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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하와이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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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공기에 하고 입김을 내뱉으면 작은 길 안개가 만들어지는 그런 깊은 가을로 접어들었다. 넓은 주머니가 달린 스웨터 옷을 꺼내 입고 팥죽을 맛있게 끓이는 가게에 가 앉아 떨어지는 단풍을 마냥 보고 싶어지는 그런 계절이 돌아온 것이다.



각자 애정 하는 계절이 있겠지만 내 경우라면 늦은 가을을 가장 편애하는 편이다.(물론 아주 여러 이유가 있지만 특별하지 않으니 접어두고손가락이 꽁꽁 얼어서 질려버린 얼굴을 하게 될 때쯤이면 모를 일이지만, 어쨌든 가장 지내면서 곤란하다고 느끼는 계절은 여름이다. 쉽게 몸이 지치는 여름의 무더움을 좋아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그래서일까 하와이처럼 더운 나라에 대한 낭만을 생각해 본 적이 없지 않지만 그렇다고 아름다운 해변을 화보에 나오는 어느 멋쟁이들처럼 미소 만개한 얼굴을 하고 있을 수는 없을 것 같다. 아마 나라면 챙이 집채만 한 모자를 쓰고, 선크림을 덕지덕지 바르고 나서야 소심한 한걸음을 내딛을 것이 뻔하다.

그러나 여름을 사랑하는 사람들 특유의 발랄한 정서나 눈부시게 푸르른 호기로운 느낌 하나는 배우고 싶고 또 부럽기도 하고 그런 마음이 든다. 여름과 같은 계절의 기질이 사람에게 비유된다면 특유의 기운이 내겐 확실히 부족한 것 같다. 여름을 매우 좋아한다는 사람을 만나면 역시 나와는 상반된 다른 또 다른 세계의 눈을 가졌다는 것이 부러웠다. 아무튼 이 깊은 가을날에 갓 지난여름을 되새기게 해 주는 책은 바로 <꿈꾸는 하와이>라는 요시모토 바나나의 여행 에세이이다.

 


다짜고짜 작가다운 게 뭔데!’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나는 영락없이 말문이 막혀버리겠지만 그래도 왠지 작가다움의 기질에는 짙은 가을이나 겨울의 한산함과 차분함이 연상되지 않나 싶다. 그런데 요시모토 바나나는 이런 나의 편견을 비웃기라도 하듯 무려 여름의 나라 하와이를 사랑한다고 시종일관 연서를 쓴다. 또한 보란 듯이 하와이를 사랑하는 그 마음의 일환으로 다소 소설가로서는 쉬이 상상이 가지 않는 훌라춤을 배우는 작가이기도 하다. 그녀가 하와이에 대한 러브레터를 쓰는 내내 느낄 수 있던 것은 참으로 사랑스러운 레이더를 가진 사람이라는 인상이었다.



그녀는 태생적으로 섬이라는 고립과 드넓게 펼쳐진 바다의 트임이 공존하는 물의 기억이 크게 자리 잡은 기질의 사람이다. 하와이를 좋아하게 된 배경에는 이러한 운명의 이끌림이 있었으며 하와이에서 자연과 더불어 가족 친구들과 함께 매일의 행복으로 꾸려 나가는 일상이 펼쳐진다.

그러나 이 책을 보다보면 전개가 잔잔하고 자연의 고요함처럼 느긋한 휴식을 주지만 내내 계속되는 라는 물음의 답에 충분히 화답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

왜 하와이인가, 물론 그것은 그녀의 태생적 운명처럼 자연히 이끌어 온 것이라지만 이곳의 돌출된 매력과 사람들이 사는 삶의 풍경에는 얼마나 진솔하게 녹아 있는지 그에 대한 구체적 수긍은 좀 어려웠다. 그녀의 사색이 깊어 미처 옮기지 못한 탓이라기보다는 휴양지에서의 마냥 즐기는 자에 대한 시선의 낭만이 부유하듯 겉돈 탓으로 보인 것이다



