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회 - 마구간으로 달아나 필마를 만나고 도관을 찾아가 이인異人을 만나다



p.326

“여시아문 일시불재사위국 기수급고독원 여대비구중 천이백오십인구 이시 세존 식시 착의지발 입사위대성걸식 어기성중 차제걸이...”

“수보리 여여소설 여래 선호념제보살 선부촉제보살 여...”


일시불재사위국 → 일시 불 재사위국 (一時 佛 在舍衛國)

입사위대성걸식 → 입 사위대성 걸식 (入 舍衛大城 乞食)

선호념제보살 선부촉제보살 → 선호념 제보살 선부촉 제보살 (善護念 諸菩薩 善付囑 諸菩薩)


   진왕 이세민의 명으로 축귀(逐鬼)를 위해 승려들이 암송하는 것은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密經, Vajracchedikā Prajñāpāramitā Sūtra)』으로 우리에게는 『금강경』으로 알려져 있다. ‘금강’은 산스크리트어 바즈라체디카(Vajracchedikā)를 뜻으로 풀어 해석한 것으로 ‘바즈라(Vajra)와 같이 강한 힘으로 절단하는 것’ 이라는 뜻이고, ‘반야바라밀’은 산스크리트어 프라즈냐파라미타(Prajñāpāramitā)를 음역한 것으로 ‘깨달음으로 이끄는 지혜’를 가리킨다. 즉, ‘금강반야바라밀경’은 ‘마음속의 분별, 집착, 번뇌 등을 부숴버려 깨달음으로 이끄는 강력한 지혜의 경’라는 뜻이다. 축귀하는데 더할 나위 없는 선택이다.

   『금강경』은 약 6천 단어 정도의 길이로 대체로 짧은 편이며, 석가모니와 수보리존자의 문답으로 구성되어 있다. 『요원전』에 언급된 것은 「법회인유분(法會因由分)」과 「선현기청분(善現起請分)」 부분으로 내용은 다음과 같다.


會因由分 第一

如是我聞 一時 佛 在舍衛國 祇樹給孤獨園 與大比丘衆 千二百五十人俱 爾時 世尊 食時 着衣持鉢 入 舍衛大城 乞食 於其城中 次第乞已 還至本處 飯食訖 收衣鉢 洗足已 敷座而坐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한때에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 급고독원에 계시어 아울러 대비구중 천이백오십 인과 같이 하시더니, 이때에 세존님께서 공양 드실 때에 가시를 수하시고 발우를 가지시고 사위대성에 들어가시어, 그 성중에서 차례로 걸식을 마치시고 본처로 돌아오시고는, 공양을 마치시고 가사와 발우를 거두시고 발 씻기를 마치시고 자리를 펴시고 앉으시었다.


善現起請分 第二

時 長老須菩提 在 大衆中 卽從座起 偏袒右肩 右膝着地 合掌恭敬 而白佛言 希有世尊 如來 善護念 諸菩薩 善付囑 諸菩薩 世尊 善男子 善女人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 應云何住 云何降伏其心 佛言 善哉善哉 須菩提 如汝所說 如來 善護念 諸菩薩 善付囑 諸菩薩 汝今諦請 當爲汝說 善男子 善女人 發 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 應如是住 如是降伏其心 唯然 世尊 願樂欲聞

그때 장로 수보리가 대중 속에서 일어나 오른쪽 어깨에 옷을 걷어 올리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꿇고 합장하여 공경을 표시하면서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참으로 위대한 일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모든 보살들을 잘 호념(護念)하시고 모든 보살들에게 불법을 잘 부촉하십니다. 세존이시여, 어진 남자(善男子)와 어진 여인(善女人)으로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를 향한 마음을 일으킨 이는 어떻게 행동하며 어떻게 그 마음을 실천해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좋도다. 수보리여, 그대가 말한 것처럼 여래는 모든 보살들을 잘 호염하고 부촉한다. 내가 그대를 위해서 말하노니 잘 들으라. 어진 남자와 여인으로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를 향해 마음을 일으킨 사람은 마땅히 이렇게 행동하며 이렇게 그 마음을 실천해야 한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즐거이 듣고자 원합니다.”


