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하면 불행해지지만 비전을 품으면 행복해진다



나무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살아간다. 소나무는 소나무대로, 참나무는 참나무대로 살아가고, 벚나무는 벚나무대로, 등나무는 등나무대로 살아간다. 수많은 나무들이 있지만 살아가는 방식은 저마다 다르다. 이렇게 각기 다른 나무가 숲을 이루며 자연스럽게 살아간다.


나무 열전이 펼쳐지는 숲에 가보면 나무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치열하게 살아간다. 송직극곡(松直棘曲), 소나무는 곧게 자라고 가시나무는 뒤틀리면서 자란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해도 가시나무는 소나무를 부러워하지 않고 소나무의 흉내를 내려고 하지도 않는다. 소나무는 소나무, 가시나무는 가시나무다. 소나무는 소나무처럼 자라고, 가시나무는 가시나무답게 자라는 것이 자연이다. 어찌 이게 나무에게만 해당되는 사실일까. 자연의 모든 생명체는 모두 저마다의 방식으로 살아간다. 다리가 긴 학은 학대로, 다리가 짧은 오리는 오리대로 살아간다. 다리가 짧은 오리는 다리가 긴 학과 자신을 절대 비교하지 않는다. 이렇듯 각각의 특성을 살려가며 개성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자연의 순환 원리이자 이치다. 비교하면 불행해지지만 비전을 품으면 행복해진다. 잎이 넓은 활엽수는 활엽수대로, 잎이 가늘고 긴 침엽수는 침엽수대로 살아간다. 높이 자라는 나무는 하늘을 보고 자라고 땅에서 가까운 나무는 땅을 보며 저마다 행복하게 살아간다. 물가에 자리 잡은 버드나무는 물을 정화시키며 살아가고 산 정상에서 자라는 나무는 수시로 불어닥치는 바람을 이겨내기 위해 자세를 낮추어 살아간다.


남도 지역에서 부르는 〈나무타령〉을 잠시 감상해보자. 나무 이름으로 지은 노래 가사가 예사롭지 않다. 나무의 성격이나 존재 이유를 드러내는 것도 같고 고유한 색깔대로 조화롭게 어울려 사는 나무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 같기도 하다.



십리 절반 오리나무, 열의 곱절 스무나무, 대낮에도 밤나무, 방귀 뀌어 뽕나무, 오자마자 가래나무, 깔고 앉아 구기자나무, 거짓 없어 참나무, 그렇다고 치자나무, 칼로 베어 피나무, 입 맞추어 쪽나무, 양반골에 상나무, 너하구 나하구 살구나무, 나무 가운데 나무는 내 선산에 내나무.



이외에도 수액 좀 그만 빨아먹으라고 호소하며 자고로 인간의 사악함을 한탄하는 고로쇠나무, 저마다 참나무라고 우기는 굴참나무, 갈참나무, 졸참나무, 총을 잘 쏘는 딱총나무, 물가에서 언제나 푸르게 자라는 물푸레나무, 화살처럼 날아가는 화살나무, 밤나무 보고 너도나도 밤나무라고 하는 나도밤나무와 너도밤나무, 맨날 말아 먹는 국수나무, 고민 끝에 찾다가 실마리를 잡은 가닥나무, 밤에만 자기를 부르는 자귀나무와 그 옆에서 질투를 느끼는 머귀나무, 가뭄을 걱정하는 가문비나무, 계획을 세우고 언제나 미루기만 하는 미루나무, 이름만 들어도 무서운 작살나무, 그 옆에서 조금 덜 무섭다고 우기는 좀작살나무, 자신만의 독특한 향기를 내뿜으며 유혹하는 향나무, 언제나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구상나무, 대패질하는 집 앞에 서 있는 대팻집나무, 음식 만들 때 자기를 꼭 양념의 재료로 쓰라고 부탁하는 생강나무, 세상의 비밀을 숨기자고 쉬쉬하는 쉬나무, 까마귀에게 밥 주는 까마귀밥나무, 보리밥만 대접하는 보리밥나무, 꿩 보고 덜떨어졌다고 우기는 덜꿩나무, 말이 오줌을 주로 누어서 생겼다는 말오줌때나무가 있다.


