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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0월 12일부터 (주)예비사회적기업 전북귀농귀촌학교와 정읍시에서 주관하는 귀농귀촌강의를 매주 듣고 있다.



   귀농에 대한 생각은 어렴풋이 가지고만 있었다. 각박하기만 한 도시에서의 삶에 몸도 마음도 다쳐, 어딘가 나를 치유해줄 공간이 필요했었다. 자연으로 되돌아가고 싶은 마음, 그 마음이 갈망이든, 회피든간에, 이 지긋지긋한 공간에서 멀리 떠나고 싶었다. 그렇게 떠올린 게 귀농이었다. 하지만, 이전에도 그랬듯, 잘 알아보지 않고 감상적으로 택한 결정은 언제나 비싼 대가를 치룬다는 것을 미리 경험했기에, 이번에는 늦더라도 천천히 다가가기로 결정했다. 그 첫걸음이 바로 귀농귀촌학교의 입교였다.


   "매주 1박2일 총 8번에 걸쳐 총 108시간 동안 실습과 이론 교육을 실시"한다는, immersion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깊이 있는 교육이라 생각해, 큰맘 먹고 교육을 신청했고, 지금까지 총 4번의 교육을 받았다. 교육 내용은 마음에 들었다. 귀농에 대해 무조건적인 찬사나 입에 발린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귀농이 얼마나 어려운지, 성공한 사람들조차 밝히기를 꺼려하는, 감추고 싶은 민낯까지도 가르쳐주곤 했으니까.


   

   지금까지 들은 바에 따르면, 아니 내가 느낀 것을 얘기하자면, 귀농은 정말 쉽지 않은 선택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할 일도 없는데) 농사나 해볼까?"라는 마음가짐이 아니라, "(내가) 농사를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앞서나가야 겨우 첫발을 뗄 수 있는 것이다. 부모님의 영농기반이 없거나, 귀농하려는 지역에 인맥이 없거나, 최소 2~3억의 자본이 없으면, 귀농은 그냥 실패라고 보면 된다. 물론 성공한 사례가 있으나, 만일 당신이 그렇게 성공한다면, 아마도 TV에 나올 것이다. 쉽게 말해, "공부가 제일 쉬었어요" 인간 승리의 부류들. 그정도로 처절하게 들러붙지 않으면 백이면 백 모두 실패다.


   물론, 농촌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농사 말고도 다양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농사에 관심을 두는 까닭은, 농촌의 실상을 알면 알수록, 농촌이 신자유주의의 최전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이제 농촌에서는 농사만 잘 지어서는 무능력한 사람이 되기 일수다. 농사 하나만 제대로 짓는 것도 어려운데, 1차산업인 농산물을 생산하고, 2차산업인 가공품을 만들고, 3차산업인, 유통과 판로를 만들어내야 한다. 그렇게 못하면 국가나 지자체 혹은 대규모 중간상인이 헐값에 사들이는 것만을 기대해야 한다. 이 모든 걸 혼자서 감내해야 하는데, 요즘엔 6차산업(=1×2×3차산업)이라고 해서 이 모든 걸 다 하면서, 거기에 또 체험장, 민박 같은 부대시설도 만들어야 한단다.


   신자유주의가 무엇이었나, 간단히 말해 국가가 할 일을 개인에게 떠넘기는 것 아니었던가? IMF이후 비용절감을 핑계로 인력을 줄인 후, 남은 인력에게 그 일을 떠맡는, 결국 개인이 수퍼맨이 되어야 하는 비극 아니었던가? 하긴, 이런 추세는 내가 몸을 담았던 출판계에서도 보이는 현상이다. 처음 출판사에 입사했을 때는, 기획과 편집만 했었다. 그러다 회사를 옮기게 되면서 점차 편집인이 해야할 일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마지막에는 거의 혼자서 출판 과정 전체를 떠앉는 경우도 있었다. 이 사회 전체가 신자유주의라는 유령에 쥐어 짜이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원하는 삶은 귀농이라기 보다는 귀촌에 가까운 것 같다. 남에게 피해주지 않고, 피해받지 않으며, 내 먹거리는 스스로 생산하고, 자연에 귀의하는 삶. 하지만 현실은, 모두들 겉으로는 스콧 & 헬렌 니어링의 삶에 감동을 받으면서, 정작 속으로는 빌 게이츠를 꿈꾼다. 그걸 뭐라 탓하지는 않는다. 돈이란 숭고까지는 아니더라도, 살아가는데 충분히 존중받을만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니까. 하지만, 농촌에 대한 감성, 혹은 향수가 사라지는 듯한 서글픔이 느껴지는 것은 진심으로 슬픈 일이다.


   이렇게 만신창이가 된 농촌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귀농에 대한 희망 혹은 설렘을 간직하는 것은 바로 생명의 신비, 생명의 순환을 다루는 일이기 때문이 아닐까. 처음 심어본 무청이 싹을 틔우고, 상추 모종이 고개를 들며, 양파 모종이 빳빳하게 허리를 곧추세우는 모습을 매주 확인할 때면, 바로 이맛에 농사를 짓는 게 아닐까 하는, 현실과 동떨어진 감상이 나를 지배한다.





   어떤 결정을 내릴지는 모르겠지만,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가보려 한다. 어쨌든 내 삶 전체를 바꾸는 일이 될테니까. 그러기 위해선 열심히 공부하고 알아나가야 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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