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들리고 음악이 보이는 순간>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그림이 들리고 음악이 보이는 순간 - 여자, 당신이 기다려 온 그림이 들리고 음악이 보이는 순간 1
노엘라 (Noella) 지음 / 나무수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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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회화는 감정이다. 아니, 감정의 발산을 캔버스라는 틀 안에 가두어 놓은 것이다. 화가가 누구건, 어떤 화풍이건 간에 우리는 그림을 보는 순간 설명하기 힘든 감정에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머리로 하는 회화도 존재하고, 권위를 조롱하는 회화도 존재하지만, 대부분의 회화는 그것을 감상하는 사람의 감정을 어떤 식으로든 울리게 하는 힘이 있다. 그것은 화가가 그림을 그릴 때 자신이 느꼈던 감정을 붓과 물감을 통해 투영시키기 때문일 것이다. 평범한 일상과 소재를 향해 자신을 투영시키는 것. 그것이 예술이다.  

음악 또한 감정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소리 중에 화음을 발견하고, 그 화음을 조화시켜 음악을 만들어낸다. 회화와 달리 음악은 순간적이다. 우리는 음악을 볼 수 없고 잡을 수 없다. 시간 속에 흐르는 음률과 화음을 느낄 뿐이다. 음악엔 실체는 없지만, 연주되고 흐르는 순간,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 그 이유는 회화와 마찬가지로, 작곡가와 연주가가 음률과 화음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투영시키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에 음악 또한 예술이다.  

눈으로 보는 회화와 귀로 듣는 음악은, 감상 방법은 전혀 다르지만, 감정의 고양이라는 측면에서는 같은 장르의 예술이라 할 수 있다. 사랑의 감정에 사로잡혀서 그린 그림과 작곡한 음악이 있고, 질투의 감정, 공포, 새로움의 열망, 발상의 전환 등 여러 이유로 창작된 그림과 음악이 있다. 『그림이 들리고 음악이 보이는 순간』의 저자 노엘라는 같은 감정에서 출발한, 혹은 같은 감정을 느꼈던 그림과 회화를 서로 연결한다. 회화의 역사, 음악의 역사를 통해 지식으로만 예술을 접했던 나로선 꽤 신선한 접근이었다. 감정의 고양, 마음이 흔들리는 것. 그게 예술의 가치가 아닐까?  

책의 장점이자 단점은 저자의 회화와 음악을 연결하고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내면을 너무 강렬하게 드러낸다는 것이다. 음악과 미술의 인문학적 접근을 원했던 내게 에세이에 가까운 감정의 과잉은 초반에 책을 견디기가 굉장히 힘들었다. 하지만, 평범한 일상과 소재를 향해 자신을 투영시키는 것이 예술이듯이 그녀 또한 책에 언급한 예술 작품들을 통해 자신을 강렬히 투영했다는 점에서 예술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식으로 볼 수도 있다. 예술을 감상하는데 있어서 인문지식을 모두 동원할 필요는 없지 않는가. 중요한 것은 내 마음을 움직이게 하느냐 이고, 그런 감정의 고양을 설명하기 보다는 같이 느끼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그림이 들리고 음악이 보이는 순간』은 쉽게 다가가기 어려운 예술을 우리의 일상으로, 우리의 보편적 감수성으로 내려놓았다. 설명은 부차문제다. 일단은 접근하고 느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예술에 대한 썩 괜찮은 입문서이다. 항상 처음이 중요한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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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無盡 2010-06-30 1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하튼 이렇게 인간의 감정을 다루는 예술의 창작이 그 창작하는 작가를 떠나 대중과 호흡하며 공감할 수 있는 다양한 경로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내요. 그런 의미에서 이러한 예술영역과 대중 사이의 다리를 놓아주는 작업은 대단히 중요하리라 생각합니다. 서평 잘봤습니다.

Tomek 2010-07-01 08:28   좋아요 0 | URL
말씀 정말 공감합니다. 다른 이야기지만, 특히 클래식 음악 부분이 굉장히 닫힌 느낌이 들더라고요. 꼭 그렇게 계보와 주법, 지휘자의 성향 등을 읊을 줄 알아야 그 음악에 대해 이야기할 자격이 주어지는 것인지... 그래서 멀어지는 게 아닐런지 생각합니다. 예술에 이렇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작업은 더 많이 이루어져야할 것 같아요. 인문학적 소양은 그 다음 문제인 것 같습니다. :)
 
