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라 정봉주 - 나는꼼수다 2라운드 쌩토크: 더 가벼운 정치로 공중부양
정봉주 지음 / 왕의서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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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하다. 정치 사회서가 이렇게 재미 있을 수 있다니! 정봉주가 폭풍집필했듯, 나도 폭풍독서해 버렸다. 사실 별 내용 없는 책이긴 하다. 그냥 깔때기다. ‘나는 꼼수다’에서 김어준의 사회로 적당히 눌려 있던 정봉주의 깔때기가 책 한권 내내 거침 없이 쏟아진다. 처음엔 헛웃음을 치며 읽었다. 그러다가도 서서히 빠져드는 것이 매력 있다. 순 자기 자랑인데도 그리 밉지만은 않은 캐릭터다.


정봉주의 책이 나왔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리 흥미가 생기진 않았다. 이전부터 책을 써 오던 김어준이나 김용민과 달리 정봉주는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흥행 중인 ‘나는 꼼수다’를 등에 업고 책 좀 팔아 먹겠다는 수작으로도 보였다. 얼마나 영양가 있는 책일지 확신히 서지 않아 읽는 것을 유야무야 미뤄왔다. 기회가 된다면 정봉주의 책보단 김어준의 ‘닥치고 정치’나 사서 읽어야 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던 중 정봉주가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수감되었다. 어처구니가 없는 사건이었다. 그것이 진실이듯 거짓이든, 정치인이 대권주자의 검증차원에서 근거를 가지고 의문을 제시한 사안을 허위사실유포죄란 죄목으로 처벌한 것이다. 유죄 판결을 듣고 정신이 멍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생각했다. 결국 그의 책을 구해서 읽기 시작했다. 이렇게라도 사식에 도움이 되었음 좋겠다, 라고 농담을 하면서.


정봉주는 놀라운 속도로 급부상한 인물이다. 그의 정치 경력은 사실 별볼일 없다. 노무현 탄핵에 힘입어 17대 국회의원으로 정치에 입문했고, 18대엔 낙선했다. ‘나는 꼼수다’를 듣기 전엔 정봉주란 인물의 존재도 알지 못했다. BBK때 최전방 저격수로 활동했다지만, 난 그때 군대에 있었으므로 정치판과는 거리가 멀었다. ‘나는 꼼수다’에서 저렴한 발언과 웃음소리로 관심을 끌었고, 무상급식 투표 논쟁을 지나 서울시장 투표 때 박원순 캠프의 선대본부장을 맡으면서 엄청난 주목을 받았다. 토론회에서 보여준 상대방을 휘어잡는 말빨과 여유는 그의 팬층을 두껍게 만들어내었다.


이 책엔 그러한 정치인 정봉주의 정치 입문기와 정치 철학이 담겨 있다. 사회과학서로 분류되지만 정확히 말하면 자서전이라 봐도 무방하겠다. 정봉주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굳이 찾아서 읽을 필요가 없는 책이다. 이론적 철학이라기보단 정치인 개인의 사상이고, 그 정치인에겐 너무나도 중요했던 운명을 결정지은 사건인 BBK도 인터넷만 찾아보면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정봉주의 자전적 정치 입문기는 관심 없는 사람에게는 더더욱 필요 없는 부분이다. 다만 2011년 하반기에 누구보다도 열심히 뛰어온 한 정치인을 알아가는 방법으로선 가치 있는 책이라 볼 수 있겠다.


정치인이란 사실 국민에게 권리를 위임받은 자들이다. 하지만 그런 원론과는 다르게 정치인은 시민들보다 한없이 높은 곳에 위치한다. 정치인들에게 국민이란 표를 행사해 자신을 국회의원으로 만들어주는 존재일 따름이다. 자리만 차지한다면 그들은 안면몰수하고 국민들 위에 군림한다. 정봉주는 오랜만에 우리들의 위치까지 내려온 정치인이다. 불통을 대의로 삼은 현정부에서 정봉주와 같은 정치인은 매우 값지다. 근엄하게 격식을 차리던 권위주의를 벗어던지고 자신을 끝없이 낮추며, 방자하게 우리를 웃긴다. 어딘가에서 열심히 무언가 하고 있다는 썰만 날리는 누구들과는 다르게, 그는 우리의 바로 옆에서 우리와 눈을 맞추며 뛰고 있기에 힘이 되는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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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파트의 주목 신간을 본 페이퍼에 먼 댓글로 달아주세요.

