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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세계적 가치 - 세계의 지식인 16인과 하버드생의 대화
브라이언 파머 지음, 신기섭 옮김 / 문예출판사 / 2007년 1월
평점 :
절판


 

노엄 촘스키, 하워드 진, 로버트 라이시, 하비 콕스... 미국의 대표하는 16명의 지식인이 하버드 대학에서 개설한 ‘개인의 선택과 전 지구적 변화’라는 강좌에서 학생들과 나눈 얘기들을 펴낸 책이다.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에서도 가장 유명하다는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을 대상으로(그렇기 때문에 사회적 성공을 거둘 확률이 높은...) 16명의 강사들은 현재 지구촌이 겪고 있는 다양한 어려움의 원인 축으로 미국을 지목하고 미국의 책임과 이를 극복하기 위해 개인차원의 앎과 실천에 대한 노력과 특히, 대학생들에게 통상적인 것과는 다른 차원의 사회참여를 권유하고 있다.

책을 읽으며 놀라웠던 것은 지금 한국사회가 겪고 있는, 혹은 신자유주의의 강화 때문에 우려되는 미래사회상이 고스란히 지금 미국사회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도 비동시성의 동시성이라고 해야 되나...)

교육, 복지, 경제적 양극화, 시장만능주의 등에서 미국사회가 앓고 있는 문제점들은 지금 우리사회가 고민하고 있는 것들과 거의 일치하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것은 하버드대 잡역부와 조리사들의 적절한 ‘생활임금’보장을 요구하며 학생 50명이 3주간이나 총장실을 점거하고 학교법인으로부터 마침내 승리를 거두는 내용이었는데, 수많은 일용직노동자와 시간제 강사들로 꾸려가고 있는 우리의 대학들과 이러한 사회구조에 대해서는 눈꼽만큼도 관심 없이 장밋빛 미래를 위해 오늘도 열심히 도서관과 토플학원을 죽어라 다니고 있는 이 땅의 대학생들을 생각하며 마음이 울적해 졌다. 

   
 
 






연세대가 말하는 '진리'는 어디에?
[윤효원의 '노동과 세계']학교 청소 노동자 외면하는 연세대
등록일자 : 2008년 03 월 28 일 (금) 08 : 08   
 


  내가 대학 정문을 처음 밟아본 것은 대학에 입학하면서다. 지방 소도시 출신인 나와 달리, 입학 동기들 가운데는 자기가 목표로 한 대학을 고교 수업을 마치고 밤이면 와봤다는 서울 아이도 있었다. 대학은 역시 소도시의 낙후된 고등학교와는 달랐다. 건물도 많고 사람도 많았다. 지금도 그렇지만 한국의 고등학생 누구나처럼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이 꿈이었던 시절을 그럭저럭 마치고 입학을 하고 보니 대학의 경비원만 보아도 가슴이 뛰곤 했었다.
  
  학생·교수·교직원, 그리고 '용역'
  
  모든 대학엔 교훈이 있었는데 대표적으로 서울대는 '진리는 나의 빛'이라고 했고, 연세대는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했고, 고려대는 '자유·정의·진리'라고 했다. '진리', '자유', '정의'라는 말들은 얼굴에 솜털이 뽀송했던 청춘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가치들이었다.
  
  입학을 하니 대학은 세 가지 구성원으로 이뤄져 있다고 했다. 학생, 교수, 교직원이 그것이다. 대학을 다닌 지 1년이 지났을까, 또 하나의 구성원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내가 교직원으로 알고 있던 이들이 교직원이 아니라 '용역'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다. 내가 거닐던 대학 곳곳을 걸레로 훔치던 청소부가 바로 '용역'이었던 것이다. 얼마 후 단과대학 건물의 경비원들도 '용역'임을 알게 됐다.
  
  그때까지 내가 알고 있던 '용역'이라는 말은 경제학 교과서에 나오는 '재화와 용역'할 때의 그 용역뿐이었다. 그 용역이 현실에서 처음으로 나와 대면한 것이다.
  