<다시 민주주의를 말한다>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다시, 민주주의를 말한다 - 시민을 위한 민주주의 특강
도정일.박원순 외 지음 / 휴머니스트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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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란 단어는 이미 시효가 다 된 단어라 생각했었다. 소비에트 연방이 붕괴되면서 마르크스가 낡은 사상이 되었듯이, 87년에 선배들이 직선제를 일구었을 때, 아니 조금 더 써서 93년에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이미 민주주의는 완성된 것이라 생각했었다. 독재의 반대로써 민주주의를 이루었다. 그러나 이룬다는 것이 완성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우리는 (혹은 나는)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대의정치로써 민주주의는 잘 작동하고 있었다. 단일화에 실패한 후, 김영삼 전 대통령은 삼당합당을 통해 정권을 창출했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자민련과의 공조로 정권을 창출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공조 없이 정권을 창출했다. 민주화 인사들이 대통령이 된 과정은 마치 우리들의 정치적 성숙도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래서였을까?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선했을 때, 나는 (혹은 우리는) 이제 다 됐다고 생각했었다. 국민의 힘으로 이렇게 흐름을 만든 민주화의 결산. 모든 것을 그에게 맡기고, 나는 (혹은 우리는) 수수방관 했었다. 그에게 모든 짐을 지우게 하고, 훈수를 두고 때로는 쌍욕도 하면서 방관했었다. 그게 민주주의고 대의정치라 생각했었다. 이 발전에 발전을 거듭한 멋진 제도는 이제는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잘 작동할 줄 알았다. 그렇게 믿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다.  

지난 10년간 민주주의를 언급하는 것은 촌스럽고 시대에 뒤떨어져 보이는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 2010년에 민주주의를 언급하는 것은 시급하고 당면한 문제로 보인다. 우린 민주주의를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었다. 우리는 이 민주주의라는 제도가, 선거를 통한 대의정치라는 제도가 얼마나 허약하고 허술한지를 뼈저리게 경험하고 있다. 단지 대통령이 바뀌었을 뿐인데, 지난 10년이 마치 일장춘몽인 것처럼 민주화 이전의 시대로 회귀하고 있다. 가장 극명한 예로 북한 문제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김영삼 대통령의 가장 큰 업적이라면, (하나회 척결과 금융 실명제를 제하고) IMF사태가 있을 것이다. 그 사건으로 이 땅의 이데올로기가 반공이 아니라 자본이라는 것을 우리는 온몸으로 깨달았다. 물론 그 깨달음은 너무 많은 국민들을 힘들게 했지만. 이명박 정부는 우리가 종전상태가 아닌 휴전중임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주었다. 그렇다. 이명박 대통령은 그동안 우리가 잊고 지냈던 사실들을 일깨워주고 있다.  

휴머니스트에서 발간한 『다시, 민주주의를 말한다』는 행동하는 지성들인 김상봉, 김종철, 김찬호, 도정일, 박명림, 박원순, 오연호, 우석훈, 정희진, 진중권, 한홍구, 홍성욱 저자들의 강연을 책으로 풀어 쓴 것이다. 이들 강연은 지금 이명박 정부를 진단하면서, 우리가 잊고 지내던 것들을 하나하나 이끌어낸다. 우리의 민주주의가 얼마나 허약한 토대에서 짧은 시간에 세워졌는지를 설명하고(한홍구), 국가라는 개념을 다시 생각해보며(박명림), 국가를 대표하는 국민의 구성체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고(정희진), 토건사업과 강남과 아파트 평수에 따른 진보성과 보수성의 상관관계를 고찰하기도 한다(우석훈). 점점 더 지옥이 되어가는 학벌경쟁의 폐해와(김상봉), 생활속에 깊숙이 개입한 헌법의 중요성(김종철), 인터넷 개인 미디어로 정보의 독점을 끌어내리는 황홀한 현실(오연호), 세상은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데, 여전히 토건에 매달려있는 이 대통령의 내면에 대한 성찰(진중권)도 있다. 참으로 놀랍지 않은가? 단 한 명의 대통령으로 이런 다양한 주제를, 그것도 심층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는 사실이!  

우린 민주주의를 너무 쉽게 생각해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당선을 민주주의의 완성이라 생각하고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았다. 역사는 부메랑처럼 돌아온다. 우리의 무관심이 지금 이 정부를 만들었다. 저자들의 말처럼, 민주주의는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지속적인 관심과 참여만이 이 불안한 제도를 보완해주는 것이다.  

저자들은 현 시대를 비판만하지 않고, 실천 방안까지 제안하고 있다. 그 실천들은 생업을 포기하고 거리로 나가는 것도 아니고, 마스크를 쓰고 쇠파이프를 들라는 것도 아니다. 우리의 생활과 밀접하고 아기자기한 실천들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재미있어 보인다. 우리는 그동안 얼마나 엄숙하고 처절한 투쟁만을 접해왔었나. 저자들은 생활 속의 실천, 시민들의 연대는 그렇게 어려운 게 아닌 것이라 얘기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세상을 받아들이는 나 자신의 변화다.  