벌써 2011년이 다 갔다. 12월에 출간된 소설들 중 맘에 드는 책들을 훑으며 1월에 읽을 책들을 정리하는 과정이 다가오는 신년을 대비하는 것 같아 벅차다.


1. 최진영, 끝나지 않는 노래, 한겨레출판


1927년에 내성면 두릉골에서 태어난 두자를 시작으로 그녀가 우여곡절 끝에 낳은 쌍둥이 수선과 봉선, 수선의 딸인 고시원에 사는 대학생 은하와 군대에 가 있는 봉선의 아들 동하까지의 이야기를 1930년대부터 2011년 현재까지 현실적으로, 아름다우면서 쓸쓸하게 담아냈다. - 알라딘 리뷰


최진영 작가는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리뷰)'이란 작품으로 한겨레 문학상을 수상했다. 전 작에서는 어린 소녀의 목소리를 훌륭하게 모사해내며 이름 없는 떠돌이 소녀의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그려내었다. 그녀의 소설을 읽으며 다음 작품이 궁금하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렇게 마주하게 되었다.


2. 윤성희, 웃는 동안, 문학과지성사


현대문학상, 올해의 예술상, 이수문학상, 황순원문학상 수상 작가 윤성희. 자신만의 독창적인 소설 세계를 구축하여 시간이 지나면서 이를 더욱 탄탄하게 형성해온 작가 윤성희의 소설집이다. 소설집으로는 2007년 펴낸 <감기> 이후 4년 만이다. 2011년 황순원문학상 수상작인 '부메랑'을 비롯하여 총 10편의 작품이 실려 있다. - 알라딘 리뷰


올해 '부메랑'으로 황순원 문학상을 수상한 윤성희의 소설집이다. 표지를 보고 끌리듯이 책을 선택해 놓고는, '내가 이전에 윤성희의 소설을 읽은 적이 있던가.' 의문이 들었다. 혹시나 어디 수상집이나 문예지에서 마주친 적은 없을까. 책장을 뒤져보았다. '2008년 이상문학상 작품집'에 그녀의 소설이 실려 있었다. '어쩌면' 이란 작품이다. '귀신이 나왔던 작품'이라는 어렴풋한 기억이 든다. 그러고보니 '귀신 나오는 소설을 자주 썼다'던 신문 서평도 어렴풋이 떠오른다. 잘 모르겠으면 읽어보는 게 답이다. 그래서 일단 신간 리스트에 끼워 본다.


3. 전성태 외, 2010 현대문학상 수상소설집, 현대문학


2012년 제57회 현대문학상 수상소설집. 소설가 전성태가 제57회 현대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당선작 '낚시하는 소녀'는 "우리 언어의 풍부하고 품격 있는 사용도, 시간과 상황과 사건, 인물의 움직임들이 한 치의 낭비 없이 탄탄하고 치밀하게 얽혀 단편소설의 정수를 맛볼 수 있는 작품(소설가 오정희)"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 알라딘 서평


한 해를 마무리하는 데 수상소설집 만큼 좋은 책이 있을까. 계간지 2010년 겨울호에서 2011년 가을호까지. 월간지 2010년 12월 호부터 2011년 11월 호까지 문학계를 달구었던 단편의 액기스만 모았다. 전성태의 작품은 현대문학 8월호에서 읽었는데, 모녀의 힘든 삶을 평화롭고 아름답게 그려놓았다는 인상이 기억에 남아 있다. 박민규부터 편혜영까지, 이 책은 현대소설의 종합선물세트다.


