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퍼케이션>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바이퍼케이션 1 - 하이드라
이우혁 지음 / 해냄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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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그럴 수만 있다면 이런 류의 이야기에는 뭔가 상징하고 은유로 내포하는 것이 많으면 많을 수록 훨씬 그럴 듯 해진다. 아무리 사소한 단서라도 감추고 일단은 속여낼 수 있어야 한다. 아무도 생각지못한 스토리를 연결하고 그 안의 여러 상징들을 부여하며 질러내기 보다는 은은하게 전달하는 것, 이것이 바로 좋은 글이요 예술이리라. <바이퍼케이션>은 설명보다는 인물간의 문답이 주를 이루는데도 표현 하나하나 내포하고 있는 뼈의 순도가 깊고 증폭되는 여운이 크다. 3권이라는 방대한 장편소설임에도 작가는 그 의미하는 바를 시적으로 담백하고 철학적이면서 아름다운 말로 전달해준다. 그래서인지 그 안의 의미들을 가만히 들여다보게 하는 매력이 있다.
광기어린 살인장면의 묘사라던가 세상의 온갖 끔찍한 사건들의 집대성과 같은 표현들은 온 세포를 팽창시키면서 읽기를 두렵게도 만들지만 이내 이를 끔찍하게 생각하는 일도 그만두게 된다. 내성이 생기듯 간결한 이미지로만 남아 아름답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이것은 <바이퍼케이션>을 경험하는 독자라면 통과의례처럼 느끼게 되는 고비이자, 탄복의 순간이 될 것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악행에 혐오하는 마음으로 시작된 마음이 나중에는 오히려 불쌍한 영혼이란 생각이 들게 만드는 작가의 재능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 자를 긍휼이 여기라는 얘기는 단 한줄도 나와 있지 않다. 다만 악마라는 존재의 근원이 궁금해지기 시작하고, 그들은 어쩌면 우리들 한명한명이 내뿜은 '악'의 기운이 모여 만들어진 씨앗의 성장물은 아닐까 그렇게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소설은 정말 이렇게도 엄연히 다른 막다른 길로의 초대를 한다.   

장마다 서두에 배치한 신화 얘기나 살인마들 얘기를 보고 있으면 넋을 놓아버릴 만큼 몸서리 치는 아찔함을 느끼게 된다. 신화 얘기야 그렇다 치더라도 세계 어딘가에 있었던 살인마들의 실제담은 도저히 인간의 탈로는 상상할 수 없는 만행들이다. 인간이기 보다는 상상만으로 존재하는 '악마' 그것의 재림같다. 여기 나오는 헤라클레스, 탄탈로스, 하이드라 등 상징되는 신화 속 인물들은 모두 이 살인마들의 면면에 닮은 구석이 있다. 아마도 이 '악마'들의 근원을 하나로 몰아가기 보다는 여러 살인마의 여러 모습으로 즉 12개의 머리를 한 뱀의 모습처럼 그려내고 싶었던건 아닌지 생각해보게 된다. 악마를 추격해나가기 위해 FBI요원인 천재 에이들과 강직한 형사 가르시아는 목숨까지 내던지며 폭주하는 악마의 힘과 맞서 싸운다. 가르시아와 에이들 둘 다에게 아픈 과거가 있고, 여기 죽거나 살인자가 된 인물들도 모두 각각의 어두운 과거가 있다란 공통점이 있다. 악마는 인간을 좀비처럼 영혼없이 제 뜻대로만 움직이게 할 수 있는 힘을 얻는데 그것은 모두 그들이 원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악마 그도 온전한 육신은 없는 결핍된 자다. 그를 포함은 모든 자들에게는 마음 속의 어둠이 있고 그것은 무언가로부터 결핍된 상실의 증거다. 바로 이 불신과 불행의 씨앗이 증폭되어 악마를 키워냈고, 당연하듯이 참극이 벌어진 것 뿐이다. '신화는 과거의 거짓일 뿐, 영웅놀이는 가족의 사랑같은 거짓 진실보다도 더 거짓이다. 너의 가식어린 사랑만큼이나'라고 경고하는 말처럼, 표면에 보이는 그럴 듯한 이해와, 사랑과, 진실이 사실은 가식일수도 있으며 본질은 어쩌면 이기의 산물에 더 가까울 수 있다란 무시무시한 언질을 해준다. 그렇다면 이것을 어떻게 발산하느냐가 문제다.
사람들을 가장 공포에 떨게 하던 것, 자신을 해하게 되거나 누군가를 해하는 일. 이것이 악마의 종용이라고 믿지만 이것도 착각에 불과했는지도 모르겠다. '너의 본질을 건드린 건 아냐, 내가 건드린 본질은 네가 아니라 권총이었어.'라고 말한 것처럼 내 안에 어두운 마음이라는 두 본질을 깨닫는데 사람들은 익숙치 못하다. 양면의 얼굴을 하고 끊임없이 이성과 질서의 기준에 의해 이기를 억눌러야 하는 존재라는 것을 믿기 힘들 것이다. 이런 면에서 소설은 신화속 주인공들의 과업이나 숙명들을 통해 그들을 닮은 인간의 본질 그 철학적인 물음에 더 가까이 가보라고 권한다.
 

