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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컨드핸드 타임 - 호모 소비에티쿠스의 최후 러시아 현대문학 시리즈 1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김하은 옮김 / 이야기가있는집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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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세컨드 핸드 타임>은 소비에트 연방 붕괴 이후 찾아온 인간의 자유와 상실에 대한 이야기를 다양한 육성기록으로 담아낸 책이다. 소비에트인으로 살아간 이들 중 핍박받은 생존자들의 증언만을 담은 게 아니라, 붕괴 이후의 세대가 보는 어떤 전환과 아이러니에 더 집중하게 되는 면이 어쩌면 이 책의 진면모라는 생각이 든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역시 내부자의 시선이기 때문에 적나라하고 날카로운 지점을 기대하면서 이 책을 읽어 나갔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본문 어디에서고 명확한 정치적 입장이나 역사관을 내비치는 일이란 없었다. 다만 작가가 갖는 경향과 뜻을 모르겠는 것도 아니어서, 책의 의도와 방향에 대한 충실한 독자이고 싶을 따름이었다.

 

 

 

작가는 소비에트 시대를 네 세대로 분류하는데, 그것은 스탈린 세대부터 고르바초프 세대에 이르는 장장 70여 년 동안의 시대의 구분이다. 그 중 작가는 마지막을 관통한 인물이다. 아울러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연방이라 불리게 된 지금의 이전 네 세대와는 또 다른 20년이 흘러서, 격동의 시절을 가장 오래 살아내고 있는 유일한 세대이기도 하다. 책에서는 새로운 인간의 유형인 호모 소비에티쿠스들의 증언을 통해 그야말로 이전과 현세대의 극명하고도 혹은 복합적인 사유의 충돌을 담아내고 있다.

 

 

 

처음 이 책을 읽게 되었을 때 거의 막힘없이 말을 늘어놓는 서사적 유려함에 놀라게 되는데, 이는 흡사 소설인 듯이 거침없고 윤색되지 않은 면이라 흥미로운 지점이다. 만약 반대의 경우라도 즉 이 책이 소설이었다고 해도 에세이 같은 느낌이 들었을 것 같은데, 이 점이 작가의 고유한 방식이다

육성을 그대로 전하는 식의 작법을 채택한 것은 전직 기자출신 다운 작가의 기록방식에서 유래했다는 생각이 드는데, 책이 끝나도록 개입을 줄이고 릴레이처럼 이어지게 만드는 것은 무엇보다 인간을 바라보게 하는 힘이 되기도 하다.

생각해보면 인터뷰처럼 집요하게 묻거나 어떤 방향성으로 이끌어가는 것이었대도 이상하지 않았겠지만, 화자의 계획했거나 혹은 무계획적인 발화의 진실에만 초점이 맞춰지는 식은 그것대로 의미가 있어 보인다.

즉 이 책의 탄생과 존재의 이유는 작가의 세계관과도 맞물린 점이 클 텐데, 오랜 세월 우여곡절을 견뎌낸 개인의 삶이 별 편집 없이 들려지면 좋겠다는 열망이 그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노벨상을 받은 소설을 비롯 작가의 소설 화법들이 이와 같은 목소리 소설의 형식을 띤다고 하는 점은 그녀 작품 세계의 가장 큰 부분이자 핵심일 것 같다.


 

 

워낙 많은 인물이 등장하는데다 개인적 체험이 주 내용이다 보니 읽다보면 여러 가치관과 잣대로 인해 혼란이 증폭되기만 한다. 그 안은 개개인의 역사관이 극대점을 향해 달려가는 옳거나 그름, 다름과 같은 생각들로 산발적 충돌을 끊임없이 하고 있는 소용돌이이다

작가의 개입이 너무 없기 때문인지 이걸 고스란히 다 듣고있어야 하는 곤혹스러움이 내내 있다. 증언들을 듣고 어떤 생각으로 이어나갈지는 독자들 개개인의 몫일 일이라는 듯, 작가는 후일담 같은 말만 조금 거들 뿐이다. 단지 이런 식으로 조금씩 모아진 언급들로 결국 어떤 긴 여운 같은 것이 생기고, 마침내 어떠한 의도를 느낄 수 있었다.

