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영화와 함께한 ‘불량’의 기억들에 대하여...

그때가 아마 80년대 중반의 중학교 3학년 때로 기억하고 있다.
고교입시를 우수운(?) 성적으로 힘겹게 합격하고, 겨울방학을 맞은 4명의 죽마고우 청춘들에게 남해안의 작은 항구 도시는 너무나 한가롭고 심심했다.
그때 불쌍한 청춘들에게 무리 중 한 녀석이 호기 있게 외친 구원의 메시아는 “우리 영화 보러 가자!” 라는 외마디 외침이었다.
물론 그냥 단순한 영화는 아니고 ‘성숙한’ 우리들의 수준에 맞는 ‘연소자 관람불가 영화’를 보자는 얘기였다. 선생님들의 단속이 두렵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졸업만 남겨둔 상태에서 설마 걸려도 무슨 일이 생기겠냐는 나름대로의 배짱으로 서로를 위로, 격려하며 두 달 남짓 되는 겨울방학동안 우리는 참 열심히 영화관을 들락거리며 불량청소년들이 되어갔다.
물론 영화를 선택하는 기준은 엄격했다. 영화 출연자들의 의상비가 적게 들어갔을 것 같은 영화, 실외보다는 침대가 있는 방 등의 실내촬영에 집중한 영화, 과일제목의 영화(산딸기, 앵두, 사과 등)와, 우리 전통 사극도 빠지지 않고 봤었던 것 같다.
시내에 3개밖에 없는 극장이었지만 그때는 정말 우리들을 위해서 극장주들이 프로그램편성을 협의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에로 영화는 한 주도 빠짐없이 시내 선전벽보판을 채우고 있었다. 나중에 대학에 입학해서야 우리가 그 유명한 전두환 정권의 3S정책(Sex, Screen, Sport)의 시혜(?) 당사자였다는 것을 알고 기분이 씁쓸해 지긴 했지만...
나중에는 너무 자주 가니까 극장 앞에 앉아서 관리하던 기도 아저씨가 연소자 관람불가 영화인데도 불구하고 할인까지 해 주는 친절을 베풀어 주시기도 했다.
동네 영화관은 거의 다 두 편 동시상영이었는데 한번은 심형래씨 주연의 아동영화 ‘우뢰매’와 당대의 톱스타 ‘이보희’씨가 출연하는 성인영화 ‘어우동’을 동시 상영하는, 그야말로 우리 동네니까 가능한 경악스러운 일이 생기기도 했는데 어쨌든 우리는 간만에 어깨를 펴고 당당히 극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것도 상영시간을 잘 못 알고 들어가 ‘우뢰매’ 를 먼저 관람하는 불상사가 생겼는데 다시 나갈 수도 없어서 꼼짝없이 초딩 녀석들과 만화영화를 관람하고는, 연달아서 기어이 ‘어우동’ 을 보고 나오는 대한민국 청소년들의 끈기를 과시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다른 미성년자 관람불가 영화는 생각만큼 극장 입장이 쉬운 건 아니었다.
영화관 앞에서 서성거리며 혹시나 모를 선생님들의 단속을 대비하는 놈과 입장하는 어른이 없는 때를 주시하며 기다리는 놈, 자주 봐서 안면을 튼 기도 아저씨가 언제쯤 오는지를 살피는 놈으로 역할분담을 하고 이 세 조건이 일치하는 때를 기다려 순식간에 서너 명의 ‘불량스런 놈’들이 입장하는 순발력을 발휘해야만 비로소 어두컴컴한 우리만의 낙원으로 입성이 가능했다.
영화 상영을 기다리는 동안 익숙한 목소리의 성우 목소리와 함께 ‘행복의 전당’ ‘미의 향연'등의 ‘세련된’ 카피와 함께 예식장, 미용실 등의 지루한 지역 광고가 지나가면 드디어 장엄한 ‘애국가’가 흘러 나왔는데 여기서 작은 문제가 시작된다.
그 당시 내 고향 어른들은 어찌나 애국심이 투철하셨던지 영화내용에 상관없이 애국가 전주 시작과 함께 거의 자동으로 일어나 엄숙한 표정으로 애국가가 끝날 때 까지 서 계셨던 것이다. 물론 우리들도 분위기에 압도되어 혹시라도 아는 어른들을 만날까봐 고개를 푹 숙이고 엉거주춤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그때의 민망함이란...
도대체 ‘뽕’ ‘변강쇠’ ‘애마부인’등의 영화가 애국가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애국가가 나올 때 마다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해 충성을 다할 것”을 이미 세뇌수준으로 다짐한 나로서도 애국가와 성애영화의 양립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찌됐건 영사기 필름이 돌아가면서 영화가 시작되면 우리들은 그 이전까지의 불안과 초조, 걱정을 모두 잊고 그야말로 느긋이 허리를 길게 빼고 앉아 영화를 감상하기 시작했다.
영화 중간 중간 격정적인 정사 장면이 나오면 극장 안은 배우들의 신음소리 외에는 그야말로 쥐죽은 듯 조용해 졌고 정사장면이 끝나고 나면 우리들 중 한 두 명은 으레 화장실을 갔다 오곤 했는데 그 친구들에게서 야릇한 밤꽃 냄새가 났었던 것 까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으나, 우리들 모두는 그 친구가 화장실에서 무엇을 하고 왔는지는 짐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누구도 그 친구에게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는데, 그것은 가슴 미어지는 배려와 연대에서 우러나오는 진한 우정이었을까? 아님 어차피 우리는 공범이라는 동류의식이었을까?
어쨌든 매번 영화를 다 보고 극장 문을 나설 때 갑작스럽게 쏟아지는 햇볕으로 인한 ‘밝음의 부끄러움’은 아마 성인이 되어서는 두 번 다시 겪어보지 못한 낯 설은 경험이었던 것 같다.