또 먹어보면 신맛이 나는 신나무, 사람에게 많이 퍼주는 사람주나무, 예로부터 덕이 많은 예덕나무, 참 죽이 잘 맞는 참죽나무, 언제나 차를 대접해오는 차나무, 자신을 태운 재가 노랗다고 생각하는 노린재나무, 조밥을 닮은 조팝나무, 이 밥만 먹고 자란 이팝나무, 박쥐가 날아가다 쉬고 간다는 박쥐나무, 산딸기 모양의 열매를 맺는 산딸나무, 사시사철 푸름을 자랑하는 사철나무, 가까이하기에는 너무 먼 당신 같은 먼나무, 아닌 밤중에 홍두깨로 쓰이는 박달나무, 크고 날카로운 가시로 접근 금지를 엄하게 외치는 엄나무, ‘쾌지나 칭칭 나네’를 부르며 자라는 층층나무, 화류계(花柳界)의 거두로 무한히 뻗어가는 버드나무21, 감 떨어지기 전에 감나무, 두려워서 벌벌 떠는 사시나무, “왜 소태 씹은 얼굴을 하고 있어?”라고 물을 정도로 정말 잎이 쓴 소태나무, 임도 보고 뽕도 따며 일 년 365일 방귀만 뀐다는 상전벽해(桑田碧海)의 주인공 뽕나무와 그 옆에서 덩달아 방귀를 뀌는 꾸지뽕나무… 이런 나무들이 만들어가는 숲의 경이로움과 자연의 위대함에 우리는 얼마나 감탄하며 살고 있는지를 되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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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며든 연인, 나무와 사랑에 빠지다



나무는 늘 우리 곁에 존재해왔지만 나무가 사람과 공존하면서 어떻게 살아가는지, 그리고 나무가 사람에게 어떤 도움을 주는지를 알지 못한 채 살아왔다. 나에게 나무는 《멀고도 가까운》 곳에 존재하면서 《천천히, 스미는》 존재다. 나무는 내 삶과 멀리 떨어진 산에 다른 나무와 숲을 이루면서 존재하기도 하고 가까운 거실과 서재, 그리고 나의 연구실에도 존재하면서 어느 순간부터 나에게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생태학 관련 책을 읽으며 생태학자들이 펼치는 관념적 주장과 이상적 슬로건에 식상해질 무렵,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언제나 거기에 존재하면서 말없이 살아가는 나무의 일상에서 생태학적 상상력의 단초를 얻기 시작했다.


생태학도 생명체의 삶의 터전인 생태계에 대한 무관심이나 무지가 해소되지 않는다면 관념적이고 허구적인 주장으로 일관하는 공허한 메아리로 울려 퍼질 수 있다. 하지만 생태계에서 살아가는 작은 생명체라고 할지라도 거기서 살아가는 방식과 원리에 관심을 갖고 유심히 관찰하면서 놀라운 생태학적 관심과 상상력이 생기기 시작한다.


나무가 살아가는 모습이 수없이 스쳐 지나갔지만 어느 순간부터 내 뇌리를 파고들어 심장 속으로 스며들어오기 시작했다. 스치면 인연이지만 스미면 연인이다. 나는 나무를 그동안 스쳐 지나갔지만, 이제 나무가 내 마음으로 스며들어오기 시작했다.


수없이 많은 사람과 사물이 스쳐 지나갔지만 내 심장에 담긴 감정의 파고가 드높지 않은 이유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지난 시절의 과거일 뿐이기 때문이다. 내 몸에 남아 있는 감정의 파고만큼 내 삶의 파도도 그 높낮이가 다르다. 나무를 만나고 느낀 지난 시절의 내 추억이 강렬할수록 내 몸에도 나무와 만난 사연이 오롯이 살아 있다. 하지만 모든 나무가 다 그런 추억을 갖고 있지는 않다. 시골에서 자라면서 늘 만났던 갈참나무나 떡갈나무, 밤나무와 감나무, 앵두나무와 살구나무는 늘 먹거리를 제공해준 아련한 추억들을 지니고 있다. 봄날 냇가에서 봄바람에 흔들리는 버드나무 가지로 만든 버들피리를 불던 추억, 신작로 가로수 길에서 언제나 등하굣길에 만났던 미루나무, 그리고 동네 한가운데에서 아낌없이 그늘을 만들어주었던 느티나무와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한 겨울에도 늘 푸르름으로 청춘의 뛰는 가슴을 자극했던 소나무에 대한 추억이 아롱지게 남아 있다.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이성복 시인의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에 실린 〈그날〉의 마지막 구절이다. 이것을 나무에 대입해보면 “모든 나무가 거기 있었는데 아무도 알지 못했다.”라고 할 것이다. 나무는 항상 우리 곁의 저마다의 자리에서 존재해왔다. 그러나 아무도 나무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관심을 가지면 보인다. 믿음을 가지면 보이지 않는다.”