   쓸데없이 더 부연하자면,「선현기청분」에 나오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는 말은 『금강경』 전체에 걸쳐 자주 등장하는 단어인데, 이는 산스크리트어 ‘아누타라사먁삼보디(anuttara-samyak-sambodhi)’를 음차한 것으로 ‘위없이 올바른 깨달음으로 향하는 마음’을 뜻한다. 석가모니는 『금강경』에서, ‘이러한 마음을 내기 위해서는 겉모습이나 현상 및 관념의 덧없음을 알아 이들에 현혹되지 않은 채로 올바르게 관찰해서 깨달음을 향하는 순수한 마음을 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p.332

“이시 무진의보살 즉종좌기 편단우견 합장향불 이작시...”


p.334

“즉시 관기음성 개득해탈 약유지시관세음보살명자 설입대화 화불능소 유시...”


   현장이 암송하는 것은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Saddharma Puṇḍarīka Sūtra)』 (제7권)의 제25품(品)인 「관세음보살보문품(觀世音菩薩普門品)」이다. 『요원전』 6회에서 처음 등장했던 현장이 처음으로 외웠던 불경도 바로 이 「관세음보살보문품」이다. 재미있는 것은, 그 때는 억울하게 죽은 원혼들의 해탈을 위해 독경했다면, 지금은 지용부인과 홍해아를 피할 수 있도록 자신의 안위를 위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외우고 있다는 것이다. 이 「관세음보살보문품」으로 현장은 손오공을 만났고, 손오공은 자신을 괴롭히던 망령들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요원전』에서 인용한 「관세음보살보문품」의 원문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爾時 無盡意菩薩 卽從座起 偏袒右肩 合掌向佛 而作是言 世尊 觀世音菩薩 以何因緣 名觀世音

그 때 무진의보살(無盡意菩薩)이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쪽 어깨를 벗어 드러내고 부처님을 향하여 합장하고 여쭈시되 “세존이시여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은 무슨 인연으로 관세음이라고 합니까?”


佛告 無盡意菩薩 善男子 若有無量百千萬億衆生 受諸苦惱 聞是觀世音菩薩 一心稱名 觀世音菩薩 卽時 觀其音聲 皆得解脫 若有持是觀世音菩薩名者 設入大火 火不能燒 由是菩薩 威神力故 若爲大水所漂 稱其名號 卽得淺處

부처님께서 무진의보살에게 말씀하시되, “선남자야, 만일 한량없는 백천만억 중생이 갖가지 괴로움을 당할 적에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듣고 한마음으로 그 이름을 부르면 관세음보살이 그 음성을 관하고 곧 해탈하게 하느니라. 만일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지니는 이는 혹 큰 불속에 들어가더라도 불이 그를 태우지 못할 것이니 이것은 보살의 그 위신력 때문이며, 만약 큰물에 떠내려가더라도 그 이름을 부르면 곧 얕은 곳에 이르게 되고 (...)”



p.337

“그러고 보니 여기랑 대불당 사이였지? 위지 장군께서 귀신을 놓치신 데가...”


위지 → 울지



p.346

현장과 황포의 만남


   현장이 낙태관에서 만난 사내는 황포(黃袍)다. 황포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다음 장에서 하는 것으로 한다. 짧게 소개하자면, 홍해아와 마찬가지로 손오공과 현장에게 있어서 아주 지긋지긋한 인연을 이어나가는 인물이다.

   이 장면에서 눈에 띄는 것은 황포가 현장에게 다가올 때 황포의 몸에 찍히는 창호지 도장이다. 오세영 작가도 단편 「투계(鬪鷄)」에서 이런 창호지 도장을 그린 바 있었는데, 모로호시 선생이 표현한 것이 위협과 공포의 감정을 느끼게 한다면, 오세영 작가의 것은 아련함과 따뜻함을 느끼게 한다. 두 거장의 같은 묘사는 한 번 찬찬히 살펴볼 만한 가치가 있다. 첨언하자면, 모로호시 선생이 그린 빛과 그림자의 경계에서 스멀스멀 다가와 현장을 위협하는 장면은 가히 동양의 표현주의, 오리엔탈 느와르라 불러도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p.356

“어디, 황파파蝗婆婆에게 부탁해볼까...”


