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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대'하고 '투쟁'하면 언젠가는 꿈쩍않던 회사가 움직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다만 이곳에서 『밤은 노래한다』는 읽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출처: http://www.saebomnar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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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담론을 경멸한다는 문필가 겸 <시사저널> 편집국장 김훈의 생각   

 

이야기가 새버렸다.  

이번 쾌도난담의 방향은 그게 아니었는데, 좀 엉뚱하게 흘렀다. 색다른 게스트. 최근 여행산문집 <자전거 여행>을 펴낸 문필가 김훈(52)씨가 그 주인공이다. 물론 여기까지는 전혀 색다르지 않다. 중요한 건 그가 현재 시사주간지 <시사저널>의 편집인 겸 편집국장이라는 사실이다. <한겨레21>의 동종업계 종사자, 과장해서 말하면 ‘적장’을 초대하는 일이 일종의 터부로 여겨질 수도 있었지만, 그는 흔쾌히 응했다.  

“한겨레를 씹어 돌려 달라.” 사실 이게 목적이었다. 그동안 쾌도난담에서 지겹게 <조선일보>를 조롱해왔는데, 한겨레의 들보도 좀 들여다보자는 거였다.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마치 ‘사상검증’처럼 돼버리고 말았다.   

 

여자는 식물 같은 풍경이다  

최보은: 일요신문사에서 경영간섭이나 지면간섭은 안 하나요?  

김훈: 그러면 그 순간에 아작이 나는 거지. 난 맘에 안 들면 회사를 떠나는 데 5분 걸려. 그냥 가는 거야. 5분 이내에. (웃음)  

김훈 국장은 70∼80년대에 ‘문재’를 떨쳤던 신문기자로 유명하다. <한국일보>에 연재됐던 ‘김훈의 문학기행’을 모르는 이는 별로 없을 것이다. 그의 기사엔 독특한 향기가 있다. 89년 12월, 17년간의 <한국일보> 생활을 청산했던 그는 <시사저널>과 <국민일보>를 돌아 <한국일보> 편집위원으로 다시 얼마간 재직하다가, 몇개월 전 또다시 <시사저널>로 돌아왔다. <자전거 여행>은 그가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여름까지 <한국일보>에 연재했던 ‘김훈의 우리땅 자전거 답사’를 묶은 것이다.  

김훈: 자전거를 타고 판문점으로 해서 개성-신의주-개마고원으로 가려고 공작을 하고 있는데 잘될지 모르겠어. 위원장님이 날 오라고 하면 좀 되는데…. 여기서 세 시간이면 개성 가거든.  

최보은: 제가 감량을 할테니까 김훈 선배 자전거 뒤에 타고….  

김훈: 뚱보는 안 태워. (웃음) 남남북녀라는데 북한 여자 태우고 다녀야지, 뭐하러 남조선 여자를 거기까지 태우고 가.  

최보은: 자전거 시가가….  

김훈: 내건 젤 좋은 거야. 자동차보다 더 좋아.  

최보은: 얼만데.  

김훈: 말하면 안 되는데… 전에 쓰던 게 500만원짜리고, 그게 다 망가져서 더 좋은 걸 샀어. 로키마운틴이라는 데서 나온 건데 정말 뛰어난 자전거야(참고로 그는 승용차를 몰 줄 모른다. 아직도 컴퓨터 대신 원고지를 고집하기까지 한다. 기계엔 꽝이라는 그는 평생 카메라 셔터 한번 눌러본 적이 없고 비디오도 잘 조작할 줄 모른다).  

최보은: 여성 팬들이 많기로 사계에 소문이….  

김훈: 여자는 예쁘잖아. 근데 내가 여자를 보고 예쁘다고 말하는 건 산에 가서 나무나 풀을 보고 예쁘다고 말하는 거하고 하등 차이가 없어. 풍경으로서 아름다운 거지. 믿기 어렵겠지만 정말 믿어줘.  

최보은: 단도직입적으로 “안 선다” 이거죠. (웃음)  

김훈: 수많은 여자들한테 “아름답다.” 그래도 잠자는 건 좋아하지 않아.  

최보은: 절대 여관까지는 안 간다?  

김훈: 아니 뭐 꼭 그런… (웃음) 난 여관엔 안 가지만 여관에 가는 놈보다 내가 도덕적으로 우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 그걸 장려하는 것도 아니지만.  

김규항: 좋은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웃음)  

(잠시 불륜 드라마의 윤리 논쟁 공청회에 참여했던 김훈 국장의 에피소드가 나온 뒤)  

김훈: 불륜 치정의 문제는 일부일처제가 급속히 무너져가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지… 여관에 가서 했냐 안 했냐 따지는 것은 치사한 얘기다 이거지.  

최보은: 불륜을 권장한다? 모든 굴레로부터 자유로워져라? 남편을 버려라? (웃음)  

김훈: 인류의 가장 시급한 문제가 일부일처제를 타도하는 거라고. 이건 인간의 본성에 맞지 않는 제도야. 이걸 타도하는 것은 마르크스 혁명보다 백배 어려운 거야.  

