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디츠 - 나치 포로수용소를 뒤흔든 집요한 탈출과 생존의 기록
벤 매킨타이어 지음, 김승욱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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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 매킨타이어는 타임스의 칼럼니스트이자 기자로, 실제 역사 속 인물과 사건을 소설처럼 생생하게 복원하는 데 탁월한 작가다. ‘나치 포로수용소’라 하여 처음에는 유대인들의 비극을 떠올리기 쉽지만, 이 책이 그려내는 세계는 전쟁 중 독일의 고성(古城) 콜디츠로 여러 나라의 연합군 장교들이 갇혀 있던 장소를 배경으로 한다. 매킨타이어는 이 폐쇄된 공간 속에서 벌어진 인간의 심리전과 자존심의 투쟁을 세밀하게 기록했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두 인물이 있다. 탈출을 위해 끊임없이 전략을 세우는 영국 장교 팻 리드, 그리고 그를 감시하며 질서를 유지하려 한 독일 장교 라인홀트 에거스다. 두 사람은 적이지만 동시에 서로를 이해할 수밖에 없는 존재다. 매킨타이어는 이들을 단순히 영웅과 악당으로 나누지 않고, 전쟁 속에서도 인간성과 규율을 놓지 않으려는 두 정신의 대립으로 그린다.

콜디츠의 장교들은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탈출을 꿈꾸며 연극을 만들고, 악기를 조립하고, 날개를 달아 하늘을 나는 시도를 한다. 절망 속에서도 인간은 여전히 창조하고 웃을 수 있다는 사실이 이 책의 가장 인상적인 대목이다. 매킨타이어는 그들의 행동을 영웅담으로 포장하지 않고, 전쟁이 인간에게서 빼앗지 못한 존엄의 증거로 기록한다.
그들은 하나 하나 특징과 개성이 있는 인간이었다.
그들에게는 국제법이 있었고 나라가 있었고, 신분이 있었다.
최소한의 버팀목을 가지고 그들의 삶은 작은 세계를 이루어간다.

책의 말미에 등장하는 HASAG 헝가리 유대인 노동수용소의 짧은 언급은 이 모든 이야기의 무게를 단숨에 바꿔 놓는다. 콜디츠의 장교들이 인간의 존엄을 위태하게 유지하며 피말리는 4년을 버텼던 반면, 같은 동네의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HASAG 수용소의 유대인들은 인간성마저 존중받지못하고 도구처럼 취급된다. 우리가 흔히 들어아는 포로수용소의 모습이다. 그들이 숨쉴 수 있는 기대수명은 고작 3.5개월이었다. 같은 마을, 같은 시대의 두 수용소가 보여주는 이 극단적인 대비는 전쟁의 가장 잔혹한 아이러니다. 콜디츠의 포로들은 자유를 잃었지만 인간성을 지키려 했고, HASAG의 유대인들은 인간성을 빼앗긴 채 생명을 잃었다.

『콜디츠』는 총탄이 아닌 기억으로 전쟁을 말한다. 기자의 냉철함과 문학적 감수성이 맞닿은 이 논픽션은, 자유를 향한 인간의 의지와 존엄을 정교하게 복원해낸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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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다 하다 앤솔러지 1
김유담 외 지음 / 열린책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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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다는 행위는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방식의 은유이기도 하다. 김유담, 성해나, 이주혜, 임선우, 임현 다섯 명의 작가가 각자의 시선으로 ‘걷다’를 풀어냈다. 앤솔러지라는 형식 덕분에 한 주제 아래에서도 각기 다른 톤과 결을 가진 단편들을 마주할 수 있어, 읽는 즐거움이 배가된다.

김유담의 단편은 시간과 감정의 틈을 걷는 행위에 겹쳐 놓으며, 우리가 무심히 지나쳤던 결들을 포착한다. 걸음마다 남는 흔적은 단순한 발자국이 아니라, 살아온 시간이 남긴 무늬처럼 느껴진다. 성해나는 뒤로 걷는 회상을 통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익숙한 풍경 속 걷는 행위를 회상적 제스처로 바꾸어, 우리가 발걸음을 따라 과거를 더듬게 만든다.

이주혜의 글에서는 사람과의 걸음이 서로에게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은유적인 표현이 돋보인다. 함께하는 삶에서 누군가는 서로를 축으로 걷게 된다. 그 리듬감이 서로의 친밀감이 된다. 임선우의 글에서는 걷기는 치유와 자기 회복의 시간이 된다. 반면 임현의 글은 도시와 사회를 배경으로, 걷기는 현실과 연결된다. 도시를 가로지르는 발걸음이 불안과 연대를 교차하는 산책이 된다.

