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 꾸뻬, 인생을 배우다 열림원 꾸뻬 씨의 치유 여행 시리즈
프랑수아 를로르 지음, 강미란 옮김 / 열림원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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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성장 보고서>에서 신생아가 의료진의 손가락을 꼭 붙들고 매달려서 떨어지지 않는 사진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그 악력, 손으로 꽉 움켜쥐는 악력이 칡등처럼 질기디 질긴 생명의 힘이라고 또다른 어딘가에서 읽은 적이 있다. 생명은 본능적으로 강인하고 이기적이다.

그래서 일견 아이는 스스로 자란다는 말이 맞다. 일본에서 기적의 사과를 길러낸 농부 할아버지가 “사과는 사과나무가 키우는 것이지요. 저는 응원할 뿐입니다”라는 말이 맞다. 자라는 건 아이가 한다. 부모는 아이가 잘 자라도록 응원하고 서포트하는 충실한 헬퍼에 머물러야 한다.

그리고 부모가 해야할 최고의 응원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그래도 혹시 친구를 위해 속이는 일을 피할 수 없다면
그떄 가장 중요한 건 잡히지 않는 거란다." 

‘이걸까 저걸까’ 아리송다리송한 세상 일들에 대한 현명한 조언자, 멘토. 저렇게 말해주는 아빠는 얼마나 멋진가! 
 

“친구를 속이는 건 나빠. 절대 안 돼!” 라고 해버리면 그 중간에 서서 고민해야 할 미래의 수많은 기로에서 아이는 자신을 책망하고 결국은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비뚤어져 버릴테닷!” 하고 편안하게 그릇된 길로 들어설 수도 있다. 올바르고 싶은 착한 마음에서 말이다. “난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다”고 억울해하는 부모들 많이 봤다. 아이에게 생선 자르는 칼 하나 주고 사과를 토끼 모양으로 깎아내지 않았다고 분노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투박한 걸 주면 투박하게 자란다. 섬세하고 다양하게 주면 섬세하고 다양하게 자란다.

중요한 건 눈이고 시선이고 대화다. 꼬마 꾸뻬(마저도 부모와 상의하지 못할 일로 끙끙대는 경우가 많지만 그래도 비교적 무난하게 아이)는 엄마 아빠에게 마음을 열고 묻고 듣는다. 그때마다 제 이야기를 귀찮다고 구겨진 이마로 듣거나 성의없이 대답하지 않고, 때론 의견이 부딪치더라도 성의있게 들어주고 고민해주는 부모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특별한 어떤 교훈을 주는 책이라기보다는 가정 안에서 대화가 이루어지는 바람직한 롤모델로 보았다. MBC에서 파랑새 특강인가에서 김미경 대표가 강의를 하면서 실제 각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대화들을 모니터하고 실험했는데, 정말 쳇바퀴 돌듯한 대화만 이루어졌다. 단 3마디 만에 대화가 끊겼고 쑥스럽다는 이유로 곧바로 예전의 나쁜 반응들, 책망하는 리액션(‘근데 왜 엄마한테 말 안 했어?’‘아빠가 언제 그랬냐?’‘네가 잘하는데도 엄마아빠가 이러든?’)으로 넘어가버렸다. 세상에서 가장 모르고 가장 서툰 것이 어쩌면 부모들이 아이와 하는 대화일지도 모른다.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양육 쇼크><딥스>... 가만 보면 다 부모 자녀간의 올바른 대화방식 부재를 지적하고 가이드하고 있다. 꾸뻬 씨네가 좋은 롤모델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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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기린다는 행위는 위험하다. 말은 내뱉어지는 순간부터 의미로부터 이탈하니, 정확한 과녁에 꽂으려 아무리 노력해도 결국은 거짓을 말하기 쉽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의미에서 '위대한 아무개 씨에 대하여' 식의 2차 가공품 같은 책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그런데 말이다, 최근에 아주 골때리고 유쾌하고 발칙하면서도 상큼한 오마주를 만났단 말이다. 어찌나 신나던지! ^^ [도스토예프스키, 돈을 위해 펜을 들다] 얘기다.

이름 발음만 제대로 하려도 수차례 침이 튀는 결례를 범해야 하고, 페이지마다 그런 이름들이 수도 없이 나오는 러시아 작가들의 작품은, 왜 하필이면 다 걸작이라서 부담을 주는가? 대표적인 부담보이 도스토예프스키(토씨)와 톨스토이(톨씨), 이들은 문학에 빠져들라치면 피해갈 수도 없는 커다란 대표 장애물이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이들의 소설 완독은 고사하고 인물의 관계도만 설명해놓은 책자도 있을 정도니까. 그러나 장담하는데, 이 책을 읽고 나면 당장이라도 도스토예프스키 전집을 당장 들여놓고 싶어진다. 자발적으로, 열성적으로! 

토씨는 한마디로 현대적인 인물이다. 일찌감치 현금서비스를 많이 받아서 개인파산에 이르고 불리한 이율로 현금박치기만 하며 살아야 하는 신용불량자란 뜻이다. 돈계산이 흐리멍텅해서, 아버지가 가진 돈은 빤한데 맨날 '최신 유행 코트가 나왔으니 사야합니다''무슨 무슨 만년필로 공부해야 합니다' 하며 삥땅 뜯는 학창시절을 보낸다. 그런데 헛바람은 잔뜩 들어서 힘든 일은 안하고 폼나는 일만 하고 살고 싶다. 그런데 세상이 어디 그런가? 하는 일마다 쪽박을 차고 결국은 출판사에서 모셔가도 시원찮을 작가가 '큰 종이에 인쇄할 만큼 글자 채워주고 장당 얼마' 식의 땡처리 신세를 자처한다. 앞에 당근 달아두고 몰아도 서러울 판에 꽁지에 불 피워두고 몰아대는 조랑말 신세다. 그런데도 곧 죽어도 죽일 놈의 자존심은 더 뾰족해서리 돈 꿔주고 도와준 사람은 되도 않는 뒷담화로 갚는다. 제대로 자격지심에 방귀뀐 놈이 성내는 캐릭터다.  