  정운영 교수의 수업과 예수님의 예화
  
  그 무렵, 훗날 <MBC 100분토론>의 명사회자로 이름을 떨친 고(故) 정운영 교수가 가르치던 마르크스 경제학 수업을 듣게 됐다. 청바지를 즐겨 입고 구내매점 커피 한 잔에 담배피기를 즐겼던 그가 어느 날 질문을 던졌다. "대학교수의 1시간 노동과 대학청소부의 1시간 노동 가운데 누구의 임금을 더 높게 쳐주어야 하는가?" 그의 결론(사실 정 교수의 결론이라기보다 마르크스의 결론)은 둘 다 똑같이 쳐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당시는 교수 사회를 두고 '3T 교수'라는 말이 있을 때였다. 학교에 오면 차(Tea)를 마시고 테니스(Tennis)를 치다가, 퇴근해서 텔레비전(Television)을 보는 게 교수의 일과라는 비아냥거림이 인구에 회자되던 때였다. 그래서였을까. 교수와 청소원의 1시간 품삯이 같아야 한다는 주장도 그럴 듯하게 들렸다.
  
  세월이 많이 흘러 깨닫게 된 것이지만, 대학교수가 1시간 일해 받는 급여와 청소부가 1시간 일해 받는 급여가 왜 똑같아야 하는지는 <신약성경>의 예수가 분명하게 가르쳐주었다.
  
  <신약성경>의 포도밭 주인과 일꾼
  
  포도밭 주인이 아침 일찍 일꾼을 찾아 나섰다. 아침에 만난 일꾼들에게 하루치 임금을 열 냥 쳐주기로 하고 일을 시켰다. 낮에 보니 시장에서 빈둥거리는 사람들이 있어 역시 포도밭에 보내 일을 시켰다. 오후에도 일하려는 사람들이 있어 일을 시켰다. 해 질 무렵 역시 할 일 없이 서 있는 사람들을 만나게 됐다. 주인이 물었다. "하루 종일 일 없이 서 있었느냐?" 서 있던 일꾼들이 말했다. "아무도 우리를 고용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주인은 이들에게 밭에 가서 일하라고 시켰다.
  
  해가 지고 일당을 줄 때가 되었다. 포도밭 주인이 하인을 시켜 "마지막에 온 일꾼부터 처음 온 일꾼 순으로 임금을 주라"고 말했다. 해질 무렵 와서 일한 일꾼들이 열 냥을 받았다. 처음부터 온 일꾼들은 속으로 그보다 더 받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들도 열 냥을 받자 주인에게 불평하기 시작했다. "해질 무렵 온 자는 한 시간 밖에 일하지 않았는데, 어찌하여 땡볕에서 하루 종일 힘들게 일한 우리와 평등하게 대접합니까."
  
  주인이 말했다. "친구여. 나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고 있다. 열 냥 받고 일하기로 합의하지 않았느냐? 너희들의 일당을 챙겨 갈 길을 가라. 내 것을 갖고 내가 바라는 걸 하는 게 불법이냐? 나는 마지막에 온 자들에게도 너희들과 똑같이 주고 싶다. 내가 선한 사람이기 때문에 너희들 눈에는 내가 악마로 보이느냐? 그래서 나중 된 자가 처음 되고, 처음 된 자가 나중 된다고 하는 것이다. 불리어 온 사람은 많지만 그 중에 택할 사람은 적구나."
  
  예수가 바랐던 세상의 임금 체계
  
  <신약성경> 마태복음 20장에 나오는 예수의 예화다. 여기서 포도밭 주인은 하늘의 왕국, 즉 천국을 뜻한다고 예수는 말했다. 천국은 어떤 곳인가, 예수가 바라는 세상은 어떤 곳인가 하는 것을 예화를 통해 빗대고 있는 것이다.
  
  예화에 나오는 포도밭 주인의 말은 한마디로 "얼마를 주건 내 마음"이라는 것이다. 이를 두고 두 가지 풀이가 가능하다.
  
  첫째는 정말 내 마음이라는 것이다. 돈 주고 일꾼을 부리는 사람은 나인데 돈 받고 부림을 당하는 일꾼인 네가 왜 따지느냐는 것. 마음에 안 들면 딴 데 가서 일하면 되지 왜 대드느냐는 전형적인 한국 악덕 자본가의 논리다. 하지만,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말씀하신 예수의 속뜻이 진정 이러했을까.
  