개성 있는 작가들이 한 주제로 모여 쓴 글들은, 아직 여름 같은 가을밤에도 술술 읽혔다. 어떤 걸음은 내 바로 곁에, 어떤 걸음은 타인의 생경함으로, 또 어떤 걸음은 자연스레 응원하게 되는 걸음이 되었다. 마지막 임현 작가의 <산책>은 특히 인상적이다. 흩어질산을 뜻하는 산책처럼 삶은 서로 흩어졌다가 스쳐 지나가게 되는 일상의 흐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들게 했다.

『걷다』를 읽는 경험은 다섯 개의 서로 다른 길을 걷는 것과 닮았다. 부드럽게 이어지는 길도, 비포장도로처럼 거칠고 불편한 길도 있지만, 이 길들이 모여 하나의 앤솔러지를 이루듯 우리의 삶 역시 다양한 걸음이 모여 완성된다. 단편마다 마음에 와닿는 정도는 다르더라도, 바로 그 불균질성이 이 책의 매력이다. 작가는 평탄한 길보다는 다양한 굴곡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고, 우리는 그 굴곡을 따라가며 자신의 걸음을 돌아보게 된다.

다섯 작가의 각기 다른 글 속에서 우리는 자신만의 발걸음을 떠올리고, 오늘도 길 위에서, 골목을 지나며, 삶의 흔적을 남긴다. 걷기라는 단순한 행위가 이렇게 깊은 성찰과 감각적 체험으로 확장될 수 있다는 점에서, 『걷다』는 하다 시리즈의 첫 발걸음으로서 충분한 의미와 가능성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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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 오브 어스
줄리 클라크 지음, 김지선 옮김 / 밝은세상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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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 스릴러라는 장르적 재미와 함께, 권력과 위선의 구조를 교묘하게 드러내는 소설이다.
작품의 중심에는 두 명의 여성이 있다. 바로 사기꾼 메그와 그녀를 추적하는 기자 출신의 캣이다. 처음에는 단순한 범죄자와 피해자의 관계처럼 보이지만,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그들의 삶이 교차하며 새로운 연대를 만들어내는 과정이 펼쳐진다.

메그는 단순한 범죄자가 아니다. 그녀는 부와 권력을 가진 남성들을 주로 타깃으로 삼아 그들의 약점을 파고든다. 겉보기에는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만 위선과 부정으로 쌓아올린 삶을 산 사람들, 타인의 고통을 이용해 부를 쌓아온 이들을 교묘히 속이고 무너뜨리는 것이 메그의 방식이다. 그렇기에 나는 그녀를 단순히 ‘사기꾼’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불의에 맞서는 복수자, 사회의 그늘을 드러내는 정의로운 존재로 인식하게 되었다.

보통 ‘거짓말’은 부정적인 의미로 여겨지지만, 메그의 거짓말은 진실을 드러내는 도구가 된다. 그녀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타인의 위선을 무너뜨리기 위해 거짓을 선택한다.
책을 읽는 내내 메그가 어떤 방식으로 새로운 타깃을 무너뜨릴지 기대하게 되고, 그녀가 승리할 때 느껴지는 통쾌함은 강렬하다.

또 다른 축인 캣의 시선은 이야기에 긴장감을 더한다. 과거 메그에게 피해를 입었다고 믿는 그녀는 오랜 시간 동안 메그를 추적하며 복수를 꿈꾼다. 그러나 가까이서 메그를 지켜보며 점차 단순히 ‘악인’으로만 규정할 수 없는 그녀의 삶을 알게 되고, 결국에는 서로의 상처와 목적을 이해하게 된다. “거짓말은 반드시 나쁜 것인가? 누구를 속이는가보다, 왜 속이는가가 더 중요한 것은 아닐까?”

작품의 결말에서 보여지는 두 여성의 관계 변화는 특히 인상적이다. 처음에는 철저히 적대적인 위치에 있던 두 사람이 서로의 고통을 이해하고 연대하는 모습은, 단순히 개인적 복수를 넘어서 사회적 의미를 확장시킨다.

영어원제 그대로 거짓말을 다루는 이야기지만, 사실은 ‘진실’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권력자들의 위선을 드러내고, 그들의 잘못이 폭로되어 무너지는 과정을 통한 묘한 해방감이 있다. 동시에 거짓말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때로는 거짓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진실을 드러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폭력이나 직접적인 파괴가 아니라, 권력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방식으로 그들의 기반을 무너뜨리는 과정이 훨씬 더 현실적이고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이는 메그의 거짓말을 단순한 범죄가 아니라, 세상을 바로잡는 하나의 도구처럼 바라보게 만든다.