김규항: (한참 멍하니 있다가) 제 생각이랑 똑같군요. 백배까진 아니지만. (웃음)  

김훈: 만배 어려워. (웃음)  

 

남성은 여성보다 절대 우월하다?  

김규항: 일부일처제라는 게 실은 출발부터 일부일처제가 아니었죠. 남자한테는 외도나 매춘이라는 보조 장치가 허용돼 있었으니까.  

김훈: 요새 여자들 보니까 그렇지도 않던데.  

(일부일처제가 무너지면 주민등록 정리 등 관(官)이 할 일이 많아질 거라는 등의 이야기가 한참 오고간 뒤)  

최보은: 대학원 졸업한 딸을 두신 걸로 아는데 페미니즘 기질은 없나요?  

김훈: 우리 딸? 그런 못된 사조에 물들지 않았어요.  

최보은: 어쩌다 김훈 선배는 그런 못된 사조에 물드셨어요. 마초…. <시사저널>엔 여기자들도 많은데 그렇게 말하세요? 페미니즘 같은 것에 물들지 말라?  

김훈: 걔들은 가부장적인 리더십을 그리워하는 것 같더라고.  

최보은: 네? (웃음) 이런 말 기사화해도 상관없으세요?  

김훈: 괜찮아. 아무 상관없어. (웃음)  

김규항: 근데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김훈: 여자들한테는 가부장적인 것이 가장 편안한 거야. 여자를 사랑하고 편하게 해주고. (웃음) 어려운 일이 벌어지면 남자가 다 책임지고. 그게 가부장의 자존심이거든.  

김규항: 최 선배 열받네.  

최보은: 지금 반어법이에요? 진심이에요?  

김훈; 난 남녀가 평등하다고 생각 안 해. 남성이 절대적으로 우월하고, 압도적으로 유능하다고 보는 거지. 그래서 여자를 위하고 보호하고 예뻐하고 그러지.  

최보은: 그런 이야기하면 <시사저널> 부수 떨어져요.  

김훈: 괜찮아. 이제 떨어질 것도 없어. (웃음)  

김규항: 후천적인 노력이 아닌 선천적인 요인으로 사람을 나누는 건 대단히 위험합니다. 남성이 여성보다 선천적으로 우월하다는 얘기는 백인이 흑인보다, 독일인이 유대인보다 우월하다고 보는 인종차별하고 다를 게 없죠.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고 보는 게 근대적 사고방식의 기본 아닌가요?  

김훈: 인종 사이의 혐오감이란 어쩔 수가 없는 거지.  

김규항: 혐오는 단지 서로간에 다르다는 건데. 이건 “어떤 피부색을 가진 사람이 근본적으로 열등하다”는 말과 같습니다. 나치가 아리안족이 가장 우수하다고 말하는… 근데 선생님께서 여성에 대해 말씀하는 건 그거와 결국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김훈: 난 정돈된 생각을 가진 사람이 아니거든.  

김규항: 선생님 말씀을 어느 정도 받아들이더라도 경우에 따라 다르지 않겠습니까. 전체적으로 봤을 때 평균적으로 남자가 여자보다 낫다는 얘기가 가능하더라도 남자보다 훨씬 더 뛰어난 여자도 있을 수 있고, 여자보다 못한 남자도 많고….  

김훈: 그건 그렇지.   

국장의 당당한 ‘편견’은 계속됐다. “보편적 진리를 말하는 것은 나한테 중요하지 않고 나의 편견을 끝까지 당당하게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그의 말처럼. “잘 쓴 글이라는 건 자기의 많은 편견과 아집이 들어 있어야 한다”는 게 김훈 국장의 생각이었다. 그의 인종론은 기자들에 관한 이야기로까지 적용됐다.  

김훈: 내가 보기에 우리 사회에서 기자라는 게 절대 우수한 집단이 아니라고. 우수한 인종집단은 검찰이나 안기부나 재경원이나 정보통신부에 다 있다고.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우수해. 오래 겪어보니까 그래.  

최보은: 그건 자리가 사람을 우수하게 만든 거잖아요.  

김훈: 아니야. 종자가 우수해. 진짜야. 기자는 2류나 3류 정도겠지. 기자 새끼들 무관의 제왕이니 사회의 목탁이니 뭐니 개소리 하면서 50년 허송세월한 거야.  

최보은: 기자라는 집단은 원천적으로 어떻게 돼야 하는 집단이라고 생각하시는데요.  

 

칼이 펜보다 강하다  

김훈: 이걸 알아야 돼. 칼이 펜보다 강한 거야. 펜이 칼보다 강하다는 사기를 평생 해가지고 이 모양이 된 거지. 세상에 펜이 어떻게 칼보다 강할 수 있어. 칼 쥔 놈들은 칼이 강하다고 말 안 해. 왜냐면 본래 강하니까.  