일본의 경영컨설턴트 고미야 가즈요시가 쓴 《창조적 발견력》에 나오는 말이다. 나무를 잘 알지 못하면서 늘 만나서 안다고 생각하는 잘못된 믿음이 생긴 것이다. 그 믿음이 나로 하여금 나무를 알려는 의지는 물론 관심까지 증발시킨 것이다. 나는 알면 사랑한다는 입장보다 사랑하면 알게 된다는 입장에 공감한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사랑하기 시작하면 이전과 다른 관심과 애정이 생기고 앎에의 의지가 높아지기 시작한다. 나무도 마찬가지다. 나무를 사랑하기 시작하면서 늘 거기에 있던 나무가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시속 0km로 자라는 나무, 세상에서 가장 독립적인 생명체



자기중심을 갖고 살아가는 모든 주체는 나체(裸體)일 때 자신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나체는 그냥 벗은 몸이 아니라 자신을 위장하거나 포장하는 모든 형용사를 떼어버리고 본래의 내 모습으로 드러날 때 보이는 몸이다. 나무의 본질은 사계절 다 엿볼 수 있지만, 특히 새봄의 파릇한 새싹을 성하의 녹음으로 바꾸고, 이어서 불타는 단풍으로 한 시절을 정리하면서 겨울맞이를 하는 나무를 보면 나무야말로 ‘나무(裸務)’ 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나무가 ‘나무(裸務)’인 이유는 나력(裸力)으로 자신의 존재의 근원을 보여주려는 저마다의 몸부림으로 치열하게 살아가는 생명체이기 때문이다.


나무는 자신이 처한 위치에서 자신에게 맡겨진 삶의 소명과 의무를 다하는 ‘나무(裸務)’다. 다른 생명체의 힘에 의지하지 않고 오로지 자기 힘으로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고 마땅히 해야 할 의무를 다하는 생명체다. 물론 나무가 자라는 데는 토양의 양분과 수분이 필요하고, 적당한 햇볕이 있어야 광합성을 하며 푸르름을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나무는 누군가를 의존하거나 착취하지 않고 성장에 필요한 모든 에너지를 스스로 받아 순환시키면서 살아간다.


의무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나 직분을 말한다.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서는 그 의무에 걸맞은 나만의 경쟁력이 있어야 한다. 그 경쟁력이 바로 나력(裸力, Naked Strength)이다. 나력은 내 이름 석 자로 버틸 수 있는 본래의 힘이다. 조직에서 받은 직위나 누군가 나에게 붙여준 각종 형용사의 덤불을 다 걷어내고 이름 석 자로 보여줄 수 있는 나만의 고유한 경쟁력이다. 나무는 나력의 대명사다. 이에 반해 인간은 어떠한가.


“인간은 생물체 중에서 유독 혼자만 암 유발 물질을 인공적으로 만들어낸다. 이것은 지난 몇 세기 동안 우리 환경의 일부가 되었다.”


지식채널e에 ‘시속 0km’라는 나무에 관한 동영상이 있다. ‘시속 0km’는 세상에서 가장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나무의 성장 속도를 말한다. 1945년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된 리틀 보이(Little Boy)는 시속 320km로 돌진, 무려 8만여 명을 현장에서 즉사시키고 주변을 순식간에 복구가 불가능한 폐허로 만들어 버렸다. 시속 320km가 생명을 앗아간 그 땅에는 시속 0km로 자라는 나무만 남았다. 그 나무가 바로 은행나무다. 은행나무는 그 자리에서 천 년 이상을 살아가고 있었다. 나무는 태양, 물, 이산화탄소만 있으면 지구 어디에서나 자신의 자리에 서서 다른 생명체를 잡아먹지 않은 채 가장 크고 오랫동안 자랄 수 있는 지구 생명체다. 그 어떤 생명체보다 느린 시속 0km의 속도로 자라지만 다른 생물의 도움 없이도 스스로 양분을 섭취하고 만들어내는 지구상에서 가장 독립적인 생명체인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느리게 자라지만 가장 높이 자라는 나무, 그러면서도 누구의 도움을 받지 않고 자신에게 맡겨진 삶의 의무를 묵묵히 수행하는 나무는, 나무라지 않고 맨몸으로 그 자리에서 언제나 살아간다. 나무는 그래서 나무(裸務)다. 이에 반해서 날이 갈수록 속도를 높이며, 자연을 착취하고 파괴하며 살아가는 인간은 지구상에서 가장 종속적인 생명체다. 가장 종속적인 생명체인 인간은 가장 독립적인 생명체인 나무에 의존하며 살아간다. 가장 독립적인 나무 없이는 가장 종속적인 인간이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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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가족이 잠이 든 후 나는 냉장고로 가서 발포주를 꺼냈다.