   황파파는 바람의 신으로 『서유기』45회와 98회에 걸쳐 두 번 등장한다. 황파파는 항상 손이랑(巽二郞)과 함께 다니는데, 황파파가 바람주머니를 풀어 바람을 쏟아내는 역할을 맡고 있고, 손이랑은 바람주머니를 뒤에서 잡아 원하는 방향으로 돌리는, 풍향을 전담하기 때문이다. 『서유기』에서는 비중이 미미한 역이었지만 모로호시 선생은 『요원전』에서 황파파와 손이랑, 이 둘을 「반사령의 장」, 「관음원의 장」, 「황풍대왕의 장」, 세 장에 걸쳐 등장하게 한다. 더 자세한 내용은 이들이 등장할 때 풀어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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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상으로 돌아가려고 애를 쓰고 기를 써도 마음 먹은대로 잘 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도 속으로는 타들어가는 마음을 부여잡으며 일상의 삶을 영위하는 평범한 분들의 모습을 볼 때면 진정 존경심이 솟아오른다. 힘들지만 그래도 살아야 하는 게 인생이라지만, 때로는, 정말로, 삶은 가혹하다는 것을 느낀다.


   공중파 뉴스를 끊은 지 일주일이 넘었다. 뉴스가 더이상 NEWS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특보랍시고 계속 같은 상황만 보여주는 뉴스들. '사고'가 아니라 마치 그 누구라도 어쩔 수 없을 것이라는 '재난'으로 보도하는 뉴스들. (아니, 재난으로 몰아가는 해경과 언딘.) 진척되는 것은 하나도 없고 매번 재방송처럼 똑같은 상황만을 보여주는 뉴스들. 보도는 없고 중계만 일삼는 뉴스들. 더 이상 볼 이유가 없었다. 아마 어쩌면 이 모든 것은 세월호 관련 뉴스들에 국민들을 지치게 만들어 더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게끔 만들려는 누군가의 술책이 아닐까하는 생각까지 들었을 정도로.


   그나마 취재하고 탐사하고 보도하는 방송은 JTBC가 유일한 것으로 보인다. 사고 이후 항상 수면에 잠겨있는 새로운 사실들을 찾아 알려주었으니까. 그런 JTBC에서 어제 또 새로운 사실을 알려주었다. 민간인 잠수사들이 발견한 시신을 언딘이 개입해 방치하게했다는 뉴스.



   이젠 뭐가 터져나와도 경악할만큼 놀랍지는 않지만, 이 뉴스를 보면서 문득 든 생각은 사고 초반에 들렸던 수많던 유언비어들이 더이상 유언비어가 아니게 된다면, 난 그 사실을 감히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홍가혜라는 미친 여자가 세월호와 관련한 온갖 유언비어를 다 끌고와 MBN과 인터뷰를 했을 때, 그 모든 설마들이 사실이었다고 얼마나 놀라고 분노했었던가! 하지만 곧 그가 허언증 증상이 있으며 인터뷰 내용은 사실에 입각한 게 아니라 어디선가 들은 얘기라는 말을 들은 순간,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사실에 얼마나 가슴을 쓸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이제 그 사실들이 또 뒤집히려고 하는 것 같다.


   솔직히 두렵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사실들이. 하지만 받아들이고 또 받아들여야겠지. 떠난 아이들이 알려준 그 짐을, 감당할 수 있을 때까지 버텨야만 할 것이다.


   아마도 세상은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저 위에 계신 잃을 게 많은 분들은, 지키기 위해 상상도 못할 노력을 할테니까. 그리고 돈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오랫동안 잊어버린 우리들 또한 관성의 법칙에 밀려 쉽게 방향을 바꾸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일희일비하지 않고 꾸준하게,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조금씩 변화시키도록 노력할 것이다. 그게 살아남은 자의 의무일 것이다.


