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 오공은 항아리 속 천지를 들여다보고 이빙은 계곡에서 야인들을 사냥하다


p.076

“무지기無支奇... 그 이름은 이 노인네도 알고 있소. 먼 옛날 하夏를 개국했던 성국 우왕禹王께서 치수를 하실 깨 붙잡아 귀산龜山 아래 사슬로 꽁꽁 묶어 뒀다던 수괴水怪가 아니오? 『악독경』岳讀經이라 하는 책에서 본 적이 있소이다. 장강長江, 회수淮水의 물을 지배하며 온갖 들판의 넓이와 개울의 깊이에 통달했다던가...


   무지기無支奇 → 무지기無支祁 (p.004의 無支奇도 수정)


무지기・이빙・손오공・통비공


   무지기(無支祁)는 巫支祁・无支祁・巫支祗로 표기되는데, 『요원전』에서는 ‘기’자를 祁에서 奇로 바꾸었다. 『요원전』에는 차용한 캐릭터의 원래 이름을 살짝 바꾸는 경우가 가끔 보이는데, 그게 작가의 의도인지 아니면 실수인지는 잘 모르겠다. 예를 들어 『서유기』 47회와 99회에 나오는 일칭금(一秤金)은 『요원전』 74회부터 96회까지 등장하는 일승금(一升金)으로 글자가 바뀌었는데, 각 작품에서 칭秤과 승升이라는 단어에 맞게 이름을 해석하므로 작가의 의도로 볼 수 있다.

   무지기에 대한 기록은 『고악독경(古岳讀經)』제 8권에 나오는데, 『고악독경』은 『태평광기(太平廣記)』 권467 「이탕(李湯)」에 실려 있다.


禹理水,三至桐柏山,惊風走雷,石號木鳴,五伯擁川,天老肅兵,功不能興。禹怒,召集百靈,授命夔龍,桐柏等山君長稽首請命。禹因囚鴻蒙氏、章商氏、兜盧氏、梨婁氏,乃獲准渦水神,名無支祁。善應對言語,辨江准之淺深,原隰之遠近。形若猿猴,縮鼻高額,青軀白首,金目雪牙,頸伸百尺,力逾九象,搏擊騰踔疾奔,輕利倏忽,聞視不可久。禹授之童律不能制;授之烏木由,不能制;授之庚辰,能制。鴟脾桓胡、木魅水靈、山襖石怪,奔號聚繞,以數千載,庚辰以戟逐去。頸鎖大索,鼻穿金鈴,徒准陰龜山之足下,俾准水永安流注海也。

   우(禹)가 홍수를 다스릴 때 세 번 동백산(桐柏山)에 이르렀는데, 바람이 불고 번개가 치며 돌이 부르짖고 나무가 울었으며 오백(五伯)이 시내를 끌어안고 천로(天老)가 병사들을 모아도 일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우가 노하여 천하의 여러 신들을 불러 모으고 기룡에게 명하여 동백 등의 산군들이 머리를 수그리고 명령을 청했다. 우가 홍몽씨(鴻蒙氏)・장상씨(章商氏)・두호씨(兜盧氏)・이루씨(梨婁氏)를 가뒀기 때문에, 곧 회수(准水)와 와수(渦水) 사이에서 요물을 잡았는데 이름이 무지기(無支祁)라고 했다. (이 요괴는) 말을 잘하고 장강의 흐름과 회수의 흐름 가운데의 얕고 깊음을 가려낼 줄 알며, 벌판과 습지의 가깝고 먼 것을 가릴 줄 알았다. 생긴 것은 원숭이와 같은데 코가 움츠러들었고 높은 이마에 몸빛은 푸르고 머리는 희며 금처럼 반짝이는 눈에 눈처럼 하얀 이를 가졌다. 목을 길게 빼 늘이면 그 길이가 백 자는 되는데 힘은 코끼리 아홉 마리를 합친 것보다 더 세며 동작이 매우 빨라 잠깐 사이에 번득이며 듣고 보이는 것이 오래 가지 못했다. 우가 무지기를 동률(童律)에게 맡겼으나 다스리지 못했고, 조목유(烏木由)에게 맡겼으나 다스리지 못했고, 경진(庚辰)에게 맡겼더니 다스릴 수 있었다. (경진이 일을 시작하자) 치비・환호・나무 도깨비・물의 정령・산의 요괴・돌 요괴들이 달려와 모여들기를 수천 년 동안이나 했는데 경진이 갈래진 창으로 쫓아냈다. (경진은 무지기의) 목에 굵은 사슬을 메고 코에는 금방울을 닳아 회수 북쪽의 구산(龜山) 기슭에서 항복시키니 회수를 좇아 영안으로 흘러 바다에 들어갔다.


   『고악독경』은 당(唐)나라 사람 이공좌(李公佐)가 쓴 필기집(筆記集), 즉 소설이다. 그러므로 무지기는 신화나 전설로 구전되어온 존재가 아니라, 저자의 이야기꾼들이 만들어낸 허구인 존재이다. 위앤커(袁珂)는 『중국신화전설Ⅰ』에서 무지기에 대한 이야기를 중국신화에 포함시켰으나, 각주에서 “이것은 소설가들이 만들어낸 이야기이긴 하지만 송원宋元시대에는 널리 민가에 유포되어 있었고 또 희극이나 소설의 소재가 되기도 했던 것이므로 여기서도 간단히 서술해 보았”다고 했다. 모로호시 다이지로 또한 p.077~078에 걸쳐 『고악독경』에 관한 이야기를 “과연 이 이야기가 참인지 거짓인지...”하며 모호한 태도를 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서유기』에도 무지기가 언급되는 장면이 있는데, 66회에서 찾을 수 있다. 소뇌음사(小雷音寺)의 가짜 석가여래에게 붙잡힌 삼장법사와 두 동생들을 구출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손오공이 우이산(旴貽山) 빈성(蠙城)에서 대성국사왕보살(大聖國師王菩薩)에게 도움을 청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때 대성국사왕보살이 이런 말을 한다.


奈時值初夏,正淮水泛漲之時。新收了水猿大聖,那廝遇水即興,恐我去後,他乘空生頑,無神可治。

   요즈음 철기가 초여름이어서 회하에 홍수가 넘칠 때요, 또 근자에 수원대성(水猿大聖)을 새로이 항복시켰는데 그놈은 홍수철만 되면 기운을 뽐내니, 내가 이곳을 비운 틈을 타서 장난질을 치게 되면 그때는 어떤 신령도 그놈을 다스릴 길이 없을 것일세.


   흥미로운 점은 무지기가 손오공의 원형이라는 점이다. 루신(魯迅)은 “손오공이 무지기의 고사를 모방한 것이 분명”하다 했으며, 리우위첸(劉毓忱)은 손오공의 이미지가 계(啓)가 신령한 돌에서 태어났다는 신화와 무지기의 고사, 그리고 황제(黃帝)에게 반기를 든 치우(蚩尤)와 형천(形天)에서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 주장한다. 그러니까 『요원전』의 제천대성 무지기, 『고악독경』의 무지기, 『서유기』의 제천대성 손오공, 수원대성 등은 서로 교묘하게 연결되어 있는 셈이다.

   무지기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 많은 관계로, 일단 끊고 4회에서 다시 한 번 하는 것으로 한다.



p. 077

“먼 옛날 황제黃帝께서 퇴치하셨던 기라는 외발 짐승이나 노夒라는 원숭이도 그와 비슷한 요물이라고 하더이다.”


   ① 『산해경・대황동경(大荒東經)』에 기에 대한 내용이 적혀 있다.