피식!


“응? 히로시, 그거 발포주 아냐?”


“네, 맞습니다. 오늘은 이것으로 건배를 하려고요.”


“하하하! 너도 우주처럼 드라마틱해진 것 같은데.”


나는 우주님과 조용히 건배를 했다.


“그때 우주님이 샤워기 헤드에서 나와 내게 ‘포기하지 마.’라고 말해주지 않았다면 나는 파산을 했거나 죽었을 것입니다. 그때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주님이 포기하지 않도록 나를 이끌어주었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존재하는 것이지요.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나를 믿어주어서 정말 감사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아내를 만나게 해주어서, 예쁜 딸들을 얻게 해주어서,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나는 지금 정말 행복합니다.”


“하하하! 뭐야, 새삼스럽게. 뭐, 너도 나의 위대함을 알게 된 것 같군. 하지만 한 가지 가르쳐주지. ‘포기하지 마.’라고 속삭였던 건 내가 아냐.”


“네?”


“그건 내가 아니었어. 지금의 너였지.”


“그,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그럼 채무 완전 변제를 기념해서 중요한 우주의 구조를 가르쳐주지. 사실 우리는 시간이 과거에서 미래로 흘러간다고 생각하지만, 우주에 시간의 개념 따위는 없어. 굳이 말한다면, 시간은 미래에서 과거로 흐른다고 말하는 쪽이 더 정확한 표현이겠지.”


“미래에서 과거로?”


“지금의 너는 채무를 모두 변제할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과거의 네게 메시지를 보낸 거야.”


“네? 과거의 내게 메시지를? 그게 가능합니까?”


“당연히 가능하지. 그렇지 않다면 내가 왜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오가면서 너를 보살펴주겠냐?”


“네? 우주님이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오간다고요?”


“그렇지.”


“그 말은 미래도 알고 있었다는 뜻입니까? 내가 빚을 모두 갚을 것이라는 사실도? 그리고 지금부터의 미래도?”


“당연히 알고 있지. 그런데 왜?”


“그게… 10년 후의 나는 어떻게 됩니까?”


“너 바보냐? 그걸 체험하고 싶어서 지구로 내려왔는데 내가 미리 가르쳐주면 무슨 재미가 있냐?”


“…….”


“굳이 말한다면 미래의 네가 보내는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면 돼.”


“미래의 내가 보내는 메시지?”


“그래. 그것이 우주로부터의 최고의 힌트이니까. 그리고 현재의 너는 과거의 네게 힌트를 보내는 거야. 사랑과 신뢰를 함께 담아서. 자, 과거의 네게 메시지를 보내봐.”


“네? 그걸 어떻게…?”


“현재의 너이기 때문에 가능한 거야. 빚을 모두 갚은 현재의 너이기 때문에. 그날의 네가 들을 수 있도록 메시지를 보내는 거야. 나는 네 어린 시절부터 줄곧 우주가 소원을 들어준다는 사실을 가르쳐주었어. 그런데 과거의 히로시는… 도중에 그 사실을 잊어버렸지. 우주의 목소리 따위가 들릴 리는 없다는 세상의 상식에 빠져서 말이야. 그리고 우주 파이프를 오염시켜서 빚투성이가 되었지. 우주에 주문을 해서 빚을 모두 변제한 현재의 네가 메시지를 보내면 과거의 네가 틀림없이 반응할 거야. 그리고 현재의 너는 과거의 네가 빚을 갚기를 포기한다면 난처해지겠지?”


“네! 당연히 그렇지요!”