읽는 동안 줄곧 긴장감이 유지되면서도, 마지막에는 깊은 통쾌함이 느껴졌다. 무엇보다 메그라는 캐릭터가 가진 힘과 매력이 오랫동안 잊히지 않을 것 같다. 그녀는 단순한 사기꾼이 아니라,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복수자이자 생존자였다. 그렇기에 책을 덮는 순간에도 나는 여전히 그녀를 응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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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미와 가나코
오쿠다 히데오 지음, 김해용 옮김 / 예담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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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은 두 여성, 나오미와 가나코다. 가나코는 폭력적인 남편 밑에서 매일 공포 속에 살아간다. 그녀의 멍든 몸과 무너져가는 자존감은 단순한 개인 문제가 아니라, 여전히 폭력으로부터 여성을 지켜내지 못하는 사회 제도의 무력함을 고발한다. 나오미는 그런 친구를 바라보다가 결국 "벗어나는 길은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두 사람은 공모하여 남편을 제거하려는 계획을 세운다. 소설은 바로 이 사건의 준비, 실행, 그리고 그 이후를 두 여성의 시선으로 번갈아 보여준다.

흥미로운 점은 같은 사건을 바라보는 두 사람의 감정이 극명하게 갈라진다는 것이다. 나오미에게서 우리는 일종의 해방감을 느낀다. 불합리와 폭력에 맞서 싸운다는 자부심, 그리고 자유를 향한 주체적 선택이 그녀의 시선을 통해 전달된다. 반면 가나코의 세계는 불안으로 가득 차 있다. 그녀는 피해자였지만 동시에 공범이 되었고, 그 사실은 끊임없는 죄책감과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독자는 나오미와 가나코, 즉 해방과 회피라는 두 감정 사이를 오가며 작품 속으로 끌려 들어간다.

읽는내내 응원하는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이 작품을 10년 전 한국 사회의 분위기 속에서 읽었다면, 나오미와 가나코의 선택은 다소 극단적이고 소설적인 장치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수많은 가정폭력 사건이 뉴스에 등장하고, 법과 제도가 존재함에도 피해자가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현실을 지켜보면서, 두 여인의 결단은 더 이상 비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제도가 지켜주지 못한다면 결국 스스로 지킬 수밖에 없지않은가의 메시지가 너무도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나오미와 가나코》는 단순한 범죄소설을 넘어, 우리 사회의 민낯을 고발하는 거울처럼 읽힌다.

책을 덮고 나면 묘한 감정이 남는다. 나오미의 서사에서는 분명 카타르시스가 있었지만, 가나코의 서사에서는 손끝이 차가워지는 불안이 몰려왔다. 해방이자 동시에 회피, 자유이자 또 다른 속박. 나는 책을 읽으며 나는 나오미면서 가나코라는 생각을 했다.

《나오미와 가나코》는 여성 연대의 힘을 보여주면서도, 그 연대가 결코 가볍지 않은 대가를 수반한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그래서 이 작품은 무겁지만 동시에 지금의 현실을 반영하는 거울같은 역활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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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순간 여름 같은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45
조지 오웰 지음, 심지아 옮김 / 휴머니스트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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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1984》와 《동물농장》으로 우리에게 알려진 조지 오웰은 흔히 차갑고 냉정한 정치 작가로만 기억되었던 사람이었다.
오늘 그의 시와 에세이를 함께 읽어 그 이미지 뒤에 숨어 있던 또 다른 여러 얼굴을 만나게 되었다.
일상을 다룬「한순간 여름 같은」 시에서는 삶의 찰나를 붙잡고자 하는 감성을 가진 서정적인 세계를 그리워하고 기록하고 싶었던 작가였고,
동시에 「가난한 이들은 어떻게 죽는가」라는 에세이는에서는 속속들이 상황을 묘사하고 기록하고 비판하고 조롱한다. 예리한 감성을 지닌 글쟁이에게 전쟁과 가난의 냉혹한 현실은 얼마나 선명하고 또 잔인하게 다가왔을지.
병원에서 방치된 가난한 이들의 죽음을 묘사하는 대목은 그의 눈이 단지 정치적 이념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을 향해 있었음을 증명하는듯 했다.
시와 에세이는 서로 다른 장르이면서도 함께 읽을 때 가상의 세계를 다룬 기타 소설과는 달리 한 개인의 입체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그는 날카로운 풍자와 비판 속에서도 유머와 위트를 잃지 않았고, 현실의 어둠 속에서도 작은 감성을 놓치지 않았다.
새로운 오웰의 모습을 만나게 되어 읽는 내내 반가웠다.
그의 내면을 이해하면서 그를 단순한 정치 작가가 아니라 시대를 살아낸 한 인간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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