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놀이 - 공지영의 첫 르포르타주, 쌍용자동차 이야기
공지영 지음 / 휴머니스트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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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해 전 아이들과 의자놀이를 한 적이 있습니다. 의자를 사람 수보다 적게 준비한 후 노래를 부르면서 의자 주변을 빙글빙글  돕니다. 노래가 끝나갈 때 의자를 차지하고 앉으면 사는 것이고 의자에 앉지 못하면 아웃이 되는 간단하면서도 즐거운 놀이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런데 아이들과 함께 할 때는 아주 재밌었던 이 의자놀이가 실제 삶에서는 아주 잔인할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을 보면서 깨달았습니다. 내가 몸담고 있는 직장에서 나의 의자를 놓고 의자놀이를 한다면 당신은 어떤 마음으로 하실 겁니까? 내가 앉을 의자가 없으면 ' 어? 의자가 없네. 할 수 없지. 그럼 나가야지' 이렇게 순수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도가니>로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던 공지영 작가님이 이번에는 쌍용자동차이야기를 가지고 책을 쓰셨습니다. 나처럼 쌍용자동차 이야기를 전혀 모르시는 분이 있다면 꼭 이 책을 읽어 보시길 바랍니다. 솔직히 난 <도가니>를 읽지 않았습니다. 영화도 보지 않았습니다. 그 책을 읽고 받을 충격이 너무 두려워서, 진실과 마주 하는 게 너무 힘들어서 아직까지 회피하고 있습니다. 그건 1980년 광주 민주화 관련 사진들을 보지 않은 이유와 같습니다. 잔인한 영화를 잘 못 보는 저로서는 실제 일어난 그 일들을 내 눈으로 볼 자신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 책도 읽고 싶지 않았습니다. 피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내 양심이 이 책을 읽어야 한다고 더는 피해서는 안 된다고 자꾸 속삭이는 바람에 이 책을 힙겹게 읽어냈습니다.  남들은 많이 울었다고-심지어 남자분들도- 하는데 눈물이 나지 않았습니다. 너무 기가 막히면 눈물이 안 나는 걸까요? 1980년도 아니고, 2012년에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는 것에 대해서 믿어지지가 않았고, 그 일이 일어난 지 3년이 지난 오늘에서야 겨우 알게 된 제 자신이 너무 부끄럽고 그분들에게 죄송해서 울 수가 없었습니다. 거짓말 같은 이야기가 실화라서 오히려 눈물이 안 났습니다.

 

' 나 하나가 리뷰를 쓴다고 세상이 뭐가 달라질까?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드는 거 아니야?'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공지영 작가가 그들을, 그들의 이야기를 피하고 싶다고 해서 피할 수 없었던 것처럼 저 또한  주변에 경찰이 많이 있다고 해서 쌍차 노동자의 안타까운 이야기를 안 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때 진압을 했던 경찰, 용역들, 구사대들을 비난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전 그 때 진압을 했던 특공대, 경찰대, 구사대들도 이 일의 또 다른 피해자라고 생각합니다. 광주 민주화 운동이 그랬고, 베트남 전쟁이 그랬고, 모든 전쟁이 다 그렇지 않나요?  결국은 폭력을 가한 사람도 폭행을 당한 사람도 상처를 받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용기 내어, 내 양심에 이끌려 리뷰를 올립니다. 혹시라도 제 서재를 방문하는 100여명의 분들이라도 이 책에 대해서 알고, 그들이 현재 당하는 고통에 대해 아시길 바라는 마음에서입니다.

 

 

공작가님의 생각이 어쩜 저랑 이렇게 비슷한지 읽으면서 가슴이 저릿저릿했습니다. 또한 저의 무지가 정말 부끄러웠습니다.

22명의 사람들은 그것조차 남기지 않았다. 이것은 아마도 세계 정신의학회에 보고될 일이 아닐까 싶다. 하나같이 아무런 메시지도 남기지 않은 그들은 어쩌면 세상과의 소통에 완전히 절망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이 아주 절망하기 전에 실은 메시지를 보냈을 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살고 싶다고, 살려달라고 외쳤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3년 동안 하루에 "7분"씩 100번이나 비명을 지르고 살려달라고 외쳐왔는지도 모른다. 그 사람들을 우리는 무심하고 태연하게 스쳐 지나가 버린 것은 아닐까. 우리는 대체 왜 죽음에 이토록 무감각해진 것일까? (본문 37쪽)

나도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쌍용자동차 정리 해고와 22명의 죽음에 대해 얼핏 들어보기만 했지 자세히 알지 못했습니다. 정말 무지했습니다.트위터를 통해 작가님이 이 이야기를 집필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들의 이야기를 찾아 보지 않았습니다. 매일 대한문 앞에서 그들의 농성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모른 척 했습니다.  책을 다 읽고나서야 동영상을 찾아 그 날의 폭력진압 장면도 봤습니다. 진짜 공지영 작가님 말처럼 1980년 5월의 광주를 연상시키는 끔찍한 장면들이었습니다. 하루 아침에 자행된 정리 해고와 무차비한 폭력에 노출되었던 노동자들은 그 후 3년 동안 지옥 같은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22명의 안타까운 희생자가 나올 때까지 저는 그들의 고통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저도 공작가님처럼

나는 대한민국의 평균 여성보다, 아니 평균 사람들보다 노동에 대해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고 나도, 그리고 남도 그렇게 생각하는 부류의 사람이었다. 그러나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그 노동자들, 어제도 죽고, 그제도 죽고, 오늘도 또 죽어가고 있는 그들에 대해서 말이다. 나 역시 죽음에 대해, 고통에 대해 이토록 무디어지고 있었단 말이지. 갑자기 겁이 났다.