지금 이 시기는 위기다. 하지만 동시에 기회이기도 하다.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하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이렇게 후안무치한 정책을 펴지 않았더라면, 우리가 이만큼 이 세상에 대해서, 민주주의라는 원론적인 문제에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그는 우리를 스스로 행동하고 스스로 회의하고 스스로 깨치게 만들고 있다. 우리는 값비싼 대가를 지불하며 계몽의 현장에서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세상이 병맛이니 글도 병맛이다. 한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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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2010-06-11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사는 부메랑처럼 돌아온다,는 말 백 번 동감합니다.
요즘 현정권의 실책들을 지켜보면서, 대통령제, 특히 한국 사회에서 대통령제의 기능에 대해 생각해 보고 있습니다. 또한, 현직 대통령을 두고 이런저런 이야기가 많은데, 역설적이고 자조적이지만, 저는 현직 대통령이 지금 이 시대의 대표로 가장 어울린다고 생각됩니다. 소통을 원하지도 않고, 밀어부치면 된다고 생각하고, 나만 잘살면 된다고 생각하고, 돈 되는 일이면 뭐든 서슴치 않고, 편법으로라도 이기면 된다고 믿고... 이 시대의 반면교사로 이만한 분이 있을까 싶습니다. 물론, 시켜놓으면 더 할 분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만....엉엉

Tomek 2010-06-12 07:38   좋아요 0 | URL
리트머스 시험지 같지 않을까요. 어쨌든 1000여일을 견뎌야 한다는 사실이 좀 절망적이지만요.
민주주의의 굴레라 해야할지. 정치에 관심 없이 살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요순시대는 정말 신화속의 국가인지... ㅠㅠ
 
<우울의 심리학 / 꿈꾸는 20대, 史記에 길을 묻다>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우울의 심리학 -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우울증에 관한 심리 치유 보고서
수 앳킨슨 지음, 김상문 옮김 / 소울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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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보다는 집단을 우선한 한국사회에서, 우울증은 '정신상태의 헤이'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일사분란하게, 규격화된 삶을 목표로 삼는 사회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우울증이란 질병에 대해서 우리는 관용을 베풀지 않았다. 우울증으로 목숨을 끊으면, 사회에 편입하지 못한 낙오자로 치부되기 일쑤였으니까. 그랬던 것 같다, 그때는. 개인의 일상을 다루기에는 너무 많은 거대담론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으니까. 사람들이 거대담론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을 돌아보기 시작한 것은 문민정부 시절부터였으니까.   

문제는, 이 우울증이란 놈은 사람을 가리지 않고 너무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는 것이다. 우울증은 사고와 같아서 예고 없이 우연히 찾아온다. 가장 일반적인 우울증은 자신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모습과 현실의 모습이 일치하지 않을 때 자괴감의 한 표현으로 찾아오고, 그것이 우울증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증세가 심해지면, 자살을 한다.   

한 때 우울증은 결혼한 여성에게만 일어나는 증세인줄로 알려졌다. 그 이유는 이 사회가 여성에게 너무 많은 짐을 지우기 때문일 것이다. 결혼을 한 여성은, 남편의 연인으로써, 자식의 어머니로써, 회사의 일꾼으로써, 시부모의 며느리로써의 분열된 삶을 살아야하기 때문이다. 4개 혹은 그 이상의 삶을 살아가야하는 여성들이 우울증을 피하기는 쉽지 않다. 물론 남성들도 마찬가지다. 눈물조차도 마음대로 흘려보지 못한 남자다움의 덫에 걸려 평생을 살아온 마초들에게, 우울증이란 차마 이야기할 수 없는 치부로 여겼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 자신의 문제를 묵살하고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90년대 중반에서야, 이 우울증이란 질병에 대해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해결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기 시작했지만, 언제나 원론적인 해답밖에 내지 못했다. 이유는 우울증이란 증세가 사람마다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감기 바이러스가 다 제각각이듯이, 사람마다 겪는 우울증의 증세와 원인 또한 모두 다르다. 의학계가 감기를 정복할 수 없듯이, 우울증 역시 정복하지 못할 것이다. 철마다 찾아오는 감기처럼, 우울증 역시 잊을만하면 찾아올 것이다.   