물론 이왕에 먼 곳까지 떠나왔다면 마냥 행복할 자유만이 남아서 꿈만 꾼다 해도 좋을 낭만만 부럽게 펼쳐져도 괜찮을 것이다. 다만 그러한 꿈을 재해석해내는 눈, 작가에게 요구되는 다른 면모랄지, 그게 아니라면 충만한 행복의 희열이라도 뚝뚝 떨어지는 지극히 여름적 열정이라도 자아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인 남는다. 차라리 요시모토 바나나의 열정적인 엉덩이가 연상되는 훌라춤을 배우는 일일이 그려졌다면 나았을 것이다. 사람 얼굴 한 장 안담긴 장엄한 하와이의 풍경 사진을 보고 있으면 절로 이렇게 훌라춤 추는 단 한장의 사진만 못하다는 생각만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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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서의 괴로움]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장서의 괴로움
오카자키 다케시 지음, 정수윤 옮김 / 정은문고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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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서의 괴로움>은 제목에서부터 다소 의아한 두 단어의 조합이라는 점에 고개가 갸웃해진다. 이어 괴로움이랄만한 실체가 과연 한 권을 가득 메울만한가 하는 의문으로 고개가 한 번 더 갸웃해진다. 이 책의 국적인 일본이란 나라를 생각해보면 사실 별의별 오타쿠가 존재하는 나라인만큼 엉뚱한 면모로서 명성이 자자하긴 하다. 그런데 장서에 대한 괴로움만을 가지고 어떻게 책 한권을 쓸 수 있단 말 인건지 자체만으로도 실소가 번지는 일이었다. 보나마나 즐거운 비명 같은 소리나 늘어놓았을 텐데 얼마나 참고 들어줄 수 있을지 읽기도 전에 하품이 여러 번 나왔다물론 이 일련의 생각들은 소설가 장정일의 추천사를 읽기 전까지의 상황이었음을 고백한다

장정일이 이 책을 읽고 나서 평소 자신의 장서 습관마저 바꿀 만큼 잔뜩 겁먹은 모습이라니, 금세 갸웃했던 고개가 바로 잡혀지며 어떤 장서의 괴로움이라는 건지 궁금증이 일었다.




장서가 주는 달콤함이란 어떤 종류의 감정인가.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책을 소장하게 되는 기쁨을 생활의 최고로 여길만하다. 그러다 점점 수집벽으로 이어지고 장서를 이룰 책의 압박이 시작되면 습관의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지게 된다. 제 책장의 광경을 보며 먹지 않아도 배부른 충만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책 모으기의 행복한 여정이란 대게 이 정도의 감당까지를 거느릴 수 있을 때 가능한 모양이다집에서 편히 앉아 쉴 자리조차 책에 점령당해 도무지 생활하기조차도 불편할 지경이라면 아무리 책이 주는 즐거움이 크다한들 새로운 문제에 직면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작가는 이러한 시기야말로 심플하게 내려놓을 때 즉, 책을 버릴 때라고 이야기한다. 이는 단순히 공간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라 내 안에 쌓인 먼지 같은 집착에서 벗어나는 시기로 돌아보라고 말하는데 방점을 둔 묘안이다. 구체적으로 이러한 시기를 인간의 몸 상태와 같은 이치로 비유하고 있는데 장서술이라는 방안의 예가 바로 그것이다.



책은 한권 한권 쓰인 의 의미는 물론이고 내 손으로 오기까지의 여정인, 그 안팎의 역사라는 것이 존재하게 마련이다. 그러니 쌓여갈수록 장서가 주는 충만감의 향기로움에 취해 당분간은 버려질 일이란 꿈꾸기 힘들다. 대게 소장 가치를 우선하게 되기 때문에 아무 책이나 들이지 않는다면 평생 버리는 일일랑 없었으면 하는 게 장서가의 마음이리라.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장서가의 장서는 쌓여만 가는 게 자연스럽다. 물리적으로 한계에 도달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소리다. 제때 결별하지 못하면 잃는 상실감이나 두려움에 함몰되기 십상이니 장서의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책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집이 무너지는 불상사만은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또한 현대인 병이라는 저장 강박증처럼 책 한권 버리는 일에도 가슴이 뻥 뚫리는 큰 상실감을 느끼게 된다면 문제가 있어도 단단히 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저자는 이러한 문제에 관여되는 이 땅의 모든 장서가들의 기쁨과 애환의 감정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진정한 장서가로서의 선험자이다. 책을 소유하고 버리는 일에 관한한 책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과 소통할 수 있는 장서의 관리법부터 주변과 어떤 연대를 해나가며 책을 공유해 나가는지 매우 구체적인 계획을 조사하고 실제 겪어 냈기 때문이다. 평생에 걸쳐 보고 듣거나 직접 겪은 책에 관련한 일화들을 수집하고 어떻게 하면 책과의 현실적이고도 합리적인 결별을 할 수 있는가 등등 될 수 있는 한 자세한 처방책을 이 책은 제시해주고 있다.



