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울어진 아이 - 그래픽노블 03
정장진 옮김, 프랑수아 스퀴텐 그림, 베누아 페터즈 글 / 교보문고(교재) / 2000년 12월
평점 :
품절


프랑스 만화인데, 참 멋지다. 아주 섬세한 선으로 구성된 그림의 사실성과 원근감이 굉장하다. 베누아 페터즈 글, 프랑수아 스퀴텐 그림. 글 쓴 이나 그림 그린 이나 모두 존경스럽다.

마리는 부잣집 딸인데, 747년이라는, 어디 기준인지 알 수 없는 어떠한 연대의 사람이다. 어느 곳인지는 모르지만 빈부 격차가 굉장히 심한 곳인가보다. 마리는 부유한 엄마 아빠랑 사는 동안 '홍당무'같은 존재였다. '아유, 쟤는 진짜 문제야' 이런 소리들만 듣던 마리가 어느날 롤러코스터를 탄 뒤로 몸이 옆으로 기울어져버린다. 독특하고 재미난 발상이다.
'기울어진 아이'라...일단 나는 '왜 기울어졌는지'에 대한 호기심을 접어둔 채, '사람이 어떤 계기를 만나면 기울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로 하고 책을 읽어나갔다. 마리는 집을 나와 곡마단의 구경거리로 줄타기를 하면서 나이를 먹어간다.

한쪽엔 기울어진 마리가 있고, 한쪽에는 또 오귀스탱이라는 화가가 있다. 오귀스탱은 아마도 지구의 인간인 모양이다. 1800년대의 어느 낯선 광야, 낡은 저택에 그림을 그리는 화가. 특이하게도 이 화가의 부분은 그림이 아닌 사진으로 되어 있다.
오귀스탱과 마리, 사진과 만화, 실사와 환상, 현실과 상상의 세계가 만나는 곳은 그럼 어디일까. 마리는 기울어진 몸을 치료하기 위해 악셀이라는 과학자에게 찾아간다. 악셀은 마리와 함께 낯선 행성-어쩌면 지구 깊숙한 곳인지도 모르고, 어쩌면 인간 뇌 속의 세계인지도 모르는-에 떨어진다. 오귀스탱과 마리를 이어주는 것은 악셀과 쥘 베르느다. <해저 2만리>, <80일간의 세계일주> 를 쓴 베르느가 갑자기 낯선 행성에 등장하다니, 이 만화의 대본을 쓴 베누아 페터즈가 무슨 얘기를 하려 하는지 조금은 짐작이 갈 듯도 하다.

마리의 이야기-
'당신은 모든 것을 수수께끼로만 보려 할 뿐 삶을 살아가려는 생각은 하지 않아요'

기울어진 마리가 정상을 찾는 과정은 균열되어 있던 인간의 자아와 상상력, 성적인 성장의 경험, 환상과 현실, 혼돈과 질서, 가질 수 있는 것과 가질 수 없는 것, 경험과 추억, 이 모든 것들이 통합되는 과정이다. 그동안 보아온 유럽만화들이 모두 '엽기 호러'여서 사실 좀 질려있었는데, 이 책은 다르다. 따뜻한 시선, 탄탄하면서도 섬세한 그림들. 평자들은 스퀴텐의 그림이 '건축'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하는데, 선으로만 묘사된 멋진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책값이 아깝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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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마리 2004-12-08 2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딸기님 서재에 오면 흥미를 끄는 책 소개가 많군요...ㅋㅋ

딸기 2004-12-09 2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참 재밌어요. 기회가 있으면 한번 읽어보세요.
 

미겔란쏘 프라도 지음, 이재형 옮김 / 현실문화 / 2000년 10월
평점 :
절판


'섬'이라는 공간은, 글쎄, 별로 가 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다. 기껏해야 제주도나 거제도밖에 가본 일이 없는데 그 묘한 어감의 공간을 이해하기에는 아직 내 경험과 지각력이 못 미치는 것 같다. 스페인 작가 미겔란쏘 프라도의 <섬>은 아주 어둡고 아름다운 화면으로 구성된 그림책이다. 굳이 따지자면 '만화'인데, 현실문화연구에서 앞서 발간한 엥키 빌랄의 '니코폴'이 그랬던 것처럼 '예술적'이고 멋지다.