  두 번째 뜻은 정운영 교수 수업의 결론과 이어져 있다. 11시간을 일하든, 1시간을 일하든 일꾼, 즉 노동자가 받는 임금은 같아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11시간을 일한 사람이나, 일하려 했으나 고용하는 자가 없어 하루 종일 기다리다가 늦게나마 1시간을 일한 사람이나 하루 세끼 먹는 것은 같고, 그들에게는 먹여 살려야 할 식솔들이 있기 때문이다.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라고 말한 예수였다.
  
  '저급' 노동, '육체' 노동은 차별해도 되나
  
  물론 정운영 교수가 11시간 일한 자와 1시간 일한 자가 같은 임금을 받아야 한다고 과격하게 결론짓진 않았다. 그는 이른바 '고급' 노동을 하는 교수의 1시간과 '저급' 노동을 하는 청소부의 1시간이 사회경제적으로 평등한 대우를 받아야 함을 강조했을 뿐이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민주주의가 발달하고 일인당 국민소득이 높으며 사회복지가 잘 돼 있는 선진국일수록 '고급' 노동과 '저급' 노동, '정신' 노동과 '육체' 노동에서 대우의 차이가 작다는 점이다.
  
  2006년과 2007년에 간접고용 비정규직, 즉 사내하청 노동자에 대한 차별이 심각했던 프랑스 외자기업 라파즈한라시멘트의 문제를 언론에서 다뤘을 때 네덜란드 체류 경험을 가진 이가 댓글을 올린 적이 있다. 네덜란드에서는 '원청'이냐 '하청'이냐를 떠나 라파즈한라시멘트의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했던 수준의 일을 할 경우, 잘하면 1억 원 가까이 번다는 내용이었다.
  
  네덜란드에 안 가봤으니 시멘트 공장에 필요한 지게차를 운전하는 노동자가 1억 원을 버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점은 원청에서 지게차를 운전하든지 하청에서 지게차를 운전하든지에 상관없이, 혹은 원청의 정규직 노동자이든지 하청의 비정규직 노동자이든지에 상관없이 임금과 노동조건의 차별이 한국만큼 사회경제 체제를 흔들 정도로 심각하지 않다는 것이다.
  
  경비가 하찮은 일이라면, 군대와 경찰은?
  
▲이틀 전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다국적기업 노동조합들을 상대로 한 토론회에 참석했었다. 토론회에는 세계적으로 내로라하는 기업의 노조 간부들이 많이 참석했다. 그런데 이들의 한결 같은 얘기는 회사가 흑자를 연속해서 냄에도 불구하고 정규직을 줄이고 비정규직을 늘린다는 것이었다.
  ⓒ프레시안

  이틀 전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다국적기업 노동조합들을 상대로 한 토론회에 참석했었다. 국제노동기구(ILO)에서 나온 발표자가 노동시장 유연화를 설명하면서 불가피한 외주화·하청화도 있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핵심 사업(core business)으로 간주할 수 없는 경비직(security)이라고 했다. 그러자 인도네시아 라파즈시멘트의 노조간부가 "경비원이나 시멘트를 생산하는 노동자나 중요한 일을 처리하는 다 같은 노동자다. 경비원을 외주용역으로 돌려야 하는 이유가 뭐냐"며 따지고 나섰다.
  
  두 사람의 논쟁을 지켜보던 필자는 라파즈 노조 간부의 주장이 일리 있는 항변이라고 생각했다. 회사의 보호와 안정을 책임진 경비원이 핵심 사업이 아니라서 비정규직으로 돌린다고 치자. 그렇다면 국가 보호와 사회 안정을 책임진 군대와 경찰(national security)을 외주용역으로 돌리지 않을 이유는 뭔가.
  