책을 읽으면 그 안의 지식과 감동, 정보들로 마치 뇌의 세포가 분열되는 확장의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이런 이치처럼 책이 쌓여갈수록 순환이 빨라지고 원활해지는 순간이 찾아오지만 지나치면 단순히 손아귀에 넣는 감동만이 남겨질 뿐이다. 마치 인간의 혈액순환처럼 일정 속도의 유속이 넘어가면 정체되고 마는 것처럼 장서는 그 속도를 일정하게 유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를 위해 내 안의 어떤 욕심과 집착으로부터 멀어져야 하고 버리는 일에 어느 정도 홀가분함을 느끼게 된다면 비로소 단순화 되는 만큼의 지혜가 쌓인다고 작가는 말한다. 구체적으로 책을 어떻게 팔아야 하는가에 대한 헌책방 주인과의 합리적인 거래 장면이나 1인 헌책방을 고안해 내는 등 장서가라면 한번쯤 대면하게 될 일들이 유쾌하게 벌어진다.



대부분의 사람은 이 책을 보며 장서에 대한 막연한 부러움을 표할 수도 있고, 애초에 한 벽 이상을 채우는 장서가일랑 꿈도 꾸지 않은 현명한 나름의 철칙을 가진 애서가가 존재할 것이다. 어느 경우이든 수만 권의 책을 가지고 싶거나 그렇지 않거나 그것을 박스 안에 묵혀서 빛조차 못 볼 운명이 아닌 장서가가 되야 할 것이다. 대부분의 책은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서라도 비로소 제 주인을 찾아 가는 여정이 합리적인 흐름인 것이다.



이 책은 마치 장서가에게나 유효하고 유익한 이야기나 처방책으로 오해되기 십상이지만 보다보면 어떤 중요한 것들과 결별하게 되는 소중한 체험기라는 데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진다.

마침내 장서의 괴로움에 시달릴 어느 날이 오면 이 책을 읽는 것으로 통렬히 동감하면서, 버려질 책에 대한 매우 이른 추도를 해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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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꾸만 딴짓 하고 싶다 - 중년의 물리학자가 고리타분한 일상을 스릴 넘치게 사는 비결
이기진 지음 / 웅진서가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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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원하는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뿐만 아니라 가시화된 성과로서 열의에 대한 보상을 받고 사는 사람을 보고 있으면 부럽기도 하고 좋은 자극이 들기도 한다. 살다보면 무엇이 좋다고 해서 다 그만한 열의가 가져지는 것도 아니고, 보상을 받게 되는 일도 인과가 보장된 응당의 결과는 아니라는 것을 몸소 알게 될 때가 오기 때문이다. 단 하루라도 좋아하는 것에 성의를 다해 그 보상이 이뤄졌다는 느낌을 받으면, 세상을 다 얻은 듯한 성취감이 드는 것은 참 타당한 이치같다. 하물며 꾸준히 이런 일상을 쌓아간 사람의 인생이라면 당연히 부럽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평소에 남에 대한 관심이 너무 없이 사는 탓인지 내 경우는 사람을 두고 부럽다는 생각까지 가져 보게 되는 경험은 드문 편이다. 그런데 한번 이러한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확실히 지난 나를 반성을 하게 된다거나 좋은 점을 취하는 의식이 생겨서 좋은 자극, 반가운 마음이 들게 된다. 눈에 드는 사람의 관심사가 내 호기심의 발로가 되고 흥분되고 즐거운 나날이 펼쳐지는 것 같으니 부쩍 활력이 생기고 성장하게 되는 계기를 맞게 된다. 