소설을 읽으면서 몇번이고 놀라게 되는 것은 전혀 예측가능하지 않다란 점이었다. 만약 헤라클레스가 누구인지, 리온은 어떤 자인지, 하이드라가 누구인지 궁금증을 갖는 순간 가장 가까운 곳의 인물부터 의심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거의 모든 예상을 가능하지 않게 했다. 작가는 가장 독창적이면서 그럴 듯한 캐릭터를 등장시키고 마지막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도록 새롭고 보다 강력한 파워를 가진 인물을 상상해냈다.
오랜 구상 기간을 걸친 작품답게 헛점을 드러내지 않는 치밀한 구성과 상징하는 철학적 의미들로 여러번 곱씹어 보게 만들고, 가능한한 독자가 어렵고 지루해 하지 않도록 쉬운 말로 설명해준다. 작가가 근본적으로 의도했다던 재미를 위한 소설임에 틀림이 없었고 그래서 어렵지 않았다.  

세상이 우리가 믿는 오감, 육감 차원을 넘어선 다른 감각에 의해 설명될 수 있는 현상이 있다면 바로 <바이퍼케이션>에서 말하는 알 수 없는 '힘'의 느낌과 비슷할 것 같다. 분명 이 소설은 우리가 믿어의심치 않는 것들에 대해 의문을 던지고 무시무시한 도전을 대리해준다. 느끼고 아는 것만 진실이라 명하고 본질이라 착각할 게 아니라 알 수 없는 차원의 감각도 진실일 수 있다고 의심하라. 아무도 헤라클레스를 못보았지만 어딘가에서 과업을 마저 이루려는 그 힘을 한번쯤 의심하고 상상할 자유를 느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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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코브마을의 모두 괜찮은 결말>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우울한 코브 마을의 모두 괜찮은 결말 디 아더스 The Others 1
크리스토퍼 무어 지음, 공보경 옮김 / 푸른숲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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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누구하나 제정신인 사람이 없다. 오랜 일상의 반복이던 고요한 마을의, 아니 조용하고 평화롭다 못해 권태로움이 산을 이룬 코브마을에 이 무슨 해괴한 일이 벌어지려는 걸까? 