 

 

그 중에서도 정 가운데를 관통하는 자유라는 개념에 대해서 사람들이 그토록 다양한 관점으로 생각한다는 걸 알았을 때 좀 놀라웠다. 마침내 주어진 자유를 각자의 삶의 방편과 잣대로 영위하였을 법한데, 정작 예상 밖의 말을 듣게 될 때의 당혹스러움이란 안타까운 일이다.

가령 스탈린 수용소에서 스스로 살아남은 자의 어린 시절은 그야말로 잔인한 인간의 끝 모를 저열함으로 몸서리치게 만든다. 또한 지금도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인상 좋은 이웃이 과거 자신을 죽음으로도 몰아넣을 수 있었던 밀고자였다는 말도 한다. 그러나 그가 갖는 감정이란 증오이기는커녕 오히려 상대가 알게 될까봐 두려워하는 이상한 심리이다. 공포의 시대는 개인의 감정을 이해하기도 힘들게 왜곡하고 일그러뜨렸다그래 듣다 보면 악과 선이 뒤엉켜 도무지 구별할 수도 없게 된 불치의 단면을 보게 되는 것 같아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책에서도 언급되는 공포는 사랑의 또 다른 형태라는 심리를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체념하고 정의한다. 사랑이 곧 공포일 수 있다는 체득을 진실인 듯 말하고, 공포로 인한 여러 감정을 왜곡하고 변형시켜 안착시켰다. 억압적 상황 속에서 순응하며 살아간 사람들의 정서적 아이러니는 사실 우리에게도 너무나 익숙한 풍경이라 많은 생각이 드는 지점이고 이는 매우 안타까운 지점이었다.

 

 

과거를 회상하며 이들이 자주 언급하는 단어가 다름 아닌 사랑이라는 것 또한 맞물려 생각할 수 있는 주요한 지점이다. 떠올리는 과거의 영광이 고작 나에게 잘해준 사람의 온화한 미소라는 회상 장면은, 공포에 사로잡힌 인간의 한 단면 같았다. 미미한 온정을 사랑이라는 거대한 희망으로 포장할 수밖에 없는 우울한 시대의 면모인 것이다.



이 밖에 흥미로웠던 증언이라면 과거 문화적 부흥기를 누린 영광의 나라답게 소설의 언급이 종종 등장한다는 점이다. 러시아 문호들의 소설들이 본인의 안위적 체험과 낭만 속 재료로 공포정치를 살아가는 데에 얼마나 큰 위안이었는가를 이해하게 해준다.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경험 안에서 결국 그 개인의 사상과 생활태도가 만들어 질텐데, 이러한 사소함이 슬픈 미래를 예견하게 하는 것 같아 매우 안타깝다.



어떤 사람은 과거를 두고 치를 떨며 증오하는 반면 그리워하거나 칭송하는 사람이 있기도 하다. 분명 당시 증오했던 사람이었는데 지금의 안위에 오히려 무기력해진 아이러니도 목도할 수 있다. 냉전이 끝나고 그야말로 밋밋해져 버린 자유를 어떤 이는 여전히 바깥이라고 정의하며, 여전한 과거 속을 헤매는 불응적 유형으로 존재한다.

알다시피 이들의 지나간 시대는 분명히 실패한 체제였고, 지금을 더 잘 살아가야 하는 당위로서 자신의 과거를 충분히 비판하고 버려야 마땅했을 일이다. 그러나 여전히 안개 속을 걷는 중이라는 것을 어린 세대들의 모습에서도 보게 되는 게 이 책의 마지막이다.

소련 붕괴 이후 태어난 시대를 세컨드 핸드라 명명하는데 이들의 현재는 이전 세대들과는 얼마만큼 멀어졌을까를 보면, 유감이지만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아슬하게 지켜보게 된다.