   잊지말고 분노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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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벌써 10년도 훨씬 지난, 2001년 911테러가 일어닜을 때 일이다. 지금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고 기가막혔었던 그 사건이 벌어졌을 때, 그 당일인지 아니면 며칠 후였는지 확실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테러 여파로 박찬호 선발 등판 경기가 MBC에서 결방이 됐었다. 그 때, 친구들 몇 명이 그깟 테러가 무슨 난리라고 박찬호 선발경기가 결방이 되냐고 불만을 토로했었다. 난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친구들을 비난했었는데, 그 친구(라고 말하기에도 부끄럽다)들은, 우리랑 상관없는 저 먼나라 사람들 죽은 게 우리와 무슨 상관이냐고 오히려 날 비난했었다. 그 이후로 난 누군가의 죽음에 대해 쉽게 입을 열지 않는 성격이 되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엔 도저히 그냥 넘어가지 못하겠다.


#2

인간은 언젠가 죽는다.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멍하니 있다가 울컥하고 손가락을 깨물며 울음을 참는 것은, 아직 피워보지도 못한, 어린 학생들의 미지의 가능성에 대한 안타가움일 것이다.


#3

내가 '죽음'이라는 관념을 처음으로 실감했던 것은 '소설'에서 였다. 1987년 국민학교 5학년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를 읽었던 때였다. 소설에서 여주인공 은주가 성적 스트레스로 자살을 하고 남주인공 봉구가 은주의 죽음 이후에 대해 짤막하게 서술한 부분이었다.


"이틀이 지났다. 봉구는 자기가 밥을 먹고 학교에 나오고 밤이면 잠을 잔다는 사실을 용서할 수 없었다. 은주의 몸은 차디차게 식고 그것도 모자라 병원의 냉동실에 들어가 있는데 봉구는 옷을 입고, 이불을 덮고, 걸어다니고 있었다."


그 때 처음으로,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 죽는다 할지라도, 살아있는 사람은 살기 위해 그 지난한 짓거리를 해야한다는 삶의 연속성에 대해 진저리를 쳤었던 것 같다. 죄책감에 슬픔에 분노에 하루에도 몇 번씩 이 감정이 순환된다 하더라고, 결국에 인간은 먹고 싸고 자는 일을 반복해야 한다. 냉정히 말해 나와 상관 없는 사람들의 일인데도 이런데, 당사자들은 얼마나 지독한 자기혐오에 부딪히며 이 지옥같은 엿새를 살아왔을까. 그리고 앞으로 이 긴 나날들을 살아가야 할까...


#4-1

유년 시절의 기억 하나. 영화 <쿼바디스>를 보면 네로 황제가 자신이 방화한 로마를 보면서 시를 읊는 장면이 나온다.


#4-2

유년 시절의 기억 둘. 영화 <황야의 독수리>를 보면 일본군 지휘관이 부하들이 부녀자들을 강간하는 장면을 보며 시를 읊는 장면이 나온다.


#4-3

그래서인지 사고 후 여러 공무원들의 무뇌아적인 행동들 중에서도 내게 있어서 가장 큰 분노를 일으킨 사람은 이번 사고를 보고 시를 읊은 김문수 경기도 지사이다. 역사적으로도 예술가적 심성이 높은 군주는 나라를 말아먹는 데 일가견을 보여주었는데, 김지사는 이번 기회에 은퇴하시고 차기 신춘문예나 노려보심이 국가를 위한 일이라 생각한다.


#5-1

내가 10대 였을 때 벌어졌던 대형 참사들. 서해 훼리호 침몰, 성수대교, 삼풍백화점 붕괴, 대구 가스 폭발 등... 그 당시에 내가 느꼈던 감정은 분노였다. 꼰대새끼들이 국민들 다 죽이네!