그렇기에 수 앳킨슨의 『우울의 심리학』을 처음 손에 들었을 때도, 그다지 좋은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그저 그런 원론 처방 매뉴얼 중 하나일 것이라 지레짐작했기 때문이다(실제로 그런 종류의 책들이 너무 많이 있다). 하지만, 책장을 펼치고 조금씩 읽기 시작하자, 그런 편견이 사그라졌다. 『우울의 심리학』은 원론 처방이 아니다. 이 책은 우울증을 극복하는 방법에 관한 이야기이다.   

저자 자신이 (정말이지 처절한) 우울증을 겪어봤기 때문에, 그녀는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한다. 이 책은 우월한 위치에서 가르치는 것이 아닌, 같은 처지에 있던 사람이 건네는 작은 위로와 같다. 목적지를 손으로 가리키지 않고, 같이 동행한다. 눈물이 왈칵 났고, 적어도 이 이유만으로도 책을 읽을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다'는 동질감이니까.   

개인이 겪는 우울증을 절대화할 수는 없지만, 저자가 겪은 우울증은 꽤 깊은 편이다. 때문에 이 책을 읽으면서, 또 다른 우울증이 겹칠지도 모르지만, 결국엔 우울증을 벗어나는 것이 이 책의 의도이니 조바심을 잠시 거두고 그녀의 내면에 들어가 보는 것도 우울증에서 벗어나는 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호랑이에게 쫓기던 사람이 깎아지를 듯한 절벽에 몰리자, 덩굴을 타고 내려가기 시작했는데, 덩굴이 모자랐다. 그 사이 생쥐가 덩굴을 갉아먹기 시작했고, 절벽 밑에는 사자들이 입맛을 다시며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다시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 때 절벽 옆에 매달린 벌집에서 꿀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혀를 입에 대었다. 달콤했다. 오쇼 라즈니쉬의 『배꼽』에서 읽었던 글이다. 그가 이야기한 대로 삶은 고통이다.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죽음뿐이고, 우리는 덩굴에 의지해 매달려 있을 뿐이다. 그 때 맛본 꿀맛은 삶의 고통을 잠시 잊을 만큼 달콤한 것이다. 우리의 인생도 그렇지 않을까? 인간의 삶은 다 똑같다. 다 고통이다. 다만, 옆에 흐르는 꿀에 혀를 대는 자와 대지 않는 자가 있을 뿐이다. 삶의 즐거움, 찰나의 즐거움을 느끼기 위해, 오늘도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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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즐거움의발견>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플레이, 즐거움의 발견 - 우울한 현대인이 되찾아야 할 행복의 조건
스튜어트 브라운 & 크리스토퍼 본 지음, 윤미나 옮김, 황상민 감수 / 흐름출판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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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라는 말은 우리에게 있어서 얼마나 금지된 언어였던가. 이 단어의 불온성은 대한민국에서 '빨갱이'에 버금갈 정도로 차마 입 밖으로 되뇌어서는 안 되는 말이었다.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우리국민만큼 노는 것을 억압당한 사람들이 또 있을까? 조국의 근대성을 벗어나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밤을 새며 일을 해야 했었고 그 명제는 지금도 유효하다. 학창시절에는 대학이라는 족쇄로, 대학에서는 (그나마 학창시절보다는 낫지만) 취업이라는 족쇄로, 직장에서는 밥벌이라는 족쇄로 우리는 노는 것을 금지당해 왔다. 논다는 행위는 여전히 사치스러운 행위로 여겨지며, 놀아본 적이 없는 우리들은 그저 음주가무로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 여전히 노는 것은 다른 계층의 단어이며, 간혹 여유가 주어진다 하더라도, 우리가 아는 노는 것엔 돈이 들어간다. 포기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 모든 것은 6, 70년대에 이룩한 경제 성장에서 비롯된 제조업적인 시각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제조업이란 앉아있는 만큼 성과가 나오는 업종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공부를 안 하더라도 책상에 앉아있어야 하고, 일을 하지 않더라도 밤늦게까지 회사 책상에 앉아있어야 했다. 물론 지금도 이런 시각은 별로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세상은 제조업이다.  

스튜어트 브라운과 크리스토퍼 본이 공저한 『플레이, 즐거움의 발견』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책이다. 여전히 선진국의 망령에 사로잡혀있고, 욕구가 아닌 욕망을 좇는 우리들이 그동안 잊고 있었던 것이 무엇인지를 이 책은 조곤조곤 밝혀준다. 목차를 훑어보면 지루한 논문이 아닐까 생각하기 쉽지만, 책을 펼치면 그들이 펼치는 주장에 쉽게 빠져들 수 있다. "놀이(play)의 반대말은 일(work)이 아니라 우울함(depression)"이라 밝히는 그들의 말처럼, 놀이는 그저 시간을 죽이는 비생산적인 행동이 아니라, 인생을 즐기며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임을 알려준다. 동물들이 놀이를 통해 생존 본능을 익히듯, 인간도 놀이를 통해 삶을 배워간다고 이야기한다. 그들에 따르면, 놀이는 쓸데없는 짓이 아니라, 직접경험의 장인 동시에 즐거운 행위이다.  