  이 토론회에 참석한 독일 홀침 시멘트 회사의 중간 관리자급 정규직 노동자는 우리 돈으로 100만 원을 월급으로 받는다고 했다. 1년 전 만난 인도네시아의 라파즈 루핑(roofing, 지붕자재) 회사의 생산직 정규직 노동자는 우리 돈으로 9만 원을 월급으로 받는다고 했다. 이 라파즈 루핑의 노동자는 생계비 걱정에 16살짜리 딸을 학교 대신 시집을 보내야 했다. 프랑스 기업인 라파즈는 세계 제1위의 건설자재 생산회사로 2007년 순이익 증가율이 35%를 넘어선 세계적인 다국적기업이다.
  
  적자라서 비정규직 증가, 흑자라도 비정규직 증가
  
  인도네시아 토론회에는 세계적으로 내로라하는 기업의 노조 간부들이 많이 참석했다. 라파즈(Lafarge), 홀침(Holcim), 굿이어(Goodyear), 하이델베르그(Heidelberg), 아사히글라스(Asahi Mas), 엑손모빌(Exxon Moi) 등이었다. 그런데 이들의 한결 같은 얘기는 회사가 흑자를 연속해서 냄에도 불구하고 정규직을 줄이고 비정규직을 늘린다는 것이었다.
  
  노동조합이 단체협상에서 비정규직 증가의 문제를 제기하면 사측은 한결같이 "적자를 볼 때는 적자라서 비용절감을 위해 비정규직을 늘려야 하고, 흑자를 볼 때는 적자를 대비해서 비용절감을 위해 비정규직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고 말했다.
  
  외주용역 노동자의 '진짜 사용자'는 누구인가
  
▲ 그들에게 질문을 하나 던져봤다. "일을 할 때 오다(job order)는 누구한테 받느냐. 하청업체나 외주업체 관리자냐 아니면 원청회사냐?" "원청회사한테서 받는다"는 한결같은 대답이 돌아 왔다.ⓒ프레시안

  그들에게 질문을 하나 던져봤다. "일을 할 때 오다(job order)는 누구한테 받느냐. 하청업체나 외주업체 관리자냐 아니면 원청회사냐?"
  
  "원청회사한테서 받는다"는 한결같은 대답이 돌아 왔다. 한마디로 원청회사의 관리감독이 없으면 작업이 이뤄질 수 없는 일들을 외주하청으로 돌리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비정규직 문제와 관련해 심각한 사회적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는 이른바 '사용자성(使用者性)'의 문제가 인도네시아에서도 쟁점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사실 사내하청과 외주업체 노동자의 진짜 사용자가 누구냐 하는 '사용자성' 문제는 한국과 인도네시아, 베트남, 태국, 말레이시아, 필리핀은 물론 심지어 미국과 유럽에서도 심각한 사회 쟁점이 되고 있다.
  
  연세대에서 일하다 임금 떼먹힌 비정규직들
  
  토론회를 진행하는 숙소에는 인터넷이 안 되어 저녁에 읍내까지 나가 어렵사리 인터넷에 연결해보니, 연세대에서 청소부와 경비원으로 일해 온 '용역'들이 용역업체의 체불임금에 대한 대학 측의 책임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는 사진 기사가 보였다.
  
  연세대에서 청소·경비 업무를 해온 '용역' 170여명이 용역업체(인력파견업체)의 갑작스러운 폐업으로 임금 3억5000만원을 떼일 위기에 처했다는 것이다. 이 업체는 지난 3월 3일 "감당할 여력이 없으니 노동부를 통해 민원을 제기하라"며 폐업 신고를 했고, 원청회사 격인 연세대는 "용역업체와 해당 노동자들 간의 계약이라 학교에서 책임질 일이 아니다"라는 입장이라고 했다.
  
  <경향신문>에 따르면 연세대는 폐업신고를 낸 업체로부터 2007년 9월 대학 발전기금 명목으로 3억5000만원을 받았는데, 공교롭게도 이 돈은 '용역'들의 체불임금과 같은 규모였다.
  
  연세대가 청소·경비 업무를 외주용역으로 쓰는 것은 경비를 절감하고 학생들에게 더 나은 학업 분위기를 제공하기 위해서겠지만, 연세대는 '등록금 천만 원 시대'를 도래케 한 선봉장 가운데 하나다.
  