4. 김미월, 아무도 펼쳐보지 않는 책, 창비


2011년 제29회 신동엽창작상을 수상하며 촉망받는 젊은 작가로서의 저력을 확인한 김미월의 소설집. 김미월 작가는 이번 소설집을 통해 허황된 낙관도, 세련된 냉소도 아닌 다만 꾸밈없는 현실 직시야말로 격려가 될 수 있음을 증명한다. 일상과 유리된 거대담론이 아닌 잔잔하고 소박하되, 하찮게 여겨서는 안될 귀중한 순간들의 포착을 통한 현실 진단은 놀라우리만큼 적확하다. - 알라딘 서평


김미월의 소설은 2011년 현대문학상 수상소설집에 실려 있던 '안부를 묻다'가 너무 좋아서 기억에 담아 두었던 작가다. 있지만 가지 못하는 주인집 아랫집과 들어가지 못하는 방과 관련한 어린아이의 눈에 비친 서스펜스가 놀라웠던 작품이었다. 작품집이 나왔으니 그녀의 다른 면면도 관찰할 기회가 생겨 좋다.


쓰다 보면 독서 편력이 이런지라 한국 현대 문학만 자꾸 담긴다. 여러 장르의 여러 국가의 소설들을 아우를 수 있어야 하는데. 우리나라 소설만 읽기도 아직 버겁다는 느낌이다. 다음 달에는 좀 다양한 신간들을 담아보려 노력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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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2012-01-03 16: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번에 현대문학 수상집이 나와서 관심있게 봤는데 제 마음에 쏙 드는 작가는 없었어요.. 아는 작가는 편혜영인데 편혜영의 단편 참 좋은데 요즘에는 영 읽기가 싫은거 있죠?

소설파트는 좋겠습니다 ㅠㅠ 이렇게넘쳐나구요

백운호 2012-01-05 10:23   좋아요 0 | URL
어 저도 편혜영 작가 참 좋아해요! 평범한 일상을 괴기스럽게 바꿔놓는 그 능력이란 ㅎㅎ 저는 이번 작품집에 좋아하는 작가들이 많아서 좋았요. 김연수도 있고 박민규도 있고 편혜영도 있고요. 대상작품도 이전에 잡지에서 읽었는데 훌륭한 단편이란 인상이 있어서 망설임 없이 구입했네요 ㅎㅎ! 신간평가단이신가봐요. 한 달에 5편밖에 꼽질 못하니까, 소설 파트는 선별하느라 머리가 아프죠 ㅋㅋㅋ
 
염소의 축제 1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51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송병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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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루히요(1891.10.24~1961.5.30)는 도미니카공화국의 독재자이다. 육군사령관으로 있다가 쿠데타를 일으켜 32년간 독재정치를 폈다. 독재 기간동안 도미카공화국의 경제를 부흥시키고 정적에 대한 무자비한 숙청과 폭압적인 정치로 국가에 전에 없던 평화를 안겨 준다. 하지만 국민들의 눈과 입은 봉쇄되었고 부는 트루히요를 중심으로한 집권 세력들에게 재분배 된다. 반체제 운동을 하던 미라벨 세 자매의 죽음은 반독재 투쟁의 기폭제가 된다. 그는 1961년 5월 기관총 사격으로 암살당한다.

여기까지는 팩트다. 대부분의 독자라면 잘 알지 못할 트루히요라는 독재자, 그리고 익숙한 것도 같지만 어디 붙어 있는 지도 생소한 도미니카 공화국. 이들은 낯설지만 그 설명을 보고 있자면 왠지 모를 친숙함도 느껴진다.

올해는 두 독재자가 죽음을 맞은 해이다. 10월 20일엔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가 사살되었다. 리비아의 군인이었다가 69년에 쿠데타로 집권했으며 42년간 독재정치를 펼쳤다. 12월 17일엔 김정일이 죽었다. 94년에 김일성의 사망으로 권력을 승계받은 그는 2011년 까지 17년간 독재하다가 열차 안에서 급성 심근경색과 심장성 쇼크의 합병으로 사망한다.

두 독재자의 죽음이 있었던 올해를 마무리하며 읽는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염소의 축제’는 특별하다. 권력이 얼마나 추악한 횡포를 인간에게 일삼는지. 그리고 그 권력의 정점에 있는 독재자는 얼마나 비참한 최후를 맞이할 수밖에 없는지, 작가는 역사상의 인물을 데려다가 그만의 이야기로 만들어내었다.