김규항: 선생님 말씀처럼 국정원이나 국방부에 똘똘한 인재들이 많지요. 또 그럴 필요가 있고. 칼이 펜보다 강하다고 하셨는데 이런 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는 나라도 나라 나름이라고 생각해요. 나쁜 나라일 때, 나쁜 나라여서 선생님 같은 개인에게도 불합리한 구조가 사회전반에 영향을 끼칠 때, 그런 우수한 인력들이 전두환이나 김영삼 같은 권력자에게 사용되는 거 아닙니까. 그럼 가치가 달라지는 거 아닐까요? 일테면 펜이 칼보다 더 강해서 사회구성원에게 훨씬 더 유리한 시점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은 인정하시죠?  

김훈: 전두환, 노태우 때도 유능한 인재들이 다 들어갔어요. 일본도 그래요. 법무성 관리들이 엘리트지, 기자가 엘리트야?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야.  

최보은: 현실적으로 기자들에게 많은 권력이 주어지는데 책임의식이나 윤리가 요구되지 않을까요?  

김훈: 기자의 가장 큰 악덕은 게으른 거예요. 일 안 하고, 말 안 듣고, 데스크 명령에 불복종하고, 그런 게 비윤리적인 거지.  

최보은: 김훈 선배가 그런 기자 아니었어요? 말 안 듣는 기자?  

김훈: 나는 말을 무지 안 들었어. (웃음)  

최보은: 저는 쾌도난담을 하면서 담당기자한테 ‘언론탄압’을 많이 받아 짜증나는데 (웃음) 김훈 선배는 우리나라 언론자유가 어느 정도라고 봐요?  

김훈: 우리나라는요, 언론이 탄압을 받아서 문제가 생기는 건 절대 아니고, 그 반대야. 너무 붙어먹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거예요. 언론의 자유? 말도 안 돼. 내가 엠네스티 언론인위원회 위원장이거든. 그 발족식에 가서 내가 물었어. 언론인위원회가 도대체 뭐하는 곳이냐. 그러니까 기자들이 보도에 관해 박해받을 때 연대해서 정권과 싸우는 게 목적 중 하나라는 거야. 너희들 개소리하지 말라고 했어. 누가 박해를 받아. 그때 밀가루 파동 나서 박해받은 사람은 나밖에 없더라고. (웃음) 문제는 붙어먹어 생긴 거야.  

김규항: 그런데 왜 위원장을 하셨죠?  

김훈: 자꾸 하라 해서 했는데. (웃음)  

김규항: 무슨 부탁을 하면 거절을 못하는 성격이십니까?  

김훈: 아니, 거절할 수도 있는데… 그냥 어떻게… 이제 관둘래. (웃음)  

국장은 80년 이야기를 꺼냈다. 당시 그는 한국기자협회 <한국일보> 지회 부회장이었다. 당시 계엄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기협 지도부로부터 1번 타자로 파업을 치고 나가라는 지침을 받았지만 거부했다는 것이다. 그는 기협 지도부 선배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자고 나면 동료들이 한명씩 끌려가는 판에 파업을 절대 지휘할 수 없다. 신문은 정상제작한다. 당신들은 감방으로 가시오.”  

그는 당시 신군부에 대한 용비어천가를 자신이 모조리 작성했다는 것도 주저하지 않고 말했다. “내가 안 썼으면 딴 놈들이 썼을 테고… 난 내가 살아남아야 한다고 생각했어. 그때 나를 감독하던 보안사 놈한테 이런 얘기를 했지. 내가 이걸 쓸 테니까 끌려간 내 동료만 때리지 말아달라. 걔들이 맞고 있는 걸 생각하면 잠이 안 왔어. 진짜 치가 떨리고….” 그러면서 자신이 죄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다분히 위악적으로 느껴졌다.  

 

<한겨레>의 죄악  

김훈: <한겨레>를 보면 문화면이 많이 좋아진 것 같아. 초창기는 이념 편향적이었잖아. 그땐 정말 한심했다고. 그땐 민중주의를 전파하고 그랬잖아. <한겨레>는 민중적인 가치의 고귀함과 천민근성의 더러움을 구별 못했어. 이 대목 그대로 써줘. 모든 민중을 천민화해가는 것, 그게 얼마나 죄악인 줄 몰랐던 것 같더라고. 모든 민중을 고귀하게 만드는 게 민중주의지, 다 똑같이 수드라를 만드는 것은 민중이 아니잖아. 그런 점에서 난 민중이 아니에요. 나는 절대 민중인 적도 없었고, 나는 지식인이고 엘리트거든.  

최보은: 보수화되었다는 이야기인가요?  

김훈: 잘 보수화된 것 같아. (웃음) <한겨레> 초창기에 무슨 농촌에 있는 “미군들 물러나라” 벽보 써붙인 것, 죽창 그런 것… 그걸 민중예술이니 뭐니 해서… 그걸 예술이라고.  

최보은: 그게 문화의 발상일 수 있죠. 모든 문화는 처음엔 촌스러운 거 아닌가요. 나중에 사회적 의미를 획득하게 되면 그게 예술이 될 수 있는 거고. 세련되고 귀족적이고 완성된 그림만이 그림은 아니잖아요.  