“그렇다면 현재의 네가 9년 전의 너를 만난다면 어떻게 할래? 그때 그 눈물콧물을 흘리며 탄식을 하던 너를 만난다면?”


“그건…, 현재의 나는 이미 빚을 모두 변제했고, 행복하게 살고 있으니까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고 말하겠지요.”


“그렇지? 그럼 포기하지 말라고 말해.”


“네? 어떻게요?”


“시간은 미래에서 과거로 흐르고 있다고 하잖아. 즉, 미래로부터의 목소리는 과거에 전달되는 거라고. 과거는 바꿀 수 있는 거야. 그러니까 과거를 향해서 크게 소리치라고!”


나는 시키는 대로 과거의 나를 떠올리며 힘주어 말했다.


“포기하지 마, 포기하지 마. 지금 포기하면 안 돼. 너는 반드시 행복해질 거야. 미래의 너는 정말 행복해져서 최선을 다해 노력해준 네게 감사할 거야. 그러니까 부탁이야. 포기하지 마. 절대로 포기하지 마.”


“그래. 잘했어. 그럼 나는 이제 과거의 너를 만나서 교육 좀 시키고 올게. 또 보자고, 히로시!”


우주님은 그렇게 말하고 샤워기 헤드 안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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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생긴방통 2017-08-21 2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점점 조회 수가 줄어들고 있군.ㅋㅋ
 




파워스톤 팔찌 상점 주인이 된 나는, 어느 날 우주님에게 이런 주문을 했다.


“파워스톤 팔찌 사업을 좀 더 확장하고 싶습니다!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뭐든지 할 수 있으니까, 힌트 좀 주십시오!”


“헛, 너 꽤 의욕적이다.”


그로부터 며칠 후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HKB의 ‘신나는TV’입니다만….”


나는 생각했다.


‘그래! 우주님의 반응은 정말 빨라!’


“네! 무슨 일이시지요?”


한껏 들뜬 내게 상대방은 이렇게 말했다.


“봄 의류 신상품 특집을 진행하고 있는데 취재 좀 할 수 있을까요?”


‘응? 의류?’


우주님에게 주문을 한 이후에 방송국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뭐야, 팔찌 취재가 아니었어? 나는 팔찌 사업을 확장하고 싶다는 주문을 했는데?’


나는 이미 의류 판매에서 손을 떼었기 때문에 상점에는 의류가 없었다. 거절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저, 정말 죄송하지만….”


이렇게 말을 꺼내는 순간, 우주님이 나타나 험악한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혹시 뭔가 의미가 있는 것일까?’


이렇게 생각하고 상대방에게 일단, “봄 상품을 준비할 수 있을지 지금은 확실히 알 수 없어요. 다시 곧 전화 드리겠습니다!” 라고 말한 뒤에 전화를 끊었다.


“아니, 하지만 이제 의류 판매는 그만두라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의류 재고품은 이제 없습니다.”


내가 변명하듯 말하자 우주님은 “빌리면 되잖아!” 하고 말했다.


“네?”


“너, 뭐든지 하겠다고 말하지 않았어?”


“…그, 그렇기는 하지만.”


“그리고 지난번에 가르쳐준 말버릇을 벌써 잊어버린 거야? 무슨 일이 발생하면 반드시 해야 하는 말이 있잖아!”


“아…, 네! 그래! 이것으로 소원이 이루어졌어!”


커다란 목소리로 되풀이해보자 정말 이 상황에 어떤 의미가 있는 것 같으면서 왠지 가슴이 설레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 알아볼 수 있는 만큼 알아보자.’


이렇게 마음먹고 도매상에 전화를 걸어 사정을 설명했다. 그러자 “다시 통화를 하게 되면 우리에게 연락을 주십시오.” 라고 두 군데에서 봄 신상품을 촬영용으로 빌려주겠다고 말했다.


나는 즉시 방송국에 전화를 걸었다.


“신상품을 준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취재를 오셔도 됩니다.”


이렇게 말하고 날짜를 잡았다.





그리고 취재 당일, 약속 시간에 맞춰 프로그램 제작사 사장과 여성 연출가가 가게를 찾아왔다.


“어서 오십시오!” 하고 문을 여는데, 두 사람의 뒤를 이어 독특한 분위기를 풍기는 손님이 쑥 들어왔다. 흰 고양이를 안고 있는 노부인이었다.