(본문 40쪽) 

이런 똑같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미안했습니다. 부끄러웠습니다. 분노가 일었습니다. 절망했습니다.  하지만 절망의 끝에서 용기를 내어 ' 나 같이 그들의 죽음에 대해 모르는 이들에게 알려야겠다'는 용기를 내어 봅니다. ' 더 이상의 죽음은 막아야겠다. 미력하게나마 도와야겠다' 는 마음으로 이 리뷰를 씁니다. 리뷰를 쓰면서 손이 바르르 떨려 오타가 자꾸 납니다. 너무 분해서, 속이 타서, 아까는 나오지 않던 눈물이 이렇게 한 글자 한 글자를 치니 눈물이 주루룩 흐릅니다. 조금 전 내가 봤던 동영상이 거짓말 같은 이야기가 아니라, 전쟁 영화가 아니라 실제 진압 장면이라는 데서 저 마음 밑바닥에서 분노가 입니다. 이렇게 보는 사람도 손이 부들부들 떨리는데 직접 그 가혹한 폭력을 당한 분들은 어떨까요? 아마 평생 동안 악몽에 시달릴 것 같습니다. 저들은 10년을 묵혀둔 최루액을 헬기로 뿌리고, 테이저건을 쏘고, 이상한 다목적살포기를 날리며 그렇게 인간 사냥을 하였습니다. 심지어는 도망가는 노동자를 특공대 3-4명이 잡아 아예 헬멧을 벗기고 무자비하게 때리는 장면도 사진에 찍혔습니다. 거짓말 같은 사실입니다. 

 

2009년 쌍용자동차는 전체 노동자의 37%인 2646명을 정리해고 시켰다죠. 혹시 내가 잘못 본 게 아닌가 싶어 몇 번이고 봤습니다. 맞습니다. 260명도 아닌 2646명이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었습니다. 평택에서 그래도 중산층에 속하며 평벙하게 살았던 그들이 하루아침에 십 수년을 몸 담고 있던 그 직장에서 쫓겨납니다. 그런 상황에서 어느 누가 " 예, 알았습니다 . 다른 직장을 알아보죠." 할까요? 내가 어느 날 그런 통보를 받는다면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그래서 그들은 파업을 결정합니다. 그리고 옥쇄 투쟁에 나섭니다. 장장 77일간 계속된 옥쇄 투쟁에서 전기도, 물도,급기야 의약품도 공급되지 않는 극한의 상황을 노동자들은 경험합니다. 이게 전쟁도 아니고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요? 제네바 협정에서도 최소한의 물자는 공급해야 한다고 되어 있다는데 저들은 직장에서 해고당한 그들을 그렇게 철저히 고립시켰습니다. 심지어는 2L 생수 반통을 장정 20명이 나눠 먹기도 하였답니다. 파업에 참가하지 않았지만 쌍차에서  쫓겨난 다른 이들도 다른 직장에서 쌍차 해고자라고 낙인이 찍혀 일자리를 얻을 수도 없었다고 합니다. 그들의 고통은 거기서 가중되기 시작합니다. 생계에 위협을 느끼고, 극도의 폭력에 노출된 그들은 극심한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을 심하게 겪게 되고, 그들은 급기야 아무런 유서도 남기지 않고, 자신의 목숨을 버립니다. 그렇게 22명이 저 하늘 나라로 갈 때까지 난 모르고 있었습니다. 알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미안합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비교적 안정된 직장에 다니는 나는 정리해고가 가져다 주는 고통이 어느 정도일까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상상을 해 봤습니다. 지금 당장 내가 잘린다면...... 정말 아찔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다른 데서도 받아주지 않는다면 더 막막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게 1,2,3년 지속된다면 정말 죽고 싶을 것 같습니다. 전 그들의 고통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과 그들의 가족들이 그렇게 심한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을 앓고 있었고, 자살은 무섭게 번져 가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집단적으로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을 심하게 앓고 있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고 그들을 상담한 정신과의사는 말합니다. 3년 동안 22명의 희생자가 생긴 것은 정말 어마어마한 것이라고 합니다. 