東海中有流波山,入海七千里,其上有獸,狀如牛,蒼身而無角,一足。出入水則必風雨,其光如日月,其聲如雷,其名為夔,黃帝得之,以其皮為鼓,橛以雷獸之骨,聲聞五百里,以威天下。

   동해(東海)의 가운데에 유파산(流波山)이 있는데, 바다로 7천 리 들어가 있다. 그 위에 어떤 짐승이 사는데, 생김새가 소와 비슷하고, 푸른색 몸에 뿔이 없으며, 다리는 하나이고, 물을 드나들면 곧 반드시 비바람이 몰아친다. 그 빛은 마치 해나 달처럼 밝으며, 그 소리는 우레와 같은데, 그 이름은 기(夔)라 한다. 황제(黃帝)가 그것을 잡아서, 그 가죽으로 북을 만들고, 뇌수의 뼈로 북채를 만드니, 그 소리가 5백 리 밖까지 들려, 천하를 떨게 했다.


『국어(國語)・노어(魯語)』에도 기에 대한 설명이 있다.


夔一足,越人謂之山繰,人面猴身能言。

   기는 발이 하나이며, 월(越)나라 사람들은 그것을 산조(山繰)라고 부르는데, 사람의 얼굴에 원숭이의 몸을 하고 있으며, 말을 할 줄 안다.



기(夔)


   ② 노(夒)라는 짐승은 그 어원이 기(夔)와 같은 것으로 보인다. 『설문해자(說文解字)』와 단옥재(段玉裁)의 주에 설명이 나와 있다.


貪獸也。一曰母猴,似人。

   (기는) 탐욕스러운 짐승이다. 모후라고도 하는데 사람과 흡사하다.


貪獸也。一曰母猴, 謂夒一名母㺅。

   (기는) 탐욕스러운 짐승이다. 모후라고도 하는데, 노를 모후(=기)라고 말한다.


   ③ 모로호시 선생은 무지기의 奇를 『산해경・서산경(西山經)・해내북경(海內北經)』에 ‘궁기(窮奇)’라는 짐승에 대한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기에 기(夔)와 기(奇)는 전혀 다른 것임이 확실하다.


「西山經」: 曰邽山。其上有獸焉,其狀如牛,蝟毛,名曰窮奇。

   규산(邽山)이라는 곳에는, 그 위에 어떤 짐승이 사는데, 그 생김새가 소와 비슷하고, 고슴도치 털로 덮여 있으며, 이름은 궁기(窮奇)라 한다.


궁기(窮奇)


「海內北經」: 窮奇狀如虎,有翼,食人從首始,所食被髮,在蜪犬北。

   궁기(窮奇)는 생김새가 호랑이와 비슷하고, 날개가 있으며, 사람을 잡아먹을 때 머리부터 먹기 시작하는데, 잡아먹히는 사람은 머리를 풀어헤치고 있으며, 도견(蜪犬)의 북쪽에 있다. 


궁기(窮奇)


   * 기(夔)와 노(夒)에 대해 더 자세한 것을 알고 싶으신 분들은 사다리님의 블로그(클릭)에서 확인 바랍니다.



p.082

“그자가 바로 네 어미의 남편이었던 손해라는 사내다.”


   수양제의 1차 고구려 원정은 요하(遼河), 요동성(遼東城), 평양성(平壤城), 살수(薩水)에서 큰 전투가 있었는데 p082~083에 묘사된 그림으로 보아 손해는 요동성 전투에서 죽은 것으로 짐작된다. 요동성은 수문제와 수양제에 걸친 4번의 고구려 원정(598~614)에서 단 한 번도 침략을 불허한 무적의 요새였다.



p.092

“그자는 미후왕美猴王이다. 황건의 난 당시 제천대성의 칭호를 이어 싸우던 자였지.”


   미후왕(美猴王)이란 『서유기』에서 손오공이 ‘복지동천(福地洞天) 화과산 수렴동(花果山水簾洞)’을 찾아낸 후 원숭이들에게 왕으로 추대됐을 때 불린 이름이다. 『서유기』에서 손오공을 가리키는 다른 이름들은 미후왕, 제천대성, 필마온, 손행자(孫行者) 등이 있는데 『요원전』에서 모로호시 다이지로는 이 이름들을 각각의 캐릭터로 분산시키고 있다. 아마도 『요원전』의 마지막에서나 이들 이름들이 손오공으로 수렴될 것이라 예상하는데, 정말 끝은 볼 수 있을지 독자로서 불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황건의 난(黃巾之亂)은 후한(後漢) 말기에 일어난 농민대반란이다. 황건의 난은 결국 진압되었지만, 이 난을 시작으로 인해 한제국은 결국 멸망하게 된다. 

   이 미후왕이라는 자가 누구인지는 도통 모르겠는데, 어쩌면 무지기가 손오공을 속이기 위한 거짓말일 수 있겠다. 무지기는 “말을 잘하(善應對言語)”기 때문이다.



p.100

“오공, 모자를 잊었구나. 그것까지 다 갖추지 않으면 제천대성의 힘을 발휘할 수 없느니라. 자, 모자를 쓰고 어미의 원수를 갚도록 해라.”


   오공이 머리에 쓴 것은 긴고아(緊箍兒)다. 『서유기』에서 손오공의 욱하는 성격을 컨트롤하기 위해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이 삼장법사에게 준 모자[僧帽] 안의 금테를 가리킨다. (더 자세하게 얘기하자면 8회에서 석가여래釋迦如來가 관세음보살에게 ‘경을 가지러 오는 사람에게 주라’고 준 불보佛寶 중 하나이다.) 손오공이 모자를 씀과 동시에 삼장이 긴고아주(緊箍兒呪)를 외우자, 머리를 죄여오는 고통에 모자를 죄 뜯어버려서 금테만 남았다. 관세음보살은 16회 흑풍대왕(黑風大王)에게는 금고아(禁箍兒)를 씌웠고, 42회 성영대왕(聖嬰大王) 홍해아(紅孩兒)에게 금고아(金箍兒)를 씌었다. 후에 손오공은 투전불승(鬪戰佛僧)이, 흑풍대왕은 수산대신(守山大神)이, 홍해아는 선재동자(善財童子)가 됐는데, 모두 불가(佛家)와 관련됐으니, 긴고아는 불보임에 틀림없다.

   『요원전』에서 긴고아는 제천대성 무지기의 힘을 끌어내는 것으로 묘사되는데, 그 힘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망자들의 원한을 들어야하기에, 정신적인 고통을 당하는 것은 공통점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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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046

제2회 - 화과산花果山에서 신선申仙이 이치를 논하고 수렴동水簾洞에서 요마妖魔가 모습을 드러내다


   신선이 神仙이 아닌 申仙으로 적힌 것은 1화에 나온 신양선인申陽仙人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수렴동에 대한 설명은 뒤에서 다루기로 한다.



p.052

“아마도 야인이겠지. 녀석들의 소굴을 찾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p.050~051에서 묘사한 야인들의 모습은 모로호시 다이지로가 1983년에 발표한 「진수의 숲(鎮守の森)」에서 묘사한 두옥(頭屋, 만화에서는 인신공양을 위한 산 제물을 가리킴)의 모습과 비슷하다. 「진수의 숲」에서 주인공은 죽음을 피하기 위해서 산으로 도망치는데, 열매나 나물, 때로는 사냥으로 생명을 부지하다가 결국 인육을 먹기 시작한다. 그 이유는 인간이 멧돼지나 사슴보다 사냥하기 쉽기 때문이다. 결국 인성은 점점 사라지고, 짐승 혹은 귀신에 가까운 존재가 되어간다.

   뒤에 나오지만, 『요원전』에서 묘사한 야인들 또한 민란 혹은 압정을 피해 산으로 들어가 점점 야생으로 변한 존재들이다. (『걸리버 여행기(Gulliver's Travels)』에서 묘사한 ‘야후(yahoo)’와 비슷한 존재들로 보인다.)




p.053

“사실 이유라기보다는 내 고집이지. 나는 예전에 하북에서 두건덕 장군을 섬겼단다... 그러다가 장군께서 패망하신 뒤로는 고향으로 돌아와 은거하고 있었지. 이미 천하가 당의 것임은 자명해 보였어. 그렇다고 하여, 아니 그렇기에 더욱 더 이제 와서 당에게 머리를 조아릴 수는 없었단다.”