  연세대가 말하는 '진리'는 무엇인가
  
▲ 어려움을 당한 노동자들이 그 동안 서울대나 고려대에서 경비를 서고 청소를 한 것도 아닌데 연세대가 이 문제에 책임이 없다는 항변은 옹색하기 짝이 없다. 사진은 청소 용역 노동자들의 모습.ⓒ프레시안

  "가장 약하고 작은 자에게 잘하라"는 성경의 핵심 가르침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ILO핵심노동기준, OECD다국적기업가이드라인, UN 글로벌콤팩트처럼 기업의 사회적 책임(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을 규율하고 있는 국제기준들은 하청·용역업체에서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원청회사가 노력할 책임을 언급하고 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기독교의 핵심 가치를 교훈으로 삼고 있는 연세대의 공식입장이 "용역업체와 해당 노동자들 간의 계약이라 학교에서 책임질 일이 아니"라니 놀부도 이런 놀부가 없다 싶다. 어려움을 당한 노동자들이 그 동안 서울대나 고려대에서 경비를 서고 청소를 한 것도 아닌데 연세대가 이 문제에 책임이 없다는 항변은 옹색하기 짝이 없다.
  
  이 문제가 과연 미국의 기독교도가 설립했고 한국의 기독교도가 운영하고 있는 연세대만의 문제일까. 민족 자본이 설립했다고 자부하는 고려대나 "조국의 미래를 묻는 자 눈을 들어 관악을 보라"고 자부하는 한국 최고의 대학 서울대는 이 문제로부터 자유로울까.
  
  진리가 자유케 하는 '너희' 안에 비정규직이 포함될 수 있는 날은 언제일까. 비정규직을 위해서도 '자유', '정의', '진리'를 외칠 수 있는 날은 언제일까. '조국의 미래를 묻는 자'가 서울대가 있는 관악산 언저리가 아닌 비정규직 문제를 심각하게 바라보게 될 날은 언제일까.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는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가기보다 어렵다."
  
  빈익빈부익부가 날로 악화되는 오늘날의 우리들을 위해 2000년 전 예수님이 들려주신 말씀이다.
윤효원/ICEM 코디네이터
 


 
   


 

 

 

 

 

 

이 책에 나오는 16명은 제각기 다른 분야의 전문가이지만 전 지구적 위기에 대한 원인은 공통적으로 ‘신자유주의’ 혹은 ‘야만적인 자본주의’의 지구적 확대라고 지적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이 러시아에 갔을 때의 일을 들 수 있습니다. 한 언론인이 그들이 작성한 구조조정 문서 사본을 하나 확보했는데, 이 문서에서 통화기금은 러시아의 모든 국영기업을 민영화하고 모든 수입 관세를 없애는 방법을 논하고 있습니다. 이 문서 중간 부분에 이 언론인은 러시아가 아니라 남한이라고 말하는 부분을 보게 됩니다. 검색을 해서 남한을 러시아로 바꿨는데 일부를 미처 고치지 못한 탓이었습니다. 하나의 규격을 모두에 적용한다고 제가 말할 때는, 문자 그대로 남한에 대한 처방을 그대로 러시아에 적용한다는 것이고 이제는 이라크에도 똑같이 적용한다는 겁니다.” -나오미 클라인-


대상이 학생들이다 보니 강사들에게 몇 가지 공통된 인터뷰들이 있었는데 강사들의 진보적인 사상과 이타적인 직업들을 갖게 된 이야기, 그리고 올바른 사회적 진출에 대한 방법들을 학생들은 묻고 있었다.

 

 

“당신의 정열을 따라서 당신이 정말 혐오하지만 가게 될 그곳에서 배우세요. 아마 거기서 훨씬 더 많이 배울 겁니다. 당신은 비참해지겠지만, 그러나 당신이 세상 한가운데서 부서지는 동안 세상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잘못되는 것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될 겁니다.”

 

“당신에게 부닥쳐 오는 것들과 당신을 앞으로 내모는 것들을 붙잡아 그 힘으로부터 앞으로 인생을 어떻게 살지 교훈을 얻을 수 없다면, 우리의 삶을 진정으로 가치 있게 만드는 기본 연결고리를 놓치는 겁니다.” -스와니 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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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뜬한 잠 창비시선 274
박성우 지음 / 창비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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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 기억하고 싶은 문구가 나타나면 책의 윗쪽을 접고 중간에 책을 읽다 잠깐 놓을 일이 생기면 책의 아랫쪽을 접습니다.