 

13째 번 희생자 이야기는 뭐라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처절합니다. 바로 공작가님이 쌍차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한 희생자의 이야기입니다. 해고당한 노동자의 아내가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집에 한 번 들어오라 하고, 남편이 옷을 갈아 입는 사이 아이들이 바라보는 가운데 스스로 베란다에서 뛰어 내리고, 그녀의 남편은 다시 1년 후 투신을 하여 하루아침에 남매가 고아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이 책을 통하여 알게 되었습니다. 1년 사이 부모를 모두 잃어버린 아이들은 어떻게 살아갈까요?  쌍차 해고자와 그 가족들은 이렇게 심한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을 앓고 있으며 3년 동안 22명이 희생되었다는 것은 정말 놀랄만한 기록인데도 불구하고 나를 비롯하여 아직도 쌍차 이야기를 제대로 알지 못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왜일까요? 용산 참사는 어느 정도 언론에서 자주 보도가 되어 알고는 있었는데 쌍차 이야기는 언론에서 보지 못했다고 핑계를 대어 보지만 그것 또한 변명일 뿐입니다. 관심이 없었던 것이죠. 그들의 구조 요청을 모르는 척 한 거죠. 비겁한 거죠. 어쩌면 난 언제나 의자에 앉을 수 있겠지 하는 헛된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겠죠.  그런데 조금만 더 깊게 생각해 보면 현재 신자유주의제체 하에서는 누구도 의자에 앉지 못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죠. 공작가의 인터뷰처럼 쌍차 문제는 실체 없는 유령과의 싸움과도 같아서 매우 복잡하다는 말이 이해가 됩니다. 그게 바로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벌어지는 헛깨비와의 싸움이고, 그래서 더 지치고, 더 피폐해진다는 말이 맞습니다. 노사와의 갈등을 넘어서서 서로 의자에 앉기 위해 노동자와 노동자가 서로를 밀쳐 내야 하는 게 바로 이 싸움의 잔인함인 것 같습니다.  쌍차 해고자들을 더 힘들게 했던 것도 의자에 앉아 있는 자들, 어제까지만 해도 동료였던 그들이 자신들을 향해 몰아부치고, 폭력을 향하고, 고립시키면서 더 절망하였던 것 같습니다.

 

이제는 그들의 이야기를 알아야 할 것 같습니다. 먼저 안 사람들이 옆사람들에게 알려줘야 할 것 같습니다. 그들이 당한 고통이 언젠가는 나의 고통이 될 수도 있습니다. 지금 내가 안정된 자리에 있다고 해서 그들이 당한 일과 똑같은 일이 내게 닥치지 않으리라고 누가 확신할 수 있을까요? 의자놀이에서 내가 언제 아웃될 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어느 누가 평범한 가장이었던 그들과 그들의 가족들을 저렇게 스스로 생명의 끈을 놓아버리게 만든 것인지.... 희생자는 벌써 22명이나 나왔는데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고 문제 해결도 되지 않은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그리고 다른 희생자가 나올까 봐 겁이 납니다.23째 번 희생자가 나오지 않도록 막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 마음으로 공 작가님도 이 글을 쓰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의 인세 및 수익금 전액은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을 위해 쓰여진다고 합니다. 전 이런 작은 도움 밖에 못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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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찬샘 2012-08-26 0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ㅜㅜ

수퍼남매맘 2012-08-26 12:07   좋아요 0 | URL
읽고나서 눈물이 나는 그런 책이었습니다. 먹먹함. 그런 거요.

세실 2012-08-26 0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시대를 살아가면서 타인의 아픔에 무관심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에 이 책 구입했고,
내일 열리는 공지영 북 콘서트에 참여하려고 합니다.
마음이 아프네요. ㅠㅠ

수퍼남매맘 2012-08-26 12:08   좋아요 0 | URL
공 작가님 어찌 되었건 외면 당하고, 그냥 묻힐 뻔한 이야기들을 작가적 양심을 가지고 끄집어 내는 멋진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북콘서트 후기 꼭 올려 주세요.
 
자연의 미술가 - Art in Nature
김해심.존 K. 그란데 지음 / 보림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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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란 무엇일까요? 아니, 미술이란 무엇일까요? 이번에 나온 김해심과 존 k 그란데의 '자연의 미술가'를 읽으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생각은 이것이었습니다.

 

미술은 무엇보다 재현의 예술입니다. 어느 카메라 광고가 생각나는군요. 어떤 공간에다 사각형의 틀을 대면 그림이 되어 나오는 그런 광고였습니다. 바로 그것이 미술이 아닐까요? 자연의 어떤 특정한 부분을 뚝 떼어다 감상가능하게 만드는 것. 굳이 자연이 아니라 인간의 감정일 수도 물론 있겠죠. 하지만 그 사각형의 틀은 작습니다. 미술은 그 틀을 넘어 뻗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추상미술이란 것도 나왔죠. 재현이지만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움을 추구하기 위해. 아마도 60년대 후반의 '대지미술'도 그것의 일환이었을 것입니다. 지구라는 전체 캔버스 위에 마치 신의 붓질과도 같이 그림을 새기는 것. 그것은 환경의 조화로움을 추구한다고 했지만 사실은 인간의 자연에 대한 개입이었고 인간의 뜻대로 만드는 지배였습니다.