평범한 직업으로 돈을 벌고, 멀쩡한 집에 살며, 어제와 다르지 않은 식사를 하는 코브마을의 사람들이지만 소설은 그 평온한 얼굴 뒤에 감춰진 '우울의 그림자'를 서두부터 흘린다. 그것은 한 여성의 자살사건으로부터 툭- 터져서는 사람들로 하여금 더이상 어제와 같은 오늘로 살아갈 수 없다고 선언한다. 이미 내면에 포화 상태로 그득한 암울한 기운은 마을을 기괴하고 떠들썩하게 변화시킨다. 어쩌면 집단으로 투약되던 약의 정체때문일 수도 있다. 항우울제를 먹어서거나 유출된 방사능때문이거나 여기 나오는 인간과 바다생명체는 뭘 먹고 미친 존재들이긴 하다. 그렇지만 약만으로 단지 환각에 빠지고 금단증상으로 성적변태가 되던가 말던가는 소심한 의사 잭의 애송이같은 처방전처럼 제대로 된 진단일리 없다. 
생각보다 더 이상한 기운으로, 마을 전체를 감도는 그 무엇을 알아 내야만 했다. 그걸 알고 싶다면 사람들처럼 엉터리 약이라도 삼키고 시오의 옷자락을 잡으며 따라 나설수밖에 없다.   

유쾌하고 짓궂은 인물들의 말과 기괴한 행동들 바다괴물의 도발과 귀여운 도술력, 작가는 도무지 어울리지도 않는 상상의 결합을 시도때도 없이 선보인다. 과연 듣도 보지도 못한 마을의 분위기를 기막히게 독창적으로 그려내는 것이다. 해괴한 판타지 이야기로 읽다보면 진지한 풍자소설인가 싶기도 하고 우왕좌왕 이 책의 정체는 무엇인가 고민하고 있을 때 비웃는 듯이 우화 하나를 들려준다. 가수 캣피쉬가 '블루스 정신'을 찾아 동료와 함께 겪게 되는 이야기가 그것이다. 네 다리 중에 두다리는 누구것인가 하는 처용가가 언제부터 블루스 정신의 관문이었나 싶고, 인생의 온 쓴맛은 마다할 것 없이 저지르는 두 사람의 인생사는 직업정신의 함양을 넘어 눈물겨운 수도생들의 진리탐구의 여정 같다. 그러나 불행히도 정신세계란게 역시 일부러 체득되는 일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과연 캣피쉬가 부르짓는 블루스 정신이라함은 무엇이던가? 그것은 인생의 고통, 우리말로 하면 '한'을 느끼는 일일테다. 그러나 그것도 결국 마음 안에 달린 문제이지 억지로 깨우쳐 줄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뭔가 그래야만 하는 관념의 틀을 벗어나 나만의 것을 찾은 그 뒤에라야 정신도 자연스럽게 생기는 일이다. 그런데 그런 캣피쉬도 진짜 블루스정신을 알기나 했을까. 그걸 실패했기 때문에 그도 자책에 시달리며 평생을 살아오지 않았을까.
여기 우화에서 말해주는 궁극적인 물음의 단서가 하나 포착된다. 나만의 고유한 정신이라는 것. 그것은 무엇일까? 이건 어디에서 오는 거지?  

 
싸구려 배우 노릇의 몰리는 비록 가장 미쳐 보이긴 하지만 자신이 하고싶은 일에 대해서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그랬기 때문에 가장 처음으로 마음을 열었고 다른 세계를 받아 들인 최초의 인물이 된다. 서서히 사람들도 자신의 물음들을 건져 올리기 시작한다. 도통 대마초없이 견뎌낼 수 없을 것 같던 시오도, 우울을 먹고 사는 메이비스와 게이브, 윈스턴, 에스텔 그리고 제 놀던 밭을 떠나온 바다괴물 스티브도 모든 인물들의 문제 저변에 '상실'이 숨어 있었다. 무엇을 잃어버렸는지도 모른채 자꾸 채워내다 보니 그것은 폭력적이게 변해간 것이다. 자학을 하기도 했고, 타인을 향해 냉소를 취하거나 세상과 단절하는 그야말로 미치지 않는게 이상할 정도의 메마른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래도 결국 소설은 스스로를 돌아보고 제자리를 찾게 되는 해피엔딩을 말해준다. 살다보면 방사선이 온 바다를 서서히 물드는 일처럼 우리에게 우울의 기운이 온 정신을 마비시켜 정지상태에 이르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때문에 뭔가에 의지하고 세상을 향해 냉소나 날린다면 결코 그 늪을 빠져나올 수 없다고 경고한다. 병들어 죽어가거나, 잃어버린 태초의 내 정신을 다시금 가다듬어 보는 일, 이것이 가장 근본적인 탈출 방법은 아닐까. 코브마을 사람들도 자각에 이르는 순간 각각의 응어리져있던 마음의 문제들로부터 스스륵 풀려나게 되었다. 이제야 사람들과 바다괴물은 저마다의 레이더망으로 상실했던 제 본 모습에 좀 더 가까이 가 볼수 있게 되었다. 
오롯이 혼자서 촉수를 곤두세우면 되는 이 간단한 노력을 사람들은 한바탕의 큰 신고식을 치뤄서야 찾게 된다.  