   수나라 말기에 여러 군웅들이 일어났는데, 그 중 가장 ‘협(俠)’의 기치를 드높인 이는 두건덕(竇建德)이었다.

   『자치통감(資治通鑑)』권187의 기록을 보면, “나(두건덕)는 수의 백성이고 수는 우리의 군주이다. 지금 우문화급이 시역을 하였으므로 바로 나의 원수니, 내가 토벌하지 아니할 수 없”다고 말하며 양제를 죽인 우문화급을 쳤고, “성으로 들어가서 우문화급을 산 채로 잡아서 먼저 수의 소(簫)황후를 알현하였는데, 말하면서 모두 칭신(稱臣)하였으며 소복을 입고 양제에게 곡(哭)하면서 슬픔을 극진히 하였”다고 한다. 그는 하(夏)라는 나라를 세우고 스스로 왕이 되었지만(황제를 칭한 것은 아니었다), 스러져가는 국가에 대해 끝까지 충성을 바친 유일한 군웅이기도 했다.

   또한 “두건덕은 매번 싸워서 승리하고 성곽에서 이길 때마다 얻은 재물은 모두 장사(將士)들에게 나누어 주었고, 자신은 갖는 것이 없었다”는 기록과 “두건덕이 명주(洺州)에서 농업과 잠업을 권장하니 그 경계 안에서는 도적이 없었고, 상인과 여행객들이 들에서 잠을 잤다”는 기록으로 보아, 두건덕 주변에는 진심으로 따르는 장수와 백성들이 많았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 이유에서였을까? 621년 당(唐)의 이세민이 왕세충과 사수(汜水)에서 일전을 벌일 때, 왕세충을 구원하러 온 두건덕을 사로잡자 이세민은 두건덕을 당의 수도 장안(長安) 길바닥에서 참수했다. 항복한 왕세충을 서인으로 삼고 촉(蜀에) 가서 살게 한 처사와는 너무나 상반되는 일이다. 이세민은 당이 천하를 통일하는데 가장 큰 걸림돌은 바로 두건덕이라는 인물일 것이라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두건덕 휘하의 장수들과 그를 신봉하는 사람들은 당의 처사를 절대로 받아들이지 못했을 것이다. 과거에 (훗날 당 개국공신이 되는) 이세적(李世勣)이 두건덕에게 투항한 후 다시 당으로 투항했을 때, 인질로 잡혀 있던 이세적의 아비를 두건덕은 아무 조건 없이 풀어줬다. 또한 그는 이연과 연합했을 때 인질로 잡고 있던 이연의 누이 동안・장공주를 조건 없이 보내주었다. 그렇게 인의(仁義)로 상대를 대했는데도, 최소한 왕에 어울리는 죽음조차 허락해주지 않은 당을 이빙은 절대 따를 수 없었을 것이다.



p.056~059


   확원들이 사는 화과산의 모습은 『제괴지이』「이계록(異界錄)」편에 나오는 현도(玄都)와 느낌은 비슷한데, 실상은 전혀 다르다. 현도에 대해서 조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처음 이곳으로 빨려 들어온 인간은 잠시 동안 고치 같은 상태로 지냅니다. 한 달 정도 지나면 원래의 사람 같은 모습이 되어 고치에서 깨어나지만, 바깥세상의 인간들과는 다른 몸이 되지요. 그리고 잠시 동안 이 현도(玄都)에 살게 되는데 그 시기는 2~3년, 또는 10년 정도로 사람마다 다릅니다. (...) 그 후 현수(玄水)를 마시는 것만으로도 살 수 있게 되어, 나중엔 아무것도 먹고 마시지 않고도 살 수 있게 됩니다. 인간은 태어나서부터 속계(俗界)의 것들을 이것저것 몸으로 흡수하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불순한 것들을 배출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겁니다.”

   「이계록」에서 현도의 존재들은 인간임을 구성하는 모든 것들을 제거하면 순수함이라는 인간의 정수만이 남는다는 것을 보여준다면, 『요원전』에서 화과산의 존재들은 인간임을 구성하는 모든 것들을 제거하면 인간과 동물을 구별지을 수 있는 것은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물론 그것은 누가 이끄느냐에 따라 다른 결과일지도 모른다. 현도는 현빈(玄牝)이 이끌지만, 화과산은 무지기(無支奇)가 이끌기 때문이다.

   「이계록」의 이야기는 모로호시 다이지로가 『수신기(搜神記)』에서 큰 틀만 빌려왔을 뿐, 완전한 본인의 창작 작품이라 한다.




p.063~064

“오공,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게냐. 어째서 수렴동으로 오지 않는고. 내 주인 대성大聖께서 기다리고 계시니라.”


   자고 있던 오공에게 말을 건 것은 1회에 등장했던 주염(朱厭)이라는 짐승이다. 『산해경(山海經)・서산경(西山經)』에 기술되어 있듯이, 주염이 나타나면 큰 전쟁이 일어난다(見則大兵)고 했다. 요괴를 퇴치하러 화과산에 온 이빙, 오공을 부르는 제천대성(齊天大聖), 이제 『요원전』은 무언가 모를 불안함과 긴장감으로 가득 차있다.



p.069

“폭포수로 가려진 뒤편에 동굴이... 여기가 수렴동이라는 곳인가...”


   ‘복지동천(福地洞天) 화과산 수렴동(花果山水簾洞)’은 『서유기』에서 손오공이 화과산 폭포수 밑에서 찾은 동굴이다. 이 동굴을 찾음으로써 손오공은 원숭이들에게 미후왕(美猴王)으로 추대된다. 수렴동에 대한 설명은, 가짜 손오공이 등장하는 『서유기』 58회에 자세히 나와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원래 이 수렴동이란 곳은 연못에서 용솟음쳐 흩날리는 샘물이 거꾸로 떨어지면서 폭포를 이루고 그 물줄기가 동굴 입구를 가려, 멀리서 보면 마치 흰 무명천으로 만든 발을 드리워놓은 것처럼 보이고, 가까이 다가서서 보아도 그것은 역시 한줄기 수맥일 뿐, 처음 그곳에 발을 들여놓은 사람에게는 그 뒤쪽에 감추어진 출입구를 알아낼 길이 없었고, 그 때문에 수렴동(水簾洞), 곧 ‘물의 장막으로 가려진 동굴’이란 명칭이 붙었으며, 사화상은 그렇게 드나드는 출입구의 내력을 모른 까닭에 찾아내지 못했던 것이다.”



p.074

“내 이름은 제천대성齊天大聖이다.”


   여기서는 ‘제천대성’이라는 명칭만 이야기하기로 한다. 제천대성이란 ‘하늘과 동등한 위대한 성인’이라는 뜻이다. 齊를 ‘같다’의 뜻으로 볼지, ‘다스리다’의 뜻으로 볼지 고민했었는데, Arthur Waley가 『Monkey』에서 ‘The Great Sage, Equal of Heaven’로 번역한 것으로 보아 ‘같다’의 뜻이 맞는 것 같다.

   『서유기』에서 ‘제천대성’의 어원은 다음과 같다. 손오공이 자신의 신통력으로 용궁과 유명계에서 분탕질을 치자, 옥황상제(玉皇上帝)는 더 이상의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손오공을 하늘로 불러들여 천마(天馬)를 돌보는 필마온(弼馬溫)이라는 벼슬을 준다. 후에 필마온이라는 품계가 하찮은 것을 알자 성을 내고 근무지를 무단이탈, 다시 화과산으로 돌아온다. 그 때 마침 찾아온 독각귀왕(獨角鬼王)이 “대왕처럼 놀라운 신통력을 지닌 분을 한낱 비천한 말먹이꾼에 임명하다니, ‘제천대성’이 되신다 한들 어떤 작자가 안 된다고 막겠습니까?”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스스로 ‘제천대성’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훗날 태백금성(太白金星)의 중재로 옥황상제에게 ‘제천대성’이라는 벼슬을 정식으로 받지만, 그것은 손오공을 천궁에 잡아두기 위해 만든, 허울뿐인 유관무록(有官無祿)의 벼슬일 뿐이었다.

