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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의 구애 - 2011년 제42회 동인문학상 수상작
편혜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3월
평점 :
이전 편혜영의 소설집 '사육장쪽으로'등을 살펴보면 도시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일상이 기괴하게 표현된다. 무시로 마주치는 평범한 삶의 장면이 편혜영의 손길을 거치면 그로테스크한 형태로 일그러진다. 하지만 그것은 작가의 작위적인 표현에 의해서라기 보다는 현상 그 자체를 날것 그대로 둠에 의한 것이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스쳐지나가던 것들을 수사와 묘사가 증발된 객관화된 문장으로 늘어놓았을 뿐인데 소름이 오소소 돋는 끔찍한 형태로 확인되는 것이다.
이번 소설집에서 편혜영의 문장은 더욱 건조해졌다. 이젠 이전 그녀의 소설을 수놓던 많은 단어들, 이를테면 끈적이고, 더럽고, 불쾌한, 찐득찐득한 것들이 사라졌다. 등장인물들의 행보는 더욱 평범해졌고, 이전 작품들에서 보이던 (이를테면 '밤의 공사'에서 주인공이 보여주는) 광적인 집착도 사라졌다. 하지만 이번 소설집의 소설들은 편혜영의 전작들보다 더욱 무섭다. 이전 그녀의 작품에서의 공포가 일상을 비틀어 보는 것에 대한 것이었다면, 이번 그녀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공포는 '벗어날 수 없음'에 대한 공포이기에 그렇다.
'토끼의 묘'에서 주인공은 파견을 나간다. 그리고 공원에 유기된 토끼를 집으로 데려와 키운다. 자신을 소개한 선배는 어느날 갑자기 종적을 감추고, 그의 집 문을 두드려봐도 대답이 없다. 업무는 단조롭고 반복된다. 자신이 실수를 하더라도 어떠한 조치도 내려지지 않는다. 그저 자리에 앉아있음으로 충족되는 업무일 뿐이다. 모두가 파견자인 회사. 개인이 존재하는 공간이 아닌 직책만이 존재하는 공간. 얼마든지 대체 가능하고 수정가능한 공간 속에 주인공이 서 있다. 주인공은 자신의 후배에게 파견을 권유하고, 자신은 자신의 집에 잠적한다. 그 절차는 마치 주인공과 선배와의 모습과 꼭 닮아 있다.
이러한 반복되는 굴레는 '통조림 공장'에서도 나타난다. 실종된 공장장을 대신해 박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공장장과 똑같은 '수위'라는 별명을 얻는다. 통조림을 먹지 않던 박은, 실종된 공장장처럼 통조림으로 끼니를 처리하고 누구보다 빨리 공장에 출근해 누구보다도 늦게 퇴근한다.
'동일한 점심'에서의 주인공은 이 굴레에 익숙해진 인물의 삶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주인공은 복사실에서 일하는 남성으로, 항상 같은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는다. 언제나 정식 A세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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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속에 떠오른 반찬이 오늘 먹은 것인지 어제 먹은 것인지 헛갈렸다. 어쩌면 구내식당 게시판에 적혀 있는, 내일의 반찬일지도 몰랐다. p.65
그렇게 늘 똑같은 한 끼 밥을 먹는 것으로 그는 어제의 낮과 오늘의 낮이 같음을 실감하고 오늘 밤과 내일 밤이 다르지 않을 것을 확신했다. 그런 실감과 확신을 통해 자신이 지하 복사실에 있는 동안 매일 낮과 매일 밤이 각각 다르게 흘러간다는 사실을 잊었다. p.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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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남성은 반복되는 삶을 살고 있었다. 8시 38분에 역에 도착하는 열차를 타서, 9시 30분에 복사실 문을 여는 삶. 어떤 사내와 2번 차량 3번 칸에 나란히 서서 지하철을 기다리며 제본된 책을 읽는 삶이다. 어느날 그 사내가 지하철에 뛰어들어 죽는 사고가 일어났음에도, 남자는 그 사내가 죽었다고 인지하지 못한다. 남자는 그 사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선로에 뛰어들어 죽었다는 환상을 본다. 매일 같은 삶을 사는 것에 길들여져서 스스로 그 제약에 속박되려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실제로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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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숨이 허망하게 끊어졌고 몸이 잘게 바스러져 한낱 얼룩으로 스몄고 누구도 알아채지 못한 남은 빛이 허공을 맴돌았다. 그럼에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열 시간 이십 분 이전과 결코 같을 수 없음에도. p.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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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심지어 전원의 삶에 두려움마저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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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골이 서늘할 정도로 나무로 가득 찬 숲과 그 숲을 품은 소도시가 싫어졌다. 모든 길을 감추는 숲에 비하면 한눈에 모든 길이 훤하게 들어오는 도시는 그야말로 천국에 가까웠다. p.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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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에 길들여진 주인공에게 자연은 너무도 두려운 공간이었다. 그에게 달려드는 하루살이들은 자연의 포식자와 다를바 없다.
그렇다면 그 굴레에서 벗어나려 하는 자들에겐 어떤 일이 일어날까. '정글짐'에서 주인공은 해외로 출장을 나간다. 처음에는 상사인 백의 그림자를 쫓았다. 그가 추천한 곳에서 밥을 먹고, 그가 샀던 물건을 샀다. 그가 준 가이드북을 따라서 행동했다. 그는 소설의 말미에서 백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혼자 도시를 걷는다. 그리고 길을 잃어버린다.
하지만 그럼에도 도시는 모든 현대인들에게 이상향과 같은 곳이다. '크림색 소파의 방'에서 주인공은 서울로 이사를 가는 길이었다. 이삿짐 트럭을 앞질러 가기 위해 국도로 들어선 그는 국도변에서 원치않은 일들에 휘말리게 된다. 이를테면, 와이퍼가 고장나고 와이퍼를 고쳐준 청년은 그에게 돈을 요구한다. 그에게 돈을 뜯긴 주인공은 청년이 대마를 피웠다고 확신하곤 경찰에 신고하고, 국도를 달리다 차가 멈춰서 보험회사에 연락해 조치를 기다린다. 하지만 그를 찾아온 것은 보험회사 직원이 아니라 그에게 돈을 뜯은 청년이었다. 그에게 폭력을 당해 피를 흘리면서도, 주인공은 저 멀리 보이는 서울의 아파트 불빛을 바라본다.
이처럼 편혜영의 소설에 나타난 주인공들은 도시의 삶에 너무나도 익숙해져 있고, 그 삶을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하며 영위하고 있다. 이제는 자연의 삶을 두려워할 정도다. 누구나 도시에서의 이탈을 꿈꾸며, 자연으로 돌아가 살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기계의 부품과 같은 대체가능한 삶, 객채는 사라지고 존재만이 남은 삶. 모두가 그것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실 그들은 도시에 막연한 꿈을 품고 있다. 이미 너무도 깊이 소속되어 벗어날 수 없는 도시에서의 삶. 그 벗어날수 없음은 끔찍하고 두려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