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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동남아시아 역사' 읽다보니 뒷날개에 책광고가 있는데
이 출판사에서 차우두리 '유럽 이전의 아시아' 내놓으려고 한단다.

근데 '동남아~'가 2004년 꺼니깐 당시 '근간'이었으면 나왔어야 하는데...
못 참고 출판사에 전화해보니깐 아직도 '번역중'이라고...

빨랑 나왔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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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6-10-21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한번 힘을 써보겠습니다^^

딸기 2006-10-21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꼭 그래주셔요 ^^
 

 

나깁 마흐푸즈, '게벨라위의 아이들'과 '도적과 개들'(돌바람님이 이거 갖고있다고 했는데)

 

오르한 파묵, '내 이름은 빨강'과 '눈', '하얀성'

 

라픽 샤미, '1001개의 거짓말'과 '한줌의 별빛'

 

아지즈 네신, '생사불명 야샤르'와 야샤르 케말, '독사를 죽였어야 했는데'
요즘 터키 소설 붐인 모양이지. 아지즈 네신과 야샤르 케말의 작품이 모두 이난아씨 번역으로
꽤 많이 나와있구나.

 아흐멧 알탄, '감정의 모험'  이것도 터키 소설;;

 

칼레드 호세이니, '연을 쫓는 아이'
(저자 이름 표기를 보니... 번역이 의심스러워, 사서 읽지는 못하겠다)

살만 루시디, '악마의 시'와 '하룬과 이야기바다', '무어의 마지막 한숨', '한밤의 아이들'

 힐미 압바스, '마음의 땅 보이지 않는 자들-알려지지 않은 쿠르드족 이야기'

 이네 살림, '아버지의 총' 이것도 쿠르드 이야기

 아티크 라히미, '흙과 재'

 가싼 카나파니, '불볕 속의 사람들'과 '뜨거운 태양 아래서'

이밖에 잘랄 앗딘 루미의 시선들이 꽤 많이 나와있고,
나머지 이란 문학들은 제목과 저자 이름으로 봤을 때 중역이 의심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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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10-19 1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른 책들은 제가 읽기 벅찰 것 같네요.

딸기 2006-10-19 2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다 안 읽어본 것들이예요 ^^
근데 라픽 샤미, '1001개의 거짓말'은 안 읽어보셨다면 꼭! 꼭! 읽어보세요
진짜 웃기고 슬프고 재밌어요
 

손가락과 말(馬)


11. 손가락이 손가락을 가지고 그 손가락이 손가락이 아님을 밝히는 것은 손가락 아닌 것을 가지고 손가락이 손가락 아님을 밝히는 것보다 못하다. 말을 가지고 말이 말 아님을 밝히는 것은 말 아닌 것을 가지고 말이 말 아님을 밝히는 것보다 못하다. 하늘과 땅도 하나의 손가락, 만물도 하나의 말.

[일반적으로] 되는 것을 일러 됨이라 하고 되지 않는 것을 일러 되지 않음이라 한다. 길은 다녀서 생기고 사물도 그렇게 불러서 그렇게 된다. 어찌해서 그렇게 되는가? 그렇다고 하니까 그렇게 되는 것이다. 어찌해서 그렇지 않게 되는가? 그렇지 않다고 하니까 그렇지 않게 되는 것이다. 사물에는 본래 그럴 까닭이 있고, 그럴 가능성도 있지. 그렇지 못한 것은 하나도 없고, 그럴 수 없는 것도 하나도 없다.


통 뭔소린지.

해설을 보니, 논리학파의 공손룡이라는 자가 ‘지물론’이라는 책에서 ‘내 손가락은 손가락이 아니다’라고 했단다. 장선생님은 이 말을 반박하려고 했다는 것. 해설자 말을 보편 특수 개별 개념으로 바꿔보면 내 손가락은 개별자이니 보편자로서의 손가락과 다르다는 그런 얘기라는데, 그럼 장선생님이 얘기한 ‘손가락 아닌 것을 가지고 손가락이 손가락 아님을 밝히는 것’은 대체 뭔가? 이 소는 소가 아님을 입증하는 거하고, 저 말은 소가 아님을 입증하는 거하고 어느게 낫고 자시고 하나?


