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끝나지 않은 겨울 ㅣ 평화 발자국 6
강제숙 글, 이담 그림 / 보리 / 2010년 8월
어린이들에게 위안부를 어떻게 설명할까? 그들이 당한 고통을 뭐라고 표현할까? 가끔 고민될 때가 있다. 혹자는 어린이들에게 이런 책을 굳이 읽힐 필요가 있을까 반문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뼈아픈 역사도 우리의 역사이고, 특히 위안부 할머니처럼 타인에 의해 짓밟히고 평생을 겨울처럼 춥게만 지내신 분들을 우리 어린이들에게 객관적으로 알릴 의무가 있다고 본다. 할머니들의 역사를 제대로 알려야 그분들의 고통이 그나마 덜 억울하지 않겠는가!
작년 <꽃 할머니>에 이어 이번에 나온 <끝나지 않은 겨울 >또한 어린이들에게 비교적 쉽게 위안부 할머니에 대해서 알려 주고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위안부 할머니들이 연세가 많으셔서 하루가 다르게 숫자가 줄어들고 있는 이 시점에 이렇게 그림책으로나마 그들이 살았던 인생에 대해 자료가 남을 수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을 한다.
이 책은 얼마 전 알게 된 이담 이라는 화가분이 그리신 그림책이다. 그동안 그리신 그림책을 살펴보니 꽤 유명한 작품이 여럿 있었다.중후한 그림풍이 가슴에 울림을 준다. 권정생 님의 <곰이와 오푼둘이 아저씨>의 그림도 이담 님이 그리셨다.
위안부 할머니의 가슴 아픈 이야기와 이담 님의 그림풍이 잘 어우러진 그림책이다.
평생을 겨울처럼 춥게 지낸 한 할머니가 계시다.
그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
경상도 산골, 열다섯 살이던 할머니의 고향 마을이다.
봄이 오자 어머니와 밭에 나물을 캐러간 열여섯 여자 아이.
아기 젖을 물리러 어머니는 먼저 가고 여자 아이는 혼자 남아 나물을 마저 캔다.
광주리에 나물을 담아 아랫길로 내려 오니 트럭 한 대가 달려온다
마을에 데려다 준다는 말에 트럭에 철없이 올라탄다.
트럭엔 벌써 다른 여자 아이들이 한가득이다.
그길로 여자 아이는 마을과 가족으로부터 멀어진다.
트럭에 올라탄 여자 아이들과 함께 기차를 타고 어디론가 간다
뒤이어 배를 타고 또 어디론가 간다.
배에는 일본 군인들이 많이 타고 있다.
여긴 어디일까? 어디로 가는 걸까? 집에 돌아갈 수는 있는 걸까?
여자 아이는 차츰 두려워진다.
며칠 후에 도착한 집이다.
우리 마을에서는 못 보던 풍경이다.
일본군인들이 여자아이를 하루코라고 부른다
하루코의 방이다.
방에는 세숫대야 한 개, 이불 한 장만 있다.
가족이 보고 싶다
고향에 가고 싶다
잠시 후 일본 군인들이 하루코의 방에 들어온다.
하루코의 가녀린 몸을 사정없이 짓밟는다.
그들에게 짓밟히는 것이 그녀가 여기에 끌려 온 이유의 전부다.
이게 바로 위안부 생활의 시작이다.
하루코의 몸과 마음은 엉망진창이 된다.
살고 싶지 않다.
그나마 견딜 수 있었던 것은 고향에서 함께 끌려 온 순이가 있어서였는데
어느 날 순이가 바다에 몸을 던져 버린다 .
유일한 친구마저 사라진 날
하루코에겐 아무런 희망도 남아 있지 않다.
그러던 어느 날 이 곳에 전쟁이 터진다.
무슨 일일까? 누구와 누가 전쟁을 하는 것일까?
일본군들이 하나 둘 떠난다.
전쟁 통에 탈출한 하루코는 배를 타고 고국으로 돌아온다.
그녀가 그 끔찍한 위안부 생활을 하던 곳은 바로 일본 오키나와였다.
고향으로 돌아온 그녀
며칠을 끙끙 앓았다
왜 아니겠는가?
그렇게 험한 일을 당했는데 말이다
고향에, 가족 품에 돌아왔지만 그녀는 일본 위안소에서 겪었던 일을 잊어버릴 수 없다.
그녀의 잘못이 아니건만 자꾸 죄인처럼 생각되어 견딜 수가 없다.
사람들의 눈이 자신을 마치 벌레 보는 듯하여 참을 수가 없다
그녀는 집을 나와 그때부터 혼자 외롭게 산다.
그 하루코가 이렇게 할머니가 되었다.
할머니는 세상을 등지고 평생 한겨울인 채로 살고 있다.
하루는 텔레비젼에서 자기와 똑같은 위안부 생활을 한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목 놓아 울었단다.
" 우리는 잘못한 것이 없다.
세상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당할 까닭도 없다.
죄인은 우리가 아니라 전쟁을 일으킨 너희다.
내 나라의 평화와 자유를 빼앗고
우리를 끌고 가서 몹쓸 짓 시킨 너희가 죄인이다. "
할머니는 그 날 이후 세상 밖으로 나와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계시다.
자신과 같은 삶이 또 생기지 않도록 말이다.
잘못된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말이다.
할머니의 이야기처럼
위안부 할머니들 대부분이 이렇게 힘들게 세상 밖으로 걸어나오셨다
평생 죄인처럼 숨어만 지내시다
용기를 가지고 세상 밖으로 나오셔서
서로 의지하며 지내시다 하나 둘 하늘나라로 떠나고 계신다
꽃 다운 나이에 힘없이 끌려가
원치 않은 위안부 생활을 강제로 하여야만 했던 우리들의 할머니들
그들의 고통을 모른 체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후세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그들이 하늘나라에 가서도 한겨울로 지내지 않도록
그들이 당한 고통을 알리고, 사과를 받아내고, 보상을 받아내야 하는 것도 우리들의 몫이다.
나라가 지켜주지 못했으면 억울함과 누명이라도 풀어줘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