 

 

 

 

인간의 근본적인 욕망은 자유주의적이라는데 있을 것이다. 개인의 본질적 측면이 개인성으로 존중될 수 있을 때, 자유는 존립할 수 있다

때때로 자유는 개인의 선택적 자유로 간주되곤 한다. 나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밀고자에게 갖는 연민 같은 것을 품을 자유가 이러한 경우이다. 그러나 이러한 역설적 감정은 인간의 성질을 좀 더 사실적이게 보이는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그보다는 어떤 환경에서도 단단히 묶여있을 영역, 인간이 이 영역을 어떻게 침범하지 않고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경계는 기필코 소중하다. 바로 이러한 삶의 소중한 가치에 대해 생각하고 침범하지 않는 정신적 무사가 가능하다면 얼마나 좋을까란 생각이 든다.

 

 

소련과 러시아는 극명한 구분으로 나뉘어질 수 있는가를 이 책을 보는 내내 생각했다. 공산주의와 자유민주주의의 판이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공감대가 형성되었다고 보기에는 여전히 미지수라는 걸 여러 인식의 차이에서 보았기 때문이다

아직도 러시아는 전통적 가치와 위배된다는 이유로 무고한 사람을 살해하거나 폭력을 가행하는 세력이 존재하며, 그것을 경찰이 묵인하는 뉴스도 들은 적 있다. 야만이 지금의 이념에 부합되지 않는 극단적 세상으로 잘도 헤집어 나아가는 걸 보고 있으면, 이 책속에 묘사된 과거의 세계와 출간 이후의 또 다른 10년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는 물론 한반도의 모습과도 결코 무관하지 않은 거울처럼 빗들어 마치 위협처럼 들리는 부분이다.

 

 

주지하다시피 작가는 냉철한 역사학자이자 인문학적 관점으로 여러 인물들의 삶을 만나고 취재했노라 말한다. 그 안개와도 같은 역사의 현장에서 들려오는 생생함은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면서도 결코 멀리 뻗어나가지 않았으면 하는 소리이다

젊은 청년에게서 듣는 회귀로서의 말은 그들에게 펼쳐진 미래에 대한 경고처럼 귀에 가 박힌다. 이 책으로 세컨드 핸드 세대들이 지향하고 모색해야 할 세계, 마침내 편견과 억압에서 자유로워진 시간 위에서 진정 공정한 심판과 희망적 기대일 수 있는 현재이기를 기도해볼 따름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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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살아보기 - 한껏 게으르게, 온전히 쉬고 싶은 이들을 위한 체류 여행
김남희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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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살아보기>의 김남희 작가는 직업이 여행가이니 당연히 언제고 그 어떤 이유를 달지 않고도 그냥 떠나도 좋을 일이다. 그러나 역시 작가에게 매번 이유 없는 여행은 없는 듯 하다. 이번 여행기에서는 또 재미난 이유가 붙여져 웃어버렸다.

다름 아닌 견딜 수 없는 추위 탓이라는 것. 물론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는 바람에 마음의 한기는 더 깊어졌고, 녹녹치 않은 서울 살이 체류비를 계산해볼 때 떠나는 쪽이 더 경제적이라는 이유가 더 붙긴 한다. 어쨌든 이 책은 셀 수 없이 다녀본 여행지 가운데서도 따뜻하고 살기 좋은 나라로 엄선된 네 나라의 200일간의 생활 기록이다.