 

이번에 나온 책은 그 대지미술이 가지는 개입과 지배에 반발해서 나온 미술의 흐름을 보여주는 책입니다. 참으로 많은 작가가 지구환경과 인간의 공존과 조화로움에 대해 생각하고 그것을 미술로 승화시키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사는 장소의 역사를 간직하고 어느 곳과도 다른 독특성을 살리며 그러면서 더 아름답기 보이기 위해 가꾸는 것이 아니라 그 조화로운 전체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는데 초점을 맞춘 공간의 미술들이었습니다. 그 노력의 결실들을 보면서 새삼 내가 사는 공간을 생각하게 되었고 그렇게 나를 둘러싼 환경과 공존한다는 것이 무엇인가 많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그것이야 말로 미술이 추구하는 진정한 자유로움이 아닐까요? 칸트가 말했듯이 진정한 자유로움이란 오로지 이기적일 뿐인 동물적인 본능에 좌우되지 않는 세계와 타자로 열린 존중과 배려에 있는 것이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미술도 엄연한 사상의 통로가 될 수 있음을 또 깨닫게 되었다고 부연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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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29 23: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6-30 16: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일기쓰기 어떻게 시작할까 살아있는 교육 13
윤태규 지음 / 보리 / 199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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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기의 목표가 스스로 책을 즐겨서 평생 독자를 만드는 것에 있다면

일기 지도의 목표 또한 일기 쓰기의 재미를 느껴서 평생 일기를 쓰게 만드는 데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지금 어른들에게 물어보자. 당신은 일기를 쓰고 있냐고?

과연 100명 중에서 몇 사람이나 일기를 쓰고 있을까? 1%도 안 될 것 같다.

나도 안 쓰고 있으니깐 할 말 없다.

가끔 서재에 교단일기를 쓰는 것 빼고는

일기를 쓴 지가 꽤 된다.

둘째의 육아 일기를 끝으로 말이다.

모든 대한민국의 학생이 일기 쓰기를 배웠는데도 현재 일기를 안 쓰고 있다면 뭐가 잘못된 것일까?

 

기껏해야 일기 쓰기는 초등학교 중학년 정도까지 유지되다가

고학년 이상이 되면 진짜 멀어져 버린다.

이 어린이들이 자발적으로 다시 일기장을 꺼내어 일기를 쓸 수 있을까?

독서 지도도 힘들지만

일기를 평생 쓰도록 만드는 것은 더 힘들어 보인다.

초5인 울 딸만 봐도 4학년 때까지는 숙제로 일기를 썼지만

5학년이 되고 일기 숙제가 없어지자 전혀 일기를 안 쓰고 있다.

일기는 우리 아이들에게 습관화된 일이 아니다.

책 읽기는 읽어라 하면  그래도 시간을 내서 읽지만

일기는 한 마디 잔소리 가지고는 절대 아이를 움직일 수 없다.

읽기와 쓰기를 단순 비교해 봐도 쓰기가 훨씬 더 시간도 많이 걸리고 노력도 많이 필요하고 힘들다.

그래서 아이들이 책 읽기까지는 해도 독후감 쓰기는 하지 않는다.

그만큼 쓰기는 어렵고 힘들기 때문이다.

 

무엇이 일기 지도를 실패하게 만들었을까?

즉 다시 말해 아이들은 왜 일기 쓰기에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걸까?

아이도 어른도 재밌으면 자신이 찾아서 한다.

그건 책 읽기도, 일기 쓰기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한다.

재미있는 일이라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하게 되어 있다.

결국 아이들이 일기 쓰기를 하지 않는 것은

아이들에게 일기 쓰기가 재미 없기 때문이다.

그렇담 무엇이 일기 쓰기를 재미 없게 한 것일까?

초1 아이들을 보면 그렇게 일기 쓰기에 반감을 가진 아이들이 별로 없다.

(그건 책 읽기도 마찬가지이다.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기에 호기심과 흥미를 가지고 하는 편이다. )

즉 학년이 올라갈수록 일기 쓰기를 싫어하는 것이다.

 

저자가 서문에 밝혔듯이

이 세상이 일기 쓰는 사람들로 가득차 있다면

좀 더 행복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공감이 간다.

일기를 쓰는 사람은 자연스레 자신이 겪은 일을 떠올리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잘한 일,잘못한 일, 즐거운 일, 화난 일 등등

안네가 생일날 받은 일기장 때문에

그 힘든 시기를 꿋꿋하게 잘 버틴 것처럼

우리 때보다 더 힘들게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을 비밀 친구 일기장이 하나씩 있다면

이 힘든 세상을 좀 더 잘 버텨나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져 본다.

 

다른 것은 제쳐 놓더라도

일기 지도에 실패한 요인들만 잘 기억하고

이 12가지를 하지 않으려고 교사와 학부모가 노력한다면

우리 어린이들에게 일기 쓰기의 재미를 빼앗는 잘못은 범하지 않을 것 같다.

올해 수퍼남매와 울 반 아이들을 대상으로 일기 쓰기가 재미있다는 것을 직접 경험하도록 지도해 볼 것이다.

이 책에 나온 내용대로 말이다.

 

일기 쓰기는 왜 실패하고 있는가? (책의 내용을 요약함)

 

1. 글쓰기나 국어 공부를 시키려고 하기 때문에

    글자가 틀린 것, 띄어쓰기 등을 걱정하지 않아야 한다.  글자를 완전히 깨우쳐야만 일기를 쓰는 것이 아니다. 그렇담 글자를 아는 어른들은 왜 지금 일기를 안 쓰는가? 자기가 알고 있는 글자만 가지고도 쓸 수 있는 것이 일기다.