   어찌됐든, 손오공은 이 이름이 꽤나 마음에 들었던지 자신의 여섯 '의형님들'께도 ‘대성’을 붙이라고 꼬드기는데, 첫째인 우마왕(牛魔王)은 하늘을 평정하는 ‘평천대성(平天大聖)’, 둘째 교마왕(蛟魔王)은 바다를 뒤엎는 ‘복해대성(覆海大聖)’, 셋째 붕마왕(鵬魔王)은 하늘을 휘젓는 ‘혼천대성(混天大聖)’, 넷째 사타왕(獅狔王)은 산을 옮겨놓을 수 있는 ‘이산대성(移山大聖)’, 다섯째 미후왕(獼猴王)은 바람을 꿰뚫는 ‘통풍대성(通風大聖)’, 여섯째 우융왕(〇狨王)은 신선을 몰아내는 ‘구신대성(驅神大聖)’이라고 서로 자화자찬하며 호칭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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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요원전西遊妖猿傳 대당편大唐篇 1 - 서두序頭 화과산花果山의 장章


p.009

“자, 그럼 지금부터 들으실 이야기는 천하에 모르는 이가 없는 ‘대당삼장취경시화大唐三藏取經詩話’ 올시다.”


   『대당삼장취경시화』는 남송(南宋) 말엽에 간행된 화본(話本)이다. 화본은 송나라 때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직업적 이야기꾼들이 쓰던 대본이다. (이후 원(元)나라 중엽부터 서유기 관련 희곡 대본과 산문체 소설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이야기꾼이 『서유요원전(이하 요원전)』을 진행하는 시기는 남송말엽에서 원초가 아닐까 하는데 이건 별로 중요해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왜 모로호시 다이지로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서유기(西遊記)』 대신에 그 원형인 『대당삼장취경시화』를 원전으로 선택한 것일까? 그 이유는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는데) 『대당삼장취경시화』는 『서유기』와 전혀 다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대당삼장취경시화』의 주인공은 현장(玄奘) 법사이고, 손오공(孫悟空)은 흰 옷 입은 선비 후행자(候行者)로 나타나며 게다가 조연급이다. 저팔계(豬八戒)는 등장조차 하지 않으며 사오정(沙悟淨)으로 추측되는 심사신(深沙神)이 등장한다. 즉 이 두 판본들과의 공통점은 오직 ‘당나라 스님이 경을 가지러 떠나’던 역사적 사실뿐이다.

   즉, 『요원전』이『서유기』 가 아닌 『대당삼장취경시화』를 원본으로 삼는다는 것은 『서유기』라는 원전의 중압감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자신의 이야기를 창작할 수 있기도 하고, 동시에 『요원전』이 『서유기』의 또 다른 판본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작가의 야심을 내비치는 것이기도 하다.



p.009

“하루에도 이백만이 넘는 백성들이 동원되어...”


   누노메 조후・구리하라 마쓰오 『중국의 역사 [수당오대]』에서 언급한 이 거대공사에 대한 설명은 다음과 같다.

   “이 동경 조영을 위해 동원된 인민은 매월 2백만 명에 달하는 막대한 수였다. 당시, 수(隋)왕조의 지배하에 있던 인구가 4천 6백만이었음을 고려하면, 그것이 얼마나 과중한 것이었는지 한층 더 확실해질 것이다. 이 수도 조영공사는 수양제(隋煬帝) 즉위 직후인 605년(대업 원년) 3월에 시작되어 다음 해 정월에 완성되었으므로 모두 2천만 명 정도가 각각 1개월 동안 동원된 셈이다.”



p.010

양씨가 천기를 어지럽히니

봉화가 변방의 하늘에서 타올랐다네.

왕조가 전란으로 무너지고

도적이 산간에 들끓었다네.

백성이 황야를 방황하고

산귀山鬼가 인심을 미혹했다네.

신괴神怪의 위엄을 알고 싶은 자,

귀를 기울여 보시오.

이 요원전妖猿傳에...!


이 시구는 『서유기』의 1회 맨 앞에 나오는 시구를 변형한 것이다.


混沌未分天地亂,茫茫渺渺無人見。

自從盤古破鴻蒙,開辟從茲清濁辨。

覆載群生仰至仁,發明萬物皆成善。

欲知造化會元功,須看西游釋厄傳。


혼돈이 갈라지지 않아 하늘과 땅은 어지럽고,

아득하기 짝이 없어 인간은 보이지 않네.

태초에 반고씨(盤古氏)가 자연의 원기(元氣)를 깨뜨리고 나서

천지개벽이 이루어지고 청탁(淸濁)이 나뉘었다.

온갖 생물을 덮고 실어주어 어질게 되기를 바랐고,

만물의 이치를 밝혀 모두 착하게 만들었다.

천지 조화를 이룩한 회(會)와 원(元)의 공(功)을 알려거든

모름지기 『서유석액전(西遊釋厄傳)』을 볼지어다.

- 임홍빈 역 『서유기』에서 인용 -


   『서유석액전』은 명(明)나라 주정신(朱鼎臣)이 엮은 『정계전상당삼장서유전(鼎鍥全相唐三藏西遊傳)』의 부제로, 주로 이 명칭으로 불린다. 모로호시 다이지로가 『서유요원전』이란 타이틀을 정할 때 이 판본의 제목을 참고해 정했다고 한다. 참고로, 서유석액전(西遊釋厄傳)이란, 서쪽으로 여행 중에(西遊) 재앙(厄)을 풀어내는(釋) 이야기(傳)란 뜻이다.

   (사족을 달자면, 문지사, 솔, 동반인에서 출간한 『서유기』에서 모두 위의 시 중 ‘서유석액전’을 고유명사로 해석했는데, 고유명사 보다는 풀어서 쓰는 게 본문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나 더 덧붙이자면, 현장 스님의 출신 내력이 이 주정신 판본 『서유석액전』에 실려 있고, 후에 금릉 세덕당(金陵世德堂) 본에 8회와 9회 사이에 부록(附錄) 형식으로 삽입되어 있다.)



p.011

제1회 - 군웅(群雄)은 중원(中原)에서 사슴을 쫓고 영아(嬰兒)는 심산(深山)에서 야녀(野女)를 찾아 헤매다


   ‘중원에서 사슴을 쫓’는다는 표현은 군웅이 천하를 다투는 일을 표현하는 말로, 진(秦)나라 때부터 사슴을 황제에 비유한 것으로 전해진다. 『자치통감(資治通鑑)』에서 수나라 말기를 기록한 부분을 보면, 군웅에게 사로잡히거나 혹은 유세를 할 때 “수가 사슴을 잃어서 호걸이 다투어 그것을 쫓고 있으니...” 하는 말들이 자주 나오는 것이 보인다.

   숱한 인물들이 사슴 이야기를 했는데,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은 후량(後粱) 황제 소선(蕭銑)이 당고조(唐高祖) 이연(李淵)에게 사로잡힌 후 한 말이다.

   “수가 그들의 사슴을 잃으니 천하 사람들이 함께 그것을 쫓았습니다. 저 소선은 천명을 받지 못한 연고로 여기에 이르렀습니다. 만약에 죄라고 생각한다면 죽음에서 도망할 곳이 없을 것입니다.” 이 말을 하고 소선은 끝내 큰 저자에서 목이 베어 죽었다.