이 시집은 책의 윗쪽을 참 많이 접었습니다.

 

삼학년

미숫가루를 실컷 먹고 싶었다

부억찬장에서 미숫가루통 훔쳐다가

동네우물에 부었다

사카린이랑 슈거도 몽땅 털어넣었다

두레박을 들었다 놓았다 하며 미숫가루 저었다

 

뺨따귀를 첨으로 맞았다

 

 

싸전다리

 쌀 됫박이나 팔러  싸전에 왔다가  쌀은 못 팔고 그냥 저

냥 깨나 팔러 가는 게 한세상 건너는 법이라고 , 오가는

이 없는 싸전다리  아래로 쌀뜨물같이 허연 달빛만 하냥

흐른다

 

야 이놈아,  뭣이 그리 허망터냐? 

 

 

건망증

깜박 나를 잊고 출근버스에 올랐다

어리둥절해진 몸은

차에서 내려 곧장 집으로 달려갔다

방문 밀치고 들어가 두리번두리번

챙겨가지 못한 나를 찾아보았다

화장실과 장롱 안까지 샅샅이 뒤져 보았지만

집안 그 어디에도 나는 없었다

몇 장의 팬티와 옷가지가

가방 가득 들어 있는 걸로 봐서 나는

그새 어디인가로 황급히 도망친 게 분명했다

그렇게 쉬고 싶어하던 나에게

잠시 미안한 생각이 앞섰지만

몸은 지각 출근을 서둘러야 했다

점심엔 짜장면을 먹다 남겼고

오후엔 잠이 몰려와 자울자울 졸았다

퇴근할 무렵 비가 내렸다

내가 없는 몸은 우산을 찾지 않았고

순대국밥집에 들러 소주를 들이켰다

서너 잔의 술에도 내가 없는 몸은

너무 가벼워서인지 무거워서인지

자꾸 균형을 잃었다 금연하면

건강해지고 장수할 수 있을 것 같은 몸은

마구 담배를 피워댔다 유리창엔 얼핏

비친 몸이 외롭고 쓸쓸해 보였다

옆에 앉은 손님이 말을 건네 왔지만

내가 없었으므로 몸은 대꾸하지 않았다

우산 없이 젖은 귀가를 하려 했을 때

어딘가로 뛰쳐나간 내가 막막하게 그리웠다

 

 

고추씨 같은 귀울음소리 들리다

뒤척이는 밤, 돌아눕다가 우는 소릴 들었다

처음엔 그냥 귓밥 구르는 소리인 줄 알았다

고추씨 같은 귀울음소리,


누군가 내 몸 안에서 울고 있었다


부질없는 일이야, 잘래잘래

고개 저을 때마다 고추씨 같은 귀울음 소리,

마르면서 젖어가는 울음소리가 명명하게 들려왔다

고추는 매운 물을 죄 빼내어도 맵듯

마른 눈물로 얼룩진 그녀도 나도 맵게 우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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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하느님
조정래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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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TV사극에서 부패한 관리를 쳐부수는 의적들과 그에 맞서는 관리들의 활극을 무심히 보다가  사또나 장군들 밑에서 창과 칼을 들어야 하는 군졸들의 입장이 어떠했을까 궁금한 적이 있었다.

중간급 관리 이상이야 이해된다고 해도 말단 병사들의 정치사회적 위치야 쳐들어오는 임꺽정류의 의적들과 별반 틀린 게 없을 것 같은데 도대체 그네들은 무슨 생각을 가지고 전투에 임했을까?

 국가의 운명을 건 전쟁은 중요하지만 왕과 장군이 아닌 참전하는 일반 필부의 입장에서야 영화 ‘황산벌’의 마지막 장면에서와 같이 살아 남는다는 것, 살아남아서 홀로 남은 어머니, 혹은 처자식을 다시 볼 수 있다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가 아니였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점령국 일본과 식민지조선, 2차 세계대전이라는 개인 삶의 행복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역사의 무거운 수레바퀴 아래에서 식민지 청년이 겪어야 했던 기구한 삶의 여정을 그리고 있다.