이 소설은 세 가지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첫째는 권력에 중심에 있다가 밀려난 ‘지식인’의 딸인 우라니아의 시점이다. 그녀는 트루히요 시대가 몰락하고 수십년이 지나 반신불수가 되어 간호사의 병수발을 받고 있는 아버지를 방문한다. 둘째는 국가를 절대권력의 힘으로 통치하고 있는 트루히요의 시점이다. 그는 국가의 수령이지만 자신의 방광을 통재하지 못해 오줌을 흘리고, 발기부전으로 괴로워한다. 셋째는 트루히요를 암살하려 하는 반체제 집단 구성원들의 시점이다. 그들은 트루히요를 죽이기 위해 도로에서 잠복하며 트루히요가 자신들에게 행했던 악독한 행태를 회상한다.

작가가 훌륭한 이야기 꾼이라는 것은 이 세 시점의 효과적인 활용으로 두드러진다. 트루히요가 자신의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그 죽음을 혁명가들이 기다린다. 두 과거의 시점이 맞물리면서 우라니아라는 여성 케릭터의 비극이 현재의 시점에서 극적 긴장을 고조시킨다. 작가는 두가지 시간적 배경과 세가지 시점을 교묘히 섞어 치밀한 구성력을 뽐낸다. 거기에 덧붙여 트루히요 시대의 피해자와, 트루히요 시대의 종결자, 그리고 트루히요 시대의 지배자가 각자의 시선에서 저마다의 아픔을 발산한다. 중요한 것은 이것들이 모두 작가의 상상력에서 비롯된 픽션이라는 사실이다.

소설의 구성은 일면 간단해 보이지만 사실 이 소설은 대단히 복잡하다.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며, 그 인물들은 철저히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인다. 그렇기에 흔한 주제의식을 강요하는 여타 소설들과 같이 독재자는 패망하며 시민들은 성공하며 평화를 되찾는 것으로 이야기가 마무리 되지는 않는다. 터키인을 비롯한 트루히요 암살자들은 권력의 중심에 선을 대어 트루히요가 죽은 이후의 모든 계획을 철저히 완성해 놓았다. 트루히요가 살해됨과 동시에 군부는 장악되고 트루히요의 심복들은 체포되며 시민의 중심으로 한 평의회가 구성되고 국가는 새로운 정권을 맞이하게 된다. 하지만 그 모든 계획은 인물들이 가지는 욕망과 두려움과 갈등으로 인하여 비틀어지고 전혀 새로운 국면으로 다가서게 된다. 권력의 핵심이 소멸된 뒤에 남은 자들은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더욱 악랄해지고 더욱 악독해진다. 그 끔찍한 고문과 살인의 풍경화가 트루히요가 죽은 뒤 혼란 속에서 잔혹하게 그려진다.

때문에 이 소설은 추악한 독재자를 그려내기 보다는 권력을 얻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선 사람이 얼만큼 추악해져야 하는 것인지를 보여준다. 트루히요는 결국 한 명의 인간일 뿐이다. 그는 사람을 지배할 수 있었고, 300만 명의 도미니카 국민을 굴복시킬 수 있었지만, 그의 방광만은 통제할 수 없었다(1권, p.219)하지만 권력의 정점에 서기 위해서는 자신이 인간으로서 허물어질 수 밖에 없는 한계를 가졌다는 것을 숨긴 채 연극을 해야만 했다. 자신의 정력을 과시하며 제 심복들의 아내나 딸을 제 것으로 만들어야 했다. 그리고 트루히요의 사람들은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트루히요에게 모든 것을 바쳐야 했다. 결국 작가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정치에 대한 것이다. 시체를 짓밟으면서 나아갈 길을 만드는 것이 정치라는 것을(2권, p.23) 말하고자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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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6펜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8
서머셋 몸 지음, 송무 옮김 / 민음사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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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중심인물인 찰스 스트릭랜드는 특이한 성향의 인물이다. 그는 증권회사에서 일하며 평범한 삶을 살던 도중, 갑작스럽게 일을 그만두고 예술가의 삶으로 전향한다. 그때 그의 나이는 40을 넘긴 상태였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어떠한 꿈이 있더라도 나이를 탓하며 현재의 삶에 충실할 시기이다. 그는 그 늦은 나이에 새로운 삶을 시작하리라 다짐한다. 그리고 그 꿈의 실현은 대단히 급진적이고 충격적인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는 미련없이 자신의 가족들을 버리고 떠나버린다. 누구도 그가 숨겨왔던 예술혼을 찾아서 아내와 자식들을 버렸을 거로 생각하지 못했다. 그의 행위는 일반인들의 사고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소설은, 화자의 눈을 통해서 찰스 스트릭랜드의 삶을 추적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소설 속에서 찰스 스트릭랜드는 예술에 모든 것을 바친 고결한 인물로 형상화된다. 하지만 그런 그의 모습은 결코 우리가 생각하는 도덕적 관점에선 올바른 것이 아니었다. 그는 흔한 윤리관에서 벗어난 인물이었다. 그는 자신 때문에 아내와 자식들이 고생하는 것에도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않으며, 죽을 병에 걸린 자신을 돌보아준 사람의 아내를 탐하고, 그녀가 죽음에 내몰리는 과정에서도 전혀 그들에게 관심을 주지 않는다. 그는 오직 자신의 예술에 몰두하며, 그것을 위해서만 인생을 대한다. 다시 말해서 그는 괴짜였다. 그의 삶이 정당화될 수 있었던 것은 자신 스스로 궁핍하게 살았음에도 그 지독한 삶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예술적 염원을 발현하는 데 온 힘을 쏟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문둥병에 걸려 죽어가는 와중에도 붓을 놓지 않고 최후의 작품을 완성한다.