외딴 섬. 이 섬의 특징을 가리키는 표현은 '지도에 나와있지 않은 섬'이라는 말이다. 지도에 나와있지 않다는 것은 1차적으로 이 섬이 아주 작다는 뜻이면서, 한 차원 더 들어가면 이 섬이 인간의 환상 속에 위치하는 공간일 수 있음을 의미한다. 작은 섬에 살고 있는 한 여자(여관주인 사라), 우연히 찾아온 한 남자(여관 손님1-라울),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듯한 한 여자(손님 2-아나), 사라의 아들(디마)가 이 드라마의 주인공이다. 다시 말해 등장인물 전체가 주인공인 셈이다.

아나는 이 섬의 특징을 이렇게 설명한다. 지도에도 나오지 않고, 이 섬의 부두에는 배가 없고, 이 섬의 등대는 불이 꺼졌고, 이 섬이 여관에는 손님이 없다. '존재 그 자체 외에는 무용지물인 듯한' 것이 이 섬의 구성요소들이다. 막연한 기다림, 고독함만이 존재하는 이 섬에 백수건달 두 남자(손님 3, 4)가 찾아오고, 이어 빚어지는 강간 소동, 그리고 아나와 라울의 이별. 그렇다 해서 아나와 라울이 똑별난 관계를 맺었던 것도 아니다.

도대체 무슨 얘기인지 모르겠다고 한다면 아마 그건 '줄거리'만을 봤기 때문일 것이다. 이 그림책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빛깔'을 보는 것이다. 파스텔로 그려진 이 책의 그림들은 책장을 넘길 때마다 색조가 달라진다. 어떤 부분에서는 인상파의 작품처럼 밝지만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면 짙은 황토빛으로 어두워진다. 라울이 섬에 찾아왔을 때에는 화면이 온통 그림엽서풍의 이쁜 색깔들로 가득차있다. 파란 하늘, 하얀 갈매기, 하얀 방파제. 독자들이 섬이라는 공간이 주는 외로움에 젖어들 무렵이면 날이 저물듯 화면은 어두워지고, 짙푸른 밤의 빛깔로 변한다. 무식하고 야만적인 손님 3, 4의 등장한 뒤로는 아예 배경이 흙빛이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빛의 뒤에서 작가가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은 뭘까. 이성과 욕망의 맞부딪침? 아나와 라울이 이성적이고 지적이라면 사라와 손님 3, 4는 본능적이고 야만적이다. 두 측면의 맞부딪침은 '강간'이라는 가장 야수적인 사건을 통해 표현된다.

내가 만약 아나처럼(난 차마 '사라처럼'이라는 생각은 못 하겠다) 외딴 섬에 홀로 있다면 나의 의식은 어떻게 흘러갈까. 외로울 것이고, 무언가를 기다리게 되지 않을까. 내가 기다리는 대상이 '누군가'일지 혹은 어떤 '사건'일지는 모르겠지만. 소설에 흔히 나오는 것처럼 존재에 '밑바닥'이 있다면, 아마 아나가 있었던 저 섬에 있을 것 같다. 그 섬에 가고 싶냐고? 절대 아니다. 말없이 바다만 바라보는데 지쳐 기껏 갈매기 한 마리에 정을 쏟게 만드는 그런 적막함이 싫으니까.

아름다운 색채 속에서 어둡기 그지없는 내면을 봐야한다는 것은 부담스럽고 재미없는 일이지만 멋진 그림으로 눈이 시원해졌으니 작가에게 감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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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4-11-16 1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럽만화를 좋아하시는군요. 저도 이 작품은 재미있게(?) 봤어요. 끝의 반전(?)은 좀 머리복잡했지만, 니코폴을 보면서 과하게 머릿속을 비집고 오는 수많은 정보들을 보면서, 안그래도 이 만화 떠올렸었는데, 마침 리뷰를 올려주시는군요.

딸기 2004-11-16 1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스하이드님, 히히 이 리뷰는 벌써 몇년전 것이라서, 지금은 내용도 다 까먹었어요 ^^

유럽만화 처음에 보고 참 좋아했었지요. 줄거리보다도 그림 수준이 높아서요.
 
Fog 1 : Le Tumulus - 안개 비앤비 유럽만화 컬렉션 2
보냉 글, 세이터 그림, 유소연 옮김 / 비앤비(B&B) / 2000년 1월
평점 :
절판


'안개속을 헤매면 이상하여라'는 다들 아시겠지만, 헤르만 헤세의 싯구절이죠.