에둘러서 아주 길게 돌아온 여정이었지만 각자 돌아갈 곳을 알맞게 찾아간 해피엔딩의 이야기인 <우울한 코브 마을의 모두 괜찮은 결말>. 사람은 본디 온정을 품은 마음을 가지면 되고, 냉소 따위는 넓은 바닷물 속으로 던져 버리라고 스티브는 전령처럼 나타났던 것일까? 제 짝과 바닷속 어딘가를 유영하고 있을 녀석의 힘찬 물질처럼 사람들도 크게 한 발 내딛는 용기를 얻는다. 각자의 자리에서 나를 있게 해준 내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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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마>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카르마
이상민 지음 / 푸른물고기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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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카르마(業)라는 제목처럼 인생사 결국 '뿌린대로 거둔다'라는 듯이 흘러간다. 잘못은 반드시 응징되고 선과 악이 극명히 갈려 상식대로 살았다면 세상 불공평하다고 투덜댈 일 없을 만큼 명확하다. <카르마>는 이런 명징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기만하고 횡포를 일삼는 상류 집단, 이들을 경멸하면서도 기생해가는 비열한 인간, 불륜과 배반으로 상처입고 복수를 꿈꾸는 인간, 그리고 이들의 희생양이 되는 영혼과 비밀을 밝혀줄 숙주 영매 채널러. 이 복잡한 악연 속에 10년 전 어느날 폐교와 영흥산장에서의 사건이 문을 두드린다. 끔찍한 살인사건의 은폐는 훗날 그 업이 어떻게 맞물려 되갚아지는가를 보여준다. 이야기는 어렵거나 복잡한 전개 대신 복수라는 화두를 충실히 실행하기 위한 차근한 전개로 한 챕터씩 넘어간다.  