“소문 듣고 왔어요. 당신, 점술가지요? 기가 막히게 맞힌다면서요?”


제작사에서 나온 두 사람은 방해하지 않기 위해 노부인에게 길을 열어주었다.


“네? 점술가요?”


“내가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곳에서 친하게 지내는 사람의 지인이 당신에게 점을 치고 염주를 구입했는데, 그 후에 좋은 일만 일어났다더군요. 그리고 어느 날, 그 염주가 끊어졌는데 이번에는 자궁의 질병이 완치되었다던데요.”


아무래도 그 노부인은 뭔가 오해를 하고 있는 듯했다.


“점을 친 것이 아니라 오링테스트를 한 것입니다. 그리고 염주가 아니고 파워스톤으로 만든 팔찌입니다.”


나는 노부인의 말을 정정해주었다.


“어느 쪽이건 상관없어요. 어쨌든 나도 그 테스트 좀 해줘요. 지금 은행에 가서 돈을 찾아올 테니까 나한테도 그 팔찌를 만들어줘요!”


그렇게 기관총을 난사하듯 빠르게 말한 뒤에 노부인은 마치 총알처럼 가게를 나가버렸다.


취재를 나온 두 사람의 눈이 동그래졌다.


“지금 그 이야기는 뭡니까?”


“파워스톤을 판매하시나요?”


“오링테스트라니, 그건 또 뭡니까?”


강한 호기심을 보여 팔찌에 관해서 설명을 해주자 사장이 말했다.


“저, 봄 신상품 취재는 다음으로 미루지요. 오늘은 저의 팔찌 좀 만들어주시겠습니까?”


사장에게 오링테스트를 하고 팔찌를 만들어주자,


“이제 나도 결혼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아? 이것 봐.” 라고 말하며 연출가에게 자랑하듯 내보였다.


연출가는 진지하게 수첩을 들여다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지금 말 시키지 마세요. 언제 어머니하고 함께 팔찌를 만들러 올 것인지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사흘 뒤에 정말로 연출가는 어머니와 함께 가게를 방문했다.


그 후, 다시 날짜를 잡아 3시간 정도에 걸쳐 봄 신상품 촬영을 마쳤는데 그중에서 방영이 된 것은4 분 정도였다.


놀란 것은 그중에서 3분 정도가 팔찌 이야기였다는 것이다. 방송이 나가고 난 뒤 전화가 울리기 시작하더니 다음 달까지 팔찌 예약이 끝났다. 의류에 관한 문의 전화는 한 통도 없었다.


가게는 정신없이 바빠졌다. 방송을 본 사람들의 문의 전화와 예약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자 이번에는 팔찌를 착용한 사람들의 입소문을 통해서 예약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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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세월 동경해온 의류점을 접고 파트타임마저 끊어버린 나는 파워스톤 팔찌만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사람이 되었다.


이런 말을 하면, “빚에 허덕이다가 영적인 세계에 빠져버렸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나 자신도 결단을 내리고 그만두기는 했지만 “정말 이렇게 해도 괜찮을까?” 하는 걱정이 드는 순간이 있었고, 주변에서도 처음에는 그런 걱정을 해주는 사람이 많았다.


“지금까지 찾아오던 손님들에게 미안하지 않아?”


“파워스톤만으로 먹고살겠다니, 정말 무모하다.”


이런 식으로 직접적인 조언을 해주는 사람도 있었고,


“뭐야, 그 가게, 옷은 진열하지 않고, 이상한 팔찌를 팔던데?”


이렇게 빈정거리듯 소문을 내고 다니는 사람도 있었다.


아무리 먹고살 수 있게 되었다고 해도 이런 말은 듣기 거북했다. 가장 기가 죽었던 것은 오랜 친구로부터 “의류 판매 사업으로 성공하겠다던 뜻을 접은 거야? 포기한 거야? 정말 유감이다. 실망이야…. 너의 뜻이라는 게 그 정도였던 거야?”라는 말을 들었을 때다.


나는 반박할 수 없어서 고개를 숙이고 집으로 돌아왔지만, 집에 도착한 순간 분노도, 슬픔도 아닌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아! 더 이상 못 참겠어!”


소파에 놓여 있는 베개에 화풀이를 하듯 발로 힘껏 걷어찼을 때, 우주님이 나타났다.


“뭐야? 오늘은 표정이 묘한데.”