안개 하면 생각나는 나라, 영국이 배경입니다. 그렇다고 헤세풍의 분위기를 연상하지는 마십시오. 셜록 홈즈가 살았던 당시의 런던을 생각하면 될 거예요. 마차가 지나다니고, 안개 속에 가로등이 켜져 있고, 적당히 더럽고 적당히 풍요롭고 적당히 각박한 대도시. 주변엔 항구가 있고, 이미 세상은 현대로 가고 있는데 귀족입네 하면서 폼잡는 이들이 아직 남아 있군요.

영국은 고고학에 관심이 많은 나라입니다. 존 파울즈의 <프랑스 중위의 여자>에도 그런 장면이 나오고, 영국 여성작가의 글을 만화로 만든 <사랑의 아테네>(우리나라에서는 신일숙이 그림을 그렸죠)에도 비슷한 장면이 나옵니다. 해변을 돌아다니면서 화석(이건 고고학은 아니고 고생물학이겠군요)이나 바이킹의 유적을 찾는 여행객들의 모습은 아주 낭만적이죠. 고고학이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것은, '저주' 혹은 '마법'과 같은 판타지의 영역과 쉽게 결합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익히 알려진 파라오의 저주 따위 말입니다.

<포그>에는 파라오의 저주가 아닌 '바이킹의 저주'가 나옵니다. 악당으로 이름을 떨쳤던 고대 바이킹 형제의 무덤을 어느 고고학자가 발굴합니다. 전문적인 고고학자라기보다는, 고고학이라는 그럴싸한 취향을 가진 귀족인데, 그에게는 미모의 딸이 있습니다.
당연히도, 무덤을 파낸 귀족은 저주를 받아 죽습니다. 미모의 딸, 그 주변에는 형사와 신문기자가 있는데, 이들이 사건을 파헤쳐가는 겁니다. 고대 바이킹의 저주인가, 혹은 돈을 노리는 악당들의 짓인가 하는 질문은 물론 여기서는 우문입니다.

신파조의 판타지물을 생각하면 안 됩니다. 떨거지 귀족사회의 분위기라든가 런던 항구의 우울한 분위기를 담담하면서도 섬세하게 묘사해놨고, 인물 하나하나의 성격도 모두 살아있습니다. 작가가 아주 공을 많이 들여 만든 작품이란 느낌이 듭니다. 그림이 참 좋습니다. 우울한 초록 주조의 색채, 흡사 모딜리아니를 연상케 하는 개성 강한 얼굴들이 아주아주 맘에 듭니다. 그림 좋아하시는 분들 이 책 읽으시면 아주 좋아하실 거예요. 그림 못잖게 재미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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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innk 2005-01-23 16: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외국어만 알면 번역이 가능할까?

문학적 소양, 역사, 문화에 대한 이해 없이

번역할 경우 이 책처럼 영국 Scotland Yard 를

스코틀랜드 경찰청으로 번역하는 희극을 연출하게 된다.

그것도 책 한권에서 반복적으로...

무식의 극치!

 

 

 
레지스 르와젤의 피터 팬 - 1,2권 합본 (양장본) 비앤비 유럽만화 컬렉션 4
레지스 르와젤 지음, 이재형 옮김 / 비앤비(B&B) / 200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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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마 내가 읽은 첫번째, 그리고 어쩌면 마지막인 것 같기도 한 '피터팬'은 어릴적 집에 있었던 계몽사 동화집 중의 한권이 아니었던가 싶다. 나는 그 '피터팬'에 대해 여러가지 기억을 가지고 있다. 먼저, 그 책에서 '괴짜'라는 말을 처음으로 배웠다는 것. 웬디네 동네 사람들이 웬디의 아버지를 '괴짜'라고 불렀다는 표현이 나오는데, 그걸 보고 엄마한테 뜻을 물어봤었다. 엄마의 대답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별로 잘 이해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또 하나 기억에 남는 것은, 웬디의 아버지가 나나(개)에게 육아를 맡기고 있었다는 점-바로 이 것 때문에 웬디 아버지가 '괴짜'라고 불렸었다-이다. 웬디의 큰 개가 웬디 삼남매를 돌보았는데, 아버지는 주제에 이 개를 미워했단다. 그래서 밤중에 개를 집 밖의 개집으로 내몰았고, 하필 피터가 이 때 나타나서 개가 없는 사이 삼남매를 데리고 네버랜드로 떠난다.