 

어른들의 잣대로 선을 그어놓고 그 선을 넘어가면 ‘불량’이 되어버리는 시대의 ‘기준 긋기’는 그 시절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유효한 것 같다.
다만 내 ‘불량시절’의 곁에는 언제나 친구들이 있었고 그 친구들이 있어 소심한 ‘불량’ 행동이나마 과감히 저지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교과서에서 가르쳐 준대로 착하고 바른 행동을 같이 하는 것 보다는 왠지 삐딱한  나쁜 짓을 같이 한 친구들과의 ‘동지의식’이 더 깊어졌었고, 그러한 일종의 연대의식이 나의 청소년기를 키워온 하나의 자양분이기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성(性)’을 예로 든다면 나의 세대와는 달리 요즘은 인터넷을 통해 어른들도 보기 민망한 ‘하드코어’를 쉽게 접할 수 있는 세대가 지금 청소년들이기 때문에 굳이 친구가 없어도 컴퓨터 모니터만으로도 ‘불량’을 접할 수 있는 요즘 세대가 왠지 안쓰러워 보이기까지 한다.
‘불량’도 친구가 있고, 에너지가 있고 시간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유희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삶에서 가장 에너지가 왕성하게 분출하고 상대적으로 시간이 많았던 청소년기에 ‘불량’이란 녀석이 붙어서 ‘불량청소년’이란 조어가 완성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한 황금 같은 시기의 모든 에너지와 시간을 ‘공부’에만 쏟아 붓고 있는 2008년의 청소년들에게도 우리세대식의 ‘불량’을 허락하면 어떨까 하고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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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kr.youtube.com/watch?v=Ic9AIzrmn5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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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08-07-21 15: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멋지네요. 피아노 연주하는 모습 자체가 또 하나의 작품이군요.
잘 보고 듣고 갑니다.
 

오늘 연두가 있는 7세반 교실로 다른 볼 일때문에 갔다온 같은 사무실의 H양..참고로 오는 10월 결혼을 앞둔 처자이다..

H양을 반갑게 알아본 연두가  " 이모 안녕하세요!!! "라고 크게 외치자...

연두친구가 H양에게 묻더란다."정말 연두 친이모에요?" 당연히 "아니, 연두아빠랑 같은 사무실에 있는 친한 후배라서 그냥 연두가 이모라고 부르는 거야..." 라고  연두친구에게 친철하게 대답하고 연두에게도

"연두야...친구들이 있을때는 이모라고 부르지 않는게 좋겠지^^" 라고 H양이 말을 하자..

 

 

 

 

연두왈.." 그럼................이모가 나아요? 아줌마가 나아요?"

 

H양..."@#$%%&*......그냥....... 이모라고 불러라".......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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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8-07-18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말문을 막히게 하는 이 선택의 순간..ㅎㅎㅎ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936540

손이 떨려 자판을 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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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maybe601.tistory.com/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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