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못 하고 싶은 아이가 있을까. 없다고 생각한다.
어쩌다 보니 공부 못 하는 아이가 되어버린 것이지 처음부터 공부 못 하고 싶은 아이가 어디 있겠는가.
우연히 그제, 채널을 돌리다 ebs에서 5부작으로 하는 <공부 못 하는 아이>를 시청하게 되었다.
소위 공부와 담 쌓고 지내는 아이와 가정을 취재하여 6개월간 프로젝트를 실시한 다큐였다.
해당 아이들은 하나같이 공부를 못 한다.
공부 못 하는 아이를 바라보며 잔소리하는 부모의 모습에서 내 모습을 발견하고 얼굴이 달아올랐다.
나도 저랬었지. 아이가 얼마나 상처 받았을까 하는 반성이 일어난다.
아이들은 자신에게 기대를 거는 부모님이 상처받을까 봐, 또는 부모가 무서워서 성적표를 조작하기도 하고,
반대로 공부하라 잔소리하는 부모에게 거친 반항을 하는 등 살아남기 위한 자신만의 방어 기제를 내세운다.
가정의 평화는 공부란 놈 때문에 깨어지고 언제나 고성이 오가고 비교와 비난만 난무하다.
그 속에서 공부 못 하는 아이라는 이유 때문에 점점 자존감을 잃어가는 아이들.
이 아이들의 상한 마음을 어떻게 치유할까 그 뒷이야기가 궁금했다.
마음이 다친 상태에서는 아무리 공부를 해도 효과가 없을 텐데 말이다.
어제 2부를 하길래 다른 일 하고 있던 수퍼남매를 황급히 불러 같이 시청하였다.
마음이 상한 아이의 감정을 먼저 치유해 준 다음에야
공부를 집중하여 할 수 있다는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일을 실험을 통해 확인시켜 줬다.
초4 아이들이 실험군이다.
성적이 비슷한 아이들을 두 그룹으로 나눈다.
1그룹에게는 시험 전, 자신을 화나게 한 5가지 일을 학습지에 적게 하였다.
그리고나서 선생님이 무서운 표정으로 " 여기 80 문제 모두 꼼짝 하지 말고 다 풀어" 라고 지시한 후 교실을 나갔다.
2그룹에게는 시험 전, 자신을 기쁘게 한 5가지 일을 학습지에 적게 하였다.
그리고나서 선생님이 온화한 표정으로 " 너희가 80 문제 중에 풀고 싶은 것만 선택해서 풀어" 라고 지시한 후 교실을 나갔다.
시험 결과는 놀라웠다.
2그룹의 평균 성적이 5점이나 높았다. 왜 이런 차이가 나왔을까.
부정적 추억을 떠올리고, 꼼짝 하지 말고 다 풀어라는 강압적인 지시를 받은 1그룹의 아이들은
시험 보는 내내 집중 하지 못 했고, 시험이 다 끝나고나서 지루했다는 소감과 함께 문제를 기억하는 아이가 거의 없었다.
반면 2그룹의 아이들은 애초에 자신들이 풀겠다고 했던 문항 수보다 더 많이 풀었고(80문제를 다 풀었다.)
시험 풀이가 재밌었다고 하였으며, 문제 자체를 기억하고 있었다.
1그룹에서 보는 것처럼 교사나 부모의 억압, 강요 하에 공부를 하는 아이는
부정적인 감정이 먼저 생성된 상태에서 공부를 하기 때문에 역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즉 감정 뇌의 부정적 영향으로 주변 뇌까지 활성화되지 못한 것이다.
2그룹, 자율이 주어진 아이는 긍정적인 사고로 인해 뇌가 활성화되어
문제를 쉽게 이해하고 더 잘 풀 수 있었다는 것이다.
공부를 잘하려면 먼저 마음부터 기쁘고 행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공부 못 한다고 옆에서 윽박 지르고, 이런 일이 반복되어 부정적 자존감이 형성되면
아이의 뇌는 더 이상 활성화되지 못해 공부를 잘할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1부에서 서로 보기만 하면 으르렁대는 모자가 있었다. 상담자로부터 엄마가 먼저 사과의 편지를 쓰라고 했었나 보다.
엄마는 그 동안 공부 못 하는 아들에게 비난을 퍼붓던 것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하는 편지를 썼다.
하지만 아들은 그 편지조차 받으려 하지 않았다.
끝까지 웃는 얼굴로 아들에게 편지를 꽂아주는 엄마를 보며
마지못해 편지를 받아들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오는 아들이 슬쩍 웃었다.
아들의 웃는 모습을 오랜만에 봤다는 엄마의 말에 울컥해진다. 엄마 또한 오랜 만에 웃어봤단다.
엄마가 웃으니 아들이 웃는다.
그렇다.
부모와 교사가 먼저 아이에게 웃어주는 것, 넌 할 수 있어 라고 진심으로 말해 주는 것, 그 너머 아이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믿어주는 것이 가장 필요하다는 말 명심해야겠다.
3부에서는 공부를 못 했지만 성공한 사례를 보여준다고 한다.
공부 못 하는 아이는 죄인 취급 당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현주소이다.
"행복은 성적 순이 아니잖아요" 이 진리를 너무 자주 망각하고 사는 것은 아닌지 반성한다.
오늘 밤, 9시 50분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