   영아(嬰兒)는 이 목차에서는 당연하게도 ‘어린 아이’를 뜻하지만, 도교(道敎)에서는 연단술(煉丹術)의 비방(秘方)이자 약물의 은어를 가리킨다. 도교에서 영아의 뜻은 ‘외단(外丹)’을 구워 만들 때에 쓰는 납을 가리키며 ‘내단(內丹)’을 수련할 경우에는 인간의 정(情)을 뜻한다. 『서유기』 19회와 22회 참조.



p.012

“이곳은 하남河南 지방의 어느 작은 마을.”


하남(河南)/하북(河北)의 河는 황허(黃河)를 가리킨다. 강을 기준으로 지역을 나눈 것인데, 지도로 보면 다음과 같다.




p.016

“그건 보통 원숭이가 아니로구먼. 필시 주염朱厭이라하는 요물일 게야.”


   『산해경(山海經)・서산경(西山經)』에 주염이라는 짐승이 소개되어 있는데 다음과 같다. “(소차산(小次山)이라는 곳에, ...... ) 어떤 짐승이 사는데, 그 생김새는 원숭이와 비슷하지만, 흰 대가리에 붉은 발을 가지고 있다. 이름은 주염이라 하며, 이것이 나타나면 큰 전쟁이 일어난다. 「有獸焉,其壯如猿而白首赤足,名曰朱厭,見則大兵。」”

   이 주염이라는 짐승은 p.015에 나온 큰 원숭이를 이야기하는 것 같으며, p.014에서 ‘손 서방네 새댁’을 끌고 간 것은 가국(猳國)이다. (뒤에 확원攫猿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가국이 확실하다. 확원은 가국의 다른 말이다.) 시노다 고이치의 『중국환상세계』에 묘사된 가국은 다음과 같다.

   “가국은 후확(猴攫), 마화(馬化) 등의 별명을 갖고 있으며 원숭이를 닮은 짐승이다. 촉(蜀, 사천성)의 서남쪽 고산지대에 살고 있었다. 신장은 7척(168.8센티미터)이고, 사람과 같이 직립 보행하며 달리는 속도는 인간과 비슷하다. 이 동물에 대해서는 장화(張華)의 『박물지(博物志)』, 간보의 『수신기』와 같은 많은 서적에 기록되어 있다.

   가국이라는 동물은 아마도 수컷밖에 없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자손을 불리기 위해 인간의 여성을 이용했다. 그들은 자기네 지역을 지나는 여성 중 예쁜 여성을 골라 유괴한다. 일단 목표가 된 사람은 아무리 동행과 끈으로 몸을 묶는다 하더라도 도망칠 수 없다. 가국은 남녀의 냄새를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으므로 여성만을 노리며 남성을 유괴하는 일은 없었다. 인간의 여성들이 끌려가는 곳은 가국의 보금자리로, 그곳에서 여자들은 가국의 아내가 된다.

   아이를 낳지 못한 여성은 인간 세계로 평생 돌아가지 못한 채 10년이 지나면 그 모습이 가국과 같아지며, 인간으로서의 의식이 희박해져 다시 인간 세계로 돌아가려 하지 않게 된다. 반면에 아이를 낳은 여성은 아이와 함께 집으로 돌려보내진다. 아이를 인간의 집에서 키우는 편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만일 아이를 키우지 않으면 그 벌로 아이의 어머니를 즉시 죽여 버린다. 그러므로 죽는 것이 두려워서라도 아이를 키우지 않는 집은 없다.

   이렇게 태어난 아이라고 해서 성장 후 반드시 가국의 모습으로 자라는 것은 아니다. 그들 대부분은 인간과 다를 게 없다. 그러나 개중에는 가국의 모습으로 성장하는 경우도 있다. 촉 지방에는 양(楊)씨 성을 쓰는 사람들이 많은데, 전승에 따르면 이 성을 가진 사람들은 바로 가국의 자손이라고 한다.”

   모로호시 다이지로는 후에 『제괴지이』「산도(山都)」편에서 가국의 이야기를 비틀어 기이한 이야기를 만들었다.




p. 017

“한편 고구려를 침공했던 수의 대군은 참패를 당하고 말머리를 돌렸으니... 원숭이에게 끌려간 남편 손해孫該 역시 이때 전사하고 말았답니다.”


   수양제의 고구려 원정은 1차 612년, 2차 613년, 3차 614년에 이루어졌으나 모두 실패하였다. 그 중 직접적인 대패를 당한 것은 1차 원정으로, 113만의 대군(실제 300만 이상의 인민이 직접・간접으로 종군한 것으로 추정)이 출정했으나, 요하와 살수에서 대패하고 회군했다. 이것으로 보아 손해는 611년에 징집되어 612년에 죽은 것으로 보인다.



p.017

“하북河北에서 두건덕竇建德이 궐기했다. 우리도 전진하자!”


   두건덕이 도적의 무리에 들어간 것은 611년이지만, 스스로 장낙왕(長樂王)이라 칭하고 하(夏)나라를 세운 것은 617년의 일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보자면 이 시기는 617년이 되어야 하지만, 이야기의 흐름으로 보아 612년으로 추정된다.



p.018

“이런 세상에! 손 서방네 새댁 아닌가?!”


   이런 흐름으로 보아 손오공은 612~617년 사이에 태어난 것으로 보이는데, 뒤에 신양선申陽仙과의 대화로 미루어 짐작할 때 612년에 태어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p.019

“천하에 열 명도 넘는 황제들이 난립하였으니 대체 이 무슨 꼴인지. 이것이 이른바 수말당초의 대란이었소이다.”


   수양제의 고구려 원정이 모두 실패로 끝남과 동시에 각지에서 민란이 일어났다. 민란의 분기점은 제 2차 고구려 원정 중에 벌어진 예부상서(장관) 양현감(楊玄感)의 반란으로 볼 수 있는데, 당시 납언(納言) 소위(蘇威)가 수양제에게 한 말은 의미심장하다.

   “양현감은 조잡하고 소략하니 염려할 필요가 없으나, 이로 인해 점차 혼란이 이루어지는 단계가 될까 두렵습니다.” 결국 소위의 말대로 된 셈이다.

   수양제가 죽기 전(617년) 왕이나 황제를 칭한 군웅들은, 수양제와 당고조 이연이 세운 꼭두각시 황제 공황제를 제외하고도 14명이나 된다. 그 목록은 다음과 같다.

・태상황 양제 대업 13년

・공황제 의녕 원년 (당공 이연이 세운 수의 황제)

・황제 이홍지 4년

・황제 유묘왕 4년

・연국 만천왕 왕수발 3년

・가루라왕 주찬 3년

・초제 임사홍 태평 2년

・장락왕 두건덕 정축 원년

・무상왕 노명월 원년

・위공작 이밀 원년

・정양천자 유무주 천흥 원년

・양제 양사도 수륭 원년

・영락왕 곽지화 축평 원년

・서진 패왕 설거 진흥 원년

・양왕 이궤 원년

・양왕 소선 명봉 원년



p.022

“국원攫猨이구먼...”


   국원攫猨이구먼...  확원攫猨이구먼...  