 

2. 특별한 일을 쓰라고 하기 때문에

   매일 특별한 일만 벌어진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평범한 일이 되풀이 되는 것이 행복한 인생 아닐런지.... 평범한 가운데서도 일기 주제를 잡아 일기를 쓸 수 있어야 한다.

 

3. 길게 쓰라고 하기 때문에

   길게 쓰는 것이 아니라 <자세히>쓰라고 조언해 줘야 한다.

 

4. 잠자기 바로 전에 쓰라고 하기 때문에

 될 수 있으면 겪은 일 즉시 일기를 쓰라고 하자.

 

5. 반성하는 일기를 쓰라고 하기 때문에

   일기 끝에 반드시 반성이나 다짐하는 글을 쓰라고 하는 것이 일기를 애물 단지로 만들어 버렸다.

 

6. 사실만 쓰지 말고 생각이나 느낌을 많이 쓰라고 하기 때문에

   있었던 이야기만 쓰지 말고 생각이나 느낌을 꼭 덧붙이라고 하는 것 때문에 일기 쓰는 게 힘들다. 아이들은 필요할 때면 자기가 알아서 생각과 느낌을 쓰게 되어 있다.

 

7. 일기장에 있는 잡다한 틀 때문에

  <일기장>공책에 있는 잡다한 형식이 아이들의 사고를 경직되게 한다. 자유로운 무제 공책이 좋다.

 

8. 일기 검사 때문에

  일기는 누구에게든 보여 주지 않는 게 좋다. 하지만 저학년의 일기는 보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일기를 보면서도 안 보는 효과가 있어야 한다. 즉 어린이와 교사, 학부모 사이에 신뢰가 있어야 한다.  일기 내용을 가지고 이러쿵저러쿵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지켜야 한다.

 

9. 숙제로 쓰기 때문에

 아무리 재미있는 숙제라 해도 숙제라고 하면 부담을 갖게 된다. 그러니 일기는 그냥 밥 먹는 일과  같다는 이야기를 자주 하자. 

 

10. 대신 써 주기 때문에

  1학년 일기 쓰기 지도에서 가장 큰 걸림돌이다. 부모님이 대신 일기를 써 주는 일이다. 어떤 부모님은 자녀를 한두 달 안에 일기 쓰기 도사를 만들어 놓고자 한다. 그게 일기 쓰기를 망치는 일인데도 말이다. 어떠한 경우라도 아무리 답답하더라도 일기를 대신 써 주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자.

 

11. 그림 일기로 시작하기 때문에

    일기 쓰기 교육이 시작된 이래 손톱만큼의 의심도 없이 줄기차게 이어진 원칙이 그림 일기 부터 시작한다는 점이다. 그림 일기를 쓰게 해 보면 생각과 달리 그림과 글자가 서로 부족한 점을 메워 주는 노릇을 하지 못한다. 오히려 아이들이 더 부담스러워 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그림을 잘 못 그리는 아이들에겐....

 

12. 어른들이 일기 쓰는 모습을 보여 주지 않기 때문에

   많은 교사와 학부모들이 ' 아이들이 일기를 쓰지 않는다' ' 쓰기를 싫어한다'' 큰일이다'고 걱정을 한다. 그런데 이런 말을 하는 교사나 학부모들 자신은 얼마나 일기를 부지런히 쓰고 있을까? 교육은 말로 되지 않는다. 머리로 가르쳐서는 절대 되지 않는 것이 교육이다. 가르치고자 하는 사람이 몸으로 보여 주는 것만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위 12가지 일들만 저지르지 않아도 아이들을 일기로부터 멀어지게 하지는 않는다고 책은 말해 준다.

나 또한 위 12가지를 딸과 내가 가르친 아이들에게 지도랍시고 했었다.

이제 알았으니 아들과 지금의 아이들에게 이런 잘못들을 저지르지 않고 일기 또한 재밌는 것이 될 수 있음을 함께 알아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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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루 푸른도서관 50
이금이 지음 / 푸른책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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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금이 작가의 신작을 만났다.  사막에서 볼 수 있다는 그 <신기루>가 이번 신작의 제목이다. 사막을 배경으로 한 소녀가 머리를 휘날리는 채로 약간 슬픈 표정으로 뭔가를 응시하고 있다. 그 뭔가가 바로 신기루가 아니였을까!