김남희 작가는 겨울을 두려워해 따뜻한 나라로 떠나지만, 내 경우는 여름이 두려운 계절이다자외선을 쬐면 피부가 너무 맥을 못 추게 되어 낮에는 건물 사이로 그늘만 찾아 종종 거리는 신세가 된다. 이게 여간 성가시고 불편한 게 아닌데 정말 딱 작가의 이유처럼 부디 여름만이라도 좀 서늘한 나라에서 보내다 왔으면 하는 생각을 매년 하곤 한다. 평생을 같이 해도 도저히 적응하거나 그러려니 할 수 없는 일이란 있게 마련 아니겠는가. 떠남의 수많은 이유와 핑계 가운데서도 계절이 부르는 나라로 움직였다는 이유는 어쩐지 근사해 보이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여행지에서는 보고 먹고 노는 일 외에 달리 할 일이 없기 때문에 전문여행가가 할 일이라고는 종일 글을 쓰고 생각만 하는 것으로 많은 할애가 가능할 것이다. 하루의 소상한 일상을 소개하고 있고 그 내용과 질을 무척 견고하고 다부지게 구성한다는 것은 이런 나른한 계절과는 좀 상반된 인상을 주는데 그 점이 흥미롭다. 작가에게는 최적의 계절이라서 그럴 수도 있는데 그 일상은 게으르더라도 매우 촘촘해 보인다. 소개하는 내내 한껏 게으르게 생활했다는 말을 부지런히도 하며 독자의 게으름을 부축이지만 여유 속에서도 일일을 부지런히도 꽉 차 보이게 하는 작가의 생각이 내내 흐르고 있기 때문에 가능해진다

몸은 가만히 두더라도 생각은 항시 모습을 바꾸고 때로 윤색되거나 테를 깎아낸 변모된 모습으로 진면모의 그 장소를 기억하게 할 것이다. 이러한 시간의 할애가 곧 여행의 게으름을 만끽하게 하고 더욱 빛나게 하는 이유가 아닐지.

 

 

 

 

 

작가는 본문에서 여행이 곧 책이라는 생각을 전한다. ‘여행과 책이 둘은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게 하는 공통점이 있고, 우리가 사는 일상이 세계로 확장돼 균열을 일으키는 일을 가능하게 한다. 나아가 지금에 머물지 않고 더 넓은 지향을 꿈꿀 수 있는 자양분들이라는 것이다. 이 말은 더 자세히 언급되지 않았지만 참 좋은 발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인물 보다는 어디로든 흐르는 편이 거대한 바다를 만나게 되는 지름길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항상 꿈꿔야 하는 이유는 필연적인 것이다

인생의 반을 반복하면서 겪게 되는 삶의 이해가 오늘 여행하면서 퍼뜩 깨달은 하루의 사건보다 낫지 않다면 어떨까. 여행은 삶이라는 그 오래고 퇴적된 연륜으로 얻어지는 회상보다, 어쩌면 더 나을 수도 있는 혁명과도 같은 일일 수 있다

여행자들이 그렇게 게으름떠남이라는 구호를 외치는 이유는 다름 아닌 이러한 기이한 체험에서 기인한 이유가 클지 모르겠다. 일상에서 누리지 못한 막연한 것들이 여행지에서는 전혀 다른 문제로 떠안겨 질 때의 당황, 이것은 기필코 내부의 여러 작용을 일으키곤 한다. 가령 마음껏 게을러지는 것에서 시간을 오롯이 나를 위해서만 쓴다는 자각의 일이 그것이고, 온통 낯선 것들로부터 오는 다름의 긴장이 내 삶과 잊고 살았던 주변을 더욱 밝히는 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프로 여행가답게 김남희 작가가 들려주는 모든 일상과 파편적 생각의 면에는 여행자에게 필요한 자세와 지혜의 몸가짐이 담겨 있다. 그것은 계산된 것이라기보다 거의 즉흥적인 것들이지만, 오랜 기간 누적해 쌓아온 노하우들이 그녀의 행동과 사고를 만들었기 때문에 보고 배우는게 유익해 보인다. 이러한 태도적 면모를 생각해 뒀다가 써먹을 날이 오면 좋겠다는 희망을 잠시 가져보기도 한다.