   확원(攫猨)이라 읽어야 한다. 확원이란 앞서 이야기한 가국을 나타내는 다른 말이다. 『포박자(抱朴子)・대속편(對俗篇)』에, “후(猴: 원숭이)는 나이가 팔백 살이 되면 원(猿: 원숭이)으로 변하고, 나이가 오백 살이 되면 확(攫: 큰 원숭이)으로 변한다”고 했다.



p.024

“야녀는 야파野婆라고도 불리는데, 산발을 하고 무리를 지어 산야를 떠돌아다니는 짐승이라고 하지요.”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熱河日記)』에 야파에 대한 이야기가 들어 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옛날에 장군 풍승액(豐昇額)을 따라서 옥문관(玉門關)을 나서서 돈황(燉煌)으로부터 4천 리를 떨어진 골짜기에 가서 자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장막 속에 두었던 목갑(木匣)과 가죽 상자가 없어졌습니다. 당시 같이 간 막려(幕侶)들이 차차 알아보니 잃은 것이 분명했답니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이것은 야파(野婆)가 절도해 간 것이다’ 하므로 군사를 내어 야파를 포위했더니 모두 나무를 타는데, 나는 원숭이처럼 빨랐다고 합니다. 야파는 형세가 궁하매 슬피 울면서 즐겨 붙들리지 않고 모두 나무 가지에 목을 매어 죽으니 이래서 잃었던 물건을 모두 찾았는데, 상자나 목갑은 잠가 놓은 그대로 있었고 잠근 것을 열고 보니 속에 기물들도 역시 버리고 다친 것이 없었답니다. 상자 속에는 붉은 분과 목걸이와 머리꽂이 패물들을 많이 넣어 두었고, 아름다운 거울도 있었으며 또 침선(針線)과 가위와 자까지 있었는데, 야파는 대개 짐승으로서 여자를 본떠 치장하는 것으로 즐거움을 삼은 것이라 합니다.”



p.028

“이빙李冰 어른!”


   이빙에 대한 이야기는 뒤에 현성이랑진군(顯聖二郞眞君)이 나온 후에 이야기 하는 게 나을 것 같다.



p.029

“화과산이라...”


   『서유기』에서 화과산(花果山)은 동승신주(東勝神州) 오래국(傲來國)에 있으며 손오공의 고향이기도 하다. 그곳에서 손오공은 폭포수 밑에서 복지동천(福地洞天) 화과산 수렴동(花果山水簾)을 발견하는데, 묘사한 것을 보면 거의 무릉도원에 진배없다.


바람이 몰아쳐도 피할 곳이 있고, 비가 쏟아져 내려도 몸둘 데가 있다네.

눈서리도 두려워할 턱이 없고, 천둥 벼락을 때려도 전혀 들리지 않는다네.

안개 노을이 항상 빛나게 감돌고, 상서로운 기운이 훈훈하게 피어나,

소나무 대나무는 해마다 푸르며, 기화요초는 나날이 새롭다네.


   실제의 화궈산(花果山)은 장쑤성(江苏省, 강소성) 롄윈강시(连云港市, 연운항시) 경내에서 7㎞ 거리에 위치해 있는데, 허난성(河南省)과 장쑤성 사이에는 안후이성(安徽省, 안휘성)이 있기 때문에 『요원전』에서처럼 눈에 보이거나 직접 가기에는 무리가 있다. 물론 작가는 실제의 화궈산이 아니라 신비한 화과산을 이야기하는 것이라 불필요한 설명이기도 하지만...



p.033

“관구신灌口神 이랑진군二郞眞君이시여. 십년에 걸친 전란으로도 모자라 해마다 계속되는 기근과 홍수가 백성들을 괴롭히니, 이들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끝내 산으로 들어가 두 번 다시 살아 돌아오지 못하는 불행한 일이 끊이지 않나이다. 이 이빙李冰은 백성들의 백 가지 고통 가운데 하나라도 덜어줄 수 있다면 미력이나마 온 힘을 다할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부디 힘을 빌려주소서...”


   『태평어람(太平御覽)』권882에 인용된 『풍속통의(風俗通儀)』에 이빙에 대한 이야기를 보면, 진 소왕(秦昭王) 때 이빙이 촉(蜀)에 막 군수로 왔는데, 해마다 동녀(童女) 둘을 바치는 강신(江神)을 물리쳐 백성의 근심거리를 해소시켰다고 전한다. 이 때 이빙과 강신은 청회색 소로 변하여 싸웠다고 한다.

   조금 더 후대의 이야기인 『태평광기(太平廣記)』 권291에 인용된 『성도기(成都記)』에서는 이빙은 소로 변하고 강신은 교룡으로 변해 싸웠다고 한다.

   『요원전』에서 이빙이 찾아간 사당이 바로 숭덕묘(崇德廟)인데, 이 사당은 이빙 사후에 이빙을 주존(主尊)으로 모셨으나 자주 이상한 일이 발생해서 주존을 이랑으로 바꾸었다 한다. 이로 인해 이 사당의 이름을 이랑묘(二郞廟)라 했으며, 후에 숭덕묘로 개칭되었다고 한다.

   관구신 이랑진군은 이랑신(二郞神) 또는 관구이랑(灌口二郞)으로 불리는데,『도강언공소전(都江堰功小傳)』에서 말하길 “이랑은 이빙의 둘째아들이라고도 하며 사냥을 좋아하였고 무척 용감했다고 한다. 이빙이 자기의 두 딸에게 화장을 시켜 강신에게 바치려 했었는데, 그 두 딸 중의 하나가 바로 딸로 변장한 이랑신이었다고 한다. 그는 나중에 그의 일곱 친구들과 함께 강물 속으로 들어가 교룡을 베어 죽였다.” 이랑신의 일곱 친구는 “매산칠성(梅山七星)”이라고 불렸다.

   『서유기』에서 이랑장군은 두 번 등장하는데, 6회에서는 손오공을 사로잡는 장수로 나오며, (싸움 실력은 막상막하였고, 태상노군의 도움으로 가능한 일이었으나 어쨌든 손오공을 사로잡았다.) 63화에서는 구두부마(九頭駙馬)와의 싸움에서 도움을 주는 역할로 등장한다.

   그 외 이빙의 치수와 거의 흡사한 내용으로 『사기열전(史記列傳)』「골계열전(滑稽列傳)」에 수록된 서문표(西門豹)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내용이 길어 옮기지는 않지만 매우 재미있으므로 읽어보시길... 이 이야기는 『동주 열국지(東周列國志)』 85회에도 있다.)



p.034

“평소라면 도저히 목으로 넘어가지 않은 음식이겠으나... 권세를 등지고 산야에서 풀을 뜯어 연명한 옛 성인 백이와 숙제의 덕을 기리기에는 좋은 기회일 게야.”


   목으로 넘어가지 않은 → 목으로 넘어가지 않는


   백이와 숙제는 고대 중국 은나라 말, 주나라 초에 살았던 고죽군의 두 제후들이다. 『사기열전(史記列傳)』에 자세한 내용이 나오는데, 다음과 같다.


其傳曰 : 「伯夷·叔齊, 孤竹君之二子也. 父欲立叔齊, 及父卒, 叔齊讓伯夷. 伯夷曰 : “父命也.” 遂逃去. 叔齊亦不肯立而逃之. 國人立其中子. 於是伯夷·叔齊聞西伯昌善養老, 盍往歸焉. 及至, 西伯卒, 武王載木主, 號爲文王, 東伐紂. 伯夷·叔齊叩馬而諫曰 : “父死不葬, 爰及干戈, 可謂孝乎? 以臣弑君, 可謂仁乎?” 左右欲兵之. 太公曰 : “此義人也.”扶而去之. 武王已平殷亂, 天下宗周, 而伯夷·叔齊恥之, 義不食周粟, 隱於首陽山, 采薇而食之. 及餓且死, 作歌. 其辭曰 : “登彼西山兮, 采其薇矣. 以暴易暴兮, 不知其非矣. 神農·虞·夏忽焉沒兮, 我安適歸矣? 于嗟徂兮, 命之衰矣!” 遂餓死於首陽山.」 由此觀之, 怨邪非邪?