김규항: 농촌의 벽화를 말씀하셨는데, 그들한테는 사실 선생님이 말하는 차원의 예술 감상 기회가 거의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그런 벽화를 보는 일은 중산층이 화랑에 가서 미술작품을 보는 일과 다를 게 없지요. 그게 무슨 차별이 있나요?  

김훈: 그러면 온 백성이 천민이 되는 거야. 천민…. 농촌에 사는 가난한 무지렁이들이 벽에다 고호나 세잔을 걸어놓아도 되는 거야. 거기다 죽창을 걸 필요는 없다는 거야. 인간의 일상생활에서 죽창 그림이라는 것은 지겨워서 들여다보고 있을 수 없어. 죽창 판화를 누가 집에다 걸어놔. 구로공단 노동자들 가보라고. 걔들이 김남조나 황동규 시를 읽지, 박노해 시를 읽는 게 아냐.  

최보은: 그럼 뒤샹의 변기를 걸어놓은 것은… 그건 안 지겹나요?  

김훈: 뭐가?  

최보은: 변기를 걸어놓고 샘이라고 했을 때 그것도 천민예술인가요? 어떤 것도 사회적 맥락 속에서 시대와 어떤 코드를 만들어낼 때 그것이 문화가 되는 게 아닐까요?  

김훈: 사회적 산물이지.  

최보은: 그런데 왜 먼 나라의 변기는 예술이 되고, 우리나라의 죽창은 예술이 될 수 없나요.  

김훈: 죽창을 예술화하지 못했잖아.  

최보은: 그건 누구의 판단인가요? 그걸 분명히 즐기고 사진 찍고 예술이라고 이름하는 사람도 있는데. 저는 <시사저널> 지면에서 오늘 하신 주장을 김훈 선배가 글로서 한번도 하는 걸 못 봤어요. 예를 들어 인간은 불평등하다… 여자는 남자의 사랑을 받아야 한다… 또는 민중예술에 대한 생각….  

김훈: 인간은 불평등한 것이 맞잖아.  

최보은: 그럼 왜 주장하지 않으세요? 글 쓰는 것을 직업으로 가진 분이 왜 주장을 안 하세요.  

김훈: 난 평등사회를 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없어요. 저널리스틱한 글로서 그런 주장을 할 생각이 추호도 없어. 그런 자기모순 속에서 사는 게 내 삶이라고 생각해.  

최보은: 언론인으로서 기본적인 철학은 반드시 필요한 거 아닌가요?  

김훈: 나는 상식적인 거야. 약한 놈의 걸 뜯어먹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야. 이데올로기가 아니고 상식이지. 언론인은 거대담론을 하면 안 돼. 나는 그런 새끼들 가장 경멸하고 증오한다고. 한겨레에도 거대담론하는 놈들 많을 거야. 거의 대부분 일거야.  

 

거대담론은 다 오류야  

최보은: 거의 대부분은 아니에요.  

김훈: 한겨레 기자들은 거대담론을 하지 말아라. 제발.  

최보은: 일상에서 출발하라는 얘기죠?  

김훈: 거대담론, 가치판단, 선악, 정오… 이런 거 매일매일 판단하잖아. 이것도 시건방진 수작이고. 일단 ‘존재’를 판단해야 해. 이것이 옳느냐 아니냐를 판단하기 전에 “이것은 무엇이냐”에 대한 판단을 먼저 해야 한다고. What is this! 존재판단이 확실하지 않을 때는 가치판단을 유보해야 하고… 무엇보다 거대담론을 하지 말아야 해.  

최보은: “거대담론을 하면 안 돼”라는 논리에는 모순이 있다고 생각해요. 거대담론을 하는 사람도 있는 거예요. 거대담론이란 건 커다란 철학 아니겠어요?  

김훈: 그건 다 오류야. “이 시대는 총체적으로 가고 있는가” 따위의 소리들… 이런 걸 쓰지 말라고. 

김규항: 80년대 이후 우리 사회 거대담론의 천박성에 대해선 어느 정도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런 인정과 세상의 시스템을 총체적으로 보는 거대담론 자체에 대한 회의는 전혀 다른 겁니다. 가령 저는 제 주변에서 그런 사람을 봅니다. 개인적으로 볼 때는 천상 사회주의자예요. 이타적이고, 욕심도 없고, 경쟁도 싫어하고…. 근데 사회 문제에 대해선 이상하게도 보수적이죠. 저는 그런 괴리가 시스템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생긴다고 봅니다. 그런 사람이 그런 능력을 가질 때 가장 이상적인 상태가 될 겁니다. 인간의 내면을 얘기하는 일과 거대담론을 말하는 건 둘 다 필요합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건 현재 실재하는 거대담론의 가치를 따지는 일이죠.  

최보은: 그러니까 거대담론을 하지 말아야 되는 게 아니라, 그 차이를 인정하고….  

김규항: 저는 선생님의 말씀 속에서 현상으로 본질을 규정하는 일관된 이중성을 발견합니다. 선생님은 세상은 원래 그런 거고 변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그런 세계관에 대해 저는 전혀 동의하지 않지만 일단 하나의 입장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세상이 나아지는 노력에 별로 참여하고 싶지 않다는 개인의 취향이나 세계관과, 그런 노력이 전혀 가치가 없다고 말하는 건 다른 문제가 아니겠습니까?  