#5-2

지금, 난 더 이상 분노할 수 없었다. 부끄러움과 죄책감이 나를 짓눌렀다. 분노하던 꼬마는 어느새 꼰대가 되어있었기 때문이었다. 꼰대새끼가 꽃 같은 아이들을 다 죽이네! 난 이런 비난을 받아도 할 말이 없다...


#6

정말로 미안하다. 얘들아. 이렇게라도 사죄를 하고 싶었다. 어른들 말 잘 들어 사고를 당한 너희들. 그래서 더 면목이 없다. 정말로 미안하다...


#7

2001년에 박찬호 선발 등판 경기 중계가 취소되어 분노했던 너희들. 이번에는 또 무슨 프로가 결방되어 분노했을지 모르겠다. 아니, 아니겠지... 


"우리 인간으로 살아가기 힘들어. 힘든 거 아는데, 괴물이 되지는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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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켄슈타인의 신부>는 1931년 작 <프랑켄슈타인>의 공인된 속편이자 걸작이다. 신기하게도 <프랑켄슈타인>에 이어 이 영화를 보면 무언가 맥이 빠지는 느낌이 든다. 전편에서 느꼈던 기대감을 속속들이 배반당하는 느낌. 그것은 이 영화가 ‘아이러니’로 가득 차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원작자인 메리 셜리, 남편 퍼시 비시 셸리(Percy Bysshe Shelley), 그리고 바이런 경(Lord Byron)의 대화로 시작한다. (이는 소설의 1831년판 서문을 각색한 것이다.) 바이런 경은 전편의 내용을 복기하면서 메리 셜리에게 더 이야기를 해달라고 보챈다. 메리 셜리는 “관객들은 이런 내용을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 운을 떼며 남은 이야기를 한다. (여기서 관객이란 영화를 보는 우리일 수도, 영화상에서 이야기를 듣는 바이런과 퍼시일 수도 있겠다.) 그리고 시작되는 아이러니의 연속.

   사람들은 괴물을 생포해 마치 예수처럼 나무에 묶어세운다. 그런데 예수는 신의 아들로 십자가에 묶인 후에 죽고 부활하지만, 인간의 아들인 괴물은 죽음에서 부활한 후 십자가에 묶인다. 잠깐이지만 숲속의 맹인 노인과 ‘우정’을 경험한 괴물은 프랑켄슈타인에게 ‘친구’를 만들어 달라 요구한다. 그런데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의 친구를 동성이 아닌 ‘여성’으로 만든다. 프랑켄슈타인의 파트너인 프리토리우스 박(Doctor Pretorius)는 그들이 함께 만든 괴물을 ‘프랑켄슈타인의 신부’라 칭한다. 그런데 실제 프랑켄슈타인의 신부는 ‘엘리자베스’다. 엘리자베스는 ‘프랑켄슈타인의 신부’가 완성된 순간 정확하게 그 공간에 도착한다. 그곳에는 프랑켄슈타인 혼자 낳은 자식인 ‘괴물’과 프랑켄슈타인과 프리토리우스가 함께 낳은 ‘프랑켄슈타인의 신부’가 있으며 이들은 이상한 가족관계를 형성한다. (동성부부-아들-딸이자 아버지의 부인-남매이자 친구-그리고 아버지의 '공인된' 이성 부인)

   <프랑켄슈타인의 신부>는 종교적인 동시에 신성모독적이고 죽음과 부활, 절망과 구원을 함께 다루고 있다. 장르는 수시로 탈바꿈하고 지나치게 탐미적이다. 메리 셜리의 원작에 기대어 있으면서도 원작을 부수는 동시에 다시 원작으로 돌아온다.

   공포영화라 하기엔 밋밋하고, 코미디라 하기엔 진지하며, 패러디라 하기엔 진중하고, 취향을 탄다고 말하기에는 보편적이다. 모든 것이 스며들어 울퉁불퉁하지만, 그 자체로 하나의 오리지널리티를 확보한 괴물 같은 작품. <프랑켄슈타인의 신부>는 제임스 웨일이 창조한 ‘괴물’이다. 그리고 그것은 괴물이라 칭하기엔 너무나도 경외스런, 하나의 종(種)이라 할만하다. 

