가 꺾이면서 급속하게 평등주의적으로 변모했다.”


책은 다양한 사례들을 촘촘히 분석하고 여러 분야를 가로지르는 연구 성과들을 종합한다. “불평등의 사회학”에 대한 과학적 해설이라 보면 되겠다. 현실적인 함의는 분명하다. 우리가 부국에 살든 빈국에 살든 ‘평등한가 그렇지 못한가’는 우리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

“미국 50개 주를 대상으로 각 주의 소득 분배 정도와 개인의 소득 수준에 따른 사망률을 조사했더니 불평등한 주에 빈민층이 많아서 건강 수준이 미국의 전체 평균보다 낮아지는 현상은 불평등과 건강의 관계를 3분의 1 밖에 설명하지 못했다. 소득 불평등과 건강의 관계를 설명해 주는 나머지 3분의 2는 건강에 미치는 불평등의 맥락효과였다. 다시 말해 어떤 수준의 소득을 가진 사람이라도 그 사람이 더 불평등한 사회에서 생활한다면 평등한 사회에 사는, 자신과 비슷한 소득 수준을 가진 사람보다 사망률이 높게 나타났던 것이다.”

역으로, 종업원 지주제를 확대해 노동자들의 결정권을 높이고 민주적인 기업구조를 만드는 것만으로도 직장 내의 스트레스는 확 줄어든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불평등을 제거하기 위한 작은 노력(그러나 굳은 정치적 의지를 필요로 하는) 만으로도 사람들의 건강을 증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건강과 심리의 관계를 강조하는 것이 빈곤의 물질적 측면을 무시해도 된다는 뜻은 물론 아니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심리사회적 요인은 빈곤과 소득 불평등을 척결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한 추가적인 근거이지 결코 반론이 아니라는 것이다.
덧붙여 사회적 위계질서와 불평등이 문제가 되는 것은, 이것이 ‘경제 성장 다음으로 한 사회의 성격을 결정하는 본질적인 요인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불평등의 정도는 사회 전체의 구조와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가 됐든 뭐가 됐든, 불평등을 양산하고 사회를 균열시키고 인심 나빠지게 만드는 정책들은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든다. 더 설명할 것도 없는 요즘의 우리 사회 모습이다. 생각보다 재미있게 읽었는데, 다 넘기고 난 뒤끝은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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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약회사는 어떻게 거대한 공룡이 되었는가 - 전 세계 보건의료 체계의 일그러진 초상화
재키 로 지음, 김홍옥 옮김 / 궁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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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참 별로다. 내용은 지지부진 중구난방, 번역은 지리멸렬. <질병판매학>과 <몸 사냥꾼> <인체시장> 등등 비슷하면서 조금씩 다른 책들이 많이 있는데 평점 주자면 <질병판매학>은 95점이고 이 책은 5점이다. 영국 미국 얘기 뒤죽박죽에, 도대체 뭔 소리를 하는 건지, 왜 하는 건지, 그래서 어쩌자는 건지... 제목장사 너무 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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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드 그린 - 뜨겁고 평평하고 붐비는 세계
토머스 L. 프리드만 지음, 이영민 외 옮김, 왕윤종 감수 / 21세기북스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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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이라고 해서 또 꾸역꾸역 읽었다. 이 책에 나온 기후변화/에너지에 대한 것들은 대개 어딘가에 나왔던 것들이기 때문에, 이 이슈에 대해 기본적인 내용을 알고 싶다면 다른 책을 보는 편이 나을 것 같다. 하지만 정책이나 국제정세(특히 프리드먼의 강점인 중동 정세에 대한 지식)와 연결지어서 적당히 가볍고 적당히 ‘있어 보이게’ 썼기 때문에, 이왕이면 유명한 사람이 쓴 책을 보고 어디 가서 아는 척 좀 하고 싶은 독자에게라면 괜찮을 듯.

중동 문제에서 세계화로, 그리고 다시 기후변화 시대의 에너지 전략으로 갈아타는 걸 보면 프리드먼이 저술가로서 능력이 있기는 하다. 프리드먼이라는 이름 자체가 하나의 브랜드가 된 것도 사실이고.
책에는 아이디어가 넘쳐나는데 정밀하지는 못하고, 또 그 ‘미국 잘난 척’ 때문에 짜증나는 부분도 있다. 자기 글은 어차피 세계가 다 읽는다는 걸 알면서 이렇게까지 나라사랑을 과시할 필요가 있었을까. 어떻게 보면, 이렇게 “내가 이게 다 미국을 사랑해서 하는 소리다”라고 강조하지 않으면 에너지낭비를 사랑하는 미국인들에게 배척받을까 지레 걱정되어 그러는 것 아닌가 싶은 생각까지 든다. 이것도 미국인들의 석유중독이 그 정도로 심하다는 반증인 셈인가.