대부분 그들이 일군 면모들이라면, 누구나 노력하면 이룰 수 있는 전문가 수준 이상의 이른바 당연한 성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 수치가 좀 낮거나 혹 못 미친다 하더라도 그만의 독보적이라거나 개성을 읽을 수 있을 고유함이 유별나다면 이 점이 오히려 관건이 되는 것 같다.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사람이더라도 얼마든지 눈여겨보게 되는 구석이 있게 마련이고 그래서 닮고 싶어지는 매력의 향기에 도취되는 일은 얼마든지 생긴다. 

물론 성과에 대한 부분이 가시적으로 가장 눈에 띄는 일이어서 간과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보다 본인이 오랜 세월 닦아온 어떠한 가치적인 것 그러니까 이미지라던가, 향유하는 무엇, 철학이나 사상이 그 대상으로 삼아지는 걸 목격하면 그것이 내 눈에는 확 트이는 경우가 더 많다. 일상을 지배하고 있는 모든 면, 특히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일 수록 내가 취할 것이 생겨진다라는 사실은 제한과 한계를 앞서 무조건 반가운 마음이 든다


 

물론 나는 내가 관심 있어 하는 분야의 사람 이외의 다양한 삶에도 관심을 기울이려는 노력에 자신이 없는 편이지만, 경계를 막론하고 고정관념을 과감히 깨뜨리며 자신이 이룬 세계 너머를 보는 안목의 사람을 보면 언제든지 반할 마음이 준비된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것에 대한 몰입의 광경을 엿보게 되는 순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긴 하지만 이런 순간들이 언제나 수긍이 가는 것은 아닐 수밖에 없는데 그 이유는 현재 내가 아는 지식과 감성으로는 절대로 빠질 수 없는 분야나 깊이라는 것이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전제되어야 그가 가진 정보를 나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는 폭이 생긴다. 완전히는 불가능하더라도 어느 정도 이해되는 경우라면 그 사람의 태도와 동시에 앎에 대한 기쁨을 배가 시킬 수 있어서 증폭될 가능성이 생긴다.

뭐 그렇지 않은 경우라도 감탄에 그칠 수밖에 없긴 하지만 그것은 그런대로 몰입의 태도와 관심사의 저변 정도로 머물러 좋기도 하다. 어느 쪽이든 자극이 되는 사람을 만나게 된 것만으로도 그동안의 나와는 훨씬 더 이해와 앎의 폭이 넓어지는 계기를 맞이하는 셈이다. 거의 내가 가진 앎이란 건 이런 식으로 발전되어 온 셈이다.



물리학자인 이기진 교수의 <나는 자꾸만 딴 짓하고 싶다>를 읽는 내내 머릿속에서 참 닮고 싶은 구석이 많은 사람이구나 싶어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그를 보면서 작가 무라카미하루키가 떠올랐다. 노년에 접어든 하루키와 비교하는 것을 아직 중년인 이기진교수가 듣는다면 섭섭하다 할 지 모르겠지만 중년 이후 이른바 아저씨라 불리는 사람 중에서 하루키상처럼 청년의 감수성으로 무장된 사람을 본 일이 드물다. 바다 건너의 인물까지 빌려와 생각할 만큼 우리 문화권 안에서는 그처럼 귀엽고 재기발랄한 중년을 기대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내 짧은 정보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이 책을 계기로 귀여운 인형도 수집하는 아저씨를 만나게 된 것 만으로도 큰 반가움이었다.

 

 

 


그의 일상을 들여다보면 무척이나 소소하면서도 평화로운 나날이 펼쳐지는 듯 하다. 그 낱낱의 개성에 그만의 고집이 묻어나서 금새 미소가 머금어지고 만다. 사랑하는 마음이 들면 무한한 애정과 동시에 평생에 걸친 우정이 펼쳐지는 광경이란 참으로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받고 싶어지고 그의 오랜 물건들처럼 이러한 가치들이 오래도록 묵혀졌으면 싶은 바람이 들기도 한다. 주변을 환하게 해주는 사람, 작가처럼 자신이 일군 가치들을 끝까지 놓지 않고 늙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이기진 작가가 평생에 걸쳐 해 온 연구 그 곁길의 여정, 일을 해오면서 만나게 된 사람들, 본받고 싶은 가치, 소중했던 만남들에 얽힌 역사가 특정한 물건들에 시선을 멈추어 펼쳐지는 방식이다. 이 방대한 사랑기는 부러 수집하게 되는 유난스러운 수집가의 추억담이라기보다 어느 날의 벼룩시장이라거나, 주변인에게서 뿜어져 나온 소소한 일상인 쪽에 가깝다.