김훈: 그렇죠.  

김규항: 선생님이 거대담론을 생각하는 사람들에 대해 치를 떠는 건 선생님의 문제지만, 중세가 근대사회가 되듯 사회 시스템이 변하는 건 역시 그런 식의 생각과 노력에 의해서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변화된 세상은 분명 이전보다 낫고 선생님 역시 그 혜택 속에 사는 건데 말입니다.  

김훈: 하여간 난 안 할거야. 동참하고 싶지 않아.  

김규항: 몇 시간의 대화로 그런 세계관의 합의를 이루거나 기대할 수는 없겠죠.  

 

통일… 재벌, 그리고 <조선일보>  

화기애애하게 출발했던 오늘의 쾌도난담은 이 대목을 고비로 약간 썰렁해지기 시작했다. 웃음이 잦아들고 최보은과 김규항의 안색이 딱딱해지는 느낌까지 들었다. 김훈 국장이 거침없이 내뱉은 다음과 같은 어록 때문이다. 언쟁은 치열했지만 지면 사정상 그의 이야기만 들어보자.  

“나도 관념적으로는 통일을 바래. 하지만 피부가 아프게 몸을 상해가면서 통일을 바라고 그런 건 아니야. 통일을 바라지 않아. 못살 게 뻔한데… 이대로 사는 게 좋다고. 어느 놈이 통일을 바래. 대통령밖에 없다고. (웃음)”  

“(재벌이 아들한테 회사 물려주는 거) 그거 한심하지만 불가피한 거라고. 나도 내집 아들한테 물려줄 판인데…. 우리 사회의 문제를 개선할려면 재벌이 자본을 인간화해 리더십을 보강하는 쪽으로 나가야 한다고. 재벌이 무너지면 우리가 무너져. 노동자들이 무슨 연대를 해. 노동자가 우리 사회에서 제일 보수주의잖아. 무슨 신기술 도입하면 저항하고 구조조정에 저항하고… 노동자들이 제일 보수적이고 재벌 리더들이 가장 진보적이라고. 지금 여러분은 반대로 생각하겠지. 저는 여러분과 반대로 생각해.”  

“나는 <조선일보>를 아주 좋아해서 평생을 보는데, 가장 우수한 신문이더만. <조선일보> 사설 같은 걸 보면 얼마나 글을 잘 쓰는지 소름이 쪽쪽 끼친다고. 우리 기자들보고 이것 좀 보고 배우라고 하지. 근래 들어 정권에 대해 가장 극렬하게 저항하고 있는 게 <조선일보> 아니야?” (웃음)  

김규항: 오늘의 결론을 내릴 때가 됐습니다.  

최보은: 김훈 국장님의 생각은 저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습니다!  

김규항: 김훈 국장님도….  

김훈: 김훈, 너 집에 가라. (웃음)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김훈 국장의 사퇴를 보며 

 

참으로 난처한 심정입니다. 지난 <한겨레21> 제327호 쾌도난담 게스트로 초청됐던 <시사저널> 김훈 편집국장이 사표를 썼다는 소식을 접하고서입니다. 그 글이 나간 뒤 김 국장을 향한 안팎의 비난이 들끓었고, 그는 결국 지난 7일 사직서를 내고 홀연히 떠났습니다. 좋은 의도로 시작한 기획이 이런 예상치 못한 결과로 이어진 데 대해 당혹스럽기 그지없습니다. 거기에다 김 국장은 오래 전부터 개인적으로도 친밀하게 지내온 사이이기에 곤혹스러운 심정은 더 합니다.  

일요일인 8일 밤 늦게 김 국장의 일산 집으로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새벽 2시가 넘게 술잔을 기울이며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의 첫 번째 일성은 “나는 전혀 괜찮아. 이번 문제로 상심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위무하러 갔다가 오히려 위로를 받은 꼴이었습니다. 그러나 역시 마음은 편치 않았습니다. 게다가 이번 사태로 <시사저널> 내부도 매우 뒤숭숭하다고 합니다. 일각에서는 ‘적장을 의도적으로 함정에 빠뜨려서 경쟁지를 혼란에 빠지게 한 술책’이라는 의혹의 눈초리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실 쾌도난담에 김 국장을 게스트로 초청하면 어떻겠느냐는 아이디어가 나왔을 때 “그것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과연 나올까 하는 회의가 들었습니다. 경쟁지에 등장하는 것이 우리의 언론관행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바로 그런 점에서 그를 <한겨레21>에 등장시키는 것은 매력적인 기획이었습니다. 경쟁하는 잡지들끼리 서로 넘나드는 것 자체가 <한겨레21>이나 <시사저널>, 나아가서 최근 침체에 빠진 시사주간지 시장의 활력요소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한 것이지요. 그리고 그는 흔쾌히 응해주었습니다.  