“지난 몇 년간 일어난 사건들을 살펴보면 극도로 강력한 두 가지의 또 다른 힘이 지구에 근본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바로 지구온난화와 세계 인구의 급증이다.
이 책은 뜨겁고 평평하고 붐비는 세계로 인해 극적으로 심각해지고 있는 다섯 가지 핵심 문제에 초점을 맞춘다. 점점 부족해지는 에너지 공급 및 천연자원에 대한 수요의 증가, 석유 강국들과 이른바 ‘석유독재자들’에게로 부가 막대하게 이동하는 현상, 파괴적인 기후변화, 세계를 전기를 소유한 자와 소유하지 못한 자로 날카롭게 양분하는 에너지 빈곤, 동식물들이 기록적인 속도로 멸종해가면서 급격히 가속화되는 생물다양성의 감소가 바로 그 핵심 문제들이다.” (50쪽)

저자는 다가올/다가온 시대를 ‘에너지기후시대’라 이름붙이고(이름 짓는 것 참 좋아한다) 서력 기원전·후처럼 앞으로는 ‘ECE(Energy-Climate Era) 몇 년이라는 개념이 통용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미국은 대테러전 한다며 아랍국들 몰아붙이고 뒤에서는 석유대금 퍼안기지 마라, 걔네들 오일달러로 근본주의 테러범들 육성한다는 것이 앞부분의 이야기의 한 축이다. 뒤에는 에너지기후시대를 앞서가는(저자의 말을 빌면 out-green 즉 친환경 측면에서 앞서가는) 것이 어떻게 돈이 되고 힘이 되는지, 그러므로 미국은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 특히 미국의 정치지도부의 리더십이 얼마나 중요한지 하는 것들이 주로 나온다.

IT와 ‘그린’을 엮어 친환경 에너지 그리드 개념을 구체화시킨 것, 중국 지도부의 놀라운 그린 리더십 잠재력에 대한 얘기 등등은 흥미로웠다. 빈곤과 빈부격차 문제, 디지털 & 에너지 디바이드 등등 온갖 층위의 온갖 이슈들을 종횡무진으로 엮을 수 있다는 것은 프리드먼식 저널리즘의 큰 장점이다. 한 권으로 오만가지를 훑을 수 있게 해주니까.
책의 큰 주제와 상관없이 너무 길게 가져다붙인 감은 있지만 중동-이슬람권의 ‘사우디아라비아화’ 즉 이슬람 근본주의화에 대한 얘기들은 내 개인적인 관심사여서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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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2009-03-22 2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권으로 오만가지를 훑을 수 있게 해주니까"라는 게 개인적으로는 독서를 주저하게 만들어요. 다들 읽는 책을 읽는 건 비효율적인 분업 같기도 하고...

딸기야놀러가자 2009-03-23 13:57   좋아요 0 | URL
제 생각에는, 이 책은
1. 분야별로 책을 읽을 정도로 독서량이 많지 않은 사람들
2. 프리드먼이 워낙 유명하니까 어떤 소리를 하나 좀 들춰보려고 하는 사람들
이 두 종류의 독자들을 위한 게 아닌가 싶어요.
 
암흑의 핵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
조셉 콘라드 지음, 이상옥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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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뚝 위에 놓인 얼굴들이 집 쪽을 향하고 있지 않았던들 더 충격적인 인상을 주었을 거야. 그 중의 하나만이 내 쪽을 향하고 있었는데 그건 내가 처음 분간해 낸 것이었어. 나는 자네들이 지금 생각하는 것만큼 충격을 받지는 않았어. 내가 머리를 뒤로 젖힌 것도 실은 놀람의 동작에 불과했던 거야. 나는 애당초 거기서 나무로 다듬은 덩어리를 보게 될 것이라 기대하고 있었던 거야. 나는 처음 보았던 그 얼굴 쪽으로 일부러 망원경을 되돌려보았어. 그 말뚝 위의 검은 얼굴은 눈을 감은 채 말라서 오그라들었고 마치 그 기둥 꼭대기에서 잠이 든 머리처럼 보였지. 그리고 입술은 말라서 줄어든 채 하얀 이빨을 좁게 드러내며 미소까지 짓고 있었는데 그건 마치 영원한 잠 속에서 한없이 계속되는 즐거운 꿈이라도 꾸고 있는 듯한 미소였어.” 