그렇다고 모든 즐거운 행위가 다 놀이일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온라인과 비디오)게임, 일방적인 괴롭힘, 도박 등의 행위 같이 사회와 고립되거나 약한 상대방을 일방적으로 괴롭히는 것은 놀이가 될 수 없다. 쾌락이 아닌 즐거움을 수반한 행위. 이것이 진정한 놀이이다.  

박민규 작가의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보면 주인공의 야구단과 아마추어 야구단이 야구 경기를 벌이는 모습이 있다. 주인공의 야구단은 야구를 즐기지만, 꼭 이겨야한다는 아마추어 야구단은 진지하다 못해 비장한 표정으로 게임에 임한다. 놀이를 즐기지 못하고 승부로 여기는 자들의 모습은 얼마나 웃기고 또 안쓰러운가.  

『플레이, 즐거움의 발견』은 우리가 잊고 있던 놀이의 즐거움을 알려준다. 그럼 이제 남은 것은? 즐겁게 놀 일만 남았다. 놀이의 영역은 한계가 없으니까. 나 자신이 즐거운 것, 그게 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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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930년대부터 연구한 '행복의 조건', 연구 결과가 나왔다는데....
    from 법무부 2010-06-07 09:10 
    하버드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1930년대부터 연구한 것이 있습니다. "과연 그들은 행복할까?" 여러분은 행복에도 일정한 조건과 법칙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한 조건! 그 연구 결과가 나..
 
 
 
김태권의 한나라 이야기 2 - 항우와 유방 - 제국의 붕괴 김태권의 한나라 이야기 2
김태권 글.그림 / 비아북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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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권 작가의 『한(漢)나라 이야기』 2권은 말 그대로 항우와 유방에 관한 이야기이다. 우리에게 있어 항우는 힘이 센 무장의 이미지로, 유방은 친근한 서민적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기도 하지만, 일반 서민 출신이 제국의 황제가 됐다는 사실은 민초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내용이기도 했을 것이다. 언제나 신선한 시각으로 독자들을 놀라게 한 김태권 작가는 이번에도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그는 지금까지 우리에게 남아있던 항우와 유방의 이미지를 완전히 박살낸다.  

번듯한 이미지의 귀족 항우와 무뢰배 유계(당시에는 이름도 없던 천민)의 등장과 활약은 가히 충격적이다. 그리고 이런 이들의 권력 쟁탈에서 엘리트로 대변되는 항우와 가진 것 없고 무식한 민중들로 대변되는 유방의 모습을 보면서, "역시 정치는 엘리트가 해야 한다"는 불온한 상상까지 불러일으킨다. 그만큼 김태권 작가는 기존의 이미지를 갈아엎고, 『사기(史記)』에 실린 내용을 바탕으로 거의 새로운 『초한지』를 그려냈다. 이 책은 우리 마음속에 있는 이율배반성을 깊숙이 찔러댄다. 어쩌면 내가 그만큼 보수화 되어가는 것 같아 쓸쓸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하지만, 역시나 1권과 마찬가지로 서사의 구성에서는 삐걱거림을 안고 있다. 가뜩이나 방대한 내용을 항우와 유방(그리고 한신)에 한정시키다 보니, 이 책으로 중국 역사를 처음 접하는 독자들에게는 따라가기가 쉽지 않다. 유방의 모습은 더할 나위 없이 인상적이지만(흰자 없는 검은 눈동자, 아무데서나 몸을 벅벅 긁는 모습 등), 항우 캐릭터는 너무 전형적으로 보인다. 인물 자체가 전형적이라면 모르겠으나, 항우는 통일제국 진(秦)을 멸망시킨, 문무를 겸비한 뛰어난 인물이 아닌가! 물론 이것은 취향의 차이일 뿐, 비판의 대상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아쉬움을 감출 수는 없다.  

여전히 툴툴거렸지만, 그것은 애정에서 나온 삐짐의 표현일 뿐, 그가 그려낼 『한(漢)나라 이야기』는 여전히 궁금하다. 1권과 2권이 나온 지 두 달 정도가 흘렀으니 이제 3, 4권이 나올 때가 된 듯하다. 제발이지 이번 시리즈는 꼭 완간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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