그렇기에 찰스 스트릭랜드는 과연 현실에도 저런 인물이 존재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예술가의 결정체와 같은 모습이다. 그리고 그것은 제목에서도 암시하듯이 자본과는 괴리된, 그것과 정 반대편의 선 인물로 그려진다. 찰스 스트릭랜드가 그처럼 궁핍하게 살다가 죽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결코 삶에 타협하지 않는 그의 정신력 때문이었다. 그는 살아 있는 동안에 자신의 작품을 팔지 않았다. 오히려 누군가에게 자신의 작품을 보여주는 것조차 꺼렸다. 그의 작품들은 당시 미술계의 화풍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누구도 그의 그림을 거들떠보지 않았고, 그에게 그림을 선물 받은 사람들조차 그 그림을 창고에 처박아뒀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당시 유행하던 화풍을 모사하거나 시류에 휩쓸려 좀 더 예술가로서 편한 삶을 사는 길을 택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고결한 예술혼이 있었으며, 그가 추구하는 예술의 정점을 이루기 위해 빵 한 조각 우유 한 병으로 하루를 버티며 힘들게 살아간 것이었다. 심지어 불치병과 씨름하며 겨우 완성해낸 작품은, 그의 사후에 그의 유언대로 모두 소각되어 버리고 만다.


소설의 시점에서 그는 이미 죽은 인물이다. 화자는 그의 흔적을 뒤쫓으며 여러 증인의 협조를 토대로 죽은 예술가의 과거를 재구성한다. 그의 치열한 삶은 자본의 세계에서 뒤늦게 넘어간 것이기에 더욱 값지다. 소설 속에선 어떤 지방에 가면 자신의 그 지방의 사람인 양 그곳에서 편안함을 느낀다는 말이 나온다. 그는 그 지방에서 살도록 운명지어진 사람이지만, 다른 곳에서 태어나고 말았다는 것이다. 찰스 스트릭랜드 또한 예술가로서의 삶을 소명 받아 태어난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운명을 알지 못한 채 증권가에 들어가 평범한 삶을 산다. 그가 자신의 숨겨진 예술혼을 깨달은 것은 40이 넘어선 늦은 시기였다.