이날 밤 술자리에서 김 국장과 저는 이 세상의 모순, 그 속에서 인간이 겪는 고통, 선과 악이 혼돈된 시대의 문제 등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사실 글로 표현되는, 그것도 대화에서 토막토막난 말들은 진심을 전달하는 데 한계가 있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그런 몇 마디 표현들이 한 인간의 사고 전체를 모두 설명해주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김 국장 자신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글로 나온 것을 보니까 내가 봐도 과격하더구만. 이 시대를 감당할 수 없는 발언이야.”  

그는 신군부 등장 시절 ‘용비어천가’를 쓴 사실을 스스로 털어놓은 데 대해 “나의 잘못을 제대로 질타할 수 없는 도덕적 권위 부재를 이야기하려는 것”, ‘반통일 의혹’에 대해서는 “반통일적이던 사람들이 통일세력으로 바뀌는 시대 속에서 진정으로 통일을 원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선과 악이 혼돈되고 전도되는 시대를 살아오면서 나로서는 거대담론을 도저히 말할 수 없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평소 그를 어느 정도는 안다고 생각하는 편이었기에 쾌도난담의 말 뒤에 숨어 있는 그의 진심이 어렴풋이 이해가 됐지만 아무래도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 있었습니다. 바로 ‘선천적 남녀불평등론’입니다. 그 질문에 대한 그의 답변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그건 나의 어쩔 수 없는 어떤 심정적 무의식이야. 그것을 전달했을 뿐이지. 우월한 자의 도덕이라는 게 있어. 여성을 힘들게 하지 않고 고생시키지 않고…. 사실은 열등하고 싶어. 그런데 문명이 그렇게 강요해. 그러나 공인으로서 나는 잡지를 만들 때 여성문제나 페미니즘 기사 등에 대해 결코 그런 무의식을 따르지는 않았어.”  

김 국장의 여러 주장과 심경토로에는 충분히 수긍가는 대목도 있고, 때로는 저의 의견과는 일치하지 않는 대목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이런 항변은 귀담아들을 만합니다. “나의 생각이 오류일 수도 있어. 동시대의 진실과 나의 오류가 충돌할지라도 개인의 진실은 보호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 그리고 분명한 것은 김 국장의 솔직함만큼 저는 솔직해질 자신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대합니다. 김 국장이 다시 <시사저널>에 복귀해 좋은 잡지를 만들기 위해 선의의 경쟁을 하기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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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바 2010-05-15 2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김훈을 좋아합니다. 아니, 그의 문장과 문장가로서의 능력을 존경하죠.
난담에 담긴 내용은 조금 실망이었지만 끝까지 그의 편에 서서 읽어보려고 애썼습니다.
아직도 그가 왜 그렇게 말했을까를 이해하긴 힘듭니다. 제 능력으론 정확한 의도를 알 수 없기 때문이지만 조금 더 깊게, 우호적으로 생각해 보면 <생각의 방식>을 일깨워 주는 면도 있다고 봅니다. 게다가 마지막 그의 대답에서 결론은 보류해야 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정확히 우리는 '우리편'으로서의 김훈을 원하고 있는게 아닐까요? '오류가 충돌할 지라도 개인의 진실은 보호받아야 하는 것'이란 말엔 동감입니다. 적어도 그는 둘러대거나 자신의 뜻을 숨기지는 않았으니까요. 어젠가는 좀 더 많은 이야기를 그로부터 듣고 싶긴 하지만 당장은 그걸로 족합니다. 쾌도난담의 틀을 이해합니다. 더군다나 주제가 "한겨레를 씹어 돌려 달라"는 요구였으므로 더더욱 그러합니다.
호기심을 부풀게 해주는 내용이었습니다. 올려준 분께 감사합니다.

Tomek 2010-05-16 11:05   좋아요 0 | URL
저도 김훈 작가님을 좋아합니다. 치욕을 에둘러 피하지 않고 그대로 감내하는 모습이 대단하다고 느껴진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남한산성』과 『공무도하』의 인물들에 더 뭉클해지지요.
 





































































 

 

   지친다. 지쳐... 알라딘도 그렇고, 이 세상도 그렇고. 중래같은 궤변론자라도 나타난다면 내 문숙이 되어 그 궤변을 기꺼이 따라줄 수도 있건만... 이 혼돈은 언제나 끝나게 될까...

   문득 『해변의 여인』이 그리워지는 12월, 일요일 오후다... 

 

 

* 모든 이미지는 영화사 봄, 전원사에 귀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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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i 2009-12-20 1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울해져 있다가, 이 글 읽으니 웃음이 나네요. ㅎ

Tomek 2009-12-21 09:38   좋아요 0 | URL
혹시나 비꼬는 걸로 보이는 게 아닐까 생각했었는데... 웃으시니 다행입니다.
ㅎㅎ
 
[후기] 작가 김훈과 함께 걸은 문경새재

 

   이번에 알라딘에서 또 가슴 설레는 이벤트를 개최한다. 평일 목요일이란 시간대는 직장인들을 옥죄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고 싶은 것은 어쩔 수 없는 마음이다. 당첨이 됐으면 좋겠지만, 어쩐지 올해 운은 이번달에 다 쓴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좀 불안한 마음이다. 게다가 2주전에 독자와의 만남에 갔다왔으니, 만약 당첨이 된다 하더라도 만남을 갖지 못한 다른 수많은 알라디너들께 죄송한 마음이고. 정말이지 모순된 하루 하루를 지낸다.