개인적으로 몇 백만 아니 몇 천만의 죽음이라는 텍스트 속에 자칫 무감각해지는 전쟁속의 개인과 삶, 죽음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갖게 했다.

전쟁은 궁극적으로 인간을 죽여야 하는 목표를 가진 국가적 집단적 행위이기 때문에 인간 개개인에게는 필연적으로 비극적이다. 또한 국가로 대표되는 집단이 개인에게 가할 수 있는 폭압적 억압의 모든 것을 보여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비극의 종합선물셋트라고 불릴 수 있을 것이다.

식민지청년에서 일본군, 소련군으로, 소련군에서 다시 독일군, 미군포로로 이어지는 식민지 청년의 기구한 삶에서 민족적 ‘울분’보다는 주인공인 신길만이 그의 부모로부터 배워 위험한 순간마다 되뇌었던 ‘관세음보살’ ‘호랑이한테 열두 번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라는 주문(?)의 반복에서와 같이 살아야 한다는 인간 본연의 의지를 이 책에서 읽었다고 하면 내 시각이 너무 개인적인 것일까?

 

많지 않은 분량의 소설이지만 많은 생각을 갖게 만드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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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 2007-04-09 1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돈, 무한경쟁에 몰려, 이리저리 쓸려다니는 작금의 현실도 그러한 것 같아, 역시 비극의 종합선물세트로 몰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인간을 공포, 이겨야 한다는 강박으로 내모는 것이 국가의 집단적 행위이기때문에 인간 개개인에게는 필연적으로 비극이다.

필부의 삶은 넘 고달픈데... ...
 
책만 보는 바보 진경문고 6
안소영 지음 / 보림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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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읽은 책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책 몇 권을 고르라면 그 중에 꼭 넣고 싶은 책 중의 하나가 이 책 ‘책만 보는 바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나로서는 학창시절 조선후기 실학을 여러 갈래에서 꽃피웠던 - 그래서 시험공부를 위해 저자와 그가 지은 책의 앞 글자만 따서 외우기도 했던- 박제가, 유득공, 이덕무가 ‘서자’라는 시대의 장벽에 가로 막힌 인물들이었다는 것과 ‘원각사 십층석탑- 백탑’을 지근거리에 둔 이웃이었다는 점은 뭔가 드라마틱한 느낌마저 들게 했다.

책만 보는 바보... 처음 이 책의 제목을 접했을 때는 책만 그저 좋아 했던 책상물림의 서생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했지만 실제 책의 내용은 서자의 운명으로 태어나 돈을 벌수도 없고, 그렇다고 벼슬길에 나 갈수도 없는 半양반 신세로서 그야 말로 책만 볼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바보 아닌 바보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에는 가슴이 아려왔다.

하지만 그런 시대의 벽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책을 읽고 세상에 대해, 학문에 대해 교류하였던 친구들과 그런 그들을 편견 없이 지켜보며 흔쾌히 인생의 선배와 스승의 역할을 담당해 주었던 홍대용, 박지원은 교과서와 활자 속에서 걸어 나와 참 스승, 훌륭한 인간의 면모로 새롭게 다가왔다.

배고픔과 추위 속에서도 책을 읽는 이덕무의 모습을 어이 없기까지 했지만 묘사가 실감나고 또 구체적이어서 그랬는지 나까지 공연히 배가 고프고 추워지는 느낌이었다.


얼마 전 모 신문에서 우리사회가 이렇게 까지 힘들어 진 이유의 하나로 ‘연대의 실종’을 들었던 것에 대해 무척 공감했었다.

80년의 광주, 87년 민주 항쟁 때와 같이 역사의 고비마다 우리는 학생과 노동자, 넥타이 부대, 자영업자들이 하나의 목표를 위해 격의 없이 어깨동무를 했었다. 하지만 요즈음 사회적 현안에 대해서는 수많은 대책위원회는 많이 만들어지지만 사람과 사람, 단체와 단체 사이의 실질적인 연대는 쉽지 않은 것 같다.