떠나 어딘가로 닿는 일은 자신의 주저된, 혹은 잃거나 버리지 못한 한덩어리의 짐을 발견하는 일이며 무엇보다 이것에서 벗어나는 용기를 주는 것 같다. 나아가라는 용기를 그 어딘가가 준다면 기꺼이 그곳에 가 닿고 싶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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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 - 시드니 걸어본다 7
박연준.장석주 지음 / 난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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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한 일 인건 인생이 바람 하던 쪽이 아니라 오히려 무관심했거나 이쪽이 아닌 저쪽의 편에 가까워지기가 더 용이하다는 사실이다. 마음의 주변부에서 맴돌던 것들이 도처에 머문 지도 몰랐다가 어느 틈에 밀고 들어와 기습을 당하는 꼴이란 참으로 고약한 후폭풍을 맞는 일이다. 전복되고 정중앙으로 안착된 이 황당한 상황을, 그렇지만 꼭 나쁜 결과라고 말할 수가 없다는 것도 인생의 흥미로운 아이러니 같은 일이다. 삶의 고착화되지 않은 다양한 경험을 쌓게 해준다는 면에서 그렇기도 하고, 돌아보면 이러한 일들이 교묘히 바란 일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기도 한다. 이런게 인생의 묘미라면 묘미랄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게 인생의 방향이듯 일방통행, 선회, 급선회, 비틀어지거나 유연하게 흐르는 삶의 지속성으로 우리는 끝없이 다져지는 존재인 모양이다. 마치 속내를 알 수 없는 바다를 항해하는 돛단배의 신세처럼 표표히 흘러가는 망망함으로, 인생은 걸려오는 그것이 무엇이든 만남의 연속인 것이다. 그것을 모두 만나고 견뎌야 한다. 

 

 

 

 

장석주와 박연준 두 작가의 연서와도 같은 에세이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를 보면서 맞닿을 듯 그렇지 않은 미세한 두 평행선 위를 걷는 관계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영원히 닿지는 못 할, 두 개의 평행선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역시 우리가 서로에게 항시 다른 사람이라는 인식을 하게 한다는 점 때문에 그렇다

늘 이해하려 노력해야 하고 전보다 가까워지는 사건이나 계기를 맞이하게 되지만, 그것은 언제라도 전혀 다른 방향을 향해 걷게 되는 단초일 수 있는 반복의 영속일 것이다.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진다고 해서 같은 생각을 하게 되거나 완벽히 일치하는 지점을 만나는 일이란 영원히 요원하다. 다만 우리는 서로가 각자의 줄 위에서 조금 가까워지거나 필요에 의해 조금 멀어지는 유연을 부리며 같이 걸어가는 사이인 것이다.

여기 두 작가는 서로를 향해 십여 년을 그렇게 조심스럽고 천천히 물들어 가듯 배려하며 걸어간 흔적들로 다분하다. 이 책에는 그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거의 하고 있지 않지만 지금까지의 토대를 단단히 쌓아 올린 시간이 느껴지기에 충분했다.

 

 

 

여기서의 시공간은 잠시 템포를 잃고 둘에게 쉬어가라는 선물처럼 시드니에서의 생활로 시작된다. 둘은 거의 똑같은 일상을 함께 하면서 느슨한 시간을 마음껏 만끽하는 것으로 끝난다. 

박연준 작가 시선의 시드니가 반, 뒤이어 장석주 작가의 시드니 이야기가 반, 이렇게 나란한 두 일상의 시선이 어떻게 다른가를 보는 게 묘미이다. 두 사람 모두 시드니의 소소한 자연과 만난 사람들, 모처럼의 여유와 낯선 아름다운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지만 그 개성은 사뭇 다르다.

 

 

 

박연준 작가의 글에서는 그녀가 언급하기도 했던 생동에 대한 느낌으로 사로잡힐 때가 많다. 어리다는 것에 대한 설명으로 파닥임이라는 말을 꺼내는데 그 가운데서도 생동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어쩐지 작가의 글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과거를 이야기하거나 오늘 겪었던 일화들을 이야기하는 어느 때고 그 구체화된 생각의 생동감이 파닥이면서 친화적인 글쓰기를 한다는 인상을 준다. 웃음소리와 투정이 옆에서 들리는 것 같고, 웃거나 찌푸릴 때의 미간이 움직이는 게 보이는 언제라도 생각의 잠을 깨우는 발랄함이 느껴져 좋다.