   그 불안한 마음을 조금 진정시키고자 손민호 기자의 기사를 올린다. 그는 이미 한 달전에 김훈 작가와 문경새재를 '넘었다'. 그날, 12월 3일 문경새재를 넘으시는 분들께는 쏠쏠한 예습이 될 것이고, 그렇지 못한 분들께는 대체 경험이 될 것이다.   

 

 

백두대간 속 백미 구간 ⑦ 소설가 김훈과 문경새재  

[중앙일보] 2009.10.08 00:03 입력 

 

자전거 놓고 걸어서 넘는 길, 햇살 한번 오지게 부시다. 고조선의 백수광부는 물을 건너면 죽을 줄 알면서도 건넜다. 여기 삶이 싫었으니까. 고개를 넘는 일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백두대간은 산 줄기다. 그 거침없는 산맥은 땅을 경계 짓고 왕래를 가로막았다. 백두대간으로 인하여 세상이 나뉘고 풍속이 갈리었다. 산 이쪽 사람은 산 저쪽을 동경했고, 산 저쪽 사람은 산 이쪽을 상상했다. 벽처럼 앞을 막고 있는 저 산만 넘으면 전혀 다른 세상이 기다리고 있으리라, 산 이쪽과 저쪽에서 사람은 꿈을 꾸었다. 그 꿈은 막연하고도 간절했다. 그래서 사람은 산에 길을 내기 시작했다. 가장 얕고 낮은 목을 노려 산을 넘었다. 고개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백두대간은 수많은 고개를 대나무 마디 모양 등줄기에 업고 있다. 진부령ㆍ미시령ㆍ한계령ㆍ대관령ㆍ싸리재ㆍ죽령ㆍ하늘재ㆍ새재ㆍ추풍령ㆍ육십령 등 이름난 고개만 해도 헤아리기 어렵다. 그 고개는 전혀 다른 두 세상을 잇는 유일한 통로이자 분기점이었다. 고개로 인하여 호남과 영남이, 영남과 충청이, 영서와 영동이 구획되었고 또 연결되었다. 

이번 달 week&이 오른 백두대간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고개 문경새재다. 문경새재는 조선시대 한양과 동래를 잇는 가장 빠른 길 위에 있었다. 조선시대 행정과 교역의 대부분이 이 50리 고갯길을 넘나들며 이루어졌다. 하여 고갯길 굽이마다 숱한 사연이 쟁여져 있고 포개져 있다. 고개가 험할수록 쌓인 이야기는 눈물겹고 가슴 저민다.  

그 고개를 소설가 김훈(61)과 함께 넘었다. 일찍이 자전거를 타고 문경새재를 넘었던 백발의 소설가는 볕 좋은 가을 날 두 발에 의지해 고개를 넘었다. 고개를 넘는 일은, 일종의 상징 의례다. 할 얘기가 많았다. 

손민호 기자 

소설가 김훈과 문경새재를 넘었다. 고개를 넘고서 소설가는 말했다. “고개를 넘어도 달라지는 건 없다.” 이 단순한 이치를 왜 우리는 애써 모른 척하며 살고 있는지. 

 

# 당면한 일을 당면하다

김훈은 막 원고를 탈고한 상태였다. ‘네이버’에 5개월 넘게 연재했던 장편소설 『공무도하』 집필을 마치고 겨우 한숨 돌린 참이었다. 안부 전화를 빙자한 섭외 전화는 그 틈을 노렸다. 

-원고도 마감하셨으니 바람도 쐴 겸해서 산이나 함께 가시죠. 

“신문에 나오는 일이냐?” 

-네. 신문기자는 신문에 나오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럼 안 간다.” 

-왜요? 

“산에 놀러가는 일 따위로 어찌 신문에 나올 수 있겠느냐?” 

-산에 놀러가는 일 따위를 기사로 만들어 쓰는 게 여행기자의 밥벌이입니다. 저는 당면한 일을 당면할 뿐입니다. 

“그건 내가 관여할 바가 아니다. 나는 소설가다.” 

-그럼, 산에서 소설 얘기를 하면 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좋다. 소설 얘기만 하는 조건으로 가겠다. 그래, 어디를 가려고 하느냐?” 

-어디를 가고 싶으십니까. 선배가 우리 산하를 낱낱이 알고 계신 까닭에 미리 네 가지 코스를 준비해 두었습니다. 남덕유ㆍ선자령ㆍ삼봉산ㆍ문경새재 중에서 어떤 걸 고르시겠습니까. 

“새재가 좋겠구나. 새재에 가면 나눌 얘기가 많겠구나. 그건 그렇고, 너는 왜 자꾸 나를 괴롭히느냐?” 

-선배도 20년 전엔 많은 사람을 괴롭히셨습니다. 저는 당면할 일을…. 

“됐다, 됐어. 간다고 했다.” 