12. 이와 같은 이유로 작은 풀줄기든 큰 기둥이든, 추한 사람이든 서시든, 사물은 아무리 엉뚱하고 이상야릇한 것이라도, 도의 견지에서 보면 모두 통하여 하나가 된다. 나누어짐이 있으면 이루어짐도 있고, 이루어짐이 있으면 허물어짐도 있다. 모든 사물은 본래 이루어짐과 허물어짐이 따로 없이 모두 통하는 하나이다. 오로지 높은 경지에 도달한 사람만이 모두 통하는 하나를 깨닫고, [이것이냐 저것이냐 하는 차별의] 범주 대신, [양쪽을 포괄하는] ‘보편적인 것(庸)’에 머무를 수 있다.

보편적인 것이란 쓸모 있음을 말한다. 쓸모 있음이란 통함이고 통함이란 즐김이다. 즐김은 도에 가까움이다. 있는 그대로를 그렇다 하는 것(因是)이다. 그러면서도 그런 줄 모르는 것, 그것을 도(道)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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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19 13: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딸기 2006-10-19 1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옷 **님, 반갑습니다. 전문용어로 방가방가...라고 하나요
리뷰 퍼갈께요. 히히.
 

‘이것’과 ‘저것’


10. 사물은 모두 ‘저것’ 아닌 것이 없고, 동시에 모두 ‘이것’ 아닌 것이 없다. 자기를 상대방이 보면 ‘저것’이 되는 줄을 모르고, 자기가 자기에 대한 것만 알 뿐이다. 그러기에 이르기를 ‘저것’은 ‘이것’에서 나오고 ‘이것’은 ‘저것’ 대문에 생긴다고 하였다. 이것이 바로 ‘이것’과 ‘저것’이 서로를 생겨나게 한다는 ‘방생(方生)’이라는 것이지.

삶이 있기에 죽음이 있고, 죽음이 있기에 삶이 있다. 됨이 있기에 안 됨이 있고, 안 됨이 있기에 됨이 있다. 옳음이 있기에 그름이 있고, 그름이 있기에 옳음이 있다. 그러므로 성인(聖人)은 일방적 방법에 의지하지 않고 [전체를 동시에 볼 수 dT는] 하늘의 빛에 비추어 보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있는 그대로를 그렇다 함(因是)’이다.

[하늘의 빛에 비추어 보면] ‘이것’은 동시에 ‘저것’이고, ‘저것’은 동시에 ‘이것’이다. 성인의 ‘저것’에는 옳고 그름이 동시에 있고, ‘이것’에도 옳고 그름이 동시에 있다. 그러면 ‘저것’과 ‘이것’은 따로 있다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는 것인가? ‘저것’과 ‘이것’이 상대적 대립 관계를 넘어서서 없어지는 경지를 일컬어 ‘도의 지도리(道樞)’라 한다. 지도리이기에 회전의 중심에서 무한한 변화에 대응한다. 옳음도 무한한 변화의 하나요, 그름도 무한한 변화의 하나. 그러므로 ‘무엇보다 [옳고 그름을 넘어서서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밝음이 있어야 한다’고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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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식으로 말하면 항상 멋진 것 같고 통찰력이 있는 듯하면서도 또 아무것도 아닌 것 같고... 옳음도 그름도 무한한 변화의 하나라는 것은 맞는 얘기인 것 같다. 얘, 얘, 그러니까 일방주의는 안된다고 하잖아. 세상에 하나는 몽땅 맞고 하나는 몽땅 틀린 것이 어디있니. 어쭈... 시시비비 양시양비 이런 건 싫은데 현실은 언제나 양시양비다.


* 지도리(추·樞): 돌쩌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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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사람이로군요

  **님에게 선물받은 책... 아직도 못 읽고 있는데.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됐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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