이 빠진 컵, 가늠할 수 없지만 오래됐음직한 목각인형을 사게 된 연유, 하나하나의 인연들을 만난 낭만의 시간과 추억이 서려있다. 그는 왜 그것들에 매료되었는가, 경위를 상상해보는 일도 즐거운 일이겠거니와 이 작은 만남이 자신을 만나고 이후로는 어떻게 펼쳐질지 기대하는 면도 충만한 온기를 전달해 준다. 덩달아 내 주변의 사물에까지 눈길이 가고 생명이 깃드는 일이었다.




여기에 나온 사물들은 대단한 고가의 물건들이기 보다는 오히려 흔한 것, 그 수명이 다하거나 버려진 것들에 가깝다. 그러나 그의 숨결과 이유들이 붙어지는 순간 그것은 더이상 버려질만한 단 한가지의 이유조차 가질 수 없게 된다. 그의 연구실 풍경이 지저분해 보이기는커녕 유달리 놀이를 위한 놀이터처럼 흥미로워 보이는 이유는 추억을 되새김질 할 수 있는 각각의 풍경이 그려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연구를 하면서도 잠시 눈길이 가는 그것을 향해 얼마든지 눈을 감고 여행을 즐길 수 있는 동화같은 이야기가 있다. 보는 것 마다의 향수에 젖어 회상하고 행복해질 수 있는 열쇠를 본인이 쥐었고 또 만들어 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사물에 대한 관심이 그 고유한 가치로서 소통의 매개를 하게 된다는 경험을 이기진 교수는 몸소 전해주고 있다. 이 소소하지만 대단한 지혜를 쌓아간 덕분에 그의 주변은 늘 환할 수 있었던 모양이다.  



불현듯 미처 내 관심이 미치지 못해 소홀했던 주변 사물들에 각각의 의미를 새겨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 묵은 가치에 대한 귀한 의미부여가 한 사람의 유별난 취향으로 기분 좋게 옮아가는 체험은 작은 기적과 같다. 작가의 다정다감한 손길이 고요한 연구실을 밝히고 그 밖으로도 소란스런 풍경으로 전달되길. 언제고 이 기분 좋은 만남을 응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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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세의 여행]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헤세의 여행 - 헤세와 함께 하는 스위스.남독일.이탈리아.아시아 여행
헤르만 헤세 지음, 홍성광 옮김 / 연암서가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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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어쩌면 두고, 떠남이라는 말의 낭만으로 시작되는 일은 아닐까. 새로운 세계에 떨궈진 나의 그림을 상상하는 일만도 설레는 기쁨이지만 그 전에 두다의 홀가분함과 짜릿함이 있기 때문에 배가 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내려놓고 온 것에 대해 망각이 허락되는 순간 여기에서 생기는 에너지로 추진되는 힘이 바로 여행의 동력이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저마다의 경험 치로 여행의 정의를 내릴 수 있겠지만 내가 생각해 본 의미란 역시 이방인일 수 있는 낯선 태도에서 비롯되는 듯 하다. 낯선 상황에 놓일 때에야 느낄 수 있는 흥분과 긍정의 불안 따위의 감정은 여행이 아니고서야 즐길만한 데가 드물다. 이런 양질의 스트레스라면 기꺼이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계획된 기쁨과 흥분을 더해 막상 여행을 맞이하게 된 이후라도 막연한 두려움에서 영원히 해방되는 것은 아니다. 여행지에서 겪게 되는 돌발적인 일들과 낯선 풍경, 수많은 사람들이 일구며 살아가는 모습들 속에서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을 전달받는 것이다. 이는 마치 전시된 예술품을 보는 듯 생경하고도 벅찬 감정에 휩싸이는 일이며 여행을 계획한 순간부터 여행을 마치게 된 날에 이르는 꾸준한 에너지로 전달된다. 이방인일 수 있을때 가능한 일이다. 