김훈은 신문기자 출신 작가다. 김훈을 “선배”라 부른 이유다. 김훈은 말을 할 때에도 제 문장처럼 말을 한다. 구어체를 구사하지 않는 현대인의 말투는, 낯설면서도 묘한 매력을 불러 일으킨다. “당면한 일을 당면할 뿐이다”란 구절은 그의 소설 『남한산성』에 나오는 대사다. 김상헌의 형 김상용이 빈궁과 대군을 받들어 강화로 가면서, 다시 말해 죽으러 길을 떠나면서 남긴 말이다. 역시 김훈의 상용어구다.  

 

# 길에도 흥망성쇠가 있다 

문경새재는 본격 산행이라기보다 트래킹에 가깝다. 계곡을 타거나 능선을 오르는 코스는 문경새재에 없다. 옛날처럼 굽이굽이 고갯길도 사라졌다. 관광객을 위한 신작로, 이게 문경새재의 오늘 모습이다. 김훈이 이날 산행을 “산보”라 명명한 까닭이다.  

문경새재는 500년 이상 묵은 길이다. 조선 태종 때 처음 닦았다. 문경의 새재란 뜻으로, 새 조(鳥) 자를 써 ‘조령’으로도 불린다. 새재가 된 이유는 분명하지 않다. 새도 날아서 넘지 못하는 고개, 억새가 우거진 고개, 하늘재를 버리고 새로 닦은 고개, 하늘재와 이유릿재(이화령) 사이에 있는 고개, 서울로 가는 샛길이 된 고개 등등 여러 주장이 난무한다. 

여기서 하늘재는 새재 북쪽에 있는 고개다. 신라시대 때, 정확히 서기 156년에 뚫었다. 문헌에 기록된 한반도 최초의 도로이자 고개로, 새재가 개통하기 전 충청과 영남을 잇는 대표적인 길이었다. 하나 새재도 지금은 길로서의 수명을 다한 상태다. 일제 때 이화령에 터널이 뚫린 뒤 새재는 버림받았고, 이화령 역시 경부고속도로가 추풍령을 지나면서 한 세대 넘게 잊힌 길이 됐다. 길에도 흥망성쇠가 있는 것인지, 최근 개통한 중부내륙고속도로가 이화령을 통과하면서 이화령엔 다시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새재는 박정희 정권 때 국토 순례 길이라 명명돼 보존되다가 최근 관광 명소로 거듭나면서 반듯하고 환하게 단장됐다.  

김훈은 새재에 얽힌 사연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50만 부 이상 팔린 여행 산문집 『자전거여행』에서도 김훈은 두 개 장을 헐어 새재와 하늘재 얘기를 들려주었다. 그렇게 훤히 아는 길을 그는 왜 굳이 다시 걸으려 했을까. 문득 그의 소설 첫 머리가 떠오른다. 김훈은 4월 27일 『공무도하』 연재를 시작하며 아래와 같이 적었다. 

“제목으로 정한 ‘공무도하’는 옛 고조선 나루터에서 벌어진 익사사건이다. 봉두난발의 백수광부는 걸어서 강을 건너려다 물에 빠져 죽었고 나루터 사공의 아내 여옥이 그 미치광이의 죽음을 울면서 노래했다. … 백수광부는 강을 건너서 어디로 가려던 것이었을까. 백수광부의 시체는 하류로 떠내려갔고, 그의 혼백은 기어이 강을 건너갔을 테지만, 나의 글은 강의 저편으로 건너가지 못하고 강의 이쪽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김훈에 따르면 백수광부는 넘지 못할 경계를 넘다 목숨을 잃었다. 강을 건너는 일과 고개를 넘는 일은, 어딘지 닮은 구석이 있다. 

  

* 퍼온 글이라 다 게시하지 않았습니다. 계속 읽으실 분들은 아래 글을 클릭하시기 바랍니다.

중앙일보 기사 바로 가기 

손민호 기자 블로그 바로 가기 

 

*덧붙임 

1. 기사의 하이라이트 부분은 원 기사에는 없으나, 저작자의 의도를 존중하는 뜻에서 블로그에 있는 표기를 따랐습니다. 

2.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는 연금술사의 말을 믿어보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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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후기] 작가 김훈과 함께 걸은 문경새재
    from 이번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 2009-12-07 11:49 
       2009년 12월 3일. 오전 6시 30분 알람 소리에 깨어 일어났다. 8시 30분까지 종각에 가려면 서둘러야 한다. 어제 밤에 모든 것을 준비했으나, 항상 아침이면 바쁘기 마련이다. 늦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이 더 일찍 일어나서 준비하는 수밖에.     8시 10분. 조금 일찍 한국관광공사앞에 도착했다. 이름을 확인하고 버스에 올라 자리에 앉자 이제야 실감이 난다. 내가 정말 가기는 가는구나.&#
 
 
톨트 2009-11-25 15: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어이 가실 듯한 예감이 드는군요^^

Tomek 2009-11-25 18:32   좋아요 0 | URL
그렇게만 된다면야 더할 나위 없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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