<카르마>에서 보여주는 방식은 마치 영화를 보는 듯이 화려한 이미지를 불러 일으키고 작은 소리도 귀기울일 만큼 집중력을 발산한다. 그러나 이것이 모두 '복수'만을 위한 미끼일 뿐 알맹이 없는 급급한 전개로 일관해 아쉬움을 남긴다. 초반부터 '거대한 비밀'이라는 초강수 두고 다양한 인물관계로 풍성한 이야깃거리를 기대하게 하지만 결국 그들의 지금은 없다. 인물도를 보면 모두 겉핥기식의 관계로 설정되었을 뿐 각각의 캐릭터를 그들의 생활과 인생에서 찾기는 어렵다. 모든 인물은 10년전의 사건을 위해 단순한 성격이 주어지고 따라서 독자는 인물에 대한 애정이나 생생한 매력을 찾기 어렵게 된채로 멀리 떨어져 관람하게 된다. 보다 신선하고 예상을 뛰어 넘는 캐릭터가 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또한 과연 어떤 일이 펼쳐질까의 물음 하나만으로 견디기에는 과거의 사건이 너무 미약하다. 영석의 예만 하더라도 위시적인 태도를 응징할만한 현실적인 문제는 짚여지지 않았다. 자리가 위태로울 위협같은 것도 없고 부인의 빙의현상과 맞물린 갈등도 얕은 수준에 그친다. 진연과의 관계 역시 뚜렷히 정리되지 않은 것은 매끄럽지 못한 것이다. 거의 모든 인물들에게 이런 식의 문제가 있는데 과거의 그 엄청나다는 사건 하나만을 파헤치기 위해 현실의 문제가 미처 다뤄지지 못한것은 갈등 구조를 보다 다차원적으로 꾸미지 못한 이유일 것이다. 거의 다 읽을 때가 되서야 모든 비밀이 드러나는데 여기에도 클리셰가 느껴진다. 영흥산장에서 벌어진 사건이라는 게 남자들만의 비밀이란 단서와 맞물리면 어느정도 가닥이 잡히기 때문이다. 예상을 뛰어넘지 못한 스토리가 마지막에 그대로 펼쳐보일때 독자로 하여금 더이상 호기심을 유발할 수 없다. 폐가에서 벌어진 살해와 집단광기라는 것도 납득하기 어려운 데가 있어서 세련된 전개라는 인상을 주기는 어려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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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미가제 독고다이>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가미가제 독고다이 김별아 근대 3부작
김별아 지음 / 해냄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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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별아 작가의 신작 <가미가제 독고다이>는 무엇보다 서사의 힘이 얼마나 큰 소용돌이를 몰고 오는 지를 보여주는 단단한 장편이다. 크고 작은 응집된 이야기들이 독자의 눈과 귀를 홀리고 이게 피맛인지 달달한 맛인지 헷갈리게 만드는 아이러니한 매력을 가졌다.  

삼대에 걸쳐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의 지난한 역사를 되짚는 <가미가제 독고다이>는 당시민들의 자취를 독자로 하여금 역사책 밖의 이야기로 이끄는 점이 흥미롭다. 아마 장편소설 3권쯤 읽어낸 기분을 맛볼 수 있을 만큼의 풍부한 상상의 나래가 일품이다. 
또한 아무개의 사람들이 과감하게 '내 인생에 스포트라이트를 켜'라고 당당히 말하는 것은 분명 백범이나 미실, 논개 실재 인물들의 재구성인 상상력과는 또다른 맛이 느껴진다. 마음대로 상상해도 좋으니까, 혹시 범할만한 왜곡이란 장애물 없이 오롯이 솔직한 매력으로 승부한다.
'가미가제라 불리운 일본 자살특공대의 한국인...' 이 기막힌 한문장으로 부터 출발한 상상의 고리는 사내가 살아온 삶은 물론 한시대의 어두운 그림자를 드러내며 과거로 거슬러 올랐다가 그 연원의 단서들을 설득해내고 아래로 휘몰아쳐 흐른다. 어떻게? 당돌하고! 화려하게!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이라면 역시 역사적 대업과 이어지는 가지치기로의 삶이라는 예상되는 방식을 보기 좋게 빗나간다는 점이다. 한 개인의 삶 안에서 역사를 엿보게 하는 의외성이 있다. 역사의 운명을 쥐고 흔드는 단 한명의 영웅의 이야기가 아니다. 평범하다고도 볼 수 없을 정도로 천하고 기회주의적인 행태를 아주 천진하고 우스꽝스럽게 그려낸다. 사회가 요구하는 것과는 반대의 길을 걸어가면서도 어떻게 이 고난을 지나가는지 봐줘- 라고 당돌하게 말한다. 그것을 지켜보기란 숨죽이며 한장 한장 넘기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거 역사 속 영웅담 보다 더 재밌다.    