 

 

 

반면 장석주는 완강한 말의 긴장이 느껴지는 글을 쓴다. 광활한 크기에 압도당할 막연한 공간에 서서 조망하는 입지로 물러난다. 작은 것을 보더라도 달아날 수 있는 만큼 아주 멀찌감치 둘러서서 자발적 외톨이로 자신을 오롯이 두는 것 같다. 일단 그런 거리에서 폭넓게 사고한 이후에 섬세하거나 자상함을 놓치는 법 없이 안으로 밀고 들어오는 글을 쓴다. 이러한 사고의 흐름을 따라 그곳을 이해하는 방법도 퍽 재미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 둘의 시드니 여행기가 어디까지나 여행기일 수만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에서고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을 잊지 않게 되는, 현실의 연결을 생각하게 되는 이유를 상기하게 하는 글이다.



장석주 작가는 끊임없이 자신이 그곳에 서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주변을 이해하는 사람이다. 박연준의 글에서 시드니임을 한시도 잊지 못했다면 장석주의 글에서는 시드니를 자주 잊게 됐다. 이런 식으로 둘의 같거나 다른 일상의 시선, 내면에서 벌어지는 사뭇 다른 광경을 보게 된다

어느 편이 더 좋아서 편애할 수 없는, 나란히 이어지는 두 개의 선이 긴장과 이완의 탁월한 궁합으로 펼쳐진다는 생각이 든다.


숲길을 천천히 걸으며 깨끗한 숨을 들이키는 일처럼 반복될수록 좋은 일이 있다. 이 책은 두 번 세 번 읽을수록 좋을 그런 밤의 산책을 부르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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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산문집이다. 이 작가는 역사 속에서 살아간 주인공의 목소리를 증언식으로 전하는 식의 화법으로 독창적 장르를 선보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본문에서는 1990년대 공산주의의 붕괴, 자본주의와 돈에 대한 경멸, 소련에 대한 향수나 몇몇 정치인에 대한 이미지 등 시대상과 양면적인 측면을 서술하고 있다. 노벨상 수상의 결정적인 역할을 한 작품이라고 알려진 만큼 거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으리란 기대가 든다. 막상 읽기 전까지는 아무 상상도 할 수가 없는 책이라는 점이 무엇보다 흥미롭다. 작가의 눈에 비친 시대의 아이러니, 균형을 맞추고 이해하는 일이 어떤 측면에서 발휘되는지가 가장 궁금해지기도 한다












작가의 신작이 나오면 거의 빠짐없이 읽어왔지만 소설이었고 산문으로 연재됐던 글은 모르는게 많다. 이 책이 그간의 짧은글을 모아 펴낸 <0이하의 날들>이다. 

작가의 생각과 화법들이 소설 안에서 당연히 드러나게 되어있고 충분히 느껴지기도 했지만, 개인적인 관심사와 구체적인 기록들이 더 궁금해지기도 하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지금 젊은 세대들의 삶의 생생한 면을 독특하게 그려내는데 탁월한 작가라는 인상으로 김사과 작가를 기억한다. 그녀가 살아낸 20대의 나날은 어떤 기록이 주를 이룰까

읽고, 쓴다는 것, 세상을 바라보는 좀 더 구체적이고도 쓴 면을 톡톡히 말하는 걸 보고 싶다.

 












유명 패션매거진의 에디터 장우철의 캘린더 형식의 작품집이다. 작가의 글은 잡지를 읽으면서도 단연 돋보였던 탓인지 강한 인상으로 남아 있다. 시적이면서, 항상 낯선 면을 들추어 말하는 탁월한 면을 가진 것 같았다

말이 단정하고, 정말 그러한가를 다시한번 생각하게 해주는 글을 쓴다. 이 책은 겨울로 시작해 다시 겨울로 이어지는 일 년 중 200일이 넘는 나날의 자연들, 사물, 일상을 담아낸 일기이다.