예술가를 꿈꾸는 처지라면 꼭 곱씹어 읽어봐야 할 소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찰스 스트릭랜드의 삶은 어떠한 이상향일 뿐, 그것이 참된 삶의 자세라곤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의 태도가 주목받는 것은 예술이 가지는 자본과의 분리성 때문일 것이다. 자본에 의탁한 예술은 진정한 예술이 되기 어려울 것이다. 자신의 철학을 살리면서 당대에 사랑받는 작가도 많이 있지만, 대부분의 작가는 비참한 생을 살다 죽음을 맞이하며, 사후에나 다시 조명받는 일이 다반사다. 이 소설은 예술가가 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최소한 어떠한 마음가짐을 먹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떠한 각오를 하고 그것에 임해야 하는지 그 막중한 직업의 무게와 정신을 생각해보게 하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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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레라 시대의 사랑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97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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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소설이 진행될수록 눈에 띄게 변모하는 사회상이었다. 플로렌티노 아리사가 젊었던 시절엔 편지를 주고받고 마차를 타고다녔지만 그가 중년에 접어든 무렵엔 트롤리라 부리는 전차가 거리를 오간다. 그가 장년에 접어들었을 무렵엔 자동차가 등장하고, 손편지를 타자기가 대체한다. 이 급변하는 시대의 사이를 플로렌티노 아리사와 페르미나 다사의 엇갈리는 사랑이 가로지른다.


소설은 대단히 낭만적이고 절대적인 사랑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것은 육체적인 것을 넘어선 정신적인 사랑이다. 플로렌티노는 젊었을 무렵 잠시 가졌고, 그리고 신분적인 한계에 부딪혀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사랑을 가슴 속에 간직한 채 평생을 살아간다. 그에게 있어서 사랑이란 육체적인 관계를 넘어선 것이었다. 그는 언제나 페르미나 다사를 사랑했고, 그녀를 잊지 않았지만 그는 결코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는 항상 여자들과 육체적인 관계를 지속해왔다. 하지만 그 복잡하고 어찌보면 비윤리적으로까지 보이는 관계들은 그가 가슴속에 품은 사랑을 유지하는 데 전혀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세속에서 가지는 규정들, 윤리적인 규범관들이란 그토록 헛된 것이었다. 그는 한 여자와만 관계를 가진 것이 아니었고, 결혼에 의해 속박되지 않았으며 자유로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불타는 사랑을 하지 못한 것이 아니었다. 남편을 잃은 여자들은 지워진 남편의 그림자에 묶인 채 평생을 살아가야 한다는 보편적 인식에서 벗어나 본능적인 욕망에 몸을 맡긴다. 그것은 어찌보면 사람들이 만들어낸 어떠한 도덕률들 보다도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그렇기에 다소 파격적이다. 그들은 남편이 존재함에도 거리낌 없이 불륜을 저지르고, 사랑이 불러일으키는 욕망에 기꺼이 제 몸을 던진다. 누군가는 그 사랑에 의해 좌절되고, 누군가는 남편에게 목숨을 잃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사랑을 갈구하는 욕구들은 누군가의 억제에 의해 지배될 성질의 것들이 아니었다. 그러한 억압에의 일탈, 진정한 사랑의 획득은 플로렌티노 아리사와 페르미나 다사의 노년기의 사랑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페르미나의 딸은 그녀와 플로렌티노의 관계에 치를 떤다. 늙은이들의 사랑은 추잡한 것이라 소리치는 그녀의 모습은 그 당시의 사회상을 반영한다. 두 노인의 관계를 인정하는 듯 보이는 페르미나의 아들 조차, 은근히 플로렌티노에게 자신의 노인관을 피력한다. 세상은 노인들에 의해 더디게 흘러가고, 그들은 요양원에 같혀서 그들끼리 평생을 사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시선이다. 이러한 것들은 죽어가는 존재에 대한 사회의 인식이 어떠한가를 파악할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두 주인공은 그러한 관념을 비웃기라도 하듯 늙어빠진 육체를 부둥켜 안고, 서로에게서 풍기는 썩어가는 세포의 냄세를 맡으며 묵은 사랑을 나눈다. 우리 목숨이 다할 때까지 강을 오가며 끝없는 사랑을 나누겠다는 플로렌티노의 선언은 그러므로 대단히 상징적이다.


사랑은 병이다. 트란시토 아리사가 아들의 상사병과 콜레라를 착각한 것은 둘의 유사성을 증명한다. 사랑은 콜레라와 같은 것이다. 그 전염성이 강한 병은 인간에게 달라 붙어 그들의 목숨이 다할 때까지 끈질기게 그들의 심장을 갉아먹는다. 그 지독한 사랑의 생명력은 그저 늙음으로 인해서, 혹은 신분이 다름으로 인해서 벗어날 수 있는 차원의 것이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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