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스주의 역사 강의 - 유토피아 사회주의에서 아시아 공산주의까지 새움 총서 1
한형식 지음 / 그린비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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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자신과그를넘어펼쳐진맑스주의사상과운동을'알아먹을수있게'하지만'깊이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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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용 - 다문화제국의 새로운 통치전략 카이로스총서 16
웬디 브라운 지음, 이승철 옮김 / 갈무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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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현대정치철학서들에주변적으로만언급되어왔던관용비판을메인주제로삼아들여파는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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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유럽의 시민들? - 세계화와 민주주의의 재발명
에티엔 발리바르 지음, 진태원 옮김 / 후마니타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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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인이유럽의문제를다루고자쓴책그대로배끼지만않는다면우리의문제역시다룰수있을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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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이렇게 조용히 - 88만원세대 새판짜기
우석훈 지음 / 레디앙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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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알바노조같은 생각은 중요하지만 그가 '꿈꾸는 것' 이상을 할 수 있을진 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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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한 스승 - 지적 해방에 대한 다섯 가지 교훈
자크 랑시에르 지음, 양창렬 옮김 / 궁리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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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삶이 일상적으로 듣는 주변에서의 질문은 대강 크게 2가지이다. 그걸로만은 심심하지 않느냐는 질문과 나는 너처럼 공부할 재목은 아닌가보다하는 질문. 앞 질문은 약간의 우려와 무시가 섞여 있고, 뒷 질문은 약간의 경외(?)와 자괴감이 섞여 있다.

 누군가는 첫 반응이 싫고 뒷 반응이 좋지 않느냐라고 말할 법 하지만, 나로서는 두 반응 모두 내키지 않는다고 말해야 겠다. 왜냐하면 내려 보는 것이나 올려 보는 것이나 어쨌든 내가 그 자신이 같은 지평에 있다는 것을 부정하는 논리로서 사용되기 떄문이다. '어쨌건 나는 너와 다르다. 때문에 나는 네가 하고 있는 걸 힘들여 할 필요도 없고, 네가 그런 것을 나에게 강제할 권리도 없다. 내가 얼마나 멍청한지 나를 한번 쳐다보라!' 이 절박한 겸손의 제스쳐에 대해 랑시에르는 다음과 같은 말을 던진다.

 

 "그러나 게으름 자체는 살의 무감각 상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역량을 얕보는 정신의 행위다. 이성적 소통은 자기에 대한 존중과 타인에 대한 존중 사이의 평등에 바탕을 둔다. 소통은 이 평등을 계속 입증하려고 애쓴다. 지능을 물질의 무게로 떨어뜨리는 게으름의 원리는 무시다. 이 무시는 겸손을 자처하려 한다. 배워야 한다는 과제를 모면하고 싶어하는 무지한 자는 나는 할 수 없어요라고 말한다. 우리는 이 겸손이 무엇을 뜻하는지 경험으로 안다. 자기 무시는 항상 타인에 대한 무시이기도 하다. 나는 할 수 없어요라고 말하는 학생은 자신이 한 즉흥작을 짝꿍의 평가에 맡기고 싶지 않은 것이다. 상대가 말한다. 나는 당신의 방법이 이해가 안 돼요. 나는 실력이 없어요. 나는 그것에 대해 전혀 모르겠어요. 당신은 재빨리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하는지 알아듣는다. "그것은 상식이 아니에요. 왜냐하면 나는 그것이 이해가 안 되니까요. 나 같은 인간이 말이지요!" 그것은 모든 연령대와 모든 사회층에 마찬가지다. "자연의 총애를 받지 못했다고 자처하는 이 존재들은 그들이 싫어하는 훈련에서 면제받기 위한 구실을 바랄 뿐이다." -자크 랑시에르, 『무지한 스승』, 양창렬 옮김, 154

 

 여기서 알 수 있듯이, 겸손은 게으름과 가장 큰 '오만'에 불과하다. 그들은 자신의 지능을 해방시킬 의무에서 해방되기 위해 스스로를 평가절하한다. 하지만 겸손이 오만이라고 한들 그가 멍청하다는 사실 자체는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 타인에 대한 무시를 교활한 방식으로 했을지언정 그는 스스로가 인정하듯이 멍청하지 않은가? 랑시에르는 이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당신은 그들에게 설득당했는가? 잠시만 기다려보라. 그들이 말하게 내버려두라. 끝까지 들어보라. 스스로 시적인 정신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하는 이 겸손한 인물이 청중의 반감을 사지 않기 위해 쏟아내는 연사의 말을 마친 뒤, 그가 제 것이라고 주장하는 판단이 얼마나 견고한지 당신은 들리는가? 그는 너무나도 뛰어난 통찰력을 갖지 않았는가! 아무 것도 그를 피할 수 없다." -자크 랑시에르, 『무지한 스승』, 양창렬 옮김, 155쪽

 

 그가 실제로 멍청하다면 그는 자신이 멍청한지 아닌지 알 수도 없을 것이다. 만약 어떤 이가 스스로를 '멍청하다'고 한다면 그는 자신을 '멍청하다'고 판단할 능력, 소피스트들은 가지지 못했으나 소크라테스는 가지고 있었던 그 능력, 그로 하여금 역설적으로 다른 소피스트들보다 지혜로움을 입증해 주었던 그러한 '능력'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스스로를 멍청하다고 말하는 이는 멍청하지 않다. 여기서 랑시에르가 말하는 '오만'이 정확히 누구에 대한 오만인지가 분명해진다. 그것은 타인에 대한 오만인 동시에, 다른 누구도 아닌 멍청하다고 말하는 자 자신의 충분한 능력을 부인하는 오만인 것이다. 그에게 멍청해질 자유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스스로를 아무리 비하하더라도 당신은 당신의 그 지혜로부터 벗어날 권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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