   (백이, 숙제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백이, 숙제는 고죽군의 두 아들이다. 아버지가 숙제를 세우려 했는데, 아버지가 돌아가게 되니, 숙제가 백이에게 양보를 했다. 백이는 “아버지 명령이다.”라고 말하며 달아나 떠났다. 숙제 또한 기꺼이 서려 하지 않고 달아나 버렸다. 나라 사람이 그 가운데 아들을 추대했다. 이에 백이, 숙제는 (주周나라의) 서백 창(문왕)이 노인을 잘 봉양한다는 말을 듣고 “어찌 그에게로 돌아가지 않겠는가.” 했다. 주나라에 이르자 서백이 죽고, (아들) 무왕이 목주를 싣고 문왕이라 이름하고, 동으로 (은殷나라의) 주왕을 치려고 했다. 백이, 숙제가 (왕의) 말을 잡아당기면서 간하기를 “아버지가 죽었는데 장사를 지내지도 않고 창과 방패를 잡으니 효성스럽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신하로서 임금을 시해하니 어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니, 좌우에서 그들을 무기로 해치려고 했다. (이때) 태공이 “이들은 의로운 사람이다.”라고 말하고 제지하며 그들을 가게 했다. 무왕이 이미 은나라 혼란을 평정하고, 천하가 주를 떠받드니, 백이, 숙제가 그것을 부끄러워하여, 의리로 주나라 곡식을 먹지 않고 수양산에서 숨어 지내며, 고사리를 캐어 먹었다. 급기야 곧 굶어서 죽을 지경에 이르자 노래를 지었는데, 그 노래는 이러하다. “저 서쪽 산(수양산)에 올라, 고사리를 캐 먹고 살세. 난폭함으로 난폭함을 교체하고, 그 그릇됨을 모르는구나. 신농씨, 우, 하의 선양의 도는 형체도 없이 완전히 사라졌으니, 나는 어디로 가 의지할까. 아아! 이제 죽으니, 명이 쇠약해서구나.” 마침내 수양산에서 굶어 죽었다.」 이 글로 그것을 생각해 보니, 원망함인가, 아닌가?



p.035

“오공입니다. 손오공... 산기슭 복지촌福地村 사람입니다.”


   『요원전』에서 손오공이 사는 복지촌은 『서유기』의 ‘복지동천 화과산 수렴동’에서 가져왔음에도 불구하고 살아가기 힘든 곳으로 묘사된다. 그렇다면 ‘복지동천’이 빠진 화과산 수렴동은 어떤 곳일까?



p.037

“어디서 거짓을 고하는 게야! 고아현高雅賢이라는 역적이 이 근처에서 패거리를 모으고 있다는 사실을 내 모를줄 알았더냐!”


   『자치통감(資治通鑑)』권189의 기록을 보면, 고아현은 두건덕 휘하의 제장들 중 한 명이다. 두건덕이 진왕(秦王) 이세민(李世民)에게 사로잡혀 죽은 후 “그의 휘하의 제장들은 모두가 놀라고 두려워하며 불안해하였다. 고아현은 망명하여 패주(貝州)에 도착”했고, 그 후 남은 장수들이 난을 일으키기로 모의, 유(劉)씨를 주군으로 삼는 게 길(吉)하다는 점괴로 유흑달(劉黑闥)을 주군으로 삼았다. 그 후 유흑달이 유현을 함락시키니 숨어있던 두건덕의 옛날 무리들이 점차 규합해서 반년 만에 두건덕의 옛날 영역을 회복하고 돌궐과 연합해 당을 압박했다. 낙양과 하북을 평정해 거의 천하 통일을 이루었다고 생각한 당에게, 하북을 다시 빼앗은 유흑달이란 존재는 눈엣가시였을 것이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돌궐은 지속적으로 당을 침략하기 시작, 결국 고제 무덕 4년(621년) 12월 정묘일(15일)에 (이연은) 진왕 이세민과 제왕(齊王) 이원길(李元吉)에게 명령을 내려서 유흑달을 토벌하게 했다.

   『자치통감(資治通鑑)』권190의 기록을 보면 “유흑달은 (3월) 임진일(11일)에 고아현을 좌복야로 삼아서 군중(軍中)에서 성대한 연회를 열었다”는 것으로 보아 지금 『요원전』에서 다루고 있는 시기는 622년으로 보인다. p.023에서 “십 년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는 말로 미루어 볼 때 오공은 612년에 태어난 것이 맞는 것으로 보인다.



p.039

“우리 제왕 이원길 전하께서는 전공을 올리고 싶어 안달이 나셨군. 저런 풋내기가 대장군이라니, 부하 짓도 도무지 못 해먹을 노릇이라니까.”


   『자치통감(資治通鑑)』권183의 기록을 보면, “애초에, 당공(唐功) 이연은 신무숙공(神武肅公) 두의(竇毅)의 집으로 장가를 들어서 네 아들을 낳았는데, 이건성(李健成)・이세민・이현패(李玄覇)・이원길이었고, 딸 하나는 태자의 천우비신(天牛備身, 태자궁을 경비하는 경호장교)인 임분(臨汾, 산서성 임분시) 사람 시소(柴紹)에게 시집갔었다.” 이원길은 넷째이지만 셋째인 이현패가 일찍 죽어 통칭 셋째로 칭한다.

   이원길은 삼형제 중 전공이 가장 뒤떨어졌는데, 아마도 당 왕조의 창건과 그 안정에 막대한 공적을 올린 둘째 이세민에 대한 엄청난 열등감이 원인인 것 같기도 하다. 이원길은 무예가 남보다 뛰어난 청년이었으나 젊음을 믿고 난폭한 행동을 서슴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내용은 뒤에서 다루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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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그러니까 모든 것은 다 모로호시 다이지로(諸星大二郎) 선생 때문이다.



1. 모로호시 다이지로를 알게 된 것은 (아마도 한국의 평범한 독자들이라면 대부분이 그렇겠지만) 『시오리와 시미코(栞と紙魚子)』시리즈 덕분이었다. 당시의 트렌드에서 많이 벗어나는, 성의 없다시피 보이는 선 굵은 그림체와 휑한 배경 때문에 처음에는 멀리 했었지만, 매 에피소드마다 언급되는 다양한 인문학적 지식(문학, 역사, 신화, 괴담, 그리고 작가 자신의 엄청난 상상력) 때문에 매 시리즈를 읽게 되었다. (물론 소재주의에 빠지지 않고, 자신이 언급한 것들을 한데 버무려 ‘재미있는’ 만화를 만든 작가의 위대한 작가성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2. 그 이후 모로호시 다이지로의 다양한 작품들이 참으로 다양한 출판사에서 출간되기 시작했다. 『제괴지이(諸怪志異)』,『요괴헌터(妖怪ハンター)』시리즈와 『모로호시 다이지로의 진귀한 이야기(諸星大二郎 ナンセンスギャグ漫画集・珍の巻)』, 『모로호시 다이지로의 기묘한 이야기(諸星大二郎 ナンセンスギャグ漫画集・妙の巻)』는 시공사에서, 『사가판 조류도감(私家版鳥類図譜)』, 『사가판 어류도감(私家版漁類図譜)』은 세미콜론에서, 『무면목・태공망전(無面目・太公望伝)』은 AK 코믹스에서, 『암흑신화(暗黒神話)』, 『공자암흑전(孔子暗黒伝)』, 『나랑 후리오랑 교정에서(ぼくとフリオと校庭で)』, 『기묘한 그림동화 스노우화이트(スノウホワイト グリムのような物語)』, 『머드멘1 - 옹고로의 가면(マッドメン - オンゴロの仮面)』, 『머드멘2 - 위대한 부활(マッドメン - 大いなる復活)』이 미우에서 출간되었다. 위 작품들은 모로호시 다이지로의 말 그대로 대표작들이다.


         

      

   

   



     



3. 하지만 가장 큰 사건이라면, 『서유요원전(西遊妖猿伝)』이 출간된 일일 것이다.