수많은 여행서들을 읽고 있으면 여행자가 겪어왔던 황당하고 감동적이며 흥미로운 일들에 동요되기도 하는데 그 중에서도 크게 와 닿는 말이 있다. 진정한 여행의 묘미란 여행 후에 찾아온다는 말이 바로 그것이다. 피곤해진 몸을 이끌고 마침내 집에 돌아오면 역시 집이 최고구나 싶은 안도감이 들기도 하지만 정작 여행지에서는 알지 못했던 일일의 감정들과 의미들이 부유하기 시작한다. 행자라면 이 켜켜이 남겨진 감정들이 여독처럼 퍼져서 내 고유한 감정으로 남게 되는 걸 맞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여행의 묘미인 것이다. 




<헤세의 여행>을 보면 작가 헤르만 헤세의 여행에 대한 진실 된 사랑과 묘미를 섬세하고 지극한 면으로서 느끼게 되는 흥분이 있다. 헤세는 청년시절부터 매료된 여행의 맛 때문에 그 후 지속적으로 여러 나라를 계획하고 그 안에서 수많은 의미들을 만들어간 사람이다.




이 책은 헤세의 평생에 걸친 여행기만을 옮겨 놓았기 때문에 여행에 대한 헤세만의 응축된 철학, 유별난 사랑들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그는 여러 차례 여행지에 대해 헌신적인 사랑’을 강조를 하고 있다. 사랑이 있어야만 낯선 풍경에 기꺼이 귀 기울일 줄 알게 되고, 그 안의 비밀을 풀려고 노력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아무리 낯설고 생경한 풍경이라도 단순히 다름을 인정하고 감탄에 머문다면 그 비밀까지 푼 것은 아니게 된다.

물론 헤세는 여행자라고 해서 모든 것을 보거나 알려고 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적어도 자신이 주목하게 된 것이 있다면 집요한 사랑을 통해 그 비밀을 벗겨 버리는 수고를 감내하지 않을 수 없는 '여행자의 자세'를 배우게 된 것 같다. 이러한 노력이 있다면 그 하나의 비밀만으로도 여행의 충만함이 느껴질 수 있는 노릇이다.



 

이어 헤세가 여러 곳곳을 떠나면서 얻게 된 중요한 사실의 또 한가지는 세계의 비밀로 들어가게 된 열쇠를 쥐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의 작품이 세계인들의 가슴을 열고 사랑을 얻게 된 공감대가 성취된 까닭도 바로 이러한 토대 위에서 잉태 된 값진 노력의 산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신이 서있는 세상 이외의 전혀 다른 곳에서의 삶에 귀 기울이고, 그들의 역사와 개성을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에 훨씬 더 이해받고 소통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단순한 이질적 체험만을 위해 떠난 것이 아니라 진정 다름과 자신을 연결하는 노력을 기울이는 태도가 중요했던 것이다. 그래서 헤세의 일상에는 굳이 여행이 아니어도 소풍 정도의 풍경에서도 충분할 수 있다는 믿음을 준다. 헤세의 여행은 이러한 식의 노력하는 시선과 따뜻한 관심으로 내내 행해져 온 것이었다.


 

헤세가 말하는 또하나의 여행의 본질에는 체험을 수반해야 한다라는 점이 중요시 된다. 물론 그처럼 이해의 폭이 넓은 사람에게는 상상만이어도 체험 이상의 것일 수 있다라는 확신이 들긴하지만 어쨌든 그는 경험치 이상일 수 없다는 단호함을 가진 듯하다. 상상은 직접 세상을 통해 보고 느낀 경험을 바탕으로 더욱 공고해지고 발전되어 풍부해 질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이라면 체험의 본연에는 타자화된 정신적 관계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헤세가 말하는 여행에는 풍경이 주는 낯선 일상과의 관계 속에서 사람들과의 소통, 서로 잇고 맺어지는 이해의 정신적인 관계가 매우 중요시 된다그러한 환경 위에서 자신과 세계가 진정으로 연결되는 일 일수 있다는 것이다.