   2014년 1월 24일 블루레이로 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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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회 - 태종은 여흥삼아 필마弼馬의 관직을 내리고 심원은 고통 속에서 제천의 이름을 부르짖다


p.289

“전하, 아니 폐하, 이제 앞으로 즉위식을 거행할 일만 남았군요.”

“하핫, 아직 폐하는 이르니라.”


   중국 송나라의 고승(高丞)이 편찬한 『사물기원(事物紀原)』에 따르면 천자에게는 폐하(陛下), 임금에게는 전하(殿下), 장군에게는 휘하(麾下), 높은 벼슬아치에게는 각하(閣下)라는 존칭을 쓴다고 했다. 천자가 집무하는 용상으로 오르는 돌계단을 ‘폐(陛)’라 하는데 그 돌계단 아래인 뜻인 폐하는 천자, 곧 황제에게만 쓰는 존칭이다. 이는 존대하는 사람이 거처하는 건물이나 발아래에서 우러러본다는 뜻에서 존칭이 된 것이라 한다. 그보다 한 등 낮은 호칭이 전하인데 진한(秦漢)이래 왕비, 세자 그리고 제왕들의 존칭이다. 『요원전』에서 아직 왕인 이세민은 ‘폐하’라는 말을 사양하지만, 이후로 그의 신하들은 계속 이세민을 ‘폐하’라 부르고 이세민 또한 더 이상 거부하지 않는다. 형과 아우를 죽이면서까지 원했던 자리였는데 더 이상 거부할 이유가 없지 않겠는가!



p. 294

“관직은... 그래... 필마온弼馬溫이라 함은 어떨까. 재미있잖나.”


   필마온에 대한 설명은 p.293~p.294에 걸쳐서 자세히 설명되어 있지만, 조금 더 부연하자면 다음과 같다. “중국 민담에 원숭이가 말의 역병을 물리친다 하여 ‘피마온(避馬瘟)’이란 용어가 있는데, 여기서 벼슬 이름으로 사용한 것은 ‘필(弼)’과 ‘피(避)’, ‘온(溫)’과 ‘온(瘟)’이 모두 중국어의 같은 발음 ‘비bi’와 ‘웬wen’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바꾸어 쓴 것이다.” (임홍빈 역 『서유기』제1권 제4회 주2에서 인용)

   『요원전』에서 손오공은 무지기(無支祁)로부터 ‘제천대성(齊天大聖)’의 칭호를 물려받은 후에 당태종으로부터 ‘필마온’이란 직함을 받는 것으로 나오지만, 『서유기』에서는 그 반대다. 손오공이 자신의 신통력으로 용궁과 유명계에서 분탕질을 치자, 옥황상제(玉皇上帝)는 더 이상의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손오공을 하늘로 불러들여 천마(天馬)를 돌보는 필마온(弼馬溫)이라는 벼슬을 준다. 후에 필마온이라는 품계가 하찮은 것을 알자 성을 내고 근무지를 무단이탈, 다시 화과산으로 돌아온다. 그 때 마침 찾아온 독각귀왕(獨角鬼王)이 “대왕처럼 놀라운 신통력을 지닌 분을 한낱 비천한 말먹이꾼에 임명하다니, ‘제천대성’이 되신다 한들 어떤 작자가 안 된다고 막겠습니까?”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스스로 ‘제천대성’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훗날 태백금성(太白金星)의 중재로 옥황상제에게 ‘제천대성’이라는 벼슬을 정식으로 받지만, 그것은 손오공을 천궁에 잡아두기 위해 만든, 허울뿐인 유관무록(有官無祿)의 벼슬일 뿐이었다.

   『요원전』과 『서유기』의 공통점이라면, 이 ‘필마온’이라는 직책은 손오공을 조롱하는 표현으로 쓰인다는 것이다.



p.297

“원망은 마십시오, 숙부님. 저도 여유가 없는 데다 또 놈들에게 미주알고주알 털어 놓으시면 곤란하니...”


p.317

“어마마마! 어째서 이런 놈과...! 어마마마께는 이 나타가 있지 않사옵니까!”