백정 마을의 정경이나 구수한 입담, 앙큼한 캐릭터를 보는 것 만으로도 과연이구나 싶을만큼 작가의 상상력에 입을 다물지 못할 것 같다. 대관절 이 백정의 삶이 '독고다이'란 제목과 무슨 상관이 있으려나 따위의 생각일랑 진작에 접어두고 푸줏간의 살코기마냥 덜렁덜렁 놓여서 이리저리 끌려다녀도 좋을 것 같다. 이어지는 하계운 세대로 넘어가는 게 못내 아쉽고 그곳을 떠나 소식이 끊겨버린 데에는 섭섭함마저 느껴질 지경이다. 어쨌든 온갖 고생을 마다하지 않고 악착같이 돈을 벌면서 연줄에 매달리고 그 와중에 뿌리를 찾는다고 족보까지 사들이는 모습은 돌팔매질 대신 애처로운 눈길이라도 보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그의 아들인 모던보이 하윤식과 독립운동가에서 출신의 충격고백으로 돌연 앞잡이가 된 하경식 이야기까지, 평범한듯 보이지만 결코 순탄치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저 잘 살고싶은 욕심 하나로 버텨낸 파란만장한 인생이란 이들을 두고 하는 말 같다. 그네들도 결국 역사의 그림자에서 자유롭지 못한 가련한 삶이었다. 그래도 이들에게 보루 따위란 있을리 없다. 왜냐하면 지금의 그들은 다름아닌 그들의 선택인 인생이었기 때문이다.   

<가미가제 독고다이>에는 저마다의 '사랑'이 있다. 어떻게 보면 삼대 모두 '순정파'의 면모를 자랑하는데, 윤식이가 자살특공대 요원이 된 연유도 여기에 있지 않은가. 보는 내내 '이렇게도 살아간 사람이 있구나' 정도였지 별 동정이나 합리화를 해주고 싶지는 않았다만,(작가후기에도 그런 언급이 있는데, 말하자면 가장 어처구니 없는 사람들로 하여금 말하고 싶었단다) 기회주의적인 면모 가운데서도 '사랑'만큼에는 인간미를 느낄 만한 순정이 있더라. 
얄궂은 운명이 삶을 어긋나게하고 쌓아놓은 모든 것을 최악의 상태로 돌려놓았지만, 그렇더라도 '사랑'은 끝내 희망을 가리킨다. 순정남은 엉뚱하게도 이런데서 약점을 보인 것이다. 그래서 소설은 시대를 원망하고 '희생'당한 불쌍한 영혼의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삶에 적극적으로 임하면서 저마다의 꿈으로 살아간 사람들 그리고 비극의 역사 그 뒤안길을 당당히 선택한 사람의 이야기다.  

그런 윤식이라면 삶을 제대로 한번 살아볼 것이다. 처참한 낙오자의 모습이지만 풀밭의 폭신한 질감 만큼은 그를 당당히 흙을 털어내 일어나라고 힘을 준다. 그래서 그의 나중도 '심각하면 지는거다'라는 듯이 한바탕 막무가내 해피엔딩의 삶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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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이외에는>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죽음 이외에는 머독 미스터리 1
모린 제닝스 지음, 박현주 옮김 / 북피시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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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독이라는 형사가 살인사건의 전말을 파헤치고 범인을 찾아내는 시리즈물인 그 첫번째 이야기 <죽음 이외에는>  
형사 머독에게는 불운하고 지난한 가정사가 있다. 특출나게 직업정신이 강하다거나 기껏해야 완벽주의라는 배경을 가진 형사였다면 아마 이 책을 좀 우습게 봤을 것이다. 다행이게도 책의 깊이는 머독형사의 개인사가 어떻게 그를 형사이게 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충분한 답을 해준다.(그가 겪어냈던 가련한 삶에 대한 이야기를 중간중간 더 배치하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이 남는데 시리즈물이니까 다음 책에서 기대해도 좋을 일이다.) 결과적으로 이 캐릭터는 사건을 이해하고 추리해나가는데 더없이 좋은 과거를 가졌고 그게 언젠가 히스테릭한 모습으로 등장할지 모른다는 기대를 안게하면서 입체적 인물로 그려진다. 폭력을 당위하고 권위의식에 사로잡힌 형사의 모습이 아닌 한명의 인간이기를 또한 상처가 치유되길 바라는 가련한 인간으로의 머독으로 응시하게 만든다. 