 

  이 소설은 15세 소녀인 다인이와 45세인 다인의 엄마 숙희씨를 각각 화자로 하여 다인이와 엄마, 엄마 친구들이 함께 갔던 사막 여행에서 있었던 이야기들을 풀어내고 있다. 작가의 원래 구상대로 다인이 이야기만 있었다면 좀 허전했을 듯하다. 2부에 엄마의 이야기가 추가되어서 개인적으로 더 좋았다. 이유는 1부에서는 나의 10대 시절로 돌아간 듯한 착각에 빠져서 다인이와 같은 감정을 느꼈던 그 시절을 회상할 수 있어 좋았고, 2부에서는 나와 비슷한 또래인 숙희씨 이야기를 통해 현재 나의 어머니, 나의 자녀를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 좋았다. 결국 딸이었던 시절, 엄마인 시절을 모두 공감할 수 있어서 시간 여행을 하고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1부 다인이의 이야기는 10대의 이야기라서 그런지 정말 톡톡 튄다. 이금이 작가의 화려한 말솜씨에 다시 한 번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마치 만화를 보는 듯하였다. 이금이 작가는 10대 소녀가 가질 수 있는 감성을 정말 잘 표현해 주고 있다. 읽으면서 나도 나의 10대 시절로 되돌아가서 공감이 팍팍 됐다. 다인이가 꽃미남 가이드 바뜨르에게 느끼는 풋풋한 호감 또한 이해가 간다. 그래서 엄마를 비롯한 다른 엄마 친구들도 40대 주부가 아닌 다인이와 같은 똑같은 10대로 돌아가 무조건 여자이고 싶고, 꽃미남인 바뜨르에게 잘 보이고 싶었던 게 아니였을까 싶다. 아줌마들이 웬 주책이야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아줌마들의 행동이 귀엽기까지 하다. 그녀들도 그 순간만큼은 다인이와 같은 15세 소녀 마인드였던 것이지. 

 

  개인적으로 이 책이 마음에 드는 것은 재작년과 작년 딸과 둘이서만 일본과 중국 여행을 갔던 경험이 있던 터라 다인이가 엄마와 함께 여행간 그 상황이 남의 일 같지 않게 느껴졌다.  물론 우리는 다른 일행들과 섞여서 여행을 다녔고 바뜨르처럼 잘 생긴 가이드가 아니여서 이런 설레임과 갈등,질투,적대감, 실망 등은 경험하지 못했지만 모녀가 함께 여행간다는 그 설정만으로도 이 책이 너무 반가웠다. 

 

  여행이란 것은 사람의 마음을 무장해제시키는 마력이 있는 것 같다. 다인이도, 아줌마들도 만약 바뜨르를 한국에서 만났다면 이처럼 무작정 좋아할 수 있었을까! 그게 바로 여행지에서 만났기에 그렇게 앞뒤 따지지 않고 순수한 마음으로 호감을 가지고, 좋아하게 된 게 아닐까 싶다. 어떤 면에서 그래서 더 위험하기도 하겠지만 말이다. 다인이가 바뜨르에게 가지는 호감과 아줌마들에게 가지는 적대감과 질투 등이 이금이 작가의 화려한 글솜씨로 독자에게 고스란히 전해진다. 읽는 내내 내가 다인이가 된 것처럼 설레고, 속상했다.

 

축축해진 손바닥을 옷자락에 문지르는 사이 내 차례가 됐다. 나는 내숭이 아니라 손을 내밀기가 진짜 쑥스러웠다. 바뜨르 역시 아줌마들 손은 나뭇가지인 양 스스럼없이 잡더니 내게는 선뜻 내밀지 못하고 쭈뼛거렸다. 우리의 손이 서로의 마음인양 수줍게 다가가는 순간 엄마가 갑자기 ' 빨리 안 건너오고 뭐해?' 하면서 내 손을 덥석 잡고는 확 잡아당겼다. 수십 가지의 버전에는 결코 없었던, 고꾸라질 뻔한 추한 모습으로 개울을 건넌 나는 엄마를 물속에 밀어 넣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았다.

  이 부분 읽는데 정말 웃겨서 읽다가 푸하하 웃었다. 완전 시트콤을 보는 것 같았다. 누군가에게 호감을 가져보거나 몰래 짝사랑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이 상황이 잘 이해될 것이다. 진짜 오만 가지 버전으로 상상을 했는데 엉뚱하게 일이 종료된 상황. 다인이의 그 절망감이 그대로 전해진다.

 

 이야기의 절정은 미남 가이드 바뜨르와 헤어지고 나서 사막 한가운데서 신기루를 보고 누가 뭐라 할 것도 없이 여기저기서 흑흑 울음이 터져 나오는 부분이다. 아줌마들은 왜 그렇게 서럽게 울었을까? 왕대접을 받는 오빠와는 달리 엄마에게 매일 푸대접과 무시를 받으면서도 울지 않던 다인이도 왜 신기루를 보면서 울었을까?

 

  신기루를 보고 모두들 한바탕 울던 그 사건을 기점으로 화자는 다인이로부터 엄마 숙희로 전환된다. 이제 숙희씨의 이야기이다. 올해 45세인 숙희씨는 여행 오기 직전 자궁암 초기 진단을 받고, 수술을 받기 전에 딸과 처음으로 해외 여행을 결심한다. 한 때는 문학 소녀였지만 자신처럼 자궁암 선고를 받고 스스로 농약을 먹고 목숨을 끊어버린 자신의 엄마에 대한 기억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지닌 채 살아왔던 그녀이다. 숙희씨의 이야기는 자신이 왜 신기루를 보고 울었는지 그 대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자신이 왜 신기루 앞에서 꺼이꺼이 울었는지 알고 있지만 그걸 애써 부인하고 다른 데서 원인을 찾으려고 한다. 하지만 결국은 마주 하기 싫은 그 진실을 정직하게 마주 할 때라야만 묵은 상처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걸 숙희씨 이야기는 보여주고 있다.