그가 여행에 대한 참 의미들을 되내기 위해 어떤 여행을 계획하고 즐겼는가, 내 안의 편견과 맞서고 알게 된 의미 이상에 도전하는 노력을 얼마나 기울였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덧붙여 그가 세계 곳곳을 여행했던 일화나 소회들을 떼어 놓고, 단지 여행자로서의 태도만으로도 마치 생경한 여정을 경험한 것 같은 영감을 준다. 헤세가 여행을 시작한 시기는 사실 해외여행이라는 말도 거의 생소하던 때여서 인류가 거의 처음 향유하게 된 진정한 시기였다고 봐도 무방할 듯 하다. 막 세계화에 눈뜨고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게 된 시기가 도래하여 지성인으로서 열린 마음으로 임한 최초의 시절을 그는 직접 목도했고 경험한 것이다. 그래서 여행을 임할 때 선험자의 충고나 질서 없이 오롯이 자신일 수 있었고, 그래서 진지했으며 귀한 마음으로 그 하루의 감사함을 담는 큰 그릇을 가질 수 있었던 것 같다.



이러한 헤세의 여행에 대한 물음과 답을 통해서 느끼게 된 점은 단순히 재미있는 이질적 풍경이나 에피소드에 지나지 않고 그곳을 관통한 어느 한 사람의 중요한 자질을 보게 되었다는 점일 것이다. 타인이 사는 풍경을 들여다봄으로 내가 사는 이유를 돌아보고, 여러 의문과 다른 시선들이 나의 공허한 부분이 채워지거나 또 비워내는 피드백을 받게 된 점은 여행자가 지닐 궁극의 모습일 것이다

헤세가 남긴 여행기에는 우리네의 삶, 어떤 마음으로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이 어느 정도 해소되는 진기함이 있다. 이러한 보편적 일상과 가치들이 삶의 안목들을 비약적이게 고양할 수 있고 여행을 꿈꾸는 여행자들의 마음에 불을 지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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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공간들, 되살아나는 꿈들
윤대녕 지음 / 현대문학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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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여정을 꿈꾸게 되고 건너편 능선 너머를 바라보게 되는 고요하고도 벅찬 울림의 시간이 내내 함께 하였다. 윤대녕의 신작 <사라진 공간들, 되살아나는 꿈들>을 읽으며 들었던 함의들을 상기해보면 작가가 전하는 바가 어쩌면 생각의 활에 관한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늘 자발적 혼자이기를 원했고 은둔의 초라함을 들키는 데에 부끄러움 없었으며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다른 공간에 대한 방랑자 신세를 즐기는 사람이라, 그는 대체 어떤 사람인가. 작가의 이 상반되는 기질의 아이러니가 소설가라는 사람들의 나이테에는 자연스럽게 새겨진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였다. 처음에는 너무 함몰된 외로움에 빠진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지만 이제 그를 많이 이해하게 된 것 같다. 



작가가 생각하는 상상의 활은 언제나 때가 되면 유연하게 휘어져 기필코 발끝이 닿는 그 어딘가를 향하게 만들고 그것은 또다른 능선으로 이어지곤 한다. 그리고 책을 읽어가면서 알게 된 것은 그 방랑벽이 내키는대로 마구 행해졌던 것이 아니라 나름으로는 매우 규칙적인 삶으로부터 비롯되는 인과의 결과인 듯이 행해진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뭐 막무가내여도 상관은 없었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는 짐을 꾸려 어디론가 향하는 충동적인 일련의 행위조차 일정한 패턴이 있음을 말해 주었다. 어려서부터 시작된 가출의 기억, 청년 시절 본격적이며 주기적으로 ‘떠남’의 행위가 마음으로 수시로 들락거렸고 일정한 때가 오면 다급한 신호로 자신만의 체계와 질서를 허물고 다시 짓게 되는 수많은 만남들로 이어졌다. 이제 그의 인생에서 여행이란 당연하고도 아주 중요한 주름처럼 집요하게 잡혀져 있다.