“그 상앗빛 얼굴에서 나는 음침한 오만, 무자비한 권세, 겁먹은 공포, 그리고 치열하고 기약 없는 절망의 표정이 감도는 것을 보았거든. 완벽한 앎이 이루어지는 그 지고(至高)한 순간에 그는 욕망, 유혹 및 굴종으로 점철된 그의 일생을 세세하게 되살아보고 있는 것이었을까? 그는 어떤 이미지, 어떤 비전을 향해 속삭이듯 외치고 있었어. 겨우 숨결에 불과했을 정도의 낮은 목소리로 두 번 외치고 있었어. <무서워라! 무서워라!>” 

재작년부터 책을 읽다 보니 <암흑의 핵심>에 계속 발이 걸려 넘어졌다. 꽤 여러 책에서 이 소설이 언급됐던 것 같다. 그 중 로버트 카플란의 <Coming Anarchy>와 스벤 린드크비스트 <야만의 역사>는 이 소설을 주요 모티브로 삼아 아프리카를 살펴보는데, 두 책의 내용과 저자들의 성향이 정반대임에도 불구하고 한 지점에서 만난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카플란은 여러 책에서 <암흑의 핵심>과 함께 <노스트로모>, <로드 짐> 등 콘라드의 소설들을 거론했던 것으로 보아 어쩌면 콘라드의 팬인지도 모르겠다. <

<암흑의 핵심>, <어둠의 심장>, <어둠의 속> 등등 이 책의 제목을 우리말로 옮길 때 여러 가지가 통용되는 것 같다. 그 중에 <암흑의 핵심>이 제일 그럴싸하게 들리는데, 내가 읽은 민음사 버전은 영문학자 이상옥 서울대 교수가 번역을 했다. 옛날 분이 번역을 해서 그런지 문장도 좀 예스럽고 좀 억지로 만들어 붙인 듯한 한자어들도 눈에 보인다. 책의 분위기하고는 잘 어울린다.

어찌어찌 책장을 다 넘기기는 했다.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느껴야하는지를 정리는 잘 되지 않지만 어쨌든 인상적이다.
책은 ‘말로’라는 이름의 한 선원이 아프리카의 내륙에 강을 타고 들어가 상아를 실어 나르는 배의 선장으로 일하던 때의 이야기를 주변 동료들에게 들려주는 형식으로 돼 있다. 기나긴 독백 형식의 소설들이 그렇듯 지겨운 포맷인데다가 내용도 암울하기 그지없다. 말로는 식민주의를 자랑스러워하지도, 창피해하지도 않는다. 그냥 담담하게 ‘묘사’할 뿐이다. 그 ‘뻔뻔함’ 혹은 ‘담담함’이 오히려 잔혹함을 더욱 효과적으로 드러내 준다.
말로는 영국 출신의 선원이다. 그는 식민지에서 흑인들의 손목을 잘라가며 상아를 채취하는 한 벨기에 무역회사에 고용돼, 위험을 무릅쓰고 콩고강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는 항로에 오른다. 항행의 목적은 현지 관리인이 내륙에 모아놓은 상아더미를 싣고, 관리인을 데리고 내려오는 것이다. “어릴 적부터 지도의 빈 부분을 보면서 ‘가고 싶다’는 꿈을 키웠던” 말로는 ‘비어있는’ 아프리카 땅에서 인간 같지도 않은, 그러나 인간이 아닌 것도 아닌 검은 존재들을 본다. 그들 사이사이에 들어가 악행을 벌이는 비겁하고 안일하면서 이기적인 백인들을 본다. 그는 아프리카의 속살(암흑의 핵심!)을 향해 점점 다가간다.
내륙에 몇 년 째 체류했다는 관리인은 현지 직원들에게는 영웅 대접을 받는데, 실제로는 흑인들 머리를 잘라 울타리 기둥 장식을 하는 종류의 인간이다. 말로는 애써 “나는 자네들이 지금 생각하는 것만큼 충격을 받지는 않았어”라고 말하지만, 말라붙어 오그라든 천연 ‘기둥장식’은 켜켜이 쌓인 상아더미 뒤에 가려진 식민지의 진실을 너무나도 냉담하게 전달한다.

엽기적인 기둥 장식을 해놓았던, 흑인들의 숭배를 받았다던 ‘위대한 정신의 소유자’는 말로가 목적지에 도착하자마자 허망하게 쓰러져 죽는다. 그가 남긴 말은 두 마디, “무서워라! 무서워라!”였다. 무시무시하고 야만적인 식인종들, 저 어둠의 자식들을 백인 식민주의자의 마지막 말. 그를 두려움에 떨게 만든 ‘암흑의 핵심’은 무엇이었을까. 아프리카의 끔찍한 야만인들? 말로가 보았던(죽어가는 상아회사 관리 스스로가 만들어낸) 식민지의 잔인한 진실들? 그 모든 것을 가능케 한 인간의 내면 그 자체가 사실은 ‘암흑의 핵심’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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