 

나는 선택할 수 없었다. 엄마를 미워하면서 사랑했다. 엄마를 그리워하면서도 엄마를 용서할 수 없었다. 엄마라면 자식들이 다 클 때까지 어떻게든 살았어야 했다. 너무 늦은 발견으로  암 선고와 시한부 선고를 동시에 받았다고 해도 끝까지 싸웠어야 했다. 치료비와 남은 가족들의 고생을 핑계로 싸움을 포기해서는 안 되는 거였다.

 18세 때 엄마의 자살로 인한 상처가 현재 45세인 그녀에게 아직도 남아 있다는 증거이다. 그런 그녀가 신기루로 인해, 아니 어쩌면 여행이라는 것 때문에 자신의 묶은 상처를 스스로 마주 할 용기가 생겨났다.

 

내가 그날, 모래 언덕에 앉아 울었던 건 신기루 때문이었다. 눈앞에서 신기루가 홀연히 사라지는 것을 본 순간 내가 믿고 있던 것들이 실은 신기루처럼 허상이었는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날 울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토록 시인하고 싶지 않던 그 진실을 고백하게 된다. 숙희 씨의 친구들 또한 그래서 목 놓아 울었을 것이다.

 

 신기루, 자연이 만들어 준 그 기이한 현상이 이렇게 대단한가 보다. 고비 사막을 함께 했던 모든 이들에게 저 밑바닥에서부터 뭔가가 울컥 하게 하여 그녀들로 하여금 목 놓아 울게 만들고, 그리하여 저 밑에 꽁꽁 숨겨 놓았던 자신만이 알고 싶었던 비밀이나 상처마저도 객관적으로 보게 하여 결국은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용기를 주는 그 놀라운 힘을 신기루는 가지고 있나 보다. 그렇담 나도 꼭 신기루를 보고 싶다. 나도 모르는 무의식 속에 있는 그 어떤 것까지도 끄집어 내어 한바탕 울게 된다면 예전보다 한껏 정화된 나를 만나게 될 것만 같다.

 

  다인과 엄마의 대화 중에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게 무엇인지 묻고 답하는 장면이 있다. 당연히 '바뜨르'라고 대답할 줄 알았던 다인이가 <신기루>라고 답하는 장면이 있다.

모래 언덕에서 처음 봤을 때는 처음 보는 거라 신기하기만 했고, 길 잃어버렸을 때 신기루를 두 번 봤잖아. 그때마다 진짜 호순 줄 알고 좋아했다가 아니라서 엄청 실망했잖아. 그래서 처음에는 없는데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게 속임수 같아서 나쁘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런데 진짜 호수를 만나고 길도 찾고 나니까 만약에 그때까지 신기루를 한 번도 못 봤으면 어떻게 불안하고 무서운 걸 참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거야.

다인이의 말 속에  신기루가 가지는 의미가 잘 내포된 것 같다. 신기루. '속임수' 같지만 다른 면에서 보면 인생이라는 긴 여행을 하는 우리에게 한 조각의 '희망'이기도 하다는 게 말이다. 다인이도, 숙희씨도 이번 고비 사막 여행을 통해 많은 것을 깨닫고, 치유받고 오는 것 같다. 기대되는 건 다시 자신들의 일상적인 자리로 돌아갔을 때 예전과는 다를 거라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가장 좋은 교육이 바로 독서와 여행이라고 말하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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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같은 날은 없다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61
이옥수 지음 / 비룡소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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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딸이 비룡소 독후감 대회 대상을 타는 시상식장에서 이옥수 작가님을 뵌 적이 있다. 조금 쑥스러워하시는 다른 작가님들과는 달리 연신 방긋방긋 웃으시며 수상자 아이들에게 " 사랑합니다"를 연발하시며 일일이 악수를 해 주시는 모습에 ' 참 정이 많고, 따뜻한 분이시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고 그래서 그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더랬다. 주로 청소년 문학을 쓰시는 분이라서 님의 작품을 읽어 본 적이 없던 터에 이번에 신간이 발간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고 운 좋게 그 작품을 읽게 되었다. 제목 또한 눈길을 확 끈다. " 개 같은 날은 없다 " 라니....

 

여기 가족으로부터 지속적인 폭행을 당한 두 상처 받은 영혼이 있다. 고1인 남강민과 23세인 최미나. 강민이는 형으로부터, 미나씨는 오빠로부터. 지속적인 폭행으로 인하여 강민이는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던 강아지를 발로 걷어차서 죽이고, 동급생을 구타하는 사건까지 저지르는 지경에 이르게 되고, 미나씨는 폭식증과 우울증에 시달려서 정신과 상담을 받고 있는 처지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피를 나눈 형제로부터 당한 폭행이 둘을 만신창이로 만들어 버렸다. 읽는 내내 어쩜 이렇게 동생을 구타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미어졌다.