“저도 화낼 줄 아는 사람입니다. ‘실망이야. 너의 뜻이라는 게 그 정도였어?’라는 말을 들으니까 참을 수가 없습니다.”


“흐음, 그 말은 결국 너도 그렇게 생각한다는 뜻이지?”


“네?”


“뭐가 ‘네?’야! 너 누구에게 화풀이하는 건데? 네가 최근에 들은, 의류점을 그만둔다는 데에 관한 비판이나 조언들, 그거 모두 너 자신이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듣게 된 말들이라고.”


“무슨 말입니까! 저는 그렇게 생각한 적 없습니다!”


“그럼 왜 화를 내는데? 왜 가슴이 아픈데? 너 자신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래,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 하고 넘어가면 되는 거 아니냐? 애당초 네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네게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나타나지 않아. 네게 발생하는 모든 일들은 전부 너의 내부에 있는 에너지가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니까.”


“아, 그건…, 하지만….”


“‘하지만’이 아냐! 너는 깨끗하게 체념할 줄을 모르는 인간이야. 그리고 그 ‘변명하는 듯한 말버릇’ 좀 그만해. 그럼 묻겠는데, 왜 반박하지 못했지? 왜 그런 말에 신경을 쓰는 건데? 그 말들이 너의 정곡을 찌르는 것 같으니까 반박하지 못하는 거 아냐?”


“…….”


“잘 들어. 그건 드림 킬러dream killer야.”


“드림 킬러요?”


“우주에 주문을 하는 초보자 앞에 반드시 나타나는 ‘드림 킬러’라고. 잘 들어. 드림 킬러가 나타나면 너 자신이 시험을 당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야 돼.”





사람들은 변화를 싫어하는 동물이다. 불행한 사람은 마음속으로 계속 불행하다고 생각해야 안심할 수 있고 행복한 사람은 계속 행복해야 안심한다. 그런 성질이 있다. 이것은 일종의 생존 본능이다. 익숙한 상황이 행복이건 불행이건 그것이 살아남기 위해 가장 안전하다고 뇌의 중추, 뇌간이 판단하는 것이다. 이른바 마음의 전제라는 것이다.


이 전제는 매우 강하다. 불행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이 ‘행복해지겠다.’고 결심하고 주문을 해서 행복한 변화가 찾아오면 반드시 그동안 익숙했던 불행으로 되돌리려는 훼방꾼이 나타난다. 그래서 좋은 일이 있어도 그것이 계속 이어지지는 않을 것 같은 불안감이 느껴진다.


이 훼방꾼이 드림 킬러다! 그럴 때에는 자신의 잠재의식이 시험당하고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주문 초보자는 대부분 그때까지 불행한 주문만 해왔다. 그런 사람이 자신의 사고, 즉 현재 의식으로 갑자기 행복한 주문을 하면 잠재의식이 겁을 먹는다. 드림 킬러는 주문을 한 본인의 잠재의식의 반발과 불안을 그대로 눈앞에 드러낸다. 그런데 이것 역시 커다란 힌트다. 히로시의 경우를 예로 들어 말한다면 익숙한 상황을 놓아버린 그 자신, 정확하게는 히로시의 잠재의식이 아직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상황에 이르지 않았기 때문에 “이것으로 정말 괜찮은 것일까?” 하는 불안감을 느끼는 것이다.


드림 킬러에 맞서 이겨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간단하다. 잠재의식은 지금까지 100엔짜리 컵라면만 주문했던 당신이 갑자기 3천 엔짜리 스테이크를 주문했다는 데에 불안감을 느끼고, “정말 괜찮을까?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데, 정말 괜찮을까?” 하고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니까, 자신의 주문에 대해 자신감을 가지고 당당하게 “문제없어.” 라고 대답하면 된다. 그리고 자신을 향해 전적인 신뢰와 사랑을 전하고, “커다란 변화와 행복을 받아들일 준비는 갖추어졌어! 그러니까 스테이크를 주문하자! 이제 스테이크를 먹을 수 있는 내가 된 거야!” 라고 다시 한 번 당당하게 주문을 한다. 그렇게 하면 주변의 목소리는 저절로 사라질 테니까 반드시 실천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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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nhyun 2017-07-28 1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게 잘 읽고 있어요. 대화체가 가볍고 발랄해서 읽기가 쉽네요.

낙조의꿈 2017-10-11 1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은언제나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