   홍해아는 자신의 아버지(나 다름없는) 두건덕(竇建德)의 죽음을 복수하기 위해 이세민을 죽이려고 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 아버지의 복수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해 자신의 작은 아버지(叔父)를 죽이고 나타의 아버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아버지를 살해하고 능욕한다. 게다가 지용부인은 홍해아에게 스스로를 ‘엄마’라 부르게 한다.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가 쏟아져 내린다.



p.303

“그 청원서라면 내 반려했을 것이야! 서쪽 옥문관玉門關 너머로는 일절 통행이 금지되어 있음을 모르느냐!”


p.311

“으음... 어차피 당도 아직 건국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라 안의 질서가 완전히 바로 서지 않았네. 하주夏州에서는 양사도梁師都가 아직도 반기를 들고 있고...”


   당 건국 초기에는 나라의 기틀이 마련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국가가 백성들의 이동을 아예 차단했다. 국경을 통과할 때 필요한 통행증 ‘과소(過所)’의 발급을 금지한 것은 물론이고 국경커녕 옆의 지역조차 이동을 금지했다. 그런 상황에서 627년에 천축행을 결심한 국경 근처까지 갈 수 있었던 것은 이상기후로 인해 식량난이 생겨 수도에 밀집한 인구를 흩어지도록 자유 통행을 허가하는 칙명이 내려졌기 때문이었다.

   이 이상기후로 인한 식량난은 『요원전』에서 또한 기막히게 다룬다.



p. 310

“지난번에는 웬 요물 원숭이가 나오는가 싶더니 이번에는 귀신이 떠돈다니...”

“세상에 그런 일이...”

“순시 중이던 군사나 환관 중에서도 본 자들이 있다지. 월화문에서 액정궁쪽으로 유유히 활보하는 걸 봤다던가...”


p.313

“이세민! 이세민- 제위를 내놓아라-”


   『삼교수신대전(三敎搜神大全)』에 “전설에 따르면 당태종이 병이 났을 때, 침문 밖에서 귀신이 이름을 부르고 침문 밖에서 벽과 기와를 던지며 희롱했다(按傳,唐太宗不豫。寢門外拋磚弄瓦、鬼魅呼號)”는 기록이 있다. 『요원전』에서는 이 짧은 기록을 바탕으로 『서유기』의 나타태자와 당태종의 저승구경 에피소드를 한데 묶어버렸다. 이쯤 되면 모로호시 선생이 허구와 역사를 엮어나가는 모습은 절묘함을 넘어서 신묘함에 가깝다고 감히 말할 수 있겠다.

   『삼교수신대전』을 조금 더 인용하자면, “겁이 난 태종은 진숙보(秦叔寶)와 호경덕(胡敬德) 두 장수를 불러 자신이 자고 있는 방문을 지키게 했는데 그렇게 했더니 별일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두 장군이 후에 세가(世家)의 문신(門神)이 되었다고 하는데, 이 역시 『요원전』에서 다루고 있다.



p.311

“법현 법사께서도 열여섯이 넘어서야 천축으로 구법求法의 길을 떠나셨다지 않나. 너무 조급히 굴지 말게...”


   열여섯 → 예순


   법현(法顯)은 동진(東晋) 시대의 승려로, 당시 중국에 불전이 완비되어 있지 않은 것을 한탄해 399년 60여 세 노령의 몸으로 인도로 떠난 승려이다. 412년에 귀국했으며 『마하승지율(摩訶僧祗律)』, 『대반니항경(大般泥恒經)』 등 6부 63권에 이르는 계율을 한역한 후, 형주 신사(辛寺)에서 사망했다. 우리에게는 『불국기(佛國記:高僧法顯傳)』로 알려져 있다.



p.313

“위지 장군, 나왔나이다! 오늘 밤은 남쪽 담장입니다!”


   위지 → 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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