석영중 교수의 결론은 이렇다. "토씨의 위대함은 모두 빚쟁이 마음에서 나왔다, 맨 돈 꿔달라고 앓는 소리 해대는 편지 쓰면서 문장력은 일취월장했다, 실제로 쫓기는 다급한 마음에 돈 때문에 빚어지는 사람 마음의 변화가 섬세하기 이루 말할 데 없다, 너무 쫓기다가 구성이 헐렁해지는 경우는 있어도 어떤 경우에도 캐릭터의 생명력을 잃는 법은 없다, 돈 급하니 도박에 빠져들고 아주 전형적인 자본주의 사회 속 불안한 심리를 제대로 판다......." '죄와 벌은 인간의 도덕성과 어쩌고' 식의 작품 해석이 아니라 작품 속 대사들에서 미묘한 어감을 인간적으로 들여다보기 때문에 '아니 이 책이 그렇게 생생한 드라마였나? 당장 내 눈으로 꼼꼼히 파헤쳐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오마주라면 얼마든지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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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타공인 프랑스번역의 일인자, 특히 카뮈 연구의 최고봉 김화영 교수가 카뮈 작품의 무대 알제리로 날아간 기행문  [김화영의 알제리 기행] 또한 아주 바람직한 오마주다. 작가와 작품에 보다 접근시키는 조력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할 뿐 '에이, 이런 거였어? 다 알겠네,' 식으로 치닫게 하지 않는다. 관심과 사고와 대화를 확장시키는 텍스트야말로 얼마나 위대한가. [이방인]의 첫 장면 태양 얘기는 수없이 들었지만 그 태양을, 그 바다를, 그 꽃과 땅과 색을 보여주니 '아, 뫼르소!' 뫼르소가 살아나온다. 뫼르소가 창밖을 내다보던 발코니, 발코니에 어떤 모양으로 앉아 있었던지, 어떤 계단을 어떤 마음으로 뛰어 오르내렸는지... 책 속에 이미 상당한 수준의 카뮈 작품 인용이 되어 있어서 카뮈 전집을 해롭지 않게 훑어보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그리고 하루키. 하루키는 하루키의 작품들이 서로서로 맞물리며 자신의 오마주 역할을 하지만 가장 평이하고 부담없으면서도 핵심이고 상큼한 오마주는 역시 임경선 씨의  [하루키와 노르웨이 숲을 걷다' 인 듯싶다.   

 

세 작가 모두 방대한 작품의 생산자들이고 감히 인류 문학사의 상위 순위에 랭크되는 인물들이니, 오마주라는 좋은 가이드가 필요할 것이다. 줄거리 요약식의 다이제스트라면 권하고 싶지 않지만, 만약 저 세 작가들에 대해 끙끙대며 "저 산에 오르리라" 즐기기보다 비장한 마음이 크다면, 기꺼이 이 세 권을 먼저 읽으라고 하고 싶다. 본게임에 들어갔을 때 전혀 방해되지 않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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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대카페에 갈 때마다  PETER CAT 을 상상하게 된다.  스물다섯 살의 하루키가 운영했던 재즈카페 '피터캣'의 롤캐비지와 위스키, 담배 연기까지....
하루키에 대한 오마주 형식으로 쉽게 쓰인 [하루키와 노르웨이 숲을 걷다]를 쓱쓱 읽다가 카페 주인장으로서의 하루키를 만나니 반가웠다.    

"열 명의 손님이 왔는데 그 중 한 명이라도 내 가게가 마음에 들어 다시 찾으면 그것으로 족하다. 대신 그 한 명이야말로 정말 소중히 여길 것. 이는 비단 재즈카페가 나아가야 할 올바른 길일 뿐만이 아니라, 인생 전반에 고루 적용되는 법칙이다"  

불평하는 손님들이야 언제나 있지만 신경 쓰지 않으면 그만입니다. 주인의 가게니까,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되죠. 돈을 버는 것도 적자를 내는 것도 주인이니까.”  

“취객이 난동을 부리면? <전함 바운티>라는 옛날 영화가 있었지요. 이단자들을 모두 배 밖으로 쫓아내 버렸죠, 아마.” (아주 까칠해서 매력적인 카페 주인장 모습의 전형이다 ^^)   

 

 하루키의 '피터캣'이 홍대풍이라면 파리의 노천카페나 물랑루즈 등등은 강남스타일이다.

가령 “나는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카페에서 보냈다”고 말하는 사르트르가 한국에 머문다면

홍대가 아니라 서래마을로 갈 것이라는 거다.

카페 ‘셀렉트’의 존재만으로 탄생되는 온갖 인연과 문학과 사랑과 역사가 책이 되다.

선그림의 재치있는 일러스트로 쓰여진 [파리 카페].  


“나는 지금 카페에 가는 길이다.

카페는 중립지대여서 계절이 바뀌어도 영향을 받지 않는다.

카페는 문학하는 사람의 초연하고도 고상한 영역을 나타낸다.

나는 오로지 카페에서만 정련된 생각을 가다듬을 수 있다. _ 토마스 만 <토니오 크뢰거>”

카페의 커피향기가 사라지면 문학의 향기도 사라질 것이다. 카페여, 영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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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 프루 지음, 조동섭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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