내밀하고 암호처럼 펼쳐지는 고유한 대화들이 어떤 삶을 살아낸 일일이었을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벌써 여유로움이 깃든다












이 책은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아트북집이다. 영화가 역시나 아트북이 출간될 만큼의 차고 넘치는 아름다운 영상들로 가득했었는데 표지부터가 눈길을 끈다. 이 책에서는 여러 분야의 제작진 의 인터뷰를 들을 수 있고, 그간 공개된 적 없는 사진들도 여럿 볼 수 있어서 영화를 흥미롭게 본 이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 될 것 같다.

완벽주의자로 유명한 웨스 앤더슨 감독이 직접 이 책에 관여했다고 하는데 완성도 면에서도 기대해도 좋을 것 같고, 영상만큼이나 훌륭했던 시나리오의 제작기 등도 더불어 살펴볼 기회가 되면 좋겠다















박완서 작가의 서거 전 2010년까지의 30여년에 이르는 여러 인터뷰어들과의 대담이 이 한권의 책으로 엮였다. 장석남 시인, 최재봉 김혜리 기자, 김연수 정이현 소설가, 신형철 문학평론가 등 9명과 있었던 대담을 추렸고, 이병률 시인의 새 글이 보태어졌다.

작가 개인사와 문학관, 삶의 철학 등 깊이 있는 물음과 답으로 지금 우리가 잊고 있는혹은 잊혀진 삶의 골과 궤적을 함께 진단하게 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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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 내 영혼에 바람이 분다]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페루, 내 영혼에 바람이 분다 - 그리움을 안고 떠난 손미나의 페루 이야기
손미나 지음 / 예담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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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망설여지는 정도라면 좋겠지만 어떨 때 우리는 주저앉는 것 외에 다른 도리를 찾을 길 없어 완연히 망연해질 때가 있다. 명징한 답을 구원처럼 기대하는 상상마저도 떠올려지지 않는 그야말로 어딘가의 미세한 빛조차 사그라든 무명의 상태와 같달까. 어지간하면 아주 미세한 구멍이라도 비집고 들어가 살아온 식으로 어떻게든 봉합하고 희망을 쥐게 마련이지만, 정말 가끔은 방향을 잃고 멈춰질 때가 있는 것이다

도저히 내 상태를 가늠할 수 없을 지경으로 뜻밖의 상태에 이르면 과거의 좌절로부터 얻게 되는 지혜와 방어벽들도 속수무책으로 허물어진다. 극단의 양각에 설만한 생각들도 보루로 남지 못해 판단이 마비되고 달리 무언가를 할 수 없다는 자책의 데미지는 참으로 크다.

이 시기를 보내고 돌아보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들 일어나 회복했는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인생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지는 거라서 자신만의 시간들이 지나가는걸 보고 있으면 어쩐지 인간의 슬픈 숙명 같아 숙연해지기도 하고 그렇다. 과연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이라거나 인생의 한 자락이겠거니 하고 버티는 게 인생인건지.

 

 

 

이럴 때 나는 어떤 구체적 혜안이나 자조적 상태를 떠올리기보다 아주 작고 초라한 생각 하나를 마음으로 떠올리곤 한다. 안에 머무는 몇몇 사람들의 생각을 묻는 식이 그것이다. 구체적으로 내 인생의 어른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을 떠올리고 그에게 이럴 때 당신이라면 어떻게 했을까라고 묻고 듣거나 말한다. 물론 이 우스운 광경은 그 어떤 생각이건 사실은 나라는 사람을 관통해간 파편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초라함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러나 또 그렇기 때문에 이게 작은 불씨가 되어주기도 하는데, 이만한 고요를 허투루 보내지 않았다는 위안이 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독대의 시간이 낳은 파장이 되돌아와 분명한 상처를 남기기는 하지만 그만큼 냉정하게 돌아보고 이상한 위안과 용기를 얻게 된다는 사실은 나에게 중요하다. 정죄하거나 돌파해 나가라는 자극을 심어주기 보다 앞에 놓인 경사진 비탈길을 조금씩 내딛을 수 있는 시야를 얻게 되는 일이 자신을 좀 더 단단하게 만들어 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비록 잘 쌓아온 것도 말아먹었다는 오늘의 고통을 인고하고 견뎌야 하는 게 힘든 일이긴 하지만 더 나은 사람으로 변하리라는 믿음, 그 뿐이면 될 때가 있기도 하다.