어린 시절 읽은 네버랜드의 추억 따위는 몽땅 지워버리는, 아니 지우는 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뒤집어 엎어서 메스껍고 징그럽게 만들어버리는 것이 바로 <레지스 르와젤의 피터팬>이다. 아마도 프랑스에서 출간된 원작의 제목은 그저 '피터팬'이겠지만, 우리나라에서 작가의 이름을 앞에 붙여 누구누구의 피터팬이라고 붙인 것은 참 잘한 일이지 싶다. 이런 피터팬, 이런 식으로 '피터팬'을 비비 꼬아낸 작가의 이름을 앞에다 떡하니 붙여놔야, 어린 시절 동화의 미몽에 아직도 빠져 있는 독자들이 좀 정신을 차리지 않겠는가.

피터는 주정뱅이 엄마 때문에 죽도록 고생하면서 동네 못된 인종들로부터 성추행이나 당하는, 찌들대로 찌들고 영악할대로 영악해진 애늙은이다. 팅커벨? 얘는 원작하고 좀 비슷하다. 질투심 많고 저만 아는, 그렇지만 아주 사악하지는 않은 얌체같은 요정. 나머지 등장인물은? 대체 <레지스 르와젤의 피터팬>에는 선인이란 없다. 이야기 좋아하는 늙은 영감, 피터에게 '꿈이란 무엇인가'를 설파하는 노인네 하나를 빼면, 전부 욕심많고 잔혹한 인간들이다.

고전 동화를 패러디한 작품은 많다. 폴리티컬리 코렉티드인지 뭔지 하는 운동가들이 새로이 제작해낸 베드타임 스토리들도 봤고, <알고보면 무시무시한 그림동화 이야기>라는 것도 두 권이나 봤는데, 정말 재미가 없었다. 이런 식의 패러디가 꼭 의미가 있을라나 하는 의심도 했었고, 일단 재미가 너무 없었다.

패러디라는 점만 놓고 보면 이 피터팬은 수준이 다르다. 앞서 말한 류의 동화 패러디와는 질적으로 다르게, '자라지 않는 아이'와 '어린시절의 꿈'을 반어적으로 잘도 그려내고 있다. 극도의 반어법인 셈이다. 한 가지 내 취향에 맞지 않는 건, 잔혹한 장면이 간간이 나온다는 것. 아무리 '현실'이 중요하다 하더라도, 난 이렇게 잔인한(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모습을 굳이 그림으로까지 봐야 하는 건 싫다. 이노무 작가는, 현실적이지 않은 것에 대해 무지한 적개심을 갖고 있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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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11-16 0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그 그림동화는 패러디가 아니라, 원래의 그림동화라고 알고 있는데요... 그렇게 재미없던가요?

딸기 2004-11-16 1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그런가봅니다. 생각해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해요.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저는 무시무시한 건 너무 싫어하거든요 ^^

숨은아이 2004-11-16 1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고 보면 무시무시한 그림동화"는 원작 자체는 아니고, 일본 작가가 가필을 한 것입니다. 그림동화 이전에 페로의 동화가 있고, 그 이전에 프랑스와 독일의 민담이 있을 텐데, 민담도 그렇고 페로의 동화도 꽤 잔혹합니다. 그러나 그림동화는 그걸 상당히 순화시켰기에, 아마 일본 작가가 그걸 모델로 해서 새로 쓴 모양입니다.
 
디오자망트의 열정
알렉산드로 조도로프스키 글, 장 클로드 갈 그림, 최정수 옮김 / 북하우스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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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욕에 빠져 있던 한 여자가 구도의 길로 들어서 결국 진리를 깨닫게 되는 과정. 잔혹함과 육체의 열정에만 빠져 있던 아라스의 여왕 디오자망트. (아라스-이곳은 말 그대로 지옥이다. 약탈과 강간범이 득시글거리는)디오자망트는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들, 뭔지 모를 답답함과 열기(탐욕)에 불현듯(요 부분이 좀 미흡하다...) 싫증을 느끼고 궁전을 나선다. 사라바왕국(아라스의 반대편-화려함, 근엄함, 우주의 질서?)의 위르발 왕을 죽이기 위해 찾아간 디오자망트는 그만 '적과의 사랑'에 빠져 버리는 것이니...

육체적 욕망이 아니라 처음으로 정신적 욕망(진리에의 갈구)에 빠져든 디오자망트는 위르발을 다시 만나 영적으로 결합하기 위해 기나긴 여행을 시작한다. 화려하고 농밀한 그림과 색채, 동양적인 주제의식, 짧으면서도 강약 조절이 분명한 시나리오. 수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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