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 : 사랑의 시작을 위한 서른아홉 개의 판타지 - 이제하 판타스틱 미니픽션집
이제하 지음 / 달봄 / 2012년 10월
평점 :
품절


"코"라는 이 책의 느낌은 교과서 국어책에 나오던 우리나라의 느낌의 듬뿍 담긴 현대소설을 읽는 기분이었다.

쉬운 일본소설이나 추리소설에 익숙해져 있는 나에겐 조금 읽기 어려운 류의 소설이었지만, 노골적이지는 않지만 뜻을 품고, 인간의 솔직한 감성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문장 속에서 이런 느낌의 소설도 있었지..하고 나름 재미있게 읽었다.

소설 속 이야기는 사랑에 관한 것 뿐 아니라 여러가지 소재에 대해 약 40개의 단편소설로 이루어진 이제하의 소설묶음집이다. 작가인 이제하라는 분은 화가이며 가수이며 시인 소설가. 다재다능한 예술가였는데, 책 속에 그의 그림도 중간중간 삽화로 들어가 있어서 다양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마술사의 노래" 나 "이웃" 같은 짧은 단편이 마음에 드는 이야기였는데, 짧으면서 기분은 호쾌하게 만들어주어 기분이 좋아졌다. 환상적인 이야기와 상황 속에서 그것을 즐기지 못하고 바로 끝내버리는 못난 위인이라든가. 찌질의 전형인 듯 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그 찌질의 전형인 듯한 행동의 반복 속에서 얻어진 행운과 행복이라든가.

"돌을 나르는 사람"에서 보여주는 세상을 풍자하는 듯한 이야기는 긴 여운이 남아 오래도록 생각하게 되었다.

삶의 연속성 속에서 벌어지는 기쁨과 슬픔들을 다양하게 보여주며 삶을 사는 올바른 방식이 따로 있는 것을 아님을 알려주기도 한다.

이야기 속의 사랑은 떨떠름 하기도 사랑같아 보이지 않기도 하다. 아름다운 사랑을 말하는 대신 삶 속에 묵혀있는 사람들의 성격만큼 다양한 사랑의 성격을 보여주는 듯 하다. 거칠고 돌과 같은 사랑. 시크하고 매력있는 사랑. 그리고 가장 많은 사랑의 느낌은 무심하고 자신과는 상관없는 인간사에 대한 상관없음의 사랑. 이게 무슨 느낌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주인공의 행동은 무심하고 누군가의 사랑에 자신의 사랑에 관심없는 듯한 행동으로 사랑을 표현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제각각 이야기마다 사람마다 다른 사랑을 보여주고 있었는데, 모든 사랑을 내가 이해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내가 좋았던 건 평소에 별볼일 없이 지나치는 일들을 소재로 꿰뚫는 듯한 눈으로 그 속에 숨겨진 보물이 있는 듯, 그 속에서 뿜어져 나오던 유쾌한 이야기들이었다.

많은 이야기들 속에서 품은 속뜻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시 속에 단어들 속에서 숨은 뜻이 있는 것처럼.

어떤 이야기 속에서는 저절로 그 속뜻이 읽혀져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지만 전혀 알 수 없는 이야기들도 있었다. 시간을 들여 읽어야 하는 소설인지도 모르겠다.

 

학창시절 교과서에서 읽던 우리나라 소설, 특유의 그런 냄새가 있다. 난 그런 냄새가 나서 좋았던 책이었다.

작가의 특유의 말투와 풍자가 있고, 무심한 듯, 감동적인 듯, 색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인생사에 대한 고찰과 고민이 여러 이야기 속에서 아른아른 새겨져 있다. 어렵다면 어려워 멀리할 수도 있을 소설이지만, 이런 우리나라 소설이 많은 사랑을 받아 우리나라도 소설강국으로 우리나라만의 색깔을 가지고 세계에 우리나라 소설이 알려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는 보다 관심이 갔던 주제, 골몰했던 메모와 노트들에서 뽑은 주제들로 이야기를 썼다고 한다.

작가가 평상시 어떤 식으로 세심하고 섬세하게 삶과 감정을 관찰하고 연구해왔는지 글을 읽어보면 알 수 있을 듯 하다. 현실과 동떨어진 환상적인 이야기들도 분명 있지만, 그것이 환상적이라는 표현대신 너무도 현실적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그 속에서 현실 속 삶을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마술적 리얼리즘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소설 속에 묻혀서 삽화의 어지러움과 노래와 함께 한다면 이 책 속, 특유의 그 느낌을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누군가 썼던 추천평과 같은 느낌이다. 그가 안내하는 방향으로 찾아들어가다가도 어느새 길을 잃고 마는 것이다.

이런 류의 이야기인 듯 하면 중반부터 발견되어진 어떤 것에 의해 이야기가 끝나버린다. 좀체 종잡을 수 없는 이야기 속에서 헤매다 보면 이야기는 어느새 막이 내리고 있다.

 

 

 

이 빌어먹을 서울이란 도시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꿈도

친구 사이의 찐득한 우정 같은 것도 용납을 하지 않는다. -18p

 

그가 타고 내린다는 사실에 조차 무심하게 되어버렸다. 

사람을 똑바로 볼 수 있는 상태라는 것은

아마 이런 무연한 심정을 두고 이르는 말인 것이리라. -11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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