여기서는 의사 집안의 하녀로 살던 십대 소녀의 피살로 사건이 시작된다. 길지 않은 시일 내에 온 개인사와 치부같은 것들이 낱낱이 공개된다. 순차적 진행이긴한데 마치 사건일지를 브리핑 받는 것처럼 흥미롭고 하루 하루 지날때마다 전복되고 확장되는 기운으로 다음 펼쳐질 이야기에 기대를 한껏 품게 하는 매력이 있다. 
또한 소녀를 둘러싼 어떤 한 특정한 범인만을 추격해 나가는 방식이 아니라 그 시대 평범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병풍처럼 둘러서 말하기 때문에 마치 시대영화를 보는 것 같은 착각도 들게 한다. 다양한 직업군, 계층간의 삶을 응집시켜 놓은 것이 흥미로운데 하인들, 살해장소와 관련한 곳의 창부들, 그녀가 살던 집안 의사부부의 이야기 등 다양한 인물들을 범인 선상에 올려 놓음으로써 응집력 보다는 시선의 분리를 종용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이는 각 인물들의 성격을 하나하나 파헤치게 하고 머독과 함께 추리해 나가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는 전개이다. 성격을 파악하고 혹시 오류와 함정은 없는지 재고 일일이 따지게 만드는 것이다. 당시 이민자들에 대한 시선과 사회문제, 계급문제 등 사회 다변적 문제들을 엿보게 됨으로서 사회상과 의식 등을 가늠케 해주는 재미를 준다. 분명 작가의 꼼꼼하고 오랜 연구, 취재 끝에 가능한 결과물이었으리라.
정해진 목표로만 달려가는 추적자로서의 미스테리가 아니라 시대를 탐방하고 당시인들의 삶, 각자의 내면을 따라 걸어가는 관객이자, 목격자이게 하는 점이 매력이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 보면 <죽음 이외에는>가 가진 헛점이 바로 여기에 있는 지도 모르겠다. 사실 당시 사회상을 알게되는 것은 분명 흥미로운 지점이긴 한데, 그리 멀지 않은 시대라 이물감을 느끼기에는 좀 무리가 있다. 또한 의문의 살인과 그것을 해결해 가는 과정을 '미스테리 소설'로 국한하여 생각하기엔 미진한 감이 있다. 말하자면 박진감이나 큰 긴장감을 유발하느냐를 초점에 두면 이 소설의 템포가 느린데에 좀 답답함을 느낄 수 있다. 물론 이를 단점이라고 말하기에는 좀 야박한 면이 없지는 않다. 차분한 어조로 여러 사람의 내면을 훔쳐보는게 매력이라면 매력이니까. 그러나 우리가 요즘 접하는 여러 매체의 빠른 전개와 뒷통수 칠만한 사건들, 결말, 또 이에 상응하는 다양한 캐릭터가 워낙 그 수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여서 상대적으로 이 책의 흐름은 좀 평면적이고 그리 충격적이지도 않아 보이는게 문제다. 다양하고 기민하며 뭔가 극대화 된 묘사가 부족한 탓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여기에는 소녀의 진짜 삶이 빠져있다. 그녀가 살아온 이야기들 고향에서의 과거들이 궁금해도 알 길이 없는 것이다. 함께 지냈던 사람들 입에서 나오는 제멋대로의 목격담만 유령처럼 떠돌뿐이다. 때문에 소녀의 삶은 그냥 그림자처럼 희미하다. 다른 인물을 등장시켜서라도 좀더 내면의 이야기들을 끌어 냈어야만 했다. 철저히 머독의 관점에서 펼쳐지는 시점이 이런데서 충돌하고 맥을 못추는 느낌이 든다. 
<죽음 이외에는>은 인간의 치졸한 욕망, 욕심, 애증 복잡한 감정들을 그 시대 사람의 이야기로 지금 현재를 돌아보게 만든다. 즉 저 밑의 더러운 내면을 깨끗이 정돈해나가는 추적의 흐름은 머독과 독자에게도 분명 물음을 던지게 하고 부메랑처럼 다른 이에게 향하게 한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다음 시리즈도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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