250여년전에 대사동(大寺洞) 백탑아래에서의 눈물겨운 우정과 사람과 사람사이의 연대가 마냥 부럽기도 하고 존경스럽기도 하다.


* 이덕무가 쓴 <간서치전 看書痴傳-책만 보는 바보이야기>에 살을 보태 이렇게 동화 같은 이야기를 만들어 낸 저자 안소영씨는 남민전, 구국전위 사건으로 삶의 오랜 시간을 감옥에서 보낸 수학자 안재구선생의 따님이라고 한다. 엄혹한 군사정권 시절에 사상범 아버지를 감옥에 둔 딸의 심정과 서자 이덕무의 마음이 통하여 이런 글을 낳게 된 것은 아니었는지 주제넘은 상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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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탈로니아 찬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6
조지 오웰 지음, 정영목 옮김 / 민음사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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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찬가’이지만 찬가의 이미지에 맞는 내용은 책의 초입부분을 제외하고는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조지오웰은 처음 스페인을 찾았을 때 전쟁에 참여할 생각은 없었지만, 카탈로니아에서 만난 이상적인 분위기에 압도되어 전쟁에 자원입대하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무엇이 서른을 넘긴 유부남을 다른 것도 아닌 ‘전쟁’의 한가운데로 뛰어들게 했을까?

세계사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을 것 같은 군대에서 마저 상하 구분이 없고, 너와 내가 아닌 우리라는 분위기, 노동계급이 실질적이고 주체적인 역사의 주인공으로 나섰던 내전 초기 아나키즘의 카탈로니아 묘사는 흥미롭고, 마치 따사로운 봄 햇살이 내리쬐는 초원을 연상시키듯이 평화롭고 상큼했다.

오웰 자신이 변변한 전쟁은 치러보지 못했다고 밝히고 있지만 생생한 전쟁터의 묘사마저도 전쟁이라기보다는 한가한 시골 기행문을 읽는 느낌이 났던 것은 스페인 내전에 공화파로 참가한 이 들의 역사적 정당성에 기인한 ‘정의로운 안도감’ 같은 것은 아니었을까?

물론 후반부에 나오는 이른바 1937년 5월 사태의 시가전과 그로 인한 도망, 은폐 등의 묘사는 마치 다큐멘터리 필름을 보는 듯이 급박하게 그려진다.


고등학교때 읽었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의 기억과 ‘스페인 프로축구’의 범상치 않은 지역주의와 클럽문화와 함께 맛 본 스페인 내전에서의 공화파의 정체성은 이 책에서 서술한  분열과 반목을 접하고 나서는 더 이상 그리 정의롭게만 다가오지 않는다.

이 책이 처음 출간 될 때의 상황은 조지오웰이 따로 부록과 같은 5장과 11장을 쓸 수밖에 없을 정도로 오웰의 생각과는 많이 다른 스페인 내전에 대한 경향과 조류가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다른 무엇보다도 확실한 것은 내전 당시 공화파는 분열했고, 스페인 내전의 승리는 파시스트 프랑코에게 돌아가고 말았다는 사실이다.

분열한 당시의 정파들마다, 제 각기 스스로에게 아니면 다른 정파에게 변명과 공격을 할 수 있겠지만 오웰이 분명하게 이 책을 통하여 밝히고 있는 것은 바르셀로나에서 노동자 자치와, 혁명의 분위기 스스로를 거두어들인 것은 다름 아닌 소련의 입장을 대변한 ‘공산당’이었다는 사실이다.

아나키스트 '바쿠닌'과 '푸르동'이 격렬한 맑스 비판을 통해 주장한 ‘공산주의자들의 인민국가’의 위험성을 몇 십년 뒤에 무너져 버린 소련이 아닌 스페인 내전을 통해 먼저 보여주었던 것은 아닐까?


*나처럼 스페인 내전에 대해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었던 사람이라면 책 마지막의 ‘옮긴이의 말’을 먼저 읽고 스페인 내전의 대강의 역사를 이해한다면 훨씬 책 내용을 파악하기기 쉬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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