               

            



4. (『서유요원전』에 대해 이야기하기 앞서) 모로호시 다이지로의 최고작을 꼽으라면 어떤 것을 택해야 할 지 난감하다. 물론 그가 1970년대에 완성한 세 편의 작품『암흑신화』, 『공자암흑전』, 『머드멘』시리즈가 당연히 목록에 올라야 하겠지만, 그 선택을 주춤하게 만드는 이유는, 이 작품들에 인문학적 정보량(다시 말해 독자들의 교양과 소양이 필요한)이 너무 많이 들어 있어서 한 번에 접근하기에는 힘든 작품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예를 들어 『공자암흑전』의 경우에는, 유교(儒敎)의 공자(孔子)와 불교(佛敎)의 고타마 싯다르타(Gotama Siddhārtha)를 도교(道敎)의 노자(老子)와 중국・인도의 신화(마하칼리, 하리하라, 시육, 개명수 등)로 연결한 후, 동남아시아의 전설과 일본의 죠몬(繩紋)시대를 말 그대로 ‘가로지르는’ 전무후무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놀라운 점은, 이런 엄청난 이야기가 저자의 꼼꼼한 인문학적 자료에 기반을 두어 촘촘히 연결되어 있어, ‘허풍’이 아닌 ‘그럴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끔 만드는 것이다. (워낙에 많은 내용이 들어있기 때문에 번역가들에게는 기피 대상이 될 수도 있는 작가일지도 모르겠다. 작가가 언급한 내용들 - 주로 문학과 역사에 관련된 - 을 알고 있지 않으면, 일본어/한자를 그대로 음차한 번역으로 인해 그 번역가의 인문학적 소양이 너무나 여실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동욱, 서연하님의 성의 있는 번역과 필요 적절한 주석은 정말이지 감사하다.)

   그렇기 때문에 모로호시 다이지로의 작품에 빠지기 시작하면, 무저갱(無底坑)에 빠진 것처럼 헤어 나오지 못하게 된다. 다독(多讀)보다는 숙독(熟讀)을 하게 된다. 그가 인용한 내용들을 이해하지 않아도/못해도 그의 작품을 읽는데 큰 무리는 없지만, 그 내용을 알게 되어 그가 행간에 숨겨놓은 비밀(혹은 암시)들을 발견하는 기쁨은 정말 다른 것에 비견할 수 없을 만큼 벅찬 순간이기도 하다.



5. 애니북스에서 출간하고 있는 『서유요원전』은 모로호시 다이지로의 최고 걸작인지는 모르겠으나, 그의 작품세계를 집대성하고 있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70년대에 완성한 일련의 의심할 바 없는 저 걸작들에 비하면, 조금 기대에 못 미치는 것은 분명하지만, 확실한 것은 『서유요원전』은 재미있다는 것이다. 70년대의 걸작들이 그 압도적인 인문학적 상상력에 경도되게 만들기는 하지만, 만화로 읽기에는 조금 지루한 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특히나, 저 세 작품들이 소년(!)만화이면서 활극임에도 불구하고 일반 독자들이 느끼고 싶은 활극의 쾌감은 적은 편이다. 하지만 『서유요원전』은 활극의 쾌감을 저릿하게 전달하면서, 예의 그 모로호시 다이지로식의 인문학적 상상력을 놓치지 않고 있다. 아마도 『서유요원전』이 『서유기(西遊記)』라는 원작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6. 나는 『서유요원전』을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그 활극의 쾌감 속에서 모로호시 선생이 퍼즐처럼 늘어놓은 『서유기』의 캐릭터들과 수당(隋唐) 교체기의 역사와 인물들을 찾아 조각을 맞추는 재미 또한 쏠쏠했었다. 그러다보니 점점 욕심이 생겨 이런저런 책들을 찾아서 읽어보기 시작했다.

   먼저 (임홍빈 선생이 번역한) 문지사의 『서유기』를 다시 읽어보았고, 후에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서유기』들을 비교해 읽어보았다.

   역사서로는 사마광(司馬光)의『자치통감(資治通鑑)』 19권(수隋시대), 20권(당唐시대Ⅰ)을 중심으로 『진순신 이야기 중국사(中国の歴史)』 4권(수 당 오대십국 북송, 중원의 황금시대), 누노메 조후(布目潮渢)・구리하라 마쓰오(栗原益男)의 『중국의 역사 [수당오대](中国の歴史 4 隋唐帝国)』, 동북아역사재단의 『신당서 외국전 역주』시리즈를 읽었다.

   『서유요원전』에 언급된 신(혹은 요물)에 대해 더 알고 싶어 위앤커(袁珂)의 『중국고대신화(中國古代神話)』, 『중국신화전설(中國神話傳說)Ⅰ』과 마창의(馬昌儀)의 『고본 산해경 도설(古本山海經圖說)』, 아노 츠토무(安能務)가 평역한 『봉신연의(封神演義)』, R. K. 나라얀(Rasipuram Krishnaswami Iyer Narayanaswami)이 축약한 대서사시 『라마야나(Rāmāyaṇam)』를 읽었다.

   『서유요원전』의 진짜 주인공인 삼장법사(三藏法師) 현장(玄奘) 스님에 대해 더 알기 위해 첸원중(錢文忠)의 『현장 서유기(玄奘西游记)』, 현장 스님이 구술하고 그의 제자들이 기록한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와 『대당대자은사삼장법사전(大唐大慈恩寺三藏法師傳)』을 읽었다.

   그러다보니 현장 스님이 인도로 가려했던 혹은 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접근하고자 앙리 마스페로(Henri Maspero)의 『도교(Le Taoïsme et les Religions Chinoises)』를 읽을 수밖에 없었으며, 종교와 시대를 통해 발현되는 모습을 알고 싶어서 리저허우(李澤厚)의 『미의 역정(美的歷程)』을 읽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모로호시 다이지로의 지난 작품들을 다시 읽었다.



      


            


         


   



7. 누가 시키지 않는데도 이토록 자발적인 독서에 빠지게 되는 것은 전적으로 모로호시 다이지로의 힘이다. 나는 『서유요원전』을 읽고 나서 이 작품을 사랑하는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으나, 아쉽게도 그럴 기회를 갖지 못했다. 그래서 한 번 더 이렇게 글을 끼적이기로 했다.



8. 전에 끼적였던 ‘트윈 픽스’ 글들을 보니, 하나의 포스트 당 글이 너무 길었던 것 같아, 이번에는 짧게 쓰려고 한다. 형식은 필요한 내용에 주석을 다는 것으로 할 것이며, 아는 한도 내에서 오류 또한 정정할 예정이다. 매일 조금씩 쓰려고 노력하겠으나, 어찌될지는 시간이 지나봐야 알 것 같다.



9. 그저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모로호시 다이지로 선생의 만화를 읽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그리고 이런 굉장한 만화를 경험하게 해준 작가님과, 애니북스 출판사, 멋지게 번역해 주신 김동욱님, 모두에게 드리는 일종의 감사 편지라 생각하며...



10. 그럼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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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20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모로호시 다이지로 자료를 찾다가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모로호시 작품에 빠져 번역된 출판 다 모으고 있는 독자랍니다..ㅠㅠ
이렇게까지 리뷰하시는 분을 한글로 접하게 되서 너무 기쁩니다! :) 너무 재밌게 보고갑니다

Tomek 2014-01-29 13:29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극님. 반갑습니다.
모로호시 선생 작품에 빠지면 정말 헤어나오기 힘들죠. 그냥 흐름에 맡길 뿐입니다.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
알랭 드 보통 지음, 박중서 옮김 / 청미래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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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표지가 맘에 안들었는데 읽으면서 진짜 심각하게 느낀 점은 ˝번역˝입니다. 안되는 영어 실력이라도 원서로 읽는 게 훨씬 후련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진정 알랭 드 보통에 애정을 가진 ˝청미래˝라면 번역 다른 분께 의뢰해서 재출간 하길 강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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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장녀 2013-08-02 14: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 알랭드보통!!! 읽고싶다!!!! 원서가 낫다고?? 당장 사야겠어!!

Tomek 2013-08-02 14:42   좋아요 0 | URL
은근 재미있음.
물론 내가 읽은 게 아니고, 언니가 읽다 빡쳐서 쓴거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