세상사의 괴로움과 즐거움에 어제보다 무덤덤하게 반응하는 나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 썩 나쁜 징조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손미나의 <페루, 내 영혼에 바람이 분다>는 작가가 갑작스럽게 맞이한 인생의 가장 큰 시련을 그림자처럼 드리운 스산한 바람이 부는 그런 책이었다. 우리와 정반대라는 페루의 계절처럼 현재의 고통을 쏟아낼 공기를 한참은 낯설게 되돌아보게 되는 식이다.

 

 

우리가 떠나는 일을 하는 행위의 자부심에는 이질성과 다양성이 상존하는 의미를 크게 두는 면이 있다. 기필코 이것을 목도하고 체화하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은 아닐까. 그동안 여러 여행서에서 만나온 손미나 작가는 항상 성실하게 삶을 즐기며 자신의 행복을 위해 온몸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란 인상이었다. 그것이 일이든, 가끔 떠나는 여행이든 꾹꾹 눌러 담는 강박의 성실함에 중독된 듯이 보여 멋지구나 싶었는데, 물론 좋은 의미로서 느껴지는 건강한 중독과 강박은 언제라도 부러웠다.

 

 

이번 이 책에서 느낀 강렬함은 작가의 삶에 놓인 거대한 슬픔이라는 덩어리였는데, 그것이 페루와의 만남으로 어떤 풍화를 거쳐 소멸될 수 있을까란 의문으로 시작한다. 각자 놓인 시련 앞에서 사람들은 어떤 방식으로 이겨 나갈까하는 물음이 그녀에게는 여행’ 안에 있었다. 친화적인 성격 탓인지 언제고 우울보다는 한 층 성숙한 태도를 의연하게 보내는 것이 안쓰러워 보이기도 했지만 이 또한 그녀만의 체득된 삶의 방식이라고 생각되어 응원하고 싶었다. 사람과의 교감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게 작가의 매력인 만큼 보는 내내 그득한 사람 냄새로, 산다는 것의 보편적 핵심을 보는 것 같았다. 항상 그래왔지만 페루에서도 남다른 우정을 만들어낸 그녀의 아낌없는 사랑과 진심의 성정에 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느 도시든지 그 특징과 매력을 가지지만 페루는 특히 그들만의 오랜 역사를 잘 간직하고 있는 나라라는 면에서 인상이 깊다. 미지와도 같은 비밀스러운 공간을 볼 때도 그렇지만 어디든 이 나라의 면면은 흥미롭다는 수준을 넘어서 진정한 위용을 가진 도시를 여럿가지고 있다는 점에 감탄하고 부러워 할 수밖에 없다.



페루가 수많은 도시와 비슷해지는 유혹에서 반드시 저항하고, 인간이 그야말로 자연의 일부일 수 있는 소박한 진리를 깨닫게 하는 여전한 위용을 잃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다.

여러 시대의 수많은 환란으로부터 잘도 버텨준 아주 깊고 단단한 뿌리와도 같은 나라가 페루의 민낯이고, 무엇보다 순수하고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그 일일을 행복하게 영위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 좋았다

한 사람의 아픔을 치유할 수 있는 마법과도 같은 여정이 어떻게 진전되고 아물어 갔는지 차근히 지켜 볼 수 있는 그런 책을 만나 기쁘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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