 

책은 강민이와 미나씨를 교대로 화자로 설정하면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 주고 있다. 두 사람 모두 폭력을 행사한 형과 오빠에 대한 분노의 감정이 쌓일 대로 쌓여서 누가 툭 하고 건드리기만 해도 폭발하기 일보 직전이다. 아니 강민이는 두 번 폭발해서 문제아로 낙인 찍히고, 정신과 진료를 받으라고 학교측으로부터 연락을 받는다. 그러나 강민이와 미나를 이 지경으로 만든 형과 오빠를 들여다 보면 그들 또한 상처를 가지고 있는 게 드러난다. 그들 또한 어떤 의미에서 피해자였던 것이다. 그들의 부모는 어떤가! 부모들 또한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상처를 싸 안고, 헤매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상처가 곪을 대로 곪아 터져서 살을 뚫고 나와 남의 살까지 후벼 파고 있는 두 가정의 모습을 보면서 정말 마음이 짠 했다. 가족이란 무엇인가? 좋을 때만 기뻐해 주고, 축하해 주는 게 가족은 아니지 않는가! 오히려 힘들고 지치고 어려울 때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위로해 주고, 감싸안고 함께 가야할 가장 가까운 사이가 아니던가! 그런데 그들은 서로를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워하면서 서로의 상처를 후벼 파고, 폭력을 행사하고, 급기야 또 다른 폭력들을 생산해 내고 있다.

 

알코올 중독자 아버지로부터 알콜 중독자 자녀가 나오고, 폭행하는 부모로부터 폭행하는 자녀가 나온다는 이야기가 있다. 부모로부터 보고 들은 것이 자녀에게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다는 방증일 것이다. 강민이도 강민이의 형도 결국 아버지의 폭력을 그대로 답습한 것이다. 그러니 부모들이 정말 조심해야겠다. 내가 은연중 하는 어떤 행동을 자녀들이 그대로 모방할 지도 모른다. 아버지가 형 강수에게 행사한 폭력은 또 다시 형이 동생 강민이를 구타하는 것으로 귀결되고, 동생은 다시 동급생과 자신의 강아지를 때리는 것으로 제2, 제3의 폭력을 낳고 있다. 그래서 간디가 <비폭력주의>를 표방한 것일 게다. 폭력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또 다른 폭력을 생산할 뿐이다.

 

부끄럽게도 학교에서 체벌이 금지된 게 불과 제작년부터이다. 정말 늦은 일이다. 벌써부터 체벌이 금지되었어야 하는 건데.  국민소득 2만불을 넘는다면서 아직도 체벌을 허용하고 있었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이다. 폭력에 길들여진 아이들은 자신들 또한 다른 이들을 상대로 폭력을 가한다. 강수와 강민이처럼 말이다. 폭력은 습관이다. 처음부터 없는 거라고 생각하면 다른 방법을 강구하게 된다. 그런데 그걸 허용하게 되면 다른 방법은 통하지 않는다. 왜냐면 말로 설득하는 것은 지리하고, 별 효과도 없어 보이지만 폭력은 즉각적이고 효과가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폭력으로 얻어진 것은 오래 가지 않는다. 학교에서 체벌이 사라진 것처럼 혹시 아직도 가정에서도 '사랑' 이라는 미명 하에 체벌을 하고 있다면 지금부터라도 즉각적으로 금하도록 하자. 가정에서 폭력으로 길들여진 아이들은 학교에서도 더 높은 강도의 폭력이 아니면 훈육이 되지 않는 경험을 종종 경험한다. 그래서 학부모 상담을 할 때 혹시 매를 드시는지 꼭 물어보곤 한다. 부모가 매를 드는 가정의 아이들은 담임교사가 말로 훈율을 하여 교정을 하기기 정말 어렵다. 그러니 지금 당장 가정에서  이뤄지는 모든 체벌을 금해야 한다. 가족의 폭력에 만신창이가 된 강민이와 미나씨가 더 이상 생기지 않도록 부모들부터 각성해야겠다.

 

이 책을 읽으면서 상처는 그 때 그때 치료를 해야 함을 다시 절감한다. 미나씨의 말처럼 상처가 곪아서 터질 대로 놔두면 안 된다. 가족이기 때문에 얼렁뚱땅 넘어가지 말고 가족이기에 더 허심탄회하게 말할 필요가 있는 듯하다. 미나씨도 강민이도 그들의 가족들도 그렇게 자신들의 상처를 방치해 두었기에 일이 이렇게 커졌던 것 같다.

더 이상 비겁하게 피하지 않을 거야. 혼자서 아파하지도 않을 거고,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건 몹시

외로운 일이래.

 

또 하나 미나씨의 외침을 인용해 본다.

때리면 안 돼,그 누구도 때리면 안 돼. 이 세상 그 누구도.......

 

우린 모두 다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들이다. 그 어느 누구도 다른 이들을 때릴 권리를 부여 받은 적이 없다.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재생산할 뿐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혹 가족에게 받은 상처가 있다면 나의 상처를 가족에게 말하고, 그들과 함께 풀어 나가도록 하자 . 강민이네 가족처럼 말이다. 가정이 건강해야 사회가 건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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