이 책은 작가가 고백하는 유년기로부터 시작되는 외로움과 공간에 대한 남다른 인식에 대한 진실의 고백서이다. 덧붙여 나는 이제 더 이상 윤대녕과 같은 ‘문어체와 같은 구어체’를 실제로 구사하는 사람이 별로 남지 않았음을 새삼 아쉬워 하면서 들려오는 이 독백과 대화를 특유의 정취로서 기억하고 싶었다. 그의 소설들이나 에세이를 보면 그의 담백한 어조와 느린 여유로움의 정서가 느껴지곤 한다. 허구의 풍경과 실제 그의 삶이 들려주는 추억 저편에서의 말들은 그가 배운 이전 세대들의 유교적 예의와 성찰이 그의 말 끝 손 끝에 매달려서 그 맥이 다하였음도 알게 된다. 이와 더불어 그의 소설이나 에세이에서 공간을 기억하고 묘사하는 데에는 과연 능가할 작가가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섬세한 구축이 아주 그럴 듯 하게 비춰진다. 그래서일까, 읽는 내내 다음 공간을 기대하게 하고 그래서 책을 손에서 내려놓지 못하게 하는 문학의 진수가 펼쳐지는 것을 자주 목도하게 된다.




가끔씩 등장하는 묘령의 여인들과의 인연이 시작되고 끝난 곳, 할머니와 어머니의 자궁을 연상케하는 부엌의 품, 눈과 마음을 씻던 수많은 공간과 특별한 추억들이 도사리는 곳, 그에게 이러한 공간들은 얼마든지 있어 보인다. 세상 어느 곳에라도 그의 마음이 머물면 특별해지는 마법이라도 전수되는 일처럼 보이기도 하고, 죽는 날까지 이어질 인연들을 생각하면 무척 부러워진다.



언제라도 길의 잠을 깨워 그곳의 소리를 전해 듣고 자신이 꼭 가야할 곳을 찾아 몸을 눕히고 또다시 은둔의 시간을 맞이하는 모습은 또 어떤가. 비록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잘 헤아려 소통 하는 데에는 서툴지 몰라도 어려서부터 내내 익숙한 자연과의 소통에는 능통한 것 같다. 작가의 ‘떠남’에는 어떤 특정한 환경에 매료되었다거나 특별한 애착으로 공간을 기억하여 수반되는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는 다만 어디론가 떠나있다는 행위 자체만으로도 그 공간의 별날 것 없는 것들도 으례 승화되기 마련이다. 수반되는 공간에 대한 애착 정도로만 그의 ‘떠남’에 대한 근원을 찾아볼 수 있을 따름이다. 더구나 이 공간들은 점점 사라지고 있는 추세이다. 즉 그것은 대게 그의 외롭고 한적한 정서와도 맞물려 전해진다. 그래서 늘 그가 머문 공간은 서늘한 그늘로 탈바꿈되고 만다. 아홉 살 때 떠나온 고향집의 부엌이나 우물의 상징, 견디기 힘든 단칸방에서의 생활, 그의 유년시절을 꽉 채운 결핍과 외로움의 결정체로 기억되는 정서의 바탕에는 가족사가 있었고 공간과 개인의 역사가 맞물린 인과가 틀림없이 일고 있다. 그곳을 추억하며 어떠한 서늘한 이미지로 각인될 수밖에 없는 이유들이 추억을 더듬다 보면 연관이 있다. 작가는 아직도 때가되면 어디론가 집필의 목적으로 일정기간 머물 곳을 찾아 떠나며 그곳에서의 이질적 체험과 상상력을 바탕으로 더욱 그의 소설이 윤택해졌음은 말할 것도 없는 것이다. 





그가 달렸던 수많은 국도와 길들이 이어지는 상상을 해본다. 그리고 발길 닿은 어느 곳에서의 특별한 만남들에 깃이 세워지고 그것들을 따라가다 보니 절로 운율과 리듬이 생긴다. 그의 인생은 어쩌면 좋아하는 교향곡의 악보를 닮았는지도 모르겠다. 사라진 그곳들을 상기하면서 다시 복원하는 글쓰기를 하는 것은 그의 귓가를 맴도는 노래에 대한 당연한 기술인 것이고 계속 이어질 웅장하고도 슬픈 어떤 선율을 만들어 내는 중이다. 작가의 길을 따라 그가 잃어버린 수많은 공간에 대한 아주 깊고 슬픈 애도를 전하고 싶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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